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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이 하는 이야기를 농담이라고 한다. 여기서 '실'이란 '열매'를 뜻한다. 알맹이 없이 주절 주절하는 이야기들을 흔히 '실없는 농담'이라고 한다. '소설가의 농담'은 '김준녕 소설가' 님의 머릿속 이곳 저곳에서 '소설'이 되기를 기다리다 삐져나온 파편들의 모집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 하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하는 한마디와 한마디에 숨겨져 있는 그 인물의 배경과 삶이 녹아져 있어야 한다. 그런 인물들이 얽히고 섥히며 새로운 상황을 맞이한다. 그저 허튼 이야기나 해대는 것과는 다르게 소설은 굉장히 많은 생각과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김영하 소설가 님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를 해내는 정도를 넘어서, '완전한 세계'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지식들이 필요하다. 실제로 소설가들은 그들이 다루는 여러 분야에 대해 '준전문가' 수준까지 깊게 파고 들어간다. 그런 그들이 소설 한 편을 짓기 위해 떠올리고 공부해야 했던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들은 소설로 남지 못할 때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그의 책은 '사랑에 관해 쓰지 못한 날'을 통해 접했었다. 그 또한 수필이었다. 소설을 쓰다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는 어떠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꾸준히 무언가를 읽고, 무언가를 쓰며, 무언가를 경험해 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야깃거리가 솓아난다. 나 또한 그렇다. 매일 꾸준하게 일정 분량을 써내는 습관을 보며 누군가는 어떻게 그렇게 매일 다양한 소재로, 여러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단순히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글을 읽고, 누군가로의 감정이입을 하고,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며 거기에 몰입하다보면 되려, 이야기는 소비할수록 더 샘솟는다. 흔히 말하는 '글쟁이', '이야기꾼'이라는 사람들은 아무리 글 써서 머릿 속 아이디어를 소비시킨다고 해도 더 샘솟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짧은 시와 간단한 산문들이 이 책에 형식없이 소개된다. 아마 이야기 하나를 지으며 떠오르던 수많은 사색이 모두 녹아져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떠올려 볼 엄두도 내보지 않았던 여러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살면 우리는 생각보다 '누군가'의 입장을 생각해 보지 않는다. 오롯하게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자신의 주장에 매몰되기 쉽상이다. 하지만 소설가는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최대한의 인물의 속과 겉을 모두 이입하고 본다. 그런 이들의 생각을 훔쳐보는 것은 값싸게 자기계발을 해내는 불공정 거래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그것을 업으로 삼지 않는다. 글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생활해 내는 사람에 대해서는 굉장히 호기심이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많지 않은 직업 중 하나다. 탈무드 임마누엘 제 6장 27~29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들은 땅 위에 큰 보배들을 쌓아 두지 마시오. 땅 위에는 좀이나 녹이 그것들을 잠식하며 도적들이 훔쳐 갑니다. 그 대신 영혼과 의식들에 보배들을 모으시오. 그 곳은 좀이나 녹이 쓸지못하고 도적들이 훔쳐가지도 못합니다. 보배들이 있는 곳에 그대들의 마음 또한 있으니, 참된 보배는 지혜와 지식 뿐입니다.' 우리가 쌓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감가상각이 일어난다. 갑작스럽게 위험에 쳐 해지거나 누군가가 훔쳐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금고보다 강력하게 보배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속에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정 부분의 지혜와 지식을 꺼내어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만큼 완전한 사업은 존재하기 힘들다.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또한 누군가의 머릿속에 자신의 것과 비슷한 복제품을 전달하는 일이다.
