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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등장한 엘리트층인 의사들의 부상과 그 이면을 들춘다..
페이퍼로드의 인간 생리학 시리즈, 루이 후아르트의 <산책자 생리학>은 19세기 중후반 파리의 도시 풍경이 급변하던 시기에 새로 등장한 인간 군상인 산책자를 그리는데, 도시 공간을 채운 모든 것이 산책자들의 감각, 인식, 사유까지 바꾸던 시대, 산책자들이 새로운 신으로 떠오른 물신(物神)의 숭배자가 됐던 시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풍자하고 있다.
이즈음 새로운 엘리트층으로 부상한 ‘의사’집단의 면모와 그 이면의 참담한 실상을 폭로하는 것이 <의사 생리학>이다.
명의가 되는 다양한 방법, 최면술, 몽유병, 호구, 각종 요법의 의사들이 등장하는데, 군의관과 시골 의사 치마 입은 의사, 떠돌이 치료사, 수술의 기적 등, 당대의 다양한 의료형태를 들고 있다.
후아르트는 의사를 어떻게 생각했나?
미지의 몸에 미지의 약을 투약하는 검은 옷의 남자라고 정의했던 걸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이 말이 안타깝게도 매우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히포크라테스 이래 의학은 거대한 보폭으로 성큼성큼 미래를 향해 걷고 있다는 생각은 바람일 뿐이라고, 의사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몽테뉴의 명구를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진짜 의사와 진실로 성실한 의사들은 길고 긴 학업을 끝냈을 때 마침내 알게 된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히포크라테스를 잘 팔거나, 그의 가르침을 적당히 섞어서, 자기주장을 잘해야!
의사는 장사를 잘하려면 자기주장을 잘해야 한다.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더라도 그런 것처럼, 또 하나, 곧 저세상으로 떠날 듯했던 환자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회복되면, 놀라지 않고, 예외 없이 자신의 덕으로 살아났다고 자연은 보상을 요구하지 않지만, 의사는 반드시 그것을 요구해야 하니까, 다음으로 다른 의사를 깎아내릴 것, 내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의사들의 대단한 장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증오하기에,
당대의 의사들이 어지간히 후아르트에게 잘못 보인 모양이다. 아니면 실제 믿기 어려울 만큼 그렇게 했던지, 거의 주술사급이다. 나으면 내 덕이요. 낫지 않으면 현재 의료기술의 한계라고, 나머지는 신의 영역의 것이니 어찌하겠냐고 말하면 되는 그런 것인가, 우리들의 의사는 조용히 호구들의 사이에서 살아간다. 나는 완전히 나한테 속아 넘어간 24,500명의 바보를 진료했다오.
독약을 특효약이라고, 몸이 아픈 건 사악한 기운 피를 뽑아야 살지
의사뿐만 그러했겠는가, 약사도 한몫했다. 19세기 말의 풍경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지만, 사혈 요법, 1799년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몸에 이상이 나타나자 당시 미국에서 가장 명망 있던 의사 세 명이 호출됐다. 첫 번째 의사는 병세를 살핀 후 1,770cc가량 피를 뽑았다. 두 번째 의사도 950cc를 더 뽑아냈으며, 그래도 호전이 없자 세 번째 의사는 다시 1,000cc가 넘는 피를 뽑았다. 결국, 워싱턴은 병명도 모른 채 발병 10시간 만에 몸속 피 절반 이상을 흘린 후 사망했다.
미국에 황열병이 대유행할 때 '펜실베이니아의 히포크라테스, 사혈의 왕자'라 불리며 명성을 누리던 의사 벤자민 러쉬는 하루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사혈을, 윌리엄 코베트라는 사람이 러쉬의 사혈 치료는 효과는 제쳐놓고 인구 감소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비판하다가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기도, 물론 재판정은 사혈 승이다.
이런 어둠의 세계, 과학적 발견이 있기 전까지. 의사는 신의 선택인가, 당대의 희한한 이야기들을 후이르트의 유머러스한 풍자적 언사로 들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