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면서 왜 내게만 불운은 다가오는지, 뭐 그리 잘못을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친 적도 없는데 나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 서글픈 기분은 왜 일까? 하며 보낸 시간들이 있었다. 나의 예감도 어느 정도 적중하면서 말이다. 아울러 머피의 법칙을 우겁다짐으로 끼워 넣으면서 나 자신을 합리화하며 억울해 하던 그 시절.......
사실 사람에게는 행운보다는 불운이 더 자주 찾아온다고 본다. 세상일은 다 내 뜻대로 절대 되지 않고 내가 바라던 대로,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고 내 뜻과 의도와는 달리 반대로만 달려가는 듯하다. 그래서 어쩌면 노력이란 것도 무의미 하다고 생각이 되기도하지만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런 노력마저 하지 않았다면 내게 남는 것이라곤 없어서 더욱 가슴은 허전해질게 뻔하다.
아주 시시한 일에도 내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끝을 냈을 때 내가 느끼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있다. 물론 일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작은 움직임이라도 했다라는 안도감과 자기 만족감을 통해 다음 기회에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줄이며 보다 빠르게 지름길로 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일이 훨씬 값진 경험이 되는 듯 하다.
그래서 인생에는 불운이란 것도 행운이란 것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이끌어 간다고 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게다. 행운일거라 기대했던 일도 막상 해보면 내 기대만큼의 성과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불운이라 지레짐작하며 어렵고 힘들거라 여기며 뒷걸음질쳤던 일이 오히려 술술 풀려 나름의 성과를 안겨주고 나를 성장시키고 한 단계 발전으로 이끌며 용기와 자신감을 안겨준 사례들을 보면서 내 앞에 닥친 일이 불운이든 행운이든 일단은 그 순간에 노력을 해서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끝맺음에 더 의미를 두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은 글에서 따스함이 엿보이고 주변에서 많이 느끼고 접할 수 있는 스토리들을 아름답게 표현한 점이 여기저기서 돋보인다. 남성분일 것 같은데 글에서는 여성스런 아름다움과 함께 섬세한 문장의 결에서 여성 못지 않은 감수성과 세련미에 또 한번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편한 마음과 자세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내가 살아오면서 그 시기마다 겪었던 일화들을 저절로 떠오르게 했고 그 시절의 나와 마주할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하면서 그 당시 내가 불행하다고 세상을 원망하고 가족에게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던 철없던 지난 날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면서 헛웃음이 나기도했지만 그런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있겠끔 하는 자양분이 되어준 모든 것에 새삼스레 감사함과 서툰 따스함이 나를 감싸안는다.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작은 그림들이 글을 더 한층 깊이감있게 느껴지게 만들고 더욱이 글과 잘 어우려지는 그림이라서 그림들만을 죽 살펴보는 것도 좋은 감상의 시간이 되었다.
|
|
오랜만에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우리동네 목욕탕을 찾은 나는 한달에 두번 있는 정기휴일이 왜 꼭 걸리는 거야 오 꼬질꼬질 지저분한 내 모습 그녀에게 들키지 말아야지 하면 벌써 저쪽에서 그녀가 날 꼭 어이없이 바라볼까 세상에 그 어떤 누구라도 너와 바꿀 수 없다는 걸 우린 알잖아 세상에 그 어떤 어려움도 우리 사랑을 갈라 놓을 순 없잖아 세상 모든 게 다 내 뜻과 어긋나 힘들게 말 하여도 내가 꿈꿔 온 내 사랑은 널 위해 내 뜻대로 이루고 말테야 ~~~
제 사연이냐고요? 노노노! DJ DOC 의 <머피의 법칙> 가사 일부예요. 머피의 법칙은 자신이 하려는 일이 항상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진행될 때, 점점 꼬여갈 때 사용하는 말이에요.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라는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추억의 노래였어요. 저자는 "안 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겪고 가는 듯한 인생, 그러나 그 기억들을 꺼내어 글로 남길 수 있으니, 불운조차 콘텐츠다. 결국엔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 내 경험적 자산이 되었다고 애써 위로하며, 이젠 되는 경우의 수들을 기다려 본다."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이 책은 머피의 법칙 주인공 같은 삶을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 가운데 초등학교 시절 야구의 추억과 백수 시절에 엎어진 김치통 일화가 기억에 남아요. 어떤 심정이었을지 공감되는 내용이라서 그런가봐요. 야구부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우연히 날아온 야구공을 멋지게 던졌을 뿐인데, 돌아온 건 칭찬이 아닌 꿀밤 몇 대였고, 남은 건 수치심과 미움이었다고. 저 역시 어릴 때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 몇 개 있어요. 구체적인 장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데 그때 입었던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 것 같아요.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줄 정도의 상처는 아니지만 문득 들여다보면 여전히 아프더라고요. 김치통이 엎어지는 일쯤이야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실수지만 타이밍이 문제인 것 같아요. 한없이 작아지고 쪼그라드는 마음, 그 약한 틈 안으로 엎어진 김치통이 들어온 거예요. 널브러진 김치 조각들을 보며 흐트러진 나를 마주하는 느낌, 너무 매워서 눈물 날 것 같아요.
