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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이라고 하면, 보통 '적자생존'을 떠올리고, 강하거나 힘센 자가 살아남는 것이 진화론의 요체이지 않은가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진화의 법칙은 능력이 뛰어나거나 얼굴이 잘생기거나 싸움을 잘하는 것과 상관이 없다. 수백만 년의 변화하는 환경에서 우연히도 어떤 형질이 그 당시 특정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적합했고, 그 돌연변이와도 같은 형질을 가지고 있는 개체만이 살아남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따라서 진화는 방향성이나 법칙이 있는 게 아니고, 그저 우연이 있을 뿐이다. 내가 진화론을 이해한 방식이다.
그 유리한 형질이 갈라지고 겹쳐져서, 우연히 살아남고, 때로는 불필요해 보이는 돌연변이가 선택되어 종합한 결과가 우리 인간이고, 침팬지이고 보노보다. 6백만 년 전 침팬지와 인간과 보노보의 조상은 같았지만, 오른쪽 방향의 길로 들어선 인간의 조상은 수많은 갈래 길을 굽이굽이 도달한 끝에 인간이 되었고, 침팬지의 조상은 왼쪽의 방향으로 진입한 뒤 되돌아올 수 없는 여러 길 끝 모퉁이를 돌아 침팬지가 되었으니, 앞으로 언제쯤 침팬지가 인간이 되냐는 류의 질문은 정말 진화론을 너무나 이해 못 한 무지의 소치라고 여겨주면 되겠다.
5만년에서 8만 년 전 무렵, 아주 척박하고 삭막한 환경에 여러 유인원이 어울려 살았는데, 그중에 친절함과 다정함을 가지고 있는 개체들이 그 환경에 유리했고, 친화력이라는 형질을 가지고 있는 조상이 살아남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내용이 이 책의 요약 되겠다. 친화력이 좋은 개체는 협동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사회를 구성할 정도의 대규모 무리를 이루게 되면 기술과 혁신이 발현돼 문명의 진보를 이뤄내는 것이다. 친화력이 높은 개체가 세대를 거쳐가며 더 다정한 우세종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자기가축화'라 할 수 있겠다.
가축화라는 의미는 상대에게 '나는 당신을 해코지할 마음이 없소, 우리 서로 잘 지내봅시다'라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협력적 관계를 만들려는 형질로의 변화다. 인간의 눈에는 흰자위가 있는데, 그 위로 검은색 눈동자가 움직이면서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모든 영장류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흰 공막을 가지도록 진화했다. 아이는 엄마와의 눈맞춤으로 사랑을 끌어내고 보호를 받는다. 아마도 8만 년 전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 경쟁을 했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에렉투스는 눈동자의 공막이 분명히 어두운색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인간의 진화적 특성인 다정함의 이면에는 우리 종족이 아닌 적에게는 무자비하리 만큼 잔인한 본성도 스며들어있다는 것이다. 친절함과 협력적인 태도로 상대방에게 신뢰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우리 편일 때에 한정된다. 같은 부족, 동료, 집단이 아니게 되면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깨뜨리는 악마에 불과할 뿐이다. 이 잔인한 본성은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데, 상대방을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나 유인원의 수준으로 비인간화하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생각, 고통,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비인간'에게는 어떠한 잔혹함도 저지를 수 있다.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의 잔혹한 이면을 신뢰와 협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은 보다 많은 '접촉'이라고 말한다. 뿔이 달리고, 독을 쏘아댈 것 같은 북한의 수령도 만나보면 충분히 대화가 통하는 같은 종족임을 느끼게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다. 인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최악의 상황에 몰려 공멸하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민주주의다. 독재와 폭력, 어느 한 미친놈이 자기 맘대로 인류를 구렁텅이에 몰아넣지 못하게 하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다. 민주주의 앞뒤에 아무것도 가져다 붙이지 말고, 온전한 민주주의를 하자. 지금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추가 의견) 나는 다정함과 접촉, 신뢰의 힘과 장점을 잘 알고 있지만 그걸 전략으로 내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인간 같을 때는 서로 호혜의 감정을 북돋아 잘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이쪽의 호의를 이용해 꼼수를 피워 제 이득만 취하려는 자들에게는 전혀 신뢰의 눈길을 줄 필요가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팃포텟'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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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가 9월의 책은 ‘과학’도서라는 말을 꺼낸 순간, 라이브 방송에 접속해 있던 사람들의 한숨이 들리는 듯 했다. 나 역시 비명을 질렀으니 그 깊은 한숨이 김영하 작가에게도 전해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니, 어딘가 내가 좋아하는 사회심리학, 또는 인문학의 느낌이 나지 않는가
# 적자생존의 개념 오류 대중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적자생존’ 개념은 최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p.20
우리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빈번하게 사용한다. 조직에서도 승진 시기가 다가오거나 임원의 퇴출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적자생존’이다. 오직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고, 패배한 자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그 무시무시한 상황말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적자생존’의 이면에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비정한 선택, 그리고 조금은 폭력적이기까지한 성질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이 너무 확대재생산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의 생물학자들에게 ‘적자생존’이란 아주 구체적인 어떤 것, 즉 살아남아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며, 그 이상으로 확대될 개념이 아니었다. p.19
그렇다면, ‘적자생존’ 개념에 대한 이해의 오류로 오늘날 이렇게나 삭막하게 쓰이고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다윈은 자상한 구성원들의 번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하니 내가 과학시간에 어떻게 배웠었는지 곰곰이 떠올려보려 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쩌면 ‘적자생존’이라는 단어자체가 주는 너무 임팩트가 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썼다. p.20
'적자생존'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그리고 추천의 글을 쓴 최재천 교수님의 글을 곱씹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그래서 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p.6
# 다정함의 힘, ‘자기가축화’ 가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친화력이 높아질수록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이 강화되는 발달 패턴을 보이고 관련 호르몬 수치가 높은 개인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공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p.122
책에 따르면 지금의 세대가 나타나기 위한 자연선택 과정에서 신체적인 조건 못지않게, 아니 더 중요하게 ‘다정함’이 작용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서로간의 친화력이 높아지고 협력적 소통 능력이 강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것인데, 이 가설이 맞다면, 이것은 과거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형’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자기가축화 가설이 옳다면, 우리 종이 번성한 것은 우리가 똑똑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친화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p.123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지적 능력보다도 친화력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신체적 능력이나 지적 능력이 아닌 친화력이라니! 이쯤되면 내가 주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한번쯤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 다정함의 그림자, 타집단에 대한 공격성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법, 다정함의 이면에도 그림자가 있었으니 바로 타집단(이라고 인지하는 순간 발현되는)에 대한 공격성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정함’에 대한 대목보다 그 이면의 ‘공격성’에 대한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일상에서 알게모르게 마주치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러했던 듯 하다(아니면 내가 너무 부정적인 사람이거나?!).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친화력이 강화된 우리 종에게도 새로운 형태의 공격성이 생겨났다..(중략)..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합하여 협력하면서 유대가 강해지면 서로를 가족처럼 느낀다..(중략)..우리가 더 강렬하게 사랑하게 된 이들이 위협을 받을 때 사람은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 p.180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p.32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다정함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욱 강렬하게 커지는 폭력성이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쉽게 말해 내 사람, 우리동네, 우리 문화가 소중해질수록 그것을 지키려다보니, 배타적이 되고 심지어 공격적이 되는 것이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또한 우리가 진화 과정에서 마음이론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신경망의 활동을 둔화시키는 능력도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우리 집단 소속이 아닌 사람들의 기본 인권에는 눈감는 것도 이 능력 때문이다. 이 맹목성은 편견보다 훨씬 더 어두운 힘이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할 때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 된다. 그런 자들은 공격해도 무방해진다. 규칙도, 규범도,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도덕적 판단도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p.183
저자는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크테일리의 실험을 예로 드는데, 이때 사용한 이미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류 진화도>이다.
