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의 이야기는 국가가 가진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개인이 처한 다양한 감정과 문제는 곧 그 사회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힐더브란트 가족을 통해 우리는 가족 구성원의 고민과 결혼 제도에 관한 문제점들을 마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미국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점 등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 중서부 교외의 한 마을에 부목사로 있는 러스 힐더브란트 가족 각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1970년대의 미국이 가진 문제점 중 가장 큰 것은 베트남 전쟁이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빠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는 전쟁을 반대했다. 베트남 전쟁과 여성해방운동, 청소년과 마약 문제,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인종 차별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책표지의 가족을 보라. 교회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가족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다. 그렇지만 빨간색 펜으로 X자가 크게 그려져 있다. 화목한 가족이 아니라는 것과 곧 붕괴하고 말 가족을 나타내는 것 같다.
러스 힐더브란트는 마을의 부목사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즐겁다. 화요일 봉사 모임에 오는 프랜시스 코트렐이 오는 게 더 좋았다. 오십이 넘은 그는 전형적인 속물에 가깝다. 십대의 청소년이 상담하러 오자 아내와의 성적인 불화를 말하여 미움을 사고, 청소년을 이끄는 릭 앰브로즈 전도사를 질투한다. 수련회를 갈 때 앰브로즈를 따르는 청소년들과 조를 바꾸며 그들 틈에 있고 싶다. 문제는 청소년 모임에 자기의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녀인 클렘과 베키, 페리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럽고 한편으로 역겹다.
러스와 그의 아내 매리언, 대학생인 클렘과 고등학생인 베키, 중학생인 페리가 주요 화자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데 각자가 느끼는 그들만의 고민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 매리언은 러스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살이 쪄 러스가 자신을 멀리한다고 여겼다. 러스의 설교문을 직접 작성해주지만 러스는 다른 여자에게 빠져있다.
매리언의 문제는 러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거다. 매리언의 상담가 소피는 그녀에게 독립된 여성으로 살아갈 것을 권한다. 즉 여성해방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거부하지만 어느새 자기 의지대로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가 사랑이라고 여겼던 사람도 결혼이 가진 큰 장점을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 닥쳐오지 않은 일이 두렵지 않았고, 페리를 보고서 그 결과를 처리하는 일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두 발은 밑바닥을 찾았고, 그 아래에는 신이 있었으니까. 결말에 이른 그녀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773페이지)
이 가족은 신과 연결되어 있다. 목사 가족이라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이토록 신을 가까이 여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베키와 매리언이 신을 느끼는 것, 비록 고통이 따를지라도 그의 가족에게 남아 있음을 아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나의 잘못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나도 쉽다. 러스가 매리언을 탓하는 것도, 스스로의 잘못과 질투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그런 까닭인 것 같다. 매리언을 보면서 느낀 것은 소피가 부르짖었던 것처럼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동을 하여야 비로소 화해나 소통이 된다는 거다. 러스나 매리언을 비롯해 클렘이나 베키, 페리는 모두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 서 있다. 어느 한쪽으로 선택했을 때 따라오는 결과물은 만만치 않다. 가로막힌 길 끝에서야 되돌아올 수 있는 법이다. 힐더브란트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그 끝에 가서야 비로소 그들이 가진 소중한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화합, 더 세부적으로 결혼 제도가 가진 문제점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해결하기 어렵고 소통은 더 어렵다는 거. 그나마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이 가족은 붕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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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 규모 : 나무위키 검색 : 피해 정도 차용]
리히터 1-3. 지진의 시작, 예민한 사람이 느낄 수 있을만큼 땅이 흔들린다.
