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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렇게 책을 기다렸던 적은 없었다. 부담 없는 아담한 크기의 흰 책이 내게로 왔다. 이것이 백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얼핏 보면 진부한 이야기기만 그것은 이미 우리가 백석의 영향을 너무나 많이 받았던 까닭이다. 표현 방법도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만 쓰인 지 100년이 넘은 시는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게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여승, 바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은 외우고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외울 수 있는 백석의 시들이 점점 늘어날 것 같은 기분이다. 백석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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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백석 시를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난다. 교과서에 실리는 시들은 대체적으로 해석이 명확하다. 해석하기가 명확하다는 것은 그만큼 시인과 독자가 공유하는 감수성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시대가 흘러도 백석의 시가 사랑받는 이유는 시대를 타지 않는 정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인의 ‘정’이다. 백석의 시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백석은 그가 자란 평안북도 정주시에서부터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된 생활과 풍경을 스케치하듯 담아낸다. 그런 풍경에는 백석의 예민하고 보드라운 감수성에서 비롯된 정서가 담겨 있다. 어떨 때는 연민이기도 하며, 어떨 때는 그리움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사랑이기도 하다. 모두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다. 다만, 분단 이후의 시들은 공산주의 국가와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인민의 태도를 주로 직접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주로 분단 이전의 시들이 알려진 것 같다. 나도 분단 이후의 시들은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왜 백석이 분단 이후 그런 시적 태도를 지니게 되었는지에 대한 추측은 할 수 있었다. 백석은 자기가 속한 국가와 자신을 둘러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다. 백석은 자기 자신에게 벗어나 몰입 대상을 주변인뿐 아니라 자연까지 확장한다. 평안북도 방언 등 토속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한자 사용이 적다. 분단 이후는 아예 한글로만 시를 짓는다. 민담이나 전통에도 관심이 많았던 걸로 보인다. 이런 그가 떠돌이 생활을 멈추고 북에 정착했을 때, 나라를 위한 시를 지은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백석은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눈에 보이는 풍경과 일상을 소재로 잘 끌어왔다. 백석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의 풍경이 초반시에 잘 드러난다. 「가마구」, 「어린아이들」 등과 같은 시에서는 바닷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아예 「定州城」이라는 시에서는 정주성의 풍경을 담아냈다. 백석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연 풍경을 자세히 관찰한다. 재밌는 것은 소재에서 음식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의식주에 포함되는 ‘食’은 우리에게 너무 중요하고 누구에게나 공감을 끌어내기 쉬운 소재다. 특히 백석의 시 속 음식들은 서민적이고 전통적이다. 백석의 시를 읽고 있으면 그 시대 서민들이 무얼 먹고 살았는지, 어떤 정을 나누었는지 알 수 있으며 나 또한 배가 고파진다. ‘붕어곰’, ‘흰 밥과 가재미’, ‘떡’, ‘돌나물김치’, ‘시래기국’, ‘도토리묵’ 등. 전통음식이라지만 또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음식이라 금방 상상 속 식탁이 채워진다. 이와 같이 백석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이 시대와 지금의 모습이 겹쳐지는 때가 있다. 「여우난곬族」에서 명절날 숨굴막질(숨바꼭질)을 하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놀이를 하고 조아질(공기놀이)을 하고 쌈방이(주사위)를 굴리며 놀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부엌 너머로 국 끓이는 냄새가 난다. 우리 명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백석은 이런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를 느낀다. 앞서 말했듯 한국인의 ‘정’에서 비롯된 관계, 그 관계는 인간과의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자연과의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나’를 벗어난 ‘우리’라는 주체 안에서 백석은 주로 비련의 감정을 느낀다. 연민, 그리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등이 그 정서이다. 한국인은 ‘정’의 민족이기도 하지만 ‘한’의 민족이기도 하지 않은가. 백석은 「힌 밤」, 「모닥불」에서 수절한 과부, 고아가 된 어린아이를 쓸쓸하게 그려낸다. 백석의 시에서 가난한 어린 여자가 늙은 남자에게 팔려 가는 시대임이 나타나기 때문에 「오금덩이라는 곧」, 「黃日」 등에서 반복해 나오는 새악시는 그 자체만으로 연민의 감정이 든다. 백석은 「許俊」 등 자신의 친구를 위한 시를 쓰기도 하였고,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 「힌 바람벽이 있어」 등 자신의 사랑을 암시하는 듯한 시도 썼다. 인간만이 아니다. 「오리 망아지 토끼」에서는 어미와 아이를 갈라놓고 토끼를 사냥하다가도 토끼 새끼가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낀다. 「수라」에서는 거미를 아무 생각 없이 밖으로 쓸어버렸다가 뒤이어 온 어미 거미를 보며 가슴 아파한다. 이러한 정서가 더 잘 느껴지는 이유는 시에 서사와 관계가 담겨 있고 그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未明界」을 읽으면 닭이 울고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새벽 풍경이 떠오르고 「머루밤」을 읽으면 불을 끈 방 안에 있는 시인의 어느 밤이 떠오른다. 「三防」처럼 고유명사를 사용하여 더 구체적으로 풍경을 드러내기도 한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귀신들을 불러와 재밌게 시를 쓰기도 했다. 백석의 시가 담고 있는 우리의 전통은 서민의 정서와 일상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정서는 시대가 무관하게 공유되기 때문에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백석의 시에 나타난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와 아름다움을 외부 문화권에서 접한다면 한국의 전통을 완전히 공감하고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연민, 사랑과 같은 보편적인 정서와 정서를 표현해내는 우수한 문장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백석의 시는 서사적이고 장면이 잘 그려지기 때문에 모두에게 소설을 읽듯 잘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의 서사적인 특징은 분단 이후 쓴 동화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념이 반영되어 있는 동화시라도 여전히 백석만의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