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사라져가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한동일 작가의 새로운 질문이다. 믿음이 사라져가는 시대, 종교의 본질이 희미해져가는 시대, 종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는 시대인듯 하다. 현재 이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종교가 주는 가치는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오늘은 일요일이다. 교회에서는 주일, 주님의 날이라고 부른다. 보통의 일상안에서 주말이라고 부르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일이다. 주 5일간 열심히 일하고 쉼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믿는 이에게 주일은 휴일의 의미뿐만 아니라 주일이기에 교회나 성당을 가야하는 날이다. 오늘 미사에서 들은 성경말씀이 머리에서 계속 맴돈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읽고 리뷰를 써야 하는데 거의 2주간 여러 생각들이 꽉차 있었고, 책을 읽고 정리가 되지 않은 생각들로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계명은 이것이다. 구약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기 6장 4절~5절).'는 계명이다. 한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계명을 지키는 것은 교회안에서 꼭 지켜야 할 법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지킨다(꼭 교회나 성당에 가서 예배의 행위를 통해 나의 믿음을 증거한다). 그리고 또하나의 중요한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기 19장 18절). '라는 계명이다.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시대'이지만 그가운데서도 여전히 종교와 믿음의 의미를 찾을 수있기에 오늘날 신을 믿는 이들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 다가온것 같다는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나는 믿는 인간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그 믿음에 바탕을 둔 나의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 주일에는 항상 성당을 간다. 내가 주일에 성당을 갈때 꼭 만나는(같은 시간대에 성당을 가는) 중년의 부부가 있다. 다정히 팔짱을 끼고 성당을 향해 간다. 나는 부부 뒤를 따라 걷다가 횡단보도앞에 선다. 나는 신호등이 빨간불이니 멈춰섰는데, 그 부부는 무단횡단을 하고 간다. 성당을 향해... 성당으로 가는 시간, 지각도 아닌데 그 부부는 한번도 신호를 지킨적이 없다(나와 마주친 경우는 항상). 성당에 늦게 간다고 하느님께 벌받는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할까? 꼭 무단횡단을 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 부부도 주일을 지켜야 하는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새 성당에 가는것이다. 미사시간 동안 하느님께로 향한 찬양과 감사의 마음을 다해 예배를 드리지만, 그 시간동안 가족들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께, 예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나온다. 그리고 또 급하게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집을 향해 간다. 성당에서 열심히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나서 밖으로 나온 그들은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다.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 아무 문제 없는거 아닌가 말할 수 있지만 사회적 약속인 규범을 지키는 것은 공공질서를 위해서 중요한 것이다. 이 작은 행위 하나도 타인을 생각하는 사랑의 실천일 수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계명은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봉헌금을 내고 십일조를 하는 것만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종교가 이 시대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종교를 통해, 신의 존재를 통해 희망과 위로와 힘을 얻는것, 아닐까 한다.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살아가야 할 신앙인의 실천은 거창한것이 아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손길과 마음 아닐까 한다. 작은 친철과 배려와 나눔이 넘쳐나는 삶 안에서 퍼져가는 사랑의 향기로 인해 믿지 않는 이들이 사랑을 느낀다면 그것이야 말로 종교의 가르침을 완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또한 그렇게 살아야 할 믿는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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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자격을 얻은 유일한 동양인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후 [로마법 수업]이 출간 되어 출간기념 저자 북토크에 다녀 온 후 이분이 쓴 책이라면 어떤 책이라도 읽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고 이렇게 [믿는 인간에 대하여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을 만났습니다. 언어에 관한 수업이 첫 번째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는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믿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과 부정적인 영향력, 불안과 폭력적인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믿음, 믿는 인간'의 의미와 믿음이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자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 고난에 처했을 때 우리는 믿음을 가장하여 신이, 남이, 이웃이 나를 도와 주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처럼 원수인 상대방일지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도움을 주는 존재가 수호성인처럼 나를 지켜주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고통받는 남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거나 '어른' 또는 '멘토'가 될 생각은 안 하면서 필요로만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시점에서 '내가 생각의 어른이 될 수도 있다'는 문장으로 믿음에 대한 첫단추를 끼우고 있습니다. 생각의 어른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변에 있는 생각의 어른을 찾아보고 존중하는 삶, 생각의 어른이 없다면 내가 생각의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삶이 지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문화 사회의 한 요소인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종교 백화점'과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참되고 옳다고 주장하는 종교적 배타주의가 세계 여러 곳에서 목격되며, 자신과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을 죄악시하거나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폄훼하기도 합니다. (235쪽) 바이러스로 인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종교에 대한 불만은 하늘높이 치솟아 올랐고 모든 종교인에 대해 하나의 기준으로 바라본 것도 사실입니다. 