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보험이 실제로 있다면 사람들은 가입할까? 잘 만하면 페이백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보험금을 꼬박꼬박 내고 유지할 여력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입자가 없을 거 같다. 보험 약관에 기재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증명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결혼 준비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러지 않을까.
윤고은은 결혼 안심 보험이라는 주제로 코로나의 시대를 건너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이라는 건 지금 이 시대에 꼭 해야만 하는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소설 속 주요인물로는 네 사람이 나오는데, 그들을 이루는 관계가 모두 보험으로 연결되어있어 사랑과 결혼, 보험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더군다나 소설에서 큰 역할을 하는 건 보험 약관집이다.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위한 지침서’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으며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즐겨 읽는 에세이로 여겨질 법하다.
안나는 ‘도서관 런웨이’라는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도서관의 서가를 걷는 사진을 올리는 여행사 직원이었다. 유리는 안나와 대학 때 룸메이트로 지냈던 친구로 코로나의 시대 더 바빠진 보험사 직원이다. AS손해보험사의 언더라이터였던 조는 AI가 위험인물로 분류한 정우를 결혼안심보험에 가입시킨 전력이 있다. 정우는 캐나다의 헬리팩스 도서관에서 안나를 보고 사진을 찍어주며 알게 되어 결혼까지 한 인물이다.
AS결혼안심보험 약관에 나타난 K의 가족과 새언니의 이야기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데 꽤 특이한 방법으로 설명했다. 일단 결혼안심보험이라는 생소한 보험 제도에 궁금증을 갖게 했고, 실제로 존재하나 싶어 검색도 해보았다. 약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실제로 보험사에 근무하나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보험사의 약관집을 꽤 연구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르게 보면 이 작품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타인이 만나 연인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렇잖으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에 머무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게 된다. 그 마음을 한 마디로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친하다고 여겼으나 사소한 오해 때문에 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아주 많은 것처럼. 나중에서야 오해를 푸는데 그러고 보면 누구와의 관계든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읽어야 할 시점이 되는데, 사건 혹은 인물들의 연결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기 때문이다. 놓쳤던 에피소드, 이를테면 줌에서 나누었던 안나와 나눈 대화를 오랫동안 복기했던 유리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치고 나면 잊어버리는 일들의 복기라고 해야 할까. 추리소설을 자주 읽는 나는 안나의 남편, 즉 정우가 왜 죽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정우의 죽음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왜 결혼안심보험에 가입하려고 했는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슬픔을 극복하며 자신을 추스르는 소설로도 읽혔다. 안나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정우와 함께 들었던 음악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고,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애틋했으며 함께 있는 듯 여겼다. 그 모든 시간과 장소에 정우가 옆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 또한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다시 도서관 서가 사이를 걷고, 창을 들어오는 햇빛을 정우의 시선처럼 여기고 싶었는지도.
걷는 동안 비스듬히 들어오던 햇빛의 각도, 낮은 소음, 누군가의 시선, 작가들의 데뷔작만 모아놓은 코너,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누르던 남자 ······. 그중 어떤 것이 안나를 사로잡은 것인지는 안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10페이지)
소설의 첫 부분이 아주 좋았다. 서가가 보이는 도서관의 풍경을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서가를 걷는 안나의 모습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도서관 런웨이라는 표현도 좋았다. 안나가 런웨이를 했던 건 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누르던 남자의 시선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정하고도 사랑이 넘치는 그 시선을 즐겼던 거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주 가볍게 여겨지다가도 이럴 때는 묵직하다. 잃은 사랑이 아파 애도의 시간을 오래 갖는다. 아마 사랑을 했던 기간보다 애도의 시간이 더 길지도.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도서관런웨이 #윤고은 #현대문학 #책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핀시리즈 #현대문학핀시리즈 #핀소설선 #핀소설 #월간핀리뷰대회 #도서 #리뷰 #서평 #안심결혼보험 |
|
어디에도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게 마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영업자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고 있는 게 힘들다. 간신히 그 자리를 벗어나 살고 있다는 게 아프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울 수도 없으니 웃음을 지어야 하는 연습을 해야 할까. 그래서 더 감사한 일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기도 한다. 과거로 속해버린 열정, 언제 실행될지 모르는 계획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건 무엇일까.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잡을 수 없는 존재, 사라져버린 사랑일지라도.
‘안나’에게는 그럴지도 모른다. 휴가차 떠난 여행지에서 우연히 맺어준 운명. 그와 결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한다. 결혼식은 미루었고 친구들의 축하만 받았다. 코로나 여파로 안나는 여행사에서 퇴직했다. 화자인 ‘나’는 보험사 직원으로 안나와 대학 동기로 어느 시절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냈다. 친했다면 친했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관계다. 오랜만에 연락을 해도 불편하거나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이. 종종 안나의 SNS에서 그녀의 일상을 확인하고 한 번씩 통화를 하고 안부를 나눈다. 안나는 도서관 통로를 걷는 장면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안나는 도서관에서 AS안심결혼보험이란 책을 대출하는데 그건 책이 아니라 보험 약관집이었다. 약관집을 중고로 구하려는 이가 많다는 사실에 안나와 나는 놀란다.
