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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우주 끝에서 만나>에서, 인간의 욕망 끝이 닿은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간이 욕망 속에 숨겨진 선과 악의 야누스적 공생을, 선의든 악의든 인간이기에 갖는 감정이라고, 그 자체의 확인이 바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이 소설은 가상과 현실의 세계를, VR이란 매개를 통해서
에덴은 없어, 인간은 그런 곳에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냐, 사람들이 원하는 건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에덴이 아니라 각자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자기만의 에덴이야. 나는 그 에덴에 알파 에덴이라 이름을 붙였어. 블랙홀을 통과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설정했어.
블랙홀은 모든 것이 소멸하는 곳을 상징하는데 다르게 보면 다시 태어나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해. 개개인들의 욕망이 해체됐다가 새로운 욕망으로 태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말하자면 알파 에덴에 도착하기 위해 블랙홀이라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치는 거지(260쪽)
주인공 나는 현도, 원재와 미림 이렇게 조합, 어울리지 않지만, 이들 사이들 두고 긴장감이 돌기도 한다. 게임크리에티브, 이른바 게임개발자 원재, 그의 친구 박현도, 추미림은 부부가 됐다. 원재는 현도가 미림을 유혹해, 자기로부터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도가 끌리는 진정한 블랙홀은 원재였다. 원재였기에 미림을 통해서건, 직접적이든 그를 곁에 두려 했다. 블랙홀은 소멸인 동시에 새로 태어난 공간이란 바로 이런 의미인가…. 현도, 그의 또 다른 자아인 듯한 원재와 관계에서 뭘 느꼈을까?
아무튼 현도는 에덴 찾기 콘셉트로 VR 게임을 만들며, 개발자인 원재는 에덴 찾기 속에서 다시 블랙홀 게임을 만든다. 어린 시절 친구에서, 미림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게임사 사장과 개발자의 관계로…. 왔다 갔다 하는 의미는 무얼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감정일까, 이 역시 에덴? 블랙홀 조금 어렵다.
요즘 심심치 않게 TV에 등장하는 게임선전들처럼….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수 없는 경계 지점, VR(가상현실) 속에서 현도는 전사가 되고, 적들과 싸운다. 그리고 효과로 지진이 일어나면, 어지러움과 실제도 고통을 느끼는 듯,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게 게임시장 내놓을 것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블랙홀이라는 게임이 나온다. 에덴과 블랙홀은 카오스 인가, 카오스는 일정한 조건에서만 안정상태가 된다. 이 상태는 뭘까, 악의도 선의도 없는 그런 상태인가, 인간에게 이런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게 가능한가, 설사할 수 있더라도 얼마만큼. 어느 정도 가능할까? 라는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게임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우리는 에덴을 찾아 현실에서 벗어나려 하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규율에 복종하는 조건으로 선택된 자만이 갈 수 있는 에덴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작가는 촌철살인으로 허영과 현실 사회 질서의 왜곡을 단숨에 짚어낸다. 에덴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상이며 약한 자의 바람일 뿐이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인 존재이고 에덴은 수천 년 동안 개인들의 욕망으로 존재해 온 것이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주어지는 에덴은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에덴은 없다는 현실을 알기에….
VR을 통해서 내 심연을 봐야겠다는 현도, 블랙홀의 정면이 나를 노려본다. 그것이 뭔지 모르지만, 끝장을 보기 위해서는 내 심연의 블랙홀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너의 얼굴이 될지 나의 얼굴이 될지.
인간의 양면성을 천착하는 작가는 지긋이 그리고 아주 집요하게 선과 악을 번갈아 가면서 톺아본다. 들여다보려 한다. 현도와 원재의 마음속을, 아바타를 통해서 내 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불러낸다. 선인지 악인지도 모른 채, 때로는 선의로 때로는 악의로 드러나려는 감정들, 이 소설은 쉬운 듯 어렵게 느껴지게 하는 대목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에덴과 블랙홀로 정의되는 것들 사이로 비치는 현실 세계의 모습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소설을 읽는 재미란 그 자리에서 일순 끝까지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림을 그려가면서 따라가는 것인데, 아무래도 이미 따라가야 할 가상현실이 있고, 또 그 속에 들어가서 이를 그리면서 쫓아가기에는…. 조금 무리인 듯싶다.
