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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그냥 이렇게 물으면 막연할 것 같아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해를 구했다. 왜 이런 질문이 나왔을까를 알고 나면 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거라 기대하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궁금하긴 한데 별로, 라는 허무한 답변. 괜찮은 책이 있다고 알리면 읽고 싶다는 반응를 기대하는데 내 마음 같지 않은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와 다른 이들의 세계는 달라도 너무 다르고 그들의 생각을 내 생각에 맞추는 일은 불가능함을 다시 깨닫는 기회가 된다.
이 책 <행성어 서점>을 읽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넌지시 던진 미끼가 통하지 않았던 것. 미끼라고 해봐야 책을 읽게 하겠다는 건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부하면 조금 허탈해진다. 미끼처럼 던진 말,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는 이 책 '선인장 끌어안기' 편에 나오는 말로, 이 책을 미리보기만 보고 사게 된 결정적인 문장이다. 이런 주제를 다룬 이야기가 있을 거란 기대가 이 책을 구입하게 했다. 내가 그랬듯이 다른 이도 그럴 거라 기대했던 건데, 순전히 내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 거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갖고 있지.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57쪽)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라 해도, 깊이 사랑하는 관계라 해도 서로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각자 다른 몸을 살면서 다른 것을 감각하며 살아온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내 생각에 동의를 구하려는 건 불가능한 일을 해보겠다는 시도가 아닐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란 말은 사회성을 키워온 사람들의 입바른 말이 아닐런지. 그래서 좋은 관계는 상대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말 성숙한 사람일텐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람조차 완전히 멈추었고, 정적 사이에 사각사각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는 소리만이 끼어들었다. 리키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들으며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을, 언젠가는 결국 사라지고 말 순간을 지켜 보았다. (106쪽)
삶에 의미를 담기 위해 순간을 살라고 자주 나를 다그친다. 순간을 살아낸다는 건 순간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살겠다는 의미다. 그게 가능하려면 매순간 내가 감각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어떻게 내게 받아들여지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감각만으로 세상을 경험할 수밖에 운명이라면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것보다 과거에 박제된 느낌, 미래의 막연한 생각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할 때가 많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최대한 주의집중할 때, 내가 가진 지식과 지혜가 빛을 서서히 찾는다. 삶을 예민하게 더듬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새로이 접하는 누군가의 생각과 경험에도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 편견을 벗어나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소설 읽기는 나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낯선 세계일 수밖에 없음에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그 세계에서 내가 가진 편견을 벗고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낯선 이야기가 친근하게 바뀔 때 더 깊이 새롭게 각인되는 것들이 있다.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했지.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야. 아니면, 전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118-119쪽)
읽고 생각하는 세상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싫어하는 줄 알면서 주위 동료들에게 가끔 미끼를 던진다. 누구나 우선하는 일이 다를테니 강요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일과 중 독서가 아무런 비중도 차지 하지 않는 건 조금 안타깝다.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인데도, 각자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인데도 약간의 영향을 주고 싶은 욕심이다. 읽고 싶은 책, 좋아하는 책이 있다고 하면 무척 반갑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가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욕심인 줄 알면서 미끼 던지기는 계속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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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물을 좋아하면서도 더러 버거울 때가 있다. 내 깜냥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상력의 스캐일과 지적인 정교함 앞에 막막하고 허무해져서 무너져버린 경우도 있는 것이다. 장편 SF를 한번에 휘리릭 읽어본 기억이 없다. 쩔쩔매며 어찌어찌 다 읽고 난 다음 스토리 라인을 가다듬으며 재독을 해야 하는 난감한 사태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번 김초엽의 짧은 얘기들을 읽는 데 그런 걱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단순히 분량이 짧다는 것에 안심했던 것은 아니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자신에게 좋은 이야기를 쓰자며 어깨에 힘을 빼고 가벼이 써낸 이야기들의 모드와 코드가 부담 없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소설로 옮겨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던 아이디어들이 이상하게도 '짧은' 소설이라는 제약을 걸어주면 스르륵 문장이 되어 풀려나온다. "이렇게 짧은데 완벽한 이야기를 쓸 수는 없을 테니까, 그냥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쓰자." 그렇게 어깨에 힘 빼고 출발해야 도달할 수 있는, 산뜻한 이야기의 마을이 있는 것 같다. (중략) 홀가분히 가벼운 짐만 꾸려 떠난 휴가처럼 이 책을 즐겨주시기를.(6~7쪽)
이렇게 작가 자신에게 좋은 얘기들에 나까지 서서히 물들어 간 것 같다. 겸손하고 온화한 위로가 무장해제하게 만들었다. 이야기들은 현란하고 난해한 과학적 원리에 기대고 있지 않았다. 진입장벽을 느끼지 않고 문턱을 쉬 넘을 수 있었다. 외계 행성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현혹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건 우리별 얘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인류와 지구 생태계의 변주로 읽혔다. 우리별이 처한 엄혹한 실상과 시급한 과제에 대한 시사점을 넌지시 던져주고 있었다. 여러 빼어난 얘기들로 빼곡하지만 내겐 특히 '포착되지 않는 풍경'이 각별하게 다가왔다. 셀카와 인증샷이 생활양식으로 굳어진 우리에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을 이미지 파일에 담아 간직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아스라한 기억들을 디지털 기기로도 포착하지 못하고 애틋한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을 그 별에선 과연 어떻게 타개할는지.
