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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원의 소설집 <고스트 프리퀀시>는 황당하고 난해하다는 인상과 아울러 언어의 탁월함과 공명도 동시에 들어있는 세계의 발견, 아니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들에 대한 해석의 새로움이랄까, 아무튼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온다. 이 책 말미에 해설이 붙어있다. 해설 또한 난해하다. 글은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작가의 3편의 단편과 에세이 운명의 수렴과 해설-주술과 언어의 유물론-은 새로운 경험이다.
마그눔오푸스, 위대한 일, 걸작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며, 연금술에서는 현자의 돌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스팀퍼즐게임도 있나보다.
양계진은 손주의 태몽을 꿨다. 황금잉어를 늪에서 잡았다. 돌려달라는 거북이의 요청도 들은체 만체하면서, 손주가 태어났다. 지금 양계진은 현실로부터 313번째 쫓겨났다. 지금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작가는 양계진의 뇌 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태몽으로 용왕에게 몇차례 불려갔다오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또 다시 꿈 속으로, 전개 자체가 꽤 흥미롭다. 뇌 속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그 작용까지, 그녀의 아버지도 그녀를 낳기 전 태몽을 꾸면서 누구가로부터 훔쳐 온 것들, 그녀의 아버지는 흰개띠다. 그리고 그녀는 황금 호랑이 띠, 호랑이의 모습으로 용궁으로 끌려오고, 용왕 앞에 그녀의 모습은 턱이 빠져 늘어진 그저 늙은 호랑이일뿐, 용왕의 아들을 잉어를 잡아갔고, 그 잉어가 손주?, 상상력이다. 엄마 뱃속의 태아의 움직임과 화학적으로 환치, 태아의 숨소리 고동과 산부인과의사들의 초음파 탐촉자에 감지되어 아름다운 율동으로 해석되는 건, 문학과 화학 그리고 정신적 연결고리를 한번에 설명한 듯... 이른바 빠져든다고 하는 게 이런건가 싶다. 삶과 죽음의 과정을 양계지과 손주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아나톨리아의 눈, 아나톨리아는 소아시아의 반도로 태양이 솟는 곳이다.
[26] 한 무리 여행자가 티베트고원 위헤 나타난다. 행렬의 규모는 몹시 조촐하다. 고려 26대 충선왕, 그는 이지르부카다 쿠빌라이칸의 외손자이자 칭기스칸의 4대 손으로 심양왕에 봉해진 보르지긴 황실 최고 서열의 인척이다. 이 중의 지위에 있던 그는 실각, 유배길에 올랐다. 그는 그가 잔인하게 목숨을 거둔 이들이 매일 밤 나타나 목을 조르는 공포에 시달린다. 구각 뿔 주사위 두 개가 동북 아시아 지도 위에서 각각 히전을 멈추니,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시작된 십면체 주사위의 눈을 이제 그만 닫아두도록 하자(87쪽) 모든 생명이 끝내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고스트프리퀸시, 다종다양한 음향신호가 블랙홀을 향해 달려가는 소리는 흡사 고밀도의 진공처럼 상상 너머의 역설이다. 일어났던 이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무엇인가 픽션이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노이즈다.
