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을 전공했고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범죄, 남성섹슈얼리티, 소비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불온하거나 저속하다는 이유로 배제된 소설장르를 재평하하고 비평적 관심의 바깥에 머물던 문학지형을 탐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물로 <범죄소설의 계보학> <남성섹슈얼리티의 위계> 이후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패션의 권력학>을 냄으로써 3부작 프로젝트를 완결한 셈이라고. 앞선 두 책에선 어떤 소설들을 바탕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책의 경우 19세기 영국에서 댄디문학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분석하고 있다. 이 댄디즘은 유미주의로 연결되기도 하고 문학비평의 새 지평을 열기도 하면서 과도기적 장르로서의 불꽃을 화려하게 피워올렸고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미학적 소비'에 대해선 여전히 시사하는바가 컸다.
땅을 기반으로 세습되는 귀족의 부와 명예는 산업혁명이후 자본을 성장한 세력에게 침식당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은 가진것이라곤 노동력 하나뿐인 이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명예혁명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절대왕권을 무시할 수 있게 해주었으나 따지고 보면 이 혁명들은 혁명이라고 볼 수 없었다. 뒤집어진게 없었다. 땅을 소유한 귀족들은 여전히 부유했고 명예는 더욱 탄탄해진 것 같은 영국사회에서 귀족계층에 대한 선망은 높아져만 갔다. 당대엔 비하적 의미로 붙인 표현이 하나의 사조가 되는 경우가 많듯이 실버포크 소설이라는 표현또한 시작은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막대한 부에 문화적 소양까지 물려받은 최상류계급을 가리키는 실버포크, 이 질시의 표현이 선망이 된 것은 전적으로 중간계급 독자 덕분이었다.
이른바 졸부들이 득실대기 시작했을때 젊은 귀족들은 이제 '부'에서의 우월함은 잃은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자신들만의 우월성, 차별성에 대한 욕망을 무엇으로 표출할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이 댄디즘이었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자수성가한 촌티나는 졸부들과 다르게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쓸모없는 것들에 금화를 뿌리며 화려한 파티를 즐기는 동시에 세련되고 독특한 패션으로 문화적 소양만큼은 '세습'되는 것임을 보여주려 했다. 어떻게 보면 우스울 수 있는 이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식의 댄디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하지만 의외로 이 댄디들에 대한 선망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과열되어 실버포크 소설은 중간계급에게 소비지침서이자 문화지침서가 되어갔다.
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실버포크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어도어 훅(1788~1841) 의 초상이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혈통적 특권은 없었으나 타고난 수완으로 인맥을 쌓아 조지4세의 측근이 된 그는 '목표에 도달한, 궁정광대라는 호칭보다 더 나은 직함을 지니지 못한, 속물근성의 완성자'로 불린다고 한다. 채무자감옥에서 쓴 소설로 데뷔한 그는 지속적으로 실버포크 소설을 써냈고 큰 인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아무도 그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 시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반영하는가에 따라 문학의 수명이 정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행과 통찰은 분명 다를 것이므로. '초창기 실버포크 소설에는 당대 귀족계급의 삶에 대한 묘사와 함께 이들 계급에 대한 비판과 사회개혁의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었다. (p. 55)' 그러나 사람들이 열광했던 부분은 '메시지'가 아니었다. 귀족들의 생활방식과 패션양식과 소비패턴이었다. 당연히 이후 실버포크 소설은 점점 더 대중들이 원하는 내용을 구체화하게 된다. '문화자본을 이용한 승부는, 귀족계급에게 남은 유일한 전략이었다. (p. 86)' 따라잡힐 것 같은 위기감은 점점더 극단적인 댄디즘을 추구하게 된다.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댄디의 '반항'은 더욱 격렬해졌고, 세기말의 흐름 속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1891년에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p. 112)' 오스카 와일드(1854~1900)도 귀족계층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속에서 그가 추구하는 무위와 권태와 사치의 모습은 댄디 그 자체였다. 아마도 그가 추구한 '유미주의'는 댄디들에 대한 선망이자 댄디가 되고싶은 욕망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오스카 와일드, 그가 살았던 시대는 딱 댄디즘의 시대였다. 그의 사망이후 20세기가 막을 내렸을때 댄디주의는 이미 끝나있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었을때 명확히 이해되지 않던 오스카 와일드의 사고방식이 이 책을 읽으며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와일드의 삶은 댄디즘 자체였고 그의 말로 또한 댄디즘와 말로와 다르지 않았다. 동성연애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박탈당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영국 국적은 1998년에야 회복되었다.(p. 115)' 와일드의 동상은 커다란 바위위에 여전히 나른하게 누워있다.