해마다 종교 인구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종교와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해졌으나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는 여전히 결핍된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저자는 [믿는 인간에 대하여]에 보물처럼 숨겨놓았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통의 가치는 무엇이며,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그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를.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곧 우리를 [믿는 인간에 대하여] 알려 줄 것 입니다. #믿는인간에대하여 #한동일 #흐름출판 #라틴어수업_두번째시간 #책추천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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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어수업부터 너무 좋아 주위에도 알렸네요. 이번책도 예판했을때 주문해서 읽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어찌보면 생각할수도 있던 내용들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뀌지 않고 그냥 읽기만 한다면 의미가 없겠지요. 나의 행동이나 생각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돌아보게 됐습니다. 생각도 다르게 하게 되네요. 반성하게 됩니다. 물론 또다시 돌아오겠지만 노력해야겠어요. 늘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강의도 들어보고싶습니다. |
몇 년 전 예스24에서 서핑을 하고 있을때 한동일님의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우연히 알게 되어 구독을 했다. 마침 그 즈음에 책에서 나온 'carpe diem'이라는 낯선단어가 유행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생각보다 라틴어를 발음하는 것이 우리나라 말처럼 영어와 달리 그대로 읽는 것에 신기했고 무엇보다 우리말 해석으로 '오늘을 즐겨라'고 하는 것이 너무 좋아 아직까지도 카톡의 프사문구로 되어있다.또다른 작품인 라틴어수업 두번째 시간 '믿는 인간에 대하여' 의 말미즈음에 작가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최근 젊은 세대들이 종교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했는데 나 역시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학문적인 입장에서의 '신'이라는 단어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관련서적에는 가끔 눈을 돌리곤 한다.
이 작품을 읽고나서 생각한 것은 인간사에서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학문이 바로 종교라는 데 이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알고 있듯이 종교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이 가진 성향이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이러한 견해는 여러가지로 해석이 되겠지만 단순히 믿음보다는 책의 제목처럼 '믿는 인간'이 되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절대적인 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신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나 하는 인간에 대한 고뇌와 더불어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 었다. 자칫 종교색이 짙은 작품이라 생각되었는데 오히려 학문적인 것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간간히 나오는 라틴어를 큰소리도 읽기도 했고, 라틴어가 영어로 변형되는 과정의 설명,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이 나올 때는 무척 흥미로웠다. 평소 서양의 고대나 중세시대의 역사를 양식은 바로크나 고딕풍 혹은 이슬람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라틴어라는 언어는 생소하지만 알고보면 모든 서양의 언어에 뿌리깊이 내려앉아 있는 언어라고 생각된다. 와중에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중세언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을 읽으면서 믿음이라는 것, 즉 종교에 대하여 작게나마 관심을 가지게 된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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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1권을 읽고나서 두번째 수업에 관한 책이 나왔을 때 환희와 기대에 차서 바로 책을 구매하였다. 어렵기만 생각했던 그렇지만 우리 생활에 이미 기초를 알게 모르게 기초를 제공하고 있는 라틴어를 역사와 종교와 철학을 씨줄 날줄로 엮어 펴낸 1권에 매료되었으며 2권에는 보다 깊은 문제, 나에게 주어진 악보는 무엇이며 이 악보를 어떤 악기로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에 대한 어떤 가이드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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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일 작가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흥미진진하고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의 어릴적 성장담 부터 신부가 되기까지, 그리고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 바티칸 변호사가 되고 라틴어등을 익히며 생활했던 이탈리아 유학이야기, 외에도 로마법을 우리의 삶과 역사를 비추게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 이야기까지 이야기를 재지나게 풀어놓는 작가이다 . 이번 책도 기대가 되고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기대된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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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가던 비행기에서 라틴어 수업을 탐독했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다시금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서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 했는데... 언어에서 믿음으로 전개되는 선생님의 깊은 통찰에 기대봅니다. 