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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책책책 북카페 서평 당첨 도서
<저자는>
<책읽은 소감> 저자의 이력을 읽어서인지 책은 공통점이 있다. 굉장히 예민한 심성의 소유자인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하는데다 여인들은 여신에 견줄만치 아름답게 묘사된다. 이 여인들은 대개 요절하는데 쌍둥이, 사랑하는 연인 혹은 아내로 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마음이 절절하거나 따라서 죽는다. 또는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질만치 좋아서 사랑했던 이유가 싫어져서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
공포 편에 걸맞게 괴기하고 기이하며 찐득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대저택의 환경이 나온다. 묘사되는 집안 풍경들도 음울하고 주인 역시 심약하면서 병들어 있거나-그런 환경이라면 멀쩡한 사람도 아플 것 같은 상황- 그런 상태를 여러 번 그린다. 내 상상력의 한계는 크지 않고 더구나 그런 음울함이 배경인 대저택을 세밀묘사하는데서 광기와 번득이는 살기가 동반되기도 한다.
검은 고양이 에드거 앨런 포 소설중에 검은 고양이를 모르면 간첩이겠지. 후후. 남들과 어릴 적부터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남자가 그 대상으로 동물들에게 정을 준다. 다행히 동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하여 행복한 생활을 한다. 남자가 야망이 너무 커도 문제지만 그렇게 집안에만 갇히다시피 생활하다 보니 성취감도 없을테고 성취욕도 없을터. 자신안에 내재된 못마땅함이나 불만을 술로써 달래다보니 동물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손찌검도 하게 된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특히 아꼈던 검은 고양이를 급기야는 죽인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던차 올블랙이 아닌 가슴에 흰털이 있는 검은 고양이를 데려온다. 죄책감이자 자책감을 두 번째 검은 고양이에게 사랑을 주며 보상받으려는 마음이지만 예의 습관이 튀어나온다. 극도로 신경과민이 된 상태서 검은 고양이를 도끼로 내리치던 순간, 말리던 아내를 내리친다. 실수로 죽인 아내를 지하실의 벽에 세운 채 완전범죄를 했다며 안심한다. 경관이 왔고 발견하지 못하자 득의만면한 그는 아무데도 없다며 벽을 친다. 때맞춰 들려오는 야옹~.
포악의 극치를 달리고 술에, 마약에 찌든 그가 온전한 정신일 수는 없었으리. 고양이는 남자 주인이 무섭기도 했거니와 자신을 위하던 안주인이 죽자 그 곁에 웅크리고 있었을터. 터무니없게도 살인을 저지른 상태였으니 도를 넘은 광기는 시커먼 털을 가진 고양이가 아내 옆에 있었어도 소리내지 않고 있었다면 보지 못했을터. 가장이자 한 사내가 특별하게 할 일이 없는 상태라면 스스로가 무료한 삶이자 나태한 삶을 견디지 못해서도 뭔가에는 빠질 수 밖에. 안타깝게도 술과 마약은 환각성이 강하니 멸망을 자초하는 지름길임을.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술, 도박 등을 주인공들에게 투영해 불안한 심리나 그로 인한 신경쇠약 등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그런 상태를 경험하지 못한 독자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나 그런걸 읽어내는데 인내를 요하게 한다. 과히 즐거운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들을 읽어가노라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데다 광기와 살기가 번득이며 음습하고 음울하니 이야기가 지루하게도 느껴진다. 단편이기에 몇 장 안되는 것들도 있으나 뭔소린지 모르겠는 것도 여러 편이었다. 추리소설이라는 책을 읽으며 이렇게 지루하고 진도 안나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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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어떤 경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봤다. 단, 몇 장. 짧은 글이 주는 충격은 그때까지 읽어왔던 어느 책보다 컸다. 시간이 지나 세세한 내용을 잊어버렸을 즘에는 '검은 고양이'라는 단어가 불길함의 상징이 되어 길거리를 지나다 온몸이 까만 고양이를 보면 흠칫 놀라곤 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놀라지는 않고 빤히 쳐다보기는 하지만 다른 고양이들을 볼 때와는 약간 다른 자신을 느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본 검은 고양이는 여전히 섬뜩했다. 이성을 잃어버린 인간의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계를 보여준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테마별로 묶어 펴냈다. 검은 고양이가 수록되어 있는 2권은 공포 편이다. 350페이지가 채 안되는 책 안에는 17편의 단편들이 들어있다. 5장도 되지 않는 무척 짧은 단편부터 그것의 몇 배는 되는 단편까지. 짧고 긴 글들이 모여있다. 이야기의 호흡이 긴 장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몇 장 되지 않는 지나치다 싶은 짧은 글 자체가 당황스러웠지만 짧은 글일수록 이야기의 전개가 빨라 지루할 틈이 없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 또한 즐거웠다. 