1965년 타임-라이프 북스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인류 진화도>는 우리 종의 진화에 대해서, ‘적자생존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뇌리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놓았다. 이 이미지는 진화가 선형적으로 발전한다는 인상, 그리고 그 정점에 우뚝 선 존재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물론 어느 쪽도 사실이 아니다. p.188
이 이미지는 대중이 진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악영향을 줬지만 크테일리는 이 그림이야말로 강력한 비인간화의 척도가 될 수 있음을 간파했다. 크테일리는 이 이미지에 <(비)인간의 상승 척도 Ascent of (Hu)Man Scale>라고 새 이름을 붙인 뒤 미국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많은 사람이 경악스러워할 수도 있는 문항으로 시작됐다. 미국인 (대다수가 백인인) 172명에게 완전히 진화된 사람을 100점으로 하여 다음 진술에 점수를 매기게 했다. “사람마다 얼마나 사람답게 보이는지는 다르다. 고도로 진화되어 보이는 사람도 있고 하등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도 있다. 아래 이미지를 보고 각 그룹의 평균 구성원이 얼마나 진화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점수를 표시하라.” pp.189-190
‘사람마다 얼마나 사람답게 보이는지가 다르다’니, 저자의 말처럼 정말 경악할만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자,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설문 결과, 크테일 리가 테스트한 표본 그룹 가운데 절반이 다른 민족 집단이 미국인보다 사람으로 덜 느껴진다고 답했다. 특히 이 답변에서는 무슬림이 미국인보다 10점 낮은 점수를 받아 가장 비인간화되었다. p.190
자신들에 비해 타집단을 ‘덜’ 진화된 집단으로 보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인식이 자신들의 공격성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비인간화는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실제로 무슬림을 비인간화한 사람들이 가장 높은 비율로 중동에서 고문과 드론 공격 둘 다 허용할 것을 주장했다. p.190
이런 상황이 단지 실험에 참여한 172명의 미국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우리사회는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심심찮게 들려오는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어린 시선에 대해서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함 만큼이나 걱정스러운 폭력성,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양극단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이러한 ‘비인간화’에 대한 처방이 있다고 말한다.
다행인 것은 비인간화 백신이 실로 존재하며, 그 백신이 실로 효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p.256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학자들은 집단 간 갈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접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갈등을 완화하는 최상의 방법은 서로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불안이 낮은 상황에서 여러 집단이 함께할 수 있다면 학자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이야말로 집단 간 갈등을 감소시키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p.260
집단간 갈등을 감소시키고 서로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접촉’이 답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너무 단순한 처방이 아닌가 싶지만,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항상 그 단순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낯설고 모르는 상대에게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집단 사람들과 자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사회적 유대감이 더 많이 형성되며 타인이 지닌 생각에 대한 감수성도 전반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 문화, 인종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은 우리 모두가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효과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다. p.264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다정함’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역시 이러한 다양성을 담고 서로 접촉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야 한다. 공원, 카페, 극장, 식당 그리고 회사, 내가 일상을 보내는 환경은 어떠한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도시는 서로 다른 배경과 다양한 관점 및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자유롭게 섞여 생각을 교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에게는 무역로를 따라 형성된 정착 부락이 있었다..(중략)..현대의 우리에게 이 역할을 하는 곳은 공원, 카페, 극장, 식당 같은 공공장소다. 우리는 이런 장소에서 이웃을 만나 어울리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친해질 수 있다. p.283
# 다정함에 위로를 받으며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p.300
이 문장을 직장동료들과 함께 나눈 날, 역설적이게도 나는 팀원 한명과 프로젝트에 대한 이견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업무에 대한 논의였으나, 하루종일 지속되다보니 퇴근 무렵에는 감정적으로도 몹시 지쳐버렸고, 인간관계에 ‘다정함’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며 좌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뾰족해져버린 나를 위로한 것은 결국 다정한 직장동료의 따뜻한 메시지였다. 옆에서 나의 하루를 바라본 그녀는 진심어린 염려를 담아 내게 말을 건넸고, 그 다정함에 눈물이 찔끔 흐를만큼 위로를 받았다. ‘다정함’은 그렇게 나의 일상을 따뜻하고 살만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때 낯선 사람이었던 사람들과 친구가 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연민과 공감능력이 있으며,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진화를 통해서 획득한 우리 종 고유의 특성이다. p.195
*나에게 적용하기 내가 모르는 사람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기(적용기한 : 지속) *알고 싶다면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지 않다면 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
*기억에 남는 문장 협력은 우리 종의 생존에 핵심이다. 우리의 진화적 적응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p.19
마음이론은 두 사람이 무언가를 보고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환희의 순간이요, 상대방의 말을 내가 끝맺어줄 때 느끼는 편안함, 아무 말 없이 손을 맞잡고 있는 순간의 평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행복하다고 느낄 때 행복은 더 달콤한 것이 된다. 죽음으로 떠나보낸 누군가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리라고 믿는다면 슬픔은 더 견딜 만한 것이 된다. p.41
모든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통해서 더 크게 자라난다. 감정은 우리의 가슴에, 육감에, 손 끝에 있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생각에 있으며 대개는 타인의 생각에 대한 나의 추측과 추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p.42
자제력은 잃기 전까지는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인지능력 중 하나다..(중략)..자제력이 없다면 우리는 죄다 이혼했거나 감옥에 있거나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p.114
사회심리학의 기본 원리는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쟁 집단에 속한 타인을 대할 때, 특히 갈등 상황에서는 극도의 제노포비아 Genophobia를 보일 수 있으며 아주 작은 일로도 이런 집단심리는 작동할 수 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어떤 조건이든 기준으로 잡아서 그룹으로 나눠보면 그룹 간에는 금세 적개심이 생겨난다. pp.180-181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이런 선호도는 아기 때부터 나타난다. 생후 9개월 아기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가령 자신과 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인형을 도와주는 인형을 선호한다. 또 이 시기 아기들은 자기와는 다른 음식을 좋아하는 인형을 혼내주는 인형을 선호한다. 어린이들은 집단 구성원이 아닌 외부자가 규범을 위반할 때 규범을 더 강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p.181
사람과 대형 유인원의 관계를 좀 더 받아들이기 쉽도록 19세기 인류학자들은 이 사다리에 또 하나의 가로장을 끼워 넣었다..(중략)..유인원이 사람과 동물의 중간 단계였다면, 흑인은 백인과 유인원의 중간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으로 노예무역에 대한 반감과 상류층 지식인들의 도덕적 딜레마까지 한 번에 해소할 수 있었다. p.205
