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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신들이 섬에 내려오시니』 저자 전건우, 전혜진, 정명섭, 황모과, 김선민, 사마란 / 들녘 / 2021년
제주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제주를 소개하는 책들에 대해 이것저것 보다가. 유홍준선생님의 ‘나의문화답사기 7 제주편’을 보았다. 제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 뭐든 다 신기하고 궁금했다. 여기에 제주 인물들이 여럿 나오는데 그중 ‘김순이’님도 언급되었다. 책 속에서는 유홍준 선생님이 ‘순이삼촌’이라 칭해서 참 신기해 했던 기억이난다. 제주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명칭과 좀 다른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삼촌’이란 표현도 그렇다. 그러다가 서귀포시 ‘북타임’이라는 서점에 들렸는데 제주에 관한 책이 그렇게 많을 수 없었다. 거기서 “『제주신화』 저자 김순이”를 발견하고 그대로 구매하여 읽었다. 왜 이리 사설이 기나 하시겠지만, 어차피 나온 이야기이니 끝가지 들어보시라. 제주어에 대한 이야기부터, 제주 생활상에 대한 것 그리고 큰굿12본풀이, 마을 본향당 본풀이까지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는(물론 나의 입장이다) 이야기들이 가득 하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 책 『오래된 신들이 섬에 내려오시니』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다.
이 책은 제주도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배경으로 한 호러 소설집이다. 각각의 작가들은 제주도의 서천꽃밭, 영등할망, 구삼승할망, 수산진 공양 설화, 김녕사굴 설화, 이어도 전설 등을 소재로 하여 인간과 신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과 그들의 의지에 맞서야 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여섯가지 신비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광기의 정원’ - 서천꽃밭 ‘단지’ - 4.3을 배경으로 저주 ‘수산진의 비밀’ - 인신공양 ‘딱한번의 삶’ - 이어도 전설 ‘뱀무덤’ - 김녕사굴 뱀신화 ‘영등’ - 영등할망 사실 처음에는 한편 한편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썼는데 도저히 정리가 안 되어서 각기 소설에 해당하는 단어로 연결해 보았다.
이 책은 제주도의 신화와 전설을 코스믹 호러로 재해석하는 독창적인 시도를 하였다. 제주도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배경으로 한 호러 소설은 드물기 때문에 이 책은 장르 소설 팬들의 시야를 한층 넓힐 수 있는 작품이다. 여섯 명의 작가들이 각각 다른 스타일과 테마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각 작품마다 코스믹 호러의 정의와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독자들은 다양한 코스믹 호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존재와 의미, 신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 문명의 대립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각 작품마다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와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책은 제주도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작가들은 제주도의 신화와 전설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변형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독자들은 책을 읽기 전에 사전에 조사를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작품마다 깊이와 완성도가 다르다. 일부 작품은 긴장감과 공포감을 잘 전달하지만, 일부 작품은 전개가 서두르거나 결말이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일부 작품은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하고, 일반적인 호러나 판타지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처음 제주도 왔을 때 한라산을 휘돌고 있는 구름의 모습이나 한란산 중심으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날씨가 너무 달라서 놀랬었다. 여기는 분명 쨍하니 밝았는데 산을 넘어가다 보니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고, 그러다보니 아~ 이 곳에는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겠구나. 육지 같이 큰 건물이 없으니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위 하늘을 보면 구름들이 끊임없이 흐르며 다양한 모양으로 수 놓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 자체로도 많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듯 신비했다. 이 책은 이런 제주도의 신화와 전설들을 인간과 신, 자연과 문명, 생명과 죽음 등 인류가 고민해온 주제들을 담아 제주도의 신화와 전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질문한다. 이 책은 굉장히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다음은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일조한 ‘제주신화의 현대적 활용 가능성 연구’ 일부분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원본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다.