러스 힐데브란트는 코트렐 부인에게 홀딱 빠졌습니다. 그가 목사이며 코트렐 부인이 그의 신도인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판국에 러스 본인에게 가정이 있다는 게 신경 쓸 거리나 됐겠습니까. 이제 막 애욕에 눈뜬 마흔일곱살의 목사님은 무척이나 칠칠치 못하게도 코트렐 부인에 대한 그의 분명한 욕구를 사방팔방 티를 내요. 원수인 교회 청소년부의 목사 앰브로즈도 아내인 매리언과 큰아들 클렘, 둘째 딸 베키, 작은 아들 페리, 더하여 단 두 번 만난 흑인 교회의 목사도 이를 눈치 채고 훈수를 두고 저지하려 들고 협박을 하는데 그런 좌절의 순간에도 굴하지 않는 끈기! 정말이지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욕망이 좌절될 때엔 악착같이 하나님을 찾는데 그분 보기 창피하지도 않은가봐요. 하나님, 유혹에 약한 인간을 굽어 살피소서 기도하고는 또 곧장 코트렐 부인을 유혹할 생각으로 웃통을 벗는다니까요. 나 원 참 한심한 이 아저씨를 정말 어쩌죠?
리히터 4-5. 진앙 부근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점자 피해가 확대되어 약한 건물 등이 파손된다.
불륜에의 욕망, 훗날 알게 된 거지만 아내는 러스를 포함해 두 명의 남자와 성관계를 했는데 자신은 아내뿐이었다는 게 억울하다는 이놈의 집착 때문에 러스가 집이나 식구들에게 전혀 신경을 못쓰고 있던 그 때 러스의 목사관은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습니다. 일체의 반항 없는 순종으로써 러스를 지겹게 만들었던 매리언은 남편 몰래 돈을 훔치고 식욕을 조절하지 못해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대학생인 클렘은 첫 여자친구와의 육체적 방종에 매혹되어 거지 같은 성적으로 성적표를 메꾸면서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고 있구요. 뉴프로스펙트의 소문난 엄친딸 베키는 하필이면 근사한 여자친구가 있는 밴드부의 남자에게 반했습니다. 페리, 힐데브란트의 최고 문제아는 부모 몰래 대마초를 피우다 못해 아예 매매상으로 활약 중이에요. 목사님댁 가정에서 강 같은 평화를 누리는 이는 아홉살 저드슨 뿐이더라구요.
리히터 6-9. 주택과 빌딩이 무너지고 해일이 일어나며 땅이 갈라지고 지면이 파괴된다.
흔들흔들흔들. 지진이 발생했고 계속해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 걸 모두가 알았지만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재빨리 피신하지 못했어요. 단층이 끊어진 크로스로드의 지표 위에서 가족들은 저마다의 역사로 악을 씁니다. 한 가정 안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있을 거란 사실을 독자만이 알았겠죠. 자그마치 869 페이지의 책이니까요. 리히터 10을 향해가는 크로스로드에는 어린 시절의 방임과 성적학대를 떠올리며 조울증을 보이는 듯한 매리언과 매리언의 과거를 듣고 자신의 머리에 나있던 구멍을 설명할 수 있게 된 페리의 대마초보다 더 효과적인 코카인과 자신에 대한 아버지와 오빠의 애정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십대의 혼란에 더해 첫사랑의 불가피한 맹목에 빠진 베키와 욕망에 취약한 스스로를 인정하고 베트남으로 파병을 가겠다며 대학을 자퇴하는 클렘이 있습니다. 러스는요? 아, 그는 단순하죠. 크로스로드가 끝장 나는 마지막 순간에 러스는 바라마지 않던 육체적 결합을 일궈요. 러스의 비대한 자아에 비견하는 성기의 크기와 이후의 과정이 이 소설의 가장 유머러스한 점이었어요.
리히터 10. 지상의 모든 것이 파괴된다.
사람이 나무라면 가족은 나무의 뿌리잖아요. 뿌리가 썩고 무르고 병들었는데 뿌리라서 도저히 파헤쳐 버릴 수 없는 거요. 크로스로드가 그런 나무 같았어요. 몸통이나 튼튼한 가지만 건져 뿌리를 다시 내리는 신박한 방법이 있지만 식집사들은 알거든요. 이건 정말 모 아니면 도라는 거. 이대로 두면 어차피 죽는다는 예측 앞에 누군가는 과감하게 뿌리를 잘라내지만 그래도 혹시 또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뿌리를 잘랐을 때 죽음을 더욱 재촉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아요. 나무에겐 식집사도 없으니까 나무가 직접 이 작업을 해야하는데 상상하니 이거 좀 엽기인가요? 이 부분이 이 소설의 정말이지 쉽지 않은 점인데요. 완전히 끝장나서 후련하게 끝날 줄 알았던 힐데브란트가가 그 엽기적인 방법을 시도합니다. 성공과 실패의 결말은 알려드리지 않을게요. 힐데브랜트가를 보니 인생은 절대 그 두가지로 축약되는 무엇일 수가 없어요.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리구요. 가족은 지옥이에요.
