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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에 보니 '케인즈 하이에크'에 관한 책이 들어 있다. 담아둔지 5-6년은 넘은 것 같다. 눈에 들어온 책은 카트에 먼저 담아두고, 목차를 구경하고, 서점에 들르면 한 번 찾아본다. 시간이 흘러도 카트에서 지우지도 않고 담아 두었다는 것은 사실 아리까리하다는 소리다. 그런데 선뜻 이 책을 샀다.
책을 산 이유라면 전쟁, 질병, 기근과 같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시대를 내가 살아내느라 고생이 많다는 점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불현듯 '총 균 쇠'라는 어마어마한 책이 생각났다. 케인즈는 인간이 만든 최악의 해결책 전쟁의 시대를 살아냈고, 우리는 COVID-19라는 알 수 없는 질병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전쟁의 피해가 크고, 직접적이라면 질병의 피해 또한 전쟁의 피해와 비교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체감 중이다. 동시에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도 크다. 전쟁처럼 건물이 부서지지 않는 점은 전쟁보다 낫지만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결코 피해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현재 1/5일 넘어서 읽고 있다. 더 읽다 보면 이렇게 두툼한 책은 그 앞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몰입의 강도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내가 산만해지고 손이 많이 가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2~3번에 읽은 것을 정리할 계획이다.
나도 케인즈를 경제학자라고만 생각해왔다. 그가 말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역할 정도로 이해해 왔다. 교과서에 한 줄 정도 나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경제학 이론 수업에도 갈수록 수리적 분석, 미적분을 통한 미시적 분석, 확률 통계(대학 졸업할 때나 돼서 게임이론 이런 걸 가르쳤던 것 같음. 머리 아프게..), 헥셔 오린 그래프가 나오면 경제학에 국제를 붙여서 만든 이론들을 배워본 것 같다. 케인즈에 대해서 무엇을 특별하게 배운 것 같지는 않다. 기억나는 일화라면 금본위 제도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금 투자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그에 대한 질문에 "경은 어떠한가?"와 같은 현타 오는 우문현답의 사례만 머릿속에 강인하게 기억이 남았다. 이런 나를 보면 학사, 석사, 박사, 자격증 시간 지나면 자격유지인지 확인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 좀 있어야 한다.
1/5을 읽는 동안 특별한 이야기보다 케인즈에 대한 배경지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젊은 시절 구시대의 체제와 질서를 거부하는 반항적인 사고, 자유를 지향하는 조금 급진적인 젊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좀 똑똑한데 아는 척하며 놀기 바쁜 재수 없는 있는 집 자식 그룹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런 배경에서 관료의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은 탁월한 재능과 학습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잘 놀고, 재능도 부여받은 것이다.
숫자에 대한 탁월한 재능과 감각을 갖고 관료가 된 후, 자신이 지향하던 이상적인 삶과 거리가 멀어진다. 그 이상적인 삶에 대한 동경과 그 삶에 영향을 주는 현실의 문제 사이의 차이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다. 그만큼의 the difference가 삶의 문제가 아닐까? 그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그의 장점이 숫자로 산출된다.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같지만 道를 꼭 산에서 닦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용이란 서로 상충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그 차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전쟁 속에서 재화의 소진과 전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전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략을 수립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인간이 창작하는 최악의 드라마인 전쟁이 자신의 이상과 상충하고 그 차이를 숫자로 정리한다는 것 또한 케인즈가 道를 닦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가 변하는 것이라는 표현보다는 상황에 적합한 대책을 찾기 위해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전쟁이 끝나고 배상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세상을 굴리는 두 바퀴가 금권과 권력이란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돈과 정치적 권력이란 두 바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 차이를 적절하게 균형 잡지 못하면 탐욕이란 놈이 인간의 행복과 희망을 갉아먹게 된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지식의 많고 적음, 부의 많고 적음, 권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전쟁에 참여한 많은 이해관계자들과 배상에 대한 태도를 보면 차이가 없다. 전쟁이 급하면 우선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전쟁이 끝나면 패자에게 죽지 않을 정도까지 온갖 이유를 붙여 착취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인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대영제국의 화려한 영란은행은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미국의 눈빛과 선심을 기대하며 자신의 제국을 갉아먹는다. 유럽 대륙의 국가들은 다시 영국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제국을 갉아먹는다. 이 이야기가 벌써 100년 전의 이야기다. 정작 그 시대의 최대 승자는 미국인 셈이다. 전장의 한 복판에서는 전세를 읽기 어렵다. 전세를 읽어도 전쟁을 이끄는 방향은 천차만별이다. 그런 점에서 더 읽어봐야 하겠지만 케인즈가 인정받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보는 중이다.
그런데 지금도 영국은 유럽 대륙에 대한 금융적 부담을 걷어차고 브렉시트를 했다. 그날 런던에 있었는데 다들 멘붕의 하루였다. 독일도 그런 상황에서 이웃집에 지원을 나 혼자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PIGS라는 나라의 부채 상당 부분은 프랑스가 갖고 잇다. 이렇게 복잡하게 돈이 얽히고 엮인 유럽 상황이 100년 전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전쟁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엔 전 세계에 역병이 돌아 전쟁과 다름이 없다. 이런 와중에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배경을 모르는 한국에서는 전쟁 기운이 돈다는 소리가 많다. 우크라이나도 반은 유럽에 가깝고 반은 러시아에 가까운 환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미국이 말하는 것을 필터 없이 그냥 다 믿는다.