내가 어쩌다 철학으로 글을 쓰게 됐냐고? 문단이 하도 내 소설을 안 받아 줘서, 뭐라도 써서 먹고살려다 보니, 어쩌다가... 그렇듯 발생학적으로, 열나게 깨지면서 조금씩 열리기도 한다는... (214p)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건 아니에요. 여기서 관심을 둘 단어는 '우리'인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불운이 한 사람에게만 쏟아지는 일은 없으니까, 불운이 비껴가는 삶이란 없으니까요. 우리는 똑같이 행운과 불운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으니까요. 저마다 그 타이밍과 횟수가 다를 뿐이죠.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약간의 위로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네요. 무엇보다도 제소정 작가님의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특별한 전시회를 관람한 느낌이었어요. 굉장히 독특한 그림이라서 수수께끼를 풀 듯이 한참 감상했어요. 그림 속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삶의 이야기와 함께라서 좋았어요.
|
|
세상은 이미 불운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불운’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읽어야 할까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제발 오라고 빌어도 오지 않는 행운처럼 불운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불운조차 콘텐츠다’는 말에 혹해서 책을 펴들었다. 행운이 나만 비껴가는 것 같을 때 불운으로라도 뭔가 플러스가 될 요지가 있을까 싶어서. 작가이자 편집자인 저자는 ‘내게만 일어나는 일’ 인 듯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도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 짧은 글로 불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말한다. 우산이 있지만 펴지 않고 걸어가는 것과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걸어가는 것의 차이를 해석한 대목이나 헤어져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도 안 헤어지자니 자신이 죽을 것 같은 담배 같은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어쩔 수 없다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사이에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 있고 해결책이 있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불운조차 지나고 나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라는 말로 변모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아무리 삽질 같아도 그 끝에 어떤 미래가 걸려들지 모르니 모든 순간에 성실할 것을 당부하는 이유다. 어쩌면 행운이 더 많이 작용하는 지도 모르는데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더 많이 기억하는 법이라 자신이 불운의 아이콘이라 착각하는 경우의 수가 불운의 패를 더 많이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예기치 않은 순간을 마냥 기분 나쁘게 넘기지 않고 ‘저럴 수도 있구나, 나도 저렇게 해 볼까?’ 라고 한 그 순간이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는 순간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불운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책을 쓴 것만으로도 바뀔 여지는 충분하다. 행운은 행운 그 뿐이지만 불운은 골몰하고 상념에 빠지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확실히 콘텐츠가 될 만하다. 책 사이사이의 그림들도 전반적으로 어둡고 알 수 없는 형상들이라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데 제소정 작가의 자신만의 철학이 가미되어 있음을 에필로그에서 잘 알 수 있다. 행운과 불운처럼 상반된 것들의 이중적 속성을 표현하고자 한 그림들이 보기 불편하게도 느껴지지만 작가는 그 또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직시할 수 있게 하는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과 표지그림이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일말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점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작가들이 의도한 바가 어느 정도는 통하지 않았을까 싶다. |
|
책의 표지만 봤을 때는 식물과 관련된 책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떤 책일까 더욱 궁금했는데 불운이 자라는 것을 아마도 표현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불운이라고 하면 이것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많은 불운들과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으면서 크고 작은 불운과 반대로 크고 작은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얼마나 많은 불운들이 우리와 늘 함께 하는지 말이죠. 내일이 월요일이고 출근을 해야한다는 사실조차 불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주변에 불운이 너무나도 많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들은 피식 웃음이 지어지네요. 헬스장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탈 것이 아니라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어차피 운동을 하러 온 것이 목적이기에 그냥 기분 좋게 계단을 이용하면 될텐데 말이죠. 뭐든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네요.