장르적으로는 공포소설 같기도 하지만 난해하면서 몽환적이고 환상적으로 묘사된 글들은 환상소설을 보는듯했다. 대표작 검은 고양이를 시작으로 처음 보는 이야기들이 가득 있었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단편들이 많다. 마치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믿을 수 없고 공포심을 주는 기이한 일들을 써놓은 글을 한데 모은 듯하다. 병색이 짙은 친우에게서 연락을 받고 찾아간 집에서 일어난 일, 곧 죽을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본 일, 밖에는 전염병이 돌고 있는데 철저하게 안을 폐쇄하고 사람들을 모아 무도회를 즐기던 남자에게 일어난 일, 평범하지 않은 아내의 죽음 후 맞게 된 두 번째 아내의 기이한 죽음, 유명한 소용돌이를 보러 간 곳의 노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들려주는 3년 전 소용돌이 탈출 이야기 등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공포라는 단어 아래에 집합한다.
책에는 범인이 형을 앞두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거나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늘어놓는 글이 많다. 절박한 그들이 느끼는 건 공포의 감정이다. 감정은 전파된다고 했던가. 그 생생함에 그들에게 감정이입이라도 된 것처럼 순간순간 공포스러웠다. 어쩌면 에드거 앨런 포는 독자들을 공포라는 감정을 책을 통해 간접 체험 시키면서 삶에 더 충실하기를 바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서평을 마무리하며 가장 공감되었던 단편인 "심술요정"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툭 하면 일을 미루다 당일이 되어서나 초초함을 느끼며 급하게 마무리하려는 평소의 나와 닮아 있는 사형수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오늘 당장 일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런데 기어이 우리는 '내일'까지 미루고야 만다. 왜 그런 것일까? ... '심술'의 농간 말고는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다. '내일'이 오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걱정으로 더욱 초조해지지만 걱정이 앞설수록 이와 동시에 이해할 수 없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단연코 나쁜 심리임에 분명한 '미루고 싶은 열망'이 엄습한다. - p.339 심술 요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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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2 공포편
' 검은 고양이'만 알고 있었네 에드거 앨런 포를 책 읽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에드거 앨런 포의 명성은 다 들었고,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마침 그의 저작집 소설 전집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났는데, 그 면면을 살펴보니, 내가 알고 있던 그의 작품은 그저 몇 편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그의 작품 ‘검은 고양이’ 말이다. 내가 왜 그 검은 고양이 이름을 네로라고 알고 있을까? 그의 책 공포편에서 검은 고양이를 읽다가 혼자 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 고양이 이름을 네로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그 작품 속에서 검은 고양이 이름은 플루토였다.(10쪽) 그런데도 지금까지 고양이 이름을 그 긴 세월동안 한결같이 ‘네로’로 알고 있었으니! 아마 성탄절 즈음이 되면 울려 퍼지는 검은 고양이 라는 제목의 캐롤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여튼, 그렇게 그저 몇 작품만 읽고, 그렇게 알아오던 그의 작품을 이번에 다 섭렵하게 되어 여러 가지로 기뻤다. 먼저는 그의 작품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되었으니 의미가 있다. 여기 2편에는 공포를 주제로 한 소설, 검은 고양이 등 17편이 실려 있다. 여기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 나에게만 해당되는지? -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예컨대, ‘생매장’, ‘모렐라’ 같은 작품들은 처음 읽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그 주제가 ‘공포’이기 때문에, 내용들이 공포와 관련되는 이야기들이고, 그러한 공포로 인해 벌어지는 기기묘묘한 사건들을 기록해 놓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검은 고양이’같은 경우, 마지막 반전에서 느끼는 그 ‘오싹함’이라니! 그런 감정들이 공포물을 읽고 느끼는 감정들일 게다. 그러나 포는 거기에 멈추지 않는다. 