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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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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고 장광설로 유명한 W.G.제발트의 대표적인 책. 이 책은 그의 인장이 깊게 묻혀 있다. 인물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형식이 그렇다. 어떤 문장은 몇줄에 걸쳐 이어지기도 한다. 그가 깊게 내쉬는 날숨이 그의 내면을 담배연기 가득한 방처럼 깊이 채운다. 중간 중간 설명을 부연하는 흑백 그림들이 전시된다. 마치 맥시멀리즘 소설가들의 기법 같다. 그의 지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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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고 장광설로 유명한 W.G.제발트의 대표적인 책. 이 책은 그의 인장이 깊게 묻혀 있다. 인물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형식이 그렇다. 어떤 문장은 몇줄에 걸쳐 이어지기도 한다. 그가 깊게 내쉬는 날숨이 그의 내면을 담배연기 가득한 방처럼 깊이 채운다. 중간 중간 설명을 부연하는 흑백 그림들이 전시된다. 마치 맥시멀리즘 소설가들의 기법 같다. 그의 지식은 정말 광범위하다. 특히 건축이 그렇다. 건축을 묘사하는 문체가 일품이다.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 끝에 찾아오는 기묘한 감동이 있다.
t******8 2020.01.1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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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 망각 저편의 자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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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 나오는 소설들 가운데 경의를 표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내게는 아우스터리츠가 그러하다. ‘오늘날에도 위대한 문학이 여전히 가능한가? 고상한 문학 행위란 과연 어떻게 보일까? 독자들은 이에 대한 대답을 W.C 제발트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수전 손택의 당시 평가는 여전히 지금도 그러하다고 나 역시 공감한다. 물론 그 근거는 다를 수 있겠는데, 내게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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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져 나오는 소설들 가운데 경의를 표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내게는 아우스터리츠가 그러하다. ‘오늘날에도 위대한 문학이 여전히 가능한가? 고상한 문학 행위란 과연 어떻게 보일까? 독자들은 이에 대한 대답을 W.C 제발트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수전 손택의 당시 평가는 여전히 지금도 그러하다고 나 역시 공감한다. 물론 그 근거는 다를 수 있겠는데, 내게는 그것이 인간의 고귀한 가치 가운데 하나인 자유를 작가만의 고유한 예술성으로 버무려 감동적으로 주조해 놓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체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무명의 화자가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여행 중 중앙역 바로 옆에 있는 녹투라마 동물원에 들러 동물들을 구경하고, 중앙역 대합실에 들렀다가 아우스터리츠라는 인물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그가 건축에 대한 놀라운 전문지식을 소유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이후 그와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와 같은 만남은 20년 후 런던과 프랑스로 이어지면서까지 관계가 유지되는데, 그러는 동안 그가 런던의 미술사학과에 교직을 가지고 있으며, 어렸을 때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9년 가을에 영국의 구조단체가 벌인 유대 어린이 호송작전을 통해 프라하에서 영국의 웨일즈 지방의 선교사 집으로 입양 가면서 부모와 단절되었고, 이후 부모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유모 벨라를 만나 과거의 일부 정보를 알게 되고, 마리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을 느끼고,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그녀와 헤어지게 되고, 이후 어머니는 체코의 테레진 수용소에서 사망했으며, 아버지는 프랑스의 구르스 수용소에 수용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후 아우스터리츠는 자신의 런던 집 열쇠를 화자에게 건넨 후 아버지와 마리를 찾으러가겠다며 작별인사를 하고, 화자는 안트베르펜의 녹투라마와 브렌동크 요새를 다시 방문하러 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하지만 작품을 떠받치는 밑돌들은 방대하고, 내용의 연결 또한 현재와 과거를 뜀토끼처럼 왕래하고 있어, 옴니버스 방식의 리뷰를 남길 수밖에 없다.

 

  작품 전체는 긴 묘사와 이중 설명으로 이루어진 문장들로 구축되어 있는데, 심지어는 한 문장이 8페이지(259-266)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현격히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런 문장들로 써나간 것이 내게는 작가의 의도적인 목적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읽다가 보면 끊임없이 대상을 묘사하고 이중 설명하여 대상을 둘러싼 분량의 크기가 확대됨으로써, 지속적으로 둘러싸는 거미줄에 꽁꽁 묵이면서 외양은 점점 커지고 사로잡힌 곤충은 점점 왜소해지는 것처럼, 그 대상이 조그맣게 축소되는 현상이 야기되는데, 이는 아우스터리츠를 비롯한 당시의 유대인들을 삶의 대부분을 은폐된 덤불 속에서 살다가 짧은 생명을 마치는 미시세계의 생명체로 끌어내려 나방과 풍뎅이와 박쥐와 너구리 등과 동일시하고, 동시에 미시세계의 생명체들을 인간들이 사는 거시세계로 끌어올려 인간과 동일화함으로써, 미시세계 동물들의 죽음처럼 나치에게 죽어가는 인간의 가치를 왜소화하는 작용을 하게 되고, 이로써 우생학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나치의 잔인성을 부각시킨다. 그런가 하면 세밀한 묘사와 중층적 설명으로 인해 대상이 보다 구체화되고 정밀해짐으로써, 그 대상이 명확해지는 현상, 즉 나치에 의해 그 지위를 박탈당한 채 벌레처럼 축소된 존재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작용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술전략은 가해자인 독일국민의 의식 역시 다중적인 인간의식으로부터 박탈하여 국가사회주의라는 관념만으로 단일화함으로써 역시 인간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려 나방화하는데, 나치가 세계인들에게 저지른 죄뿐만 아니라, 자국 국민들의 의식하락 또한 유발한 이중의 죄에 대해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이러한 효과는 비단 작품 내부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까지 확대된다. 문장을 읽다가 보면 얽히고설킨 문장자체의 전체내용이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사라지고, 그래서 다시 읽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로 이 지점이 독자 또한 인간의 지위로부터 박탈되어 나방 같은 미시적 생명체로 변한 기분을 체감하게 하여 당시 나방이나 여타 동물처럼 변해 버린 유대인의 감정을 대리 체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는 8페이지에 달하는 문장을 읽다가 보면 글을 읽는 자기 자신이 먼지처럼 해체되어 사라져 버린 듯한 기분까지 느끼는데, 이를 통해 강제수용소의 화장로에서 한 줌 재로 변해 버린 유대인의 상태를 간접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소설은 녹투라마 동물원으로 시작해 녹투라마 동물원으로 끝나는 수미상관적 전형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렇다면 제발트는 왜 작품의 도입부와 결말부를 녹투라마 동물원으로 설정했던 것일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읽으면, 녹투라마 동물원이 작게는 세계 곳곳으로부터 본연의 삶을 박탈당한 채 녹투라마로 옮겨져 온 동물들처럼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9년 가을에 영국의 구조단체가 벌인 유대 어린이 호송작전을 통해 프라하에서 영국의 웨일즈 지방의 선교사 집으로 입양 갔던 아우스터리츠가 어린 시절을 살았던 목사관 공간이자, 그렇게 뿌리 뽑힌 채 낯선 공간에서 살아야 했던 그가 그 공간의 동물들과 다를 바 없음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고, 크게는 당시 나치에 의해 게토에 갇혀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았던 유대인과 나아가 나치의 침략으로 자유를 잃었던 유럽인들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보다 크게는 약간의 추리력을 더해 볼 때 각종 전자기기의 그물망에 갇혀 스스로 기억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한 채 의족에 기대어 살 듯 기계의 기억력에 의지한 채 사는 오늘날의 인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상징성을 띤 녹투라마 동물원 공간이 자유박탈로 인한 정체성 상실과 회복이라는 전체 주제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진다.

