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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나는?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 고개를 들고 대들듯이, 혹은 떼쓰듯이 어린이라면 누구라도 그래야하고 그래도 되는 그 말. 이 책에는 어린 시절부터 말하지 못한 그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성장하여 이제 외쳐보는 '나는!' 비장애형제 라는 말이 참 낯설다. 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형제의 자조모임이 '나는' 이다. 비장애형제 라는 말도 가슴에 와 박힌다. 세상은 내꺼고 내 중심으로 돌아가야하는 때부터 고개를 들고 요구하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서 아리다. 여섯 명의 모습 -가정 환경, 장애형제의 발달장애 모습-도 다르지만 성인된 2,30대에 만난 서로가 서로의 '나는'을 알아가고 나누며 독립해가는 이야기. 내 지인의 지인, 비장애형제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도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 후 얼마 안 있어 독립을 결심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발달장애 동생을 돌보면서 병약한 엄마를 도와 집안일도 도맡아 했다던 그. 좋은 직장이었지만 1년 정도 다닌 후 방향 전환을 위해 그만두기로 하면서 집으로부터도 떠나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났다. 몇 년이 한참 지났다. 호주에 가서 아직 있을까, 돌아왔을까. 어떻게 생활하는지 모르지만 이 책의 청년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발달장애 오빠와 비장애 여동생을 둔 엄마를 안다. 초등학교 때 4년 정도 같은 동네에서 아이들을 키웠는데 그 때 여동생이 너무나 의젓하게 오빠를 챙기고 엄마를 보필하던 생각이 난다. 딸과 엄마를 번갈아 보면서 마음이 아렸지만 늘 환하게 시원하게 웃던 엄마의 얼굴도 생각난다. 공부를 잘해서 엄마가 자랑하곤 했었는데 그 여동생도 지금 나이가 20대 초반일텐데, 엄마, 나는! 이라고 말하게 되었을까. 부끄럽게 몇 해 전 처음 들은 자조모임이라는 말과 그 의미를 알고 싶어서 책을 신청하였는데 받을 수 있었다. 태은편의 얘기를 읽으며 같이 울기도 하였고 여기에 조심스럽게 소감을 남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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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ㅏㄴㅡㄴ(it's about me!)은 정신적 장애(자폐성 장애, 정신장애, 지적장애)가 있는 형제를 둔 2~30대 청년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nanun_teatime 인스타그램 피드도 운영 중이니 한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비장애 형제의 이야기는 이제까지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았던, 이 세상에 없던 이야기다. 이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가족 내에 어떻게 침투하여 가족관계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미시적 이야기이자, ‘가족’이라는 오랜 관계를 탐험하는 청년들의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신적 장애인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오늘을 고민하는 지금, 이 사회에 너무나도 필요한 이야기다.” 「강혜민(장애인언론<비마이너> 편집장)」 장애인, 장애우라는 단어에 익숙하고 그들을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들의 가족이나 형제가 겪어야 할 고민이나 고충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에겐 그런 형제나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가족을 두고 있지만, 사람은 필멸의 존재이니 스스로 이겨내는 방법 말곤 딱히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됐다.
유영철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10개월 동안 20명을 살해했다. 김대두는 1975년 17명을 살해했고, 강호순은 10명을 강간 살해했다. 정두영은 1999년 9명을 살해 10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2003년 영화화된 ‘살인의 추억’의 실제 범인이 수감 중인 이춘재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를 향해 감사하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당시 화성 살인사건의 한 사건의 범인으로 조작되어 2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성여’님이다. 청춘을 모두 감옥에서 보내고, 부모님들은 모두 억울함과 분통함에 돌아가셨다. 친척들과 주변 모두 그를 버러지라 욕했고, 세상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25억의 형사보상금으로 그의 인생을 보답 받을 수 있을까? 유영철에게 살해당한 피해 가족 중 정신이상이나 스스로 생을 마감한 분들이 많다. 우리는 이런 피해자 가족들에 대하여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정신적 장애가 있는 형제들 둔 비장애 형제 여섯 명이 쓴 산문집이다. 사실과 소설의 경계 구분 없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마음을 적어나간 글이다. 영화나 매체에서 보여주는 형제의 모습은 단 두 가지다. ‘천사 같은 아이’ 이거나 ‘장애 형제를 싫어하고 부정하는 반항아’로 말이다. 휴머니즘을 모방하는 영화에서조차 제대로 형제들을 인터뷰나 관찰하지 않고 그려낸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도 같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80억 인구 중에서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여섯 명의 형제들이 이 책을 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장애인에 대한 최대 복지를 제공하는 제도의 마련일까?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변화하길 바라는 것일까? 정신적 장애를 두고 자랐기에 힘들었다고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일까? 솔직히 말하면, 알코올중독과 성격장애로 가정폭력을 당하는 정상적인 아이들이 더욱 힘든 경우가 훨씬 많다. 친족상도례 법에 따라 죽기 전까지, 웬만해선 공권력인 경찰이나 검찰도 개입하지 않는다. 이렇게, 폭력에 내몰리고 대물림하고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장애인의 가족은 사회적 시스템과 사회적 배려의 혜택을 받는 편이긴 하다.
