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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 사계절 ?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글이 깁니다. 요약을 원하신다면 맨 밑으로 내려 주세요. ? <일리아스>는 살면서 한 번은 꼭 읽어보려 했던 고전이다. 어릴 적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10n회독한 사람들이 모두 <일리아스>를 읽어보려 하지는 않겠지만, <퍼시 잭슨> 시리즈를 n회독할 만큼 과몰입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반쯤 확신한다. 이것은 너무 과몰입한 나머지 뮤지컬 동아리의 극본마저 그리스 로마 신화 소재로 쓰게 된 사람의 말이다. 아, 여자아이라면 자라면서 한 번쯤은 만화 속 지혜롭고 용맹한 아테나와 자신을 동일시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그런 한편 <퍼시 잭슨> 시리즈에서의 내 최애는 아르테미스였다. ? 하지만 섣불리 도전하지 못했던 이유는, <일리아스>가 서사시인 만큼 일단은 ‘운문’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희곡조차 형식이 낯설어 잘 집중하지 못하는 독자이기에,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은 경험조차 십수년 전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에 머물러 있을 정도다. ? 그런 의미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이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서사시를 읽을 엄두는 안 나지만 너무나 과몰입하여 배경지식으로서 그리스 고전을 읽을 준비는 백 번이고 된 나 같은 독자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 ? “처음 ‘고전’이라는 이름을 마주했을 때는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책’,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책’이라 막연히 생각되었다. … 그러나..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자랐던 사람이 아무런 준비 없이 서구 고전을 읽었을 때 느꼈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아니 전혀 감동적이지 않아!’ 분명히 시공간을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고전이고 명작이라는데……” - ‘머리말 - 인류 최초의 고전’ 중에서 ? ? 고전에 괜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꽤 많이, 어쩌면 대부분의 독자가 그렇지 않을까? 나 역시 대형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고전 문학에는 손이 잘 가지 않고, 한국 고전 문학도 마찬가지이고, 고전 철학은 더더욱 그렇다. 아마도 세계 고전 문학의 경우는 어색한 번역에 8할 이상의 책임을 돌려도 될 것 같다. 한국 고전 문학이라면 교과서에 실려 있는, 다시 말해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읽어야 했던 문학이라는 데에서 오는 딱딱한 느낌과 반감 때문일 것이고, 고전 철학은 아마도 (읽어보지도 않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기(모를 것이기) 때문에…? ? ? “지금 되돌아보면 이 모든 것은 고전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가지는 오해 때문이다. 고전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일단 고전은 누구나 맘만 먹으면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 사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 ‘머리말 - 인류 최초의 고전’ 중에서 ? ? 그렇다. 고전은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읽어왔기 때문에’ 고전인 것이 아니었다. ‘오래 읽혀왔기 때문에’ 고전인 것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읽혀 왔다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시의 문화나 사조를 잘 보여준다든지, 문학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다든지.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읽어왔을 수는 있지만, 그게 꼭 나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나 같은 독자를 위하여 사계절의 Junior Classic 시리즈가 존재하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24권에 달하는 <일리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주는 해설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안 사실인데,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전쟁의 서막이 아니라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라는 처녀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긴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는데, 즉 트로이 전쟁이 한창인(거의 막바지인 9년째의) 어느 날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트로이의 첫째 왕자이자 최고의 영웅인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 책 자체는 450쪽에 달하는 두께로 벽돌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두껍고 다루는 이야기의 분량도 방대하지만, 전혀 고전을 읽는 것 같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똑똑한 선생님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마냥 유연하고 말랑하다. 수업을 듣는다거나 공부하는 것 같이 억지로 이해해야 하는 느낌 역시 조금도 없고, 오히려 그 자체로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 같다. 그만큼 놀라울 정도로 쉬운 언어로 쓰여 있다. ? 단순히 서사를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리아스>가 쓰일 당시의(정확히 말하면 쓰인 것이 아니라 입으로 말해지고 전해진 구전 문학이지만) 시대적 배경과 문화와 각종 명칭에 대한 강의도 충실하고,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Tip’이라는 꼭지에서 주변적인 소재와 설명을 첨언하면서 풍부한 이해를 돕는다. ? ? ? 사실 한 명의 과몰입자로서 감히 말한다면, 이 책에서 가장 ‘뽕이 차오르는 부분’들은 따로 있다. 바로 중간중간 등장하는 신화와 관련된 비하인드와 자투리 상식(상식은 아닐지도?)들이다. ? ? “고대 그리스 암흑기에 음유 시인들은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단지 기억에만 의지하여 노래했다. … 그렇기 때문에 ‘기억’이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신적인 능력이라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고대 음유 시인들은 항상 기억과 관련이 있는 특정한 신에게 기도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37p ? “고대 그리스인은 기억이 학문과 예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므네모쉬네와 무사 여신들을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설정했다.” 38p ? ? 오마이갓… 얼마나 뽕이 차오른단 말인가! 기억이 학문과 예술의 어머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므네모쉬네 여신이 뮤즈의 어머니로 설정되었다니 ㅠ ㅠ ㅜㅠ ㅜㅠ ㅠㅜ ㅜㅠ ㅠㅜ ㅠㅜㅠ ㅠㅜ ㅜㅠㅠㅜㅜㅠ ㅠㅜㅠㅜ ㅠ 쥐엔장… 웬만하면 서평 글에는 초성이나 비속어를 안 쓰려고 노력하지만 이런 자투리 지식들이 너무 좋아서… 좋다는 말 말고 무엇으로 표현하면 좋을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좋아서 그저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과몰입자에게 이런 변태적 설정들만큼 맛있는 간식이 없다… 난 이것만 먹고도 살 수 있어… 설정 맛집 그리스 로마 신화… ? ?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아폴론은 그리스 고전기의 학문과 예술의 신으로 리라를 들고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일리아스>에서 아폴론은 그리스 상고기의 특징을 보여 주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있으며, ‘은빛 활’이나 ‘멀리 쏘는’ 등의 형용구와 함께 등장한다.” 44~45p ? 시대에 따라서 신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니…… 그리스인들은 얼마나 설정 변태였던 것인가!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좋아하는 신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이렇게 방대한 신화를 짜냈으니, 얼마나 대단한 연성 장인들이란 말인가… ? ? ? 그런가 하면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도 있었다. ? ? “그리스인들은 모든 신이 각기 고유한 몫이나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특정 영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관장하는 특정 신에게 원인을 돌린다. 