케인즈를 계몽주의적 또는 철학자처럼 비친 모습도 인상적이다. 화폐와 이자에 대한 이론적 배경도 전쟁, 전쟁의 종식 과정에 나타난 다양한 국가의 역할, 국가의 역할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 시장이 각 개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생각이 담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특히 요즘 이론적 경제학 이론과 같은 논리적 접근의 한계성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쉽게 4차 방정식 이상이 되면 문제를 푸는데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수가 넘쳐난다. 요소가 많고 복잡하면 인간의 수리력을 넘어선다는 말이다. 왜 학교에서 3차 방정식까지만 알려주겠어.. 그나마 마지막 숫자는 에라 모르겠다 무시하면서. 반면 너무 정밀하고 작아져도 계산이 안된다. 현미경을 만들고 미분을 하지만 결국엔 그냥 극한으로 수렴하면 0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엄밀하게 같지는 않지만 이런 것도 인간이 일일이 계산하는 범위를 넘어선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어중간하다. 다만 이런 어중간한 것들을 둘둘 묶어서 신기방기한 통찰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케인즈를 경제학적 용어와 조금씩 나타나는 판단을 보면 중간에 힘쓰자는 공자와 칸트의 말에 참 부합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 가격과 이자와 같이 확실한 숫자로 표출되는 것이 미래를 확정적으로 어떻게 바꾼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 경제분석이 항상 틀리고 경제 중계방송이란 소리를 듣는가? 숫자로 표출되지만 숫자가 내포하는 상황과 의미를 잘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그 상황이 매일매일 변화하면 의미의 변화를 따라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 또는 경제정책도 세상을 일구어 나가는 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한 시대는 시대를 풍미하는 생각이 있다. 그 생각은 인간이 처한 상황이 만든 필요다. 케인즈가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사고에서 탈제국주의적 사고를 갖으려는 노력(읽은 곳까지)은 전쟁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 그 시대의 생각 중 높고 고결한 00이즘 또는 시대를 관통하는 사유는 철학이다. 그 철학이 결국 시대의 주류 생각이라면 그 생각이 결국 인간의 문명과 생활에 영향을 주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반영한 제도와 법이 출현하고, 경제정책이 출현한다. 그 결과의 호불호에 따라서 유지되고 개선되고 폐기되는 정책이 출현하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 곧 국가의 문화, 세상의 문명이 변화한다.
10년, 2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시대는 이념적 접근보다 시대의 요구에 누가 더 부흥하는가의 문제다. 동시에 그 요구가 시대에 적절한가는 더욱 중요한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케인즈가 세상의 현상을 직시하고 그 세상이 운영되고 돌아가기 위해서 미국의 역량과 필요를 이해하는 것처럼 더 생각할 부분이 있다. 지금의 요구가 시대에 적절하고, 부합한다는 것이 우리가 살아갈 내일과 미래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 오늘 집 팔아서 내일부터 고기 먹자는 말이 아니란 말인데.. 더 읽다 보면 어떤 생각이 또 떠오르겠지.
#케인즈 #존메이너드케인스 #ROK #경제 #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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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에 무리해서 책을 마무리했다. 금융위기의 내용 부분은 건너뛴 부분이 있다. 책의 마무리 과정을 보면 케인스를 중심으로 그가 새로운 경제, 정치의 관점을 내는 배경과 결과, 이후 케인스의 사항이 세상에 미친 영향, 케인스의 사고를 이어받은 다양한 케인스주의자들이 펼쳐가는 다양한 세상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최고 기업의 정책을 보면 미국 기업들과 비교해서 약 한 세대 안쪽(30년)의 격차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기술적으로 과거 GE, SIEMENS가 전자에서 금융과 헬스케어로 이전하는 과정을 봐도 대략적인 격차는 보인다. 발전단계에 따른 산업 변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업가들의 말을 통해서 내가 생각하는 경영 철학은 25년~30년 격차라고 생각한다. 기술적 성장 단계는 이 보다 짧은 격차가 존재한다. 이 책을 읽으면 경제사상과 철학, 이것이 현실에 구현되는 경제 정책과 반응을 보면 더 큰 시간적 차이가 있다. 대략 6-70년의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 70년 전의 책 속 이야기가 왜 지금 내가 사는 동네 이야기하고 묘하게 동기화되는지 생각해 보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책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하이에크와 케인즈 사상적 대립은 현실에서는 정치적 해석, 프로파간다, 마타도어를 양산한다. 이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재정적자를 통한 불황의 극복은 많은 대중의 소비를 이끈다. 소비의 승수 효과를 내고 파멸에서 세상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부를 크게 구축한 입장에서는 내가 내는 막대한 세금은 자유로운 경쟁의 성취라는 생각, 이 세금이 경쟁이 아닌 분배(거의 불로소득이라고 보는 듯함)에 의한 상대적 착취라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의 경쟁우위의 승자들은 많은 일개미들의 소비에 의존한다. 그것이 정부 정책에 대한 비난과 비협조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와 케인즈 주의에 대한 비판의 사고도 인간이란 존재의 본능적 개연성을 보면 실존하는 현상이라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고도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예외로 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선전의 도구거나 아니면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념은 존중해야 한다.