그럼 가정폭력에 내몰린 아이들보다 ‘자조 모임 나는’ 형제들은 행복한 걸까?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장애인 형제들 옆에 자신들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불편하게 보거나, 안타깝게 보거나, 착하게 보거나 늘 그런 식이지, 평범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보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은 ‘절대적’이어야 할까? ‘상대적’이어야 할까? 사람과 사람이 사회를 구성하면서, 서로 간의 교류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부자들은 돈이 많기에 무조건 행복할까? 사람의 성격이 모두 다르고, 신체적 특징이 다른 만큼, 고통과 고민의 크기도 모두 다르다. 그저 나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듯이 보는 것이 그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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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이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 의 태은, 진설, 미정, 소진, 해수, 서영. 6명의 수기가 담긴 책.
책에서는 비장애형제라는 말을 들은 당사자들이 생소해하고 놀라면서, 이런 말이 있구나 하는데 난 이 말이 낯설지 않았다. 최근에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그나마 조금씩 올라가고 있고,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노력들도 많으니까. '비장애'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하는 장애인식 관련 교육에서였다. (교육이름이 정확히 생각이 안나네.) 사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긴했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새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난 내 아이때문에 장애라는 것이 멀게 느껴지지 않아서 (사실 꽤 가까워서) 그냥 이런 표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인이 '교육에서 왜 장애인, 비장애인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왜 우리가 장애인을 기준으로 해서 비장애인으로 불리냐.' 라고 하는 말을 듣고 살짝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평소 생각도 깊고 상담도 잘 해주시는 분이었는데 아마도 내 상황을 잘 모르셔서 더 그러셨겠지만... 그래서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할까 혼자 생각해봤다. 정상인과 장애인? 일반인과 장애인? 뭐라고 부르든 장애인은 정상이 아닌 사람처럼 느껴지기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말이 그나마 평등한 상황에서 분류를 해 놓은 느낌을 받았다.
비장애 형제 이야기하다가 길어졌는데, 첫째를 생각하며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알고 싶고 보고 싶었던 것은 정신적 장애를 가진 형제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비장애형제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등이었다.
책을 읽고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는 만족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욱 속상하기도 해서 많이 우울해지기도 했다.