예를 들면 … 출산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기면 아르테미스 등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이해한다.” 42p ? ? 결혼과 출산은 헤라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처녀 신인 아르테미스와 연관지어 생각했다니 의아하다. 아마 여성의 자궁과 달 사이의 관련성 때문이겠지만,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기도 했다. ? ? ? ?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와 특징을 적은 부분들도 무척 인상 깊었다. ? ? “그리스인들은 단 한 번의 결단이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신들이 개입한다고 생각한다.” 53p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것은 ‘신화’나 ‘철학’에서 모두 똑같이 나타난다. 신화에서는 초자연적 원인을 도입하며 원인을 설명하려 하고, 철학에서는 경험적 원인을 도입하여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전쟁을 되돌아볼수록 도대체 고대인들의 삶을 뒤흔든 이 엄청난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는 트로이 전쟁의 발단과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설명할 때는 초자연적인 원인을 끌어들여 설명한다.” 90p ?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화의 신을 전쟁의 신 아레스와 형제 관계로 두었다. 트로이 전쟁이 ‘불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풀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개 방식이다.” 90p ? ?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고 체계가 연성과 덕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들어낸 신들이 인간의 삶과 사고 알고리즘에 이토록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신이 대단한 것인지 신화가 대단한 것인지 인간이 대단한 것인지. ? ? ? ? 저자의 유머가 너무 웃겨서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부분들도 있다. ? ? “내 옆에 앉아서 불평해 대지 말거라. 올륌포스에 사는 모든 신들 중에서 네가 내게는 가장 밉다. 넌 항상 불화와 싸움과 전쟁에만 관심이 있으니 말이다. … / 제우스의 말을 분석해 보면 이번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판정하여 비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아레스 자체를 미워하는 것이다.” 134p (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 ?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친(아프로디테의 허리띠를 빌려 제우스를 유혹할 준비를 마친) 헤라가 제우스를 찾아와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에게 가는 길이라고 알린다. 그때 제우스는 너무도 강렬하게 헤라에게 매혹되어 버린다. 호메로스는 제우스가 다른 어떤 여인보다도 헤라에게 훨씬 강하게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제우스 스스로 자신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읊어 대도록 한다. 페이리토스를 낳은 디아, 페르세우스를 낳은 다나에, 미노스와 라다만토스를 낳은 에우로페, 디오뉘소스를 낳은 세멜레, 헤라클레스를 낳은 알크메네, 페르세포네를 낳은 데메테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은 레토 등이다. 제우스는 자신이 이토록 간절하게 사랑의 욕망에 사로잡힌 적이 없다고 호소한다. 여기서 호메로스나 그의 청중이 주로 남성이기 때문인지 이런 여성 편력을 듣는 헤라의 심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인다.” 223p ? ? 이런 담백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하니, 이게 유머인지 진지한 고찰이고 분석인지 헷갈릴 정도이고 오히려 그래서 더 웃기다. ? ?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이토록 쉽고 유쾌하게 읽히는 데에는 확실히 저자의 깔끔하고 뛰어난 글 솜씨가 중대한 한몫을 했다. 저자의 입담이 돋보이고 아주 맛깔나는 대목 하나를 더 소개하겠다. ? ? “이제 신들이 인간들의 전쟁에서 물러나는가 했는데 다시 불씨를 지피는 자가 나타난다. 바로 아폴론의 누이 아르테미스이다. … 헤라가 나서서 아르테미스를 질책한 후 오른손으로 활을 벗겨 내고 왼손으로 양 손목을 움켜잡고 요리조리 피하는 뺨을 후려쳐 버린다.” 326p (ㅋㅋㅋㅋㅋㅋㅋㄲ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 ? ? 쾌녀 헤라…! 이 장면이 실제로 <일리아스>에서는 그리스어로 어떻게 적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언어는 아니지 않을까? ? ? ? ? “제18권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장면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만들기 위해 헤파이스토스의 궁전을 방문한 테티스 여신의 일화이다. … 우선 세 가지 발명품에 주목해 보자. 첫째, ‘자동 장소 이동 기구’이다. 헤파이스토스는 약 20개의 세발솥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는 아래에 황금바퀴를 달아 신들을 저절로 회의장으로 갔다가 각자 집에 돌아오게끔 해 주는 장치였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인공 지능 자동차 정도가 될 것이다. 둘째, ‘황금으로 만들어진 하녀들’이다. 그들은 다리가 불편한 헤파이스토스를 부축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그들이 살아 있는 소녀와 똑같아 보였는데 지성이 있으며, 목소리와 힘도 지녔으며 기술도 쓸 수 있었다. 현대적으로는 아마 안드로이드나 로봇과 유사해 보인다. 셋째, ‘자동 풀무 기계’이다. 이것은 헤파이스토스가 작업할 때 자동으로 불을 피우고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이다. 궁전에는 20여 개의 풀무가 있는데 “헤파이스토스가 원하는 대로 작동하기도 하고, 작업의 진도에 따라 때로는 작업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멈추기도 했다”고 한다. 호메로스가 드러내는 고대 그리스인의 상상력은 몇천 년을 뛰어넘어 현대의 과학 기술을 앞서간다.” 276~277p ? ? 위 대목을 보면서는, 어쩌면 그리스 로마 신화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이자 동화이자 소설이고 SF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 나는 책과 책들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연결 고리를 찾는 일을 즐거워하는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도 그런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헤파이스토스의 절름발이라는 특성을 분석한 부분이다. ? ? “헤파이스토스 외에 특별히 신체적 문제가 있는 신은 없다. 당연히 신은 인간보다도 훨씬 탁월하다. 고대 그리스인은 헤파이스토스의 짧은 발을 신으로서의 약점이나 단점으로 생각하거나 불완전성의 표시로 생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의 특별한 기능과 연관될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대장장이는 전쟁과 농경 도구를 제작하는 중요한 기술을 지녔던 존재이다. … 따라서 대장장이를 특정 지역에 살도록 하여 보호하였고, 심지어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를 분질러놓던 관습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인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279p ? ? 이 대목을 읽으면서 김원영.김초엽의 <사이보그가 되다>를 떠올렸다. 단순히 사회문화적 배경과 신화적 상상력의 결부로, 장애학과는 관련이 없을지 모르지만… ? ? ? ? 저자의 통찰력에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일리아스>의 처음과 마지막 구절을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끝에 연관지어 분석하는 대목이다. (저자의 통찰력인지 <일리아스>에 관한 학계의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 ? “<일리아스>의 처음 1권 1절은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로 시작하고, 마지막 24권 804절은 “이렇게 그들은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로 끝난다. 다시 말하자면 ‘아킬레우스’의 이름으로 시작하여 “헥토르’의 이름으로 끝난다. 여기서 헥토르의 이름 앞에 “말을 길들이는”이라는 상투어는 일반적으로 트로이인을 일컬을 때 붙는 표현이다. 헥토르에게는 수많은 호칭이 있지만, 마지막에 쓰인 트로이인을 대표하는 “말을 길들이는”이라는 명칭은 대표성이 있다. … 실제로 트로이 함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오뒷세우스가 기획한 ‘트로이 목마’이다. 그만큼 트로이인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바로 ‘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 의식은 트로이의 장례 의식을 상징한다. 따라서 호메로스는 굳이 트로이 함락 장면으로 마지막을 장식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400~401p ? ? 고전과 역사적 사실에 관한 이러한 통찰을, 몇십 년 공부한 지식인의 입으로 전해 들어 집 구석에서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감사하다. 책이여 영원하라. ? 