공포에 관련된 감정들을 포는 냉철하게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생매장’중 일부분이다. <대규모 사상자를 낸 재앙의 보편성보다는 수많은 개인이 겪어야 했던 극심한 고통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불행, 이른바 궁극적인 비통함은 지극히 집중적이어서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극한의 무시무시한 고통은 철저히 홀로 견뎌내는 것이지 집단이라고 해서 고통이 그 수만큼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232쪽) ‘모렐라’중 이런 대목이 있다. <나무 중에 소나무가 가장 오래 사는 나무이듯 감정 중에서 가장 오래 남는 그 슬픔 말이예요.> (259쪽) 그런 포의 성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고통은 아무리 해도 개인적이다. 홀로 견딜 수밖에 없다. 또한 슬픔은 다른 감정, 예컨대 기쁨 같은 것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공포에 대한 포의 결론 공포에 대한 에드거 앨런 포의 결론은 무엇일까? “공포는 잠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파괴될 것이다.” (252쪽) 공포를 잠들게 하기 위하여, 포는 공포와 대면하고, 그 얼굴을 이 책에 담아 놓았다. 공포를 잠재우기 위하여 일단 이 책을 읽어보심이 어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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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02권 《공포 편 : 검은 고양이 외(2015.06.01. 코너스톤)》는 이미 예상했을 수도 있지만, ‘죽음’과 연관된 이야기다. 죽음은 삶의 이력 또는 노력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져 피해갈 수 없는 관문과도 같은 것으로, 부나 명예로 사고 팔수 없으며 타인에게 미루거나 극복할 수 없는 최고의 공포다. 사후세계에 대한 정보 부족이 두려움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이별도 죽음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17편의 단편이 수록된 《공포 편 : 검은 고양이 외》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이미 어디선가 경험한 듯 느껴지는 내용도 있었고 생소한 내용도 있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잠들기 전에 읽으려고 침대 옆에 두었는데 첫 번째 수록된 <검은 고양이>를 읽다가 소름이 돋고 으스스해져서 밤에 읽지 않기로 했다. 설마, 잠들기가 무서울 만큼 공포가 느껴질까, 얕보았다가 큰 코 다쳤다. 《공포 편 : 검은 고양이 외》는 술에 취해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플루토’를 죽인 이후 다시 키우게 된 고양이가 플루토와 닮은 게 두렵고 거슬려서 도끼로 죽이려다가 실수로 아내를 죽인 후 완전범죄를 꿈꾸며 지하실 벽 안에 시신을 넣고 회반죽을 발라 감쪽같이 처리했다고 자신했지만 고양이의 복수로 경찰의 수색을 벗어나지 못한 <검은 고양이>를 비롯해서 친구 로더릭 어셔의 초대로 어셔 가에 머물게 되면서 경험한 악몽과도 같은 공포를 그린 <어셔가의 몰락>, 첫 번째 부인 리지아가 병으로 사망한 뒤 트레메인 출신 아가씨 로위나와 결혼하였지만 로위나 역시 병에 걸려 사망했는데 깨어나 움직인 시신이 리지아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리지아>, 만성 폐결핵 진단을 받은 발데마르를 상대로 최면술을 시험했는데 최면에 걸린 발데마르가 7개월 동안 죽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최면이 풀렸을 때 가루로 변했다는 <M. 발데마르 사건의 진실>, 성급하게 매장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살아있는 상태로 묻혔다가 무덤 속에서 죽는 사례가 다반사인 것을 두려워하는 강직성 병을 앓고 있는 ‘나’가 생매장 당했다는 착각에 죽음보다 무서운 공포를 경험한 <생매장> 등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 편 : 검은 고양이 외》을 읽으며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보이는 문장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작가는 공포에 굴복하지 말고 맞서 이기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에드거 앨런 포 전집 03권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읽게 될지, 무척 기대된다. 공포는 잠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파괴될 것이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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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거 앨런 포 소설전집 2 공포 편]
-검은 고양이 외-
포의 <검은 고양이>는 어린 시절의 내게 공포를 심어 준 이야기다. 벽장 속에서 들려 온 고양이 목소리. 안 그래도 밤에 아기 울음 소리 같은 고양이 소리가 들려 오면 귀를 막고 몸을 떨곤 했던 나인데 그 고양이의 목소리가 나온 곳의 벽을 허물었더니 아내의 시체가 떡 하니 들어 있었고 그 아내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빨간 입을 벌리고 검은 고양이가 야옹거리고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들었었다.