운동에 있어서는 책을 읽으면서 저 역시도 할말이 많아집니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할말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운동 만큼은 왜 이리 중독이 안 되는지 하는 부분에서 아주 크게 공감이 가더라고요. 웃으면서 읽었네요.
크고 작은 행운들은 그럼 나를 비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봅니다. 왜 나만 이렇게 행운이 안 오는거야 싶다가도 문득 생각해보면 그래도 소소한 행운들은 오지 않았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행운보다도 행복을 원하기에 불운보다도 불행하지 않다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내가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출발해 버린 일, 우산을 놓고 왔는데 비가 내리던 일, 내 앞에서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던 일 등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다 짐작할 수도 없지만 이런 일들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네요. 반대로 소소한 행복들을 떠올려보면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듯이 행운도 우리를 비껴가지 않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불운이 시기 적절하지 않을 때와서 우리를 곤란하게 하거나 괴롭힐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런 불운이 꼭 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살면서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불운을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들도 분명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다양한 그림들도 함께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
|
그저 인생 가는 길에 꽃잎만 좍 깔렸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불운, 이 불운이라는 불청객은 우리 갈 길에 시도때도없이 끼어듭니다. 끼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비껴가지를 않습니다. 말하자면 길막을 하고 아예 앞에 드러눕는 셈이죠. 일단, 왜 불운이 이러는지, 그 이유라도 알면 조금이나마 속이 시원합니다. 그 다음에 불운을 근원적으로 제거할 방도가 없는지 차근차근 생각을 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을지 살펴 봐야되겠는데요...
서양에는 "바로워즈(빌리는 자들)"라는 자그마한 귀신이 있어서 우리 물건을 수시로 빌려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뭘 좀 그렇게 찾으려 들면 죽어라고 눈에 안 띄다가 용무가 다 끝나면 나타나서 더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라버, 스틸러"가 아니라 "바로워"라고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쓰고 나서 돌려는 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좀 다른 말을 합니다. p27을 보면 이런 귀신(?)이 설치는 이유는 평소에 우리가 불성실해서라는 겁니다. 평소에, 좀 평소에 우리가 물건을 체계 있게, 나중에도 기억이 잘 나게끔 정돈을 해 두면 그런 일이 벌어지질 않고, 또 나중에 큰 혼란, 불편이 빚어지는 건 이런 게으름, 불성실에다가 나비 효과가 덧붙여져 아예 수습이 안 될 만큼 커진다는 뜻입니다.
노인분들은 참 당신들 이야기를 자주 하십니다. 한참을 자신 인생 역정 스토리를 털어 놓으시는데... 누가 보면 젊은이(대화 상대)가 먼저 뭘 물어 본 줄이나 착각하지만 사실 혼자서 그리 신 나게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와... 이 이야기 대체 언제 끝나나.... 저자 역시 헬스장에서 전직 수학 교사 한 분의 이야기를 그리 들어야 했습니다(p50). 그러던 어느날, 이분이 안 보이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 주어야 할 때에는 그런 고역이 또 없었으나, 막상 어느 정도 정이 든 상태에서 갑자기 안 오시니 불안한 거죠. 우리 일상에서는 그리 달갑잖게 여겼으나 어느 시점부터는 내 삶의 작은 일부가 되어버린 것들이 많습니다. 성가시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정을 붙여도 보고 작은 의의라도 부여하면, 또 모르죠, 생각지도 못한 진로를 틀어 내게 행운을 가져다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렸을 때, 혹은 성인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세상이 그리 빈틈을 보이지 않으므로, 작은 이익을 얻거나 게으름 피우려고 거짓말 하다간 그 대가를 몇 배로 치를 수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정직이 바로 최상의 책략"이라는 게 괜히 있겠습니까. 원칙대로 고지식하게 밀고나가는 게 답입니다. 그런데 어려서, 혹은 나이가 들어서도, 거짓말 한 게 요행히 안 들키고 넘어가는 일(p88)이 종종 있죠. 이때 그 거짓말로 얻은 이익이 커서가 아니라, 안 들키고 넘어갔다는 그 작은 통쾌감이 길티 플레저로 남곤 합니다. 소소한, 그저 정직하게만 살아서는 맛보지 못한 쾌감.... 저는 이런 게 나중에 큰 사달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 저런 사람은 곁에 결코 둬서는 안 되겠다 싶은 인간은, 바로 요런 데서 남들보다 더 큰 쾌감을 느끼는 부류입니다. 얻는 것도 별로 없다, 아니 잃는 바가 훨씬 큰 데도 틈만 나면 일단 훔치고 봅니다. 훔치는 그 순간의 쾌감이 워낙 커서 나중에 제 인생이 어떻게 박살날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우리 영혼에 이런 작은 습관은, 그게 아무리 작은 습관이라도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바보라서 그런 소소한 도둑질을 눈치 못 채고, 저 사람 영 아니다 싶은 걸 모르는 게 아니라 그냥 모르는 척 해주는 건데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신이 똑똑해서 남을 속여 넘겼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건 한순간입니다.
