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이야기 <개인적인 체험>을 읽고
한 남자가 서점에서 '수그린 남자의 두개골 모양'을 닮은 아프리카 대륙 지도를 사서 나온다. 그의 별명은 '버드(bird)'이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그의 작고 마른 몸매와 얼굴 생김새는 새의 이미지를 닮아 있다. 그가 직면한 현실은 마치 새장에 갇힌 새가 그곳을 벗어나 어디론가 날아가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곧 출산을 앞둔 아내와 학원 강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아프리카를 향한 버드의 로망(혹은 도망)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멀게만 느껴졌으리라. "지금 바로 병원으로 와 주세요. 아기에게 이상이 있어 의논해야 합니다.(31쪽)" 잠결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지난 밤 버드가 마주친 남창, 용무늬 점퍼를 입은 청년들, 꿈속에 아프리카 멧돼지와의 해프닝이 결코 우연이 아닌 불길한 징조였음을 상기시킨다.
버드의 아들이 두개골 이상으로 '뇌 헤르니아(腦 hernia)'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이다. 신생아를 '겐부츠(現物)'라 부르며 '물건' 취급을 하는 산부인과 원장(의 말이 가이부츠(怪物), 즉 '괴물'로 들리는 버드)부터 뇌 헤르니아인 신생아와의 만남을 행운으로 여길 뿐아니라 해부 참관을 기대하는 산부인과 의사, 아기의 분유량을 조절하거나 분유 대신 설탕물을 주어 쇠약사를 유도하려는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 딸에게 아기가 심장병으로 숨진 것으로 하자는 장모에 이르기까지, 눈앞에 벌어진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한 버드에게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말은 위로는커녕 불안과 혼란을 가중시킨다. 특히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태어나는 편이 좋은 건지 어떤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시대(63쪽)"라는 장인의 말을 통해 장애아 출산에 대하여 (소설이 쓰여진) 1960년대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부모가 자식(장애아)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게 만든다. 버드는 방황한다.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고 대학시절 여자친구를 만나 성적 욕망을 표출하며 (술기운을 빌어) 잠도 잔다. 처음에는 내 예상을 빗나간 전개에 당혹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독자이기에 앞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버드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라고 자위하지만, 파도처럼 밀려드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안도감과 공포감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무기력의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버드를 보면서 다시금 '이것이 인간(인생)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작가는 극한의 상황에 처할수록 식욕, 성욕, 수면욕 등 기본 욕구가 더 절실해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그의 행위에 윤리적 잣대를 대자면 독자마다 공분과 공감이 엇갈릴 듯하다. 여기서 오해보다 이해를 위하여 버드의 여자친구이자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히미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개인적인 체험'을 겪는다. 결혼한지 1년만에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 후부터 낮에는 명상에 잠기고 밤이 오면 스포츠카로 거리를 질주한다. 버드와 히미코는 개인적인 체험과 (버드에게는 다소 왜곡된) 공통의 추억을 공유하며 몸과 정신의 대화를 나눈다. 그 중에서 히미코가 설파하는 이른바 '다원적 우주론'이 눈길을 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또 하나의 우주에선 죽지 않고 살아 남은 버드의 아기를 둘러싼 세계가 있으며, 그곳에는 행복한 아빠(버드)로부터 경사로운 소식을 듣고 그(히미코)와 함께 축배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이미 요즘 유행하는 평행우주(멀티버스) 이론을 차용한 작가의 센스도 놀랍지만, 어쩌면 히미코가 힘든 나날들을 버티려고 만든 자기 체면(혹은 주문)과도 같은 소설적 장치로도 읽혀진다. 과연 버드는 계속 살아 남은 존재로 자기가 바라는 우주를 찾아갈 수 있을까?