<은행나무 지원 도서입니다> |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장 가깝게 이어져 있으면서 무엇이든 다 주기도 하고 누구보다 증오하며 날을 세우기도 하고 서로에게 관심 없이 데면데면하게 지내기도 하는 가족이라는 것은. 끈끈한 가족애로 뭉치며 잔잔한 드라마를 찍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애증이라는 관계의 층을 넘나들며 역동적인 가족사를 만드는 가족도 있는데 어떤 가족이든 크고 작은 다양한 문제를 마주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눈앞에 닥친 문제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가족 구성원의 사이는 돈독해지기도 하고 소원해지기도 한다. 이 소설은 197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어느 마을의 부목사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솔직하지 못한 구성원들이 상처를 주고받으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는 모습을 세세히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크로스로드'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여러 갈래로 나뉜 길 앞에 선 가족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가족은 각자 판단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머물러 있을 수 없기에 어떤 선택이든 해야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히 모른 채로 내딛는 걸음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베트남 전쟁, 인종차별, 빈부격차, 약물중독 등 그 시대가 당면한 문제들 속에서 갈피를 못 잡는 가족들이 답답하면서도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가족의 모습이라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가족 간에 일어나는 시기와 질투, 미움과 사랑은 그 양에 따라 활력소가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는 게 아닌지. 표지에 함께 눈을 감고 기도하는 가족 그림이 있다. 화목한 가족의 평온한 한때로 보이지만 실제는 어떨까. 모이면 웃음꽃이 피는 가족일 수도 있겠지만 눈도 마주치지 않고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족일 수도 있다. 겉으로 봐서는 도통 알 수 없는 게 가족 아닐까.
* 세상에는 두 종류의 편지가 있다. 열정적으로 찢어서 열어보는 편지와, 읽으려면 각오를 다져야 하는 편지 말이다. 어머니의 편지는 후자였다. p.841
* 나쁜 소식이라도 있어? 누가 아프대? 응. 뭐...... 맞아. 그럼 당장 가. 펠리페가 말했다. 가족보다 중요한 건 없어. p.854 |
한 가족의 비극에 1970년대 미국의 사회문제를 모두 녹여낸다. 힐데브란트 가족 이야기를 통해 전쟁, 마약, 여성주의운동, 인종차별, 빈곤 등의 사회 키워드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대단한 작품이었다. 거의 900페이지 가까운 두께지만 이야기에 몰입되어 어렵지 않게 완독했다. - 등장인물들은 모두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작가는 이러한 비밀스러운 생각의 씨앗, 발아, 열매 까지를 낱낱히 묘사한다. 아버지 러스는 그의 교회 신도 중 젊고 매력적인 과부인 프랜시스에게 품고있는 욕정을, 어머니 매리언은 자신의 방탕했던 과거와 정신병력을, 첫째 클렘은 여동생 베키를 유난히 아끼고 사랑했던 마음을, 둘째 베키는 가족과 신앙에 대한 자신의 혼란을, 셋째 페리는 약물 중독증과 누나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을, 숨기고 싶어한다. 책을 읽은 독자는 모두 동의하겠지만, 부목사로 일하는 러스가 프랜시스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정당화하고, 그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찌질”했다. 자신의 여성편력의 뿌리를 ‘처녀가 아니었던’ 메리언으로 돌리는 모습도 한심했다. 그래서 베키가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하여 일군 새로운 가족의 울타리를 견고히한다. 그리고 약에 취해 정신이 나간 페리를 버리지 못한채, 서로가 서로를 용서한 부모를 멀리한다. 기질상 영민하고 예민하게 태어난 페리에게는 연민이 생겼다. 페리에게 비극이 일어난 날, 러스는 프랜시스와 간통을 저지르고 있었고, 매리언은 자신의 예전 남자친구 브래들리를 만나기 위해 LA로 떠났고, 클렘은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하지 못하게 되자 뉴올리언즈로 떠났고, 베키는 가족이 모두 떠나고 텅 빈 집에서 태너와 함께 할 시간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 페리의 이상징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페리를 한 번 더 돌아보는 것보다 중요한 자신들의 일이 있었다. - 나는 무교라 책 전반에 깔린 중요한 기독교 정서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하진 못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가족에 대해서 여러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지붕아래에서 동거할 뿐 와해된 힐데브란트 가족같은 가정이 현재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딴소리 #은행나무출판사 참 양심적이다. 책 분권해서 팔아서 수익을 더 올릴만 한데, 이렇게 벽돌책으로 출판하다니! 독자를 생각하는 출판사 근데 벽돌책은 누워서 볼 수 없어서 아쉽다. |