야OO트는 아주 오래된 브랜드입니다. 판매방식도 독특한데 카트를 몰고 다니는 분들은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자영업자분들입니다. 우유 대리점하고도 비슷하지만 우유는 소매점에서 살 수 있는 반면 이 상품은 냉장 카트에서만 우리가 구입할 수 있는데 의외로 "음 항상 마주칠 수 있진 않아" 싶어서 마주칠 때마다 거리에서 구매하기도 합니다. 음... 여기서 저자는 어떤 철학(p112)을 발견하는데, 작은 용기에서만 마시는 게 감질이 나서 기냥 큰 용기에다가 따라 먹고 싶다... 저자님뿐 아니라 우리들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 정도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면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엔 어느 블리스 포인트라는 게 따로 있어서 그 임계점을 넘어가면 오히려 쾌감이 감소한다는 겁니다. 적정선에서 멈출 줄 아는 건 인생의 소중한 지혜 중 하나입니다. 한 페이지 뒤에 바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나옵니다.
하우 아 유 제인? 파인 땡큐 앤드유? 주입식 교육의 폐해(p135)라고 지적되는 좋은 예이며 책에는 다른 예가 나오는데 아임 소리에 잇츠 오케이라고 답하는 대화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결례는 이쪽에서 했는데, 사과는 왜 저쪽에서 하는가?" 근데 뭐 이건, 일단 결례를 한 이쪽이 (결례를 했으니까) 먼저 사과를 하고, 또 저쪽은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하실 건 없었는데 과하게 사과를 받았으니 그 부분에 한해서 나도 사과를 한다, 뭐 이렇게 좋게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럼 사과를 받고 "음 그래, 니가 니 잘못한 줄은 아는구나, 그게 기특해서 니 사과를 받아는 주고 넘어갈게." 뭐 이러는 건 더 아니지 않겠습니까?
여튼 저자가 말하는 건 이게 포인트가 아니라 고백과 거절의 문제입니다. "관심으로 다가갔지만 이걸 그저 (단순한) 호의로만 받아들이고 작은 친절에 오해의 썰을 늘어놓기도 한다.(p134)" 여기서 전자는 먼저 말을 건 이의 큰 애정을 상대방은 그저 무심히만 여긴 경우이며, 후자는 딱 그 반대입니다. 난감하죠. "정중한 거절 역시 진심이니 누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미안합니다. -아뇨, 제가 죄송하죠"라는 대화에서, 처음의 "미안합니다"는, 고백했으나 거절 당한 사람이 하는 소리고, 뒤의 "죄송하다"는 그 거절한 사람이 정말 미안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둘 다 진심이다 이거죠. 그런데 이럴 것 같으면 둘 다 쿨하게 넘어가면 딱 좋겠으나 또 사람 감정이라는 게 아주 유치해서 그렇지를 못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좋은 약이라도 처방 받고 구간을 정해서 싹 잊는 게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영어에 laconic이라는 말이 있는데 딱 할 말만 하고 마는 그런 스타일을 가리키는 형용사입니다. 책에서는 "심장을 도려내고 싶어요라는 말에 그러세요!라는 딱 한 마디 대꾸만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어서 저자는 헤밍웨이의 글쓰기 스타일을 논하는데 저런 걸 두고 하드보일드라고 불렀죠. 사실 헤밍웨이의 작품은 번잡한 수식이 없어서 고교, 아니 중학교 영어 교재로 쓰기에도 좋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간단한 말로 천 가지 심경을 함축하는 공력이 숨었지만 그런 재주는 십억에 한 명이 부릴까 말까한 천재의 영역이며 보통 사람이 어설프게 따라할 게 결코 아닙니다. "세월은 세월대로 야속하게 흘러가고 기억은 기억대로 질기게 들러붙는다(p156)." 아마 실연의 아픔을 겪어 본 이라면 책의 이 구절이 아주 절절하게 와 닿을 듯합니다.