 

  <내 눈이 인공적인 어스름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리고 판유리 뒤에서 창백한 달빛을 받으며 몽롱한 삶을 이어가는 여러 동물들 이집트나 고비 사막에서 데려온 박쥐와 날쥐들, 벨기에 산 고슴도치, 수리부엉이와 올빼미, 오스트레일리아 산 주머니 쥐, 담비, 산쥐, 그리고 원숭이들이었을 것이다.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북미산 너구리로, 나는 그 녀석이 작은 물가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시종 똑같은 사과 조각을 씻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했는데, 분명히 녀석은 아무 특별한 이유도 없는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빠져든 이 잘못된 세상에서 빠져 나오려는 것 같았다. 그밖에 녹투라마에 사는 동물들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유난히 큰 눈과 꼼짝하지 않는, 탐구하는 듯한 눈빛을 가진 몇몇 동물들로, 8

 

  위에 언급된 동물들은 모두 아우스터리츠로 대체해 읽어도 되는 동물들이고, 특히 자신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동물원으로 빠져든 너구리가 그러한데, 너구리가 시종 똑같은 사과 조각을 씻는 행위를 잘못 빠져든 세상에서 빠져나오려는 것 같다고 보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프라하에서 영국으로 실려 온 아우스터리츠가 이후 자신의 흔적을 찾아 유랑하는 행위와 유비된다.

  이어서 안트베르펜 중앙역 대합실이 나오는데, 이곳 역시 제2의 녹투라마와 같은 곳으로, 그곳의 여행객들이나 사물들이나, 그곳에서 화자가 만나게 되는 아우스터리츠는 모두 녹투라마 동물원의 동물들이나 그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대상들이나 다를 바 없다.

 

  <온통 푸른색 녹이 뒤덮인 흑인 소년상을 보고 매우 놀랐다. 이 소년은 아프리카 동물 세계와 원주민 세계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지하세계 같은 어스름이 대합실을 채웠으며, 대합실 안은 몇 명의 여행객이 서로 멀리 떨어진 채 움직이지 않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녹투라마 안에 거주하던 들여우, 뜀토끼, 햄스터 같은 눈에 띄게 작은 종의 동물들과 비슷하게, 이 여행객들은 특별히 높은 대합실 천장 때문인지, 아니면 점점 짙어 가는 어둠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작아 보였고,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이 사람들은 숫자가 감소했거나 자신의 고향에서 추방되거나 몰락한 종족의 마지막 후예로, 전체 가운데 그들만이 살아남았고, 그 때문에 동물원의 동물들과 똑같이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10-11

 

  여기서 온통 푸른색 녹이 뒤덮인 흑인 소년상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살아온 아우스터리츠의 관념적 모습으로 바꾸어 읽을 수 있고, 지하세계 같은 어스름은 아우스터리츠가 입양된 일라이어스 목사관의 이미지와 등치할 수 있으며, 고향에서 추방되거나 몰락한 종족의 마지막 후예와 같고,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여행객들은 들여우, 뜀토끼, 햄스터 같은 녹투라마 안의 동물들과 유비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히 높은 대합실 천장 때문인지, 점점 짙어 가는 어둠 때문인지 어쩐지 작아 보이는 여행객들은, 미리 조금 말하자면, 나치의 만행으로 인간의 지위로부터 녹투라마의 작은 동물들이나 나중에 나오는 나방, 풍뎅이, 거미, 박쥐와도 같은 곤충의 지위로 의식이 축소화된, 당시의 아우스터리츠와 같이 수송열차로 옮겨진 유대인 아이들과 게토에 갇힌 유대인과 나치의 침략으로 자유를 빼앗긴 유럽인들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기이하게 곱슬거리는 금발을 한 청년 그 밖의 여행객들과 다른 점은 유독 그만이 무심하게 앞을 응시하지 않고, 도안과 스케치에 몰두해 있었다는 것으로, 뭔가를 그리지 않을 때 그의 시선은 종종 창문들의 연결선으로, 홈이 팬 벽기둥과 다른 부분들, 공간 건축의 부분들과 세부적인 것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11

