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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리우스 반틸의 일반은총론도 구입했지만, 바빙크의 일반은총론은 사실상 일반은총의 오리진과 같은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동시대를 살면서, 화란개혁신학의 최고봉들 중에 한명인 헤르만 바빙크의 일반은총론은 코넬리우스 반틸이 교과서로 삼았던 오리지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헤르만 바빙크를 논하지 않고, 일반은총론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하다고 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빙크 저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바빙크 전문 출판사 다함에서 출간했으니 번역의 수준도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일반은총론에 관심있다면, 신학도가 아니더라도 도전해야할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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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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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 네덜란드의 신학자로서 19~20세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이제 그 분이 쓴 일반은총에 관한 설명책이다. 일반은총이란 신자,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에 대한 내용이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벌을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신다. 바로 이 세상이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이 일반은총인 것이다. 여러분도 일반은총에 대해 공부하면서 열심히 살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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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는 계속되지만, 그 성격이 바뀌고, 담기는 내용물이 달라집니다. 이제 계시는 죽어야 마땅한 죄인에게 은혜의 계시로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부르시고, 그를 찾아 나서시며, 깨어진 교제의 자리에서 적개심을 두셔서, 완전히 새로운 요소로서 그 분의 긍휼과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일상, 직업, 음식, 옷이 더 이상 행위 언약에서 체결된 동의나 권리에 따라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의 유익은 은혜 그 자체를 통해서 옵니다. 은혜는 모든 인생의 근원이자 원천이며, 인류를 위한 모든 축복이 됩니다. 은혜는 모든 선함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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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회의 풍성한 삶 전부가 하나님의 일반은총 덕분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왜 그분은 그분의 은혜의 특별한 행위로 말미암아 그토록 죄악된 세상을 계속해서 보존하셔야만 합니까? 왜 그분은 그의 은사들을 낭비하실까요? 목적도 없이 행하시는 것일까요? 죄의 부패에도 불구하고 자연적 삶이, 곧 그분의 눈에 보이는 모든 모습이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가족과 친척의 사랑, 사회와 정치적 삶, 예술과 학문은 모두 그 자체로 그분의 신적인 선하신 뜻의 대상들입니다. 그는 또한 그분의 손으로 이루신 이러한 사역 속에서 기뻐하십니다. 그 대상들 모두는, 존재의 겉 형식으로서가 아니라 그 본질적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존재로 부르셨고,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존하고 유지하신 원래의 질서를 이룹니다. 이러한 창조의 신적 질서에 대한 모욕은 그러므로 불법적입니다. 이는 경험에 반하며, 성경과 충돌합니다. 여기에서 모든 분리주의나 금욕주의는 그 뿌리를 뽑힙니다. 모든 현실 도피는 우리 사도신경의 첫 번째 조항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사역을 멸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분은 아버지의 사역을 회복시키고, 그렇게 해서 처음 창조된 인간의 형상을 따라 다시 인간을 새롭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헤르만 바빙크의 일반은총 중 발췌
이 책은 개혁주의 신학자 칼뱅의 일반은총 개념을 설명해주고 있다. 창조에서 나타나는 선한 질서가 곧 일반은총이며, 인간은 원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만물을 보존하신다고 설명을 해준다. 존재 그 자체로 차별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일반은총이라고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