『제주신화의 현대적 활용 가능성 연구 : 그리스신화의 경우와 비교하여』
종전에는 민족정신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발견하는 일에 연구 초점을 두던 민족신화 연구자들의 관심이 근래에는 많이 달라져서, 신화를 하나의 문화자산으로 간주하고 이를 원(原)소재로 활용하는 스토리텔링 재구성에 기초하여 다양한 예술작품이나 관광문화상품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문화산업 진흥의 시각에서 각 민족의 신화를 바라보게 되었다. 민족신화를 원소재로 하여 스토리텔링을 재구성하는 작가는 그 신화의 서사구조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면밀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발상이 본 연구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신화에 기초한 스토리텔링 재구성의 관점에서 신화의 서사구조를 비교하는 대상을 그리스신화로 잡은 이유는, 그리스신화의 제반 특징들이 감동적이고 흥미있는 스토리텔링 재구성 작업에 유리한 강점을 이룬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주신화에서처럼 인간의 행복을 도와주기 마련인 호의적인 신들의 이야기보다는 그리스신화에서처럼 인간의 행복을 시샘하고 경계하는 신들의 이야기가 극적인 긴장미를 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주신화에서처럼 권선징악적인 ‘인간의 도리 이야기’보다 ‘인간의 다양한 본성’을 드러내는 그리스신화 이야기가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기가 더 쉬운 것은, 인간의 본성이란 끝없는 의문과 놀람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또한, 제주신화는 기층민들의 소박한 생활에 기초한 것임에 반하여 그리스신화는 발군의 능력과 용맹함이 돋보이는 영웅들 이야기라는 점이 스토리텔링적 효과를 증대시킨다. ‘기층민신화’인 제주신화는 화평적인 서사구조임에 반하여, ‘영웅신화’인 그리스신화는 상쟁적인 서사구조를 이루는 것이 스토리텔링적인 흥미와 매력을 끌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제주신화는 ‘닫힌 서사구조’이고 그리스신화는 ‘열린 서사구조’라고 하는 두 지역 신화의 구조적인 차이를 추출하는 작업은 , 구체적인 신화 화소들을 비교 검토하는 다소 투박한 수준의 이해와 감상 과정을 거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제주신화에 기초한 스토리텔링 재구성 작업에 유익한 힌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http://jst.re.kr/reportView.do?reSeq=2112&searchType=&searchWord=&curPage=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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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에 의해 본격화된 '우주적 공포' (cosmic horror)는 전설과 그 결이 무척 잘 어우러집니다. 크툴루 신화를 창작한 러브크래프트식 호러가 낯설다면, 괴이한 설화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가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괴담, 호러 전문 출판 레이블이자 한국 호러 문학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괴이학회의 여섯 작가들이 제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국형 코스믹 호러를 만들어냈습니다. <오래된 신들이 섬에 내려오시니>는 제주도 고유 신화, 전설, 민담을 재해석해 독특한 공포를 선사합니다. 6인 6색의 공포 단편 모음. 분명 한국이지만 제주도만의 고유한 특색을 간직한 제주 설화의 매력을 압축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광기의 전원>은 어느 날 새벽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됩니다. 오래전에 사라졌던 민속학자 친구. 제주 설화가 실재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하던 친구로부터 무려 5년 만에 연락이 온 겁니다. 대뜸 하는 말이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네."라니, 드디어 이 친구가 미쳤구나 싶습니다.
서천꽃밭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펼쳐진 광대무원한 정원입니다. 거기엔 수많은 꽃들이 있는데 기이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생불꽃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죽이는 멸망꽃도 있습니다. 웃음웃을꽃, 울음울을꽃, 뼈오를꽃 등 이름으로 그 능력을 짐작할 만한 수많은 꽃들이 있는 곳. 서천꽃밭이 상상의 장소가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걸까요. 제주로 내려간 '나'는 눈빛만은 생생한 친구를 만나 그의 탐사에 동행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끝 모를 인간 욕망을 다룬 <광기의 전원>에 이어 전혜진 작가의 <단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둑한 슬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펼치는 코스믹 호러인 만큼 공포감 아래에 자리한 억울한 원혼의 비통함이 몰려와 더 스산해지는 기분입니다. 저주라는 미지의 공포와 연결해 제주 4·3 사건을 알리고 있어 울컥하며 인상 깊게 읽은 소설입니다.