 

  이 대목에서 스케치와 도안에 몰두해 있는 아우스터리츠는 녹투라마 동물원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시종 똑같은 사과 조각을 씻는 너구리와 비견되고, 종종 창문들의 연결선으로, 홈이 팬 벽기둥과 다른 부분들, 공간 건축의 부분들과 세부적인 것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아우스터리츠의 시선은 유난히 큰 눈과 꼼짝하지 않는, 탐구하는 듯한 눈빛을 가진 몇몇 동물의 시선과 동일시된다. 이와 같은 동일시는 이어지는 안트베르펜 중앙역 내의 레스토랑의 인물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전체 구조가 거울에 비친 상처럼 대합실과 닮은 뷔페 공간에서 고독하게 페르네트를 마시는 한 남자와, 카운터 뒤에 놓인 바의 높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완전히 몰입한 채 집중해서 줄로 손톱을 갈고 있는 마담. 12

 

  여기서 고독하게 페르네트를 마시는 남자나 줄로 손톱을 갈고 있는 마담은 녹투라마의 너구리나 도안과 스케치에 몰두해 있는 아우스터리츠와 치환해도 수납이 되고, 녹투라마와 안트베르펜 중앙역 대합실과 뷔페가 거울에 비친 상에 의해 같은 공간이 되며, 나아가 모든 여행자의 움직임이 감시당하고 행동 방식을 맞추게 하는 중앙역 시계(15)에 의해서도 유대인들이 갇혀 살았던 게토와도 같게 되고, 그렇게 같아진 녹투라마와도 같은 공간의 내부에서 살다가 이후 죽어간 동물들은 뷔페 거울의 제조과정에 의해, <그가 걸어가면서 다시 한 번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거울 표면을 올려다보며, 수은과 청산염의 증기를 흡입한 결과 해롭고 치명적인 직무를 요구하는 그러한 거울 제조시기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는지 아느냐고, (17)>, 나치의 가스실에서 죽어간 유대인들과 다시 동일시된다. 그런가 하면 소설의 도입부에 나온 이 거울은 녹투라마 동물들을 대합실 여행객들로, 피해자인 수송열차를 탔던 유대인 아이들과 전체 유대인들로, 가해자인 독일인들로, 그리고 그들을 역으로 녹투라마의 동물들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 거울에 의해 다시 한 번 이 소설이 녹투라마 동물원으로 시작해 녹투라마 동물원으로 끝나는 수미상관적 전형으로 구성된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우스터리츠의 뿌리 뽑힌 삶은 입양되어간 목사관의 양아버지 일라이어스의 배경을 통해 다시 한 번 강조된다. 물론 개인을 사회화하면 프라하에 진주한 독일군에 의해 가진 모든 재산을 빼앗긴 채 게토나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전체 유대인으로 확대되므로, 그에 대한 장면으로도 읽힌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라이어스는 마차를 호수 가장자리에 세우고 제방 둑 한가운데까지 나를 데리고 간 뒤, 검은 물 아래 족히 100피트는 될 만큼 깊은 곳에 놓여 있을 자기 부모의 집에 대해, 그리고 부모의 집뿐만 아니라 적어도 40가구는 되는 다른 집들과 농장, 예루살렘의 성 요한 교회와 세 개의 예배당, 그리고 세 개의 맥주집이 댐이 완공된 1888년 가을 이후 기이하게도 모두 홍수에 잠겼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설교자가 바이러니의 제방댐 위에서 의도적이었든 부주의에서든 간에 내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게 한 순간, 다른 사람들 모두, 그의 부모와 형제들, 일가친척들, 이웃집 사람들과 나머지 마을 주민들이 그 아래 깊은 곳에서 계속해서 눈을 크게 뜬 채 말은 할 수 없이 집 안에 앉아 있거나 골목을 돌아다니는 동안 의인인 그는 레인딘의 홍수 참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처럼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59-60

 

  일라이어스 역시 고향을 상실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혼자 살아남은 자처럼 보인다는 느낌에서 아우스터리츠의 분신으로도 읽힌다. 왜냐하면 이 장면에서 일라이어스가 살았던 레인딘 마을은 아우스터리츠가 살았던 프라하이고, 수몰된 가구들은 프라하의 유대인들이며, 홍수는 진주해온 독일군에 대한 상징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히는 건 그런 상징으로 쓴 것이 아니라면 이와 같은 장면은 사실 독자가 알 필요도 없는 것이고, 딱히 다른 이유로는 굳이 이 장면을 삽입해 놓은 의미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래 예에서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자연사적, 곤충학적, 건축학적, 식물학적, 어류학적, 원예학적인 지식들에 의해 나열되는 구체적 사물들은 모두 나치의 범죄로 희생된 무명의 인간들에 대한 이체된 존재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밖에도 안드로메다 별장의 거의 모든 공간에는 일종의 자연물 진열대와 부분적으로는 유리를 끼운 많은 서랍이 달린 상자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거의 공 모양의 앵무새 알들이 수백 개 진열되어 있었고, 조개 수집, 화석 수집, 풍뎅이와 나비 수집, 포르말린에 담긴 발 없는 도마뱀, 살무사와 도마뱀, 달팽이집, 불가사리, 가재와 게, 나뭇잎과 꽃잎과 풀 들이 들어 있는 커다란 식물 표본 상자들이 있었지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을 계속했다. 95

 

  한편, 안트베르펜 중앙역과 이어서 나오는 브렌동크 요새를 비롯하여 이후 지속적으로 나오는 브뤼셀 법원건물, 그레이트 이스턴 호텔, 카르멜리츠카 문헌보관소, 테레진 수용소, 빌소노바 중앙역, 메종말포르 수의학 박물관, 살페트리에 병원, 프랑수아 모리아크역 국립도서관 등의 건축물에 관한 아우스터리츠의 전문적인 지식과 공간에 대한 뛰어난 지각능력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매개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그 건축물들 역시 부분적으로는 녹투라마 공간과 다를 바 없고, 그래서 그 안의 동물들처럼 아우스터리츠가 건축물을 방문할 때면 나치의 만행과 프라하로부터 이탈되고 분리되면서 황폐해진 현재의 의식상태가 주변상황의 풍경이나 분위기를 통해 조명되곤 한다.

