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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로 보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6번째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이동신 교수라 집필한 <다르게 함께 살기 인간과 동물> (이다북스 펴냄)은 소통, 관계, 환경, 세계관, 육식 등 다섯가지 분야로 나누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살펴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입니다. 최근 동물과의 관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공존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동물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느껴지 않을까 하는 반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소통'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언어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는 일반적인 소통은 불가능하지만 인식을 바꾸어 새롭게 바라보는 작품들이 많이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불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질 때 이름이 그 불평등을 지속하고, 때로는 그것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게 되는데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다 더 흔하게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네 발 달린 동물에서 개라는 이름으로, 개라는 이름에서 점박이라는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그 동물은 특정한 종이 되고 다른 개와 다른 나의 개가 되며, 그래서 점박이는 친근함을 표현하는 이름이지만, 동시에 나와 그 동물이 이미 일종의 소유를 전제로 한 권력 관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말이기도 하게 되는데 작가 르 권은 <그녀가 그들의 이름을 없앤다>라는 작품에서 이런 관계를 없애려는 이브의 시도를 이야기 합니다.
신은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정하라고 했다. 이브는 그렇게 주어진 이름을 없애고, 동물들이 스스로 이름을 정할 수 있게 한다. 그러자 동물들 대부분은 이름이 없어지는 것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반면에 야크 같은 동물은 "야크"라는 소리가 자신들에게 맞는다고 그대로 이름을 가지겠다고 한다. 개나 앵무새처럼 언어적 능력이 있는 동물들은 이름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 이름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것은 "로버나 프로우프로우나 플리나 버디" 같은 개인의 이름이어서, "푸들"이나 "앵무새" 혹은 "개"나 "새"와 같은 집단적 이른은 버려진다. 이렇게 주어진 이름이 없어지자 이브는 동물들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라고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도 버릴 거라며 아담에게 통보하고 그에게서 떠난다. 이제 부를 이름이 없어지자 예전처럼 빨리 말할 수 없지만, 그녀는 "나의 말은 반드시 느려야 한다. 집에서 떨어진 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처럼 새롭고, 곧바르고, 조심스러워만 한다"라고 다짐한다. - 본문 중에서 -
언어가 소통하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데 효율적이지만 동물과의 관계를 언어로 한정해서 나누지 말고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두 번째 "관계"에서는 위계적인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불안정하고, 따라서 그 관계를 바탕으로 도덕적 공동체를 구성하고 행동의 윤리성을 가늠하는 것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면서 유기동물이나 유해동물에 대한 인간의 대처 방법에 대해서 회의적인 의견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위계적 관계가 아닌 기생적 관계로의 전환을 말합니다.
이처럼 절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기준들로 인간을 정의하고 그에 따라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정했음에도 둘 사이의 위계질서는 언제나 변함 없었다. 그리고 그런 위계질서로 동물을 비하하고, 착취하고, 죽이는 인간의 행동은 정당화되어 왔다. 물론 인간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동물을 측은하게 여기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도 가능했지만, 언제나 소수의 생각이거나 소수의 동물에게만 해당하는 헤택이었다. 위계질서가 항상 동물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폭력적인 위게질서가 없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과연 가능할까? 인간과 동물의 비교로 폭력적 위계관계가 옳지 않음을 입증할 수는 없을까? 관계에 대한 이런 질문이 동물윤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 본문중에서 - 어쩌면 가장 관심이 가능 부분은 육식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육식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할까?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개 식용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생명존중의 측면에서 보면 동물의 생명권도 존중바아야 하겠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하나의 입장만 고수하다보면, 이분법적으로 육식과 채식 문제를 단순화하면 역설적으로 진짜 피하게 된다는 것, 이렇게 혹은 저렇게 먹어야 한다는 미래지향적 주장보다는 그렇게 지저분하게 먹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렇게 먹는(혹은 목히는) 이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어찌되었든 이분법적인 대립이 아니라 육식이라는 문제와 함께하고, 동물에 관심을 갖고 동물이 가진 것을 인정하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이지는 만큼 공존하는 동물들에 대한 인간 관점이 아닌 존중하고 공존하는 생명체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시선을 둔다면 점점 멸종되어가는 생명체를 보다 보존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됩니다. 