부록 ‘주요 인물’에도 읽을 거리가 많다. 그리스의 예언자 칼카스가 ‘다른 예언자가 자신의 죽음을 잘못 예언하자 웃다가 죽었다(411p)’든지, 헥토르의 아내인 안드로마케의 이름이 ‘남자의 전쟁’이라는 의미를 가졌다든지(414p). 다만 책 전체를 통틀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 ‘주요 인물’ 꼭지에서 트로이의 공주이자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미래를 보았던 카산드라를 ‘예언녀’라는 호칭으로 칭한 점이다. 관습적인 사용일지 모르나, 굳이 한쪽 성별에 치우친 단어를 사용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 또다른 부록인 ‘주요 민족의 계보’에도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딸인 헤르미오네가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와 결혼했다는 점이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여성의 딸과, 트로이 전쟁의 최고 영웅이자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 아킬레우스의 아들이 맺어지다니, 어쩐지 모순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사실 낭만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위키에 따르면 네오프톨레모스는 손 꼽히게 잔인한 사이코로 평가된다.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를 노예로 데려가 첩으로 삼았는데, 기록에 따르면 헤르미오네의 질투 때문에 그의 사촌 형제인 오레스테스에게 살해 당했다고 한다) ? ? ) 첨언 ? 이 책에서는 그리스식 발음을 따르기 위해 ‘올림포스’를 ‘올륌포스’, ‘오디세우스’를 ‘오뒷세우스’ 등으로 표기하였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명칭에 익숙하기에 이런 방식이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보다 보니 익숙해져서 괜찮았다. ? ? ? ? ? #장영란 #호메로스의일리아스 #일리아스 #호메로스 #그리스로마신화 #그리스고전 #신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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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그리스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외대 미네르바 교양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그리스 신화와 철학 및 문화 비평을 중심으로 다양한 책과 논문을 썼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사계절 주니어 클래식' 시리즈의 16번째 책으로 고전을 새롭게 번역하고 알기 쉽에 풀어썼습니다. 그럼 내용을 보겠습니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손꼽는 "일리아스"가 집에 있습니다. 하지만 글이 아니라 우리나라 옛 노래 같은 가사 형식의 시라 이해하기도 힘들고 낯선 단어들도 많아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장식처럼 책장에 꽂힌 채로 1년 넘게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결심만 하고 있었는데 일리아스의 해설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접하고 이제 책을 펼칠 용기가 납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전체 주제를 첫 구절에서 한마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킬레우스의 분노'입니다. 그것이 「일리아스」 속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됩니다. 그냥 분노가 아닌 주로 신들에게 쓰던 표현으로 신적인 '진노'를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최고 서사시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신적인 분노로 시작하며, 고대 로마의 최고 서사시 「아이네이스」는 아이네이아스의 분노로 끝납니다.
분노는 사적 영역에서든 공적 영역에서든 인간의 삶을 전복시키는 기제를 가집니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일으킨 사람은 바로 그리스 동맹군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입니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진영에 번지는 역병을 진압하기 위해 나섰지만 아가멤논에게 부당한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리스인은 단 한 번의 결단이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신들이 개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전쟁의 위급한 상황을 파악한 헤라가 아킬레우스에게 아테나 여신을 급히 보내 '직접'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입니다. 아테나 여신은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진정시키고 이성을 찾은 그는 칼을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어리석게도 멈추지 않고 그의 더욱 모욕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의 주인공이지만 1권에서 분노한 후 9권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1권과 2권은 그리스 동맹군에게 역병이 돌면서 지도자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가운데 분열이 일어난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3권엔 드디어 트로이 동맹군과 그리스 동맹군이 격돌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일리아스」에서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는 날은 단 4일이며, 그중 첫 번째 전투 장면이 3권에 등장합니다. 파리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경계선에서 전쟁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일리아스」의 주요 내용은 트로이 전쟁 말엽에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두고 뺏고 빼앗긴 사람들의 전쟁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주는 첫 번째 결투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 결투는 헬레네의 전 남편인 메넬라오스가 우세를 보였지만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도망친 파리스 때문에 결투는 무산되었고 승패를 판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소강되자 제우스의 계략으로 다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 4권입니다. 호메로스는 5권에서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들도 양측으로 나누어 편싸움을 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올림포스 신들의 특징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호메로스는 6권에서 그리스군이 우세한 편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트로이 왕의 장남이며 최고 전사인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사촌이자 그다음으로 강력한 전사인 아이아스의 결투를 7권에서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투에 개입한 제우스와 신들의 회의와 둘째 날 전투를 8권에서 묘사합니다. 그리스군이 후퇴하며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기 위해 보상금과 사절단을 꾸려 보냅니다. 사절단으로 간 오뒷세이아가 자신의 연설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답변을 정리해서 그리스군에게 말합니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강경한 입장만을 전달하는 9권, 10권의 내용입니다. 11권부터 17권은 셋째 날 전투로 트로이군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18권 19권에서는 아킬레우스의 조언자이자 연인이었던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헥토르로 향하게 되었고 그는 전투에 참전하고자 합니다. 20권부터 22권까지는 아킬레우스가 참전한 넷째 날 전투로 그리스군의 승리를 표현합니다. 헥토르가 죽고 파트로클로스의 장례 의식이 23권에 나오고, 24권엔 헥토르의 장례 의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일리아스」의 시작과 끝은 독특합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영웅인 아킬레우스입니다. 「일리아스」의 첫 장면은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지요. 이것이 「일리아스」 전체의 내용이며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처음에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아가멤논이지만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헥토르로 바뀝니다. 결국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일리아스」의 마지막은 헥토르의 장례 의식으로 끝이 납니다. 보통 이야기라면 「일리아스」의 끝이 아킬레우스의 죽음이나 트로이 함락 정도로 예상했는데 헥토르의 이야기로 끝이 나서 당황했습니다. 「일리아스」의 저자 호메로스는 왜 이런 결말을 선택했을까요. 