경제 문제를 편향된 정치로 해석할 때 생기는 문제다. 사실 공산주의가 되었던 자본주의가 되었던 궁극적으로 "모두 잘 먹고 잘 살자"로 수렴한다. 단지 그 과정이 N빵을 먼저 할까 아니면 각자 알아서 하고 나중에 세금으로 N빵 할까라는 단순한 이론적 차이에 불과하다. 너무 과격하게 비교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조삼모사도 아닌데 순서의 차이로 인해 심각하고 지대한 문제가 생긴다.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이론적 차이처럼 이성적으로만 볼 수 없다. 본성 안에 이성이 존재하지, 이성안에 본성이 전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게으르고, 욕심이 생기고, 내 것이란 소유욕, 적대감, 경쟁심 등 다양한 생각이 나타나면 태도는 예측불허다. 미래가 불확실한 원인 중 인간의 기여도는 확실하게 높다. 연애할 때만 봐도 신뢰하는 상대방이 기대를 갖게 하고 다음날 깊은 빡침을 올리는 상반되는 행동을 종종 만들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생산성과 효과성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본능적이고 동기부여적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홀로 살아갈 수 없고, 사회, 공동체에 대한 협력과 결속이 필요한 인간에겐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일정한 공동의 부담과 약속이 필요할 뿐이다. 대개 약속을 안 지키거나 지킨다고 주장할 뿐인 녀석들 때문에 세상의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좋은 제도와 법을 양산하기 위해서 정치적 유연성과 리더십은 필요하다. 적확한 상황의 인식과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다. 그 행동에 따라 판단할 수 있고, 가끔 더러운 술수들이 다른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 발생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런 실제의 이야기를 몇 편에 걸쳐서 미국을 배경으로 책이 설명하고 있다.
2008년, 2019년 금융위기와 코로나로 예측되는 불황의 시기에 케인스의 말처럼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사용했다. 그리고 실물과 양적완화의 격차라고 할 수 있는 버블의 바람을 빼기 위해서 테이퍼링, 금리인상 조치가 실질적 데이터를 보며 조정되었다. 실질 데이터보다 더 만들어진 인플레이션이 어쩌면 버블이다. 불황의 시기에 실질금리의 인상을 위해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FRB가 세우고 이에 효과적인 정책을 실행한다. 미국을 보면 이 모든 정책에 달러교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 연준 의장이 교주처럼 보이는 이유도 별것이 아니다. 한 가지 차이는 08년의 원인은 극대화된 자유방임적이고 파렴치한 시장 확장으로 만들어진 경쟁의 결과다. 그 실패는 부의 분배 기능을 망가트렸다.(Big short이란 영화를 보시라) 경제와 윤리가 다른 문제 같지만 윤리와 도덕이란 사상이 경제에 어떻게 포함되는가는 시스템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 윤리적 철학적 사상은 시대의 필요에 기반함으로 결국 눈에 보이는 현상은 시대의 정신에서 자유로운 것이 없다. 19년은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모든 인류가 인내를 갖고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 각 나라의 정부도 불황처럼 막대한 재정지출,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다시 점진적인 일상으로의 회귀를 검토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경제조치가 불황의 극복과 유사하고 선제적이지만 원인적 측면에서 이 과정의 극복은 새로운 변화를 이끌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불가항력을 인간들의 이성적 노력과 인내로 만들어낸 사례라 인간이 사고 친 대공항, 불황과 같은 것과는 다른 결과를 갖고 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호황의 시기에는 무엇이 적절할까? 불황의 시기에 수요를 창출하려는 케인스의 사고는 탁월하다. 호황의 시기에는 금리, 재정정책, 통화정책을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한 쌍의 정책은 나쁘지 않다. 정치적 불만은 그 혜택과 비용 분담, 이에 따른 권리와 의무의 문제다. 경제적으로 분배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호황의 시기에는 핵심적 경제 주체의 권익을 보호하고 동물적 경쟁만 강조하는 것이 능사인가? 옛 말에 3일 굶으면 담을 넘고, 예(禮)를 알려면 궁끼는 면해야 한다고 했다. 호황이란 먹고사는 문제가 느슨해졌다는 말이다. 케인즈가 예술적 경지를 지향했다면 도덕, 철학, 문학, 예술, 음악, 그림, 예와 같은 문화적 성장이 호황기에 필요한 문제 아닐까? 왜 먹고살만하면 회식하고 노래방에 가겠나? 노래방 먼저 가고 회식은 대개 잘 안 하지. 그 순서가 인간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순서일 가능성이 높다. 정책은 다를까?
