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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어떤 것을 표지하기 위하여 세우는 돌. 관극을 위해 대학로를 방문하다 보면 종종 표석들을 보게 된다. 사실. 유심히 쳐다보지 않는 데, 책을 읽으면서 스쳐 지나갔던 표석들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역사 자체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서울 곳곳에는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많은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 종종 공사를 하기 위해 땅을 팠더니 유물들이 쏟아져나왔다는 기사를 접하지 않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했던. 그리고 존재하는 서울의 역사들. 표석을 따라 그 역사를 따라가보자.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현대를 사는 한 청년이 타임슬림을 해 명동의 로망스 다방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박인환, 전혜린, 이중섭 등의 예술가와 교류하며 삶의 열정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인데, 당시에는 정말로 명동의 다방들은 예술가들의 모여 예술을 논하고 시대를 논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단순한 다방을 넘어 문화교류의 장으로 다방의 역사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들을 엿볼 수 있다.
도시는 인간과 함께 성장하고 확장하고 때로는 쇄락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우리는 역사라 부른다. 책을 읽으며, 책과 함께 서울을 거닐며 가보고 싶은 장소들이 많이 생겼다. 이제는 도시를 걷다 표식들을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곳의 과거와 역사를 배우고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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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후기]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 광복이후 근대도시에서 현대도시로 급변하는 서울 풍경 전국역사지도사모임 / 유씨북스 / 303 page
지은이 : 전국역사지도사모임 펴낸곳 : 유씨북스 펴낸날 : 2021년 10월 20일 1판1쇄 도서가 : 15,800원
5천만 대한민국 인구중 1천만명이 거주하는 수도 서울은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부터 한반도의 수도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고려시대에도 남경이라 하여 중요 도시 중 하나였긴 했지만 명실상부한 수도로서의 위상을 확립한건 조선의 수도 한양이 그 시작이었지요. 그러한 서울을 표석을 통해 살펴보는 시리즈 책자 중 하나로 얼마전 네번째 도서가 출간되었는데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란 책입니다. 한마디로 표석을 통해 20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살펴보는 책이지요. 시리즈로 이전에 출간되었던 세권의 책은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2016)>,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2018)>,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2019)>으로 이중 두권('한성', '제국에서 민국'편)을 이미 읽어보았는데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인 책이었는데요. 이번 출간된 '서울'은 어떤 내용일런지 기대가 컸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 그 기대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전국역사지도사모임으로 되어 있지만 목차를 보면 각 장별로 집필한 10분의 이름이 보입니다. 이 모임은 모두 문화해설사 또는 교육지도사로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시는 회원들의 모임으로 '살아 있는 역사 교육'으로 역사 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학습 자료를 개발하고 있으시다고 합니다. 문화유적지나 문화재, 고궁이나 사찰 등 역사 문화가 살아 숨쉬는 현장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되는 유용한 콘텐츠를 만드신다니 여행길이 풍성해질 것도 같습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준비한 만큼 느낄 수 있다고 하니까요.
책은 그간 출간된 시리즈 책자와 동일하게 본문이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 머리에 - 한성, 경성 그리고 서울>로 시작되고 이어지는 1부에는 "근대적 도시화의 시작"이란 주제로 6개의 장이 있는데 <종로 길 - 모더니스트를 만나다(손은희)>, <명동 길 - 문화 예술의 산실, 다시 꿈꾸다(강선애)>, <용산 길 - 금단의 땅, 문이 열리다(김형기)>, <영등포 길 - 군사비행장에서 한국 경제의 상징으로(김미숙)>, <마포 길 - 서울 성장 발자취, 한강의 기적(김홍렬)>, <동대문 길 - 가난이 만들어낸 끈질긴 생명력(한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광복 이후 서울이 근대적 도시로 변모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장입니다. 2부는 "현대적 대도시의 건설"을 주제로 4개의 장, <은평 길 - 서울의 경계점이 아닌 내일의 시작점(정순희)>, <구로 길 - 수출산업의 메카 구로공단 이야기(손안나)>, <강남 길 - 정권이 만든 아파트공화국(김태휘)>, <잠실 길 - 올림픽을 치른 서울의 시그니처(임정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서울의 도시 확장과 현대적 대도시를 건설해가는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는 장인데 각장의 제목들을 보면 내용이 대충 짐작이 가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표석 찾아보기>와 <참고 문헌>, <집필진 소개>로 책은 마무리됩니다.
목차 다음에는 구한말 한성에서부터 1970년대 서울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지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시대별로 색깔을 통해 구분하여 어떻게 서울이 확장되어 갔는지 그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지요. 구한말 당시의 한성은 4대문 내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1910년대 경성은 동쪽으로는 동대문 너머 신설동까지, 남쪽으로는 남산 너머 용산까지 확장되었고, 1930년대의 경성은 2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확장되었으며, 50년대와 70년대의 서울은 그 2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지속적인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확대되어 왔음을 알 수가 있어요.
책의 첫 장은 종로 길로 시작됩니다. 이곳은 조선이 건국되면서 조성된 상업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근대에 이 길을 따라 전차 노선이 부설되면서 서울의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고 이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80년대까지 이어왔습니다. 학교,시장,극장 등이 있어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종로 길에는 종각 바로 옆에 위치한 종로서적이 있었죠. 2002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서점의 역할은 물론 만남의 광장으로 많은 이들이 애용하던 곳이었습니다. 1장의 타이틀은 "모더니스트를 만나다"로 20세기 초 무렵 활동하던 작가들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종로 길 주변에는 의외로 작가들 집터와 작가가 운영하던 책방, 가게들이 꽤 있더군요. 광화문 교보빌딩 주차장 터에는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의 집터가 있고 종로3가 낙원동에는 박인환이 열었던 서점 <마리서사>가 있었으며 탑골공원 건너편에는 김수영 집터였었답니다. 책에서는 박인환과 김수영간 복잡미묘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좀 뜻밖이었어요.