작가의 글은 난해하다는 평과 탁월하다는 평을 동시에 받는 이유를 알듯모를 듯, 하지만, 난해하지만 탁월하다는 평은 둘다 맞다. 수렴이다. 삶과 죽음이 따로 하지 않듯, 탁월한 문장과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까지 소름 돋게 탁월하다. 아마도 이런게 신소설인가, 싶을 정도다. 용왕과 잉어, 할머니와 손주, 삶과 죽음(마그눔오푸스)은 위대한 일이다. 십면체 주사위?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아나톨리아의 눈), 여운이 남는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에 빠져드는게 아닐까 싶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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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텍스트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합: 0~99 사이의 값만큼만 전진할 수 있다. 3) 주사위를 굴리는 횟수는 열 번으로 제한하는데, 열 개의 평면 픽션을 새로운 십면체 주사위의 눈으로 구부려 접기 위함이다. 4) 위의 세 가지 게임 규칙은 석촌동에 거주하는 게임 기자이자 보드게임 마스터 이명규의 마스터링 아래 협의되었다. (아나톨리아의 눈, 본문 47쪽)
3, 2, 1... REC [●] (고스트 프리퀀시, 98-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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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책 읽는 30대 Paradise입니다. 오늘 소개할 신간 소설 도서는 #신종원 작가님의 #고스트프리퀀시 입니다. 아시다시피 #자음과모음 에서는 #트리플시리즈 를 발간하고 있는데요. 신종원 작가님의 3가지 단편 소설과 하나의 에세이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저와 함께 잠시 #고스트프리퀀시 를 만나보겠습니다. 총 3편의 소설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그눔오푸스 #아나톨리아의눈 #고스트프리권시 입니다. 제목 하나하나 모두 특이하고 직관적으로 내용이 예상되지 않는 점이 특색 있습니다. 일단 책의 디자인들도 심상치 않는데요. 저는 마그눔오푸스, 고스트 프리퀀시, 아나톨리아의 눈 순으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마그눔오푸스가 인상적이었던 점은 우선 소재의 특이함과 내용의 전개 방식이었습니다. 38년생 양계진씨(굳이 모든 문장에서 양계진씨라고 칭한 것도 특이했습니다.)가 손자의 태몽을 대신 꾸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하는데요. 그리고 제목 자체도 처음부터 생소해서 결국 검색까지 해봤다. 비금속을 금으로 변형하는 등 대단한 일을 했다는 의미를 가지는 단어였는데요. 태몽에서 잉어를 잡은 양계진씨에게 거북이가 자꾸 돌려달라고 합니다. 무시하고 손자가 태어났는데, 계속 꿈을 꾸고 시달리게 됩니다. 사실 이 부분을 문장으로 읽어나갈 때는 정확한 내용 파악을 하지 못해서 다시 돌아가서 읽고 또 돌아가기를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트리플 시리즈는 원래 짧은 소설을 부담 없이 읽는 장점도 있는 편인데 이번 도서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손자가 태어났고 앞으로 성장해나갈 한 인간을 훈육하는 일이 그야말로 마그눔오푸스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부모도 처음이고 자식도 처음인 것인데.. 정말 엄청난 인연임과 동시에 대단한 일을 해나가는 양자 간의 관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생소한 용어였지만 그 때문에 검색도 하고 또 이 제목이 과연 이 내용과 어떻게 연관된 것일까 작가님은 어떤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주고 싶었을까 생각을 하면서 한 줄 한 줄 읽었습니다. 고스트 프리퀀시는 소설가가 낡은 집을 들어가서 어둠 안의 소리를 수집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묘사나 장면 전환이 모두 톤이 다운된 느낌을 많이 받았고, 동시에 낡은 주택이나 집을 환경으로 택한 것 역시 새로운 창조나 발견보다는 없어져가는 상실에 대한 고민과 작가님의 생각이 담긴 이야기인 것 같았습니다. 이때까지 읽은 트리플 시리즈 중 가장 어렵고 쉽지 않았던 소설들이었습니다. 제가 소개하지 않은 두 번째 소설 아나톨리아의 눈의 경우 나머지 두 작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낯설고 어려운 느낌이 있었네요. 어쩌면 실험적이고 어쩌면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을 이 내용들은 아마도 트리플 시리즈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분량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설이 아닌 새로운 내용을 원하는 독자분들께서는 한 번 읽어보시면 신선함을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자모단 3기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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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자음과 모음에서 시작한 트리플 시리즈는 기존의 단편소설집이랑은 다른 느낌으로 세편의 단편과 한편의 에세이에 문학평론가의 해설까지 덧붙여진 구성으로 이번엔 신종원 작가의 소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뭔가 요즘 작가들과는 살짝 다른 분위기와 스타일이 신선했고 마그눔 오푸스, 아나톨리아의 눈, 고스트 프리퀀시로 이어지는 단편들의 제목부터가 심상찮다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첫 단편인 <마그눔 오푸스> 손자의 태몽에서 황금 호랑이의 형상을 한 ‘양계진 씨’는 놓아달라는 거북이의 말을 무시하고 황금 잉어를 훔친다. ‘양계진 씨’는 꿈을 꿀 때마다 황금 잉어의 주인(용왕)에게서 훔쳐간 것을 돌려달라고 종용받는다. ‘양계진 씨’는 꿈속에서 50년 만에 아버지와 상봉하여 자신의 태몽 이야기를 듣게 되고, 용왕을 만나 아버지가 훔친 “작고 아름다운 태양” 을 돌려주며 자신이 훔쳐간 황금 잉어(손자)는 잊어달라 부탁한다.