 

  작품에는 나방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 나방은 작가가 이 작품의 착상에 이르게 한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먼저 가해자인 나치 당시 독일 국민의 상징으로 내게 읽힌 장면은 다음과 같다.

 

  <어둠이 찾아들자마자 우리는 곧 안드로메다 별장에서 한참 떨어진 언덕에 앉아 있었는데, 우리 뒤로는 더 높은 언덕들이, 그리고 앞으로는 거대한 어둠이 바다 위로 펼쳐져 있었고, 알폰소가 가장자리에 헤더관목이 자라난 평평한 웅덩이 속에 백열등을 세워 놓고 불을 붙이자, 올라오는 동안에는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한 밤나방들이 마치 무에서 나온 것처럼 무리를 지어 나와 수천 가지 궁형과 나선형과 줄무늬를 이루거나, 눈송이처럼 불빛 주변으로 소리 없는 흐름을 이루고, 다른 녀석들은 이미 날개를 파닥이며 램프 밑에 펼쳐 둔 아마포 위로 가거나 세찬 회전 운동으로 힘이 빠져 알폰소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궤짝에 넣어둔 잿빛 달걀 상자에 깊숙이 내려앉았어요. 알폰소는 이 모든 이상야릇한 피조물들은 각자 자신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녀석들은 오리나무 밑에서만 살고, 다른 것들은 뜨거운 바위 언덕이나 좁은 가축 통로나 늪에 산다고 말해 주었지요. 그들의 생애에서 이미 지나간 유충 상태에서는 개밀 뿌리든, 갯버들 잎사귀든, 매자나무나 시든 나무딸기 잎이든 간에 모두가 오로지 한 가지 먹이만으로 영양을 공급받는데, 거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항상 선택한 먹이만 먹는 반면, 나방들은 살아 있는 동안 더 이상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생식이란 과업을 가능하면 빨리 완수하는 것만 생각한다고 알폰소가 말했지요. 나방들은 아주 이따금 갈증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밤에 이슬이 내리지 않는 건기 동안에는 마치 한 덩어리의 구름처럼 함께 일어나서 가까운 강이나 냇가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흐르는 물에 내려앉으려고 애쓰는 동안 많은 수가 익사한다고 말했지요. 102-104

 

  이 장면에서 나방의 유충들은 모두가 오로지 한 가지 먹이만으로 영양을 공급받고, 거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항상 선택한 먹이만 먹고, 부화한 나방들은 생식작용만 하다가 한 덩어리를 이루어 구름처럼 일어나서 냇가를 찾아가 익사하는데, 이는 오로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 이념 하나만을 주입받으면서 성장하는 나치 당시 독일의 어린이들과, 그 이념을 위해 오로지 생식과 유럽의 나치화라는 목적에 전투원으로 희생되는 용도로만 기능하는 독일성인들에 대한 상징으로 읽힌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려져 나방화된 독일국민들인 것이다. 이렇게 떼를 이룬 채 어둠 속에서 빛을 따라 날아다니는 나방의 이미지를 인간화하면 바로 다음 장면처럼 나치 당시의 독일국민이 된다.

 

  <그들은 모두에게 공통되는 비극적 전사(前史)가 히틀러와 헤스와 히믈러에 사로잡혀 전 민족의 영혼을 내부 가장 깊숙한 곳까지 흔들어 놓는 장송곡의 울림에 맞춰 실처럼 구불거리는 좁은 통로를 지나 유동적이지 못한 독일적 육체만으로 이루어진 종대와 중대로 된 새로운 국가 권력에서부터 걸어 나오는 사자(死者) 숭배의 예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고 해요. 사람들은 거대하고 불가사의하게 흔들리는 깃발의 숲, 횃불의 불빛 속에서 조국을 위해 스스로를 죽음에 바친 전사들이 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뿐 아니라, 위에서 조망하면 아침 여명에 지평선까지 펼쳐진 흰 천막의 도시를, 그 도시로부터 약간 밝아져, 몇 명씩 짝을 짓거나 작은 무리를 이룬 독일인들이 나와서 침묵하며 점점 더 좁게 연결되는 대열 속에서 마치 높은 분의 부름을 좇아가는 것처럼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광야에서의 오랜 세월 후에 마침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것 같았다고 막시밀리안이 전했다고 베라는 말했어요. 187-188

 

  다음은 피해자인 유대인의 상징으로 읽힌 장면이다.

 

  <기온이 높은 몇 달 동안에는 우리 집 뒤에 있는 작은 정원에서부터 길을 잃고 나방들이 내 쪽으로 날아오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지요.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보면 그들이 벽 어딘가에 여전히 붙어 있는 것을 보지요. 그것을 조심스럽게 밖으로 보내 주지 않는 이상 마지막 숨결이 끊어질 때까지 꼼짝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내 생각으로는 녀석들은 자기들이 잘못 날아왔음을 아는 것 같아요. 녀석들이 죽음의 경련으로 경직된 미세한 발톱으로 매달린 채 목숨이 끝날 때까지 불행의 장소에 달라붙어 있으면, 공기의 흐름이 그들을 떼어내어 먼지 쌓인 구석으로 날려 보내지요. 내 방에서 죽어 가는 그런 나방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종종 이 혼돈의 시간에 그들은 어떤 불안과 고통을 느꼈을까 하고 자문하곤 하지요. 106

 