하이에크의 보수주의적 성향과 케인스라고 하는 진보적인 성향이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면 대개 회색분자 또는 욕먹기 쉬운 방법일 수 있다. 내 상상은 이렇다. 물과 기름이 함께 담기 비커에서 물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 가지 방법은 물만 잘 떠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기름만 잘 떠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물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방법과 기름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방법은 다르다. 그러나 동일한 결과를 찾을 수 있다. 집합과 여집합처럼 네모난 나무 조각으로 코끼리를 조각할지, 코끼리가 아닌 것만 제거할지의 문제와 같다. 모든 사안이 이렇지 않지만 이렇게 열린 사고가 중요하고 그래서 교육이 더욱 중요한 문제다.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면 논쟁은 치열할 수 있다. 그러나 5-6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과 논쟁,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좌파, 우파 논쟁(사실 대파만도 못한 논쟁)이 별반 차이가 없고 사람들을 호도한다. 무엇이 이 세상이 지향하는 바이고, 현재 상황에 무엇이 중요한가를 이해한다면 왼손이 하던 오른손이 하든 무슨 문제가 되는가? 어려서 덩샤오핑이 검정고양이가 쥐를 잡던, 하얀 고양이가 쥐를 잡던 쥐를 잘 잡으면 된다고 했다. 사회주의적 시스템에 가한 파격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정치적 해석이다. 경제적으로 무엇이 그들이 지향하는 세상으로 이끄는가를 생각하면 실리적인 판단이다. 이런 차이는 인간의 완벽하지 못하기에 가능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더 현명해질 수 있다. 나는 인간이 완벽하다면 꼴통이 만연한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누가 다 한쪽 방향으로만 완벽해진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결과를 보면 잘 한 선택 아닌가? 미국은 그 시대와 비교해서 현재 훨씬 좋아졌는가? 글쎄? 정치적 이해관계가 선제적 배분기회에 관한 논쟁이 되면(사실 잘 표가 안 나거나 더럽게 어렵고 못 알아듣게 설명하거나) 쇠퇴하고, 그나마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선의 입장이 고려되면 성공의 길에 가깝게 된다. 그런 점에서 불평등을 개선하고 도덕과 윤리적 올바름 또는 선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케인스가 시대를 넘어 효과적이고, 불황이 되면 온갖 출판사들이 죽었던 마르크스를 자본주의자가 말하는 자본주의에 비판을 위해 매번 소환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문제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조금 진보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100년의 시간을 함께 읽으면 느낀 점이다. 동시에 교육과 교육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배운 학습의 효과(어떤 면에서는 세뇌)가 세대의 사고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얼마 전 때아닌 교과서 논쟁에 온갖 사람들이 사활을 걸고 뛰어든 이유 또한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경제적인 결과에 영향을 주는 아주 정치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애먼 학생과 교사들이 불필요한 실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고, 무엇을 알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진실의 문제일 수 있다. 그 진실을 알아야 the price of peace를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표지의 말처럼 엄청나게 유익한 책이란 폴 크루그먼의 평이 있다. 공감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서 유익하게 사용해야 정말 유익한 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머릿속 저장만으로 유익해질 리가 만무하다.
#케인스 #평화의가격 #진보 #경제 #독서 #khori #다읽었다 #이제그만 #베개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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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을 읽어나가고 있다. 읽고 정리하는 것은 삶의 작은 시간을 들여 머리를 쓰고, 생각에 잠기는 휴식이 될 때가 있다. 당연히 피로가 몰려오거나 오늘처럼 읽다 잠을 자는 원인이 될 때도 있다. 얼마 전 학자가 될 것 같다는 댓글에 눈이 침침하다고 했더니 작작 좀 읽으라는 타박성 댓글이 달렸다. 삶도 일고, 즐거움도 해도 지랄, 안 해도 지랄, 하면 더 지랄이다. 적당한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케이즌가 전쟁 전후의 상황인식은 그가 풀어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후 리디아를 통해 본 러시아를 통해서도 영국 정당정치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내 관점에서 정치는 특정한 원칙과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수용하는 범위가 제한적이다. 경제는 생존, 성장, 합법성, 시대정신과 철학, 성장 단계에 따른 변화의 범위만큼 더 운신의 폭이 넓다. 그렇게 세상을 보면 경제는 좌우가 없지만, 정치가 개입하면 자신의 방향성에 따라 범위를 제한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의 방식이 책의 구닥다리 분류 방식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눠서 보자.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정책이라도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성장의 대가가 사회에 공감과 평화의 씨앗을 내리는가? 대립과 불만의 씨앗을 심는가의 문제다. 모두가 전자를 지지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일이 내 이익과 관련되면 사람들의 태도는 다르다. 그 정도가 사회의 수준이다. 동시에 내가 혐오하는 상대방을 돕지 않는 방식의 선택도 만연한다. 양립할 수 없다는 단정은 검증이 필요하다. 케인즈의 말처럼 이런 획일적인고 편협한 무지가 문명 발전이 더디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케인즈를 보면 무지에 대한 혐오가 있다. 무지가 양산하는 폐해는 너무나 다양하다는 생각과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어떤 면에서 사회 부적응자 같고 불만이 많아지는지 이해도 된다. 그 사이에서 양립할 수 있는 관점, 사고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지식인들의 깊은 성찰, 사회에 대한 관심,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백 년 전의 이야기와 기록을 토대로 케인즈를 타인에 의해서 알아간다. 시대가 백 년 전이지만 현재의 시대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2008년의 금융위기를 1차 세계대전으로 2020년 코로나 펜데믹을 2차 세계대전으로 가정하고 읽어도 별반 차이가 없다. 전쟁의 고통이 크지만 생존의 위협이란 관점에서 둘은 교집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의미 있고 재미있는 말도 많다. 책을 잘 접지 않는데 몇 페이지를 접어놨다. "케인스는 확률과 동계적 빈도에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라는 문장을 몇 번 읽어봤다. 지금 시대에는 이런 부분이 더 고도화되는 중이다. 