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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의 계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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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교육현장에도 '자존감'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이제는 우리 교육의 목표가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궁금했다. 왜 갑자기 '자존감'이란 말이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지? 이 책은 '자존감'의 계보학이다. 그리스시대부터 현대까지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 지 다루고 있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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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교육현장에도 '자존감'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이제는 우리 교육의 목표가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궁금했다. 왜 갑자기 '자존감'이란 말이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지? 이 책은 '자존감'의 계보학이다. 그리스시대부터 현대까지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 지 다루고 있다. 물론 목적은 '자존감'을 긍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와 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다. 

 

'자존감'을 키우면 우리 아이들은 더 좋은 아이가 된다.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자신에게도 친절하고, 개방적이고, 담배도 안 피고, 폭력도 안 저지르고. 더 좋은 것은 이 자존감은 노력하면 누구나 키울 수 있다. 정말? 이렇게 좋다면 당연히 우리 교육의 목표는 '자존감'을 키우는 데 두어야 한다. 

 

하지만 근거가 없다. 물론, 주의할 것은 '자존감'이라는 개념 자체가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변화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내 성격이 원래 내성적인데 '자존감'을 키운다고 외향적이고 낯선 사람에게 개방적이며 친절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조금은 바뀔 수 있으려나? 이 조금 바뀌는 것도 사실 사회생활을 하고 나아를 먹으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문화적 영향 때문이다. 

 

자존감을 키우면 니코틴 중독과 알콜 중독에도 안 걸리나? 우리는 자존감이 낮아 니코틴과 알코올 중독에 걸리는 걸까? 아니면 니코틴과 알코올을 장시간 섭취하다 보니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낮아지는 것일까?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자존감'이라는 녀석을 키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 노력여하에 달렸다는 것이다. 내 자존감이 낮아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의 잘못이다. 왜 노력하면 누구나 자존감이 커지는 데 너는 여태 뭐하고 있었냐라는 질책이 따라온다. 

 

이 책의 결론은 '자존감'은 노력한다고 키워지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왜 누구나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정말 노력하면 누구나 완벽한 사람이 되긴 하는가?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고 내향적인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저런 성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저런 나의 성격(혹은 모순된 것 같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행복하다. 내가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책이다. 1970년대 '자존감'이라는 개념이 미국 교육 현장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그리고, 뒤늦게 새로운 개념인 냥 우리 교육 현장을 배회하는 것을 보고 더 깜짝 놀랐다.  

g********m 2021.11.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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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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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7)   완벽주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    문화를 정의하는 격언 중 하나로, 원한다면 뭐든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신자유주의적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그저 꿈꾸고, 이 꿈에 마음을 쏟아붓고, 이를 몹시 원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내면화하여 자아의식에 편입시킨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이것은 완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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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7)

 

완벽주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

 