페이지 수의 압박에 처음엔 움찔했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작을 꼭 읽어봐야겠구나. 벽돌책으로 출간되는 문학들에는 살짝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물과 사건 묘사가 지독하리만큼 치밀하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나 그 공통점을 비켜가진 않는다. 머릿속에 영상이 필름처럼 흐를 만큼 치밀하다보니 읽는 재미가 배가되었다. 러스와 아내 매리언, 대학생 클렘과 고등학생 베키, 중학생 페리가 주요 화자로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데 각자가 느끼는 그들만의 고민과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가족의 고민과 문제점은 만국의 공통 소재이겠지만 치밀하다 못해 처절하다보니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역시나 책을 읽는 데 있어서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
기도하는 4명은 가족 같아 보인다. 하지만 신경질적인 X 표시에 그 위를 덮고 있다. 이것은 <크로스로드>의 표지다. 왜 이런 콘셉트일까 싶었지만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정말 이런 집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900페이지에 가까운 가족 저마다의 시련과 고통 그리고 심리를 묘사한 이 책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을 수 있었다. 작품은 목회자의 가족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어 간다. 그래서 기독교에 관한 얘기 성경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큰 챕터 또한 <대림절>과 <부활절>이다. 중략 제목이 없는 작은 챕터마다 화자가 바뀌는 독특한 방식을 택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소설을 여럿 읽어봤기 때문에 어색하지는 않았다. 이런 구성은 등장인물의 사사로운 사정과 세밀한 심리 묘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을 수 있지만 반대로 스토리가 한 곳을 맴돌기도 해서 지루할 수 있다. 첫 번째 느낌은 저자가 글을 굉장히 잘 쓴다는 점이다. 미국 청소년 문화와 기독교 문화라는 내가 그렇게 즐기지 않는 것 두 소재가 들어갔음에도 글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다. 더불어 외설적인 부분도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기도 하였다. 스토리보다는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심리적은 변화가 전체를 이끌어 갔고 900페이지에 육박하지만 그냥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에 읽은 <할렘 셔플>과는 많이 달랐다. 두 번째 느낌은 내가 왜 이걸 읽고 있냐는 것과 이렇게 길게 쓸 내용인가 였다. 이 부분은 내가 여유가 좀 부족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 막장인 가족의 이야기를 계속 읽다 보면 뭔가 재밌긴 한데 왜 읽고 있지라는 회의감 같은 것이 조금 있었다. 그것으로 나의 마음의 뭔가가 치유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1970년대의 사회를 풍자한 이 작품은 정신과 의사를 내세워 <여성운동>을 흘렸고, 클렘을 이용한 <베트남 전쟁>의 부조리함을 얘기했다. 펠리를 이용한 <마약> 문제와 대마초를 아무렇지 않게 피는 미국 10세대의 모습. 그리고 <러너>를 이용한 <간통>을 드러냈다. 캠프파이어를 이용한 <나바호> 인디언들의 문제도 언급이 되었다. 하지만 이 많은 문제는 메인 스토리에 희미하게 덧씌워져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의미를 두자면 인간 모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자기만의 갈등과 시련 그리고 깨달음이 있고 그것이 오롯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라고 해서 지금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상대로부터 찾으려고 할 때는 증오와 분노만 남을 뿐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매력적이지도 않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인정하고 나아갈 때 비로소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자신만의 매력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매리언>이 브레들리의 환상에서 벗어나듯, <클렘>이 여동생 <베키>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가족은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오며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준다. 