책의 시작하는 부분에 '주의'가 적혀 있다. '지금부터 당신이 보게될 모든 글은 농담이다. 말 그래도 웃자고 하는 소리다. 웃긴 농담부터 슬픈 농담까지 그 범위는 헤아릴 수 없다. 부탁이니 절대 기억하려하지말고, 담아두려 하지말아 달라. 냇물 흐르듯 당신의 머리에서 흘려 버리길 바란다. 당신이 이 책을 펼친 순간부터 위 내용에 동의했다고 판단하고서 난 마이크를 잡겠다. 만약 기분이 나쁘다면, 뭐 어쩔 수 없다. 허공에 내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라. 값을 치렀으니, 응당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는가.' 이는 책이 시작되면서 적혀 있는 부분인데, 사실상 굉장히 많이 공감했다. 전문가의 인문 혹은 전공 서적이 아닌 이상 작가의 글은 사실상 이렇게 오락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작가는 글 속에 '교훈'이나 '교육적 내용'을 담기보다 읽는 시간 즐거움을 더 추구한다. 어떤 책이라도 마찬가지다. 이 책 외로 나 또한 그렇다. 어떤 책이던 무언가 남기려고 강박을 갖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재밌는 예능프로를 보며 펜과 종이를 들고 장면을 돌려보고 사진찍으며 무언가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자세는 예능 프로를 더 재밌게 만들고 즐기게 만들며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아도 찾아보고 반복해 보게 한다. 결과적으로 어제 들었던 수업내용보다 어제 봤던 예능프로의 내용이 더 기억이 남는 이유는 거기서 출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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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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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글<소설가의 농담 - 김준녕 단상집> '그러니까, 여기 적힌 글들은 소설이 되지 못한 저의 파편들입니다. 동시에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웃으면 세르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니 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호르몬 파티에 둥둥 떠다니다 보면, 수도승처럼 언젠가 단박에 뇌에 전기 신호가 치면서 깨달음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의 말' 에서 김준녕 작가님의 단상집인 <소설가의 농담> 에서는 짧은 농담부터 긴 농담이 수록되어져 있다. 1.농담의 공식 2.몸부림에 가까운 농담들 3.구원을 가장한 농담들 4.쓰는 농답들 5.너와 나의 농담들 6.미래의 농담들 위와 같은 농담중에 가장 맘에 드는 몇가지를 적어보도록 하겠다. (사실은 와닿는 말) *p.43 [정답] 모든 것에 정답이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잘 쓴 소설에도 잘 그린 그림에도 잘 찍힌 사진에도 다만, 정답은 자유를 갉아먹는 족쇄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p.171 [지루한 고백] 창작물은 어떤 형태로든 재미를 독자에게 주어야 한다. 슬픔에서 얻는 카타르시스도 다른 형태의 재미라 생각한다. 생명체들은 남의 불행을 관음하며 행복을 얻는다. 허약한 동료가 잡아먹히는 장면을 무심히 바라보는 가젤들처럼. *p.182 [만들어진 위험] 걱정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나마 일어난 걱정들도 걱정할 당시의 내가 막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스스로 걱정을 만들었고, 불안으로 자신을 몰아넣었다. 허상이 실제를 압도하면서 병이 깃들었다. 이른바 만들어진 위험이다. *p.202 [해답] 이 책에서 해답을 찾지 마시오. 이 밖에도 몇가지가 더 있는데 페이지만 적어보고자 한다. *p.34[사념] *p.90[룸펜.3] *p.94[게임과 스토리] 김준녕 작가의 글은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한번쯤은 더 깊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웃으며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 많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끝이없는 고민을 반복하다 이내 '농담입니다, 하하.' 라고 끝맺어야 하듯이 그렇게 많은 조각들을 합쳐 농담집을 내신게 아닐까... 글들을 보면 심오하지만 농담이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농담이라기엔 굉장히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단순한 농담이 아닌 깊이가 있는 글들이 모여있는 김준녕 작가님의 <소설가의 농담>을 추천해 본다. 이상, 서평을 마칩니다. #글스타그램 #서평단리뷰 #책리뷰 #소설가의농담 #김준녕작가 #농담이지만가볍지않은이야기들 #조각과파편이만나 #농담들로수록되어지는순간 #추천책 #생각이많아지는책 #달빛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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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농담_김준녕 12p- 짧은 농담은 원초적 본을을 건드려야 한다. 생리현상, 인종, ,섹스 등이 이에 속한다. 긴 농담에는 기존 이야기를 뒤집는 결정적인 펀치라인이 필요하다. 원초적 본능과 함께 더욱 효과적이다. 다만 조심하자. 관객에서 먹히는 농담일수록,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은 늘어난다. 112p- 부동산 가격은 감히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오르고, 주식 가격은 날마다 널뛰기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의 의미는 희미해져간다. 