하지만 팀 쿡이 말했듯이, “기술 하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술 그 자체가 오히려 문제의 원인인 경우도 있다.” 기술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매머드를 사냥하는 데 이용했던 발사무기가 서로를 죽이는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p.233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가 최악의 정부 형태”임을 인정하면서 “나머지 모든 정부 형태를 제외하면”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어두운 본성은 잠재우고 선한 본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견실하게 증명해온 유일한 정부 형태가 민주주의다. p.244
“혐오는 학습되는 것임이 분명하며, 학습을 통해서 누군가를 혐오한다면 타인을 사랑하도록 배울 수도 있다. 사랑이 그 반대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더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p.250
#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김영하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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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 남짓한 붉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한 공간에 앉아 있다. 그들 중 몇 명은 기쁨의 함성과 함께 붉어진 얼굴을 하고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실망과 좌절, 분노로 붉어진 얼굴을 하고 있다. 고작 1시간 수업을 했을 뿐인데, 수업 전과 한층 달라진 교실 온도에 초임 교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같은 모둠원끼리의 결속력과 친근함이 다른 모둠원에게는 왜 발휘되지 않는 걸까? 경쟁 구조의 학급 운영으로 인해서 교실은 배움과 협력의 공간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치열한 곳으로 변한다.
21세기 다윈의 계승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집필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다정함이 인류의 진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밝힌다. 지금껏 알고 있던 ‘적자생존’의 논리 대신 친화력을 극대화한 협력으로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했음을 알려준다. 마음이론이 바탕이 된 개의 실험을 통해서 인지능력과 협력의 발달 관계를 밝힘으로써 자기가축화를 설명하는 논리적 근거를 갖춘다. 다정하고 친화적인 사람들이 밀도 높게 결집했을 때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 왔는데 친화력은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더욱 진화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 때문이었다. 친화력은 그만큼 집단 간의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기술을 전승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결국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과학 이론을 시작으로 사회 인문학 전반을 다룬다.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다정함이 극대화된 인간이 나를 중심에 둔 집단 이외의 구성원에게는 왜 그토록 잔인해지는지 그 이유를 탐구하고 밝힌다. 경쟁 구조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다른 모둠원을 배척했듯이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강화된 친화력은 다른 집단에게는 배타적인 감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결국 세계는 나라, 성별, 인종, 정치적 이념에 의한 집단화로 비인간화와 함께 배척과 혐오가 증가한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AI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사건이었다. 이세돌 9단이 우세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대결은 1승 4패로 AI의 승리로 끝났다. 과학 기술이 더욱 발전하는 미래는 인간의 지능이 AI를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AI에게 뒤처지는 인간의 무기력한 모습을 그린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계발된 AI가 오히려 인간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계발을 멈출 수 없다면 AI와 공존하는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미래학자들은 AI가 수많은 직업에서 인간을 대신할 거라고 말한다. 지금도 많은 매장에서 키오스크가 사람을 대신해서 주문을 받고 계산한다. 이와 같은 현상이 가속화된다면 미래에는 인간이 설 자리가 더욱 줄어들 것이다. 2001년에 제작된 영화 <AI>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도 더 인간다운 AI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문명의 이기로 계발된 모든 것들이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냉혹한 사회가 아니라 나라, 인종, 성별, 정치적 이념을 넘어서는 인류적 친화력이 발휘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처럼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다정한 하루가 나를 둘러싼 소수의 사람이 아닌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는 날을 꿈꾼다. 그 옛날 호모 사피엔스가 자기가축화를 통한 친화력으로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켜 온 것처럼 더 넓은 의미의 다정함이 발휘되길 바란다. 동물학자인 제인구달이 침팬지를 연구하기 위해서 인간의 위치가 아니라 자신을 침팬지화 함으로써 침팬지 사회에 스며들 수 있었던 것처럼 순수함이 담긴 다정함이 필요하다.
학교도 지식 위주의 주입식 교육보다는 인간의 다정함을 깨우는 교육, 다정함을 키우는 교육, 다정함을 확장하는 교육에 주목하길 바란다. 인간이 AI의 지적 능력은 앞서지 못하겠지만 다정함과 친화력이 주는 위대함에서 앞설 수 있다면 인류를 넘어선 공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AI와 공존해야 할 미래의 인류가 가져야 할 것은 인간다운 다정함이다. 나라, 인종, 성별, 정치 이념을 넘어선 다정한 사람들에 의한 다정한 사회가 구현되길 바란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고, 인류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가 더는 혼돈의 시대가 아닐 수 있도록 현재를 넘어 미래로 연결되는 다정함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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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정치적 양극화를 해결할 새로운 해법
사람은 생후 9개월쯤이면 걸음마나 말을 떼기도 전에 이미 손짓을 시작한다. 손이 있는 동물이라도 어떤 다른 동물도 손짓을 하지 않는다. 침팬지도 손짓을 하지만 손가락을 바라볼 뿐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손짓은 심리학에서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부르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에서 시작되는 관문이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마음 읽기가 요구된다. 우리에게는 마음이론 능력이 있어서 지구에서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협력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개도 우리처럼 협력적 의사소통에 특화된 인지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수천 년 전에 농경인이 늑대를 길들여 가축화한 것이 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늑대를 가축화하려면 수백년 동안 늑대를 10세대 이상 번식시켜아 한다. 개는 농경인이 가축화하기 1만년 전에 수렵채집인들 사이에 ‘자기가축화’ 시기가 있었다. 수렵채집인이 모여 살기 시작한 천막 밖으로 내다 버린 음식물 찌거기와 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늑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 늑대들은 비교적 사람들 두려워하지 않은 친화력이 좋은 늑대였으며 자연스레 이들 늑대끼리 짝짓기를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의 의도적 선택 없이 친화력 좋은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자기가축화’가 이루어지면 외형에 변화가 생긴다. 어떤 동물이 가축화될 때 많은 요소가 변화를 겪는데, 이를 ‘가축화징후’라고 한다. ‘가축화징후’라고 불리는 외형의 변화는 얼굴형, 치아 크기, 피부색 등에 나타나며, 호르몬과 번식주기, 신경계 등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개는 야생의 친척 종보다 머리가 작고 주둥이가 짧으며 송곳니가 작다. 야생에서 위장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변칙적인 얼룩무늬 털색을 지니기도 한다. 개는 늑대보다 뼈대가 가늘고 펄럭이는 귀를 지녔으며 한 해 내내 짝짓기를 할 수 있다. 수컷 보노보의 뇌는 수컷 침팬지보다 약 20퍼센트 정도 작다. 암수 보노보 모두 알굴과 치아가 침팬지보다 더 작으며 치열이 더 빽빽하다. 암컷 보노보는 공격성이 가장 낮은 수컷과 짝짓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암컷의 다정한 수컷 선호가 다정한 사회의 진화를 야기한다.