 문화를 정의하는 격언 중 하나로, 원한다면 뭐든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신자유주의적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그저 꿈꾸고, 이 꿈에 마음을 쏟아붓고, 이를 몹시 원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내면화하여 자아의식에 편입시킨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이것은 완벽주의 시대의 본질에 있는 거짓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수많은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한계가 있다. 불완전하다, 그리고 이는 어쩔 수 없다.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우리의 신경 연결은 자궁에서 나올 때 완성된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지의 핵심은 사실상 우리가 무력한 상태인 인생의 초기 단계에 설정된다. 생명 활동, 문화, 경험에 의해서 일부는 선천적으로 또 일부는 환경적으로 만들어진다. 내 성격이 정말로 어떤지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어서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기 시작할 때쯤에는 모든 것이 대부분 결정돼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절대 변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성장하고 원숙해지며 많은 것을 배우고 더욱 지혜로워지고 노련해진다. 외상적 사건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으며 개인적인 위기에서 회복되면 신경증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특징은 사라지게 된다. 우리의 완벽함 모델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충족시키느냐의 상당 부분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경적 메커니즘에 달려 있으며 우리는 이를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이 길고 경이로운 여정에서 내가 깨달은 가장 놀라운 것은 스토리텔링이 부족의 선전 활동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수렵 채집민이었던 조상들의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들에 대한 소문이 구성원들에게 호되게 얻어맞고 배척당하는 악당이 되기보다는 이타적인 영웅이 되라고 가르침으로써 부족을 지배하는 데 도움이 되었듯이,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메커니즘이 강력한 사회적 압력을 행사한다. 신자유주의적 이야기들은 이상적 자아의 형태가 있다고 은밀하게 우리를 설득한 다음 우리를 위해 이상적 자아를 정의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와 영웅을 내면에 흡수한다. 우리는 우리 부족의 이야기를 우리 이야기로 만든다. 우리는 이를 우리의 소문과 스토리텔링 속에 퍼지도록 하고 이 음모에 무의식적으로 가담한다. 그러고 나서 영웅이 되고자 노력한다. 너무 자주 우리는 실패한다. 바로 그때 위험한 완벽주의적 사고가 촉발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이 게임의 패자라고 판단하게 된다. 우리는 자기혐오를 느낀다. 심지어 이미 자살, 자해, 섭식 장애에 대한 끔찍한 통계에 수치를 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 것은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 속에서 자라났고, 당연히 상당 부분 그 문화가 될 수밖에 없다. 문화의 요구에 완전히 귀를 닫아버릴 수는 없다. 나의 어떤 부분은 항상 내가 친구가 더 많았으면, 더 부자였으면, 더 말랐으면, 더 매력적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완벽하다’는 것은 어떤 환상이고 부족의 선전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깊은 위안이 되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완벽함을 위한 전쟁을 막는 것은 단지 첫걸음일 뿐이다. 리틀 교수는 자신을 바꾸지 않고도 우리가 느끼는 방식을 바꾸는 방법을 설명한다.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우리가 가진 목표들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만약 자아가 이야기라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정말로 통제하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실제로 모두가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내 연구는 사실 우리가 상당 부분 문화 그 자체임을 암시했다(그렇게 길게 설명했던 모든 것이 문화 이야기였다)

 

 이 책의 저자 윌 스토가 주장하는 그의 말을 따라왔다. 많은 내용이었고 따라가면서 길을 잃기도 했다. 그래서 정리를 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정리한 것을 읽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내용을 요약하면서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뇌량 절제술(뇌 분리 수술)도 그중 하나다. 사진으로 보는 내 모습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왜 차이가 났는지를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지금도 가슴 설렌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익히 아는 것을 확인하고. 이 책을 접하는 모든 분들은 우리 뇌가 속이고, 우리 사회가 속인 우리의 자아을 제대로 이해했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다. 죽기를 원하는 생물은 없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자살을 하는 것은 특별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하기에 소중한 것이 아니라 특별하기에 이상한 현상인 것이다. 이상한 것을 치유하는 방법은 정확한 현실 인식 위에 터를 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정확한 현실 인식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믿는다. 새로운 정권이 만들 5년을 예측하고, 분석하고 대처하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우리 모든 인간의 행동은 자아가 시킨다고 믿는다. 이 자아가 무의식적이지 않고, 미신도 아니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달려가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책을 상기하라. 우리의 자아는 우리가 그렇게 자랑할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며, 믿을 만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 긴 글을 읽고, 저 긴 책 ‘셀피’를 읽는 용기를 가지길 희망한다.  

s*****m 2022.03.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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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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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6)   특별한 자아, 디지털 자아    바스콘셀로스가 지지한 자존감의 가치를 탐구하고 홍보하는 대책위원회는 자존감을 국제적인 대중문화 상품으로 만든 것에 상당한 책임이 있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그가 약속한 대로 우리를 구원하거나 어떤 사회적 문제들을 개선했다기보다는 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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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6)

 

특별한 자아, 디지털 자아

 

