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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메이플레이(mayplay) 책으로 꿈꾸다 https://blog.naver.com/mayplay/222573505589
시간의 숲 /심강우 글 / 서혜리 그림 / 고래책방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나가는 시간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 기억 속에 좋은 일, 나빴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들만 늘 남는 것 같다. 이 기억이 왜곡된 기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분명 힘들고 슬프고 아팠던 기억도 있었을 텐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 머리가 그 기억을 잊어버려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동화 속 시간의 숲 루빈의 기억이 이와 비슷하게 여겨진다.
이야기는 나, 소연이 꿈속에서 칸을 떠올리면 괴로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차비를 두고 나와 걸어가는 길. 미술관에서 무료 전시회가 열려 무작정 들어간다.
전시된 그림들 중에서 한 그림을 빠져있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림 속에서 루빈을 만난다. 그곳은 루빈이 행복하게 기억하는 시간이 모여있는 공간이다. 루빈과 이야기 나누며 서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픈 기억으로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것도 같다. 루빈은 한스 때문에 자신의 부모님들이 독일군에게 들켜 잡혀갔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 때문에 한스와의 기억을 잊고 싶은 시간이 흐르는 곳에 두었다. 그곳은 회색빛 공간으로 루빈이 잊고 싶어 하는 기억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연에게도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소연의 엄마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칸과 함께 살았다. 소연은 칸을 아빠로 여기고 싶지 않았다. 다른 외모에 어리숙해 보이는 칸이 아빠인 것이 창피했다. 언젠가 한 번 본 잘생긴 친아빠가 자신을 데리러 올 그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더 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래도 칸은 친딸처럼 소연을 아끼고 챙긴다. 소연이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보고 칸은 자신의 어린 시절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생각하며 소연이 화가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격려를 한다.
하루는 소연이 열이 나 밤새 아파할 때 곁에서 간호하던 칸은 소연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묻는다. 귀찮듯이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한 소연의 말에 칸은 일하던 제과점에 팥을 가지러 한밤중에 길을 나선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칸은 죽고 만다. 아무도 왜 한밤중에 칸이 집을 나섰는지 알지 못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소연은 자신 때문에 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괴로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소연은 잊고 싶은 시간이 흐르는 곳에서 한스와의 진짜 기억을 확인하고는 한스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다. 루빈은 소연과 잊고 싶은 시간이 흐르는 곳에서 한스가 자신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루빈의 과거에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으로부터 핍박받던 유태인에 대한 기억으로 수용소에서 함께한 자신을 지켜준 카롤 아저씨의 기억과 안네의 일기를 썼던 안네와의 기억도 있다. 모두 독일군의 전쟁 패배를 보지 못하고 죽고 만다. 살아남은 루빈은 안네와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려는 의욕을 갖는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꿈을 이루기 한 그 약속을 위해 화가가 되기로 한다.
소연이 시간의 숲에서 루빈에게 한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과정에서 스스로 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 칸이 진정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칸의 어릴 적 꿈처럼 열심히 그림을 그릴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칸을 자신의 아빠로 받아들인다.
2차 세계대전의 유태인 학살을 배경으로 한 루빈과 안네의 슬픔은 현재의 소연에서 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으로 연결해 놓았다. 큰 소재인듯하지만 안네의 일기의 배경을 알고 그 속에서 빚어지는 슬픔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짧게 나오지만, 미혼모로 소연을 낳은 엄마의 삶과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돈을 벌러 온 칸 외국인 노동자들 같은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 보게 한다. 친숙한 소재로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 가족에 대한 선입견이나 문제점에 대한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하고 밝은 행복한 기억으로 그려졌다는 것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한스에 대한 오해를 풀고 마음을 연 루빈이 한 말이다. 우리의 기억은 밝은 행복한 기억과 슬픈 어두운 기억이 어울려 우리의 색이 표현되는 것 같다. 행복과 아픔이 함께 어우러져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일반적으로 미혼모나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족을 우리 사회에서 편견을 가지고 어두운색으로 여겨지지만, 그냥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을 꺼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알록달록 다양한 색으로 표현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억지로 포장하려고 하지도 말고, 기억 속에서 덮어버리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표현하는 마음을 가져 보라고 하는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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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기억은 사람에 따라서 누구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로 남는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와 다문화 가정 등 역사적인 아픈 기억과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는 주제를 과감하게 꺼내 교감과 성장을 목표로 쓰였다. 그래서 굉장히 의외였다.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가 유대인을 대학살했던 사건이다.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다문화 가정의 소연이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부터가 의문이었었다.
아이들 동화라면 꿈과 희망만을 줄 것 같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루빈은 소연을 구해주는 구세주가 아닌 그녀의 마음속에 후회되는 시간 속의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더 나은 자신과 미래를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고 성장하고 있다. 소연뿐만이 아니라 루빈도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다른 시간, 세계에 살았지만 만났다.