모든 가축화된 동물에게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특질은 친화력의 상승과 의사소통 능력의 향상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피한 늑대는 개가 될 수 없었으며, 침팬지는 음식을 두 더미로 나눠놓지 않는 한 나눠 먹지 못하나 보노보는 서로 협력하여 먹는다. 가축화된 십자매의 울음 구조가 야생조보다 더 복합적이고, 보노보도 침팬지보다 더 유연한 발성 구조를 지닌다. 개와 늑대 모두 아기 때 엄마의 주위를 끌기 위해 짖지만. 개만이 성체가 되어서도 다양한 맥락을 담아 계속해서 고음으로 짖는다.
사람이 인지능력을 갖게 된 이유도 자기가축화 때문일까? ‘사람의 자기가축화 가설’은 인간의 협력적 의사소통의 진화를 자기가축화 때문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보았을 때 두려움에 몸을 웅크리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보다, 차분하게 옹알이하며 낯선 물체를 만져보는 아기들이 협력과 의사소통 능력이 빨리 발달한다. 즉 친화력이 있는 아기들이 협력적 의사소통에 뛰어나다. 사람의 자기가축화 가설이 옳다면, 우리 종이 번성한 것은 우리가 똑똑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친화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인종에 따라 홍채는 다양한 색을 지니나, 공막은 모든 인종과 관계없이 하얀 유일한 영장류다. 눈의 형태도 다이아몬드 모양이어서 공막이 더 눈에 띄는 까닭에 시선을 조금만 움직여도 무엇을 보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맞춤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우리의 눈은 협력적 의사소통에 이바지하도록 설계되었다. 우리 뇌에는 누군가의 눈을 볼 때 반응만을 담당하는 신경세포가 있다. 생후 4개월만 되어도 사람 아기는 이미 눈의 공막 모양에 초점을 맞추어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 가축화가설은 하얀 공막을 친화력 선택의 결과로 보고 있다.
자기가축화가 인간 종의 진화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면 개와 보노보 같이 자기가축화된 다른 종들에게는 인간과 같은 진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일까? 우리 종은 다른 종과 달리 5만년 전에 사회연결망의 급속한 확장을 경험했다. 사회연결망의 급속한 확장은 인지능력의 확대와 더불어 지식의 전수와 기술의 혁신을 불러와 문화를 이룰 수 있었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 종이 지닌 최고의 미덕과 장점을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것이우리 안에 내재된 최악의 본성도 잘 설명해주는가? 우리 인간 종은 탁월한 친화력을 지니지만 극악무도한 잔인성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잔학행위인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일본의 난징 대학살, 헝가리 유대인의 죽음의 행진, 독일 내 소련군 점령지에서 자행된 대규모 강간, 루마니아의 유대인 대박해 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친화력은 우리 종의 집단 구성원의 정의를 확장시킨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 우리 집단인지 아닌지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사람은 보노보나 침팬지와 달리 집단 구성원을 지리적 가까움이 아닌 더 넓은 범위의 정체성으로 정의한다. 동물과 달리 사람에게는 새로운 사회적 범주도 나타났는데, 바로 집단 내 타인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새로운 능력과 더불어 일가친척이 아닌 집단 구성원을, 심지어는 집단 내 타인까지 강하게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났다. 그러나,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친화력이 강화된 우리 종에게 새로운 형태의 공격성이 생겨났다. 우리 인간의 친절함은 특정 타인에게만 해당된다. 우리는 집단 정체성을 토대로 타인을 판단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한 사랑이 정체성이 다른 타인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공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위협을 받을 때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낸다. 우리는 경쟁 집단에 속한 타인을 대할 때, 특히 갈등 상황에서는 극도의 제노포비아(Genophobia, 타인공포증 또는 이방인혐오증)를 보일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외부 집단에 부정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생기면, 차별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 인종, 이데올로기, 종교 등의 대립을 이유로 그 구성원을 대량 살해하는 행위)까지 모든 갈등과 충돌의 동기로 작용하게 된다.
심리학자 크레일리는 ‘그들이 먼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인식’이 자신이 속하지 않은 외집단을 비인간화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보복성 비인간화(Reciprocal Dehumanization)라고 한다. 자신들이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집단은 역으로 다른 집단 사람들을 비인간화하게 된다.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가 위험으로 여겨질 때, 그들을 우리 정신의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두 서로 상대 집단이 자기네를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느끼는 정도에 따라 모두 상대 집단에 대한 반사회적 징벌적 정책을 더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슬람 사람과 기독교인, 미국의 백인과 흑인은 상대 집단이 먼저 자기들을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비난하며 상대를 비인간화한다.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 현대 사회에서 비인간화 경향은 가파른 속도로 증폭되고 있다. 편견을 표출하던 덩치 큰 집단들이 보복성 비인간화 행태에 동참하며 순식간에 서로를 인간 이하 취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서로를 보복적으로 비인간화하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정치판에서 상대 진영에 대한 비인간화 경향은 자칫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리려 한다.
집단 간 갈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접촉, 교류와 소통이다. 갈등을 완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서로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불안이 낮은 상황에서 여러 집단이 함께 할 수 있다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상이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친절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지닌 우리 인간은 큰 규모의 집단 안에서 협력하며 살아갈 때 가장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종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어두운 본성은 잠재우고 선한 본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견실하게 증명해온 유일한 정부 형태가 민주주의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자신과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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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친화력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개에서부터 보노보, 침팬지, 여우, 늑대 등에 친화력 관련 실험을 통해 친화력이 높은 개체들이 겪은 변화와 이 친화력으로 이들이 얻은 이득이 무엇인지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을 해준다. 가축화징후(야생종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간에게도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과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자기가축화 과정이 나타난다.)라 불리는 현상은 지능을 쇠퇴시키지 않으면서 친화력을 향상시킨다. 얼굴형, 치아크기, 신체 부위별로 각기 다른 피부색이 나타나고 호르몬과 번식주기, 신경계의 변화도 동반되는 이 자기가축화는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이런 자기가축화는 동물들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인간에게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인지기능 같은 사회적 기능은 두려움이 친화력으로 대체될 때 우발적으로 발생한 또 다른 능력이다. 이런 친화력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종인 것이다.