헥토르는 트로이의 최고 전사입니다. 그런 그가 죽었으니 상징적으로 트로이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트로이 전쟁도 9년째의 어느 날에서 시작해 과거로 돌아가 전쟁의 시작부터 9년째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건들을 회상하며 전체 내용을 소개합니다. 이런 독특한 이야기의 시작 때문에 9년째 어느 날의 사건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일관성 있게 느껴집니다. 어렵다고 느껴서 책을 펼치지도 못한 「일리아스」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책으로 배경지식을 많이 얻었습니다. 이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사계절 주니어 클래식' 시리즈에서 출간되길 기대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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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정신의 근원과 원형을 담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로 들어가기 전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그리스 고전 연구자 장영란의 친절한 번역과 풍부한 해설” 「책소개」 저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그리스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그리스 신화와 철학 관련 다양한 저서들을 출판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 교양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구 사상에서 삶과 탁월성, 설득과 소통, 영혼의 훈련과 치유의 문제에 관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20세기 공장에 의한 대량생산과 21세기 기술에 의한 융합의 세계에서, 동양의 장자와 불교의 신을 내세우지 않는 자비 외에는 서구 철학이 현대의 근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호메로스」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암흑기 말기에 활동한 시인이며, 서양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시각장애인이며 유랑시인이라, 그가 태어난 지역과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고 하며, 심지어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일리아스』 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데, 두 이야기가 트로이 전쟁과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예가 중 한 명이며, 가장 넓게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며, 그리스 교육의 문화와 기초, 로마 제국 시대와 그리스도교 전파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근간을 형성했다고 설명한다.” 「브리태니커」 2,500년 서양 철학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는데, 기원전 5세기경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 학자들도 그의 존재에 관하여 논쟁을 한 바가 있다고 한다. “호메로스는 누구인가?”, “단일 인물인가? 여러 시인의 합작품인가?”, “서사시의 전설은 얼마나 믿을만한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클래식 16번째 작품이다. 처음에 책을 받고는 이 책이 왜 청소년 문고로 분류됐을까? 의아했는데, 어려운 단어를 쉬운 단어로 새롭게 번역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는 시리즈라고 설명되어있다.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의 연설은 중학생 수준의 어휘력만 있어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바마를 명연설가라고 칭한다. 반면에, 트럼프의 연설은 초등학생 정도의 어휘력만 가지면, 충분히 알아듣는 욕설과 비난이 섞인 연설이라고 한다. 말에는 품격이 있는데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의 연설에 품격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중학생 정도의 어휘력으로 읽을 수 있음에도, 축약이나 삭제되는 부분 없는 완역 그대로인다. 책은 어려운 단어와 ‘미사여구’로 꾸밈에만 집중한 책은, 정작 읽기에는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런 번역과 해석에서 매우 칭찬하고 싶은 책이다.
일리아스는 워낙에 번역본과 관련된 책이 많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런데, 유명한 고전일수록 아는 것에 비해 제대로 한 권을 읽어낸 책이 몇 권이나 될까? 나 역시도 축약된 해설서나, 영화나 다큐멘터리 외에는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었다. 2004년 영화 트로이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에 집중되어 있다면, 책은 51일간의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신과 인간 모두의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의 전쟁으로도 유명하지만, 올림포스의 신들도 양 진영으로 나뉘어 싸운 전쟁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지원한 트로이를 응원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클래식 17번은 『오디세이아』 일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책이었다. 원본을 유지하되, 쉬운 문체로 번역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삽화와 무엇보다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 좋은 문고판이 매력적인 책이다. 고전문학과 인문학을 대표하는 디킨스, 니체, 빅토르 위고, 톨스토이 등 서구권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를 공부하지 않고선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서구 철학과 교육의 근간이 된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읽어야, 현대의 서구 사상까지도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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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독서의 순간들을 기억해보면 재밌고 만족스럽고 감동스러운 경험보다 의외로 그렇지 않는 일들이 더 생각난다. 그런 기억이 오래 남아서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전래동화는 호러의 최고봉이었고, 세계명작동화 역시 무서운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떨기도 울기도 했다.
21세기의 아이들은 친절하게 전달되는 여러 배려가 담긴 책들을 많이 만나서인지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그리스로마신화도 재밌게 읽는다. 고전문학도 읽지만 멋진 창작동화들도 많아서 독서에 대한 경험들이 비교불가하게 다양해졌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같은 작품은 번역을 접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읽기가 더욱 어려웠다.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던 번역성경체가 성경책 읽기를 꺼리게 만든 것처럼. 주니어 클래식 시리스로 출간되는 일리아스라니... 격세지감을 느끼는 옛날 사람이다. 요즘 아이들 부럽네!
* 호메로스 : 눈 먼 사람이라는 뜻. 실존 인물 여부 모름. 구전을 편집한 사람의 이름일 수도 있음. ** 일리아스 : 일리온(트로이의 옛 지명)의 노래라는 뜻.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은 한 두 개도 아닌 여러 단절을 존재에 품고 사는 일이라, 근원을 궁금해 하는 오랜 질문이나 일관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고전’에 대한 경험도 공부도 부족했다. 그나마 교과서에 잘려서 실린 작품들에 얼마나 공감하며 즐거운 독서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이런 단절들, 언어의 문제, 역사문화사회적 괴리는 나이가 들고 경험한 세계가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거듭 접하면서 비로소 난제에서 그럴 수 있는 일들도 바뀌어갔다. ‘고전’이란 명칭이 붙은 철학과 문학을 불편함과 거부감 없이 만나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분노는 떨어지는 꿀보다 훨씬 달콤해서 인간들의 가슴속에 연기처럼 퍼져 버려요.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어요.”
‘사람 사는 일’의 공통적이고 유사한 어려움들을 경험하고 나면 철학과 문학에 담긴 보편적 사유, 질문, 고민들도 끄덕이며 읽을 수 있다. 상상력은 현실의 경험을 재료로 해서만 발현 가능하다는 점에서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아직 남은 괴리를 채우는 일도 조금씩 수월해진다.
“<일리아스>의 어느 곳을 읽어봐도 ‘그리스인’이라는 표현은 없다. (...) 기원전 약 750년 경에 기록된 <일리아스>에는 여전히 헬레네라는 명칭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되던 시대에 그리스인은 과연 자신들을 어떻게 불렀을까? 그들은 자신들을 아르고스인들, 아카이아인들, 다나오스인들이라 불렀다.”