 바스콘셀로스가 지지한 자존감의 가치를 탐구하고 홍보하는 대책위원회는 자존감을 국제적인 대중문화 상품으로 만든 것에 상당한 책임이 있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그가 약속한 대로 우리를 구원하거나 어떤 사회적 문제들을 개선했다기보다는 극적인 역효과를 낳았다. 그 이유는 그 핵심이 거짓되었기 때문이었다. 1990년 초반 자존감 운동이 광란에 치달을 때 로이는 심리학의 해악에 관한 책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쩌면 공격성을 유발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는 것 때문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모든 게 끔찍하게도 잘못되어가는지도 모르죠” 1996년 로이는 ‘위기에 직면한 이기주의’가 공격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시사하는 문헌 연구 논문을 공동 집필했다. 이는 믿기 힘든 이론이었다. 그 당시 대중문화뿐 아니라 학계 또한 자존감 학설에 푹 빠져있었다. 자존감이 올라가면 성적도 올라간다는 것이 당시 그들의 주장이었지만, 로이는 “시간이 지나 사람들을 추적해보니, 성적이 먼저고 그다음이 자존감이었어요.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죠”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공허한 자존감 고양에 취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있다.      ‘나르시시스트’

 

 나르시시즘의 독특한 위험성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아니라 대개 높은 사람들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로이의 이론을 확인하기 위한 일련의 실험에서 처음으로 분명히 나타났다. 실험(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조하세요~~)에서는 놀랍게도 자존감이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혼란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참가자들 또한 다양한 성격 테스트를 받았는데 “나르시시즘은 심술궂은 높은 자존감인 듯합니다. 이는 아주 강력한 영향을 미쳤어요. 나르시시즘에 깊게 빠진 사람들이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화를 잘 내고 공격적이었어요.” “나르시시즘은 일종의 자존감 중독으로도 볼 수 있다”고 로이는 발표했다. “

 

 1999년 진 트웽이는 성격 검사에서, W.키스 캠벨은 나르시시즘적 행동에 대한 그의 연구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미국에서의 나르시시즘이 문화와 함께 변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르시시즘은 공격성. 물질주의.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 피상적인 가치관과 같이 미국인들이 자존감으로 예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을 야기한다. 높은 자존감, 자기표현, ‘자기애’를 찬양하는 사회를 건설하려고 하면서 미국인들은 무심코 더 많은 나르시시즘을 만들어냈다”고 트웽이와 캠벨은 발표했다. 완벽주의 시대가 우리 스스로를 실패자로 느끼게 하는 기회로 가득 차 있다면, 신자유주의의 부상과 금융위기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남긴 가혹한 경쟁 세계는 분명히 완벽주의 시대의 주역이다.

 

 완벽주의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 정부든 기업이든 간에 어떤 집단적인 유기체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개인의 어려움은 시민들을 돌보지 않은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 당신에게 기대되는 바를 충족하지 못한 당신의 잘못이라고. 만약 우리가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환경 속에서 실패 신호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자살과 자해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자아가 불안정해지는 위험에 처해진다.

 

 디지털 기술은 19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프로젝트를 대단히 촉진시키고 가속화시켰다.  미국에서는 좌파와 우파의 양극화가 1970년대 이후로 인정사정없이 심화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디지털 고치 속에서 우리에게 동의하면서 아첨하는 목소리에 둘러싸여 우리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에 더욱 확신하게 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는 더욱 멀어지게 되면서 그들을 이제 거의 파렴치하고 그릇된 악으로 보기 시작한다. 소셜미디어의 반향실 효과(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념이 미디어로 인해 폐쇄적으로 증폭되고 강화되는 현상)는 페이스북과 같은 사이트에서 널리 유통되는 허구의 기사로 인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완벽하며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렇다고 믿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대중화된 이후 몇 년간, 수많은 데이터는 나르시시즘이 대단히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자기 사랑 문화로부터 실리콘밸리 왕국의 혁신이 탄생했다. 셀카용 카메라다. 셀카 문화를 쉽사리 접하게 된 사람들은 물론 자존감 세대의 자녀들이었다.

s*****m 2022.03.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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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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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5)   나쁜 자아    서구의 자아에 나르시시즘이 충실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상적 자아는 이제 삶의 존속과 보호를 위해 장원 영주와 하늘에 계신 주님께 의지하지 않았다. 특히 절제와 영혼의 순수함과 같은 ‘극기’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기독교의 묵직한 영향력은 여전했지만,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과 출세는 이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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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5)

 

나쁜 자아

 

 서구의 자아에 나르시시즘이 충실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상적 자아는 이제 삶의 존속과 보호를 위해 장원 영주와 하늘에 계신 주님께 의지하지 않았다. 특히 절제와 영혼의 순수함과 같은 ‘극기’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기독교의 묵직한 영향력은 여전했지만,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과 출세는 이제 점점 더 개인에게 달려 있으며 부유해지고 지위를 높이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핵심은 성실성에서 명랑하고 매력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바뀌었다.