그것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울러 이 책에서 등장하는 많은 책과 작품을 한번쯤 찾아 보다 넓게 살펴보는 것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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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에 떠돌이개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으스름한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쓰레기봉투를 헤집어서 먹이를 찾고 있는 몸집이 큰 하얀 개. 나도 놀랐지만 개가 더 놀랐던 것 같다. 어릴 때 개에게 물린 기억이 있어서 큰 개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나는 혹시라도 물릴까봐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서있었는데, 하얀 개는 잽싸게 뛰어서 순식간에 도망갔다. 그 뒤로도 개는 자주 보였다. 쓰레기를 뒤지거나 누군가 놓아둔 사료를 먹으면서 아파트 주변을 맴돌았다. 사람들은 주인이 이곳에 개를 버렸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개는 며칠을 떠돌다가 사라졌다. 주인이 데리고 갔는지 사고를 당한 건지 다른 곳으로 떠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주인이 개를 데리고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배한다고 믿는 세계에서 동물이 버려지는 일은 흔하고, 동물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주인이었다면 애초에 버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함께 살기 : 인간과 동물』을 읽으면서 인간을 두려워하며 도망가면서도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하얀 개가 떠올랐다. ‘인간 중심’의 질서로 개편된 새로운 세상에서 동물들은 자유를 잃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이탈하면 살아갈 수 없었다.
이 책에 따르면, 동물은 반려동물과 야생동물로 나뉜다. 인간의 소유하거나 인간이 정해놓은 야생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도시가 생겨나고 발달하면서 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범위는 점점 더 좁아졌다. 사람들은 자연을 경시하면서도 자연을 욕망했다. 그래서 도시로 자연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동물원, 수족관을 비롯해서 동물카페까지 생겨났다. 동물들은 그 작은 우리 안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인간처럼 고통이나 다른 감정을 느끼거나, 인간처럼 사고능력이 있거나, 인간처럼 삶의 의지가 있기에 동물도 인간처럼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도 “인간처럼”이라는 인간의 기준을 동물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저자의 비판이 눈에 띈다.
도시로 끌어들인 동물의 세계는 동물을 생각한다면 만들어서는 안 되는 시설물들 이다. 하지만 인간이 중심인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왕이었다. 그렇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오만했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무지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설계한 모든 것은 결과로 돌아왔다. 인류에게 재앙이라고 명명되었던 최악의 전염병들은 그런 식으로 발생했다.
세계가 인간 중심으로 빚어질수록 동물의 서식지는 줄어들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동물들은 인간이 살고 있는 거주지에 나타나고 인간이 먹다 버린 음식을 먹은 동물들이 많아지고 인수공통감염병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났다. 멀리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우리가 이 년째 겪고 있는 코로나19가 인류에게 닥친 현실이다.
《다르게 함께 살기: 인간과 동물》는 이다북스에서 낸 <사람이란 무엇인가〉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이다. 크기가 작아서 커다란 코트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카페와 길에서 틈날 때마다 읽었다. 소통, 관계, 환경, 세계관, 육식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어를 가지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풀어낸 이 책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 얇으니까 금세 읽을 수 있겠다는 마음은 첫 장에서부터 무너졌다.
"황제펭귄의 문학은 남극의 얼어붙은 중심부처럼 비밀스럽고, 다가서기 힘들 것이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이 아름답겠지만, 그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미국의 공상과학소설 작가인 어슐라 르 귄의 문장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를 건드렸다. 이 책이 좋은 점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문학을 시작으로 철학, 영화를 아우르는 통섭의 장이라고 해야 할까. <어벤져스>에서 먼지로 날려버린 ‘우주의 절반’과 김숨의 소설 <쥐의 탄생>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과 다른 소통방식을 이해하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위계구조에서 벗어나서 생각하고, 인간 중심으로 구획된 환경에서 동물의 삶을 조명하고, 인간과는 다른 동물의 세계관을 들여다보고, 그리고 동물권을 실천하기 위해 육식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이르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가볍지 않다. 사유의 깊이를 가늠하게 된다.