'실버포크 소설은 여성에 대한 젠더적 편견을 수용하고 확장함으로써 당대의 젠더이데올로기를 옹호하고 강화했다. (p. 136)' 중간계급 남성이 자신들을 화려하게 치장할때 집안의 여자들은 소박하고 순종적이며 무엇보다 순결하게 무성의 존재로 있어야 했다. 그래야 화려하고 방탕한 귀족여인들과 차별적 우월성을 획득한다고 생각했다. 미혼여성들에게 실버포크 소설이 끼친 영향력은 그 소비패턴이 중적적이었다. '실버포크 소설은 여성을 외모와 세련된 매너를 무기로 결혼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존재로 재현하고, 결혼상대자를 확보했는지 여부로 여성의 성공과 실패를 판정함으로써 젠더적 편견을 옹호하고 재생산했다. (p. 153)' 댄디즘의 여성성이 남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거나말거나 여하튼 여성의 입장에서는, 무성적 아내나 결혼시장에서 팔리는 처녀나 젠더적 편견은 그저 확고해질 뿐이었다.
실버포크 소설의 몰락을 견인한 대표 문인이 칼라일 이었다. '칼라일이 제시하는 영웅은 댄디의 여성성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주체이며, 그가 주창한 영웅주의는 당대의 젠더이데올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p. 177) 강고하게 형성된 반댄디즘 대오는 댄디의 스펙터클을 경탄과 부러움의 대상에서 경멸과 혐오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렸다. 댄디를 둘러싸던 광채는 사라졌고, 댄디는 무대 바깥으로 밀려났다. 세기말에 이르러 중간계급의 실용주의를 거부하고 우아함과 쾌락, 포즈의 예술을 선포한 유미주의가 나타나기까지, 한때 댄디즘을 환하게 비추던 조명은 꺼진 채로 남아 있었다. (p. 180)'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속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는 굉장히 모순적인 느낌이었다. 와일드가 살던 시대가 그러했다. 유미주의는 댄디즘의 마지막 발악이 아니었을까.
'<두 도시 이야기>에서 디킨스는 프랑스 혁명의 시간이 '최고의 시절이면서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고 썼다. 그가 사용한 표현은 19세기 초반의 영국으로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있다. 영국의 19세기 전반부는 변혁과 저항, 갈등과 충돌, 협상화 화해, 영광과 수치가 함께하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 시절 모든 이들이 몰두하던 사회적 의제는 빠르게 다른 것으로 바뀌었고, 한때 빛나던 존재들은 다음 순간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p. 190)' 실버포크 소설이 유행하던 시대라고 해서 그 문학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디킨스와 칼라일과 새커리를 들자면 그중에서도 실버포크 소설의 대척지점에 칼라일과 새커리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디킨스의 연민이 가장 좋다. 그때 빛나던 그의 소설은 지금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굶주린 1840년대'를 지나며 그토록 우려했던 노동자혁명은 발생하지 않았다. (p. 220)' 어쩌면 이것이 여전히 귀속숭배가 남아있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혁명이 일어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문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영국도 그리고 미국도 권력층에 대한 시민혁명은 노동자혁명은 없었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선 상위계층에 대한 선망의식이 따라하기가 너무나 뚜렷하고 또렷하게 지속되고 있어 보인다. 평등해졌다고 하는 시대에 평등하기를 거부하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저자는 '세기말의 체게바라 '산업'은 저항과 투쟁의 신화마저 패션으로 소비되는 풍경을 내려오는 막 위에 그려 넣었다. (p. 229)' 며 여전히 '판타지와 악몽이 결합된 소비의 시간 (p. 229)' 이 흐르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소비의 수준은 계층을 나누고 패션의 권력은 여전히 통하는 사회에서 댄디즘이 아닌 또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따라하기'는 영원하고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는 욕망도 지속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록 19세기 영국사회에 국한된 내용이었지만 '소비'와 '문학'을 연결한 분석은 무척 신선하고 흥미진진했다. 