보편적인 감정을 얘기하고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이런 스토리까지 나갔어야 했냐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등장인물 사이 복잡하게 얽혀버린 감정과 사건들의 표현을 위한 작가의 선택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을 <현대의 고전> 같다고 평한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모두 인물의 심리적인 요소. 철학적인 요소 등에 집중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마담 보바리>도 최근에 적혔다면 그냥 바람난 여인네 정도의 소설이라는 평가 정도만 받을 것이니까. 그 당시의 미국의 시대 상을 표현한 <고전> 같은 현대 소설. 조금 막장이지만 내가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읽을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 900페이지 내내 미묘하게 끌고 가다 폭발하다 하는 긴장감. 그 정도로 이 책을 읽어볼 만 하지만 '무언가를 깨닫고 싶어'라든지 '공감하고 싶어'를 얘기한다면 물음표를 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내세가 있다고 생각해요. (p655)
[논제]
소설은 1971년 대림절에서 시작한다. 미국 서부 외곽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가족
소설을 관통하는 논제는 '도덕성'이다. 이 작품이 상당히 매력적인 이유는, 작가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찬반도, 러스의 외도나 매리언의 과거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결론을 유도하지 않고, 끊임없이 논제를 제기하며 독자로부터 철학적.심리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데에 있다. 이는 이마누엘 칸트의 정의 명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더불어 근원적인 인간 심리에 대한 질문(심리)도 따라온다.
작은 메노파 공동체 집단에서 성장한 러스는 목사로서 중재자 역할을 했던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열등감과 박탈감은 매리언을 만나면서 대리만족으로 전환되고 이는 가정생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지나치도록 딸을 편애하고 집착하는 걸 넘어서 다른 자식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의 모습을 납득할 수 없었다가 이야기가 진행할수록 알게 되는 사실은, 그에게는 모든이의 주목을 받고 외모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자신을 빛내줄 자식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차별받는 약자의 입장에 서는 사랑과 공동체를 실천하며 정의롭고 선량하며 도덕적인 부목사라는 겉모습 뒤에는 외모를 중요시하고 여성 신도를 욕망하며 자식조차 자기를 빛내줄 도구로 이용하는, 홀로서기에 실패한 나약한 내면이 있다. 이러한 러스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은 곳곳에서 보인다. 타인의 시선을 예민하게 신경쓰며 저 혼자 추측하고 단정하고, 타협이나 조율을 지는 것이라고 여기는 자격지심 등 이러한 모습은 관계의 미숙일 수도 있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부재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러스가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더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아내 모습을 보며 결혼 생활이 비참하다고 말하는 러스는 한때 주체적이며 똑똑하고 자유로웠던 매리언이 현실을 인식하고 살림에 주저앉은 이유가 자신의 가부장적인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과 죄책감을 매리언에게 돌린다. 또한 러스는 앰브로즈와의 관계가 처음 틀어진 책임까지 매리언에게 전가한다. 극도로 불안정한 아들을 모습을 보고도 그저 페리와 엮이지 않고 싶다는 바람만 떠올리는, 심지어 그와중에 프랜시스를 떠올리는 러스는 인간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그야말로 최악이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러스는 마약에 중독된 페리에게 도덕적 결함을 들이미는데, 여성 신도에게 부적절한 욕정을 품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둘 만의 시간을 만들어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치의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앰브로즈가 부유한 집안의 출신이라는 것에 열등감을 감추고 앰브로즈에게 없는 육체노동의 경험을 내세운다. 러스가 크로스로드 창설에 자부심을 갖고 집착했던 이유는 그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중심에 서있어 본 적 없는 그에게 '중심'이라는 맛을 보게 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중심의 역할을 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가 크로스로드의 나바호족 청소년 봄 수련회에 집착하는 것도, 끊임없이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프랜시스에게 깊이 빠져든 것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내 매리언에게 느꼈던 감정은 대부분 열등감이었기에. 