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인 - 적막한 저녁 - 한국문학전집 442] 오래 간만에 훌륭한 우리 단편문학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동인 작가는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전자책시리즈는 짧은 분량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어서 부담이 없습니다. 김동인작가의 주요작품은 배따라기, 감자, 광염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젊은 그들, 운현궁의 봄 등이 있습니다. |
| 만족하며 읽은 단편문학입니다. 김동인 작가는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젊은 그들, 운현궁의 봄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김동인 작가는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시리즈 전자책은 김동인작가의 적막한 저녁 : 한국문학전집 442는 우리의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묶어놓은 좋은 시리즈 전자책이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작품이라 확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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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순간 뒤에 老子爵의 노염에 불붙는 눈은 휙 돌아와서 아들의 얼굴에 正面으로 부어졌다. “네게는 ― 네게는 ―.” 노염으로 말미암아 老子爵의 숨은 허덕였다 ―. “네게는 아비가 그렇듯 老衰해 뵈더냐!” 일찌기 호랑이 같은 宰相으로서 善政에 虐政에 같이 그 이름을 울리던 老子爵의 面目은 여기서 나타났다. 얼굴은 누렇게 여위었지만 거기서 울려나오는 音聲은 房을 드렁드렁 울리었다. 다시 興奮해 가는 아버지의 앞에 두식이가 어쩔 줄을 모르고 蒼黃하여 할 때에 아버지는 다시 高喊쳐서 저便 房에 있는 忠僕 왕보를 불렀다. “야. 왕보야 ― 왕보야 ―.” 充實한 왕보였다. 비록 잘 때라도 主人에게 對한 注意는 끊치지 않고 있던 왕보는 主人의 부름에 곧 이 房으로 달려왔다. 그 왕보에게 向하여 老子爵은 마치 어린애같이 自己의 處地를 呼訴하였다. “왕보야. 나는 좀 자고 싶구나. 그런데 이 ― 이 ― 이 사람이 귀찮게 굴어서 잘 수가 없다. 날더러 老衰했다는구나. 날 제발 좀 자게 해다구.” 왕보는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老子爵의 寢臺에 가까이 가서 한 番 子爵의 이불을 고쳐 드린 뒤에 천천히 눈을 두식이에게 돌렸다. 두식이는 아버지의 房에서 물러나왔다. 自己의 寢室로 돌아온 두식이는 몸을 커다랗게 寢臺에 내어던졌다. 그리고 다리는 마루 위에 上半身은 寢臺 위에 눕힌 뒤에 卷煙을 붙여물었다. 밤의 困한 잠에서 깨어나고 깨어난 뒤에 連하여 奇怪한 일을 본 두식이에게는 只今이 마치 꿈과 같았다. 短銃 소리에 깨었다. 別堂으로 달려가 보니 아버지는 氣切하고 電燈은 부서졌다. 彈丸이 여기저기 박혔다. 아버지를 洋館으로 모셔왔다. 아버지에게서는 亦是 理解할 수 없는 說明을 들을 뿐이었다. 그것을 疑心하매 아버지는 성을 내었다. ― 大體 김덕삼이가 누구던가. 김덕삼의 아들이 누구던가. 아까 아버지의 입에서 김덕삼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에 아버지의 얼굴은 몹시 不安한 듯하였다. 分明히 아버지는 그 김덕삼이란 이름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아버지의 不安한 表情으로 아버지와 김덕삼의 새에 무슨 奇怪한 因緣이 있던 것도 疑心할 餘地가 없이 보였다. 七十年에 가까운 生涯를 아직 두려움을 모르던 아버지도 김덕삼의 이름을 말할 때는 分明히 두려운 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면 大體 김덕삼이가 누구인가. 김덕삼이와 아버지의 새에는 어떤 因緣이 있나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