전반부가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친화력과 관련된 자기가축화를 이야기했다면 후반부는 사회심리학적 측면으로 접근해 자기가축화의 이면인 배타적 성향에 관한 설명이 이어진다. 자기가축화는 자신의 무리가 아니라 다른 범주에 속한 대상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개를 예로 들자면 같이 거주하는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신과 같은 테두리와 동질감을 느끼지 않으면 배타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 배타적 성향은 지극히 단순한 경계에서부터 상대방에 대한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배타적 성향과 경계심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고 타인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성향이 높아진다. 수용적이고 중도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은 그만큼 타인에 대한 타협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고든 올포트의 <편견>에서 보았던 이야기와 상당히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미국에서 흑인이나 유대인 등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대부분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밝혔었는데 이 책에서도 편견은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교류해보지 못한 경우에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닌 편견이 사회발전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이런 편견을 줄이기 위해서 상대방을 더 잘 알아야 하는 교류가 필요하고 교육적 측면에서도 편견을 없애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 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타인을 얼마나 수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도 반영한다고 한다. 개에 대해 사회지배 성향이 높을수록 ‘열등한’ 집단에 속하는 타인을 동물로 바라보기 쉽다.
지금의 우리는 자기 생각과 다르면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타협하기보다는 극과 극의 대치상황에 놓인 문제점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친화력을 바탕으로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은 평화와 협력을 바탕으로 지금의 문명발전을 이루어낸 것이고, 앞으로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우리의 문명의 지속적인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간이 똑똑해서 모든 것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협력할 수 있었기에 살아남았고 인지력이 발달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서로서로 위하는 길은 친밀감을 쌓는 것, 우정을 나누는 것, 다정함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봐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너무 좋은 책을 만났고 내가 먼저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을 갖도록 더 신경 쓰고 공감 능력에 관한 노력을 꾸준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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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화력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진화했다. (31페이지 )
인류의 진화에 대하여 말할 때면 늘 '적자생존'을 강조해왔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정작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 고 하였다는 거다. 우리가 여태 생각해왔던 것과는 다른 친화력, 혹은 다정함이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에게 손짓을 하며 말을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고양이가 내 손만 바라볼 때면 안타까웠다. 공을 던지면 자기가 기분 좋을 때는 물고 와 다시 던져달라고 가지고 오지만 가만히 던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왜 고양이는 사람이 가리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가. 그 말을 할 때면 옆에서 남편은 개는 고양이와는 다르다는 말을 했었다. 한두 달 전, 통영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공놀이를 하는 개를 보았다. 바다 쪽으로 공을 던지면 물고 와 다시 던져달라고 가족을 쳐다보고는 던져주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 장면을 지켜보며 개와 고양이의 다른 점에 대하여 생각했다.
사람 아기는 생후 9개월쯤이면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볼 수 있지만, 인간과 유사하다는 침팬지는 사람의 손가락을 바라볼 뿐이다. 그에 반해 개는 사람과 거의 흡사할 정도로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달려간다. 침팬지와 함께 마음이론 능력을 실험하다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개 오레오와 함께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개와 사람 아기는 눈을 마주치고 다정한 목소리를 낼 때 주의를 집중했다.
스탈린의 대공포가 진행되던 때 스탈린은 유전학자들을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고 강제수용소로 보내거나 처형했다. 유전학자 벨랴예프는 동물의 가축화되는 것을 직접 지켜보기로 했다. 여우 개체군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했다. 사람에 대한 친화력이 좋은 여우들만 선별하여 무작위로 번식시켰다. 친화력 높은 늑대들이 스스로 가축화하여 인간들 곁에서 반려동물로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를 읽어내는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은 사람 아기가 가진 마음이론 능력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다. (71페이지)
침팬지와 보노보의 친화력 비교는 많은 것을 시사했다. 문을 닫아놓고 음식물을 주었을 때 침팬지는 그것들을 혼자서 다 먹은 반면, 보노보는 문을 열어 다 함께 나눠 먹었다. 보노보는 침팬지보다 훨씬 더 큰 표용력을 지닌 종인 셈이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얀 공막을 가졌다. 동물의 경우 자기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경쟁자가 추측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공막을 숨긴다. 인간과 달리 동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숨겨야 했으리라.
친화력이 집단이 되면 그 결과는 달라진다. 백인우월주의는 특정 그룹에게 위협을 느낄 때 더 발현된다. 그들은 무슬림을 미국인보다 사람으로 덜 느껴진다고 했다. 사람을 유인원이나 원숭이에 비유하는 것 또한 비인간화다. 특히 흑인을 원숭이라고 놀렸다. 다양한 나라의 의사들은 흑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고통을 덜 느끼며 피부가 두껍다고 여겨 충분히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치가 우생학을 미국에서 가져왔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총 6만여 명에게 강제 불임시술을 한 것도 미국이 먼저였다. 타인 혹은 타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경향은 정치 성향에서도 나타났다. 극단적인 비인간화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자기 아파트에 유대인 여러 명을 숨겨 살려준 독일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인간화 경향이 있었으나 인간 특유의 친화력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가 친구와 함께 있는 것.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 또한 인간이 가지는 다정함이 아닐까 싶다. 나와 집단이 같지 않다고 해서 배척할 필요는 없다. 같은 인간이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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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보아야 예쁘고 다정해야 살아남는다