2천 년 전의 인간의 삶, 갈등과 전쟁, 시련과 고통, 사랑과 우정, 죽음과 신... 그로부터 내내 살아남아 인간의 시간으로는 충분한 불멸을 얻은 이야기, 읽다 보면 다른 후손들의 말과 글로 여러 번 만나본 낯설지 않은 삶의 모습들이다.
“호메로스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서 ‘오만’을 가장 경계한다.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한계를 알지못하고 지나치게 욕망을 추구할 때 ‘오만’을 범하게 된다. (...) 이것은 단지 영웅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지나치게 행운이 따르면 오만에 빠지기 쉽다.”
매번 새롭지만 이제 마지막이 아닐 트로이 전쟁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시 만난다. 열심히 산다는 일이 가끔 바닥 모를 허망함에 짓눌릴 때, 시련과 한계와 역경을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오래전 인간의 원형을 만나는 일은 일종의 그리움이자 적절한 위로이다.
“아킬레우스는 불멸하는 영웅이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죽는 장면이 삽입된다면 그리스의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라기보다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기념하는 노래로 기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신화를 다룬 다른 작품 <아킬레우스의 노래>에서 만난 파트로클로스가 유령이 되어 아킬레우스의 꿈에 나타난 장면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가까워지거나 흐려지는데,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덥석 반가울 지경이다.
꿈을 매일 꾸는 게 맞는지, 매일 잊을 뿐인 것인지, 잠든 시간이 그대로 무화되어 삶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한 삶에, 그리움을 가진 존재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마련된 공간인 꿈을 통해 만나는 애틋함과 간절함이 좋다.
상당히 흐릿해진 영화 <트로이>에서 만난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 트로이의 마지막 왕이자, 전쟁의 진짜 영웅인 프리아모스도 잊었던 지인처럼 덕분에 떠올려본다. 장영란 교수의 번역과 해설이 가독성은 늘리고 재미는 줄이지 않아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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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도 교과서를 위한 전집으로 해설서가 있었을 정도로 학창 시절에 우리는 많은 해설서를 접했었다. 특히 수학을 풀 때 해설서는 필수였고 나에게 어려운 문제집을 만났을 때는 다른 문제집을 찾아보고 나에게 맞는 수준의 문제집으로 바꿨었다. 최근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를 읽고서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다른 어려운 고전문학이나 세계문학 작품도 해설서가 있으면 좀 더 대중들에게 친근하고 많이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리아스>는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호기롭게 도전한 첫 고전문학이었다. 책에 익숙하지도 않았던 당시 무식하기에 용감했었던 것 같았다. 물론 호기롭게 도전하였으나 당연히 읽기 어려웠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었다. 고전어가 나에게는 너무 어색하였고 가독성이 좋지 않기에 '트로이'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을 다루고 있는 부분만 머릿속에 들어왔었다.
고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리, 역사, 문화, 종교, 철학 등 많은 것을 아울러서 알 수 있어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고 한다. 그렇기에 진입장벽이 높고 읽어도 헛보았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전을 도전하고 찾는 이유가 배울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일리아스>는 각 시대, 각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고전이라고 하면 늘 떠오르고 포함된다. 서양 고전 작품의 원탑이라고 할 정도이다. 이 책은 서구 정신의 근원과 원형을 담고 있다. 현대인에게 '살아 있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일리아스>는 인간의 삶에서 자주 마주치는 분노, 갈등, 전쟁, 운명, 고통, 사랑 등의 주제를 통해 삶의 통찰력과 이해력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베르길리우스, 단테, 셰익스피어 등 많은 예술가의 영혼을 사로잡을 정도이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다. 호메로스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둘러싼 세계와 신들의 본질 및 인간의 운명에 대한 깊은 통찰과 반성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일리아스>는 처음 시작부터 기억의 신을 찾고 중간중간 자주 나온다. 처음 일리아스를 읽을 때 '그리스라 그런가 무슨 신을 이리도 불러대고 찾아?'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이 배경지식의 부족에서 나오는 현상이었다. 그리스 암흑시대에 오랫동안 문자가 없었기에 기록이 불가능하였다. 오직 '기억'이라는 인간의 능력에 의존해야 했었고 그렇기에 <일리아스>에서도 기억의 신을 자주 불렀던 것이다. 호메로스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들도 양측으로 나누어 편싸움을 하는 것을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인간끼리, 신은 신끼리 싸우지만 극적인 장면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신들이 인간의 싸움에 개입하기도 한다. 안 그래도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데 신들도 많이 나오기에 더욱 복잡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이 책은 진입장벽이 너무나 높다. 엄청난 양의 그리스 이름이 쏟아져 나오고 말투의 어려움 때문에 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하나의 팁을 준다. <일리아스>를 읽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신과 영웅의 이름만 외우고 모르는 이름을 대충 넘기며 이야기의 흐름을 타야 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장면 파리스와 메넬레오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싸움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파리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경계선에서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파리스의 태몽조차도 불타는 장작을 낳자 불이 도시 전체로 퍼지는 꿈이었다고 한다. 헬레니와 사랑의 도피로 트로이 전쟁의 발단을 제공한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첫 번째 결투는 뺏고 빼앗긴 사람들의 전쟁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준다. 처음 읽었을 때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에게 지고 도망가는 모습에 너무나 실망했다. 사랑을 쟁취했으나 용기는 없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은 전쟁의 발단을 일으킨 자라고 하나 수치스러울 뿐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지나치게 행운이 따르면 오만에 빠지기 쉽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군을 그리스 함선에서 몰아내기만 하고 성벽에 이르지 말고 돌아오라고 했지만 자신의 승리에 도취한 파트로클로스는 '오만'을 범하였다. 결국 헥토르의 손에 죽었고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일대일 대결에서 헥토르는 죽임을 당하고 아킬레우스는 그의 시신을 치욕스럽게 만든다. 두 발을 쇠가죽 끈으로 꿰어 전차에 매달아 머리가 뒤에서 끌려오게 만들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매일매일 똑같은 행동을 하였다. 헥토르의 살을 저며 먹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호메로스는 제일 강한 단어를 쓸 정도였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처음에는 아가멤논에게 분노를 향하였지만 나중에는 헥토르로 대상이 변한다. 원래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는 죽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헥토르의 장례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헥토르는 트로이의 최고의 전사이고 영웅이기에 그의 죽음은 트로이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의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따라서 굳이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아도 상징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해설서의 느낌으로 읽었으나 금방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로 일리아스 한 권을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으며 어려운 내용을 하나하나 쉽게 풀어가듯이 서술해 주고 있다. 집중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고 어느 순가 머릿속에서 읽는 부분의 장면들이 저절로 연상이 되고 상상이 되었다. 예를 들면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다툼, 어머니 테티스가 제우스에게 간청하는 장면, 각종 신들이 전투에 개입하는 장면 등 말이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설명을 해주고 원작에서 해당 구절을 제시해 주고 있는 점이었다. 개념을 설명해 주고 문제를 풀게 해서 장기기억으로 넘어가게 하는 방법처럼 설명을 해주고 그 구절을 직접 볼 수 있게 해주어서 '아~ 이런 뜻이었구나 나는 그냥 글자만 읽은 수준이었네'라고 스스로 피드백이 되고 이해력을 향상시켜 주었다. 인생이라는 전투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우리 스스로 영웅이 되어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리아스>이다. 필독서일 뿐만 아니라 인생 시련의 극복을 다루고 있는 매력적인 책을 만나보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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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너무나 유명한 '호메로스'라는 이름이 실제로 존재했던 특정 인물을 가리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는 오래된 고전으로 서양의 고전문학을 읽을 때 반드시 거쳐가는 관문과도 같다. 고전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라면 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필독서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모두 맞는 것일까? 나는 익히 아는 이야기 말고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호메로스가 실존 인물이 아닐수도 있다?