허공에서 안개 입자 하나하나가 빛으로 부서지듯 반짝였고, 두 개의 태양이 기울며 시간마다 다른 색의 빛줄기를 그 위에 더했다. 부유하는 금속 미생물들이 대기 중의 황화수소와 반응하여 약 세 달간 지속되는, 뮬리온-846N에서도 극히 드물게 발생하는 별안개라는 현상이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행성 여행자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들이 절벽 끝의 난간에 매달려 반짝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드론으로 영상을 촬영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보였다. 하지만 그 시각 데이터들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모두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러니까 저 별안개의 미세한 입자들이 가진 패턴이 데이터 오류를 일으킨다는 거죠?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서 다른 데이터까지 집어삼키고요." "맞아요. 은하 표준 시각 데이터 형식을 사용하는 모든 데이터가 저 별안개의 패턴에 손상되고 있어요. 소리를 녹음한다든지 하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절대로 포착될 수 없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기록은 표준 형식으로 통일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는 당신이 무슨 특별한 촬영 방법을 알아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군요." (98~102쪽) 여행자들은 다같이 숨을 죽이고 바람 소리, 연필이 긁히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눈앞의 별안개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빛과 그림자가 변화하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람조차 완전히 멈추었고, 정적 사이에 사각사각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는 소리만이 끼어들었다. 리키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들으며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을, 언젠가는 결국 사라지고 말 순간을 지켜보았다. (106쪽)
작가는 포착되지 않는 순간을 담고 남기기 위해 인류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최첨단 디지털 기기와 혁신 기술을 제시하지 않았다. 눈에 담고 손으로 그리고 마음에 새기는 인간 본연의 방식을 포착되지 않는 풍경을 간직하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아련한 얘기들 앞에 마음이 절로 놓였다. 변화무쌍한 얘기들을 따라가며 스토리 라인과 플롯을 파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긴장하고 집중하며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안전하고 온화한 짧은 이야기들에 위로받고 평화로워진 시간이었다. |
| 올해 초반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작가님 팬이 되어 작가님 책이라면 전부 읽기 시작했다.나와 같은 나이임에도 정말 엄청나게 대단한 어른같은 느낌이었다. 그와 동시에 SF장르에도 빠지게되었다 이번에도 신작이 나왔다고해서 고민없에 행성어서점과 방금떠나온 세계를 구입하여 읽었는데 행성어서점은 이전 소설들보다 훨씬 짧고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단편이다보니 술술 읽히고 빨리읽히는게 아쉬워 아껴서 보는데도 읽는내내 책속으로 빨려드는듯한 느낌에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작가님의 장편인 지구끝의 온실이나 단편 모음집인 우리가 빛의속도로 갈수없다면 과는 다른 느낌으로 또 너무나 좋았다. 특유의 이야기 풀이방식과 각 편마다 다른 시점도 매력적이고 머릿속에 책을 그리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중간중간 일러스트가 삽입되어있어 한장한장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오랜 기간 책과 멀리지내다가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음에도 이상하게 소설은 읽지 않았다. 소설보다는 내 삶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자기계발서나 육아서를 더욱 찾았다. 그러다 도서관 이벤트로 읽게 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정말 오랜만에 읽은 국내 작가의 소설인데 정말 나에게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SF 소설이면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너무나 공감되고 인상깊은 이야기. 그렇게 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기다리고 기대하게 되었다.
한참 소식이 없다가 김초엽 작가의 소설이 단기간에 여러권 나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중편, 단편까지. 전부 초판으로 구매했다.
아직은 한 권 한 권 읽는 중이지만 읽으면 여운이 깊게 남고,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해보게 해주는 건 김초엽 작가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이번에 읽은 <행성어 서점>은 김초엽의 짧은 소설집이다. 단편소설 열네 편을 담고 있다.
짧은 소설이라 짬내서 잠깐씩만 읽으면 하나의 이야기를 금방 읽을 수 있어 좋은 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생각이 깊이 들어가려다가 호흡이 끊기는 느낌도 들어서 살짝 아쉽기도 했다.