나태주 시인의 "오래 보아야 예쁘다." 글처럼 우리가 자주 보는 반려견은 마치 가족과 같이 느껴지게 된다. 이렇듯 개는 사람과 친화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서 야생의 늑대와 달리 번성하고 있다. 적어도 종족 번식에서는 야생 늑대의 강한 힘보다는 개가 지닌 사람과의 친화력이 더 효과를 거둔 셈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의 내용은 절대로 다정하지 않고 전문적이며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자기가축화"는 예전 늑대를 비롯한 야생종이 오늘날의 반려견과 같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에게도 나타나서,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는 공격성과 같은 동물적 본능이 억제되고 다른 사람과의 친화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아울러 우락부락했던 과거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둥근 얼굴형을 지닌 오늘날 호모사피엔스의 외모를 갖추게 되었다. 자연생태계에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기존의 "적자생존"의 원칙과 다른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책에서 "다수가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으므로 인류는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고 이 협력에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포용성이 있는 대표적인 동물로 "보노보"를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종족을 배척하는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외부의 암컷을 받아들이고 감싸주는 친화력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글쓴이의 “오레오”와 같은 반려견은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지가 살아남는 데 중요함을 알려준다. 친화력, 즉 다정함을 바탕으로 한 상호 신뢰는 다른 사람과 마음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이것을 바탕으로 축적된 지식을 세대를 이어 물려주어 번성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이 자연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수보다 힘도 약하지만 어렵게 습득한 지식을 후세에 전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포용성을 바탕으로 모여 살며 친화력으로 사회연결망이 확장되면 각종 기술을 비롯한 지식과 문화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이를 바탕으로 도시와 국가 같은 더 밀도 높은 집단을 이루어 살며 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 번성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을 다정하게 만들면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는 게르만족의 우수함을 내세우며 우생학을 바탕으로 유대인을 학살했다. 다정한 사람들만 모여서 범죄 없이 서로 돕고 살아가면 좋겠지만 그것은 자칫 과거 우생학의 사례처럼 위험한 발상이 된다. 이미 관용을 실천하는 사람들한테는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관용의 교육이 효과가 있다. 그러나 나치의 사례처럼 극단적인 사회지배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교육이 오히려 상대방을 적대하는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서로 증오하는 인종 사이에 우호적으로 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차라리 서로 분리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 보아야 예쁘다”라는 시 구절처럼 계속해서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위협을 줄일 수 있다. 학교와 같이 다른 집단 사람들과 자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사회적 유대감이 더 많이 형성되며 타인의 생각에 대한 감수성도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소위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끼는 인종이 다른 인종을 박해하며 우생학적으로 학살하는 사례를 이미 겪었다.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외부 집단을 비인간화하며 짐승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최악의 폭력행위를 유발하게 된다. 이런 역사적 사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상대방과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포용성을 바탕으로 한 친화력과 관용의 교육을 통한 사람의 "자기가축화"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통해 인류는 지식을 전달하는 선순환 고리로 계속 성장할 수 있다. 우수한 지능이나 강한 힘보다도 부드러운 다정함이 오히려 강하며 결국엔 인류가 계속 살아남아 번성하는 방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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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공저/이민아 역/박한선 감수 디플롯/2021년 7월 26일
"적자생존이 아닌 다정함으로 세상을 바꾸어온 인류의 진화! 이제는 다정함이다!"
1. 들어가며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인류의 진화를 거듭하면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적자생존의 원칙'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생존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 강한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배워왔다. 그것은 야생 동물들의 세계 에서, 생태계 먹이 사슬과 종족 보존에 있어서 그 법칙은 잘 적용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맹수를 비롯한 강한 동물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한 소식지에 따르면 사자는 18세기 초까지 북아프리카 지중해 해안의 그 부분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많은 동물들이 지금 현재 멸종 위기에 있지만, 그에 반해 반려동물인 개의 개체수는 2013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10억 마리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 주변의 반려동물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이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들고 '최후의 생존자는 친화력이 좋은 다정한 자이다.' 라고 주장한다. 즉, 힘이 세고 강한 자보다는 친화력이 있고 다정한 자가 생존투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파격적이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적자생존의 법칙을 강하게 흔들고 반기를 드는 주장이라 처음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로 지금까지 적자생존의 통념들을 비판하고, 친화력으로 지속되어온 우리 인류의 진화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는 더 많은 적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친구를 만듦으로써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친화력을 가진 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친화력을 바탕으로 분노와 혐오의 시대를 넘어 인류는 공존과 희망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 책 속으로
<친화력이 높은 자가 살아남는다>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이상적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 (20쪽)
우리 인류는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생존하고 진화해온 것일까?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르면 강한자가 생존투쟁에서 승리해서 강한 종족의 개체수는 살아남아 증가하고, 약한 종족은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한다고 하는데, 이 법칙이 우리 종인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와도 관련이 있을까? 왜 우리 종인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우리의 다른 조상인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들보다 더 힘이 세고 강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보면 적자생존의 법칙이 우리 종의 진화에 적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종에 비해 뇌의 크기가 크거나 힘이 세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른 종에는 없는 '친회력'이 있었다. 친화력이 있어서 서로 협력하고 의사소통하면서 사회연결망을 확장하고 '집단 내 타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범주도 만들어 냈다.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복잡한 언어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문화와 학습의 기반이 되며 친화력을 갖춘 사람들끼리 더 잘 협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친화력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친화력은 모든 가축화된 종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개는 가축화되었지만, 늑대는 가축화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개의 조상을 늑대라고 생각하면서 야생 늑대를 사람들이 가축화시키면서 지금의 개의 모습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개는 스스로를 가축화시킨 것이다. 개는 지금도 우리의 반려동물로, 우리의 가족처럼 우리 곁에 있지만, 과거에도 개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 가까이에 있었다. 이렇게 사람과 친화력이 좋았던 개는 수렵채집인 거주지 근처에 살면서 사람들의 배설물을 먹으며 살아남았고, 개들 중에서도 이렇게 친화력이 좋은 종들만 살아남아, 그 개들 사이에서만 번식이 증가하여 이 개들은 사람과 더 친화적인 동물로 진화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를 여러 가축화징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축화징후라는 뜻은 야생종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가축화징후라고 불리는 현상의 변화 패턴은 얼굴형, 치아 크기, 신체 부위별로 각기 다른 피부색에서 나타난다. 개의 가축화징후로는 탈색, 펄럭이거나 더 작아진 귀, 작은 이빨, 작아진 뇌, 더 잦은 짝짓기와 번식 주기 등이 있다.
이런 친화력이 있는 동물로 보노보를 들 수 있다. 인간과 신체적, 지능적인 면에서 가장 유사한 동물로 침팬지가 잘 알려져 있지만, 침팬지는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친화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보노보가 침팬지보다 친화력이 높다고 한다.