아이들은 깨지기 쉬운 유리와도 같다. 상처도 더 잘 받고 자신이 감정을 이해하는데도 오래 걸린다. 인간인 이상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적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 세심하게 봐줘야 하고 상처를 보듬는 시간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시간의 숲에서 아이들은 더 성장한다. 이 책에서는 루빈과 소연이 만났지만 현실에서는 주변에서 품어야 한다는 것, 아이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라도 숲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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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름도 지어주고 있다고 믿고 심지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 있지요. 그 중 최고는 ‘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블랙홀보다 더 놀랐던 것이 ‘시간이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것. 사람들 놀랄까봐 시공간timespace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는데 좀 지나고 나니 그냥 공간만 존재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그레고리력을 만들어 써오긴 하지만, 자전 공전 거리 속도에 있어 변화가 생기면 시간도 변하겠지요. 실제로 하루는 똑같은 24시간이 아니고 지구의 궤도도 변하고 있어 1년은 매년 짧아지고 있습니다.
! 꼭 한 번은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 책은 인간의 시간과 기억을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시간과 기억을 모은 것이 인간의 역사이지요. 생물학적으로는 신석기 시대 이후로 뇌의 진화가 거의 없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기록이 남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배우고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상상합니다.
판타지 장편동화라는데, 쉽지 않은 현실의 모습들을 차분하게 담아서 상담치료를 경험하듯 풀어내어 주는 이야기입니다. 물리적 세계의 현상이 어떻든 시간과 기억과 역사는 각자에게 의미와 가치와 수명이 다르겠지요.
“엄마, 아빠 목소리 기억나?”
“기, 기다려, 어, 얼른 가, 갔다 오, 올게. (...) 말을 바삐 하느라 더 더듬거렸던 말. 내 머릿속 가장 깊은 곳에 저장된 말이에요.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칸의 마지막 말이기도 해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냐는 물음에 친구들은 귀신이나 좀비라고 해요. 하지만 나는 달라요. 내 경우 내 비밀을 엄마가 알게 되는 거예요. 나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
재혼 가정, 새부모, 새형제자매. 경험이 없어 모르지만 타인들이 어느날부터 가족이 되어 함께 사는 일이 쉬울 리가 없지요. 운이 좋으면 잘 맞고 즐겁고 행복할 수도 있지만 여러 노력이 필요하고, 때론 노력으로도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재혼가정이라서가 아니라 인간관계가 다 그렇지요.
국적이 다르고 가난한 나라 출신이고 한국어도 잘 못해서 마냥 좋아하지 못한 새 아빠, 오래 알아갈 시간도 없이 사고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그 죽음에 소연은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괴로워합니다. 가족에게 말 못한 비밀이 있는 아이는 그 상처를 어디서 치유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그런 아이를 위해 상상의 세계, 어쩌면 실재하는 다른 시공간을 열어 줍니다.
무척 낭만적이게도 전시회에 갔다 그림속 세계에 초대받습니다. 개울을 기준으로 ‘잊소 싶은 시간’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 흐르는 곳입니다. 소연은 그곳에서 만난 루빈과 함께 숲을 걸으며 시공간이 혼재하는 누군가의 기억 속을 여행 합니다.
루빈의 기억 속은 아주 무섭고 슬픈 장면들이 많습니다. 배경은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자행되던 때입니다. 가족이 모두 끌려가서 살해되는데 루빈 역시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는 아주큰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다. 그리고 루빈의 어릴 적 친구 역시 친구를 구하지 못한 깊고 아픈 상처가 있지요.
큰 불행을 겪은 아이들이 자신을 탓하는 일 역시 드문 일은 아니지요. 무엇도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 그런 감정과 생각을 파할 수도 없으니 더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막을 수 없는 가대한 폭력과 범죄를 그때 자신이 이랬다면, 저랬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하고 거듭 스스로를 벌주는 방식이지요.
소연은 루빈과 함께 여행하며 루빈과 친구 사이의 오해를 푸는데 도움을 줍니다. 소연은 기억들을 보며 루빈이 자기 잘못을 확인하는 게 두려워 친구를 미워하게 되고 그 역시 결국엔 자신을 지독히 미워하는 감정의 반향일 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새 아빠 칸에게 일어난 일 역시 비슷한 상황이 있지요. 아파서 열에 들 떠 기억도 나지 않는 자신의 말...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
신체의 자유와 더불어 정신의 자유, 기억으로부터의 자유도 인간에게 꼭 필요합니다. 남에게 (의도적으로 악의적으로 계획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경험한 기억들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이 문제를 아주 오래전에 무척 심각하게 고민해봤고 지금도 가끔 생각해봅니다.
나를 고유한 나 자신으로 만드는 것은, 유일하게 타인과 구별되게 하는 것은, 내가 가진 진짜 내 것이라고는 ‘기억’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서 딱 하나 생산한 물건이라도 또 모르겠지만, 상품으로는 ‘나’를 규정할 수도 구분할 수도 없지요.