앞으로도 저자의 새로운 문학비평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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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혁명을 맞아 부르주아 계층이 부상하고 중간 계급은 귀족 계급 중심의 사회 질서를 위협한다. 중간 계급은 경제적 지위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위까지 가져갔다. 귀족 계급에게 남은 것은 문화적 지위였다. 귀족 계급은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유럽대륙의 문화와 예술에 해박하며 첨단 패션을 소비하는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우며 중간 계급과 선을 그으려 했다.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많은 시간을 들여 외모를 치장하고 화려한 패션으로 여유로운 혹은 나태한 시간을 보낸다. 중간 계급은 귀족 계급에 대한 구체적 묘사로 가득한 실버 포크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소비를 흉내 낸다. 매장의 이름과 디자이너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등장한다는 묘사에서 실버 포크 소설은 현대의 매거진이나 가십지의 위상까지 가지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책은 섭정황태자 시절에 등장했던 실버 포크 소설을 분석하며 귀족 계급의 허영과 중간 계급의 욕망을 당대 비평가의 입을 빌려 말한다. 이런 현상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유명 연예인들이 착용하는 재화의 소비는 합리적이거나 실용적이지 않다. 댄디즘의 창시자이자 책의 표지 모델이기도 한 뷰 브러멜의 쓸쓸한 죽음은 귀족 계급의 멸망의 예고편이었다. 귀족 계급은 현대 남성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남기고 결국 시대의 거센 흐름에 멸망한다. 실버 포크 소설도 퍼프 서평 마케팅만을 남겼을 뿐 현대에는 읽히지 않는다. 21세기에서도 서비스직의 무인화를 비롯한 시대적 흐름에 따른 멸망을 목도할 수 있다. 어설픈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큰 파도는 막을 수 없다. '감히' 짐작할 수 없는 22세기를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실버 포크 소설의 풍부한 예시도 흥미로웠으며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지금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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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도 "과소비"의 시대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있고, 돈만 있다면 못 살것이 없는 시대이다. 당연한거 같지만 우리가 이렇게 풍족하게 살게 된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의 넘쳐나는 물건들속에서 우리는 나름의 기준으로 선택을 하게된다. 그 기준은 누구에겐 가성비일 수도 있고, 누구에겐 남다른 추억 또는 무언가의 의미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남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에 우리의 기준이 되는 그 무엇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19세기를 관통하는 지점에서 댄디즘에 주목하고 있다. 귀족들이 신흥 부르주아들에게 쌓아올린 장벽으로서의 패션을 이야기한다. 패션이라하면 대부분 여성의 관점과 여성의 소비를 먼저 떠올리지만 당시 영국의 상황에서 영국 귀족 남성들의 댄디즘을 파헤치며 패션의 권력화 과정을 설명하는 점이 재미있다. 마치 프랑스의 미식이 그토록 어렵고도 복잡하게 발전한 이유와 상통되는 대목인데, 미리 이 책을 읽었다면 나의 책 "유럽을 맛있게 먹는 방법"에 정찬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게 하는 책이다. 비단 패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소비가 여성이 주도하는 까닭에 여성의 관점과 여성 위주의 정보들이 주류를 이루는 와중에, 지극히 남자의 관점으로 남자의 역사를 (비록 마이너한 부분이지만) 정면으로 다룬 저자의 관심이 아주 흥미로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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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권력을 상징한다? 옷은 그 옛날 신분과 계급을 상징했다. 성직자, 귀족, 서민 혹은 양반과 상인, 농민 혹은 문관과 무관의 옷의 식별이랄까. 