그런데 러스가 성적 욕망에 집착하게 된 것이, 어린 시절 가정 환경으로부터 세뇌되었던 성적 억압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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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언은 자기가 늘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남자에게 상처를 받을 때마다 분노가 있어야할 자리에 죄책감이 들어앉았고, 스스로를 향해 비난의 돌을 던지며 '벌을 받아도 싼' 사람이라고 낙인 찍는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분노했다는 자체만으로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든 매리언. 불륜, 해고, 낙태, 매춘 등 피해자임에도 스스로를 가해자 위치에 놓았던 그녀. 그래서 결혼 후 러스에게 복종에 가까운 순종적인 아내로 살았다. 자기 안의 나쁜 것을 억압하고, 입을 계속 다물고 있음으로써 매일 계속 벌어들이고 있는 인생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진짜 매리언은, 날씬하고, 모든 걸 강렬하게 느끼고, 죄인이고, 배우라고 정의한다. 이는 언니 셜리가 되고 싶었던 매리언의 무의식, 그리고 진짜 모습이라고 믿는 환상이다. 늘 어떤 역할ㅡ순종적인 아내, 상냥한 부목사 사모, 인내심 있는 엄마ㅡ을 해내야 하는 매리언은 분노를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었다. 매리언이 유독 페리에게 애착을 갖는 이유는 똑똑하고 재능이 많지만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페리에게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러스의 잠정적 외도로 인해 남편에게서 벗어나자 오히려 자신의 욕구에 충실해지며 홀가분함을 느낀다. 그 욕구가 적절한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시절부터 지속됐던 과거의 불행에 붙잡혀 여전히 내면의 아이가 존재하는 매리언은 유일하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으며 승자의 입장에서 관계했던 브래들리에게 30년이 지나서 다시 집착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프랜시스에게 집착하는 러스의 모습과 닮아있다. 러스는 매리언이 자기 혐오에 빠져서 남만 돌보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는데, 그 말이 과연 매리언에게만 해당될까.
이 세상 누구도 나보다 외롭지 않다.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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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폭력적으로 변한 인간을 공동체에서 치유한다는 나바호족에 짜릿함을 느낀다. 이때부터 러스는 자신이 전지적인 존재, 즉 신(종교)의 이름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착한 일을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에게 존경을 받으며 그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사회 집단에서 적응이 어려웠던 러스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가능한 작은 공동체가 적합했을테고.
매리언은 과거의 자신을 셋째 페리에게 투영하지만, 정작 매리언의 전철을 밟는 아이는 베키다. 다른 여자의 남자친구를 뺏았고, 여자 친구와 어서 헤어지라고 압박했으며 이로인해 좋아하는 남자의 앞날에 피해를 줄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끼는 베티의 모습은 외도를 저지른 브래들리가 아닌 그의 아내를 찾아간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 매리언과 아주 흡사하다. 또한 매리언은 아들 클렘이 섀런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을 과거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남자들의 행동과 동일시 한다.
힐데브란트의 가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애정 결핍과 그릇된 애정 방식, 인정 욕구, 뒤섞인 자기 연민과 죄책감, 자아감 결핍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가치와 존재감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찾는다. 가정은 성인이 되어 자립하기 전 사회적 경험을 할 수 있는 통로다. 그런데 힐데브란트 가족, 특히 러스와 매리언은 가족 구성원 누군가에게 경험이 되어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미성숙한 내면을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은 자식들에게 마음의 한 공간을 내어줄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휘청거리며 돌아온 아이들에게 아무도 없는 불꺼진 집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러스와 매리언이 겪고 있는 감정과 태도는 그들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프랜시스도 불우한 환경에 있는 로니보다 로니에게 베푸는 자신의 모습에 더 집착한다. 좀더 실질적인 도움보다 동정심에 선행을 실천하려는 모습은 자기만족적인 형태로 재포장된 인종차별주의의 또 다른 단면이다. 태너는 로라와 여자 형제나 다름없음에도 약을 먹이고 성관계를 강요했었다. 이처럼 우리는 외적인 측면에 얼마나 현혹당하고 있는지 새삼 돌이켜 볼 일이다.