이 책은 민이언 작가님이 글을 쓰고 제소정 작가님의 그림이 중간중간에 나옵니다. 일러스트라기보다는 독립된 작품들을 적절한 여백에 소개하는 식인데 실제로도 작품을 찍은 사진에 가깝습니다. 제가 참 의외라고 여긴 건 pp. 218~219에 수록된 <곤죽산>이란 작품인데, 이 그림은 "시련 속에 놓여 있었던 것"이란 민 작가님 글과 함께 독자를 만납니다. "학창 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조산 운동..." 음... 곤죽산(어디 있는지는 모릅니다)도 물론 조산운동의 산물이며 신생대 3기(요즘은 용어가 바뀌어 팔레오기 네오기로 나뉘었습니다만), 혹은 4기에 만들어진지라(그렇겠죠? 모르긴 해도) 아마도 나이가 많고 완만할 것입니다. "이미 그 압력들을 견뎌 내느라 높아지고 깊어졌을 테니" 어디 그뿐입니까. 풍화작용까지 다 겪어내느라 이제는 완만하고 조신하기까지 합니다. 그림을 보십시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왜이렇게 불행한걸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거다. 흔히 '삼재' 와 '아홉수'라 그런가보다 라고 또는 액땜한거다 라고 말하지만 삼재와 아홉수 때문이라기엔 띠와 나이가 맞지 않다. 로또 1등 당첨을 꿈꾸는 요즘 내 눈에 확 띈 제목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일기장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며 느꼈던 감정들을 깔끔하고 공감가게 잘 정리한 듯 하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탈 수 있는 버스를 눈 앞에서 빨간불과 함께 놓쳤을 때,누구나 천원은 된다는 연금복권이 하나도 안맞았을 때 등 나는 삶에 있어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대학입시도 취업도 결혼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참 쉬워보였다. 숨겨진 그들의 노력은 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마냥 시기 질투 했었다. 이책을 천천히 읽으며 느낀 건 결국 불운이 나를 비껴가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마음가짐' 때문이라는거다. 같은 상황에 처해도 나만 힘든 게 아니고, 해결 방법을 찾기보다 마냥 남의 떡만 크다고 불평 불만한 나때문에 불운이 비껴가지 않은 것이다. 불확실성은 모든 가능성이란 피로도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거 보다 더 멀리 가야할 길이 있을 수 있고, 그 길에는 이정표도 없기 때문에 일단 최선을 다해 매 순간을 살아 내야 한다.