그러나 카지노 확률을 생각해 봤다. 손님이 이길 확률 49%, 카지노가 이길 확률 51%는 상당히 괜찮아 보이지만 그 확률이 만들어지는 빈도, 베팅과 수익의 총액 관리 관점으로 보면 이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 알게 된다. 한 명이 잭팟을 맞아 49%를 채우면 나머지는 모두 호구다. 그런데 확률은 맞다. 빈도 외에도 가중치도 생각해 볼 부분이란 생각을 했다. 경제가 로또는 아니니까. 그 문장의 마지막에 "확률을 판단하는 데 수학적 데이터가 유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확률 자체는 될 수 없다"라는 말도 재미있다. 나는 이것을 시간의 개념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할 때의 확률은 그것을 무한대로 일반화해서 수렴한 확률과 다르다는 것으로 생각해 봤다. 게다가 "합리적인 것과 옳은 것 사이에는 차이다 있다"는 말은 그의 사고가 다각적이고 더 깊은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펜데믹이 발생하고 정부의 적자재정의 증가를 통한 정부지출의 강화, 금융시스템에 대한 양적완화가 진행되었다. 그 재정지출과 비용의 규모라면 전쟁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막대한 비용임에 틀림없다. 사실 그 돈은 모두 국민과 기업에게서 나온다. 그 돈이 다시 국민과 경제시스템의 윤활유로 작용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백 년 전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이 고통받았지만 또 그 과정에서 막대한 혜택을 보는 계층도 있었다. 지금은 이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독재국가, 후진적 정치체제가 있는 소수의 국가에서나 발생한다. 인류가 그만큼 학습효과가 생겼다는 말이다. 케인즈가 잦은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경제를 죽이고, 경제활동의 참여자인 사람, 국가, 시장, 자본 또한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나의 지출이 너의 소득이고, 너의 지출이 타인의 소득이란 개념이 더 많이 언급된다. 그런데 경주 최부자가 100리 안을 관리하는 이유도 그것이 자신이 보유한 부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는 양립 가능한 방법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의 연결고리와 역학관계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나는 천 년 전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과학기술이 범위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이 본질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속에 이것을 이해하고 활용해서 세상의 발전을 견인하려는 사람과,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또 이해했다고 구현한다는 말은 아니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사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어느 세대라도 내가 급변하는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려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인 부모님은 그때는 굶주리고 힘들고 어려웠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최근에는 요즘 세상이 과거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이 드신다고도 한다. 케인즈의 위대한 업적은 더 읽어봐야겠다. 한 가지 확실한 부분은 노자처럼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비이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독자의 본능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란 표현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어떤 상황과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상황의 인과 관계와 복잡한 연결성을 파악하고, 현상으로 나타난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다. 그 후에 유지하고자 하는 대상, 앞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 문제의 해결과 예측이란 다양한 것을 고려해서 조치해야 하고 이 또한 합리적이고 옳은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옳은 방향까지 더하는 것은 미래과 연관되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시간 제약이 있다면 합리적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읽을수록 매력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아도 세상은 정치와 편견이 관여하면 이런 말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식인의 고뇌를 통해 나온 바른 소리 하면 정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을 지향하는 큰 손과 큰 손이 되고 싶은 왕의 이전투구 속에서 지식인이 올바르고 합리적으로 걸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케인스와 같은 생각이 동양에도 우리나라에서 있었겠지. 단지 그것을 구현해야 할 때, 그것을 구현한 의지, 역량, 준비가 안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연휴에는 다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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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에 나누어 읽으려는 의도는 철회해야겠다. 대공항, 희소성의 종말로 이루어지는 편을 읽으며 100년 전의 이야기가 맞는지 되새긴다. 최근 많은 경제 관련 이슈와 뉴스에서 언급되는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일반이론'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개념적으로는 이 책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책 표지 옆에 작은 글씨로 쓰인 "The price of peace"라는 문구가 새삼스럽다.
경제학은 식민지 시대에 생존학으로 번역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현대적 경제학은 글쎄 100년, 애덤 스미스부터 계산해도 300년이다. 대학시절 이야기하던 말처럼 사회과학은 과학인가? 더 직접적으로 경제학은 과학인가? 내 생각에 과학은 아니다. 무슨 법칙과 원리가 상황이 바뀌면 매번 틀리나? 그러나 관념적인 개념 접근에 과학에서 사용하는 수리적 기법을 통한 가설, 검증, 입증이란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과학은 아니지만 과학적이거나 과학처럼 하려는 경향이 높은 학문은 맞다. 솔직하게 인간의 두뇌로 처리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을 반영하지 못하고 간단하게 만들다 보니 맞을 때도 틀릴 때도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알아서 잘 적응해야 하고,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따라 다르다. 자신의 학습 수준과 경험, 통찰력에 따라 경제학은 같은 수업을 들어도 큰 결과 차이가 나는 학문일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은 확고부동한 자연의 법칙에 대한 냉혹한 과학적 탐색이 아니고 인간이 택한 정치 방식의 동향에 대한 일련의 관측일 뿐이었다"는 책의 문구가 아주 맘에 드는 이유다. 이런 관점이 개인과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과 효과를 만들까? 그것이 중요하다.