  여기서 자기들이 잘못 날아온 것을 아는 나방들은 자신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잘못 빠져든 녹투라마의 동물들과 유비되고, 그렇다는 점에서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실려 간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잘못 실려 왔음을 느끼는 바와 같으며, 죽음의 경련으로 경직된 미세한 발톱으로 매달린 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불행의 장소에 달라붙어 있으면, 공기의 흐름이 그들을 떼어내어 먼지 쌓인 구석으로 날려 보낸다는 점에서, 가스실에서 죽은 후 화장로에서 먼지로 변해 사라지는 유대인들과 같다. 한편, 내게는 여기서도 양모 그웬덜린의 삶이 느껴져서 몹시도 가슴이 아팠는데, 아마도 생각과는 달리 기계적인 일로 평생을 보내야 하는 목사부인으로서의 삶이 너무나 힘든 삶이었고, 자신의 삶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병으로 죽을 때까지 불행의 장소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그녀의 삶이 나방의 삶과 동일시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나치에 의해 분리되고, 이탈되고, 뿌리 뽑혀 정체성을 상실한 채 나방과 풍뎅이와 박쥐처럼 축소되어 몽롱하게 삶을 이어가는 나방화된 인간의 세계로부터 본연의 인간이 지니고 있던 그 자체의 조건을 그대로 향유하는 인간의 세계, 잃어버린 망각 저편의 세계를 찾아, 아우스터리츠는 시간의 강물을 역류하면서 요새와 수용소의 폐허, 그리고 사진 속에 침묵으로 응결된 유대인의 절규와 고통의 감각들을 하나씩 회수하면서, 집요하고,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시간의 강물이 적셔온 뒤안길을 더듬는다. 이러한 아우스터리츠의 행위가 내게는 작가가 독일인으로서 짊어진 선조들이 저지른 전쟁책임을 간접적으로 조금씩 풀어 내리는 사죄행위로 보였다.

 

  <시계가 내게는 항상 우스꽝스러운 것처럼 근본적으로 뭔가 기만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마도 내가 스스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충동에서 시간의 권위에 항상 저항하고, 오늘날 생각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지 않고, 흘러가지 않아서 내가 그 뒤로 돌아갈 수 있다면 거기서 모든 것이 과거처럼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좀 더 정확히 말해 모든 시간의 순간들이 동시에 나란히 존재하거나 혹은 역사가 이야기하는 것 중 그 어느 것도 옳지 않았으면, 일어난 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순간에 비로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른바 시대적 사건에서 나를 배제시킨 때문일 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되는 비참함과 결코 끝나지 않은 고통의 절망적인 미래를 열어 주기 때문이에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114-115

 

  이 장면은 모든 여행자의 움직임이 감시당하고 행동 방식을 맞추게 하는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시계를 다시 떠올려주는데, 그곳의 여행객들과 달리 아우스터리츠는 시계로 상징되는 나치의 지시와 행동을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역시 작가가 전후에 영국으로 이민을 간 사실로도 알 수 있듯이, 전쟁 중에 태어났더라도 여타 독일국민들과 달리 나치에 저항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전체 작품에서 아우스터리츠는 두 번의 사랑에 빠지는데, 첫 번째는 스토워 그레인지에서 만난 제럴드 피츠패트릭의 어머니 아델라에 대한 사랑으로, 마치 내게는 그녀가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아우스터리츠가 느끼고 있었던 보다 근접한 사랑의 성격은 어린 시절의 어머니 아가타에 대한 대리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거기서 다시 돌아왔을 때 이미 저녁놀이 지고 있었는데, 가는 가랑비는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걸려 있는 것 같았고, 안개 낀 정원의 깊숙한 곳에서 아델라가 면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를 향해 다가왔는데, 그녀는 자유로운 팔을 들어 내 이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는데, 이 동작에서 그녀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기억에 남는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것 같았어요. 그래요. 나는 당시의 아름다운 아델라를 여전히 기억하고, 그녀는 내게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어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우리는 종종 전쟁 이후 치워진 안드로메다 별장의 구기실에서 함께 배드민턴을 치곤 했지요. 배드민턴 게임이 끝나면 우리는 대부분 한동안 홀에 머물면서 서양산사나무의 움직이는 가지들 사이로 수평으로 몰려오는 태양의 마지막 빛이 높은 뾰족 아치 창문과 마주하고 있는 벽에 던지는 형상들을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지요. 한번은 우리가 함께 서서히 어두워지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델라가 내 쪽으로 몸을 굽히면서 저 야자나무의 꼭대기가 보이니, 저기 모래언덕을 지나오고 있는 대상들이 보이니 하고 물었던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125-126

 

  그리고 두 번째는 리슐리외 가에 있는 국립도서관 문서보관소에서 처음 만난 이후 이어지는 마리 드 베르뇌유와의 사랑으로, 이는 이성에게서 느끼는 사랑이었는데, 그녀가 노골적으로 깊은 사랑으로 이어지길 바라면서 보헤미아로 가는 여행에 동행해 달라는 초대를 하고 아우스터리츠 역시 고립상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시도해 볼 작정이었지만, 마리엔바트의 팔라스 호텔에서 며칠을 같은 방에서 자면서도 결국 거리를 둠으로써 실패하고 만다. 아마도 거리를 둔 것은 하필 팔라스 호텔 바로 뒤편의 여관이 어린 시절에 어머니 아가타, 아버지 막시밀리안, 유모 베라와 함께 여행왔을 때 묵었던 곳이어서, 이번에는 마리가 어머니와 겹쳐지는 현상 때문에 실패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 마리엔바트에서 뭔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뭔가 아주 중요한 것, 단순한 이름이나 사람들이 생각해 낼 수 없는 명칭 같은 것이 내 마음을 돌려놓았다고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고 생각해요.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를 내게 말해 줄 수 없나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고 아우스터리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가 여기 온 후 왜 당신은 마치 얼어붙은 연못처럼 보이나요? 왜 당신은 도착했을 때도 짐을 풀지 않고 항상 륙색으로만 지내나요? 우리는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몇 걸음 떨어져 서 있었지요. 내가 정신병자처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사방에서 나를 둘러싼 비밀과 표시 들이며, 심지어 이 건물의 말없는 정면조차도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나는 혼자라고 항상 믿어온 것, 그리고 그것이 지금은 그녀에 대한 나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크다는 것을 말이지요. 235-238

 

  역시 전체 소설에서는 아우스터리츠가 딱 두 번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첫 번째는 양모 그웬던윌의 죽음을 맞았을 때의 장면인데, 다음과 같다.