 

 칼 로저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윌 슈츠는 인간은 자신 안에 필요한 모든 기쁨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회가 이를 방해하며,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억압할 때 우리는 이 기쁨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슈츠에게 병과 사고를 포함하여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고통받는 자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들이 거짓된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연구(책을 참조하세요~) 결과를 보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핵심은 없고 사회의 억압적인 기대를 없애버림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본질적이고 행복하며 완벽한 버전의 자아도 없다. 사실, 자아는 모듈식이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에 대한 우리 감각은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자살 연구소의 로리가 사회적 완벽주의에 대해 말했던 것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들이 실제로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는 당신이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기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거울 자아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사회적 완벽주의자를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상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우리가 성공에 필요한 모든 힘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실패는 자연스럽게 우리 잘못이며 오직 우리 잘못이라는 말이 된다. 이는 오늘날의 완벽주의 시대부터 에설런의 윌 슈츠와 프리츠 펄스를 거쳐서 바로 다시 스미스 위글스워스와 메리 베이커 애디와 같이 19세기 미국의 신앙 치료자들과 마음 치료 주창자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잔인하고 협소한 사고방식이다.

 

 좌뇌 해설자(작화자)는 신경증적 완벽주의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실제 모습과 되어야 하는 모습 사이에 ‘심각한 차이’를 갖고 있는 걱정스럽고 불안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특정한 것에 효율적이지 않다면 전체 자아가 실패했다고 성급하게 일반화해버린다. 그리고 이어서 엄청난 자기혐오가 뒤따른다. 이것은 문제다. 사람들이 자살 충동을 느낄 때 이는 종종 자기혐오의 감정과 함께 오는데, 문화적 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완벽주의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고 실패 신호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면,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이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 한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방식이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를 몰아붙이는 침묵 속에서 그 수치심과 자기혐오가 자라난다. 내가 보기에 자기혐오는 우리 뇌의 영웅 만들기 능력에 결함이 생길 때 일어나게 되는 듯하다.

 

 에설런의 명시적 사명을 1980년대로, 정부 정책에 반영하고 전 세계로 퍼뜨리는 것을 도운 사람은 칼 로저스의 제자였으며 에설런 졸업생으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존 ‘바스코’, 바스콘셀로스였다.

 

 마가렛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신자유주의 이념을 현실에 통용시켰다.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1970년대의 경제 혼란을 종식시키는 것 그 이상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이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남들과 잘 지내고 출세를 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보다 환경에 더 걸맞고 더 똑똑하고 더 빠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나의 놀라운 힘을 두 배로 그리고 세 배로 늘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자존감 열풍이 도래한 것은 바로 이 병적인 개인주의 단계에 들어서면서였다.

s*****m 2022.03.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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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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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4)   부족으로서의 자아, 완벽할 수 있는 자아, 착한 자아    지난 글에서 자아가 어떻게 작용하여 생성되는가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연구결과를 인용하였다. 이제 저자는 뇌를 가진 인간의 지각 능력 외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위 양식을 말하는 문화적인 과정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21세기를 완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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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4)

 

부족으로서의 자아, 완벽할 수 있는 자아, 착한 자아

 

 지난 글에서 자아가 어떻게 작용하여 생성되는가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연구결과를 인용하였다. 이제 저자는 뇌를 가진 인간의 지각 능력 외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위 양식을 말하는 문화적인 과정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21세기를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자아라고 정리한다. 완벽주의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정리해본다.

 

 우리는 부족적이다. 우리는 지위와 서열에 집착한다. 이는 침팬지 무리와 마찬가지이다. 침팬지도 다른 부족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하나로 뭉치기는 인간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내집단에 편향되어 있으며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는 무의식적이다. 명성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신경 쓰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신경 쓰는 것은 인간의 커다란 관심사 중 하나다. 명성은 소문을 먹고 산다. 소문은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방법일 뿐 아니라 부족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다. 중요한 규칙을 어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강력한 도덕적 분개심을 일으켰을 것이고 이는 가혹한 처벌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자신이 성난 군중만큼이나 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이런 행동에 휩쓸릴 때 사실 그들은 잔인하고 원시적인 힘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천사인 줄 알지만, 사실은 유인원이다. 우리에게 실제로 ‘완벽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의 내리는 것은 대체로 우리 부족이다.