두번째 장인 명동 길의 제목은 "문화 예술의 산실, 다시 꿈꾸다"로 2장의 글 전제적으로 보면 명동예술극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명동은 비가 오면 땅이 질어서 넘기 힘들다 하는 "진고개"라 부를 정도로 구한말까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혼마치(本町)이라 불리던 충무로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명동(明治町) 일대에 상가와 백화점, 극장 명치좌(明治座)가 세워지면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부각되기 시작했답니다. 이 명치좌가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으로 1936년에 세워진 것이랍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명동성당 일대와 중국대사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재건하게 되는데 이때 고층 빌딩과 함께 금융기관 본사들과 증권거래소가 들어오고 양장점과 백화점들이 대거 문을 열어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로 거듭났답니다. 1979년 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이전하고 금융기관들도 따라가면서 명동은 점차 활기가 떨어지고 그 명성은 영동개발사업 결과 눈부시게 발전한 강남으로 넘어가게 되었답니다. 이러한 명동에는 한국전쟁 이후 기라성같은 문화예술가들이 드나들던 다방과 주점들이 즐비했었답니다. 문인들은 '모나리자', 방송인은 '라이뿌룸', 연극인은 '은하수' 등 다방마다 모이는 사람들의 성격이 다르기도 했다네요. 이 모든 사람들과 다 연계되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명동백작 이봉구'란 분으로 '은성의 풍경화', '명동의 산증인', '명동시장' 등 별명도 참 많은 분입니다. 이 분이 주로 가던 단골집은 '은성주점'으로 오죽하면 편지에 '은성주점 이봉구'라 쓰면 배달될 정도라 하네요.
세번째 장은 용산 길로 "금단의 땅, 문이 열리다"가 타이틀입니다. 다들 주지하시다시피 용산은 최근 주한미군이 용산기지로 사용하다가 평택기지로 이전으로 돌려받게 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죠. 용산은 조선시대부터 한강과 연결되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전국의 조운선들이 몰려드는 포구로 발전했던 곳이랍니다. 하지만 이런 요충지란 점 때문에 고려말 몽고군의 병참기지로 사용되었고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보급기지를 설치했으며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었답니다. 청일전쟁 때는 일본군이 주둔하다가 을사늑약 이후에는 군사기지화 하여 한반도 무력통치와 대륙 침략의 거점으로 삼았다지요.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들어와 7사단 사령부를 설치했었고 한국전쟁 후에는 주한미8군사령부로 들어와 미군기지로 공여되었죠.. 대한민국 영토임에도 주권이 미치지 못하던 곳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단 사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이 책을 통해 새삼 되새겨보게 되었네요. 그리고 새로 알게 된 용산의 역사가 있었는데 용산에는 국내 3대 제과회사(크라운해태제과,오리온제과,롯데제과)가 몰려 있었답니다. 해방 전까지 용산에는 영강제과(남영동), 경성제과(갈월동), 장곡제과(후암동), 대서제과(용문동), 궁본제과(용산경찰서 앞), 기린제과(공덕동), 풍국제과(삼각지), 조선제과 등 8개 제과업체가 있었는데 해방후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제과 생산시설들이 한국인들에게 불하되면서 해태제과(前영강제과),오리온(동양)제과(前풍국제과)가 탄생했다는 것이죠. 다만 롯데제과는 1967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진출하면서 용산에 본사를 둔 케이스랍니다. 책은 그러한 용산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관련 표석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가 너무 매끄러워서 표석 이야기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네번째 장은 영등포 길로 "군사비행장에서 한국 경제의 상징으로"입니다. 처음 목차를 봤을 땐 영등포 길이라 해서 어딘가 싶었는데 본문 읽어보니 여의도가 주 대상이었어요. 물론 여의도 뿐만 아니라 영등포 일대에 대해서만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강 이남 지역 중 서울 행정구역에 포함된 곳은 영등포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책 처음에 서울 확장을 보여주는 지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새로왔던 것은 60년대말 시작된 강남개발이 처음에는 영동개발이라고 불렀었다는 점인데 영등포(永登浦)의 동(東)쪽이라 영동(永東)이라 한 것이랍니다. 당시엔 강남과 잠실 일대가 서울이 아닌 경기도였고 지금은 분구되어 있지만 그 당시엔 지금의 강서구와 양천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 동작구도 영등포구에 속했으니 영동이라 불릴만도 합니다. 그 시원은 1973년 영동출장소가 신설되어 지금의 강남구 일대를 관할하면서부터 생겼다는군요.
이후 다섯번째부터 열번째 장은 다음 기회에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리한 내용을 꼭 남겨놓고 싶은데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본문이 마무리되면 그 뒤에는 그간 출간된 시리즈 책자와 마찬가지로 책에서 언급된 표석 사진들이 이어져 나옵니다. 그런데 미설치된 표석이라는 사진도 있었는데 그건 집필진들이 표석이 설치될 만한 곳이라 설명하던 곳들이라 넣어둔거 같네요. 아무튼, 서울 도심과 부도심이 어떻게 확장되고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책은 지역별 길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어요.