살짝 황당한 이야기면서도 그걸 진지하고 비장하게 풀어내며 그 속의 은유와 비유를 고민하게 만드는게 매력이었다.
양계진 씨는 망각이 두렵다. 양계진 씨는 생명이 그의 인체에 불어넣은 정교한 로직들이 카오스에 오염되어 뒤얽히고 망가지는 것이 두렵다. 인체를 구성하는 아름다운 수와 비율들이 낱낱이 분해되는 것이 두렵다. 세상 또는 기억과 단절되는 것이 두렵다. 벌벌 떨리는 양계진 씨의 손. 이상운동질환의 징후가 아니라 순수한 공포심으로.
두번째 소설 <아나톨리아의 눈> 은 1) 소설가는 실제 보드게임의 공용 장비인 구각뿔 주사위 두 개를 반드시 사용할 것. 2) 텍스트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합 : 0~99 사이의 값만큼만 전진할 수 있다라는 게임 규칙으로 시작하는 이상하고(?) 색다른 소설 형식이었다. 쇼팽, 문장부호, 애창곡, 멸망한 왕조를 다루는 소설 속에 또 다른 열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외에도 표제작 <고스트 프리퀀시> 와 에세이 <운명의 수렴>도 읽어볼 수 있었고 문학평론가 이소는 신종원의 소설을 주술과 언어의 유물론이라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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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트리플 시리즈 아홉 번 째 작품으로 신종원의 [고스트 프리퀀시]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짧은 분량의 세 편의 단편과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보다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읽은 자리를 맴돌기를 몇 번을 거듭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그눔 오푸스] 양계진 씨는 손자의 태몽을 꾸었다. 어릴 때 아버지와 뱃놀이를 갔던 고향의 늪에 들어가 황금 잉어를 들어 올린다. 용궁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거북이의 음성이 들리지만 주인은 따로 있냐고 물으며 내놓지 않는다. 그후 노인이 되어서도 꿈은 계속 꾸게 되면서 질식사의 위기 속에서 돌려줄 수 없다고 입을 연다. 노인은 파킨스병을 앓고 있었고 손자가 할머니 고향인 창녕을 데려가주는데 꿈 속에서 아버지를 만났고 자신의 태몽을 아버지가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생명뿐 아니라 죽음마저도 훔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 시들어가고 있는 신경 다발들을 두 손으로 붙잡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제 그 손은 이곳을 빠져나가고 있다.