덕분에 더 풍부한 지성으로 채워 만족하기보다 더 깊이 사색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다만, 그동안 사슬처럼 얽혀있던 진탕에서 벗어났으니 더 많은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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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종교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전 세계인을 고통과 혼란 속에 빠뜨린 코로나 위기 동안에 종교는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종교의 자유는 주장하면서 종교적 책임은 다하지 않아서 이웃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종교인들의 모습은 종교와 믿음에 걸었던 실낱 같은 기대마저 무너뜨렸다. 어느새 믿는 인간에 대하여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뿌리 깊은 실망감이 되어 버렸다. 실망스러운 종교인들과 같은 집단에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웠다. 비종교인이라서 종교인들이 대중의 반감을 사는 동안에도 수치심을 느끼거나 나의 도덕적 평판이 손상되지 않았다. 코로나 발생 이후에 종교가 없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나처럼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믿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관심도 없고, 상관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믿는 사람에 대하여>는 나를 위한 책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지칭하는 믿는 인간은 종교가 있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믿음이 있으며, 그 믿음이 있어 인간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내일의 희망을 믿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지금의 현실이 괴롭고 힘들지만, 내일은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인간이 종교를 갖는 본질적인 이유도 내일의 희망 때문이다. 이걸 믿으면 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종교 선택의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믿는 인간이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종교를 믿는 인간에 대한 책이면서 내일의 희망을 믿는 우리 모두에 관한 책이다. 인류 공통의 믿음은 위협받고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어쩐지 세상은 갈수록 나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빈부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환경은 더 나빠지며, 집단 간의 갈등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코로나는 우리의 의심에 방점을 찍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수많은 반증 속에서도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믿음을 회복해야만 한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종교의 역사에 기초하여 우리가 다시 희망을 믿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성찰과 반성을 통해 우리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성찰한다면 삶이 나빠졌다고 느끼게 만드는 현실의 문제들은 모두 다 인간이 초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인간이 성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수와 실패를 들여다보는 일이 괴롭기 때문이다. 성찰이 없으니 반성도 없다. 반성 없는 인간은 역사 속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세상을 어지럽힌다. 사람이 한 일이니 사람이 해결할 수 있다. 모든 문제 해결은 마주하기 싫은 것을 마주보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인간은 계속해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만 하고 있다. 신에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끊임없이 비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책임은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무정한 신에게 있는 것이 된다. 인간은 문제를 일으킬 때에는 적극적이지만,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되면 무기력하게 변한다. 저자는 이제는 기도를 하기 전에 자문해 보라고 제안한다. 이 일은 꼭 신이 해결해줘야 할 문제인지 말이다. 타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가진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면 인간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신의 도움 없이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바이러스와 함께하며 우리는 믿는 사람들에게 실망했지만, 그들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신이 아니라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알았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 지도 희망을 믿는 우리들에게 달려있다. 인간의 태도가 인간이 사는 세상을 결정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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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내가 팔로우 하는 분 중에 "출판사 박대리"라는 분이 있다. 그의 프로필에는 "코미디언, 홍보 마케터, B급과 병맛을 담당"한다며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프로필 소개부터 범상치 않지만, 그가 올리는 피드는 더더욱 심상치 않다. "흐름 출판사"의 직원이라는데, 자사의 책 홍보뿐 아니라, ""업무외 일지" 라는 제목으로 출판사의 이런 저런 뒷이야기를 참 재밌게 풀어 놓는다. 그의 피드 중 요즘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올라 왔다. "찐감동이었던 작가님은?"이란 제목의 글이었는데, 한 작가님이 외부 강연료로 받으신 금액 전부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했다는 것이다. 작가님의 외부 강연은 오롯이 작가님의 역량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더욱이 책 내용외의 것이 강연에 많이 포함되기에 굳이 출판사와는 관계가 없음에도, 작가님은 이 모든 것이 흐름 출판사 여러분 덕분이라는 메일까지 남겼다는 것이다. 내가 마치 그 출판사의 직원이라도 되는 양,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 분이 바로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쓴 "한동일 " 작가님이라고 한다. 그 글을 읽자마자 내용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이 책을 급히 구입했다. 박대리님의 탁월한 영업 능력!! 선한 인간이 되고는 싶은데, 막상 내 손으로 뭔가를 행하지는 못하고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선행을 하고 싶은 얄팍한 속셈의 발로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렇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부제가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이다. 라틴어 수업이라니... 