이 소설은 절반 이상 읽었다가, 최근에 하는 독서 챌린지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읽어서 어느새 2번을 읽게 되었는데 신기했던 것이 처음에 읽었을 때는 살짝 아쉽다 싶었는데 두 번째 인상깊은 문구를 필사하며 다시 읽다보니 더 좋았다. 흐름이 끊긴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도리어 여운이 깊게 남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의미를 더 깊게 생각해보게 해 주었다.
행성어 서점 책 띠와 표지를 벗기면 안의 표지도 동일하다. 행성어 서점은 일러스트가 중간중간에 들어가서 읽으면서 더욱 감각적인 느낌이 살아난다. 펼치면 표지 그림이 앞표지와 뒷표지가 이어지는데, 이 그림은 이야기 중 행성어 서점 이야기에도 들어가 있다.
초판이라 작가 사인 인쇄본이다. 사인 문구마저도 독특한 느낌이 좋다.
크게 파트를 나눈다면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2개의 파트로 나뉘어 각 8개와 6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스포가 될 수 있기에 줄거리는 거의 담지 않았다.
모든 단편 소설들이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사람과 기계가 융합하기도 하고, 사이보그 눈이 등장하기도 한다. 우주의 어느 행성에 여행도 하고, 그곳의 풍경을 보기 위해 여행을 가기도 한다. 다른 행성의 언어는 번역기가 있어서 번역이 되고, 외계의 생명체가 지구에 도착해 살아간다. 우리가 사는 사회, 지구를 벗어나 시공간을 넘은 이야기. 미래의 기술들을 보며 작가의 상상력에 항상 감탄하고 한다.
그런데 단순하게 상상력에 감탄하는 것으로 멈출 수가 없는 이유는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배경이 우주이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공감되기도 하고, 감동을 준다.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딘가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아프고, 고민도 많다. 그 아픔과 불편함, 어려움을 가지고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떨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는 행성에 방문하는 이야기에서는 나도 그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이 소설은 읽는 동안 나를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해 준 것 같았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나면 뭔가 먹먹하기도 하며 여운이 남고, 오래 곱씹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김초엽 작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모두 읽어본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김초엽 작가 소설에서는 항상 앞부분에서 나온 여러 의문들이 뒤로 가면서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고, 마지막에 앞에서 나온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짧은 소설에서도 후반부에 연결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읽다가 '어? 이 이름 앞에서 봤는데. 이 이야기 앞에서 나왔는데' 하면서 다시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단편 소설마저도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인상 깊었다.
사실 열네 편의 소설이 모두 나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번을 읽었는데도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건 이 책이 나에게 꽤 의미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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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님의 <행성어 서점> 리뷰입니다. 워낙 좋아하는 작가님이라 신간이 보이는 족족 구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를 배반하지않고 매번 재미있구요. 이번 책은 단편들로 이루어 진 책이라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들어가있는 삽화도 매력있었구요. 매력있는 글들을 어쩜 이렇게 쓰시는지...다 읽고나서도 여운에 잠겨서 문득문득 생각이 나더라구요. 좋은 책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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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님의 신간 행성어 서점 올해 <지구 끝의 온실>, <방금 떠나온 세계>, 에 이어서 <행성어 서점>까지. 작가님 열일 하십니다. 좋은 작품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하게 읽었어요. 책은 1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단편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중간에 삽화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기묘한 동정과 시혜적 태도가 섞인 댓글들을 볼 때면 리지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대개의 댓글은 만족스러웠다. 아름답다, 예쁘다, 평범한 눈보다 사랑스럽다, 비율로 따지자면 그런 반응이 더 많았다. 유기체 눈을 가진 사람들이 리지를 동경할 때마다 리지는 가슴 깊이 꿈틀거리는 어떤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이건 자긍심일까? --- p.37, 「#cyborg_positive」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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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나온 [므레모사]까지, 김초엽 작가의 글을 전부 탐독하며 그가 뻗어나간 생각의 가지를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지구 끝의 온실]과 [므레모사]의 온도 사이에 놓인 책처럼 보이는 [행성어 서점]. 총 14편의 짧은 이야기를 하루 만에 빨아들이는 동안, 내 머릿속은 서로 닮기도 하고 무척이나 다르기도 한 여러 세상에 어지럽혀진 것 같다. 단순히 흥미로운 소재란 감상에서 끝나버린 이야기들도 몇 있었지만, 마르지 않는 창의력의 샘에 감탄을 하며 곱씹은 이야기가 더 많았다. '늪지의 소년'에서 시작된 외계 식물의 씨앗이 어떤 이야기에 뿌리를 내렸는지 확인하면서 책장을 넘기면 더욱 재미있다. 남들과 다른 기호를 가지고 있음이 정말로 외계인의 핏줄 때문인지를 의심해 보게 되는 일도 무척 즐거웠다. 적당히 가볍게 상상력을 깨울 이야기들을 찾는다면, 알맞은 소설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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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환대하는 일은 온전한 이해가 있을 때 가능하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정보공개가 전제가 필요하다. 그 과정엔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등장한다. 그런 모든 것들을 통과한다는 건 결국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나와 다른 모습, 다른 생각, 다른 곳에서 태어난 이들이 모두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김초엽의 단편집 『행성어 서점』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김초엽의 짧은 소설 14개는 그런 세상을 보여준다. 가까운 미래, 혹은 현실에서도 이미 누군가는 경험했을지 모를 일상,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상상 속 우주의 이야기로 독자를 이끈다. 기이하면서도 낯선 설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김초엽이 말하고자 하는 건 연대와 환대라는 걸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아든다. 거기다 소설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의 역할도 훌륭하다. 이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다 그림을 보면 훨씬 이해가 쉽다.