어린 시절의 공포를 조금 극복할 때쯤 다시 한 번 읽은 <검은 고양이>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뭐야, 이런 이야기였어~ 조금 더 담대해진 가슴으로 휙 읽어버리고 훅 털어내 버렸다.
이제 아이 둘을 둔 엄마가 되고 나서 남편과 아이를 거느린 몸으로 다시 <검은 고양이>를 읽게 되었는데, 새삼 포가 그려내는 공포가 내 몸에 전율을 심어 주었다. 이번에는 인간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기이한 생각들과 경악할만한 동기에 두려움이 스며들었고, 그것을 "검은 고양이"를 통해 암시했다가 마지막 부분에 빵하고 터뜨리는 포의 솜씨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다정한 사람의 마음이 황폐해지고 알콜에 찌들면서 점점 추악하게 일그러진 모습이 검은 고양이의 도려내어진 한쪽 눈으로 형상화된다. 그 눈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솟아 오르고 두려움, 공포를 느끼게 되었을 사람의 심리가 새삼, 지금 이 나이에 고스란히 이해되는 것이 내겐 오히려 전율의 대상이다. 이제 나도, 그런 감정의 추이들을 좇아갈 수 있을 만큼 세상의 때를 묻히고 만 것인가, 라는 깨달음이 스치고 지나간다.
1권의 미스터리와는 다른, 한층 더 깊이 있는 인간의 심연을 드러내 보이고 고발하는 공포 편의 앞부분에 포진한 <검은 고양이>와 <어셔 가의 몰락>이 던진 돌팔매가 꽤 둔중하게 내 머리를 때린다.
지옥에서나 울려댈 법한 공포의 비명 같기도 하고 승리의 함성 같기도 한, 지옥불에 떨어진 인간들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비명, 그리고 그런 인간들을 지켜보며 기뻐 날뛰는 악령의 함성과도 같은 소리였다. -22
포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글 속에서 조장하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좀 으스스하게 시작하는가 싶으면 어느새 사방이 그가 창조해낸 음울한 기운으로 가득차게 되고, 오리무중의 안개 속에 갇히기라도 한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것같은 답답함을 느끼면서 숨이 가빠진다.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 자체가 내 주위에 엄습해와서 꼼짝없이 그 어두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 속에 퐁당 빠뜨려진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치닫는 공포를 그래, 그냥 정신을 놓은 채로 온전히 느껴보자, 싶었을 때 느닷없이 막을 내리는 결말. 나는 이 속수무책의 올가미 속에 꼼짝없이 걸려들고 만다. 분명 바깥은 한여름의 찜통 같은 더위 속에 지글지글 끓고 있는데... 내 주위에만 미칠 것 같은 광풍이 분다.
그곳에 남은 것은 오로지 거대한 저택과 그림자뿐이었다. 섬광은 저물어가는 핏빛 보름달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 쳐다보고 있는 사이 그 균열이 순식간에 쩍 입을 벌렸고 회오리바람의 광포한 헐떡임이 몰아치는가 싶더니 둥근 달 전체가 눈앞에서 터졌다. 거대한 벽이 산산이 무너져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51
무시무시한 공포를 느끼고 싶다면 포의 세계에 발을 들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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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엘런 포우의 공포편은 <검은 고양이> 외 16편으로 되어있다. 관찰자이자 주인공인 '나'를 중심으로 공포의 심리소설이 있는가 하면 공포라고 하기에는 다소 맥락이 어그러지는 부분도 있다. 검은 고양이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공포의 단편들로 충격적이다. 그러나 <함정과 진자>는 혹독하고 가혹하다 그리고 <밀회>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 순애보와도 같다. <검은 고양이>에서 보이는 심리 변화는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인정과 동물의 사랑을 경험한 주인공이다. 주고받는 수지 타산의 관계가 아니라면 영리한 고양이와 사람의 관계는 어떤 관계보다도 만족감을 준다. 인간의 사랑과 다른 같은 경험을 체험한 주인공은 그런 아내와 결혼하고 플루토라는 고양이를 키우게 되고, 두 번째 고양이는 공포의 극에 달한다. 주인공에게 술의 악령이 지배하면서 고양이를 죽이게 되고 그 고양이의 악령이 교사하게 만든다. 악마의 화신을 불러일으키는 술(성격장애, 불안심리가 맞을 듯 )로 인해 섬뜩한 고양이의 죽은 벽화로 이어지는 말 그대로 공포다.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함정과 진자>는 종교재판 감옥에서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가혹하게 인간 사냥개가 될 수 있는지를 본다. 인간이기를 포기할 때 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그 상황에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배고픔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온 세상을 하나의 감옥에 담는다면 죽음을 피하기까지, 우리가 찾고자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배고픔 해결이다. 종교재판에서 감시를 당하며 허겁지겁 먹으며 정신을 차린다는 과정이 어쩌면 삶이 저주와도 같을 거란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가해자 앞에서 좌절은 사치이고 삶은 희망이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당연해도 어쩔 수 없다. <밀회>은 오히려 사랑과 죽음이 하나임을 보게 한다. 