책은 구한말 한성에서부터 어떻게 지금의 서울로 변화해갔는지,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사회상황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70~80년 이야기 같은 경우에는 읽다가 가물가물한 옛 기억들을 회상해보느라고 시간 많이 잡아 먹게 되더군요. 읽으면서 감회가 새롭단 말이 수시로 나오더랍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70년대 이전 출생하신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전 이 시리즈 책자의 영향으로 길 가다가 표석이 보이면 유심히 그 내용 살펴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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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의 시리즈물이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한성이 곧 경성이고, 경성이 곧 서울이다. 그러니 같은 지역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발품을 판 셈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같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자신감은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소제목에서 보이듯 광복 이후 근대적 도시에서 현대적 대도시로 급변하는 서울의 풍경을 담고 있다.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도 있다고 하는데 어떨런지는 잘 모르겠다.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표석만으로, 표석에 써있는 안내문만으로 그 현장을 짐작해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까닭이다. 답사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남겨진 터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역사를 남겨진 터를 통해 상상할 수 있다는 건 경이롭기까지 하다. 집에서 감옥살이와 같은 생활을 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나고 있다.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슬쩍 가까운 곳으로 바람이나 쐬러 가보자고 나설 때도 있지만 코로나라는 녀석이 길목에 버티고 서 있으니 맘대로 쏘다닐수도 없는 일이다. 서울만큼 많은 이야기를 가진 곳도 없다. 그 많은 이야기를 책을 통해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隔世之感이나 桑田碧海라는 말이 제대로 어울리는 곳이 바로 한양이자 서울일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청계천의 변화도 그렇고, 논과 밭뿐이던 영동이 서울의 중심이라는 강남으로 자리잡은 것도 그렇고, 구로공단이 가산디지털단지로 바뀌며 그 형태를 변환한 것도 그렇고 옛날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요즘은 레트로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한다. 다시말해 복고주의를 지향한다는 말이다. 힘겨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옛날의 체제나 전통등을 그리워할 뿐이지 진심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딱 하나, 서로에게 믿음이 있었고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만 빼면 그렇게 막무가내로 돌아가고 싶어할 만큼 아름다웠다고는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 시절의 영등포는 정말 대단했었다. 영동이라는 말이 곧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이었으니 영등포의 크기와 무게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가 영등포에서 분할되어진 구역이다.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영등포역 시계탑 밑에서 만나자던 약속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영등포는 그 시절의 영등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책에서 보여주고 있지만 아파트 옆에서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당시 강남 개발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강남을 개발해야만 했던 시대의 흐름과 정권의 속내도 살짝 들춰내고 있다. '졸부'나 '복부인'과 같은 말들이 그 때 생겨난 것이다. 아울러 그 시대 '공순이'라고 불리우며 수출의 역군으로 자리매김했던 소녀들이 살던 구로동과 가리봉동 가옥의 형태를 소개한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다. 청계천 복개공사로 인하여 삼일고가가 없어졌고 그로인해 생겨난 것이 평화시장이었다. 하지만 평화시장도 그 옛날의 평화시장은 아니다. 그야말로 隔世之感이나 桑田碧海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으로 탈바꿈되어버린지 오래다. 평화시장 한쪽에 자리잡고 있던 헌책방 거리는 지금도 그리운 곳 중의 하나다. 서울은 이제 바야흐로 세계적인 도시로써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파주 헤일리 '근현대사박물관'과 동인천 '수도국산박물관'은 개인적으로 마음을 빼앗긴 박물관이다. 그 곳에 가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이 정말 빠르게 변해버렸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서울의 옛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느끼게 된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왜 이리도 오래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금천구에 수출의 역군 '공순이'들이 살던 그 '벌집'을 전시해놓은 곳이 있다고 한다. 청계천 끝자락에 복개공사 이전 청계천 자락에 살던 사람들의 집을 전시해 놓은 곳이 있다고 한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한번 가봐야지 다짐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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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는 '표석 시리즈' 네 번째 책이에요. 전국역사지도사모임은 서울의 풍경을 시대별로 나누어 표석을 따라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서울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학계에서 삼국시대 신라 때로 보고 있으며, 도읍의 명칭으로서 수도(京)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 오늘날의 서울이라는 말로 변했다고 해요. 이 책은 조선의 개화기에는 한성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으로 불렸으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수도가 된 서울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어요. 한성, 경성 그리고 서울까지 지도 위에 표시된 것을 보니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장을 한눈에 확인하는 느낌이었어요. 근대적 도시화의 시작은 종로 길에서부터 명동 길, 용산 길, 영등포 길, 마포 길, 동대문 길을 따라가고, 현대적 대도시의 모습은 은평 길, 구로 길, 강남 길, 잠실 길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서울의 중심지 종로와 명동을 많이 왕래하면서도 표석을 눈여겨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표석 시리즈 덕분에 달라졌어요. 평범했던 길과 거리가 이제는 역사를 품은 특별한 장소로 변모했어요.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에는 벤치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는데, 이 남자가 바로 염상섭이에요. 누구나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 형태의 브론즈 좌상은 '횡보 염상섭의 상'이며 처음에는 1996년 종묘광장에 만들어졌다가 삼청공원으로 옮겨졌고, 2014년에 지금의 자리에 놓였다고 해요. 그가 왜 여기에 있을까요. 