 

  <추위가 발라의 그 집을 지배한 것과 마찬가지로 침묵 또한 그 집을 지배하고 있었지요. 목사의 아내는 항상 집안일로 분주했는데, 먼지를 털 거나 타일을 닦고, 빨래를 삶고, 문에 붙은 놋쇠 손잡이를 닦거나, 우리가 대부분 말없이 받아들인 보잘것없는 식사를 준비하느라 바빴어요. 한번은 그녀가 위층의 반쯤 비어 있는 방 안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구겨지고 젖은 손수건을 쥔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지요. 항상 자고 수프로 시작하는 점심 식사 동안 그는 요리를 하느라 힘이 다 빠진 아내에게 반쯤 농담 섞인 투로 몇 가지 교훈적인 지적을 하고는, 54-55/ 내가 두 번째로 오스웨스트리의 학교에서 집으로 온 것과 그웬덜린이 거의 목숨만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인간이 기억할 수 있게 된 이후 가장 추웠던 겨울이에요. 그웬덜린은 더 이상 이 방문객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방문객들 편에서는 감히 그녀를 바라볼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그들이 다시 떠나고 나면 이전처럼 쥐죽은 듯 조용했고, 내 뒤에서 들려오는 얕은 숨소리에서 다음 번 숨소리까지는 매번 영원히 긴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크리스마스에 그웬덜린은 무척 힘들게 다시 한 번 일어났어요. 일라이어스는 설탕을 넣은 차 한 잔을 갖다주었지만, 그녀는 그것으로 입술을 축일 뿐이었어요. 그런 다음 그녀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나직하게, 이 세상을 이렇게 어둡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하고 말했어요. 일라이어스가 그녀에게 대답했지요. 잘 모르겠소, 여보, 난 모르오. 태양이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서 푸르스름한 안개 속에서 잠시 나왔을 때, 죽어가는 그웬덜린은 눈을 크게 뜨고는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약한 빛으로부터 더 이상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았어요. 새벽이 희끄무레해질 무렵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멈추었어요. 그웬덜린은 위로 약간 솟아올랐다가 다시 자기 속으로 가라앉았어요. 내가 다시 일어났을 때 그웬덜린은 이미 앞방의 네 개의 마호가니 의자에 올려진 관 속에 누워 있었어요.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위층의 한 궤짝에 간직되어 있던 결혼식 복장을 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은 진주 단추가 많이 달린 흰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설교자의 집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났어요. 72-74

 

  내용으로 볼 때, 양모 그웬덜린의 삶은 녹투라마 동물원에 갇혀 본연의 삶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동물들과 같은 삶으로, 프라하라는 본연의 삶으로부터 뿌리 뽑혀 영국의 웨일즈에서 살아야 했던 아우스터리츠와 외양은 다르지만 속성은 같은 삶이다. 어쩌면 아우스터리츠가 양모의 죽음에서 눈물이 흐른 것은 인간 본연의 삶을 살지 못하고, 인간에 관한 보다 깊은 의식적 탐구를 해보지도 못한 채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사 일에 매인 물리적 속박과 목사인 남편마저도 해명하지 못하는, 나치라는 세상을 어둡게 하는 존재를 풀어놓은 주체와 씨름했던 영적 구속 상태로 일생을 마쳤다고 생각되는, 또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 상 탈출하고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목사의 아내로 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되는 양모에 대한 연민의 슬픔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외롭고 힘들었던 삶이 아우스터리츠 자신의 삶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고 느끼는 데서 동병상련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그 당시 나는 종종 나지막이 윙윙거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와 잔기침 소리로 채워진 도서관 열람실에서 죽은 자들의 섬이나, 아니면 반대로 유배지에 와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그것은 내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날, 내가 2층 문서 보관실의 당시에 자주 앉던 자리에서 천장의 어두운 슬레이트 판들이 비치는 건너편 건물의 높은 창틀과 가느다란 벽돌색 굴뚝, 눈부신 얼음처럼 푸른 하늘과 거기서부터 위를 향해 푸르게 비상하는 제비의 모양을 오려낸 눈처럼 흰 양철 풍향 깃발을 한 시간 정도 올려다보던 날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이었어요. 낡은 유리창에 비친 그림자들은 약간 구불거리거나 흔들렸고, 그것을 바라보자 이유 없이 눈물이 났지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284

 

  여기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난 것은 바로 아우스터리츠 자신이 죽은 자들의 섬이나, 아니면 반대로 유배지 같은 곳에서 살아온 듯이 느껴졌으며, 그런 감정은 자신이 살아온 삶이 눈부신 얼음처럼 푸른 하늘과 거기서부터 위를 향해 푸르게 비상하는 제비의 모양을 오려낸 눈처럼 흰 양철 풍향 깃발이라는 자유의 상징으로부터 유리된 삶, 즉 낡은 유리창에 비친 그것들의 그림자 같은 삶이라는 자각에서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전체 소설에서 딱 두 번밖에 나오지 않는, 거울에 비친 상 같은 이 눈물을 흘린 장면으로 인해 앞서 그웬덜린의 삶 역시 죽은 자들의 섬이나, 아니면 반대로 유배지에서 살았던 삶이었음이 추인된다고 느꼈다. 한편, 도무지 그럴 것 같지 않은 성격의 아우스터리츠의 눈물을 통해, 이 작품이 거시 생명체이면서도 미시 생명체처럼 삶을 강제로 압축당한 채 살다가 죽은 사람들에 대한 추도사로 읽히기도 한다.