"언제나 괜찮다고 말해야 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장애인의 형제자매들이 전하는 위로와 공감" 이 책에 나오는 6명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형제를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의도 있었겠지만 어느정도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부모의 요청 또는 강요로 장애 형제를 돌보고 실제로 사회 복지과 같은 관련과를 선택하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들을 겪고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집에서는 항상 장애형제에게 우선 순위가 밀려 소외되고, 밖에서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장애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느라 불안하다. 장애형제가 중증이냐 경증이냐에 따라, 폭력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가족 분위기와 부모 성향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것은 '나 자신'으로 살기보다는 장애형제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는!'하고 선언을 하는 건 어떨까요? '나는?'이라는 물음을 안고 살아온 우리가 내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 나간다는 의미를 담아서 '나는!'이라고 외치는 거죠"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나간다는 의미에서 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이 만들어졌다. 부모나 장애형제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발견하여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좋은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모여 공감도 하고, 어떻게 사회의 분위기를 개선해 나갈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보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부모교육을 하는 것. 비장애형제의 목소리를 높이고 더욱 당당해지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을 응원한다. 솔직하게 수기에서 이런 비장애형제들의 상황, 현실, 생각을 더욱 많이 만났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 태은, 진설의 이야기는 공감도 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비장애형제도 있는데도 태은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연락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런 것들이 많이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것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조현병인 오빠로 인해 힘들어하는 진설의 이야기도 무척 힘들게 느껴졌다. 특히 진설의 이야기에서 부모님은 진설의 오빠의 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치료나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안타까웠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미정과 소진의 이야기는 좀 속상했다. 물론 자신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했겠지만, 조금 자기 중심적인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생각이야 다양하고 시시각각 변할 수 있기에 그 당시의 감정에 충실해서 적었을 것이다. 많이 힘들다고 이야기도 못하다가 겨우 꺼낸 이야기에도 부모님의 반응이 차가우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이 장애인이라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그 부모님의 성향, 가족의 분위기인 것이 더 커보였다. 즉, 형제가 장애인이 아니라 단순하게 아픈사람이거나 금전적이나 다른 문제가 있었더라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상황으로 보였다.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던 것 같다. 집의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청년의 모습. 장애인 형제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없어서 얼핏보면 가정불화로 힘들어하는 청년의 모습 같았다. 여기서 '나는'이라는 모임을 만나 기뻐하는 모습이 크게 표현되어 있었는데 정말로 만나서 큰 기쁨을 느껴서 표현된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임에서 책이 나왔기에 그 부분을 너무 부각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부모의 뜻으로 인해 장애형제가 있다는 것을 숨기고, 동생에 대해 조금씩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던 소진. '나는'이라는 모임을 만나고 기뻐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 이후 집에 돌아오면서 적은 내용이 있다.
"자식을 밭에 비유하자면, 장애형제는 망한 밭, 작물을 심을 수 없는 밭이라고 할 수 있어요. 비장애형제는 작물을 심으면 자랄 수 있는 밭이고요. 물론 그 밭에 항상 풍년이 든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저는 부모님이 가능성이 있는 쪽에 좀 더 집중해줬으면 좋겠어요." 모임에서 누군가가 한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이 그렇게 마음을 아렸다.
왜 장애형제에게 그렇게 집중할까? 물론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성장시켜 나중에 부모는 늙고 비장애형제만 남았을 때, 장애형제가 최대한 자립할 수 있어서 비장애형제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위해서라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될까. 비장애형제의 입장에서, 그리고 아직 어린 입장에서, 또 본인이 처한 상황에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쓴 것이라 그런 마음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형제를 위해 비장애형제가 자신의 삶을 찾기를 막는 부모만 있는 것처럼 적어, 정말 장애형제와 비장애형제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하루에도 수십번 고민하는 많은 부모들은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집에서도 자녀는 성장과정중에 부모와 싸우는 경우도 있고, 불만이 있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도 평범했던 집이였는데도 나에게 관심이 적은 엄마에게 속상했던 마음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주변에서 엄마가 되어보니 자신의 엄마의 마음을 알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마도 이들도 비장애형제이기에 장애와 비장애형제를 모두 키우는 부모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는 한 그 마음을 모를 것이다.
다시 해수와 서영의 이야기에서는 장애 형제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 그로 인한 에피소드들이 있어서 비교적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형제의 장애로 인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구나, 이런 문제들이 있을 수 있구나 알 수 있었다. 상견례로 인해 고민하다가 다행스럽게도 좋은 분위기로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도 한 해수의 사연은 마지막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이렇게 장애가족을 이해하는 집이 있구나. 그리고 그나마 경증에 직업도 가지고 있다니 좀 낫구나 하는 생각. 장애형제에 비해 멀쩡하다는 이유로 소외되었던 서영의 이야기도 공감도 되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이라는 모임을 통해 나아지는 모습을 보니 이 모임이 좋은 역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구나 싶었다.
이야기를 모두 읽고 보니 '나는'이라는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장애 형제의 가족으로 살면서 겪은 어려움들을 나누고,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한 모임. 그리고 더 나아가 비슷한 비장애형제들의 고민 상담도 해주고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부모교육도 하는 모임. 책을 통해 '나는'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고, 더욱 관심이 갔다. 이런 모임이 지속되어서 더욱 발전하고 사회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아무래도 모임에서 만들어진 책이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개인의 수기라기보다는 모임에 대한 홍보 느낌도 조금 나기는 했지만 이들에게 그만큼 소중한 모임이라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이런 책들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