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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의 문턱 낮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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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희재의 번역론(?)을 《번역의 탄생》 이후 12년 만에 읽는다. 90은 공감하고, 10은 그렇지 못한 경우 책을 읽은 감상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조금 고민하다 공감과 비공감을 나누기로 했다. 우선은 공감이다.   내가 번역에 관한 책을 읽는 이유는 번역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몇 권의 전공서적을 일부 번역하기는 했지만, 번역이 내 직업이 아니거니와 그 번역도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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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희재의 번역론(?)번역의 탄생이후 12년 만에 읽는다. 90은 공감하고, 10은 그렇지 못한 경우 책을 읽은 감상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조금 고민하다 공감과 비공감을 나누기로 했다. 우선은 공감이다.

 

내가 번역에 관한 책을 읽는 이유는 번역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몇 권의 전공서적을 일부 번역하기는 했지만, 번역이 내 직업이 아니거니와 그 번역도 한국어로 술술 읽히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공지식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것이니만큼 목적도 좀 다르다. 내가 번역에 관한 책을 읽는 이유는 우리말을 잘 쓰기 위해서다. 외국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 우리말에 대한 고민이 더 도드라진다고 생각한다. 직역을 위주로 하거나 의역을 위주로 하거나 상관없다. 모두 원저자의 생각과 글을 한국 독자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생각한다. 그런 걸 잘 알려주는 번역가 중 한 사람이 이희재다. 그리고 번역의 모험에서 역시 그걸 잘 보여주고 있다.

 

이희재는 우선 될 수 있으면 쉼표를 아끼자고 한다. 쉼표는 글의 흐름을 일단 끊는 역할을 하는데 굳이 끊을 필요가 없는 데서도 쉼표를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쉼표를 아껴야만 꼭 필요한 순간에 쉼표가 빛을 발한다. 사실 내가 글을 쓸 때도 쉼표가 적지 않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꼭 필요한지 한번 돌이켜 봐야할 부분이다(그러나, 그런데, 그러므로와 같은 말 다음에 쉼표를 쓰는 버릇은 몇 년 전에 버리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부사를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한다(‘모으기’). 대체로는 부사가 작동하는 동사 가까이에 있을 때 문장이 안정되고 명료해진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나서 다시 봤을 때 문장이 어색한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부사가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 과 같은 강조의 의미를 지니는 주제조사를 제대로 쓰자고 한다(‘찌르기’). 역시 이도 아끼자는 것인데, 아무 데나, 아무 때나 그런 주제조사를 남발하면 정작 강조해야 할 부분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허세를 버려야 오히려 글이 힘을 갖는다고 한다(‘낮추기’). 이희재는 예로 어젠다를 들고 있다. 요새 들어 많이 쓰고 있는 말이다. 그는 agenda가 어떤 말이고,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말에 들어왔는지를 밝히면서 의제로도 충분한 걸 가짜지식인들이 굳이 어렵게 어젠다라고 쓴다고 지적한다. 그런 예에는 힐링(치유), 트라우마(상처)도 포함된다. 어떤 경우에는 외래어를 썼을 때 의미가 분명해지는 말도 분명 있을 테지만, 충분히 우리말로도 그 의미를 나타낼 수 있고, 그 의미가 다르지 않은 경우엔 지양해야 한다.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은 사이시옷에 관한 맞춤법 규정에 대해 쓴 부분이다. 아마도 맞춤법 규정은 두 단어를 합쳤을 때 된소리가 난다면 사이시옷을 쓴다고 되어 있는 모양이다. 우리의 맞춤법이 어원주의가 아니라 표음주의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희재의 비판은 그 표음주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라는 것이다. ‘냇가깻잎등에서는 이해가 되는 사이시옷이 막냇동생이나 장맛비같은 데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동물이나 식물의 분류 단계 중 ()’을 쓸 때, ‘소과’, ‘미꾸리과가 아니라 솟과’, ‘미꾸릿과가 맞춤법에 맞다고 해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솟과라고만 바로 나왔을 때 그게 음메하는 소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희재는 이런 쓸데 없는 규정이 우리말을 쓰고 읽는 데 문턱을 높인다고 본다.

 