그는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서 태어났으며 항상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걸어 다닌다고 해서 횡보라는 호가 붙었대요. 1921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데뷔하여 1931년 장편소설 <삼대>를 발표하는 등 인간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한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로서 한국 소설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이에요. 순 서울 토박이었던 염상섭에게 종로는 활동 무대였고 자신의 작품 속에도 생생한 공간으로 그려냈으니 그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네요. 벤치에서 일어나 교보빌딩 주차장 쪽으로 몸을 돌리면 '박인환 선생 집 터'라고 적힌 표석이 있어요.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이 1948년부터 1956년까지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했던 장소라고 해요. 1945년 말에 박인환이 종로에 세운 책방 '마리서사'의 위치가 탑골공원 인근 송해길의 종로3가 시작점인 대한보청기 옆 2층 건물로 최근 밝혀졌어요. 그 서점에서 아내를 만났고, 강원도 인제 출신인 박인환의 집터는 처가에서 마련해준 신혼집이었다네요. 마리서사 터에서 탑골공원 쪽으로 종로 길을 따라 걷다보면 길 건너 YBM 영어학원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시인 김수영이 태어난 곳이에요. 마리서사는 김수영에게도 특별한 공간으로,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환할 힘을 얻게 된 곳이라고 해요. 김수영의 글 <박인환>에서 인환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당대 시인들에 대한 일침이었다고 해요. <마리서사>에서 "우리 문단에도 해방 이후에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가장 자유로웠던, 좌·우의 구별 없던 몽마르트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39-40p) 서울 도심과 부도심 지역으로 나눠, 각 지도마다 표석들이 나와 있어서 색다른 역사 탐방 코스를 안내하고 있어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현장을 가보고, 박물관 혹은 기념관에서 역사적 자료를 찾아 보는 이유는 살아 숨쉬는 역사를 느끼기 위해서예요. 표석 시리즈를 읽으면서 놀라웠던 점은 표석을 통해 잊고 있던 역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에요. 올림픽을 치르면서 서울의 시그니처로 부상한 잠실 길은 화려한 개발 이면에 감춰진 그늘을 함께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잠실 개발이 진행될 당시 문화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여 수많은 문화재들이 사라졌다고 해요. 석촌동 고분군이 백제의 중요한 왕릉급 무덤임을 확신했던 이형구 박사가 정부와 서울시, 문화재관리국(지금의 문화재청) 등에 건의서를 내고 설득하고자 노력했으나 공사는 강행됐어요. 뒤늦게 보존한 석촌동 고분군이 작게나마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지만, 만약 그때 이형구 박사의 건의대로 백제유적보존지구로 설정되었다면 놀라운 문화 유적지가 탄생했을 텐데, 참으로 통탄스럽네요. 현대 도시로서의 서울도 좋지만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서울을 기억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이 책을 통해 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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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에 가까운 인구가 사는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 과거 조선왕조의 도읍이었으며, 88년 근대올림픽 열렸으며, 2002년에는 월드컵 개막전이 열린 곳이다. 이곳은 또한 1960~70년대 연평균 9%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근현대사를 표석으로 알아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바로 전국역사지도사모임에서 편찬한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 유씨북스 출판이다.
역사를 배울 때 중세에 가장 높은 비중을 두며, 그다음 고대에 비중을 두었다. 그에 비해서 근현대사는 각종 시험에서 기출 빈도가 매우 낮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고대와 중세가 아닌 바로 근현대사이다. 중국 고대 상(은)나라 시대에 나온 유골의 DNA를 분석해 본 결과 현대 중국인들과는 전혀 맞지 않았으며 오히려 북부 베트남인들과 유사했다. 과거 몇백 년 동안 대제국이었던 오스만튀르크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1차 대전 패전국 공중분해 되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이후 한 나라로 살던 우리 민족은 1945년 광복 후 분단되었다.
이 책은 서울의 근현대사를 지금의 지하철역과 과거의 사진, 지도 등을 곁들여서 설명하고 있기에 서울의 변화상을 글과 그림으로 읽을 수 있다.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서울은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정말 상전벽해란 말이 잘 어울린다. 먼저 조선시대의 한양, 서울과 지금의 서울은 그 규모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과거의 서울은 4 대문 안 만 서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은 한강을 넘어 강남까지 뻗어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경제 규모는 그 규모의 변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지금 번화한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초기 사진을 보니 놀랍다. 처음에는 주변이 온통 황무지였다.
변해버린 서울에서 과거의 모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보 1호이며, 서울의 상징이었던 숭례문은 불에 타버렸으며, 지금 있는 경복궁과 경희궁 등은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서울의 명소가 된 청계천도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 그나마 모습을 간직하던 것들도 한국전쟁으로 많이 사라졌다.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 들은 종묘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사진과 표지석은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은 지하철역 주변에 있는 옛 흔적들은 노선도와 지도로 설명하고 있기에 찾아가기도 쉽다. 서울의 근현대사를 지도와 사진 등으로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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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은 모더니즘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하며 대표작이 <목마와 숙녀>입니다. 시인 김수영은 이에 대해 호된 비판을 가했는데 이 책 p39에 그 독설이 그대로 인용됩니다. 오늘날에도 그 쿨하고 선명한 심상이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키는데도 말입니다. 이 책 중 "종로길" 파트를 쓴 손은희 씨나 저 독설을 당시에 퍼부었던 김수영 시인이나, 해당 작품을 평가절하한 소치는 아닐 것입니다. "사기(詐欺)를 세련된 현대성이라고 오해하는 모양이다(p37)." 그 진의는, <마리서사> 같은 멋진 작품을 함께 읽어야 박인환의 천재성이 제대로, 균형 있게 이해되리라는 충심에 가깝습니다. 요즘 종로 하면 뭔가 잘 안 씻고 부시시하게 외출한 퇴물 기생 같은 느낌만 풍긴다고 여겼는데 이 책 이 파트를 읽고 나서 다시 찾으면 완전히 달리 보일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참 예쁘고 멋집니다. 저는 중고등학생 때 사회과 부도에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20세기 후반 동안 어떻게 확장했는지(1990년대 이후로는 서울 행정 구역 개편이 안 이뤄졌으니) 보여 주는 지도를 봐 왔었는데, 이 책 pp.10~11에는 구한말, 일제 강점기(10년 단위로 세분된), 해방 이후에 서울이 각각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보여 주는 세밀한 지도가 나옵니다. 아, 그랬던가 하는 감탄이라든가, 이처럼 세심하게 과정을 보여 주는 편집상의 성의에 대해 뭔가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 제목이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인데, 이 책 자체가 어찌 보면 "휴대용(?)" 표석입니다. 물론 진짜 표석들을 담은 컬러 사진도 엄청 많이 실려 있습니다.