후작부인이 결혼 전에 알았던 청년과의 사랑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해야 하는 그들을 보며 문학과 삶이 하나가 될 수도 있었던 시절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감정 중에서 가장 오래 남는 슬픔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면 어쩌면 사랑은 행복인 동시에 불행이다. 밀회에 나타난 작품에서의 사랑은 마치 중독과도 같았으며 그 사랑은 한계를 모르는 죽음을 택한다. 관찰하기 좋아하는 포우 특유의 심리적 지적들이 후작의 아이가 물에 빠짐으로 인해 느닷없이 청년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나, 불쑥 같은 시간대에 각자의 집에서 죽음으로 결론짓는 정열의 사랑이 예사롭지 않다. 인간의 공포로 겪는 특이사항들이 그야말로 격한 줄거리다. 선과 악을 떠나 인간의 한계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 같다. 공포스럽게 포장을 해서 결국은 일이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침전되어 있는 감정의 흐름을 심리적 통찰력으로 풀어낸다. 위에 언급은 안 했지만 <리지아> 같은 작품에서는 딸을 통해 아내의 환생을 보는 듯한 표현이나 도금양과 포도나무를 잊지 않았다는 표현은 사랑과 환희, 생명을 상징하는 표현들이어서 종교적 색채도 강하다. 포우의 공포 편을 보는 감명은 소설 속에서 목격되는 두려움들의 전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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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는 왠지 모르게 어두운 느낌을 자아내고는 했다. 길을 가다가도 우연하게 검은 고양이를 마주치기라도 할때면 왠지 모르게 움찔하며 놀라고 옆으로 피하게 되고는 한다. 고양이보다는 개를 더 좋아하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내게 고양이를 무섭게 느끼게 하는건 고양이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때문이다. 특히 검은 고양이 하면 생각나는게 바로 에드거 앨런포의 소설 검은 고양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봤을 법한 검은 고양이 그 내용을 나 또한 어릴때 만나보았기에 머리속에 검은고양이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이 만들어졌던거 같다. 공포라는건 은연중에 경험하거나 또는 읽었던 책이나 보았던 영화등에서 내 머리속에 남게 되는 부분이니 말이다. 검은 고양이는 에드거 엘런포의 작품으로 인해 내 기억속에 무서운 기억으로 남은거 같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가능하면 검은고양이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고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왠지 조금 멀리 피하게 되었다. 그런 기억을 남겨준 그의 공포편을 이번에 모두 만나보게 되었다. 사실 어릴때 보고나서는 머리속에 검은고양이에 대한 무서움만이 남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본 검은고양이는 고양이에 대한 무서움보다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공포가 아닌 매력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던 검은 고양이 하지만 술로 인해 변해버린 주인으로 인해 검은 고양이와 주인의 관계는 변해버리게 된다. 그로인해 결국 주인의 손에 죽게 되는 검은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의 저주처럼 주인에게 일어나는 일과 그로 인한 파멸 파멸속 마지막또한 검은고양이가 이끌게 된다. 그외에도 에드거 앨런포의 공포편은 사람의 심리와 마음속에서 오는 공포로 인하여 결국엔 사람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공포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넘겨버릴수 있는 일들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공포가 점점 커져 공포에 사로잡혀 모든것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공포에 모든시야가 닫혀진채 공포에만 귀기울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면 나약하게 무너져 있는 모습들의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인간의 심리에 대하여 이야기 하여준다. 그속에 내자신의 나약함도 공포도 생각해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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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1편의 미스터리 편과는 약간의 거리는 두고 있다. 1편은 거의 대부분 미스터리한 사건에 대해 잘 풀리지 않은 부분을 속 시원히 해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거라면, 공포편은 미지의 현상에 대한 미스터리를 담고 있으며, 그 이유가 속 시원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검은 고양이를 시작으로 어셔가의 몰락에서 심술 요정까지 17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거의 다 처음 접한 단편들인 것 같다. 일부는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은 들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아마 단편이라는 점도 있고 내용이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보기에 애매한 내용들이라 그런점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특히 내용의 흐름이 내면의 심리적인 묘사가 많은 반면에 한 순간의 정점을 찍고 마무리가 되는 내용들이지만 짧은 호흡(단편)이라서 그런것 같다. 