절약보다 수요를 이끌어 낼 과감한 투자(물론 감당할 범위 안이라고 생각)가 필요하고, 어떤 면에서 시장의 이해관계자이며 막강한 힘을 갖은 국가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타당하다. 갈수록 정부조달 시장의 규모와 힘이 강력해지는 것을 보면 100년 뒤의 세상인 현재에 케인즈의 의견은 세상에 유효한 셈이다.
K9 자주포를 정부가 사면 50억이란 돈이 기업과 협력사에 내려가고, 다시 그 돈은 임금으로 분배된다. 그 임금은 다시 소비가 되어 타인의 소득이자 다른 기업의 수입으로 이전된다. 이렇게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정부는 다시 세금을 환수한다. 이 고리가 끊어지는 지점부터 승수효과는 사라진다. 또 이런 지출이 유지되다가 갑자기 없어지면 반대의 현상, 마이너스 승수효과가 난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100년 전에는 잘 정리되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이해하는 사람이 그 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단편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고,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은 개인의 판단, 기업의 태도, 정부의 정책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가능하다. 해결책은 경제적인 결과로 측정되겠지만 '개인, 기업, 정부가 그런 마음이 생기도록 어떻게 유인할까' 명제를 구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결정 권한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따라서 각 참여자들이 느끼는 불평등, 평등의 수준은 결정된다. 이 관점을 갖고 경제와 정치를 바라보면 더 효과적이다.
현상은 경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해결을 위한 정책, 제도의 지원이 없다면 개인적인 노력에 따라 제한적으로 결정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불평등을 양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케인즈가 정치에 대한 관점을 갖는 것은 이런 배경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실패는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말은 나도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시장에 널린 물건을 보며 무조건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드는 바보는 없다. 욕구(want)와 필요(need)란 수요가 공급을 유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인간의 부작용은 감정적으로 욕구와 필요를 과대망상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고, 합리적 이성이 돌아올 때 후회와 현타가 발생할 뿐이다. 바보도 한 달 뒤에 먹을 자장면을 지금 주문하지 않는다. 이런 실수와 부작용이 시스템적으로 발생하면 재앙이 발생한다. 케인즈가 대공항을 바라보는 관점도 비슷하다. (사실 다 같이 한 일인데 모든 원인이 한 놈들 탓이라는 것은 너무 무지한 망상이다. 사실 프로파간다에 가깝지만)
케인즈의 사상이 미국에서 실현되는(?) 과정은 2008년 금융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읽었던 퍼즐 조각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한 이해를 보면 대공항이란 어떤 관점에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불명예에 가깝다. 그 과정에 국제적 담합의 순환고리가 존재하고 탐욕, 적대심도 있다. 상황의 변화가 극적으로 좋아지면 별일이 없었겠지만, 악화일로가 되면 순환고리는 활화산의 순환고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 삐딱선을 타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인간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부작용이다. 도스 법, 금산분리의 기원이라고 하는 글래스-스티걸 법안의 과정을 보면 당시의 심각성보다 웃음이 난다. 이 과정에서 루스벨트가 금융시스템에 신뢰를 주려는 노력은 현명하고 또 인상적이다. 그러면 이것은 경제 문제인가 종교와 같은 믿음의 문제인가? 왜 심리학이 경제에 자주 나오는지 이해해야 하는 대목이다.
나는 제1금융권과 우리가 상상하는 사채(합법적이란 기준, 장기매매 이런 것 제외하고)의 차이를 이자율의 차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케인즈가 투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따른다는 의견은 존중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투자는 기업의 투자 내용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 즉 금융권의 투자 승인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이 문제를 상쇄하기 위해서 정부지원 프로그램들이 존재하긴 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위험을 관리하는 객관성의 측면에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자금이 기업에게 연결되는 중간 밸브 관리자들의 농간으로 사라지는 비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신뢰하지 않는 시스템(예를 들면 야바위)의 참여자가 저조하고, 신뢰하는 시스템(예를 들어 은행)의 참여자 수가 다른 것은 당연한다. 그런데 경제에 대한 참여자의 신뢰가 무너지면 재앙이 생긴다. 은행은 신뢰할만한가? 혁명 쿠데타 횟수와 뱅크런의 횟수를 비교하면 무엇이 많을까? 그것이 신뢰의 정도를 볼 수 있는 하나의 입증자료가 아닐까? 금융의 투명성은 제도적으로 더 규제의 틀이 명확하고 엄격해야 한다. 사실 남의 돈으로 투자에 대한 자금 투입을 결정하고 삽만 한 숟가락을 너무 얹는다. 가끔 일하지 않는 포클레인 같아 보일 때가 있다. 망해도 항상 정부에 제일 먼저 손 벌리는 대상이다. 기업은 또 은행을 거쳐서 손을 벌린다. 수도꼭지를 맡겼더니 돌릴 때마다 고리를 뜯는 느낌이랄까? 순기능이 많지만, 내가 금융권에 갖는 편견이다.