이 소설의 제목은 <개인적인 체험>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2023년 3월에 세상을 떠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버드의 아들은 (현재 음악가로 활동중인) 오에 히카리에서 '촉발'된 것이 맞지만, 버드와 작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소설에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문제라는 작가의 시선을 담아낸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후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이며, 오에 겐자부로의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소설을 통해 이렇게 힘주어 말한다. 어떠한 '개인적인 체험'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같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하여 인식의 전환과 현재보다 나은 미래로의 길을 모색하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그에 응답하여 우리의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이야기는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회복하는 인간'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도 한 까닭이다.
|
|
2012년에 읽은 마지막 작품이 되겠다.
장애아를 둔 아버지의 고군분투가 눈물겹게 그려지지않나 했더니...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의 주체(버드)가 주인공이여서, 은근 짜증이 났다. 와이프가 장애아를 낳았는데, 그 곁에 있어주기는 커녕, 옛연인에게나 찾아가고..또 그 연인은 받아주고, 술먹고 강의실에서 토웩질을 한다던지...대책없이 허세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좀 밥맛떨어지는 인물.
졸라 힘들었으나 어쨌든 잘 살았대더라,는 내가 원하는 판타지였나.
도무지 예뻐할 수도 없고, 공감도 되지 않는 인물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요 근래 읽었던 일본 문학이 죄다 그저 그래서 그냥 폄하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마지막, '도망치기를 그만 둔' 부분에서 나는 조금 상쾌함을 느꼈던 것 같다.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아프리카에 가길 꿈꾸는' 부분은 나의 어떤 것과 닮아 있는듯 했고...그가 히미코에게로 도망갔듯이...나는 자연을 '벗'이라 생각하여 줄창 등산만 다녔고, 백화점에 쫓아다녔던 것은 아니였는지...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던 마지막 부분의 해피 엔딩 부분은...나 역시도 사족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해피엔딩은 그냥...희망사항일뿐. 진짜 현실은 살벌하지 않던가. 차라리 그가 히미코와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다면...이 작품은 상상초월의 엽기 소설이 되었었을까?
위에 상쾌했다고는 썼으나... 지우개로 빡빡 지워버리고 싶은..혹은 이렇게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 항상 정면도전 해야하는 것,만이 정답인지에 대해서도 살짝 의문이 든다. 뭐,내년되면 한 살 더 먹을테니...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아니면 말고. |
|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은 만엔원년의 풋볼과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로 먼저 접했다. 이번에 그의 자전적인 성격을 담은 소설이라는 개인적인 체험을 읽게 되었는데 역시 그의 문체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어마어마했다. 줄거리는 생략하고 마지막 갑작스런 해피엔딩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는 이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어야 대중적인 소설이 될거라는 일종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오에는 처음부터 마지막 부분을 해피엔딩으로 생각해 두고 있었다며 태도를 고수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마지막에 갑작스런 해피엔딩으로 유턴 하는 것은 당황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도 들었다. 비슷한 소설로는 요시야 노부코의 물망초가 생각나기도 했다. 95%까지 완성된 자기비판과 혐오의 꿉꿉함으로 가득 찬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페브리즈를 뿌린 느낌. 담백하고 맛있는 볶음밥을 먹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나는 과육이 씹힌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나름 이해는 간다. 아무래도 작품을 쓰는 그의 마음에는 자신의 아들이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과 희망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의 작품 중에 만엔 원년의 풋볼과 비슷한 느낌도 든다. (물론 만엔 원년의 풋볼이 더 완성도 있는 측면으로) 인간사회, 역사 비판과 그 치부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마지막으로는 약간의 인간찬가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그가 바라는 희망이 아닐까 싶다. |