 

  작품에는 대상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나온 뒤 그 대상을 보여주는 흑백사진과 그림과 자료들이 나오는데, 이 장면들이 내게는 묘사와 설명으로 육화해낸 대상의 그림자처럼 여겨졌고, 대상이 단어와 단어들로 흩어져 있어 실체는 사라지고, 그림자만 그 대상을 흑백으로 조형된 상태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자는 프라하에서의 삶을 잃어버리고 그 삶이 까맣게 망각돼 버린 아우스터리츠의 심화상태를 보여주는 은유처럼 느껴졌으며, 사진이나 그림 등의 출처가 없다는 점에서 이 또한 뿌리 뽑힌 아우스리츠의 상황을 보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인 듯이 여겨졌고, 그렇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작품의 구도가 제발트의 치밀한 구성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바로 위의 눈물이 난 이유에서 언급했듯이, 아우스터리츠가 2층 문서 보관실의 당시에 자주 앉던 자리에서 바라본 눈부신 얼음처럼 푸른 하늘과 거기서부터 위를 향해 푸르게 비상하는 제비의 모양을 오려낸 눈처럼 흰 양철 풍향 깃발은 아우스터리츠가 행복하게 자유롭게 살던 프라하의 상징이고, 낡은 유리창에 비친 그림자들은 그 삶으로부터 뿌리 뽑힌 채 장년에 이른 현재의 삶에 대한 상징인데, 이 구도가 대상은 설명과 묘사를 하는 낱말과 낱말로 흩어져 있어 보이지 않고, 그 흩어진 대상에 대한 그림자는 설명과 묘사에 이어서 나오는 흑백사진들이라는 구도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작품은 한 문장 내에서 런던과 프랑스로 건너뛴다거나 화자와의 만남이 우연으로 지속된다거나 하는 드라마적 구성으로 엮여 있는데,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소설구성의 취약으로 평가받겠지만,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져 버린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제발트가 선각자였다고도 생각되었다.

 

  작품에서 내게 제일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아우스터리츠가 프라하의 카르멜리츠카 가의 문헌보관소에서 테레자 암브로소바 사무실에 들러 그녀가 찾아놓은 주소명부를 통해 어머니 아우스터리초바 아가타가 살았던 주소를 알아내고, 슈포르코바 12번지에 들렀을 때,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던 유모, 베라 리샤노바와 재회한 장면이다.

 

  <내가 마침내 맨 위층에 있는 오른쪽 집의 초인종을 누르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흘러갔고, 그녀는 노쇠했음에도 근본적으로는 전혀 변하지 않아서 내가 그녀를 즉각 알아보지 못한 것은 내 눈을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그래서 나는 전날 힘들게 익힌 문장만을 더듬거렸어요. (저는 아마도 1938년에 이곳에 살았을 아가타 아우스터리초바라는 부인을 찾습니다). 베라는 놀란 몸짓으로 나를 살펴보더니 친숙한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싼 채, 펼쳐진 손가락 끝 너머로 나를 응시하고는 아주 나지막하게, 그러나 내게는 놀라울 정도로 분명한 프랑스어로 (자코야, 정말 네가 맞아)? 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았고, 떨어져 손을 잡았다가, 다시 껴안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고, 그런 다음 베라는 어두운 현관 통로를 지나 모든 것이 거의 60년 전 그대로인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어요. 169-170

 

  이 대목이 내게 제일 감동적이었던 것은 바로 자유를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던 과거의 시간을 기억 속에서나마 회복하였기 때문인데, 그것은 엄격한 성격으로 보이는 아우스터리츠가 전혀 상반된 모습으로, 유모와 서로를 얼싸안았고, 떨어져 손을 잡았다가, 다시 껴안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 정도로 아이처럼 좋아한 장면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의 끝에서 아우스터리츠는 아버지와 마리의 행적을 찾아가면서 화자와 헤어진다. 아우스터리츠는 아버지 막시밀리안 아이헨발트가 1942년 말 구르스 수용소에 수용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고, 그 전에 도스테를리츠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려고 했을 때, 기이하게도 아버지 가까이 가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는 점에서나, 독자 입장에서 구르스 수용소가 한나 아렌트가 수감되었다가 탈출한 곳이라는 점에서나 어쩌면 아버지는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고, 마리 역시 아우스터리츠의 실수로 연락이 끊어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만날 가능성이 많은데, 화자와 헤어질 때 아우스터리츠는 어쨌든 아버지와 마리를 찾을 거라고 말하는 점에서 결말이 열린 소설이라는 생각이고, 그렇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우울했던 분위기에서 빛줄기를 만나는 기분을 느끼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자, 또 경의를 표할 만한 대상이 생겼는데, 바로 번역자다. 미로와도 같은 문장으로 인해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정신을 끝까지 붙잡고, ‘긴 문장을 여러 개로 나누라는 충고도 있었지만, 문장의 길이란 곧 그 글의 호흡이고 숨결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대로 이어가는 편을 택했다. 평소 같으면 독자들이 좀 더 편안히 읽을 수 있도록 얼마간의 윤문도 마다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 책의 경우는 작가의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애썼다.’는 번역자의 말처럼, 원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쉬운 길을 버린 채 고난의 길을 걸은 노고는 가히 상찬할 만했고, 그 덕분에 인간과 나방의 상호교환 장치로서 문장을 길게 늘여 썼다고 생각되는 작가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은 채 유지될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4 2023.12.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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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담담해서 너무나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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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를 처음 읽어본다. 엄청난 길이의 문장을 보고 적잖이 당황하긴 했다. 그러나 호흡을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읽으니 그닥 어렵게 다가오진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말투의 긴 나열이 그 속에 숨은 동요를 조금 드러내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떤 소설보다 안타깝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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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를 처음 읽어본다. 엄청난 길이의 문장을 보고 적잖이 당황하긴 했다. 그러나 호흡을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읽으니 그닥 어렵게 다가오진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말투의 긴 나열이 그 속에 숨은 동요를 조금 드러내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떤 소설보다 안타깝고 슬펐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6 2026.06.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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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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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 입문 책으로 시작하고 싶어서 구매하여 읽었다.이 책은 네 살 때 혼자 영국으로 보내진 프라하 출신의 유대 소년이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과거와 부모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다. 흑백 이미지와 함께 읽는 새로운 문학의 발견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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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 입문 책으로 시작하고 싶어서 구매하여 읽었다.