열심히 머리를 싸매고 일해봤자, 부모에게 건물 하나 물려받은 백수 친구가 자기 연봉의 몇 배를 한 달 만에 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느끼는 패배주의는 이러한 자본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중략) 자본주의를 이루는 모든 가치가 상호 보완적인 것은 아닌 것은 알겠으나, 오늘날 자본 차이에서 기인한 패배주의는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할 만하다. 134p- 그래도 가끔은 자기 가둠이 필요한 것 같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홀로 생각에 잠겨서 정리할 시간이 말이다. 내게는 그런 시간이 네게 연락해도 답장이 없을 새벽이다. 개도 그때는 잠들어 있다. 138p-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그중 하나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늘어난 권리들만큼, 우리는 아이를 '그저' 낳아 기르지는 못하게 되었다. 160p- 내 삶을 잘 아는 이가 보면 이중적이라 욕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는 점이다. 그때의 나는 머리에 뭐가 들어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 244p-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우리 세계는 유지될 수 없다. 이미 많은 사람이 화학약품에, 개발에 의해 죽었다. 번식하면 할수록, 먹이는 줄어들게 된다. 알게 모르게 남의 목숨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책의 첫장에 농담이니 기억하려 하지 말고 그저 흘려보내라고 말한다. 이 말이 책 처음에 있어서 책 읽는 동안 아주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여행을 가서 '소설가의 농담'을 읽었다. 여행가서 짧게짧게 읽기 아주 좋은 책이었다. 좋은 공간에서 가볍게 마음편히 읽기에 정말 좋았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해준 '소설가의 책'. 농담이지만, 위로 받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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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글을 쓰는 작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거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와 닿았어요 김준녕 소설가의 단상집인데 책 마무리에 작가의 말에 보면 소설 외에는 써내지 않았었지만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단상집으로 묶어냈다고 해요 나와는 생각하는 방향이나 상상하는 범위 자체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그래야 소설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펼쳐내고 이야기를 써낼 수 있겠지요 다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몇 번 다시 읽어보기도 하면서 책을 읽는 동안은 상상의 세계에 빠졌다가 나온 기분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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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준녕님의 단상집 [소설가의 농담]은 소설로 되지 못한 파편들을 적은 에세이집이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고 이상한 강박관념에 잡혀 있었던 때, 작가가 아니라 세일즈맨에 가까워지면서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현실은 책이 아니라 그 바깥에 있는데 왜 소설을 써야 하는지 알지 못해 소설다운 소설을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소설가의 농담이라고 하여 어떤 이야기가 쓰여있을지 궁금하였다. 책 커버도 색상이 화사하니 파스텔 톤의 하늘을 예쁘게 그려놓은 듯 인상적이어서 마음도 가벼워지는 듯 했다. 작가는 농담이라고 가볍게 읽고, 기억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농담이 진담이라고 하였듯이 글 속에 우리에게 주는 묵직한 울림이 있는 그런 단상집이었다. 단상집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변의 이야기를 주제로, 혹은 사회의 이야기를 작가의 가벼운 말투로 툭툭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옆 집 친구와 커피나 술 한잔 가볍게 하며 주고 받는 있을법한 농담거리들이 자신의 생각의 파편들을 모아 놓아서인지 편한 마음으로 읽은 책이었던 것 같다. 64p 이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던, 높은 세계로 가던, 물질은 사라지지만, 경험은 우리에게 남는다. 세상을 누비고 다녔던 우리의 지금은 세상 어딘가에는 영원히 남을 테니. 119p 물리적 늙음은 방지할 수 없지만, 다행히 정신적 늙음은 소거가 가능하다. 읽고, 듣고, 쓰자. 그것도 최대한 많이. 170p 언어란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매일 앞으로 나아가고 변주하는 것이니까. 181p 사람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포기할 줄 모르고 도전하는 사람은 독선적인 자이다. 잠시 멈추자. 멈추고 주변을 보자. 주변을 모두 보았으면, 나를 보자.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리 표독하게 살아왔는가? 소설가의 진심담긴 농담들이 마음에 쉼을 주었다. 책을 읽으며 거기에서 무엇인가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나에게 주는 교훈, 감동들을 찾으려 한 나 자신에게 쉼 그 자체였다. 책을 읽는다는 것, 가끔은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그곳에 은근 밀려오는 단상들을 느끼고 싶어서 였다. 그런 생각들을 조금은 채워준 그런 에세이였다. 잠시 멈추고 나에게, 우리에게 주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힐링의 시간이 되기를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머리가 복잡해서 무거워질 때, 마음의 잠시 쉼이 필요할 때 한번 쯤 펼쳐보며 웃을 수 있는 책, [소설가의 농담]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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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여기 적힌 글들은 소설이 되지 못한 작가의 파편이라고 한다. 