<친화력이 높은 보노보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유인원의 친척 가운데, 오직 보노보만이 우리를 괴롭혀온 치명적인 폭력성에서 벗어난 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탁월한 지능과 지성을 뽐내는 인간이 하지 못한 것을 보노보가 성취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 사람도 자기가축화한 종일까? 저자는 자기가축화가 동물의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사람이 인지능력을 가지게 된 이유도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 때문이라고 한다. 가령 '여성화'된 얼굴, 하얀 공막, 협력적 의사소통 같은 인지적 기능등은 자기가축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인류는 자기가축화를 통해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친화력이 높아질수록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이 강화되는 발달 패턴을 보이고 관련 호르몬 수치가 높은 개인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공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친화력의 이면에 자리하는 공격성과 혐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32쪽)
그러나 저자는 우리 인류의 다정함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 인류는 지금까지 친화력의 향상으로 진화되어 왔지만, 양날의 칼처럼, 이 친화력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이 있음을 알려준다. 같은 편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했던 사람이, 다른 편에게는 잔인해지는 인간 본성의 역설 말이다. -p.256, 「8 지고한 자유」
그렇게 인간은 같은 인종, 같은 민족, 같은 나라 사람에게는 한없이 친절하지만, 다른 종족, 인종에게는 잔인해지고 그들을 비인간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생학 이론에 의해 나치 독일 히틀러는 '게르만족만이 우월하고 다른 민족은 열등하다'라고 믿고 '세상은 우월한 게르만족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같은 소위 부적격한 인종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홀로코스트도 망설임없이 저질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희생된 제 1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대전도 인간의 보복성 비안간화에 의한 것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정책도 그런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행해져 왔다. 인종 차별주의는 다른 인종인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거나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하는 생각이 의식이나 무의식 가운데 나타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많은 역사적 사례가 인간에게는 보복성 비인간화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전반적으로 포용력이 높은 보노보뿐만 아니라 그 어떤 동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고프가 지적하는 것은 비인간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인원화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유인원으로 부르거나 유인원에 비유하다 보면 사람들의 심리에 도덕적 배제가 발생하며, 이렇게 유인원화의 표적이 된 개인이나 집단은 기본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다. 편견보다 유인원화가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 간 격차를 더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 p.218, 「7 불쾌한 골짜기」 중에서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타인'을 비인간화라는 능력이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며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도 두루 나타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양극화의 대척점에 선 인류가 나아갈 미래의 방향>
이렇듯 친화력 이면에는 존재하는 공격성과 혐오를 줄이고 우리의 친화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람이 스스로 가축화해왔다는 자기가축화 가설을 통해 우리는 그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인류는 그동안 많은 접촉과 교류를 통해서 친화력을 향상시켜왔다. 잦은 교류를 통해 우리는 내집단의 구성원이 위협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보복성 비인간화를 보답성 인간화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대안우파의 사람들이 동성애자, 흑인 재소자, 이민자, 노숙자 등 소수자와의 접촉을 늘림으로써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인식을 개선시키고 관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의 생존을 도왔던 유럽인들의 사례에서 그런 사실들을 찾아볼 수 있다. 조사에 의하면 유럽인들이 유대인을 도왔던 이유는 그들이 유대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인간은 접촉과 교류를 통해 비안간화, 혐오, 공격성, 배척, 차별 등을 줄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교류와 접촉을 통해 타집단도 내집단화하면 그들에 대한 친화력이 증대하여 타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혐오와 증오, 공격성은 줄어들 것이다. 너를 제압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각자도생이 아닌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우리는 다정함으로 대응해야 한다. 서로 만나서 눈을 마주치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이런 교류와 접촉을 통해서 과거의 인류가 그래왔듯 포용력, 친화력을 높이면 앞으로 우리 인류의 미래는 밝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다정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물들과 친하게 지내고 친구가 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300쪽)
3. 나가며
이 책에서 저자는 동물의 자기가축화 현상에 대한 행동 과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 종의 자기가축화의 신체적, 인지적 기능을 말하면서 우리는 다정함으로 세상을 바꾸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현대 사회 문제와 인류의 모습의 고찰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교류와 협력이 필요함을 말한다. 지금의 분열과 차별, 혐오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교류와 협력임을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다정함을 무기로 삼아 번성해온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이제는 분노와 혐오의 시대를 넘어서 협력과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야 함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우리가 다정함을 무기로 서로 협력할 때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일 수 있다.
이런 협력과 공존을 통해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사태도 슬기롭게 해결하고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인간과 동물은 우정과 사랑을 통해 서로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단짝 친구들인 것이다. > 30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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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_075
지은이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공저/ 이민아 역/ 박한선 감수 출판사 : 디플롯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처음 봤을때는 에세이라고 생각을 했다.
지난달인가 국민서평프로젝트 도서여서 한번 읽어볼까 하다가 경쟁자들 쟁쟁한 국민서평은 참여 포기 하고 다음에 읽어봐야지 하고 미뤄뒀던 책이다.
9월달 김영하의 북클럽 선정 도서라...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 많이 고민이 되었다. 일단, 읽으신 분들이 어렵다고 하니 주저했던 것도 사실이고, 미리 읽고 리뷰 올리신 분들의 리뷰를 통해서도 내가 읽기엔 좀 어려울듯 했다.
그래서 구입해도 안 읽을듯 하여 포기 하고 있다가 김영하 북클럽 함께 참여하는 이웃님들이 함께 읽자고 해주시는 말씀에 용기를 내서 구입했습니다. 다행히... 그리 어렵지 않게 읽었습니다.
연구(실험을 바탕으로 한) 내용도 좋았고 약간 많이 논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 강해서 그런지 아주 흥미롭게 읽었고, 때론 실험 설계에 의문도 들었던 부분도 있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다 보니 중간쯤에서는 뭔가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계속된다고 느낀 지점에서는 상당부분 졸기도 했습니다. 이부분은 북클럽이 끝나고 나면 다음에 다시 제정신 차리고 읽어보려고 합니다.
책이 좀 두꺼워서 놀랐으나 390여 페이지중 80페이 넘게는 참고문헌(이라는 사실도 놀라웠어요) 이라 페이지에 놀랐던 마음도 한시름 놓고 도전했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인류의 많은 종들 중에 인간종에 대한 진화(?), 사회적 변화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과학책인가 싶다가 뒤로 갈수록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오히려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를 과학적 실험(연구)으로 분석, 통찰 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인가 싶다가 저자의 소개를 보면 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과 교수라고 하니 결국 인간의 모습과, 인간의 삶안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룬것이 바로 인류학연구로서 같은 맥락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 안에서 마음에 닿았던 문장 몇가지만 소개하면서 리뷰는 간략하게 쓰려고 합니다. (사실... 플래그 붙여놓은 부분이 엄청 많았다는 사실도 오늘 리뷰를 쓰려고 하니 보이더라구요. 정리해서 쓸 자신이 없어서 감상문 정도의 리뷰만 남겨볼랍니다.)
이부분 읽으면서 이런 메모를 적어놨었습니다.