[아나톨리아의 눈] 소설가는 실제 보드게임의 공용 장비인 구각뿔 주사위 두 개를 사용하며 텍스트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합 0~99사이의 값만큼만 전진할 수 있다. 음악으로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몇 가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서로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제일 흥미로운 이야기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 수업을 할 때 학생이 따옴표 대신 66과 뒤집힌 66, 99를 이용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어렸을 때 겪은 음향 사고로 인해 영영 음치가 되어버린, 어느 세이렌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썼는데 주위 음치들로부터 크게 항의받았다. 음치들이 그들의 애창곡을 곧 잘 파괴한다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가령 너는 우리 음치들에게 모욕감을 줬어. 우리 음치들이 얼마나 노래를 존중하는지 보여주마.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소설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목소리는 굽이치는 파흔을 남기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노이즈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p98
표제작이기도 한 [고스트 프리퀀시]는 박지일과 나의 이야기다. 그와 나는 은평구 역촌동 버려진 가정 주택으로 갔다. 낭독 공연이 열리는 장소는 45평 크기의 어느 입방체 구조물이 삼중으로 조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알려주었다. 70년대 양옥에서 생기 따위는 찾아 볼 수 없고 시인 박지일은 악몽을 꾸었는데 목소리가 따라 붙는다고 했다. 시인은 자신을 괴롭히는 목소리를 세 편의 시를 탄생시킨다. 나는 나는 에디슨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반복 재생하고 있다. 송화기는 에디슨의 음성신호를 기계 장치에 전달하는 수단으로 설계되었다. 이 동영상에는 1877년 뉴저지에서 녹음된 에디슨의 음성 자료가 담겨 있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 때, 에디슨이 말한다. “어린 친구, 그 빌어먹을 기계장치를 얼른 내려놓으시오.”(p124)
[운명의 수렴] 에세이 짐을 정리하던 작은 어머니가 쓰러졌고 그 병은 오래됐다. 할아버지도 수척해면서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를 돕게 됐다. 등산을 하거나 목욕탕을 가거나 쓰지 않는 근육들을 주물러 풀어주는 일로 환대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애도의 맥락을 저자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겨졌다. 이제는 아버지도 자기 몸으로 시간을 잰다. 아빠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하면 웃어버려야 농담으로 남는다.
저자는 에세이에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이 소설들을 쓰기 위해 석 달을 고민했고 첫 문장을 쓰느라 애를 먹었다. 소설이 잘 안 써지는 이유에 대해 동료 작가와 의견을 나눌 기회도 많다. 소설은 운명과 닮은 구석이 많고 그래서 매력이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한동안 인간이 사려 깊고 선한 척 애쓰는 기계처럼 보였다. 소설가는 어떤 목소리를 남길지 고민해야 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해설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난해하다. 잘 알지 못하지만 어떤 신비로운 여운을 남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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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으로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전자 시대의 아리아>로 당선되어 데뷔한 신종원 작가의 <고스트 프리퀀시>가 그 일환으로 아홉번째로 출간되었으며 단편 소설집이다. "마그눔 오푸스", "아나톨리아의 눈", "고스트 프리퀀시" 그리고 "에세이 운명의 수렴" 총 네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상당히 신비로운 소설이다. "마그눔 오푸스"를 읽었을 때는 주술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전체적으로 과학적으로 살갖 아래의 움직임을 묘사하며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조작하며 낯선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읽다 보면 소설 속에서 헤엄치는 느낌이 들어 흥미로우나 머리가 어지럽고, 모르는 용어가 주는 이질감에 오랫동안 혼미해졌다가도 결말쯤에서 현실로 토해지는 느낌이 든다. 머리가 알딸딸하고 무엇을 읽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저자가 하고 싶어하는 말의 반도 따라가지 못한 채 헤엄치다가 어느 순간 현실로 내동댕이쳐져서 묘한 기분도 들고, 그렇다고 형이상학적인 말로 내 머리를 두들긴 것도 아니라서 읽는 내내 미묘하다.
"마그눔 오푸스"는 양계진 씨가 거북이의 말을 무시하고 황금 잉어를 훔쳐 달아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손자의 태몽으로 이후 꿈을 꿀 때마다 황금 잉어의 주인 용왕에게서 훔쳐간 것을 돌려달라고 종용받으나 양계진 씨는 이를 무시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치매가 생긴 양계진 씨는 점차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꿈에서 도망치기가 힘들어진다. 망각을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손자를 돌려주지 않기 위해 애를 쓰던 양계진 씨는 꿈을 통해 아버지와 상봉하면서 자신의 태몽을 듣게 되고 용왕을 만나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별주부전을 모티브로 꿈과 현실이라는 기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양계진 씨의 머릿속은 꿈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부수어졌다가 붙여졌다가, 지워졌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오랫동안 외면하며 발버둥쳤던 현실이 꿈과 연결되면서 양계진 씨는 결국 단절된 기억(아버지와의 상봉)을 통해 외면해왔던 선택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사실 결말은 하나 뿐이라 배회하듯 읽었으나 종착점이 명확한 느낌이었다.