이 책은 네 살 때 혼자 영국으로 보내진 프라하 출신의 유대 소년이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과거와 부모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다. 

흑백 이미지와 함께 읽는 새로운 문학의 발견이었다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4 2026.0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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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첫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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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중 첫 책으로 선택한 아우스터리츠입니다.  다양한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중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추천해주셔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미주 처리하는 을유문화사의 책이 마음에 듭니다. 각주를 뒤에 빼는 것이 불편할 순 있지만 개인적으론 더 자세하게 각주를 설명하는 것 같아 취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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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중 첫 책으로 선택한 아우스터리츠입니다.  다양한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중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추천해주셔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미주 처리하는 을유문화사의 책이 마음에 듭니다. 각주를 뒤에 빼는 것이 불편할 순 있지만 개인적으론 더 자세하게 각주를 설명하는 것 같아 취향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y********l 2026.02.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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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가는 여정. 기억과 역사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흑백 사진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사라진 유럽 유대인의 삶과 전쟁의 잔혹한 그림자를 환기시키며 역사적 비극과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맞닿는지 보여준다.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잊힌 과거를 복원하려는, 거기에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집요한 의지를 작가는 보여주는 듯하다. 차분하게 읽을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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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가는 여정. 기억과 역사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흑백 사진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사라진 유럽 유대인의 삶과 전쟁의 잔혹한 그림자를 환기시키며 역사적 비극과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맞닿는지 보여준다.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잊힌 과거를 복원하려는, 거기에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집요한 의지를 작가는 보여주는 듯하다.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데 읽는내내 슬픔이 스며든다.
YES마니아 : 로얄 h****7 2025.08.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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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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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를 내게 말해 줄 수 없나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고 아우스터리츠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가 여기 온 후 왜 당신은 마치 얼어붙은 연못처럼 보이나요? 하고 그녀는 물었지요. 당신의 입술은 뭔가 말하는 것처럼, 심지어 뭔가 소리치려는 것처럼 열려 있는데 왜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까요? 왜 당신은 도착했을 때도 짐을 풀지 않고 항상 륙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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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를 내게 말해 줄 수 없나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고 아우스터리츠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가 여기 온 후 왜 당신은 마치 얼어붙은 연못처럼 보이나요? 하고 그녀는 물었지요. 당신의 입술은 뭔가 말하는 것처럼, 심지어 뭔가 소리치려는 것처럼 열려 있는데 왜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까요? 왜 당신은 도착했을 때도 짐을 풀지 않고 항상 륙색으로만 지내나요? 우리는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몇 걸음 떨어져 서 있었지요. 마리의 눈 색깔은 점점 줄어드는 빛과 더불어 변해 갔어요. 그리고 나는 이 마지막 며칠 동안 나를 괴롭히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그녀와 나 자신에게 설명하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내가 정신병자처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사방에서 나를 둘러싼 비밀과 표시 들이며, 심지어 이 건물의 말없는 정면조차도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나는 혼자라고 항상 믿어 온 것, 그리고 그것이 지금은 그녀에 대한 나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크다는 것을 말이지요. 우리가 텅 빈 상태와 고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에요, 라고 마리는 말했지요.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당신 자신이고, 나는 그것이 무엇에 대한 불안인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항상 약간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지금의 당신은 문 앞에 서서 감히 넘으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요. 나는 그 당시 모든 점에서 마리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지만, 오늘날은 누군가가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내가 왜 등을 돌려야 했는지, 그리고 그처럼 등을 돌림으로써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망상을 가졌고, 동시에 나 자신이 두려움을 일으킬 정도로 추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i**********e 2025.04.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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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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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책은 아니다. 읽는 내내 읽었던 문장을 한번 더 읽곤 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에 관심이 많고 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인류가 가장 잔인했고 가혹했던 시대 속 한 사람의 인생과 오랜 저편의 기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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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책은 아니다. 읽는 내내 읽었던 문장을 한번 더 읽곤 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에 관심이 많고 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인류가 가장 잔인했고 가혹했던 시대 속 한 사람의 인생과 오랜 저편의 기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t**********e 2025.01.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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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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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해놓고 바빠다는 핑계로 한동안 방치된 책들을 살펴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했는대... 여러차레 첫페이지 부터 다시 읽어야 할정도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긴호흡의 문장들과 묘사들이 완독후의 만족감에 이르기까지 조금은 힘든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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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해놓고 바빠다는 핑계로 한동안 방치된 책들을 살펴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했는대... 여러차레 첫페이지 부터 다시 읽어야 할정도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긴호흡의 문장들과 묘사들이 완독후의 만족감에 이르기까지 조금은 힘든 과정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4*****5 2024.1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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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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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읽다가 종이책으로 더 집중하면서 읽고싶어서 구매했다. 역사적 사실, 건축물 등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허구적 소설을 완성해가는 특이한 작품이다. 제발트의 작품은 어렵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있다. 완독하고나서 리뷰를 다시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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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읽다가 종이책으로 더 집중하면서 읽고싶어서 구매했다. 역사적 사실, 건축물 등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허구적 소설을 완성해가는 특이한 작품이다. 제발트의 작품은 어렵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있다. 완독하고나서 리뷰를 다시 써봐야겠다.
l******n 2024.09.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