 

 개인주의는 고대 엘라다(그리스)에서 만들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물은 완벽함을 지향한다고 생각한 것이 이슬람 세계 사람들을 거쳐 유럽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우리 삶이 잠재된 완벽함을 향해 나아가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했다. 좌절을 겪을지라도, 우리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으며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두뇌는 우리가 이런 기분을 느끼도록 온갖 교활한 속임수를 쓴다. 심리학자 댄 매커덤스 교수는 우리는 ‘문화로부터 이야기를 도용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기른다, 우리 삶을 신화로 바꾸는 것이 ‘성인기의 모든 것’이다고 설명을 한다. 하지만 모든 문명화된 사람의 집단이 당연히, 속절없이 한 가지 이상향을 향해 몰려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경우는 유럽과는 달리 개인주의가 허용되지 않았다. 개인의 성공이 아닌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완벽주의 자아였다. 동양의 영웅은 악에 맞서 싸우고 진실이 승리하며 사랑이 모든 것을 정복하는 서양의 영웅에 관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희생하는 사람이며 가족과 지역사회, 나라를 보살피는 사람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모든 책은 다루는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나마나한 설명이지만 친절하다고 느낀다)

 

 고대 엘라다 세계(신 중심의 세계)의 몰락은 수년간의 분열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신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이 신의 신성한 대리자를 신뢰할 수 없어지면 인간의 운명이란 순전히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 유일한 결론일 듯하다. 만약 우리 운명이 이제 개인의 문제라면 이는 완벽의 추구를 내면의 일로 돌린다는 뜻이다.

 

 기독교는 결국 고대 세계의 몰락에서 비롯되었다. 기독교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지형을 형성하고 강화하면서 수 세기 동안 성행했다. 엘라다인들에게 있어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개인은 포상과 명성, 공동체의 은혜를 받기 위해 완벽해지고자 노력하는 이였다. 기독교인들은 그 투쟁을 이어받아 이를 내면으로 돌렸다. 이것은 내면의 자아를 더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 기도와 자기부정, 채찍질로 계속되는 싸움이었다. 기독교인들이 덧붙인 것은 내면성이었다. 15세기에 고대 엘라다와 로마의 사상은 마침내 서구 자아를 숨 막힐 듯한 공기 중으로부터 끄집어내기 시작한 르네상스를 겪었다. 현대 심리학 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본질적 견해는 사실 오직 관점의 변화로 여겨질 뿐이다. 인간은 여전히 악한 존재였다. 그들은 여전히 치료되어야 했다. 그 치료법은 여전히 출생과 동시에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된 내적 자아와 영원한 전쟁을 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정말로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성관계를 두려워하는 성 베네딕트의 세속적 재탄생이었을 뿐이다.

 

옥에 티를 찾아서 : 저자는 공자와 유비의 만남에 관해 썼다. 유비가 공자를 찾아온 것처럼 표현하였는데 불가능한 만남이다... 공자가 만난 유비는 내가 아는 유비가 아니고 누구였을까? 본문을 옮긴다.

‘한번은 자신을 찾아온 유비를 보지 않으려 꾀병을 부리고는 불쌍한 유비가 자리를 뜨자 거문고를 타며 다 들리게 노래를 불러 유비 자신이 모욕당한 것임을 알게 했다’(96쪽) 

여기서 자신은 공자를 말하는 것같다. 참고로

공자의 생멸시기는 BC551년 주의 제후국인 노나라에서 출생하고, BC479년 73세의 나

이로 사망하였다.

유비의 생멸시기는 161년 7월 9일 태어나 233년 6.10일 사망하였다. 향년 72세였다.