러스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게 죄책감이냐고 묻는데, 그 자체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이 매리언을 외롭게 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결혼을 두고 서로가 희생당했다고 주장하는 러스와 매리언. 이들 가족에게는 오직 자기의 아픔 뿐이다. 페리와 베키는 서로를 잘 안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들은 서로를 알고자 노력한 적이 없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짐작으로 재단할 뿐이다. 베키는 페리에게 동생이니까 더 잘 알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 전에 '네가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가족을 알아가는 것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베키가 클렘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성공'이라는 것 역시 제 나름대로 다를 것이고, 이 성공의 성취 또한 저마다 제 각각일터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떻든 격려하고 위무할 뿐이다. 가족이란 서로의 관심사를 함께 공유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관계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성공'이라는 것 역시 제 나름대로 다를 것이고, 이 성공의 성취 또한 저마다 제 각각일터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떻든 격려하고 위무할 뿐이다. 가족이란 서로의 관심사를 함께 공유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관계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얼마나
♤ 출판사 지원도서, 지극히 사적인 리뷰
#조너선프랜즌 #크로스로드 #크로스로드챌린저 챌린지 #독파 #책추천 |
붕괴직전의 현대 가정을 그렸다는데 정말 가족 구성원 모두의 서사가 탄탄합니다. 두께에도 불구하고 가독성도 좋고 몰입감이 뛰어나서 이 가족에게 도대체 결말이 나올지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각각의 인물마다 참 다양한 감정의 묘사가 튀어나오고 서로 얽혀있는 감정들이 그들 옆에서 함께 있는 같은 느낌도 주는데요. 실내 생활이 많아지는 추운 겨울과 어울리는 찬찬히 들여다보기 좋은 내용입니다. |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조앤 디디온의 초상>을 보고 미국 현대사에 관심이 생겼다. 뒤이어 로런 그로프의 소설 <아르카디아>를 읽고 구체적으로 미국의 1970년대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의 배경이 1970년대라고 해서 바로 구입했다. 책이 도착하고 나서야 이 책이 무려 872쪽에 달하고 조너슨 프랜즌이 원래 벽돌책으로 유명한 작가라는 걸 알았는데, 하루에 100쪽씩, 총 9일 동안 읽기로 결심했으나 이틀 줄여서 일주일 만에 읽은 건 내용이 무척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어떻게 보면 막장 가족 드라마에 가깝다. 1971년 성탄절을 앞둔 미국 중서부 시카고 교외의 한 마을. 교회의 부목사로 재직 중인 러스와 그의 아내 매리언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다. 독실하고 화목한 중산층 가족으로 보이지만, 이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문제가 있다.
러스는 최근 남편을 잃고 교회에 새로 가입한 프랜시스라는 젊은 여자 신도 프랜시스에게 홀딱 반한 상태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 매리언은 정신 상담을 받으러 다니다가 결혼 전 사귀었던 유부남과의 재회를 상상한다. 장남 클렘은 대학에서 만난 여자 친구의 영향으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심한다. 장녀 베키는 이모에게 상속 받은 거액의 유산으로 대학 진학 전 남자친구와 유럽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차남 페리는 아버지가 재직 중인 교회의 청소년부인 '크로스로드' 활동에 만족하지 못하고 위험한 일탈을 꿈꾼다.
이 소설은 붕괴 직전의 가정을 묘사하는 동시에 미국 문화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종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러스는 개신교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메노파 신자였는데, 메노파란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재세례파의 일파로, 퀘이커 교도만큼이나 엄격하고 배타적인 생활을 한다고 한다. 매리언은 가톨릭 신자였는데, 남편의 영향으로 개신교 신자가 된 후에도 천국을 믿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는 등 자기 본위의 신앙 생활을 한다. 클렘은 무신론자에 가깝고, 베키는 사귀는 남자에 따라 교회에 다니거나 말거나 한다.