이 책에서는 19세기 영국의 신분과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산업혁명을 통해 기존의 경제적.계급적 질서가 무너져 중간계급이 급성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들의 도전과 기회로 다가왔다. 토지를 기반으로 농업생산에 전적으로 의지하던 귀족계급은 타격을 받았고, 곡물법 제정 등으로 이익을 보장하려 했지만 탐욕과 이기심이 가득한 집단으로 비추어질 뿐이었다. 귀족계급에 대한 실망과 혐오는 대중의 저항감을 촉발시켰고, 정치적 몰락은 가속화되었다. 중간계급은 새로운 경제적 지위에 걸맞은 사회적 존경을 욕망했는데 이는 귀족계급의 삶을 따라하고 모방하기에 이르렀다. 섭정황태자시대(1811~1820)에 패션과 소비는 화려함과 사치가 절정에 이르었으며 조지4세의 격려 속에 댄디즘을 꽃을 피웠다. 중간계급에게 소설은 "지식의 매개체"와 "정보체계"가 되었으며 이는 귀족 따라하기의 '실버포크 소설'의 등장을 불러왔다. 은수저가 우리의 '금수저'에 해당한다면, 실버포크는 막대한 부에 문화적 소양까지 물려받은 최상류계급을 가리킨다. 이름에서부터 계급성을 드러내는 실버포크 소설은 귀족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정보였다. 귀족들이 어떤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의상은 어느 곳에서 맞추고, 집 안 내부는 어떻게 장식하고, 휴가철에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는지에 관한 정보들이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호응받지 못했지만 중간계급의 독자 덕분에 열렬한 환호는 받게 되었다. 중간계급 벼락출세자들에게 "일종의 궁정행사 일보"나 "예법에 관한 교과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흉내 내는 중간계급에 대항해 젊은 귀족남성들은 문화자본을 과시하고 세련되고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했는데 이들을 댄디(Dandy)로, 이들의 스타일과 태도, 가치관을 댄디즘(Dandyism)으로 불렀다. 댄디는 중간계급의 근면, 실용, 생산성을 거부하고 장식,무용,비생산성에 집착했다. 그들의 하루일과는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외모를 치장하고 '튀는' 복장으로 시내 한복판을 천천히 산책한다. 심지어 '거북이와 산책하기'는 그들의 나태함에 정점을 찍었다.산책 후 클럽에 들르거나 파티에 참가해 시간을 탕진했으며, 삶에 대한 문제도 경쾌하고 심드렁한 태도로 처리했다. 이마저도 중간계급은 신봉하면서 실버포크 소설에 댄디에 관한 정보를 충실하게 담고 있을수록 인기가 높았다. 실버포크 소설의 장르적 완성은 리스터가 1826년 발표한 '그랜비'인데 리스터 자체도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호적총국의 초대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상류사회의 내부자라는 배경으로 소설에 사실성과 진정성을 불어넣었다. 훅은 실버포크 소설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824년부터 '언행-삶에 대한 일련의 스케치'를 시리즈로 귀족적 삶에 대한 "세밀한 사실주의"와 텍스트에 깃든 "구조적 우둔함"의 길을 열었다. 그 내용은 거액을 상속받은 인물들이 상류사회에 새롭게 진입하면서 경험하는 충격과 경이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연작소설 '댄버스'와 '친구 많은 남자'가 그 내용이다. 이 밖에 고어가 '아내의 용돈'으로 중간계급 여성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정보들을 제공했다면 화이트는 중간계급 남성에게 그들이 따라야 할 매뉴얼을 '다시 찾은 알막스'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디즈레일리의 '비비안 그레이' 또한 귀족남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해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고, 불워-리턴의 '펠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귀족모방을 부추김으로써 1820년대 선거법 투쟁 등 사회적 격변기에 경계와 우려를 표하던 해즐릿은 '비비안 그레이'를 비판의 표적으로 삼았다. 실버포크 소설장르가 문학적으로 저급하고 부적절하며 편협하고 왜소한 문학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실버포크 소설가들을 "인생의 거대한 과업이 일종의 가장무도회나 혹은 멜로드라마"에 불과한 자들로 판정했다. 실버포크 소설이 황금기를 맞이한 데는 콜린의 출판사업도 한 몫을 했다. 그는 실버포크 소설의 기획과 출판, 마케팅을 통해 책을 대량생산 했으며 영국 소설의 영역과 지평을 확장시켰다는 사실은 긍정적이다. 다만 문학의 세계를 독창성, 영감, 자발성과 비상업성이 남아있던 '믿음'에 기획과 홍보의 영역으로 전이시킨 점은 부정적인 시각이다. 