호메로스라는 이름은 '눈먼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스어로 '호로스horos'가 본다는 뜻이고 거기에 부정의 '메me'가 붙어 '보지 못한 사람'을 뜻한다. 이 유명한 그리스 시인으로 알려진 호메로스는 아마도 실존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그리스 암흑기(400~500동안)에 구전으로 전해진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사람일 수 있다. 호메로스라는 이름을 상징적으로 사용했을 뿐 일리아스라는 작품을 만든 인물은 아닐 수도 있다. 말하자면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일리아스라는 이름으로 책으로 엮은 누군가의 필명일 수 있다는 얘기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두 이야기의 저자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문헌학자 입장에서 보면 한 사람이 썼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호메로스라는 이름으로 이 두 작품을 묶어서 전해내려 오는 이유는 그리스 암흑기에 음유시인들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나중에서야 글로 남겼기에 상징적인 이름의 호메로스를 사용했을 수 있다.
이 책은 일리아스의 해설본 같다. 집에 있는 일리아스 책을 읽으며 뭔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해주고 싶다. 그리스 문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표현들과 그리스 신들이 상징하는 의미와 일리아스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처음에 책을 받고 일리아스 이야기를 읽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엔 이야기와 더불어 그 상황과 표현들에 대한 숨겨진 의미와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래서 일리아스 완역판을 읽은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오래전 읽었지만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일리아스의 그 방대한 의미를 이 책을 통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중간중간 삽입된 명화들이 흑백이라 좀 아쉬웠지만 일리아스의 상황에 맞는 그림들이 담겨 있어 좋았고 문단 사이에 일리아스의 표현이나 상황이나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Tip이 들어 있어서 모호한 부분들을 보충할 수 있어서 좋다.
고전이 가진 맹점이 누구나 아는데 실제로 읽은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냥 들어 보기만 했거나 읽어 보려 한 적만 있는 책일 뿐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서구 정신의 근원과 원형을 담아낸 서사시다.이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서 만나게 되는 분노, 갈등, 전쟁, 권력, 시련, 고통, 사랑, 우정, 용기, 죽음과 영혼 등의 모든 것들을 주제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들어는 봤지만, 알고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읽어 보지 못한 사람. 읽었지만 뭔 말인지 이해가 안 됐던 사람.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는 책이다.
장영란 교수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가장 오래된 고전을 잘 이해하며 읽을 수 있게 길을 알려주는 등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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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주니어 클래식 16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고전이자 명작인 일리아스를 여러 개의 버전으로 도전했었다. 남들 다 좋아하는 일리아스가 내겐 그다지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유는 언어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서사시는 매번 내게 일종의 암호처럼 느껴졌다^^ 겨우 몰입했으나 감정이 툭툭 끊기는 느낌, 물에 만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기분으로 읽어냈던 기존의 일리아스였다. 그런 내게 사계절 청소년 클래식 신간 16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정말 신세계였다^^
장르중에 청소년 도서를 특히 애정하는 내게 주니어 클래식은 정말 매력적이다. 일단 필진이 해당 분야 권위자로 구성되어 있고, 현대 감각을 입힌 그야말로 핫한 신간이다. 책의 저자 장영란 교수님의 《신화 속의 여성, 여성 속의 신화》를 꽤 오래전에 읽었다. 신화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모습은 악녀나 마녀 같은 아니면 남성의 과업을 방해하거나 가로막는 모습이다. 신화 속 영웅들은 여성(애인, 엄마 등 모든 여자)으로부터 철저히 독립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가치가 은연중에 그려진다. 억울하고 억압받던 기존의 여성상을 새롭게 해석한 장영란 교수님.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일리아스를 읽기 전에 알아야 할 지식과 배경 등이 눈에 쏙 들어왔다. 일리아스에 기록된 엄청난 분량의 내용을 최대한 쉽고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책. 고전 읽기는 일종의 전투와 같다는 저자의 말에 정말 공감한다. 호메로스는 실제로 존재한 인물인가? 아니라면 당시 그리스에서 꽤 흔한 이름인 '호메로스'가 주는 상징성은 뭘까?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각기 다른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주장에 대한 해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의 작가가 모두 호메로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이 과연 전부일까? 일리아스 읽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이런 의문을 풀어나간다.