안나와 자주 연락을 하지 않는 나에게 안나의 지인이 연락을 해온다. 그녀는 안나가 운영하는 독서모임의 회원으로 연락이 끊긴 안나를 걱정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지인을 통해 안나의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안나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안나와 나눈 대화, AS안심결혼보험이 그녀를 찾는 단서라고 생각한다. 안나는 그 책을 고스란히 도서관에 반납했고 나는 그 책을 대출한다. 이제 소설은 안나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라기 보다 AS안심결혼보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20년간 납입을 하면 130%로 환급을 해주는 보험, 결혼에 있어 다양한 에피소드에 대해 보험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지급 가능성은 너무도 어렵다는 사실을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소설에서 들려주는 예단 예물에 대한 사례는 현재 결혼의 의미와 그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예단 예물로 지출된 비용을 청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냉장고를 바꾸고 반상기를 싸지만 그건 해당이 안 된다는 너무도 정당한 보험사의 사유는 놀랍지만 타당해보인다. 반상기는 구시대적 발상이며 이전의 잘 사용하던 냉장고를 굳이 예물로 바꿀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AS안심결혼보험의 사례는 너무도 현실적이라 마치 이 소설이 이 보험에 대해 설명하며 결혼을 분석하는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안나가 활동했던 독서모임에서 이 책(보험 약관집)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데 결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AS안심결혼보험를 중고로 내놓은 손해사정사 ‘조’를 만난다. 어쩌면 안나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한 것이다. 상대가 들고 나온 건 안나가 대출한 책이 아닌 다른 버전이었다. 조를 통해 AS안심결혼보험이 가입자마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과거 AS안심결혼보험의 직원이었다. 가입자마다 특약이 다른 것처럼. 조를 통해 AS안심결혼보험에 대해 가입 절차나 약관과 특약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듣는다. 안나가 대출한 약관집에서 사라진 페이지에 대해서도. 둘은 자주 만나고 가까워진다.
그리고 안나가 연락을 해온다. 나는 안나에게서 사라진 약관집 내용이 어떤 것인지, 남편 정우가 AS안심결혼보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남편과 안나, 둘 사이의 일상에 대해서도. 안나에게 정우가 어떤 존재인지. 안나가 얼마나 그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도. 그가 떠난 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과거에 머무는 안나를 볼 수 있었다. 불쑥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설 밖에 있는데, 그런 생각이 달려들었다.
“아무 신호가 없다는 게 위안이 될 때도 있다. 왜냐하면…… 불행의 신호를 미리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그리 많지도 않거든.” (246쪽)
안나와 정우와 보낸 반짝이는 시간들, 그것에 대해 들려주는 부분은 차오르는 슬픔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안나가 지금 살아갈 수 있는 힘 역시 그 시간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알 것 같다. 안나가 살아갈 세계는 여전히 차갑고 어두울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윤고은의 기발한 상상에 감탄했을 것이다. 작가가 시의성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하여 현재의 삶에 대해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삶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님을 알아. 먹구름에 가려 일몰을 볼 수 없는 날도 생기고, 애써 준비한 마음이 오해되고 버려지는 경우도 생기겠고, 삶의 타이밍이 늘 한발 늦을 수고, 내 경우엔 미련도 품을 수 없을 만큼 열 발쯤 늦을 때가 많고, 시간 낭비 같은 산책도 많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일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훼손되고 내 속도가 흔들릴 때도 울지 않을 거라고 말할 자신은 없는데. 그렇지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아주 좋아한 힘이라는 건 당시에도 강렬하지만 모든 게 끝난 후에도 만만치 않다. 잔열이, 그 온기가 힘들 때도 분명히 지지대가 될 거야. (258~259쪽)
누군가는 안나에게 사랑이 끝났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슬픔에서 일어나 다른 것들을 보라고. 사랑의 끝은 누가 정하는가. 그 사랑 안에 있는 당사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 어떤 이도 그 사랑의 내부로 침범할 수 없다. 안나와 나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
|
|
|
그렇다면 나는살아야겠네, 더열심히 /258
+ AS안심결혼보험 보험약관집 - 결혼은지진이나화재, 암이나치매와다를바없는, 누군가에게벌어질수도있고 아닐수도있는그런일, 그러니보험이필요한세계다 /93 - 작가님의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 책을읽으면서 안나의이야기가 너무나도궁금했는데 기다림끝에드디어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