세일하는 운동복을 구매한 뒤 운동욕구가 뿜뿜 올라오며 엘레베이터를 이용해 찾았던 헬스장을 바로 옆 계단을 통해 이용해 도착하며 생각하는 대목이 공감 간다. 무엇을 함에 있어서 준비하는 기간이 너무 길고 막상 시작하면 의지박약으로 시작과 동시에 포기했던게 벌써 몇개인지.일이바빠서 피곤하네 라는 핑계로 접어둔 것들이 몇개인지. 이 계기로 회피리스트를 찬찬히 적어보게 되었다. 몇 개나 될까 궁금해서 적어봤는데 ...당장 정신차리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야 겠다. 당시로선 최선이었던,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한편으론 귀찮은 무언가를 계속 회피하고 있었던 순간들은 아니었을까? 앞으로 계속 계단을 오르면서, 내가 무엇을 회피하고 있었던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 P.46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삽화와 글을 공유하며 마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 입니다. #에세이 #불운이우리를비껴가지않는이유 |
|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반응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삶에 주목하라고 조언은 하지만 막상 자신의 일로 다양한 불행이나 부정적인 현상이 밀려온다면, 그 누구도 쉽게 버티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타락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멀쩡했던 사람들 또한 부정적인 인간상으로 재탄생 시키며 더 악순환적인 모습과 결과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에 이 책은 삶에 대해 어떤 형태로 바라보며 다양한 현상이나 반응에 대해 때로는 받아들이거나, 더 강한 마인드로 극복해야 하는지, 책에서는 그림과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 같은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늘 불운하다고 믿는 사람, 불행과 좌절의 연속인 인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존재들이며, 나라는 존재 자체는 포기해도 절대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존재들은 또 무엇인지, 과거의 시간, 현재가치,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 하며 판단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에세이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런 시행착오로 볼 수도 있고, 누군가의 경험을 통해 배우며 우리는 더 성숙한 자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의 의미가 결코 가볍게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물론 일상적인 모습이나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상상력, 창의력 등을 표현해도 무방하며 현실적인 삶을 그리고자 한다면 어떤 형태로 내가 가진 감정이나 느낌을 사회와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해서도 사례와 사람을 중심으로 잘 표현한 책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불운이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의 결과나 이미지보다는 긍정의 힘이 무엇이며, 왜 사람들은 상처나 아픔을 통해 힘들어 하며, 또한 이런 과정을 극복한 사람들은 왜 공통적으로 긍정적인 삶과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도 판단해 보자.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 늘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높은 곳을 바라보거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바라는 분들까지, 그 어떤 과정도 대가없이 얻을 수 없고, 어떤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그런 것들도 존재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삶을 포기할 수 없기에, 그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살고싶기에,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인생 의미나 삶의 가치를 생각하며 나아가야 하는지, 책을 통해 이 점에 대해서도 진지한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해 보자.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소소한 삶의 고백,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는 가벼운 감정과 마음 등 저마다의 이유는 있겠으나,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 자세히 표현하고 있는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
|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에세이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 ‘하늘이시여! 왜 하필 저예요?’ ‘세상이 어찌 내게 이래?’ 내 인생의 단면인 양, ‘또’ 나를 실망과 절망으로 몰아붙이는 삶의 순간들. 절실히 바랄 때는 꼭 나를 비껴가고, 간절히 피하고 싶을 때는 꼭 내가 걸려들었던 기억. 불운이 지닌 속성 중 하나가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가 그 ‘나’를 겪고 산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의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불운만큼이나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다가와서 부딪는 완벽도 없지 않은가. 우리가 불운을 피해갈 수 없는 논리적 이유. 저자는 불운에 관한 거시적이고도 ... book.naver.com
일어난 모든 일을 원하라 -니체
삽화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있는 책 블로거인 저자가 블로그에 적어놓았던 글들을 책으로 엮어냈다 호흡이 짧게 진행되어 어디서부터 읽어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 장 별 소제목들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들이다 노래 제목도 있고 가사도 있다 7080세대에겐 익숙하지만 10대부터는 생전 처음 듣는 말들도 많다 어른을 위한 책이랄까... 그 시절엔 그랬었지... 라는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다 다정하진 않지만 익숙하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맞아 그랬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하고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았던 책이었다 소소하지만 세심하게 표현한 글들이 다정한 친구와 이야기하는 느낌이어서 너무 좋았다 작가의 다양한 지식과 언어유희, 사유와 성찰, 삶에 대한 통찰이 읽는 재미를 풍부하게 해준다
내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혹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들을 기록해 본다.