그리스인들의 문화, 일리아스의 숫자가 주는 상징성, 일리아스의 플롯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남들 다 좋아하는 그리스 최고 서사시 일리아스, 그동안 읽고도 정리되지 못했던 비운의 일리아스가 이 책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랄까?^^ 주니어 클래식은 계속 출간되어야만 한다!! 청소년 독자뿐 아니라 나처럼 고전 읽기에 길을 잃은 성인 독자에게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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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리아스 읽어볼만 하겠는데?' '아...#장영란교수님 직강을 듣고싶다.' 'Junior Classic' 이전 작품들은 뭐지? 전부 이런 퀄리티일까? 책을 읽으며 저자의 정보를 찾고,《일리아스》와 인터넷 검색창에서 그림을 비교했으며,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클래식 목차를 찬찬히 찾아보았다. 읽는 내내 흥미와 몰입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고, 책장을 덮으면서 독서가 주는 즐거움에 충만했다. 독서에 몰입하는 순간의 즐거움, 나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을 얻는 기쁨, 새로운 앎에서 느끼는 전율이 목적지에 상관없이 책을 챙겨 나서는 이유이기에 이 작품에 매우 만족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는 독자가 #일리아스를 만나는데 더없이 훌륭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 #그리스 신화와 철학? 문화비평으로 다양한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지리, 언어, 역사, 문화, 사회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일리아스에 해설을 더한다. 이는 많은 독자들이 일리아스를 읽는데 괴리감을 느끼는 부분을 해소시켜 장벽을 낮춘다. 작가에 대한 이해는 작품의 해석과 감동을 배가시킨다. #장영란교수 는 #호메로스 에 대한 그간의 연구에 기반해 #일리아스 를 구체화한다. 당시의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관습, 그에 영향을 받은 개인의 입장과 태도를 작품 속에서 읽어낸다. 마치 저명한 영화평론가가 세계 곳곳에서 붐을 일으키는 수상작에 해설과 평가를 더하는 것 같다. 감독의 성향과 특징을 바탕으로 영화 속 인물, 사건, 배경 속에 감춰진 장치, 작품의 의미와 영향 등 전반적인 이해에 깊이를 더하듯 말이다. 2천년이 넘은 작품에 담긴 인간의 보편성은 아직도 유효하다. 분노, 갈등, 명예, 권력, 오만, 고통, 용기, 사랑, 우정, 시련, 전쟁, 미망(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은 여전히 인간의 삶에서 행복과 불행의 단초이다. 현실로 끌어오면 단 며칠에 불과한 트로이 전쟁을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연합군 양측의 입장에서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렇기에 전쟁의 시발점, 참전용사들의 갈등과 번뇌, 두려움 등 인간적인 고민, 전쟁 전후의 참상 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이해할 수 없거나 어쩔 수 없는 또 때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신' 이라는 대상으로 환원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버킷리스트에 언젠가 꼭 읽고싶던 책으로 담아놨던 작품을 꺼내 앞뒤 표지와 목차를 훑어본 느낌이다. 눈높이에 맞는 책장에 옮겨 꽂아놓는다 #일리아스 챕터마다 함께 읽을 책 옆에. *** 위 책은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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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전혀 감동적이지 않아!’ 이 책의 첫 페이지 머리말에 나오는 문장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자란 사람이 아무 준비 없이 서구 고전을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을 표현한 저자의 말이다. 나 역시도 너무나 공감되는, 이름 있는 고전은 대단히 특별할 줄 알았는데 실은 그저 그렇게 다가오거나 실망스럽기까지 해, 가슴 깊은 곳에서 툭 튀어나오는 탄식같은 말 혹은 어이없이 흘러나온 외침이랄까. 그러면서도 ‘고전’이기에 벅찬 감동 받지 못한 원인과 부족함을 모조리 나에게로 돌렸던 기억들이 새록 떠올랐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우리에게 고전은 그런 것이었나 보다.
<그리스 신화>는 나에게 <단군신화>만큼이나 익숙하다.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그리스로마신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도 많았고, ‘토요명화’ 같은 데서 보여주는 ‘헤라클레스’ 같은 인물도 친숙하고, 그리스 신화의 여러 매혹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는 자라오면서 틈틈이 내 삶에 자리잡아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몇몇 특정 신화 속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듣고 또 들어도 그 이름이 외워지지도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아, 작정을 하고 <그리스로마 신화> 책을 읽고 그와 관련된 강의도 1학기를 신청해 듣기도 했지만 마찬가지다. 이름도 비슷비비슷하고 발음하기도 어렵고 누가누군지 돌아가면 너무도 헷갈렸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일리아스>란 책 제목 또한 한국인이면 모를 수 없는 ‘아리랑’만큼이나 익숙하고 많이 들어본 제목이지만, 읽어보지 않았다. 읽어보지 않아도 대충은 알 것 같다는 고전을 바라보는 마음이 작동했기 때문이고 어렵다는 선입견이 꽉 찬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도 따 그렇게 이야기 해주어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모른다. ‘제1권을 읽으면 기가 질리기 시작’, ‘억지로 참고 겨우겨우’라는 표현들이 진심 어린 위안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혹은 신작 영화의 포인트를 딱딱 잡아내어 영화에 대한 시청자의 호기심을 한껏 끌어올리는 대표적인 영화소개 프로그램이 ‘영화가 좋다’라 치면, 이 책은 <일리아스>에 대한 ‘영화가 좋다’식의 책이다. 방대한 <일리아스>라는 책 속의 숨은 재미와 유익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담은 훌륭한 소개서라 할 수 있다. 총 24권이나 되는 일리아스를 읽다가 초반에 포기하는 대신, 447쪽짜리의 이 책을 읽으면 <일리아스>를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충만함과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핵심을 쭉 뽑아올려, <일리아스>를 쓴 호메로스가 왜 그런 서술과 표현을 했는지도 파악하게 해 주며,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과 상황설명 tip, 계보까지 친절하게 담아놓았다. 사실 이 책 또한 분량이 제법 있어서 어느 정도의 인내심과 집중력이 필요하긴 하다. 그렇지만 <일리아스>를 읽다가 표류하게 되면 이 책이 방향키는 물론 나침반, 등대 역할까지 해줄 것 같은 믿음과 신뢰가 가는 책이다. 분량에 비해 다행스럽게도 하나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지 않고 짧게짧게 끊어놓아, ‘트로이 전쟁’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몰입을 했다가도 쉬고 싶은 부분에서 편안하게 한 템포 쉬어갈 수 있게 편집을 해 놓아 좋았다. 영웅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전쟁을 다룬 <일리아스>에 대해, 이제 뭔가 좀 아는 척을 해도 될 것 같다. 다 읽고나면 성취감과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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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1년 하반기, 사계절 출판사의 교사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작성한 것입니다. **
사계절 출판사의 교사 서평단이 되어 첫 책을 선택하는 상황이었다. 한 권은 이금이 작가의 '페르마타, 이탈리아'였고 다른 하나는 이 책이었다. 직장과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들로 인해 책을 읽으려면 잠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술술 읽힐 것같은 이금이 작가의 책을 선택하는 것이 무난한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저하게 되었다.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와 같은 고전들은 내게 언제나 닿고 싶은 무언가였다. 쉽게 손이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알고 싶은 것.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고전'이라 불리며 서구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그 이유를 내가 직접 찾고 싶었다. 이틀을 고민한 끝에, 결국 이 책을 선택했다. 잠을 줄일 각오를 할 만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수없이 스쳐 접한 '트로이 전쟁', '트로이 목마', '아킬레우스', '헥토르', '올림포스'와 같은 것들을 알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그리고 서평을 써야 한다는 약간의 압박이 내가 중도 포기하지 않도록 내 발목을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고전'을 읽는 것은 일종의 전투를 치르는 것이다. 내 영혼의 어느 곳에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와 치열한 전쟁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 없이 단지 글자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뛰어드는 경우에는 백전백패한다.' p.17