제갈량의 생멸시기는 181년 태어나 234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작가가 잘못 기억했거나, 김 교수가 잘못 알려준 것으로 추정된다.(아닐까?~인터넷 강호들의 검색이 필요하다!)

s*****m 2022.03.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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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 해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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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 해설자    다음은 가자니가 교수가 했던 유명한 실험이다. 분리 뇌 환자에게 오른쪽 시야(좌뇌)에는 닭발 그림을, 왼쪽 시야(우뇌)에는 눈이 많이 내린 장면을 보여주면서 여러 그림 중 관련 있는 그림들을 손으로 고르도록 했는데, 오른손(좌뇌)으로는 닭 머리 그림을, 왼손(우뇌)으로는 눈을 치우는 삽을 골랐다. 즉 좌우 각 뇌는 자신의 뇌로 들어온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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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 해설자

 

 다음은 가자니가 교수가 했던 유명한 실험이다. 분리 뇌 환자에게 오른쪽 시야(좌뇌)에는 닭발 그림을, 왼쪽 시야(우뇌)에는 눈이 많이 내린 장면을 보여주면서 여러 그림 중 관련 있는 그림들을 손으로 고르도록 했는데, 오른손(좌뇌)으로는 닭 머리 그림을, 왼손(우뇌)으로는 눈을 치우는 삽을 골랐다. 즉 좌우 각 뇌는 자신의 뇌로 들어온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관련된 그림을 고른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 그림을 골랐는지 물어보면 분리 뇌 환자의 말을 하는 좌뇌는 좌뇌로 들어온 정보에 대해서는 쉽게 이야기하지만(닭발이 보였으니까 닭 머리를 골랐습니다) 우뇌로 들어온 정보에 대해서는 좌뇌가 알 수 없어서 좌뇌는 다시 그럴듯한 이유를 말하게 된다. 가령 “닭장을 치우려면 삽이 필요하잖아요”와 같은. 비슷한 실험으로 분리 뇌 환자의 왼쪽 시야(우뇌)에 “웃어요”라는 단어를 보여주면 환자가 웃는 행동을 보이는데, 왜 웃냐고 물어보면 말을 하는 좌뇌는 그 단어를 봤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그냥 당신들이 대단한 것 같아서요. 하하” 우뇌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는 좌뇌는 이렇게 보이는 행동이나 사건들, 의식할 수 있는 맥락 정보 등을 이용해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을 해석하려 하고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화(作話)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본인도 이것이 작화인지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리 뇌 환자가 보이는 이러한 행동들이 다소 이상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뇌량으로 좌우 뇌가 정상적으로 소통하는 정상인이라 해도 뇌의 각 영역이 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과 도와주기 어렵다는 생각이 공존하고, 화를 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참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같은 사람 안에 여러 마음, 생각들이 있지만 이들이 서로 소통하며 상황에 따라 비교적 일관된 행동을 드러내는 것뿐이다. 더욱이 뇌량이 온전하다고 해도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해석하는 뇌 영역이 뇌의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정보처리를 모두 알 수는 없다. 의식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무의식적 학습이나 기억, 습관은 눈에 보이는 이유가 아닌 뇌에 저장된 정보에 의해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며, 단지 우리는 분리 뇌 환자의 작화처럼 이유 아닌 이유로 자신의 행동을 잘못 해석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이 두려운 이유, 누군가가 좋거나 혹은 싫은 이유, 뭔가를 하고 싶거나 혹은 하기 싫은 이유, 우리가 각자 의식적으로 열심히 생각하는 그 이유의 이면에는 과거 경험에 의해 구축된 단순한 뇌의 작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 아닌 이유로 작화를 계속하게 되면 거짓된 믿음이 공고화돼 스스로를 기만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용 끝)

 

 저자는 생물학, 신경과학, 신경외과 교수 로버트 새폴스키의 말을 소개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환상은 자아가 하는 일 중 아마 가장 중요하고도 기만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는 신경과학자인 소피 스콧 교수는 유전과 환경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한통속이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경이 우리를 정확히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그 위대한 의문이 해소된 것은 아니며, 우리는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고 소개한다.