나는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세계관’ 주제에 나온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프란츠 카프카의 <어느 개의 연구>에 나온 문장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인간의 욕심과 다른 동물의 욕심을 비교하면서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동물의 세계를 보여는다. 나쓰메의 고양이는 말한다. “불행하게도 어디까지나 고양이인지라 목구멍의 구조로 인해 인간들을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 전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카프카의 개는 말한다. “본질적으로 다른 개들처럼 침묵에 묶여 있다." 라고.
인간은 대상화된 존재로 동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해는 조각나고 파편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 한번도 따로 살아간 적이 없었다. 내 자신이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고 해서 동물과 별개인 인간이 될 수는 없다. 우유를 마시고 계란과 치킨과 삼겹살을 먹는 인간. 공원에서 비둘기가 많아서 피해다니는 인간.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수많은 돼지와 닭이 살처분되는 장면을 뉴스로 지켜보면서 가격 인상을 걱정하는 나. 동물과 주고받는 관계로 살아가고 있나 되짚어봤지만, 주는 것이 없이 받고만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파헤쳐놓은 자연이 훼손된 채 오염되어 돌아오고 있다. 인류세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자성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금이라도 ‘동물에게 관심을 갖고 동물이 가진 것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어렵고 거창한 작업을 시작하라는 것이 아니라고 책은 말한다. 인정하는 태도를 기반으로 ‘주변에 같이 사는 것에 대한 조심스럽고 꾸준한 관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매끄럽고 잘 읽히는 문장에 문학과 철학, 영화를 넘나드는 풍부한 내용으로 재미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책이다. “이다북스는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게 책을 만들겠습니다.” 라는 책의 시작에도 한참이나 마음이 박혔다.
이다북스는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리지로 책을 내고 있다. 그 주제는 사람이라는 존재만 따로 떼어놓는다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주제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시리즈로 나온 다른 주제도 읽어보고 싶다. ‘다르게 함께 살기’ 위해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실천해보자. 식탁에 놓인 음식과 냉장고에서 버려지는 식재료들을 살펴보고, 개 식용문제와 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들의 권리를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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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함께 살기 인간과 동물’ 우리 곁에는 늘 동물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개와 고양이는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이자 현재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처럼 전자칩을 피부에 이식해 마치 주민등록처럼 각자의 고유번호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취지는 그게 아니었지만 그렇게 많은 동물들이 인간과 함께 한 장소에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필요에 의해 모든게 달라질 수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동안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으로 사육과 도축을 했으며 현재도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어떤 동물은 인간과 함께 하지만 어떤 동물은 먹혀야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동물과 어떤 관계로 남아야 하는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동물들은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열등한 존재로 살기위해 서로를 잡아 먹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다시 잡아먹는 행위가 마치 당연하다는 논리로 나아가는데요. 많은 연구와 관찰을 통해 우리가 생각한 동물들이 전혀 그렇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들도 생각을 하고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동물로 굳이 다른걸 찾는다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동물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모든 동물이 그렇지 않지만 가끔씩 지극정성인 모성애를 보면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부모들이 오히려 더 동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동물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모든 인간은 자신들을 잡아먹는 존재일 뿐입니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닌 공존하기 위해 그들의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고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일이 발생하던 어떻게 살아가건 동물은 언제나 인간과 함께할 것이며 공존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살아갈 것입니다. 가축이 아니라 친구로서 그들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사는 세상. 어쩌면 반드시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외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가족 그 안에 존재하는 반려동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이다북스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좋은 책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시간에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좋은 책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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