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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 아래서 윤주은
화다닥 핀 꽃들이 봄비에 후루룩 지고 마는 짧은 봄날 이승의 여행도 그럴까 갸우뚱 젖어드는 졸음 섞인 오후
살금살금 지나왔을 전생의 빙판길 펌프를 타고 나무마다 꽃 물살로 쏟아지는 순간 누군가 부르는 소리 들렸던 것도 같은데
배낭을 메고 주춤주춤 이대로 괜찮을까 갚고 갈 은혜라면 오늘 전하고 싶네 후생의 문 열리기 전에
윤주은 시집 「113-6 구역」 문학과사람 2021 P111
최근 몇 년 돌이켜보면 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인가 싶었는데 눈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양지쪽에선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또 어떤가? 이꽃 저꽃 빨간꽃 노란꽃 정신없이 피기 시작한다. 도무지 순서라는 것이 없어서 기다리는 마음도 감상할 여유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꽃이 한창 피기 시작할 때는 꼭 비가 한 번쯤 내려 심술을 부린다. 뭉텅이 뭉텅이 고개 꺾인 꽃가지이 얼마나 많은가?
화다닥 핀 꽃들이 봄비에 후루룩 지고 마는 짧은 봄날
인생도 그런 것일까? 돌아보면 한나절 꽃구경처럼 후루룩 지는 것이라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돈돈돈거리는 그런 잘사는 거 말고 ...
내가 요즘 드는 생각은 나의 전생은 꽤 괜찮게 살았지 싶다. 살면서 잔돌 몇 개쯤 채이는 것은 다들 있는 것이고 그것 또한 그만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이전 생의 덕으로 이번 생은 큰 어려움 없이 사는 게 아닐까 여겨진다. 고맙지 않은 순간들이 없다. 그렇다면 다음 생으로 누구의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면 그 생 역시 지금의 수준은 되어야 할 텐데 책임감이 느껴진다. 꽃나무 아래서 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배낭을 메고 주춤주춤 이대로 괜찮을까 갚고 갈 은혜라면 오늘 전하고 싶네 후생의 문 열리기 전에
내가 아는 시인은 아이같이 맑은 웃음을 가진 사람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이다. 부조리한 것을 보면 부르르 주먹을 쥘 줄도 알고 어려운 손에는 기꺼이 보시하는 사람이다.
이번 시집 113-6 구역은 1부는 재개발지역 113-6구역에 대한 것, 2부와 3부는 수원화성에 대한 것 4부는 평소 시인이 갖는 단상을 담았다. 재개발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작고 최소한의 소망이 거대한 자본의 논리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본 앞에 속절없이 스러지는 힘없는 사람들과 앞뒤가 어긋나고 타협하는 군상들. 시인이 정말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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