 

 저자가 이렇게 자아를 생물학, 신경과학, 신경외과, 인지신경과학 등 자연과학적인 연구결과를 인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우리가 누구인지의 핵심은 사실상 우리가 무력한 상태인 인생의 초기 단계에 설정된다. 생명활동에 의해서 일부는 선천적으로 만들어진다. 내 성격이 정말로 어떤지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어서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는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기 시작할 때쯤에는 모든 것이 대부분 결정돼 있다. 우리의 완벽함 모델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충족시키느냐의 상당 부분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경적 메커니즘에 달려 있으며 우리는 이를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에 대한 인식과 수용을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인식하는 자아는 실상 좌뇌가 지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인용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 나면 간단하겠지만 아직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다. 뇌의 활동에 불과한 자아 이야기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양식을 뜻하는 문화는 인간의 자아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겠다. 나는 저자의 결론 부분을 제한적으로 소개했다는 것을 알린다. 그의 결론에서 문화에 대한 언급이 없을 수 없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그런데 글이 몽땅 남의 글이라 이걸 내놓아도 될지 걱정이다.

s*****m 2022.03.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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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자연과학에서 본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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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2)    자아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타날까? 자아의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  사회적 동물인 사람의 자아는 생물학적으로 자연발생적일까, 아님 사회문화적 사건들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자아는 문화 그 자체일까? 저자가 소개하는 이론들을 먼저 알아보자. 일단 동물인 우리들의 자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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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2)

 

 자아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타날까? 자아의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

 사회적 동물인 사람의 자아는 생물학적으로 자연발생적일까, 아님 사회문화적 사건들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자아는 문화 그 자체일까? 저자가 소개하는 이론들을 먼저 알아보자. 일단 동물인 우리들의 자의식, 자아는 어떤 과정을 통한 것일까에 대한 이론이다.

 

 저자는 인지신경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의 한 연구팀에 의한 ‘뇌 분리’ 수술에 의해 알려진 사실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보다는 더 쉬운 설명을 인터넷에서 찾았다. 이를 소개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여 옮긴다. 책을 이해하는 데 있어 오해를 일으킬 아무런 이유가 없다.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에서 인용한다. 별도의 인용부호는 생략한다.

 

 우리의 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뉘어 있고, 뇌의 좌반구는 우리 신체의 오른쪽을, 우반구는 신체의 왼쪽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오른손이나 오른발은 그곳을 담당하는 좌뇌의 특정부위가 제대로 작동해야 정상적으로 감각을 느끼고 움직일 수 있으며, 왼손이나 왼발 역시 그곳을 담당하는 우뇌의 특정 영역에 이상이 없어야 감각이나 운동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좌뇌와 우뇌 각각에 우리 신체의 감각과 운동을 담당하는 영역도 따로 있어서, 가령 좌뇌의 손 감각을 담당하는 영역이 손상되면 오른손 감각을 잃게 되고, 우뇌의 손 운동 영역이 손상되면 감각은 있어도 왼손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오른손을 좌뇌가 담당하고 있어도 우뇌 역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가 뇌량을 비롯한 신경섬유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만일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뇌량이 끊어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분리된 두 반구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면,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마음이 각기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 과거에는 간질이라고 불렀던 심한 뇌전증 환자에게 시술한 뇌량 절제술(뇌 분리 수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신경심리학자이자 인지신경과학자인 로저 스페리와 그의 제자인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가 많은 연구를 수행했고, 스페리 교수는 그 공로로 1981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연구 결과를 이해하려면 우선 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조금 더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 신체의 오른쪽을 좌뇌가 담당하고 왼쪽을 우뇌가 담당하는 것처럼, 우리의 시각 정보 역시 좌우가 교체돼 처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여러분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자신의 코(얼굴 중심)을 보고 있다면 거울에서 왼쪽에 비친 여러분의 얼굴의 모습은 우뇌로 들어가고 오른쪽 얼굴은 좌뇌로 들어간다. 참고로, 자신의 사진 얼굴은 우리가 늘 보는 자신의 거울 모습과는 좌우가 반전된 모습이기 때문에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오 마이 사이언스! 오 마이 사이언스는 박문호 박사가 과학적 사실을 보고는 놀라서 오 마이 갓!이 아니라 오 마이 사이언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진이 더 나아요, 사진보다 실물이 더 나아요 라는 말이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에 놀라서 하는 말이었다^^) 계속해서 인용한다. 대부분 우리의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은 완전히 대칭이 아니어서 거울에서 보는 나의 얼굴은 사진 속 얼굴과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의 좌뇌와 우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도 차이가 있어서 좌뇌는 자세한 모양에, 우뇌는 전체적인 형태 인식에 좀 더 특화돼 있다. 마치 우리의 우뇌는 숲을 보고 좌뇌는 나무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