지출(마중물)을 통해서 펌핑을 한다는 케인즈의 생각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고와 행동의 결과란 측면에서 아주 효과적이다. 일에 순서가 뒤바뀌면 좋은 계획도 망할 수 있다. 불이 나서 화재경보기를 누르면 표창을 받지만, 화재경보기를 누르고 불 지르면 감방에 가는 이유와 같다. 경제 정책에서 후자와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장담은 아무도 할 수 없다. 심증적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빈도가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ㅎㅎ 사람들은 재앙과 불편을 직면한 뒤에 그 놈들이 화재경보기 누르고 불 질렀다는 것을 가끔 알 수가 있을 뿐이다. 민주적인 공소시효가 면죄부를 주기도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아주 경계해야 할 종자들이다. 경제와 더불어 올바른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케인즈의 탁견에 공감을 보내는 이유다.
희소성의 종말이란 챕터는 누구나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교과서의 내용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지만 교과서도 안 보면 중간도 못 간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애꾸가 장님을 쫓아가는 일을 할 수 있다.(신체적 결함을 비하할 의도는 아니라 더 효과적이고 적절한 비유가 생각나면 바꾸겠음) 현실에서 경제의 불완전성, 임금이 경제에서 말하는 최소의 투입에 따른 최대 효과(이 말이 한계효용 임)에 따라 최소에 수렴될 가능성이 많다는 말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고 최대의 투입으로 극대의 만족이란 조건에서 최대의 의미는 '주어야 하는 최대 금액'이 아니라 '주고 싶은 최대 금액'(또는 줄 수 있는)이란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분쟁은 해석 문제다. 내 해석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자의 해석이 중요하다. 확인이 중요한 이유를 알면 삶이 조금 현명해진다.
초기 확률과 빈도에 대한 케인즈의 말처럼 효율성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효율의 정의,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기준, 효율을 만드는 원인과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효율을 추구하는 그 대상과 목적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일이 시작된다. 쓸데없는 일을 더 효율적으로 쓸데없이 만들기 위한 노력은 드물다. 경제에서 돈과 신용관리는 국가의 고유 기능이고 이에 원인 제공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케인즈의 관점이다. 어떤 면에서 경제 성장이란 이름하에 나라님 옥새를 찍어야 하는 일을 또 다른 시장 참여자들이 맘대로 해왔다. 이것을 고상하게 자유방임주의, 신자유주의(여긴 제도를 활용?)란 이름으로 과하게 진행된 시대를 살았다. 인간의 욕망에 부합하지만 올바른 방향과 균형적인 성장과 배분의 사회적 시스템을 위해 과유불급은 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화폐, 돈에 대한 케인즈의 생각을 보면 "돈을 다양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 정보를 전달하는 메커니즘이자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소유한 물질의 가치를 안전하게 판단하게 하는 가치의 저장고로 인식했다"는 말은 재화의 교환 수단이란 고전 경제학자들의 생각보다 세련되고 적절하다. 그가 신용을 강조하는 것은 이 문장을 통해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금본위 제도를 탈피한 지금 달러의 강세 또는 달러의 약세는 그 화폐에 대한 신용의 변동이다. 달러의 가치(이자율, 총통화 공급량)를 결정하는 FRB와 달러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미국에 대한 신용의 변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환율이 항상 수요 공급에 의해서만 결정이 되는가? 작년 통화스왑 이슈가 나올 때 갑자기 폭등한 환율이 수요공급에 의한 결과일까? Panic sales가 더 적절한다. 통화스왑이 결정되자마자 폭락한 환율도 수요공급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미래의 가능성, 그 가능성이 신뢰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요즘 FOMC 회의에서 나오는 제롬 파월의 입에 전 세계가 업 앤 다운을 한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신용인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믿을 만한 행동이 될 때 신뢰가 형성된다.(요즘은 인터벌도 짧고 이랬다 저랬던 널을 뛴다. 정확하게 지들도 모른다는 말이지 뭐)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항상 아리까리한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얍삽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불확실성은 어쩔 수 없다. 대신 과정이 민주적이고 투명하다면 신뢰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경제규모를 생각하면 깜깜이를 조금 벗어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투명성이 얼마나 떨어지면 금피아란 말이 나오나.