"아나톨리아의 눈"은 게임의 규칙을 설명하면서 시작하는데 열개의 면을 가진 주사위 값에 의해 따라 이야기가 펼쳐진다. 열 개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쇼팽, 문장부호, 멸망한 왕조 등 통일성이 없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가 끝을 맺는다. 다양한 세계가 창조되었다가 끝나가는 과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통일성은 전무하나 세계를 만들었다 사라지는 과정은 명확하게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내용보다는 구성이 더 눈에 잘 들어온 작품이고, 특히 문장부호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기억에 남는다. 등장하는 '나'와 '학생' 모두 잘못한 것은 없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통일성이 가져다 주는 절망이 느껴진다. 우리네의 창의성없는 인재들을 배출해나가는 교육관과 별반 다르지 않달까.
"고스트 프리퀀시"는 한 주택에서 열린 낭독 공연에 참여한 뒤 이상한 소리를 듣는 '박지일'과 '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박지일'은 시를 통해서 이상한 소리와 기이한 현상을 봉인한다. 한편, '나'는 에디슨이 나오는 유투브 영상을 보다가 에디슨의 유령 목소리와 조우한다. 그리고 에디슨과 이야기하면서 소설을 씀으로써 에디슨의 목소리를 봉인하고자 한다. 현실이 소설이 되면 그 안에서 살아 숨쉬게 된다. '나'와 '박지일'은 현실에서 겪은 것들을 글로 옮겨 적으며 그것들을 기록하고 현실에서 봉인시킨 것이다.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소명임을 말한다. 약간의 공포 장르의 느낌이 담긴 소설이긴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미는 상당히 명확하다. 그 명확한 이야기를 위해 유영하는 과정은 오히려 미묘함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에세이 운명의 수렴"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이므로 딱히 느낀점을 적지는 않을 예정인데 에세이의 분위기 또한 위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다. 다만 계속해서 이야기하다시피 이야기의 끝은 상당히 명확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머리가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다 읽고 나서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내내 곤혹스러운 느낌이었다. 작가는 흔들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나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까지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셈이니 내가 작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색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힘들지만 여운이 느껴지고 수많은 단어가 폭발하다가 꺼지는 느낌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미묘하게 나를 붙잡는다. 어찌되었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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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 그런데 읽었다기 보다는 문자를 봤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은 왜일까? 이소 평론가가 들려주는 해설에서도 표현하듯 "난해하다"와 "열렬한 팬이에요"의 평가 중 난 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아니 확실하다. 책은 앞의 표지와 목차빼고 해설을 빼고 나면 140페이지가 채되지 않는 두께다. 이 두께의 책 속에 세 편의 단편 소설이 꽉 차있다.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어떤 메시지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신의 매체, 미디엄medium으로서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말이다.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보다 그 매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미처 몰랐다는 느낌... 마그눔 오푸스 무슨 말인가 해서 네박사에게 물어본다.
할머니가 며느리를 대신해서 태몽을 꾼다. 잉어를 잡았다. 그런데 거북이가 자꾸 돌려달라고 한다. 그냥 무시한다. 손자가 태어났다. 할머니는 자꾸 꿈을 꾼다. 아니 시달린다. 돌려달란다. 끝까지 거부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 그것은 정말 연금술이 아닐까? 그 아이가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성공을 한 사람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살아간다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마그눔 오푸스... 아나톨리아의 눈 어떤 주사위 게임이 있다. 규칙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두 개의 주사위에 나온 숫자만큼 말판을 놓아가는... 소설 속에서는 그 숫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쇼팽부터 티베트 고원의 여행자까지의 이야기... 주사위의 숫자를 따라가다 지금의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말판을 멈춘다. 그런데 왜 아나톨리아일까? 이 지명에 집착하는 것은 저자의 메시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궁금하다. 고스트 프리퀀시