 

 분리 뇌 환자 실험을 이해하기에 앞서 한 가지 더 알아야 하는 점은, 우리 마음의 여러 기능이 뇌의 영역에 따라 독립적으로 분화돼 있다는 점이다(브로카 영역, 베르니케 영역, 브로카 실어증, 베르니케 실어증 등에 대한 설명은 검색해서 보시기 바란다.)

s*****m 2022.03.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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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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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   죽어가는 자아.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할까? 작가 윌 스토는 이 책을 쓴 동기를 작가 주위에서 ‘지난 3년 동안 일상 속에서 일어난 4건의 자살’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책의 제목인 ‘셀피’가 무얼까? 다음 백과 검색을 해본다.   ‘셀피(Selfie)는 자화상을 뜻하는 ‘Self-Portrait’의 줄임말로 촬영자가 자기 자신을 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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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간

 

죽어가는 자아.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할까?

작가 윌 스토는 이 책을 쓴 동기를 작가 주위에서 ‘지난 3년 동안 일상 속에서 일어난 4건의 자살’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책의 제목인 ‘셀피’가 무얼까? 다음 백과 검색을 해본다.

 

‘셀피(Selfie)는 자화상을 뜻하는 ‘Self-Portrait’의 줄임말로 촬영자가 자기 자신을 찍은 사진을 말한다. 셀프 카메라(Self Camera)의 줄임말인 셀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신조어다. 최초의 셀피는 1839년 사진가 로버트 코넬료(Robert Cornelius)가 스스로 자신을 찍어 은판 사진으로 인화한 것이다.(검색하면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셀피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것은 2000년 이후부터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SNS 등에 자기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 등이 등장해 사진 촬영이 쉬워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13년 11월 옥스퍼드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은 셀피를 2013년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 2013)로 선정했다. 이후 셀피는 일상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다음 백과)

 

 스스로 찍은 사진은 자신의 자아를 나타내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스스로 인정하는 자신을 보이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일까? 사람들의 자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자기 자신의 의지와 신념, 성격이 만든 것일까? 사회적 환경인 문화가 조작한 것일까?

 

 작가가 말하는 셀피, 셀카 속의 자아는 왜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갔을까를 알아보는 과정을 정리한 책이다. 책의 끝에서 ‘언론인으로서, 나의 지식은 넓지만 얄팍하다.’고 고백하고도 있지만 나름 전문가의 자문도 구했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은 2차 자료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체계가 불완전하다.’고 하면서 ‘사회심리학적 발견에 많은 부분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더구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도 않으며,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시사인에서 매년 발행하는 ‘독서 리더가 뽑은 올해의 책’에서 발견한 책이다. 추천된 책을 구입하고 읽으면서 ‘괜히 읽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늘 지나치는 일상에서 관심을 두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책 읽기는 나름 의미가 있다. 우선은 세상일에 대하여 가능하다면, 많은 호기심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이다. 언뜻 쉽게 스쳐가는 세상일이라도 사람이 빠질 수 없다. 그 모든 이야기에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이야기를 듣지 않고 살 수가 없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것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호기심이 있어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충고다. 충고를 받으면 그 충고의 의미를 확인하고, 체화시키는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충고를 무시하고 살아봤더니, 많이 힘들지 않았던가. 당신의 충고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걸러내는 연습이 늘 그렇듯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쉽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또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직 이 책의 끝 두 장(chapter)은 읽지 않았다. 결론 부분일 것이 확실하다. 읽는 과정에서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려고 각 장을 정리하며 읽는 중이다. 그렇지만 먼저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이 책을 소개하는 의미에서 작가의 의도와 제목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글을 올린다.

 

 자아의 몰락은 자살이다. 셀피가 유행인 현실에서 셀피에 올린 많은 자아들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의미를 가졌고, 무엇 때문에 수많은 자아들이 자살을 선택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책으로 알고 읽는 중이다. 죽어가는 자아들에 대한 위로일 것 같다.

s*****m 2022.03.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