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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생물학적인 눈물..
"[88] 생물학적인 눈물.." 내용보기
[ 형식의 세계 ]   절차는 없다. 새를 바라보는 것이므로.   빛이 새의 몸을 관통할 때. 누구든 게임이 끝나길 바란다. 아낌없는 폭언들이 분주하게 떠돈다. 가로등 위로 떨어지는 찬비. 새의 목숨은 상투적으로 널브러져 있다.   게임이 종료되기 직전 전봇대 꼭대기에 앉아 있는 직박구리를 보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명징했다.   새의 고향이 숲이라는 전설은 허황
"[88] 생물학적인 눈물.." 내용보기

[ 형식의 세계 ]


 

절차는 없다.

새를 바라보는 것이므로.

 

빛이 새의 몸을 관통할 때.

누구든 게임이 끝나길 바란다.

아낌없는 폭언들이 분주하게 떠돈다.

가로등 위로 떨어지는 찬비.

새의 목숨은 상투적으로 널브러져 있다.

 

게임이 종료되기 직전

전봇대 꼭대기에 앉아 있는 직박구리를 보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명징했다.

 

새의 고향이 숲이라는 전설은 허황된 말이다.

전봇대엔 가로등이 걸려있다.

매일 밤 환히 커져 있어야 하는 육체는

매일 밤 쓰여야 하는 운명.

 

게임을 즐기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다.

나는 애초에 게임을 원치 않았다.

 

계절도 없이 유지되는 행간의 악몽.

오늘도 무덤을 밟지 않았다.

 

새가 허공으로 날아오를 때.

광장이 건물을 뒤엎을 때.

 

슬쩍, 당신의 영혼을 훔친다.

 

 

[ 빈 들의 저녁 ]


 

혼자 남을 때가 있다.

아무도 없고 아무 가진 것도 없이

두려운 가난만 남아 저물 때가 있다.

무리를 떠나 빈방에 돌아와

두부 한 조각에 막걸리를 들이켤 때. 

빈속에 피가 돌고 몸이 뜨거워질 때.

문득 빈 것들이 예쁘게 보일 때가 있다.

조금 더 편하기 위해 빚을 지고

조금 더 남기기 위해 어지러운 곳을 기웃거렸다.

가진 것 다 털고 뿌리까지 뽑아내고


빈 들이 된 몸.

빈 몸에 해가 저물고 잠자리가 날고

메뚜기가 뛰어다닐 때.

아름다운 것을 조금쯤 알게 되었다.

들에 앉아 남은 두부 한 덩이 놓고

저무는 해를 볼 때.

세상의 온갖 빈 것들이 얼마나 평온한지.

얼마나 아름답게 우는지.

서로 자랑하듯 속을 비워내고 있다.

 

 

 

[ 툭 ]


찬바람이 옷깃을 연다.

궁핍도 잊고 지체한 일들도 잊고

언덕을 오른다.

바람의 체온을 오래 안으면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붉게 물들어간다.

물들어간다는 건 소멸하는 것인데

이 아름답고 황홀한 속마음을 어디에 둘까.

악인이 넘치는 세계에서

무엇이 붙들고 무엇에 물들고 잠들까.

무엇을 위해 우린 목소리를 놓지 못했을까.

지난여름 온몸을 물로 가득 채웠지.

물의 힘으로 당신을 기억했다.



이제 서서히 내 몸에 물이 빠져나간다.

잎들은 모두 붉고 노랗게 늙는다.

언덕의 세상과 당신과 내가 온통 물들다가

툭 다른 계절로 사라지는 순간.

푸석한 내 몸에서 당신이 툭 떨어져나가는 순간.

툭 툭 빗방울이 가슴을 두드리는 절명의 순간.

 

 

 

 

[ 에다 ]


 

풀잎이 너를 쓴다.

바람이 도는데

밤이 도는데

풀잎이 너를 쓴다.

혼돈에 취해 풀잎의 뼈를 매만진다.

게르만들의 이름을 발음해보며

당신의 얼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뿌연 밤이다.

거품이 가득한 허무다.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희멀건 다리들만 거리에 가득했다.

어른이 되어도 수염이 나지 않는다.


 

풀잎이 너를 쓴다.

멀리서 너를 읽는 소리가 들린다.

네 몸이 조각나 날린다.

 

우린 모두 피를 만드는 사람.

어떤 사람은 역사를 쓰고

어떤 사람은 일기를 쓰고

어떤 사람은 시를 쓴다.

 

새벽이 건너가는 소리 들린다.

거울을 보니 흰 수염이 가득하다.

 

...  소/라/향/기  ..

s******8 2021.12.13. 신고 공감 13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