댄디즘의 창시자 뷰 브러멜은 황태자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성장한다. 그는 화려한 의상과 장식, 헤어스타일을 혐오하고, 흰색 리넨과 흰색 조끼 위에 검은색 프록코트를 걸쳐 입는 스타일을 만들었다. 브러멜이 19세기 초엽 댄디의 아이콘이었다면 도르세이 백작은 1830년대 중반부터 패션을 이끌었다. 다만 도르세이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의상과 스타일을 극단적으로 선호했다. 실버포크 소설에서도 브러멜은 패션에 관한 불멸의 존재로 추앙되었다. 중간계급의 댄디 따라하기에 대한 비난과 공격은 도르세이 백작 이후 절제와 품격과는 거리가 먼 새로운 유형의 댄디에 공세가 더 거세졌다.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칼라일 또한 '의상철학'에서 댄디를 귀족적 가치를 숭상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형으로, 오로지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기생적 존재로 호되게 비판했다. 칼라일은 댄디의 여성성에 대항하여 영웅을 주창하는데 영웅은 남성적 무관심으로 그 아이콘으로 청교도혁명을 주도했던 크롬웰을 선택한다. 쓰다 보니 책 요약이 되어버렸는데 어느 하나 놓칠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저자가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책과 논문을 찾아보며 연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구성도 그 시대의 상황을 시작으로 실버포크 소설이 등장하고 댄디가 탄생했으며 그 몰락에 이르기까지 한 눈에 보기 쉽게 되어 있다. 또한 생소한 영국 작가 소개와 책에서 많이 인용되는 작품 소개가 따로 표기되어 있어 찾아보기 쉽게 만든 점은 칭찬할 만하다. 많은 작가와 작품이 반복되어 나오기 때문에 목차에 페이지 표시한 것이 한 눈에 보기 쉽다. 단순히 댄디보이라는 말에만 익숙했던 내게 이 책은 영국의 19세기 상황과 그들의 패션을 알게 해주었다. 내가 어릴 때 읽던 할리퀸 로맨스도 이 시기 실버포크 소설의 한 부분이 아닐까. 저자는 영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범죄, 남성섹슈얼리티, 소비라는 주제에 불온하거나 저속하다는 이유로 배제된 소설장르를 재평가하는 작업으로 3부작의 프로젝트로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소비의 내용으로 3부작의 완결이다.
*이 책은 출판사의 지원받아 주관적인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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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패션이 권력이었을까?
모든 패션이 권력일 수 없지만 산업혁명 이후 신흥 중산층들에게는 패션이 권력이었다. 패션을 선도한 것은 잡지도 아니고 언론도 아닌 바로 '소설' 이었다. 귀족층의 문화를 소재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로까지 발전할 정도로 많은 독자층들이 확보되어 있었습니다. 중산층의 입장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귀족들이 누렸던 문화를 따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은 환경에서는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어깨 넘어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어깨 넘어의 역할을 소설가들이 감당했는데 책 표지에 나온 사람이 곧 실버포크의 창시자 '훅' 이었다.
'훅'은 태생적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어 포크소설을 통해 인기를 한 몸에 얻은 당대의 슈퍼스타였다. 실버포크는 "중간계급의 모방욕구가 발현된 결과" 였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노동과 투자에 전념하고 자본축적에 집중하느라 예술과 패션에 관한 고급스러운 취향을 습득하지 못한 중간계급은 낮은 취향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저급하고 무지한 집단으로 판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86쪽)
실버포크의 대중화는 인쇄업의 발달도 한 몫을 감당했다. 특히 실버포크의 저자들은 홍보면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소설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해 실지로 과대 홍보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후대의 역사가들은 출판계의 최초의 부풀리기 허위 광고가 아니었느냐고 평가한다. 소위 부풀리기라고 부르는 퍼핑은 소설 마케팅의 중요한 수단 중에 하나였다.