지은이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위와 같은 말로 이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을 경고한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호메로스란 누구인지, '일리아스'의 배경과 문화는 어땠는지, 낯설고 긴 수많은 등장 인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리스인을 지칭하던 여러 단어들에 대해 설명하며 독자에게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무기를 쥐어준다. 그렇다고 아는 모든 것을 늘어놓아 시작도 하기 전에 질려 나가떨어지게 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딱 필요한 내용의 딱 적당한 내용이다! 이렇게 필요한 내용을 '적당하게 자르는 기술'은 책은 모든 부분에서 드러난다. 하나의 이야기를 12장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도 3~5개의 소제목(하나의 소제목은 짧으면 3쪽, 길어도 10쪽을 넘지 않음.)으로 나누어서 기술한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 독자가 긴 싸움을 충분히 쉬면서,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읽어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1. 아킬레우스여! 영원하라! '일리아스'의 시작과 끝은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다. 트로이 전쟁의 가장 뛰어난 영웅은 아킬레우스다. '일리아스'의 첫 장면은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다. 그것은 '일리아스' 전체의 내용이며 원리로서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실제로 이야기는 아켈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여 분노로 끝난다. 처음에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아가멤논을 향해 있었다. 아가멤논이 분노의 대상이자 복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헥토르로 향하게 되었다.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보다 헥토르에 대한 분노가 훨씬 더 컸기 때문에 분노의 대상이 바뀐 것이다. 결국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헥토르를 죽음에 이르게 한 후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마지막 이야기인 헥토르의 장례 의식은 '일리아스' 전체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p.399
위 내용은 책의 맺음말의 시작부분이다. '일리아스'를 관통하는 저 이야기가 책을 덮을 즈음에는 쉽게 읽혔다. 지은이는 반복해서 '일리아스' 이야기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리아스'의 시작이 왜 트로이 전쟁의 시작이 아닌지, 그리고 끝이 왜 트로이 전쟁의 끝이 아닌지를 말이다.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중심을 둔 고대서사시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우리는 모두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리아스' 안에서 '아킬레우스'는 그저 불멸의 영웅일 뿐이다. 반신인 그는 모든 인간들을 뛰어 넘는 능력을 가진, 그 존재만으로도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적군에게는 공포감을 주는 그런 존재. '일리아스' 속에서 '아킬레우스'는 결코 죽지 않는다.
+덧) 물론, 주인공이 1권에서 나온 후에 쭉 안 보이다가 19권에 이르러서야 등장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하지만 그 사이에도 아킬레우스의 생에 대한 은유가 쏟아지고 있으니,,, 그런 것으로.
#2. 신들의 이야기와 인간의 전쟁 '트로이 전쟁'은 인간들의 전쟁인 동시에 신들의 전쟁이었다. 헤라와 아테나를 비롯한 몇몇 신들은 그리스 진영을, 아폴론과 아레스를 비롯한 다른 신들은 트로이 진영을 돕는다. 모든 순에 신들이 인간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주저하고 있을 때, 죽음의 위기에 닥쳤을 때, 그리고 신들끼리 사이가 안 좋을 때(?) 그들은 인간의 전쟁에 참여한다. 결국 제 멋대로라는 생각이 드는데...... '일리아스' 속에서 신들과 인간의 이야기는 참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자, 친구여! 너도 죽어야 한다. 왜 이리 한탄하느냐? 너보다 훨씬 뛰어난 파트로클로스도 죽었다. 너는 보지 못하느냐, 나도 얼마나 잘생기고 체격이 큰지를. 훌륭한 아버기나 나를 낳게 하셨고, 여신인 어머니가 나를 낳았다. 그러나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매달려 있어 누군가 날린 창이나 활시위를 떠난 화살에 의해 내 생명도 전쟁터에서 누군가 빼앗아 갈 날이 새벽이나 정오나 빔이든 올 것이다. p.317
불멸의 존재인 신과. 필멸의 존재인 인간. 이 넘을 수 없는 차이로 인해 신들에게 인간의 전쟁은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유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 역시 이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반신인 아킬레우스 조차도 곧 닥칠 자신의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 전쟁이 흔한 시대였고 '살육한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야만적인 시대였지만, 그들에게도 목숨은 하나였기에 귀한 것이었을텐데 자신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순종한다. 내가 생각할 때 '반신'은 반은 '신'이라는 여겨지는데 말이다.
+덧) 올림포스 신들의 수많은 이름이 쏟아진다. 전쟁의 여신, 승리의 여신, 공포와 절망의 신 등. 그냥 들으면 무슨 암기 시험이라도 치는 듯한 기분이었을텐데....... 정말 놀라운 것이 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불화의 신인데 왜 아테나를 전쟁의 여신으로 부르고 그를 전쟁의 신이라고 부르지 않는지와 같은 아주 세세하지만 중요한 명명의 의미가 자연스레 이야기 속에 묻어나 습득된다! 특히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유레카'를 외쳤다! 작가가 그리스 고전에 대해 얼마나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쉽게 풀어 쓰고 있는 지는 정말 읽어봐야 알 수 있다!!
#3. 수치 '수치'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나온다. 그리고 전쟁 중 이미 죽은 자의 무구를 벗기다가 혹은 시체를 수습하다가 위기에 처하거나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되었다. 내 목숨 하나 지키기도 바쁜 전쟁통에 이미 죽은 자의 시신을 수습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데 '수치'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이 또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들에게 자신의 명예는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고 가문과 나라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전장에서 죽을 지언정, 죽을 것이 두려워 도망가는 수치수러운 일은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살육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끊없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전쟁의 참상을 잔혹하게 묘사하기에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시대라고 생각했던 내게 이 사실은 조금 놀라웠다. 이 외에도 함께 전쟁을 하는 병사들을 염려하는 영웅들의 모습이 곳곳에 나온다. 누구보다 뛰어나기에 군림하기만 했을 거라 예상했던 그들은 죽고 사는 문제에, 먹는 문제에, 명예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을 고민하는 또 하나의 인간이었고. 사회 속에 존재하는 한 구성원이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고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하루에 한 장씩 12일 동안 읽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읽다 보니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어 결국 4일 만에 다 읽고 말았다. (잠을 심하게 줄여야 했다ㅠ_ㅠ) 읽는 내내, 장면이 상상되어 '일리아스' 속에 푹 빠져 있었다. 내가 미쳐 몰랐던 신들의 세계, 낯선 고대 그리스, 그곳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판타지였다. 먹고 사는 문제로 일상이 고단한 성인, 수행 평가와 지필 평가의 반복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지친 학생들에게 이 책은 미지의 세상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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