작가의 일기는 책이 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생각의 파편 혹은 단상이라는 말을 사용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하다. 생각의 파편들을 떠올리고 글을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신없이 사느라 나는 내 글을 쓰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이 책은 작가의 단상 혹은 에세이 혹은 농담 같은 것들, 말 그대로 단상집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며,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꾸미면 꾸밀수록 덜 아름다워지며, 빼면 뺄수록 거대해진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p. 32-33) 생각이든 말이든, 감추려 하면 할수록 진심이 드러나는 일들을 보곤 한다. 에둘러 표현한다고 여러 겹 감싸봤자, 사실은 간절히 감추고 싶었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꼴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말의 힘이자 글의 잔인함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나를 감추었다고 착각했으나 나의 전부인 나의 글들처럼. 불행한 사람일수록 과거를 헤맨다. 술에 취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다고 으스대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p. 121) 불행한 또는 현실에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을 감추려 한다.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감추는 것이 무슨 문제이겠냐만, 과거의 자신을 부풀리거나 현실의 빛나는 조각 하나만을 전체인 양 바라보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결코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사실 무해한 행동이긴 하나, 무해하면서도 무익한 행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소중한 자신의 오늘을 열심히 살지 않고 그저 남에게는 어떤 흉이 있는지, 남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은 없는지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지는 않다. 바람 한 점에도 언제든지 멀어질 수 있는 것. 설령 그것이 끊어질 수 없는 관계라 지금 느껴진다고 해도. (p. 199) ‘관계’의 의미를 규정지어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에게 관계는 가깝고도 먼,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진중한, 변화무쌍한 그 무언가라고 대답하게 될 것 같다. 가장 소중했던 관계가 아침 안개처럼 한낮에 눈앞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꽤 단단해 보였던 철옹성이 무너지기도 하며, 절대 이어지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와 뒤섞여 있기도 한 것이 관계이자 인연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므로. 가볍게, 가끔은 차분히. 호흡은 길게, 가끔은 물방울처럼 끊어가며 함께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농담이라지만 장난스럽지는 않은 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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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농담집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농담이지만 분명한 가치가 존재한다. 그야말로 고품격. 역시 글은 잘 쓰고 봐야하는것인가 싶다. "여기 적힌 글들은 소설이 되지 못한 저의 파편들입니다. 동시에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파편들 치고는 꽤나 갖고싶은 조각들이다. 파편이라고 한 이 글의 조각들을 손에 쥐고 폈다 쥐었다하며 오래오래 만지작거리며 사유하고 싶어진다. 작가라는 직업은 참 부러우나 그 직업을 소원하고 소망하기에는 (재능이 없을 뿐더러) 그것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것들을 포기하는것이 쉽지 않을것 같다. 그러니 그 어떠한것을 포기하고 작가가 된 그것은 참으로 귀하다. 쓰는 자유, 그 자유 안에서 펼치는 생각들을 전하고 나누는것. 그것은 생각만으로 굉장한 환상적인 일이다. '소설가의 농담' 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농담속에 깃듯 사유의 그릇을 보며 생각했다. 글쓰는 이들의 시선이 머무는곳은 무엇이든 창조되고 재창조가 될 수 있게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소설가의 웃자고 하는 소리, 농담. 그 농담이 오늘 나를 새롭게 한다. ???본문중에서 오룡차의 인기가 높아지자, 대만에서는 비슷한 청차를 우롱차라 부르며 세계에 수출했다. 그렇게 우롱차는 청차 그 자체가 되었다. 나도 이 예시를 받아들여 가명을 하나 만들까 싶다. 하루키가 아니라 하로키로, 김영하가 아니라 김일하로, 정세랑이 아니라 정새랑으로.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다. _ p. 13「우롱차」 중에서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포기가 필요했다. 돈, 권력, 건강, 그리고 안정된 삶부터 결코, 누구 하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기회까지. 이렇게 포기해서 얻은 것은 단 하나. 쓰는 자유였다. _ p. 87「룸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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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집...