그러면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다른 존재가 된다는 뜻일까요, 그래도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요. 혹은 양자역학이 설명하는 세계처럼 확률적으로 둘 다 일까요? 치매가 급성 악화된 어머니를 만난 친구의 말이 여전히 서늘하게 아픕니다. 자신의 존재를 잊은 어머니의 타인을 보는 듯한 경계의 시선, 살아서 하는 이별도 있더라는…….
“내 속의 기억 하나하나가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새가 되고 바람이 되었지. (...) 우리 마음은 알고 보면 울긋불긋한 색깔이야. (...) 밝은색과 어두운색이 어울려 사계절을 만들고 세상 모든 생명체의 마음을 표현해. 나는 화가가 될 거야. 그런 마음의 색깔과 무늬를 제대로 표현하는 화가.”
이 그림을 내가 알았던, 이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똑똑한 단발머리 소녀에게 바칩니다. 회색빛에 잠겨 있던 내 영혼의 반쪽을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바꿔 놓았던 소녀, 그 소녀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내 영원한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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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숲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간직하고 싶던 기억과 잊고 싶은 시간이 흐르는 곳이라는 책소개도 흥미를 가지게 만들었던 책이었어요. 일단 표지가 넘 이뻐서 좋았고 지금껏 고래책빵 책이 그랬듯 아이들과 읽기 좋을 것 같은 책이었네요
그런데 책 속의 내용은 이쁜 표지처럼 마냥 행복한 내용은 아니었어요. 소연이의 엄마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칸과 재혼을 했지만 소연이는 칸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픈 소연이가 먹고 싶다던 팥빙수 때문에 새벽에 집을 나선 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소연이의 마음에는 죄책감이 생기네요. 그런 소연이가 우연히 가게 된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다 그림 속 루빈을 만나게 되요. 그리고 함께 시간의 숲을 걷게 되네요. 처음에는 회색빛의 잊고 싶은 시간이 흐르는 곳과 다양한 색깔의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 흐르는 곳이 따로 있었는데 루빈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 전체가 모두 다양한 색깔인 잊고 싶은 시간과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 공존하는 시간의 숲이 되었네요.
소연이의 이야기도 안타까웠지만 독일군에게 핍박받던 유대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루빈의 이야기도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렇지만 상실감을 겪고 죄책감도 가지게 된 아이들이 시간의 숲을 통해서 단단해지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참 다행이다 싶기도 했어요. 책 속 주인공들의 삶의 한 부분인 한부모가정이나 다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홀로코스트라는 아픈 세계의 역사의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그리고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과거가 되기도 하고 현재와 미래가 되기도 하는 시간과 누군가에게는 밝은 빛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어둠이 되기도 하는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시간의 숲에서 소연과 루빈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기억을 보기도 하고, 알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희망사항을 그려내기도 하네요. 그 과정에서 아픔을 치유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네요. 그리고 현실에서 소연과 루빈같은 경우가 있다면 우리가 공감하고 다독이고 따스히 안아주고 치유해줘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출판사로부터 협찬받은 책으로 쓴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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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게 사람마다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이에게는 시간이 짧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시간이 길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상황에 따라 시간이 멈추기도 하고 빠르게 지나가기도 한다.
저자는 시간을 기억과 연계해서 이야기한다. 기억은 품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고, 같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환한 빛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캄캄한 어둠으로 그리고 때로는 빛과 어둠이 뒤섞인 저녁노을로 펼쳐진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 책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들로 여행하기도 한다, 그 기억들은 지워버리고 싶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 기억의 시간의 숲에 이르게 되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실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오해로 인한 분노와 아픔이 치유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주인공 소녀인 소연과 그림 속 주인공 루빈의 이야기가 이리저리 교차하면서 그동안 마음에만 숨겨 두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 안에 세계 2차 세계대전의 아픔도 고스란히 들어와 있다. 동화 속 주인공인 소연과 루빈 외에 실제 생존했던 안네 프랑크도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유태인 학살의 주제인 홀로코스트와 다문화 가정의 아픔 그리고 미혼모, 인생이 파괴된 이들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어두웠던 삶이 치유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갖다 붙인 것처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면도 있다. 또한, 이 동화를 읽은 아이들에게 과연 이러한 전개가 이해가 될지도 의문스럽다. 이러한 주제를 통해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말하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굉장히 의외였다. 우라나라의 전쟁도 아니고,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고, 지금 있는 동생마저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친동생도 아니고, 여러 가지 읽히고 설킨 문제들을 봉합하는 주제가 그림이라는 조금은 난해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가슴은 따뜻했다. 상처가 있는 두 주인공이 그림을 통해 만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서로에게 따뜻한 친구가 되어 깨지기 쉬운 유리와 같은 마음을 치료한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움직인다. 이 책은 초반에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전개가 이해를 느리게 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시간의 숲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주변의 아이들은 현실의 우리가 품고 함께 치료하고 공감해야 할 아이들임에는 틀림이 없디. 많은 이들이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