케인즈가 경제문제를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의 문제라고 믿었던 이유는 그의 사고 흐름을 따라 걷다 보면 너무 당연한 결과다. 주어진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배경과 원인을 두루 넓게 보고 다시 문제의 근본에 다가서는 사고가 시대의 사람으로 남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에 3개 챕터를 더 읽었다. 일반이론이란 위대한 업적, 2차 세계대전과 전후 복구를 위한 국가 간의 활동에 대한 케인스의 견해를 볼 수 있다. 특히 하이에크에 대한 편지를 통해 아량과 겸손의 수준을 알게 된다. 일상에서 선빵이란 사실 약자의 전략에 불과하다. 자유를 기존 세상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세상 사람들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의 차이다. 내 관점에서 둘 다 자유를 지향한다는 점은 긍정적이고, 자유의 범위가 다르다는 것은 이견이 나뉜다.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고저의 차이에 따라 한 쪽은 다른 쪽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비난한다. 70~80년 전의 철학적 논쟁을 내가 사는 현대의 시대에도 보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움이다. 인간의 세상이 더딘 것은 시대의 철학과 실행의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이 세상에 구축되는 오랜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존재하고 사라져 가며 조금씩 더하고, 덜어내는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우던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한 체감은 없다. 교과서에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의 정략적 결정을 보면 70~80년 전의 미국은 시대를 보는 통찰이 있었다. 케인스도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의도만큼 실현한 힘이 부족했다. 개인에게 차라리 안 보인다면 별일이 아니지만 잘 이해하고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예전에 읽던 화폐전쟁, 중국이 현재 미국과의 분쟁을 예견하던 책들을 보면 시대의 변화와 흐름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미국은 영국의 금권을 전쟁의 과정에서 쉽게 인수했다. 지금은 중국의 잠재력을 보며 선빵을 날리는 중이다. 내가 사는 시대는 미국의 힘이 남아있겠지만 우리 자식 세대, 손자 세대는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해 볼 부분이다.
무엇보다 전쟁, 분쟁, 불안정한 사회에 대한 진단을 현실적으로 바라본 케인스의 시야가 좋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하지 못한다'는 말은 자립을 요구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해왔다. 문득 극심한 가난은 나라가 운영되지 못한다는 말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케인스가 2차 세계대전을 극심한 실업이 불러온 사태로 파악한 점이다. 생존의 위협은 사람을 이성적인 존재에서 동물적인 존재에 가깝게 만든다. 하이에크가 비난한 루스벨트의 4대 자유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동물적 본성을 중심으로 이성을 조금 더 할 것인가? 동물적 본성을 근간으로 이성적 역량을 쌓아 갈 것인가? 개인도 국가도 세상도 그 선택에서 자유롭지 않다. 생존력은 전자가 더 강하겠지만 후자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둘의 균형이 시대의 안정을 결정하는 것 아닐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완독이 가까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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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책을 보다보면 제일많이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인즈가 누구다라는건 대략은 알고있지만 자서전 형식의 책은 처음이라 기대가 됩니다. 근데,,,,,,저 벽돌을,,,, 언제 다읽나,,,,, 설마 너무 재미있어서 줄어가는 페이지가 아깝지는 않을런지,,,, 희망사항 입니다^^ 01 케인스, 금을 구하러 런던으로 오다 02 피로 물든 돈 03 실망으로 점철된 파리평화회의 04 평화의 참담한 결과 05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돈의 세계로 06 사회주의로의 입문 07 대공황 08 불사조 케인스 09 희소성의 종말 10 혁명의 도래 11 전쟁과 반혁명 12 좋은 삶을 위한 열사 13 보수 특권층의 반격 14 풍요로운 사회에 가려진 민낯 15 끝의 시작 16 19세기의 부활 17 제2의 도금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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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대란의 우여곡절 끝에 2차례 배송으로 겨우 전달받은 소중한 책 입니다. 책이 매우 두껍고 다소 아쉬운 번역이지만 잘 읽히는 내용과 편집이라고 생각하고요. 보이지 않는 손을 부정하는 케인스의 이론은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서방의 경제학자 중 한명인데요. 이 사람의 총론 격인 책이 나오게 되어 아주 유익하게 잘 읽었습니다. 표지의 엄청 유익한 책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20세기 경제학의 큰 거목인 케인스의 많은 것을 알게 해 준 책 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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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경제학 서적 중 최고입니다. 시대적 긴박감과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결론이 왜 그런 상황이 도출될 수 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가까울수록 상위 1%에 부가 더 집중되는지를 정책결정자들의 상황 논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결론은 결국 마지막에 나와 있는 문구가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8년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48조 달러의 세계 경제를 단순히 모든 인구에 분배하면 4인 가족의 경우 2만 8,000 달러를 받게 되는데, 이는 생활비가 비교적 높은 미국은 물론이고 그 외 모든 나라에서 빈곤을 종식시키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인류가 겪는 경제적 문제는 더 이상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 즉 불평등의 문제이다. " |
| 위대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인생과 사상을 담아낸 전기입니다. 흔히 케인스는 뛰어난 경제학자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카터는 케인스가 탁월한 반권위주의 사상가였으며 예술과 사상이 전쟁과 결핍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평생을 바쳤던 인물이었음을 그의 생애를 통해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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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국에는, 모두가 죽는다. 하지만 종국에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 p777 케인즈주의는 급진적 낙관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인즈의 이념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 때문에 모순이 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케인즈의 이념을 계승하고 있는 이유는 더 나은 세상이 있을 것이다라고 비전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것들은 인간을 통해 구현된다면 모순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거 같다. 왜냐하면 인간은 항상 모순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위해서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존재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