한 페이지, 두 페이지 .... 이었다가 !!!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래. 이런 글 본 적 있지 않음? 고백컨대, 이십대 초반에 김준녕 작가님 단상집 중 일부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적어본 경험이 있다. 이 책 대중적일지도 모른다는 것. 반가웠다.
인독기 회원님들 중 일부는 벌써 이 책의 리뷰를 작성했다. 내가 읽어본 두 분의 글은 이 책의 첫인상은 난해하다는 점. 읽다보니 나도 궁금해졌다. 완독 후에 어떤 글을 남길 것인가. 내가 찾은 방법은 김준녕 작가가 쓴 소설을 읽어보자는 것이다.
또 한가지 발견한 이 책의 활용법은 펼쳐진 대로 읽어보자는 것. 짧은 글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가령 이 글들을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이 글을 만났다.
189페이지 힙 HIP 中에서 "나는 내 소설이 힙-하기를 바란다. 한 문장으로 어떤가 정의 내릴 수 있기보다 눈짓, 발짓으로 몸을 꼬아야만 털끝만큼 느낌을 보낼 수 있는 힙-한 소설이기를 바란다."
<아파트먼트>라는 소설을 읽고 단상집을 읽었는데 묘하게 닿는 부분이 있었다. 양가감정.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로인해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는 것이 두렵다는 마음. 그가 쓴 글들은 자본에 잠식되어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비난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너무 양심적인 거 아님? 책의 중간 중간에 흐르는 정서를 읽다보면 역시나 글은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른 나이에 책을 낸 사람을 알게 되어 좋다. 그가 나이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아마도 이 사람은 그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지면을 통해서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믿고 있고, 때가 조금 지나가더라도 아! 사실은 제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작은 지면을 빌려서나마 알려줄 사람이니까.
소설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장면이 있다. 최동훈 감독님의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천호진 배우님이 경찰서에 찾아온 극중 박신양 배우의 형(영화에서는 1인 2역)이 사기 고소를 위해 찾아오자 그가 자신이 보고 있던 소설책의 한 구절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작품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는 장면. 그 소설을 아는 독자는 거의 없다. 즉, 잘 팔리지 않았다는 점. 그럼에도 천호진 배우님의 대사의 요지는 이렇다. "나만 좋으면 됐지"
무엇보다 짧은 글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작가는 매력적이더라는 말이지. 농담 속 진심을 알아보고 싶어졌다. 잘 읽었습니다. 김준녕 작가님.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인 의견이나 느낌을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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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농담(김준녕단상집) #김준녕 “그러니까, 여기 적힌 글들은 소설이 되지 못한 저의 파편들입니다. 동시에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웃으면 세르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니 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책을 보면서 작가의 생각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글쓰는 어려움을 유머로 승화한 작가의 노력들에 미소를 머금었다. 책은 1. 농담의 공식 2. 몸부림에 가까운 농담들 3. 구원을 가장한 농담들 4. 쓰는 농담들 5. 너와 나의 농담들 6. 미래의 농담들 6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책중에서 <사념> 소설 하나를 끝내는 순간 이야기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이제 글을 읽는 당신의 것이다. 나는 모래를 훑어버리는 승려처럼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에 이야길 놓아버린다. 세상에 온전한 내 것은 없다. <교과서 문학>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뒤 설명 다 자르고 글 전체 중 부분만 가져왔으니 상황도 정확히 이해가 가지 않고, 몰입도 되지 않았다. 본문 대가리에는 플롯이 요약되어 있었지만, 머리에 박히지 않았다. 그러다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교과서에 실려 있던 작품 전체를 보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글에는 교과서에는 드러나지 않은 각종 인물의 악행이 묘사되어 있었고, 더 나아가 성적인 표현도 은근히 드러나 있었다. 누락된 문장들은 단순히 사춘기 소년의 욕구를 채운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 자유를 느꼈다. 자유롭게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논란> 이 글을 읽어주는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코스트코> 사람들은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식품에서 공산품으로 일정한 물결을 만들어 낸다. 카트를 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정어리 떼처럼 몰려다닌다. 물건을 집어 들고 비교하며 카트에 담을 때면 그런 내가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아, 물론 계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해답> 이 책에서 해답을 찾지 마시오. 가끔은 어이없어 웃음이 나오기도하고, 또 가끔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에 박수를 보낸다. 때론 웃음으로 때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오묘한 책이다.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들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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