공포 초조해지는 마음을 개인의 심리적인 묘사나 행동 그리고 주변의 사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표현해 갑니다. 그리고 한 순간 그 불안과 초조의 마음이 현실적인 공포로 나타나게 되면서 주인공에게 무섭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 스릴러 소설들도 꽤 많이 출간되어 일부 작품은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 책도 인간의 공포에 대한 마음을 담아내고 있지만 에드거의 소설처럼 세세하게 심리적인 묘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를 보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그 느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마 TV나 영화 등의 영상매체의 발달로 우리들의 뇌에 각인되어진 공포라는 의미의 영상이 존재하고 있어 살짝만 건드려도 그 느낌을 낼 수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에드거의 소설이 출간된 시기에는 영화라는 의미의 영상매체가 없어, 공포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세세하게 그려내야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이 때문일꺼라 생각됩니다. 이번편에서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묘사를 어떻게 써 내려가야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후3, 4,5부는 환상, 풍자, 모험으로 시리즈가 마무리되는데, 각각의 주제에 맞게 정리된 에드거의 소설을 보고 싶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내용보다는 각 주제에 맞는 에드거의 표현 방법을 보는 재미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재미가 나에게 주어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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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공포 편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의 유명한 공포소설 '검은 고양이' TV에서도 방영된적이 있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접해보았다. 평소 공포소설을 자주 읽지 않기때문에 '공포 소설'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동안 공포를 느낀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그저 각 상황들에 긴장감정도만 느껴보았던 터라 공포를 주제로 한 소설들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공포를 불러일으킬지 조금의 긴장을 안고 읽기 시작하였다. 가장 첫 번째로 소개되고 가장 유명한 이야기인 '검은 고양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써 제목부터 끌린 이야기였었다. 이야기는 화목한 가정과 많은 애완동물들과 행복하게 지내던 주인공이 알콜중독으로 아내와 애완동물들을 폭행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수많은 애완동물중에서도 가장 아끼던 애완동물이었던 검은고양이 '플루토' 에게는 겨우겨우 참고있었지만 어느날 참지 못하고 플루토의 한쪽 눈을 도려내버린다. 그 후 플루토와의 관계는 악화되고,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혐오감을 드러내는 플루토에게 짜증이 난 나머지 플루토의 목에 밧줄을 감고 나뭇가지에 매달아버린다. 그날 밤, 집에 불이 났고 모두 파멸했다. 모든 벽이 무너졌지만 한쪽 벽만이 남아있었는데 그 흰 벽에는 부조로 새긴듯 한 커다란 고양이의 형상이 있었고 그 고양이에게는 두꺼운 밧줄이 둘러있었다. 그 이후 술집에서 플루토를 닮은 한 고양이를 만나고,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어느날 아내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던 중 고양이가 발 밑에서 서치적거리자 화가나 도끼를 휘두르지만 아내가 막는다. 그에 더 화가나 아내를 뿌리치고 아내에게 도끼를 내리꽂고,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아내의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지하실에 아내를 숨기고 벽을 만든다. 이후 경관들이 집을 수색하고, 아내를 찾지 못했지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아내를 숨긴 벽을 허문다. 그리고 그 속에는 심하게 부패된 아내의 시체와 그녀의 머리 위에 입을 벌리고 앉아있는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화재가 난 집 벽에 고양이 형상이나 시체위에 고양이가 등장할때마다 흠칫 놀라게 한 이야기였다. 공포편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다양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환상편에 이어 다시한번 작가의 엄청난 상상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포'를 줄 수 있는 것이 몇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다양한 부분에서 다양한 공포를 이끌어 낸 작가가 대단하다고 느끼게 해준 편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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