미인대회(pageant)는 자본주의가 번성하는 어느 도시, 국가에서도 오히려 그 현대화의 상징처럼 여겨져 성황리에 개최되곤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에 미스 유니버스가 개최되기도 했죠. 하지만 여성 단체 등에서 성의 상품화라며 많은 비판을 가하기도 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에 이릅니다. 책에 이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강선애 필자가 쓴 "명동길" 중에서 하종순 원장의 미용실이 명동에 소재했음을 알려 주는 대목(p55)이 있어서입니다. 여튼 지난시절 명동이 멋쟁이들의 거리로 손꼽히던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용산에는 위수 감옥이 있었는데 계엄령, 위수령 할 때의 그 단어입니다. 이 감옥에 백범을 암살했던 안두희가 한때 갇혔다고 하는데 백범은 1949년에 변을 당했으므로 이미 대한민국이 출범한 후였습니다. 책에는 한국전으로 잔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결국 소령으로 예편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역시 많은 이들의 분노를 부르는 대목이죠. 미군은 해방 이후 이 땅에 진주하여 일단 철수했다가 한국전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당시였지만 수도 일각에서 세계 첨단 유행의 한 자락이 모습을 (어설프게나마) 드러내기도 한 건 이런 배경이 있어서였습니다. 이런저런 오래된 호텔들이 강북 곳곳에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습니다.
개발 이후 여의도는 내내 한국에서 손에 꼽는 금싸라기 땅이었으며 지가의 부침도 없이 이처럼 내내 그 레벨을 유지하는 것도 경이롭습니다. 이는 그만큼 한국 안에서 아직 성장과 발전의 에너지, 창의성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저자의 규정은 "한국의 맨해튼(p106)입니다. 반면 영등포에는 물론 비싼 아파트 단지도 많지만 편차가 꽤 크며 전망도 다소 엇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강남을 영동이라 부르는 예는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으나 애초에 영동이라는 말이 영등포의 동쪽이었다는 유래를 고려하면 이 일대의 과거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동(永東)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 책 p116, 또 저 뒤 p250에 상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마포에서 포(浦)라는 글자라든가, "마포종점"이라는 유행가 제목만 봐도 이 지역의 과거 수운으로서 중요한 비중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때 침체를 겪었고 야세가 강한 선거구로도 유명했으며 오랜 시절 동안 야당(주로 민주당 계열) 당사가 이곳에 위치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손 모, 정 모 등 강성향 정치인들이 주로 당선되죠. 책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한 지점으로서의 위상도 강조합니다만 사실 그런 구실이라면 여기 말고도 고려, 거론되어야 할 곳이 많겠습니다. 요즘은 아파트 값이 많이 올라서 더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병인양요 당시에는 양화진이 한성시계 밖이었기에 적군이 수도까지 진격했다는 느낌은 덜 받았겠습니다만 현재는 양화대교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엄연한 서울 시내이며 한때는 부촌 인상도 주곤 한 동네입니다. 동대문 일대는 구한말 가장 먼저 전철이 부설되고 운행된 곳이지만 현재는 위상이 많이 다르며 다만 큰 환승역이 소재하긴 했습니다. 요즘은 트램 재건설도 일부 지방 도시에서 논의되는데 여기도 혹시 어찌될지 모르죠. p163에는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 경성전기주식회사가 만든 전철안내도가 소개되는데 오늘날 우리가 아는 류와는 체제가 많이 다릅니다.
구한말부터 이 땅에는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이 많이 와서 큰 봉사를 하고 많은 혜택을 주고 가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이 있습니다. 윌리엄 해밀턴 쇼는 선교사 부부의 아들이었는데 한국(1922년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났고 이후 미국으로 간 후(사유는 일본의 추방입니다) 한국전이 터지자 "조국이기도 한(그 자신의 표현입니다)" 이곳으로 돌아와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이대에 걸쳐 은혜를 이 땅에 끼친 셈인데 이렇게 고귀한 영혼들이 피를 흘려 지킨 이 땅에서 나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부끄럽기도 하고 한없이 죄송해지는 마음이 듭니다.
책 후반부는 강남, 잠실 일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책은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와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와 자매편이라 할 수 있으며 나머지 두 권도 찾아서 읽어 볼 계획입니다. 품격 있는 감상뿐 아니라 유익한 정보, 자료가 많이 들어 있어 좋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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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근대적 도시에서 현대적 대도시로 급변하는 서울의 풍경
유씨북스에서 출판한 전국역사지도사모임의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는 오늘날 서울에 남아 있는 표석을 따라 서울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도서이다. 전국역사지도사모임에서는 표석으로 읽는 근대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시리즈를 출판했고, 일제강점기의 서울 풍경을 담은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 개화와 근대화의 격변 시대를 지나는 대한제국의 서울 풍경을 담은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까지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던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을 걷다>에 이어 완결편으로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를 완성했다.
세계에서도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대도시인 서울을 전문가와 지역민 인터뷰를 거쳐 서울 도심과 부도심 지역으로 나눠 주제를 정하고, 지역에 녹아 있는 이야기를 표석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제1부 ‘근대적 도시화의 시작’은 종로 길에서 모더니스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명동 길에서 문화 예술을 용산길에서는 금단의 땅의 비밀을 소개한다. 영등포 길에서는 금융 허브를 마포 길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더듬어본다.
종로는 조선이 건국되면서 만들어진 상업의 중심로였다. 아침저녁으로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는 종루가 있었고, 궁궐의 남북으로 뻗은 광화문 앞길과 돈화문로도 종로에서 만나 남쪽 길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인다 해서 운종가로 불렀다. 종로는 명실상부한 서울의 중심지였다. Photo by INHYEOK PARK on Unsplash
1980년대까지 ‘종로서적’은 서점이자 만남의 광장이었다. 그때 ‘종로에서 만나’라는 말은 곧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리던 종로서적을 의미했다.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던 종로에는 지금도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 벤치 위에는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저자인 염상섭이 앉아 있다.
명동은 1930년대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저밍 생긴다. 당시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의 로망은 미쓰코시백화점에서 ‘런지’를 먹고 옥상정원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명동성당 일대와 중국대사관 근처를 제외하고는 명동은 폐허가 되었다. 이후 재건하는 과정에서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양장점, 백화점, 다방, 금융기관의 본사 등이 들어서며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가 된다.