그런 이들이 종국에는 (클렘 빼고) 독실한 신자로 복귀하는데, 표면적으로는 페리의 사고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각자가 경험한 일탈과 실패가 있고, 더 자세히는 실패로 말미암아 깨달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보다는 눈 앞의 상황을 운명이라고 믿고 신에게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에 러스가 "가난할 때는 이런저런 일이 그냥 일어납니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죠. 완전히 주님의 자비에 몸을 내맡기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이 축복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 주님과 가까워지니까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시 보니 소설의 결말을 예고한 듯하다.
이 소설에는 미국 가정의 붕괴와 신앙 공동체의 파멸 외에도 킹 목사 사망과 닉슨 정권의 등장, 히피 문화의 유행, 반전 시위, 페미니즘 물결 등 1970년대 초반을 수놓은 미국의 사회 문제들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되거나 묘사된다. 남자한테 상처를 받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식으로 반응하고 폭식으로 해소(처벌?)하는 매리언, "스무 살 때 베티 프리단과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읽었다면 내 인생 전체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죠."라고 말한 프랜시스, 다양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베키, 로라, 섀런 등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들도 여럿 나온다. |
‘1971년 미국의 가상 마을’ 얼마 전만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 시도를 안 했겠지만, 한차례 엉덩이 독서의 힘이 조금 쌓였다. 1970년대가 크게 낯설지 않다. 북클럽에서 <유한계급론>을 읽고 있는데 120년 전 출간한 책에도 현대 사회를 지적하는 듯한 문장들이 가득하다.
먼저 읽은 친구들이 <자유>보다 더 재미있을 거라고 기대를 높였다. 10월의 첫 주말이 하루 더 길어서 여유로운 독서를 즐겼다. 확실히 인간관계 내의 긴장감이 더 크다. 페리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내 친구의 아버지와 놀랍도록 유사해서 다 잊고 살다 몹시 씁쓸했다.
붕괴에 다다른 아슬아슬한 상태의 가족 구성원들의 심상을 이렇게 깊이 내려다보는 일은 나는 경험도 짐작도 못할 고역일 것이다. 더구나 그 원인을 ‘본능’ 등에서 찾지 않고 ‘사회적’ 원인들과 치밀하게 연결해서 따져보는 저자의 지성이 심해처럼 거대하다.
인종 차별, 전쟁, 청소년 문제, 마약 범죄, 빈곤, 결핍, 여성 문제 등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읽고 고민했을까. 이런 노역은 저자가 자신의 세계, 미국사회, 인간에 대해 그만큼의 깊은 애정을 가진다는 뜻이 아닐까, 그 정도의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이다.
싸움을 거의 하지 않고(못하고), 갈등 상황을 불편해하는 겁쟁이지만,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각자의 절박한 이유로 싸우고 투쟁하는 모습들이 저자가 투영한 확실한 희망의 여지로 느껴진다. 형태가 무엇이건 여전히 소통할 의사가 분명하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어쩌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정확하게 소통하기 위해 이런 싸움을 통과의례처럼 더 진지하게 했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진짜 성장이라는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른답지 못한 나를 돌아보며 하는 자책과 회한이 커서 그런지도. 혹은 오독...?!
등장인물들 중 누구에게 가장 친밀하게 이입해서 이 세계에 머물다 갈까 몰입해보는 것도 즐거웠다. 인물과 사건에 대한 묘사가 이렇게까지 치밀하면 해당 이미지들이 아주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 상상력이 좀 더 좋았다면 가상현실처럼 대단한 체험을 했을 것이다.
경기장에 가서 보는 것보다 TV 화면에서 경기 내용을 더 잘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에 살아본 적이 없는 독자지만,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미디어를 찾아 볼 수 있고, 더 이상 한 나라 다른 나라의 일일 수만은 없는, 세계가 얽힌 방식을 조금은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니 ‘1970년대 미국 사회의 한 가정의 가족들’을 다룬 이 소설이 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비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던 드넓은 하늘’ 그 아래에서 펼쳐진 모든 이야기 밭을 빠져나와 본 지금, 여기의 현실이 몹시 어둡다.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다.
“우린 광산을 막아달라고 그 사람들을 찾아갔어. 우린 성스러운 땅에 발전소가 세워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 사람들도 당신과 똑같았어. ‘미안합니다’라고 하더군. 그러더니 우리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 그놈들은 백인 동네를 구하는 데만 신경 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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