패션을 통해 시각적 차별을 원했던 것은 중간계급이 소유한 부의 양과 비례했다. 오늘날 전해오는 유럽풍의 귀족 명화들만 보더라도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스러운 그리고 호화스럽게 보이는 의상을 입은 이들이 화폭의 주인공으로 자리잡고 있는 그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중간계급의 신흥 부자들도 귀족들처럼 패션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패션을 통해 나름 권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산업혁명 후 귀족층으로 한정되어 있었던 참정권도 점점 신흥 부르주아층으로 확대되어 갔던 것을 보면 그들의 정치적 입김도 커져갔던 것을 볼 수 있다.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의 책 제목이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것처럼 거대한 권력을 쥔 이들은 지속적으로 권력을 향유하려고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권력을 수단화하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도구가 바로 패션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패션에 관한 역사는 인류가 옷을 해 입고 옷과 관련된 산업이 발달하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는 알몸으로 태어나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옷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살아간다. 옷은 단순히 더위를 피하고 추위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곧 패션이 아름다움을 넘어 권력으로까지 발전한다. 역사에 비추어 보면 옷과 관련된 산업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기까지 한다. 청소년들이 모방심리로 연예인들이 즐겨 입거나 유행시킨 옷을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입고 다니곤 한다. 왜 그들이 시대에 흐름에 맞추어 패션을 고집하려고 할까? 라고 생각해 보면 또래 사이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비근한 예로 이슬람 여성에게 의무적으로 착용케 하는 부르카, 니캅, 히잡은 권력을 결코 여성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강요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빈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히는 정책도 패션을 통해 나타나는 권력의 갭을 최대한 줄여보고자 하는 의도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을 통해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산업혁명 전후로 영국 사회에서 벌어진 패션의 권력화를 읽어보시라.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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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세상에서 살아 남기! 증기기관차의 탄생은 마부들을 경악시켰다. 거대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쇳덩어리 앞에서 그들의 마차는 왜소하고 무기력했다. 성직자들은 신의 뜻이 아니라며 반대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이 그토록 빠르게 이동하기를 바라셨다면, 인간을 창조할 때 날개를 달아주셨으리라는 것이 반대의 이유로 제시되었다. ㅡ 본문 중에서 ㅡ 눈부신 대상을 닮고 싶은 소망, 누군가를 따라하려는 마음은 누구도 뿌리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19세기 영국을 살아가던 중간 계급도 마찬가지였다. 선망하는 계급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했고, 귀족들이 소비하던 물건을 구입했다. 선망하는 대상을 따라하는 19세기 영국의 중간계급을 거쳐 노동계급으로, 마침내는 제국의 식민지로 전파되었다. 세기말의 체게바라 산업은 저항과 투쟁의 신화마저 패션으로 소비되는 풍경을 내려오는 막 위에 그려 넣었다. ... 판타지와 악몽이 결합된 소비의 시간이 흐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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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구성 이 책은 ‘빅토리아 시대 문학에서의 계급, 대중성, 수용성’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했던 영국 문인 13인과 그들의 작품 15편을 바탕으로 당시 하나의 권력이 되었던 패션, 즉 댄디즘에 천착한 일련의 연구물을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시대를 휩쓸던 실버포크 장르의 인기에 비하여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노튼 영국 문학 선집에 실린 소설은 의외로 거의 없는 편이었는데, 졸업하고 무려 30년 만에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아라비(Araby)’를 찾아 읽어보는 데 성공하였다. 저자는 실버포크 장르의 대표적인 문인과 그의 작품을 한데 엮어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댄디즘을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초창기 격렬한 비판에 노출되었던 댄디즘이 어떻게 철없는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조롱거리로 변화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였다.
2. 빅토리아 시대 1837년부터 1901년까지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중 영국이 역사상 가장 번영을 누리던 시기를 일컬어 빅토리아 시대라 한다. 이때 영국은 유례없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였으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 초기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 제국주의의 확장, 과학의 발달과 물질주의의 팽창, 종교적 회의론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공리주의적 윤리주의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면서 자기 만족적이고 고상한 체하는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빅토리아니즘이 생성되었다.
3. 산업혁명과 신흥 중간계급의 부상 농노와 장원을 기반으로 농업생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귀족계급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경제력이 쇠락해지자 수입 곡물을 제한하여 이익을 보장하고자 곡물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이로 인해 귀족계급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은 강화되고 이들의 정치적 몰락은 가속화된다. 무역과 제조업으로 막대한 이윤을 거두게 된 중간계급은 영국 사회의 많은 것이 달라진 시대적 분기점인 1832년의 선거법 개정으로 참정권과 더불어 새로 획득한 경제적 지위에 걸맞은 사회적 존경을 욕망하게 되고 이는 고품격 과시의 소비로 분출된다.