1970, 1980년대에는 군사독재에 맞서는 민주화운동으로 잦은 시위가 있었다. 2010년대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명동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현재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동인구가 줄어 명동에는 빈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Photo by JEONGUK - on Unsplash
1945년 8월 18일 지금의 여의도공원인 경성비행장에 C-47 수송기 한 대가 멎었고 20여 명의 군인이 뛰어내렸다. 그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 전진부대워인 이범석, 김준엽, 노능서, 장준하와 버드 중령과 미국전략정보처 OSS 대원들 22명이 중국 시안에서 날아왔다.
미군과 광복군은 오랜 시간 ‘국내 진공작적’을 준비했었고, 작전이 성공했다면 한반도의 분단도 한국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김구 주석은 일왕의 항복 소식을 듣고 ‘이것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일이다. 천신만고로 수년간 참전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다’라고 <백범일지>에 적고 있다.
여의도가 비행장이었고, 당인리에는 발전소가 있었으며, 마포는 전차 종점이 있었다. 한번은 들어봤을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은 마포종점 인근에 살던 젊은 부부가 가난했지만, 열심히 살았고, 남편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다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지만,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사망 소식을 모르는 아내가 남편을 기다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편이 전차를 타고 나타날 거라는 믿음으로 한없이 기다리다 어느 날 종적을 감췄다는 내용이다.
노래 가사를 보면 당인리 발전소, 여의도 비행장, 강 건너 영등포를 나타내고 있어 당시 서울의 지리를 가늠할 수 있다.
Photo by Park Gunwoo on Unsplash
제2부 ‘현대적 대도시의 건설’에서는 서울의 도시 확장과 대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은 1960~1970년대 연평균 9%라는 고도성장을 이루며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1950년 160만 명이었던 인구는 1970년 500만 명을 넘어섰고, 인구 급증은 도시문제와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수도 서울의 안보와 맞물려 도심 기능의 분산 · 주택난 해결과 인구 분산 · 경제성장 등을 목적으로 서울은 행정구역을 늘리거나 넓히면서 경부고속도로와 아파트로 대변되는 영동 개발 등 도시계획과 신도시 개발을 매우 빠르게 진행했다.
1963년 이전까지 강남 지역은 아직 서울이 아니었다. 경기도 광주군 지역이었고, 1963년에 서울시 성동구에 편입되었다. 이후 1975년 성동구 중 한강 이남 전역(지금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강동구)이 강남구로 분구되었다.
지금은 강남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예전에는 '영등포 동쪽' 또는 영등포와 성동 중간이라는 뜻으로 '영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실제로 1970년대에 시작된 개발 계획의 정식 명칭도 '강남 개발'이 아닌 '영동 개발'이었다. 그 당시는 강북이 곧 서울이었고, 한강 이남의 광주군 사람들은 강 건너를 '서울'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강남은 말 그대로 논밭이었고 도심 외곽에 불과했다.
장마나 홍수 때면 물에 잠기기 일쑤였고, 잠원동은 누에고치를 치던 곳이었고, 양재동은 말죽을 끓여 먹이던 곳이었고, 압구정은 한명회의 정자가 있는 휴양지였다. 그런 강남에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1968년은 서울 개발의 분수령이 되는 해이다.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과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으로 안보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했다. 강북에 지나치게 많은 인구와 주요 시설이 집중되어 있어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강 다리가 끊기면 이전보다 더 큰 비극이 생길 우려가 있었다.
서울 인구를 분산시키고 유사시 피난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방안으로 강남 개발을 결정학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토지 개발과 환지 처분을 통해 땅 주인들로부터 보류지를 기부받고 체비지를 마련했다. 체비지를 판매하여 개발비용을 충당했다. 1966년 200~400원 하던 땅값은 1970년 4,500~6,000원, 1971년에는 1만 4000~1만 6,000원까지 오르니 땅 주인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더불어 공유수면매립을 통해 땅을 마련하기도 했다. 땅 주인에게 보상이 필요 없는 국가 소유의 하천이나 간척지를 메우면 땅이 만들어졌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압구정 일대의 모래를 파내 강변을 쌓고 제방을 쌓은 곳에 지은 아파트다. 반면에 반포지구는 물에 잠기는 저지대였는데, 막대한 예산을 이유로 메우지 않고 배수펌프장을 만들고 아파트를 지었다. 물에 잠기더라도 아파트 위층으로 대피하면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강남 개발은 1968년 경부고속도로 착공과 맞물려 시작됐다. 지금의 신사 · 논현 · 역삼 일대의 영동1지구는 약 1,55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이었다. 이어 1970년 11월 서울시는 대치 · 삼성 · 청담 · 압구정 일대의 영동2지구 약 1,200만 제곱미터를 개발하겠다는 계획과 봉은사 남쪽 삼성동에 당시 상공부 청사와 산하 단체를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개발 초기 사람들이 강남으로 이주를 꺼리자 정부에서는 강력한 강남 유인 정책과 강북 억제 정책을 시행했다. 서울의 중심지를 영동지구로 옮기겠다며 서울시청 영동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에 1973년부터는 종로구, 중구 일대에 상점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택지 개발을 금지했다.
강남으로 핵심 인프라를 옮기는 작업도 이어졌다. 법원과 검찰청, 관세청이 이전했다. 사대문 안의 명문 고교들은 동문의 반대에도 강제로 이전키셨다. 지하철 2호선도 왕십리에서 서소문까지의 일자선 계획은 순환선으로 바꿔 강남의 대부분 지역을 편입시켰다. 반포에 고속버스터미널을 건설하고,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을 폐쇄했다.
서울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 서울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대도시임에도 역동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도시 체계는 세계인이 선망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이 지금의 서울이라는 역사를 가지기까지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졌다. 서울에 있는 표석을 따라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는 소중한 사진 자료와 표석이 있는 장소를 별도로 기재해 여행자와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도시의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 인구의 밀도가 낮은 곳으로 서서히 팽창한다. 지금의 영등포, 성동구, 은평길 일대는 공업화와 함께 서울이 팽창한 지역이다.