현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반인륜적행위(패륜, 살인, 종교간 전쟁, 이념대립으로 인한 분열등)는 인간(종)으로 기본적 아니 본능적 태생적으로 갖고 있던 특징인가? 아니면 동물적 능력, 감각, 의사소통, 사회성등을 상실 했거나 이런 능력을 습득 불가능한 처지일때 발생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들을 갖게 되었고 이런 나의 질문들에 대한 답은 책을 읽으면서 찾을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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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기 이 지구상에서 수많은 동,식물과 인류는 탄생하고 소멸하기를 반복해왔다. 모양을 달리하면서 변화되어왔다. 땅의 환경과 상황에 최적화되어 정착하고 성장하며 번성했다. 수많은 시간을 거슬러 이 땅의 주인으로 남은 인류, 호모 사피엔스.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라면 인류의 기원이 되었던 다른 사람 종들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터, 분명 소멸한 종도, 살아남은 종도 다 이유가 있다. 몇 백 년 전에는 환경에 적합한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든가(자연선택설)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었다든가(적자생존) 등 이론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요즘에는 이런 생물학이나 우생학 쪽이 아닌 공동체 내에서의 관계나 친밀감(다정함), 감수성, 소통과 격려 등 사회 심리학 부분에서 새롭게 다뤄지고 각광받는 추세이다. 덩달아 현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왜 살아남았는가? 대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재밌게 어렵지않게 다루고 있는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다.
-----♣ 딱, 드는 생각 하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제목만으로 사실 책을 다 읽은 느낌이다. 다정함은 친밀함이자, 소통의 열쇠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종 그 다정함에 익숙치않아 불편해지기도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이다. 개별적인 성향의 다양한 욕구를 가진 나와 너무나 다른 너, 우리. 그 차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발목을 잡아왔다. '다름'에서 기인되는 문제는 불평등을 야기시키고, 비인간화를 양산하고, 폭력적이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은 결국 모두 공생하지 못하게 만든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뜬금없이 생각났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사회 생활을 잘 한다는 유의미한 법칙이 여전히 유효하고, '직장에 다니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아리송한 말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묘한 위로를 건네고,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친밀감과 소통, 관계와 심리에 관한 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초점이 맞춰져있는지 엿볼 수 있다. 결국, 다정함과 관계에서는 오는 불안함은 상극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두 자리의 운명은 살아남거나 떠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지만,..... '다정함'이 현세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밀 병기였다.
-----♣ 책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제목처럼 답이 나와있다. 이 책은 다정함이 어떻게 인류의 진화에 유리한 전략이 되었는지를 밝히려고 쓴 책이다.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이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었음을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친화력이 자기가축화를 통해 진화했음은 이 책 전체를 아우른다. '자기가축화 과정(가설)'이 참 생소하고 낯설었는데, 이 책의 핵심임을 알고 난 후 맥락이 자연스레 이해된다. (자기가축화; 야생종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간에게도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되는 과정)
사람과 친한 개도 가축화 과정을 거치고, 이런 협력적 의사소통 기술이 가축화의 산물임을 여러 근거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막강 친화력 갑이라 할 수 있는 보노보, 이웃 무리에게 공격성을 보이기보다 함께 여행하고 먹이를 나눠 먹으며 우호적 관계를 형성한다. 보노보만의 생존전략을 통해 친화력 상승이 모두 가축화된 동물의 가장 중요한 특질임을 알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 종의 자기가축화 요인에는 마음이론 능력이 다른 동물들보다 탁월함을 눈여겨보게 된다. 친화력 뿐 아니라 자제력과 감정조절 능력의 결합은 사람 고유의 사회적 인지능력을 만들어냈다는 것. 아울러 타인에 대한 관심이 오래도록 살아남음의 결정적 증거가 되지 않았을까? 사람(人)이란 상형문자의 의미가 와닿는다. 홀로 아닌 서로 기대어 같이.
종임을 설명해준다. 사실 이 부분에서 생각이 많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민주주의 꽃을 피웠고 덩달아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세워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비인간화와 도덕적 배제, 혐오와 폄하 등이 표나지않게 각 분야 속에서 독버섯처럼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민주주의의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로부터 나오는 긍정적 효과를 간과할 수 없다. 친화력(친밀감, 다정함) 동력을 가속화해야 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집단 사람들과의 잦은 접촉과 환경 조성으로 사회적 유대감이 더 많이 형성되고, 타인이 지닌 생각에 대한 감수성도 강화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 책에서 나오기 자기가축화 가설에 의하면, 결국 인간은 스스로 가축이 되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가축화를 이룬 종이다. 마음 자리 밑바탕에 사악한 본성도 있지만, 인간 본연의 탁월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살아남았다. 고도로 발달된 복잡한 사회 관계망 속에서 또 어떻게 변화해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소통과 공감, 연대와 협력이 더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일상에서 경험했던 환대와 친절함의 비밀을 살짝 털어놓으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어느 일상의 한 자리에 내가 있었다. 출처 모르는 불안이 나를 옭아매어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감당하는 것이었다. 묻고, 읽고, 들여다보고, 확인하고, 메모하는 것 뿐이었다. 두려움과 힘듦의 연속이었지만 웃음과 긍정, 친절한 마음으로 상대를 향해 마음 문을 열고 다가갔다. 상대방도 내 마음을 아는지 방법을 알려주거나 도움을 건네었다. 시간이 꽤 흘러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일과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같은 시작점에서 누구는 끝까지 살아남고, 누구는 중간에서 멈추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견딤의 무게가 차이가 있지만, 결국 마음 자세였다고 생각한다. 친밀함(긍정적 생각과 마음)은 상대를 향한 신뢰가 아닐까! 이 신뢰감을 바탕으로 진화는 계속 진행중이다.
-----♣ 읽고 난 느낌 아주 흥미롭고 의미있는 책이었다. 책 편식을 좀 하는데...... 요즘 나의 책 읽기는 시간을 제법 들여 꼭꼭 씹는 편이다. 실제로 남들보다 밥도 후다닥 먹는다. 오랫동안의 습관이다. 그렇다고 소화가 안 되고 그런 일은 거의 없다. 그동안 후다닥 책 읽기를 통해 소화하는 과정이 생략된 듯 하다. 생각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었고, 읽은 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질보다 양에 치중해서 생각하는 수고로움을 덜 했구나!
한 권의 책을 만나고, 내 것이 되는 순간 그 책과의 인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줄이 있는 오랫만의 양장본이 꽤 마음에 들었다. 보랏빛 책 표지도 은근히 다정했고. 무엇보다 이 책이 더욱 나의 신뢰감을 상승시킨 이유는, 책 뒷쪽의 참고문헌이 거의 80쪽에 이른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헌과 연구 기록들을 찾고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냥 대충 쓰여진 책이 아니었다. 각주도 아주 친절하게 꼼꼼하게 적혀있었고. 이런 류의 책은 보통 어려울거란 편견이 있는데, 그저 편견일 뿐이었다.
요즘의 세계 정세(아프카니스탄에서의 탈레반의 정권 장악)와 우리 사회의 만연한 혐오와 차별에 대한 부분, 2016년의 촛불집회를 연상케 하는 평화 시위 등 자연스레 연결이 되는 지점이 많아서 좋았다. 다양한 시각으로 읽게 되는, 생각의 깊이를 더해준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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