정명섭 작가의 <수산진의 비밀>은 제주로 유배를 간 박시혁의 시선으로 진행합니다. 육지와 여러모로 다른 괴이한 섬이라고 다들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니 유배살이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듭니다. 어느 날 수산진 성벽에서 나는 기이한 소리를 들은 데다가 수산진성을 쌓을 때 일어난 인신공양 이야기를 알게 됩니다. 제주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설문대할망으로부터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형벌을 받은 땅속 깊은 곳에 사는 신에게 재물을 바쳤다는 겁니다.
미신으로 점철된 이곳이 무척 미개하게만 여겨져 인신공양의 증거를 찾아 공론화하고 이들을 교화시키고픈 사명감에 결국 몰래 성벽을 파헤치는데... 산재물을 바치는 인신공양 설화는 언제 들어도 섬뜩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황모과 작가의 <딱 한 번의 삶>은 이어도에서 수백 번의 타임리프를 하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생을 놓으려고 작정한 여자가 깨어난 곳은 제주 남쪽 바다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있는 전설의 섬 이어도.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깨어난 사람은 여자뿐만 아니라 어린 임산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 중 한 명만 이 섬에서 나갈 수 있다? 반복되는 윤회의 지옥을 탈출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 소설은 지옥의 영겁을 반복하는 주인공이 누구에게나 평범하고 온전한 딱 한 번의 삶이 허락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라는 작가의 후기가 울림을 줍니다.
김선민 작가의 <뱀무덤>은 제주도 김녕사굴 뱀신 신화를 재해석해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을 오마주한 소설입니다. 민속학자인 지도교수와 함께 제주도 출장을 간 대학원생. 제주도에서도 외딴섬에 있는 뱀신 전설이 있는 동굴을 발견한 그들이 동굴 끝에 다다르자 마주한 것은 도무지 인류 문명권에서 만든 건축물이라고 할 수 없는 지하도시입니다. 고대 미지의 도시 앞에서 희열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신공양과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 사항의 전설이 담긴 이 신화는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될까요.
사마란 작가의 <영등>은 모두가 가족인 지상낙원을 만든 한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 함께 작업을 하며 아픈 사람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마을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영등할망이라 불리는 영등신이 현신해 있다는 이곳으로 시집온 '나'. 현지인들도 이 마을엔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이곳에서 '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여섯 작가의 작품이 모인 만큼 취향의 온도차는 분명 있지만, 편당 길이가 짧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이승과 저승, 무당, 굿, 인신공양 등 설화에 자리 잡은 소재들은 사실 그 자체로 살짝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은, 께름칙한 느낌이 들긴 했었는데 현실의 인물들과 연결되니 생생하게 소름 끼치는 잔상이 꽤 오래가더라고요. 제주 여행을 가더라도 외진 곳을 걸을 때면 이 이야기들이 문득문득 생각날 것만 같아서 더 아찔해지긴 하네요.
흔히 알고 있는 서양 신화만큼이나 많은 신들이 있는 제주도 신화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주 설화와 관련된 소재를 만날 기회가 되면 쭉 접해보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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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짧은 이야기들이 장편 소설로 재출판이 되길 바랄 만큼 흡입력있는 코스믹호러 모음집이다.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주는 긴장감에 제주도의 현지 민속 신앙과 역사적 배경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 - 광기의 정원은 비교적 친숙한 서천꽃밭과 꽃들을 탐하는 인간의 이야기. - 단지는 제주의 4.3사건과 관련된 어떤 무당의 원념과 분노를 담아낸 이야기인데 그 감정이 너무 잘 전해져서 차라리 아무것도 해결이 안되고 세상이 망했으면 싶었다. - 수산진의 비밀은 제주도로 유배 온 선비가 섬에서 느끼는 기이한 위화감에 대한 이야기. - 딱 한 번의 삶은 일리야드의 어떤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루프물. - 뱀무덤은 초고대문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흥미로워 할 이야기. - 영등은 요즘 좀 자주 보이는 마을 단위의 신앙과 외지인의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