서울에 주거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는 지역도 이 세 곳이다. 아직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은 지역이고, 60년대 7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져 이제는 구축과 신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지역이다.
저자는 영등포를 기점으로 근현대사의 표석을 추적한다. 영등포는 철도역이 들어서며 지역이 팽창했고, 가장 유명한 사건은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생긴 경성방직(주)이다. 영등포동, 양평동, 당산동, 도림동, 문래동 일대는 공업지역으로 팽창했고 만주사변을 일어나 군수공장이 호황을 누려 이 지역의 중요성이 더해졌다.
내년에 서울에 집을 마련해야할 수도 있는 처지라 서울의 지리에 관해 궁금하던 터라 서울의 지리와 역사를 알아가는데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방송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 나와 동명이나 지역을 이야기하면 어떤 지역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으나, 이 책을 통해 개략적인 서울의 발달사와 더불어 지역이 가지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바라건대, 내년에 서울에 집을 마련한다면 책에 나오는 표석을 찾아다니며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는 역사 탐방을 마음껏 해보고 싶다. 매번 서울 여행은 제한된 시간으로 가는 곳 위주로 가게 되는데, 서울의 넓은 지역은 근현대사의 흔적을 지닌 곳이 얼마나 많은지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추억이라는 것이 시간적, 공간적 경험을 해야 나눌 수 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서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는 지방에 거주하는 나에게는 서울의 추억을 살 수 있는 책이었다.
서울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은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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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따라 서울을 거닐다>는 제목대로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표석'에 집중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광복 이후'의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딱 광복 이후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적인 변화도 함께 짚어주며 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지명의 유래, 지형적 특징, 지리적 이점 등 고루고루 살피며 그로 인해 이 지역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서울에 가까운 경기도에 살고 있어서 주생활권은 서울인데 그래서 익숙한 곳들의 변천사를 볼 수 있어 너무 재밌더라. 특히 한양 도성의 사대문 안과 밖의 변화가 극과 극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달라서 더 흥미로웠다. 서울의 모든 곳이 친숙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 익숙한 곳이고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을 비교하며 여기가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무실이 있는 지역이 등장할 때는 더 집중해서 읽었다.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기 전의 모습을 아주 잠깐이나마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더라고.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울의 거의 대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혹은 저처럼 출근을 서울로 하며 익숙한 동네가 있다면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공동집필이라고 하면 각 장마다 서술 방식 등이 달라 흐름이 깨질 때도 있는데 이 책은 책 전체가 비슷한 서술이라서 계속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서문에서 공동집필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쓸 때까지 공동집필이라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로 매끄럽고 통일성이 있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데 벌써 4번째 시리즈라고 한다. 앞서 출간된 책들도 꼭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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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역사지도사모임 저의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 를 읽고 먼저 2015년에 시작하여 박물관, 전시관, 고궁, 공원, 한양 도성길, 둘레 길, 누리길 뿐만 아니라 학교, 도서관, 문화센터 등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전국역사지도사모임 회원 여러분들께 고맙다는 말씀 드린다. 생활 속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향유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으로 역사 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학습 자료를 개발하고 있으며, 또한 단편적인 역사 지식보다는 문화와 결합하여 시공간을 넘나들며 역사의 맥락과 당대의 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미 지난 ‘표석으로 읽는 서울’의 시리즈로 출간된‘대한제국의 한성’과 ‘일제강점기의 경성’에 이어 그 완결 편으로 광복 이후 서울 근현대사, 표석을 따라 광복 이후 서울의 변화상을 읽도록 이렇게 책을 만들어 놓는 결실을 얻고 있으니 말이다! 진정 대단한 업적이다. 관에서 해야 할 일을 동호회 회원들이 스스로 즐겁게 참여하면서 이렇게 작업할 수 있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더 훌륭한 결과물도 기대해도 되리라 확신해보며 힘찬 응원을 보낸다. 아울러 해당 기관에서도 더 획기적인 지원과 함께 전폭적인 여러 혜택도 부여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서울은 머나먼 동경의 수도였었다. 전라도 정읍의 한 시골 농촌이 고향이었던 나고 자랐던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정읍 읍내로 다녔던 60년대는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어려운 농경시절이었다. 중학교 때도 겨우 학교를 다니기 힘들 정도이다 보니 서울을 한 번 가본 바 없었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한 번 가보고 싶은 욕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돈 때문에 고등학교를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서울 용산에 철도고등학교가 있는데 국비학교라 합격하면 무료로 다닐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무조건 응시하고픈 욕심으로 담임 선생님께 우격다짐으로 말씀드렸다. 성적이 부족했지만 어차피 못가는 고등학교 원 없이 서울에 가서 고등학교 시험이나 볼 수 있도록 해주라고 사정하여 난생 처음 정읍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서 서울 용산역에 내려 한강로3가에 있는 철도고등학교에 시험에 치르러 상경한 것이다. 1971년도였고, 이 조금은 무모한 도전이 결국 합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전국에서 올라 온 뛰어난 친구들과 함께 서울 시내 학생으로서 서울 시내를 누비면서 당당하게 공부하고 활동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식으로 떠오르며 지나간다. 벌써 반세기의 세월이 지나갔다. 