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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감정 보관함’ 책 속의 소라처럼 딸이 나에게 하소연 한 적 있었다. 책 속의 사건과 거의 같은 사건을 접했던 딸의 마음을 나는 그때 어루만져 줄 줄을 몰랐다. “그런 선생님들 간혹 있어.” “그냥 세상은 그런 거야.” “세상에 맞출 줄도 알아야지.” “세상은 조금 손해 본 듯 사는 거야.” 그 정도에서 마무리해 주는 것이 딸을 위한 것인 줄 알았다. 딸이 느꼈을 감정보다는 무난히 세상에 적응시키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줄 알았다. 아무래도 억울했을 딸에게 세상살이를 주입식으로 가르치려고만 했던 것 같다. 소라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그때의 딸의 감정이 뒤늦게 만져지는 것 같아서 책을 읽고 스스로 많이 속상했다. 나도 한국사 선생님처럼 편견과 아집으로 돌돌 말린 돌덩이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름 돋았다. 주인공 소라는 지질한 또 하나의 자신에게 소유라는 이름을 붙였다. 버리고 싶은, 마땅치 않은 나 자신을 나가 아닌 것처럼 별개의 이름을 붙여 떼어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각기 다른 감정들이란 분리될 수 없는 앞면과 뒷면인 셈이다.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으며 누가 누구에게 온전한 나가 되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소라와 소유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방법은 각기 다른 감정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 사회는 모두 한 덩어리로 얽혀 있다. 앞뒤 막힌 한국사 선생님조차, 한 덩어리로 살아야만 하는 각기 다른 감정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치졸하고 냉담하고 참견하고 때로 한편이 되기도 하면서 감정과 감정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 마모되어 간다. 포식자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도 있다. 또 육체와 몸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한국사 선생님처럼 감정은 성숙하지 못한 채 멈춰버린 사람도 있다. . 부디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나의 딸이, 소라와 그의 친구들처럼 자신의 감정을 잘 매만지면서 성장의 단계로 올라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평소 남상순 작가의 청소년 소설을 즐겨 읽는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다. 세밀하게 청소년의 마음을 대신 전하는 작가의 책 한 권 한 권이 감정 보관함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떤 감정은 감정을 성숙하게 도와준다. 사춘기였던 나의 딸의 감정에 한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내 자신을 자꾸 돌아보며 이 책을 딸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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