표지를 들추기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 그런데,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나는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설교나 훈계조의 고리타분한 내용을 예상 했으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19개의 챕터에서 다양하게 펼쳐진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필사의 전략은 겸손" 이라는 저자의 말대로 이 책 전반에 깔려있는 기본 태도는 '겸손'이다. 겸손한 태도로 저자는 인간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하며, 우리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건넨다. 모든 챕터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물하지만 그 중 특별히 내 마음 속에 들어온 몇 가지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4장의 “예수를 배신한 두 사람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에서 두 사람은 모두 예수를 배신했지만 그 후의 삶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같은 상황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
나는 그동안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 왔을까? 혹시, 마주하기 싫은 문제들을 회피하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그 문제들을 마주할 용기를 내야 문제 해결이 될 것이다. 5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고단한 삶에서 얻은 지혜를 우리에게 전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식별하는 지혜로 맞딱드리는 문제를 해결해 간다고 한다.
한숨으로 날려보내고 싶은 게 어디 한둘이겠는가? 심지어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는 게 다반사인데...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에 애쓰며 매달리지 말고, 털어 버릴 것은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내 삶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것이다. 17장에서는 그동안 멀리했던 종교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한다.
담담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단어들로 저자는 우리에게 삶에 대해 조언을 건네고, 삶의 진리를 알려준다. 이 지옥같은 세상을 견디며 살아 내야 한다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지, 가르침을 주고, 지혜를 준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에 개입해서 냉정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나 와 나 이외의 존재들과의 다름을 인정하고, 신과 인간에 대해 믿음을 회복하여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것 같다. 희망과 기대감... 그리고 인간과 신에 대한 믿음... 그런 것들로 오늘 하루도 지옥같은 삶을 살아낸다. 옆에 두고 삶이 힘들어 지는 순간 몇번이고 펼쳐들고 읽을 책이 생긴 것 같아 왠지 모를 든든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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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본 집단에 관한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주위의 다른 생명체에 비하여 인간이라는 종은 약하기에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었고 이에 그 집단과 다른 종이거나 심지어 같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집단과 다른 집단은 본능적으로 경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에 일단 자신과 다른 집단을 경계하는 것은 수긍이 가는 이야기긴 하다. 그러한 집단을 형성하는 것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마 종교를 빼 놓고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라틴어 수업』으로 유명한 한동일 교수님이 그 두 번째 시간으로 『믿는 인간에 대하여』에서는 “믿음이 사라져가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다양한 답을 내 놓고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에서 밝히고 있지만 이미 『라틴어 수업』과 『로마법 수업』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였기에 종교와 믿음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은 조금 꺼려졌지만 신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종교는 인간의 삶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오랜 세월에 결처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으므로, 그것을 통해 우리 삶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굳이 종교를 떠나 인간은 자신보다 큰 무언가를 숭배하고 믿으며 살아왔기에 지금 우리 삶에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한 가지 더 전작과 다른 점이라면 기톨릭 신부라는 사제직을 내려놓고 한 명의 신앙인으로 공부하는 사람으로 돌아가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책은 생각의 어른 찾는 것부터 시작하여 ‘페니키아의 협상법’에서는 현재 레바논 사람의 조상인 페니키아인들이 어떻게 협상을 했는지에 대해,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문제점을 밝히며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톨릭과 기독교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목도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는 막힘이 없이 잘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저자가 평생 몸담았던 신앙이기에 그것을 제외할 수는 없지만 굳이 가톨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이야기가 가득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다.
인류의 역사와 인간 사회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아주 서서히 나선형 모양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인류의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더딘 걸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147쪽)
‘신 앞에서 근심하는 존재’라는 제목의 편에서 종교에서 과학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서서히 나선형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신앙과 믿음에 관하여 삶의 지혜가 많이 담겨 있긴 하지만 이 책을 한 권 읽었다고 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는 힘들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는 좋은 보기가 하나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