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인 저- 목숨 - 한국문학전집 385] 오래 간만에 훌륭한 우리 단편문학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동인 작가는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전자책시리즈는 짧은 분량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어서 부담이 없습니다. 김동인작가의 주요작품은 배따라기, 감자, 광염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젊은 그들, 운현궁의 봄 등이 있습니다. |
| 김동인 작가는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를 발간하였습니다. 김동인 작가는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젊은 그들, 운현궁의 봄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만족하며 읽은 단편문학입니다. 이 시리즈 전자책은 김동인작가의 목숨- 한국문학전집 385는 우리의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묶어놓은 좋은 시리즈 전자책이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작품이라 확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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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가 異常한 病에 걸리기는 다섯 달 前쯤이다. 처음에는 입맛이 없어져서 飮食은 못 먹으면서도 배는 次次 불러지고, 배만 불러질 뿐 아니라, 온몸이 부으며 그의 얼굴은 바늘 끝으로 꼭 찌르면 물이라도 서너 그릇 쏟아질 것같이 누렇게 되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배도 그 以上으로 되었다 한다. 그렇다고 몸이 어디가 아프냐 하면 그렇지 않고, 다만 어지럽고 때때로 嘔逆이 날 뿐이다. 그는 S醫院에 다니면서 藥을 먹었다. 그러나 病은 조금도 낫지 않고 漸漸 더해 갈 뿐이다. 마침내 그는 S醫院에 入院하였다. 나는 每日 그를 찾아가보았다. 그는 언제든지 安樂椅子에 걸터앉아 있다가 내가 가면 기뻐서 맞고 곧 담배를 請한다. 예수敎 病院이라 入院 患者의 담배 먹는 것을 禁하므로 그는 내가 가야 담배를 먹는다. 看護婦는 그와 서로 아는 處地이므로 다만 씩 웃고 볼 따름이다. 그의 뛰노는 性質은 病院 안에 가만히 갇혀 있는 生活이 無限 견디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무슨 일로 旅行을 좀 하게 되어 그 準備로 二三 日 동안 病院에 못 갔다가, 二三 日 뒤에 作別을 하러 가니까 그의 病이 激變하여 面會 謝?이라 한다. 院長은 마지막 그에게 죽음을 宣告하였단 말을 들었다.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죽는다. 그 活氣가 목 안에 차고 남아서 그 周圍의 大氣에까지 活氣를 휘날리던 그가 죽는다. 믿을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이란…….’ 나와 그와의 交際는, 때는 없었다. 그러나 깊었다. 나는 昆蟲學에 대하여 硏究를 하고 있을 때에, 그는 詩에 對한 天才로서, 그의 詩는 때때로 新聞이나 雜誌上에서 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共通點이 있었다. 自然을 끝까지 開拓하여 우리 人生을 精力뿐으로 된 世界를 만들어보겠다는 科學者인 나와, 참 自己의 模樣을 表現하고야 말겠다는 藝術家인 그 와는, 참 自己를 表現한다하는 데 共通點이 있었다. 나와 그의 交際의 때는 없었으되, 깊은 것은 이와 같이 서로 主旨上의 共通點을 吐情한데 말미암았으리라. 그가 죽음을 宣告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에 나의 놀란 것은 ‘社會를 爲하여, 아까운 才子를 하나 잃는 것이 슬프므로’라고 하고는 싶지만, 그 實로는 이만큼 서로 通情한 벗(나에게는 그 M만큼 서로 理解하는 벗이 또다시 없다)을 잃어버리는 것이 나 自身을 爲하여 싫었다. 이튿날, 나는 마침내 되게 앓는 벗을 버려두고 오래 벼르던 旅行을 江原道 넓은 平原으로 떠났다. 나의 旅行의 目的은 昆蟲採集에 있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