영화 식스 센스를 떠올려본다. 가까이는 내가 가장 좋아라하는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를 생각해본다. 주인공은 죽은자를 본다. 그리고 대화를 하고 죽은 자와 교감하기도 한다. 고스트 프리퀀시... 영혼 주파수... (프리퀀시라는 단어에는 빈발, 빈도라는 뜻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이게 가장 그럴듯한 것 같다...) 영혼, 죽은자가 살아있는 자와 소통하기 위한 방법... 그 방법을 통해 죽은자는 소설가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한다. 그런데 그 죽은자는 누가 불러낸 것일까? 어떻게 소설가랑 조우하게 되었을까? 잘모르겠지만 이것이 작가가 이야기하는 주술적 유물론의 한 표현일까? 세 편의 단편 중에서 그나마 조금 이해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마그눔 오푸스 정도... "히알루론산과 콘드로이틴황산염으로 합성된 젤라틴 재질의 끈 모양 조직체"로 연결되어야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대역인지도 모를 주파수에 공명을 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작가의 책은 은근히 나를 도발하는 것같다. 이대로 책을 덮어도 되는 것인지 물어보는 것 같다. 내 대답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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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시리즈는 항상 기다리는 단편집 시리즈물이고 읽다보니 대체적으로 취향이 맞는 단편 소설집들이라서 이번에도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었다. 역시 이번 신간도 나오자마자 읽어볼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많이 어려웠다. 이해할만하면 다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처음으로 돌아가고 처음으로 돌아가다보니 진짜 얆은 책 두께인대도 완독까지 꽤 오랜시간이 걸렸던것이 기억에 남는다. 3개의 단편 중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은 '마그눔 오푸스'였다. 주인공 양계진씨는 작은 비밀이 있다고 했다. 아기가 찾아올 징조라고 불리우는 손자의 태몽을 꾼것인데, 이 기쁜 소식이 비밀인 이유는 내용때문이었다. 꿈은 어릴때부터 지내온 고향 늪에서 였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늪속으로 들어가 반짝이는 노란 물고기를 발견하게 된다. 어느 태몽처럼 그녀는 그 물고기를 잡게되고 잡자마자 어디선가 놓아달라는 음성이 들리게 된다. 귀한 물고기를 놓아 줄수 없어 그 음성을 거부했고, 벼락같은 호통으로 물고기를 달라고 했다. 행복한 태몽은 호통같은 소리를 거부하고 물고기를 안은채로 깨어났고 이 꿈이 후 손자가 태어났으나 양계진씨는 노인이 되어서까지? 태몽의 연속적인 꿈을 꾸게 된다. 가장 소중한 선물같은 손자를 내줄 수 없는 할머니의 사랑도 느껴졌고, 작가님이 말하는건 그것보다 더 심오한것일테지만 마지막은 좀 더 열린결말로 양계진씨의 오랜 무게감을 벗어던질만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어 왠지 가장 편안한 내용이지 않았나 싶었다. 과학과 음악 속 주술론적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맞을 만한 단편집이아닐까 싶었다. 모든 사람의 취향을 찾아가는 시리즈물이라는 생각으로 다시한번 트리플 시리즈를 응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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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루할 틈이 없는 소설을 만났다. 짜임새가 독특하고 구성과 발상이 흥미롭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플롯으로 긴장을 유발하거나 먹먹한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흥미롭다 느끼는 것일지 생각했다. 아마도 해석과 비평의 여지를 남겨두는 소설이기 때문인 것 같다. <고스트 프리퀀시>는 해설 포함 총 160쪽 내외의 얇은 책이다. 소설 세 편과 에세이 한 편, 그리고 해설이 실려 있다. 세 편의 소설이 모두 나름의 방식대로 마음에 들었다. 서술이 거침없다는 표현보다는 발상이 거침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조잡한 문제의식,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라는 의미에서의 거침없음과는 거리가 멀다. 무관한 소재들이 불쑥 등장하여 무질서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일견 정지돈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결이 좀 다르다는 느낌이다. 함께 실린 해설도 소설만큼이나 독자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올린 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설을 읽으며 소설 이해에 큰 도움을 받았다. 작품을 작품 자체로 독해해낼 줄 알고, 이론을 도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해설이라 좋았다. 특히 단편 <고스트 프리퀀시>를 글쓰기 자체에 대한 은유로 읽은 부분이 인상깊었다. 목소리와 이야기, 낭독, 재현, 기록 그리고 글쓰기. 붙잡는 동시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 그런 것은 어쩌면 ‘유령’으로, 신화와 주술의 영역에서 비로소 ‘합리적’으로 이해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의식이나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키고 심화해나가길 기대한다. 표현을 다듬고 장식적인 걸 조금 빼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들이 가끔 있었다. 뭐 이건 개인 취향의 문제일지도. <전자 시대의 아리아>도 읽어봐야지. *출판사 도서 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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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는 신종원 작가님의 소설집이에요.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아홉 번째 책이기도 하고요. 한국 단편소설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어요. 이 책에는 세 편의 단편과 에세이 그리고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요. 보통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가를 떠올리는 경우는 드문데, 신종원 작가님의 소설은 읽는 내내 생각했어요. 정확하게는 소설가의 세계가 궁금했던 것 같아요.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단서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제목부터 낯선 데다가 어떤 설명도 없어서 그 의미를 찾아야 했어요.