특히 철도고등학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철도를 이용할 때는 무료로 이용할 수가 있어 수도권을 운행하는 전동차나 전국을 운행하는 열차를 타고 많이 돌아다닐 수 있어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친구들도 서울 곳곳 친인척 집 등에 거처를 마련하여 학교로 다녔는데 대개가 지방에 대부분 올라왔기 때문에 자주들 뭉쳐 돌아 다녔던 시간들이 지금 돌아보면 소중한 시간들로 기억된다. 책에는 제1부 ‘근대적 도시화의 시작‘에서는 광복 이후 서울이 근대적 도시로 변모되는 과정을 담은 근대적 도시화의 서울 풍경을 6개의 길로 소개한다. 서울의 한 중심지로 탑골공원과 종묘 등이 있어 서울을 가면 꼭 들르는 ‘종로 길’에 모너니스트인 박인환과 김수영, 횡보 염상섭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예술의 최첨단의 중심의 한복판 ‘명동 길’에서의 명동백작과 명동 샹송 이야기, 명동 다방의 이야기는 아주 신선하였다. 나의 고등학교가 있었던 곳이어서 얼마 전 서울 갔던 길에 일부러 걸어 용산역에서부터 주변 산책을 했었는데 완전 분해되어 버려 예전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나 반가웠던 것 ‘용산 길’에서는 우리 땅이지만 미 8군 주둔으로 과거 백 년 동안 금단의 땅이었던 비밀스런 장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여의도에 비행장 이야기와 금융 허브로 불리는 한국의 맨해튼 여의도 개발 등의 한국 경제 서남부 거점 지역으로 발전한 ‘영등포 길’ 이야기도 많은 것이 새로웠다. 해방 후 초기 근대화의 시작을 엿볼 수 있고, 서울 성장의 발자취인 한강의 기적으로 가는 ‘마포 길’도 서울에 가면 꼭 새롭게 확인하고픈 지역으로 각인되었다. 학교 다닐 때 많이 드나들었던 청계천 헌책방과 신설동, 동대문 시장 등 창신동 예술가들 등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동대문 길’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곳으로 한 번 천천히 둘러보리라 다짐해본다. 제2부 ‘현대적 대도시의 건설’에서는 서울의 도시 확장과 현대적 대도시를 건설해나가는 과정을 4개의 길로 소개한다. 예전에는 서울의 끝쪽이어서 솔직히 잘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서울 서북쪽의 관문이 되는 아주 중요한 지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은평 길’이다. 구로 지역은 너무나 많이 지나다니거나 열차로 지나쳤던 곳이다. 수출산업의 메카 구로공단이 위치하고 있었고, 열차를 타고 통학을 했기 때문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해야 했던 이야기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 구로가 엄청남 변화를 가져왔다. 디지털산업단지로 변모하는 ‘구로 길’의 모습이다. 오늘날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아파트공화국이라 불리우는 강남 개발의 시대적 배경과 그 명과 암 등을 다룬 ‘강남 길’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한강 이북의 잠실과 한강 이남의 송파에서는 서울 올림픽을 치른 서울의 시그니처에서 벌어졌던 이야기의 ‘잠실 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상 모두 10개의 서울의 길의 변화된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전쟁 폐허에서 올림픽·월드컵·G20 정상회의 등을 개최한 세계적인 도시가 된 서울, 근대적 도시에서 현대적 대도시로 급변하며 상전벽해를 이룬 서울. 표석을 따라 거닐며 서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의 변화상들이다. 모두 꼼꼼하게 따져 기록하고 있어 배우고 익힐게 너무너무 많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시민들, 아니 우리 국민 모두에게 꼭 필요한 좋은 책이다. 강력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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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들을 보면 수십년, 수백년된 건물이 서 있고, 사람들은 이 건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물을 새롭게 리모델링 할때에도 외관은 그대로 유지한채 내부만 변경한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유럽의 거리를 걷다보면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의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600여년 이상 수도였으나 경복궁이나 덕수궁 등 일부 궁궐들이 과거의 모습을 말해줄뿐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건물이 많이 없어 아쉽네요.
서울은 1,000만명이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입니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었지만 지금은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거대하고 역동적인 메트로폴리스가 되었네요.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 는 현대적인 서울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으면서 쓴 책입니다.
종로나 명동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입니다. 조선과 일제시대에 상업의 중심지이면서 근대 문화가 꽃피운 곳이었네요. 최초로 전차가 다니면서 서울 구석구석으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기 시작했고, 다방에는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중에는 문학이나 예술 분야별로 주로 모이는 다방들이 달랐다고 하니 재미있네요. 오늘날처럼 인터넷에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의 다방은 정보를 교환하고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명동에는 예술극장도 세워졌는데 다행히 폐관의 위기를 넘기고 아직 있다고 하니 다음에 지나갈때 좀 더 유심히 살펴봐야 겠습니다.
영등포는 그냥 서울에 있는 구 하나로 알고 있는데 과거에는 꽤 넓은 지역이었네요. 서울의 남서지역과 경기도 일부지역까지 영등포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 새로운 시나 구가 되었습니다. 강남에는 ‘영동’ 으로 시작하는 도로나 건물들이 있는데 ‘영등포 동쪽’ 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과거 영등포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네요. 영등포에 속한 여의도는 처음에는 그냥 섬이었다가 공항이 만들어지면서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하였고 이후에는 국회의사당과 금융 기관들이 이전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서울은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의 분위기가 다른데 과거에는 강북이 서울의 중심이었으며 한강 이남은 경기도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성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기 시작하자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강남을 개발하였는데 과거에는 농사를 짓는 땅이었다가 지금은 땅값이 엄청나게 비싸고 고층 건물들이 들어선 것을 보면 정말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잠실 역시 원래는 강북이었지만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의 물길이 바뀌었고 개발을 하면서 강남에 포함되었네요. 석촌 호수는 원래 한강의 물길이 흐르는 강이었다고 하니 정말 놀랐습니다.
현재 서울의 모습이 무척 익숙하지만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네요. 이 책에는 과거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정말 서울이 이러했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네요. 서울은 빠르게 발전하면서 과거의 모든 것이 사라졌고 심지어는 문화재마저 파괴하기도 하였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래도 여기저기 흔적들이 숨어있네요. 그냥 걸어가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책을 읽고나니 한번씩 가보면서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