| 제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북클럽에서 이번달 도서로 선정된 게 이 책 개인적인 체험이었어요. 오에 겐자부로 라는 작가는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 로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이네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 어느 신생아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혼란이 이 책 안에 담겨 있어요. 묘사나 서술이 정말 인상적이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
오에 겐자부로 저 서은혜 역 을유문화사 개인적인 체험 추천합니다. 히미코가 다시 한 번 격렬하게 신음했고 갑자기 위협이라도 당한 듯이 번쩍 눈을 떳다 버드는 자고 있는 척 했다. 1분후 버드가 눈을 떠보니 히미코는 다시 잠들어 있었다. 버드는 안도하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부모라면 마음 아픈 이야기이다. 너무 몰입되어서 읽을 것 같아 읽고 싶어도 오히려 읽기 싫은 마음이 들었으나 용기내어 읽어봤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느낀 우환과.. 생각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와 위안이 될 것 같다. |
|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몰랐고, 그가 일본 내 지성인이자 양심적인 목소리를 낸 분이라는 것도 몰랐었어요. 우연히 출판사 대표님 추천으로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는데, 소설 속 '버드'라는 사람의 삶과 생각, 느낌을 읽어나가며 어쩌면 오에 겐자부로 자신을 소설 속에 담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의 실제 삶이 아프게 다가오네요. 대단한 분은 역시 역사에 남는군요... |
|
이 작품은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의 죽음을 원하는 청년의 방황, 절망과 일탈의 나날을 보여준다. 출구가 없는 현실에 놓인 현대인들에게 재생의 희망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전환점이 된 이 소설은 노벨 문학상 수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충격적이고 외설스러운 이야기들을 풀어놓던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한다 |
|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으면서 자식을 잃은 참척의 고통이 너무 절절하여 마음이 참 아팠다. 작중의 버드처럼 장애를 갖은 아이가 태어났을 경우에는, 또 자식을 잃었을 때와는 또 다른... 하지만 못지않은 슬픔과 절망감도 있지 않을까 한다. 작가가 말하길 이 작품은 본인의 사소설은 아니고, 그냥 자식이 장애를 갖고 있는 부분만 동일하다고 하는데,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곳곳에 이런저런 본인의 생각들이 숨어있지 않을까 한다. 여하튼, 대충 내용은 알고 봤지만... 막상 글로 접하니, 극중 인물에 별로 공감하기 힘들었다. 아프리카를 꿈꾸던 20대의 청년이지만, 결혼 생활도, 사회생활도, 일상생활도... 그리고 장애자가 태어났을 때에 보여준 그의 행동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는 한 편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막연하게 아프리카를 꿈꾸었지만, 그 꿈을 이뤄가려는 여정에서 마주하게 된 리얼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도 하고, 회피하고 싶기도 했었으리라. 아마, 이런 부분은 꼭 장애아로 인한 ‘개인적 체험’이 아니더라도, 사람마다 자신만의 ‘체험’이 있기 때문에... 그 안타까운... 뭐랄까 결고 녹록할 것 같지 않은 삶의 여정이 보이는 것 같아 쓸쓸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그 결은 다르겠지만. 버드와 또 다른 ‘개인적 체험’이 있었으리라. 잊을 줄 알았는데, 스멀스멀 망령처럼 기억이 나는 것은... 나이가 먹어도, ‘아냐 이젠 지난 간 일인 걸...’하면서 다독여도 치유될 수 없는 일인지. 책을 읽고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그러니까 너도 잘 살아’하는 마음을 먹게 해준다. 작가는 몇 년 전에 저세상으로 간 걸로 알고 있는데, 그의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 작품이 슬쩍 해피엔딩이라서 약간의 비난도 있었던 것 같은데, 실제 장애아를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면... 의외로 절망이 아닌 ‘살아가고픈 욕망‘이 더 강하게 솟구쳐 떠오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 이 책이 좋았던 부분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마주하기를 선택한 점 - 이 책이 별로였던 부분 : 장애 아들이 태어났는데, 다른 여자랑 자고다니는게 말이 되나. - 이 책이 내게 던지는 질문 : 나는 회피하고 도망다니며 살지는 않았었나. |
|
일본의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니 이 소설은 에세이인가 소설인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음 진솔한 본인의 이야긴 줄 알았다 이책도 역시 독서모임의 지정책이라 구매함 독서모임의 장점은 결코 나혼자서는 읽지 않을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