<마그눔 오푸스>는 라틴어 Magnum opus 이며, 중세 유럽의 연금술에서 유래한 단어로 현자의 돌을 만들어내는 공정 또는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그 일 자체를 의미한대요. 걸작을 의미하는 라틴어라고도 하네요. 할머니가 손주의 태몽을 꾼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 꿈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고 있어요. 삶과 죽음의 신비라고 해야 할까요. 제목의 뜻을 알고나니 양계진 씨와 손주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이해됐어요. 어디까지나 저만의 해석일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은 삶과 죽음에 관한 옴팔로스(그리스어로 '배꼽')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손자의 유령 같은 손은 양계진 씨가 잃어버린 태양을 주워다 돌려줄 수 없을 것이다. 하나하나가 하얗고 가느다란 그 손가락들은 승강기를 붙잡는 데나 쓸모 있을 따름이다. 승강기가 손자와 양계진 씨 앞에 도착한다. 내부는 비어 있다. ... 양계진 씨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양손을 내려다본다. 한때 무궁한 존재로부터 생명을 훔쳐냈었던 바로 그 손을! (43p)
<아나톨리아의 눈>은 첫 문장부터 난해한 게임을 예고하고 있어요. 1) 소설가는 실제 보드게임의 공용 장비인 구각뿔 주사위 두 개를 반드시 사용할 것. (47p) 제목의 의미는 뭘까요. '악마의 눈'으로 더 많이 알려진 터키의 부적, 나사르 본주 Nazar Boncugu 는 아나톨리아 Anatolia 지방의 전통 장식품인 푸른 구슬이에요. 나사르는 '눈' 또는 '보다'라는 뜻의 아랍어 단어에서 유래했고 본주는 터키어로 구슬이라는 뜻인데, 악마의 눈이라는 별명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실제로 터키인들에게는 불운을 막아주는 부적이자 행운과 안녕을 염원하는 마음이 깃든 물건이라고 해요. 저자는 소설가를 보드게임의 참가자로 표현했어요. 주사위를 던지면 게임은 시작되고, 보드판에는 열 개의 평면 픽션이 등장하고 있어요. 그 가운데 [66]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주인공 나는 어떤 학생의 입시 과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학생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어요. 대화문이나 인용문을 시작할 때 왼쪽 큰따옴표를 열고 오른쪽 큰따옴표로 닫지 않고 대신에 66과 뒤집힌 99를 사용한다는 거예요. 이 부분을 지적하자 과외 학생은 투덜거리면 이렇게 말했어요. 66하지만 저는 시프트를 누르기조차 귀찮은걸요.99 (57p) 부정확한 언어, 잘못된 문장부호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는 걸까요, 잘못된 발성법과 삐긋대는 음정들 때문에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걸까요. 그건 아니라는 것.
<고스트 프리퀀시>는 소설가가 낡은 양옥집, 불란서 주택에 들어가 어둠 속의 소리들을 수집하는 이야기예요. 다음의 문장은 두 번이나 반복하여 적혀 있어요. 소설가는 사라지는 글들이 두려웠던 게 아닐까요. 언젠가 낡은 주택이 허물어지듯이. 시인과 소설가의 고뇌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소설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목소리는 굽이치는 파흔을 남기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노이즈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98-99p) (1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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