(언어의 채도) 평소에 내가 생각해왔던 일들이 작가의 글로 표현된 것을 보고 생각하고 글 쓰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램프의 진희) 적당한 유머와 욕설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초짜의 의외성) 초짜의 의외성을 분석해놓은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평소에 흔히 하는 말들을 이리 분석해놓으니 아하 딱 맞는 분석이네~~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더라
(쓸모없음의 쓸모) 쓸모없음이 쓸모있음으로 변신하는 마법의 순간들
(사슴과 물거울) 그러게 그 사람이 누구일 줄 알고 어떤 사람이 될 줄 알고 함부로 대하는가
260P (꽃과 불꽃)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반전에 깜짝 놀래고 뒷부분의 이야기들에 공감했다
(억울한 손오공) 서유기와 손오공을 좋아한다 그래서 더 반가웠던 글
오늘도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에세이
|
|
살아오면서 느끼지만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와 "난 운이 나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두 부류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로 삶이 편안한 사람들이고, 반대의 입장을 보이는 사람은 삶을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고 있어 그런지 경제적 상황과 상당히 밀접한 것 같다. 좋은 직장, 좋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긍정적이고 반대로 좋은 직장도 아니고, 사회적 위치도 확보하지 못한 채 매일 매일 삶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이다. 즉 철학적이고 인문학적 접근의 문제를 경제적 문제로 전환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질문 자제가 '우문'일지 모른다.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근거로 판단하는 사람들이니 '우문현답'일 수 있겠다. 그러나 철학이나 인문학적 사고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긍정적 사고 방식과 생각 방법을 제기한다. 그래야 답에 가까이 갈 기회가 훨씬 많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의 질문은 훨씬 구체적이어서 답변하기 쉽다. "당신의 경제 상황으로 볼 때 어느 계층이라고 생각하느냐"이다. 자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를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답에 접근해 간다.
그러나 철학자나 인문학자들은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 책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저자가 꽤 비관적인 성격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저자는 부제 「던져진 존재들을 위한 위로」를 통해 독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하늘이시여! 왜 하필 저예요?’ ‘세상이 어찌 내게 이래?’ 내 인생의 단면인 양, ‘또’ 나를 실망과 절망으로 몰아붙이는 삶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절실히 바랄 때는 꼭 나를 비껴가고, 간절히 피하고 싶을 때는 꼭 내가 걸려들었던 기억도 말한다. 불운이 지닌 속성 중 하나가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가 그 ‘나’를 겪고 산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의 의미이기도 하다며 독자들의 '예스' 답변을 요구하는 것으로 읽힌다. 또한 불운만큼이나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다가와서 부딪는 완벽도 없지 않은가?고 독자들의 확신을 끌어내려 한다. 우리가 불운을 피해갈 수 없는 논리적 이유를 대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불운에 관한 거시적이고도 현학적인 담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신변잡기적 불운 속에 깃든 성찰을 담은 가벼운 문체, 그 이상을 생각해 보게끔 하는 알레고리가 판화 작품들과 어우러진다.
돌아보면 살아온 시간들이 다 개연적인 것도 아니다. 독자도 그렇게 동의한다. 우연이란 게 삶을 결정 짓는 일이 한두 개인가? 또 그런 게 삶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 일을 왜 겪어야 했는지, 혹은 왜 그토록 비껴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어찌 다 일일이 해명하고 살 수 없을 터다. 어쩌면 그 해명되지 않은 시간의 토대 위에 정립되는 의미들인지도 모르고, 지금은 알 수 없는 것들이 먼 훗날에 해명이 되기를 바라고 살아갈 뿐이다. 아니 어쩌면 해명되지 않고 묻히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불운을 통해 재정비한 시간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 불운이 아니었던들 내게서 가능하지 않았을 것들이 많았다는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불운조차 콘텐츠라고 말하는 저자의 깊은 뜻에 아직 접근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세상의 기만과 세월의 장난으로 둘러가고 돌아가는 이 미로와 같은 여정이 그것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푸시킨의 시가 생각난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철학자 하이데거을 소환해 책의 성격을 설명한다. 하이데거는 독일의 철학자로 그의 존재론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고, 존재를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인간의 존재, 즉 현존재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현존재는 자기의 존재를 이해하고, 다른 것과 관계있는 '관심'으로서의 존재이며, 이 관심이 자기가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에 직면하여 유한적인 시간성 속에 있다는 것이 명확히 되어 본래의 자기를 깨닫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존'인 인간 존재는 '무'로 돌아가는 존재이며, 그 존재 방식은 '불안'이라는 것이다. 이 불안에 의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 전체로서 나타나게 되는 결국 무매개(無媒介)로 전체로서 초월하게 되며, 일상성으로부터 탈각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인간의 존재 방식이 그가 말하는 '세계-내-존재'이며, 인간 존재의 근본적 성격을 이룬다고 이론을 정립한 실존주의를 확립했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주제이기도 한, 일상성에 은폐되어 있는 비일상성에 관한 이야기, 그는 그것을 진리적 성격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너무 둔감해져 있는 타성의 시선 끝에 맺힌 일상성이 진리를 은폐한다는 것. 그런 일상성의 관성을 벗어나는 자각의 순간, 그전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낯설게 보기'가 가능한다는 것. 예술가 분들이 이런 일상 속에 숨겨진 비일상성을 찾아내는 경우라고 언급한다.