그런데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번역가 이희재는 의역을 선호하는 번역가다. 그래서 원문 그대로 강박이 문장을 망친다’(‘흘려보내기’)고 하거나, ‘원문에서 자유로워야 원문이 산다’(‘살리기’)라고 한다. 나는 의역 자체가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역을 하는 경우가 번역서를 우리말로 읽는 데 훨씬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조금 지나쳐 독자의 수준을 너무 낮추어 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독자들은 이런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할 테니 이를 쉬운 말로 고쳐야 한다에서 더 나아가 이것을 이런 식으로 바꿔 써줘야 독자들은 이해할 수 있다고 번역가가 먼저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그게 의미 상으로는 원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독자는 원래의 문장이 어떤지 모르므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는 띄어쓰기다. 이 부분은 나도 왔다 갔다 하는데, 이를테면 ‘natural selection’자연 선택으로 쓸 거냐, ‘자연선택으로 쓸 거냐 하는 문제에서는 나는 자연선택이 맞다고 본다. 맞춤법은 자연 선택에 손을 들어주는데, natural selection이라는 본래 말이 두 단어이기도 하거니와 자연선택이라는 독립된 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자연선택은 그 뜻이 하나의 의미로 전달되기 때문에 우리말에서는 붙여써야 맞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대체로 전공자들은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들은 붙여쓰는 걸 선호한다). 그런 경우에는 종교개혁과 같이 이희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겠다. 흘러내려가다찾아나서다’, ‘실려가다’, ‘의미있는등에 대해서도 이희재의 주장이 더 타당해 보이다. 근데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는 손을 들기가 꺼려진다. Peter, Paul and Mary라는 포코 그룹의 이름을 피터폴앤메리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나의 경우엔 이게 어떤 논리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감각적인 이유라고밖에 할 수 없는데, 아무튼 그렇다.

 

이희재는 이 책에서 번역을 이야기했지만, 실은 한국어를 이야기했다. 한국어를 어떻게 하면 문턱이 낮은 말로 써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잘 쓰는 말로 만들 것인가를 번역가부터, 글을 쓰는 사람부터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몫만은 아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n*****m 2022.01.03. 신고 공감 24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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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번역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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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공부를 시작하면서의 난관은 영어와 한국어 실력의 문제도 물론 있었지만, 번역이라는 시장 자체의 생소함과 정보 부족도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번역가님들의 에세이를 읽거나 칼럼을 찾아보면서 갈증을 달랬는데요. 이미 나온 <번역의 탄생> 을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이번 책도 어려움 없이 골랐습니다. 특히  문장부호 번역법을 서두부터 자세히 다루시는데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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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공부를 시작하면서의 난관은 영어와 한국어 실력의 문제도 물론 있었지만, 번역이라는 시장 자체의 생소함과 정보 부족도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번역가님들의 에세이를 읽거나 칼럼을 찾아보면서 갈증을 달랬는데요. 이미 나온 <번역의 탄생> 을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이번 책도 어려움 없이 골랐습니다. 특히  문장부호 번역법을 서두부터 자세히 다루시는데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호조차 다르게 해석하는 문화의 차이를 실감하는 계기였습니다. 단순한 부호 뿐만 아니라 분위기의 흐름까지 살피고 번역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문화 자체를 깊게 이해할 필요를 느꼈고, 미국 역사, 기타 문화 전반의 잡지식을 습득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론적인 부분부터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어렵지만 의미있는 독서였습니다. 

c********k 2022.11.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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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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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사전을 통째로 외우려고 하더군요. 단어와 문장을 어법에 맞게 능숙하고 유창하게 말하고 씁니다. 그런데 영어로 말하고 쓰는 걸 우리말로 옮겨보라고 하면 머뭇거리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영어에 공들이는 만큼 국어 공부에는 덜 신경 썼기 때문이지요. 또 우리말로 옮긴 글이 읽을 수는 있는데 어색한 경우도 있습니다. 국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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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사전을 통째로 외우려고 하더군요. 단어와 문장을 어법에 맞게 능숙하고 유창하게 말하고 씁니다. 그런데 영어로 말하고 쓰는 걸 우리말로 옮겨보라고 하면 머뭇거리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영어에 공들이는 만큼 국어 공부에는 덜 신경 썼기 때문이지요. 또 우리말로 옮긴 글이 읽을 수는 있는데 어색한 경우도 있습니다. 국어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우리말이니까 공부하지 않아도 잘 하겠지 하는 생각 때문인데 그게 막상 글로 쓰려면 어렵습니다. 이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기 전 전작인 <번역의 탄생>부터 읽어보기를 추천 드립니다. 두 권 모두 읽으면 돌파구를 찾은 느낌일 겁니다. 번역가 지망생은 물론 현직 번역가, 업무상 번역 관련 일을 다뤄야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s****y 2022.05.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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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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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번역의 탄생'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아 신작인 번역의 모험도 구매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번역에 이제 막 발을 디딘 입장이라, 이 책도 도움이 많이 되네요. 번역의 탄생에서도 그랬지만 적절한 예문을 들어 설명해 줘서 이해가 잘 되고 딱딱한 설명도 아니어서 재밌게 읽었어요. 되새겨야 할 내용이들이 주로 이뤄서 몇번 회독을 해야할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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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번역의 탄생'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아 신작인 번역의 모험도 구매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번역에 이제 막 발을 디딘 입장이라, 이 책도 도움이 많이 되네요. 번역의 탄생에서도 그랬지만 적절한 예문을 들어 설명해 줘서 이해가 잘 되고 딱딱한 설명도 아니어서 재밌게 읽었어요. 되새겨야 할 내용이들이 주로 이뤄서 몇번 회독을 해야할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y*******8 2021.1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