4. 왜 실버포크(silver fork) 소설인가? 본래 생선 요리를 먹을 때 사용하는 은제 포크는 막대한 부에 더해 문화적 소양까지 물려받은 최상류 계급을 지칭하며 요즘 우리의 금수저 표현에 해당하는 셈이다. 정규교육이 부족한 중간계급에 소설은 교양을 키워주고 사회와 역사,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심어주는 교과서 역할을 했는데 이들은 소설을 접하면서 철학적 사유, 신학적 쟁점, 정치와 외교의 작동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귀족 따라 하기 교과서로 이들이 선택한 실버포크 소설은 곧 지식의 매개체이자 정보체계가 되며, 1820년대 후반과 183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 사업 혹은 무역으로 떼돈을 번 서툴고 예법이 형편없으며 상스러운 중간계급 벼락 출세자들에게 궁정행사 일보 또는 예법 교과서 역할을 하면서 대중적 인기의 정점을 차지한다.
5. 댄디즘이란? 기생오라비처럼 멋 부리는 남자를 dandy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 댄디즘(dandyism)은 19세기 초반 영국과 프랑스 상류층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하나의 사조로서, 신흥 중간 계층이 기존 귀족층이 누리던 품위와 문화의 깊이를 고려하지 않고 세련된 멋과 치장 따라하기에 몰입함으로써 일반 계층의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댄디는 중간계급의 가치관인 근면성과 실용성, 생산성을 거부하고 장식성과 무용성, 비생산성에 집착했다. 귀족으로 태어나지 못한 신분의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제약 없는 금력으로 귀족계급을 넘어서 보려는 심리가 작용하였다. 중간계급은 자신들의 가치관과 상반된 삶의 방식을 흉내 내서라도 문화적 소양의 결핍을 극복하고 사회적 존경과 인정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댄디즘은 의상과 스타일로 타인과 구별 지으려는 분리주의와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세상에 의해서 더럽혀지지 않으려는 순결주의로 요약된다. 댄디즘은 ‘일종의 종교’였고 ‘피어오른 영웅주의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109쪽)
6. 댄디즘에 대한 반응 빅토리아 시대 초기의 토머스 칼라일을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은 중간계급의 귀족 따라하기를 맹렬히 비난하였는데, 이는 귀족계급의 문화 자본이 총동원되어 구성된 댄디즘이 중간계급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간계급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초기의 격렬한 비판은 한결 누그러진 냉소와 속물에 대한 조롱으로 약화하였고, 윌리엄 새커리와 같은 문인들은 오히려 중간계급 남성성을 구현한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를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후 귀족을 따라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자부심과 자신감이 커진 중간계급이 떠나간 자리는 노동자 계급이 채우게 된다. 1840년대 후반기 이후 노동 개혁의 수혜자가 된 이들은 품위 있는 소비를 욕망하는 주체가 되어 이후로도 오랫동안 주요 소비층을 이루게 된다.
7. 맺음말 당시 영국 귀족들의 특징을 지성, 신분, 재산을 바탕으로 한 엘리트주의라 한다면, 댄디즘은 이러한 엘리트주의를 계승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또 다른 귀족주의를 지향하였다 하겠다. 외양적으로는 여성적 우아함을 표방하지만 결국은 자기숭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외적 변별성에 만족하지 못한 댄디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과감한 미적 도약을 시도한다. 이는 마치 개그콘서트에서 엽기적인 분장과 의상으로 청중에게 경악스러운 웃음을 유도하며 ‘패션의 완성’을 외치던 희극인들을 연상시킨다. 결과적으로 댄디는 귀족 따라하기의 기조였던 여성적 특징을 교묘히 감추는 동시에 정신적인 고귀함을 추구함으로써 여성성을 폄훼 혹은 혐오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댄디가 보여주듯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본래 역설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이해하기 어렵고, 모순덩어리에다 부조리한 면모투성이인 것을.