저자는 이 책이 그런 예술성을 담지한 단상의 기록들인지는 저자 스스로 품평할 일은 아니지만, 일상 속에 자리한 흔한 풍경과 상황 속에서, 우리가 일상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고민해본 흔적들이다고 말한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으로부터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곤 한다. 때론 멀고도 험난한 여정을 통해 깨닫는, 이미 모르고 있지 않았던, 그러나 미처 알지 못했던 그 평범한 진리라는 것. 파랑새를 곁에 두고서도,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1908년 벨기에의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희곡(독자 주). 저자의 말을 되씹어봐도 철학 지식마저 부족한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읽고 또 읽으면 저자가 말하려는 의미에 근처라도 접근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읽어나간다. 10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단초를 발견한다. '하늘과 빨래집게'란 소제목에 달린 글이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기다려 낼 수밖에 없는 시간들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존재의미다. 당신이 유용해서 사랑하는 건 아닐 테니까. 아니 어쩌면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언제나 유용한 당신인지도 모르고..."
사주학에서 설명하는 인간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행운과 불운의 총량이 비등비등하다고 한다. 행운만 잇대는 사람도 없고, 불운만 덧대는 사람도 없다. 보다 큰 행운과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때론 먼 바다로 나아가야 할 때도 있고, 때론 바다가 건네는 무료함 혹은 격렬함과의 싸움도 필요하다. 꺾이면 꺾이는 대로, 방황하면 방황하는 대로, 세상은 좌절과 방황 그 이후 ‘어딘가’와 ‘언젠가’에 우리를 위한 양분을 숨겨 두고 있다. 그도 꺾여 볼 만큼 꺾여 보고, 방황할 만큼 방황해 본 노력들이나 가닿을 수 있는 지점이며 시점이라는 것. 그로부터 열리는 미래도 있을 터, 새로이 시작될 미래가 깃들어 있는 오늘의 불운인지도…. 그렇다면 인생 전체의 시간을 놓고 봤을 때, ‘불운’의 결론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불운에 관한 단상들을 모은 한 권의 책은, 그렇듯 불운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고민해 본 흔적들이다. 저자의 '불운'은 불운이 아니다. 불운은 불운을 아는 순간 불운이 아니다. 저자는 불운을 콘텐츠라고 책에서 이미 말했다. 그에게 닥치는 모든 불운은 이제 불운이 아니다. 매순간 불운을 인지한다는 것은 불운과는 거리가 멀다. 화가 제소정과의 콜라보를 이뤄 '읽을 많한 책' 한 권 썼으니 그는 이미 행운의 아이콘이 아닌가.
어느 순간이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모르는 일이기에, 일단 최선을 다해 보며 매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결을 거스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거슬러 보다가도, 또 되어 가는 대로의 결에 따라 다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듯 불확실성은 모든 가능성이란 피로도이기도 하다.(p.302)
저자 : 민이언 작가 그리고 편집자. 안 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겪고 가는 듯한 인생. 그러나 그 기억들을 꺼내어 글로 남길 수 있으니, 불운조차 콘텐츠다. 결국엔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 내 경험적 자산이 되었다고 애써 위로하며, 이젠 되는 경우의 수들을 기다려 본다.
그림 : 제소정 때로 마음의 형상을 알 수 없어 끝도 없이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그 풍경과 서사를 그림과 글로 해소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는 생각중독자. 생각과 고민이 많다는 것이 불만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그 몰입을 즐기고 무의식을 끌어올리며 그 에너지를 창작에 활용한다. 자연스럽지만 조심스럽게, 과감하지만 유쾌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내가 행해온 삶의 위로를 건네고 싶다. 각자의 심리적 풍경 안에서 삶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풀어가는 재미를 경험하기를 바라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