현실이 아닌 공상의 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소설 속 행성어 서점이 궁금하고, 이끼 같은 먼지 뭉치인 외계에서 온 식물 코코를 곁에 두고 싶고 미래에는 버섯과 공생하는 인간을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뿐인가. 내가 잘 안다고 믿는 이가 혹시 외계의 다른 행성에서 온 우주인은 아닐까 상상하게 되고 연구를 목적으로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공권력을 의심한다. 말 그대로 짧은 소설인데도 잘 짜인 스토리에 감탄한다.
최고의 건축가였던 「선인장 끌어안기」의 ‘파히라’는 수술 후유증으로 몸에 닿는 모든 것에 고통을 느끼는 접촉 증후군을 앓고 있다. 모든 물체와 접촉을 피하는 ‘진공의 집’을 설계해 그곳에 선인장과 살고 있다. 그저 닿기만 해도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선인장이라니. 보조 로봇인 ‘나’는 그가 지난 로봇에게 보인 괴팍한 행동의 원인을 찾는 지시를 받았다. 외부와 단절하고 살아가는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그와 같은 접촉 증후군이 있는 아이 소영과 함께 지냈던 시간, 고통과 통증을 이해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소영에게 배웠다. 자신과 파히리가 선인장 같다고 말한 소영. 다른 병으로 죽음을 앞둔 소영이 파히라를 안아봐도 되냐는 부분에서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을 알면서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던 소영.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선인장 끌어안기」, 30쪽)
우리가 끌어안는 선인장은 무엇일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의 고통까지 전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 가운데 진정한 그것은 얼마나 될까. 파히라와 소영은 서로가 같았고 같았기에 사랑하면서도 가까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을 꺼려 한다. 아니,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르다는 건 완곡한 표현일 뿐, 김초엽이 전하고자 하는 건 약자와 장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라는 걸 느낀다.
같은 지구에 사는 존재에게도 그런 대우를 하는 지구인이 우주에서 온 생명체에게는 어떻게 대할까. 사고로 3년 동안 혼수상태였던 「우리 집 코코」속 ‘나’는 그 사이 외계에서 온 식물 코코를 처음 만났다.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변화시킨 것이다. 어쩌면 미래엔 인간보다는 다른 종의 무언가가 인간을 더 따뜻하게 포옹하고 격려하는 위대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예전보다 행복해요. 이 작은 친구들이 우리의 옆에 머물러주기에, 인류는 더 이상 우주의 외로운 먼지 조각들이 아니에요. (「우리 집 코코」, 149쪽)
그런 미래에는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처럼 행성과 행성을 오가며 여행하거나 정착하는 이들도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속 다른 세계에서 같은 얼굴로 살아가는 존재도 많을 것이다. 나와 똑같은 얼굴의 이가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미래의 지구는 수많은 행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도 지구를 떠나지 않고 다른 행성에서 온 누군가는 정착하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는 그런 미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포항에서 강릉의 연구소로 가는 중 ‘다현’은 폐업 직전의 휴게소에서 식당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초미각자’ 주인과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맛에 대한 감각이 둔한 다현은 뛰어난 미각 기능으로 음식을 즐기기 어렵다는 주인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쨌든 이곳이 다른 미각을 가진 거주자들에게 더 환대를 베풀 수 있는 행성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206쪽)
소설을 읽으면서 감각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짜고 맵고 쓴맛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다르게 느끼는 이도 있을 거라는걸. 그런 의미로 미래의 지구에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나와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태도의 삶이어야 한다. 중대하고 위중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공존하며 연대하는 삶 말이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변형되었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요.' (「가장자리 너머」, 215쪽)처럼 삶은 변화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다름을 환대하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공존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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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을 벌려 그 애를 안았어. 끝까지 안고 있었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하면서. (…) 그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선인장 끌어안기>)
김초엽이라는 작가를 어떻게 설명할까. 처음 만난 단편집도 좋았고 이 짧은 이야기도 넘 좋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