#패션의권력학 #감히넘볼수없게하라 #댄디즘 #실버포크 #빅토리아문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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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민 지음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패션의 권력화》(소나무, 2021)는 흥미 가득한 책이다.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사회지배세력의 교체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떠오르는 태양, 중간계급과 지는 해, 귀족계급의 헤게모니(?) 싸움 과정을 단계별로 소개한다. 두 계급의 갈등에 따라 유행하는 실버포크 소설, 댄디를 축으로 사회 변화를 다양하게 소개하며 마침내 소비 대중의 등장, 소비의 등장을 알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19세기 내내 영국의 귀족계급은 치고 올라오는 중간계급의 기세에 위축되었다. 이 시대 귀족계급의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경제적 지위는 곤두박질쳤고, 정치권력도 중간계급에게 상당부분을 나눠주었으니 말이다. 이 좌절감은 특히 젊은 세대 귀족들에게 더했다.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누렸던 정치권력마저 중간계급이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으니, 귀족으로 누릴 게 점점 없어지는 판이었다.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으로 경제력을 쥐게 된 브르주아, 중간계급은 1832년 선거법 개정으로 정치권력까지 손에 넣었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중간계급은 새로 획득한 경제적 지위에 걸맞는 사회적 존경을 욕망했다.” 그들을 ‘졸부’로 보는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이를 위해 중간계급은 귀족계급의 삶과는 다른 도덕적·윤리적 우월성으로 존경받으러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품격을 갖춘 소비의 과시였다. 중간계급은 ‘품위’를 돈으로 구입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는 귀족계급 따라하기로 나타났다. 귀족계급의 생활을 알려주는 것이 ‘실버포크Silver Fork소설’이었다. 실버포크라는 단어는 생선요리를 먹을 때 은제포크를 사용하는, 막대한 부에 더해 문화적 소양까지 물려받은 최상류계급을 가리킨다. 중간계급은 실버포크에 나오는 귀족들의 생활을 모방하는 데 소유한 재력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러면서 귀족처럼 살아가게 되었다고 자신 있어 했다.
점점 빛을 잃어가는 귀족계급은 중간계급에 대항하여 싸움을 걸었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자산, 문화자본이 무기였다. “젊은 귀족남성들은 문화자본을 과시하는 세련되고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해 중간계급 남성과의 구별짓기를 시도했다.” 이들이 댄디( Dandy)이고 이들이 전시한 스타일과 태도, 가치관을 댄디즘(Dandyism)이다.
댄디는 중간계급의 가치관인 근면성과 실용성, 생산성을 거부하고 장식성과 무용성, 비생산성에 집착했다. 댄디는 중간계급이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를 표방한 것이다. 또한, 댄디는 ‘거울 앞에서 외모를 꾸미는’일에 가장 많은 시간과 관심, 열정을 투입했다. 댄디즘에 젠더적인 전복성도 함께 들어 있었다.
댄디의 정체성은 의상과 스타일로 자신을 구별 지으려는 욕망뿐 아니라 시장법칙과 자본의 구속력을 초월하려는 의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댄디즘은 막강해진 시장의 힘에 지지 않으려는 귀족적 욕망의 발현이었다. 그와 동시에 댄디즘은 천박한 부르주와계급에 대항해 세습작위가 아닌 개인적인 차별성에 근거를 둔 “새로운 종류의 귀족”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다.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패션의 권력화》는 댄디의 대두, 전성기, 몰락을 다루며 패션이 어떻게 권력화되어 갔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댄디를 향해 중간계급은 매혹의 시선을 보냈다. 댄디가 구별짓기를 시도한 대상인 부르주아계급이 오히려 댄디즘의 신봉자가 된 것이다. 중간계급 청년들은 댄디즘을 주저 없이 수용했고 빠르게 모방했다. “중간계급은 자신들의 가치관과 상반된 삶의 방식을 흉내 내서라도 문화적 소양의 결핍을 극복하고 사회적 존경과 승인을 획득하려고 했다.”
계급적 자부심과 자신감이 커지면서 중간계급은 따라 하기 대열에서 빠르게 이탈했고, 새로운 대오가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꿔나갔다. 노동자계급이 바로 그들이었다. 1984년대 후반기에 시행된 노동개혁의 수혜자가 되면서 이들은 품위 있는 소비를 욕망하는 주체로 변신했다. 1851년 런던에서 열린 수정궁박람회에 집결한 수많은 노동자들은 전시된 다양한 상품에 매혹된 소비자가 되었다. 노동해방의 대오가 마침내 소비의 물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노동해방의 대오가 마침내 소비의 물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거대한 강물이 되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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