<우주 끝에서 만나>는 결국 주인공인 나 현도, 그리고 또 다른 나처럼 여겼던 원재와 관계에서 자신을 본다. 어떤 인간이며, 무엇을 원하며 살아왔는지를….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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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는 자신의 직원이자 절친인 원재가 만든 블랙홀 게임에 갇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본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설정된 것 사이를 방황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산에서 원재가 현도를 잡아주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은 게임 속 경험 즉, 가상현실이다. 이러한 가상현실은 현도의 진짜 경험과 함께 그 속에 누적되어 현도에게 지금 여기의 현실처럼 반복된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가. 무의식 탐구라는 형태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 현도는 가족과 친구들,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여태 무엇을 쫓으며 살아왔는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교회 목사인 현도의 아버지는 죽어서 하느님 나라에 입주하기 위해 가족에게 무한한 희생을 강요하였다. 말이 희생이지 아버지 방식의 폭력이었다. 현도는 아버지의 법은 하느님의 법이 아니라 아버지 개인의 법이었기에 타당하지도 않고 그럴듯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에덴이 개인 욕망이 가닿고자 하는 그곳임을 눈치 챈 현도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아버지의 세계를 답습한다. 이를테면 현도는 고교시절부터 세상에는 두 개의 에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욕망을 쫓는 길과 이웃과 공동체와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진정한 에덴의 길. 아버지를 보면서 현도는 진정한 에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조소하였다. 그리하여 철저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달렸다. 사람들이, 사회가 아무리 선을 부르짖고 명분을 앞세워도 그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남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에덴에 몰두하는 사이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을 향해 직진하여 자신만의 에덴에 도착하려고 한다. 현도는 자신의 에덴을 구축하고 거기에 도착하기 위해 몰두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의 에덴을 욕망한다. 미림은 원래 절친인 원재와 연인관계였으나 현도는 원재의 불우한 처지를 이용해 그녀를 가로챈 뒤 결혼한다. 결혼생활은 행복할 수 없었고 이들은 곧 헤어진다. 하지만 현도에게 이 사건은 다음처럼 각인된다.
나는 원재한테서 뭔가를 박탈하고 싶었다. 그가 내게서 절반의 세계를 박탈했듯이.
이는 자신이 미림을 가질 수 없었던 탓을 원재에게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도에게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 세월이 흘러 현도는 사업을 시작하고 게임업계에서 자신만의 특징을 개발한 원재를 회사로 끌어들이지만 기존의 인연형태를 반복한다. 자신이 원재에게 그랬듯이 원재 역시 알파에덴을 좇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끝없이 현도를 괴롭히고 그 괴로움에 사로잡혀 감정적 파행을 겪는다. 여기서 현도가 생각하는 원재의 의도가 산출된다. 현도는 원재에게 지지 않기 위해 자이언트 대표의 제안을 계기로 원재가 개발한 게임을 넘기겠다고 선언한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즉 젊은 현도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원재가 욕망하는 대상을 가로챘는데 원재 역시 그러하리라는 굳센 가정에서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어차피 원재 역시 자기 욕망을 위해 매진할 텐데 뭐 하러 원재와 다른 사람을 배려하겠는가. 그것이 현도의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현도는 블랙홀 게임으로 들어가 그 안에 갇힌 채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가상현실 속에서 원재를 만난 현도는 원재가 자이언트의 책략을 미리 짐작하고 메인 프로그램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해두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블랙홀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도는 끝없이 원재의 욕망을 흉내 내면서 그를 의심하고 자신이 상처 받지 않으려고 원재를 파괴하고자 시도하지만 반대로 원재는 현도를 포함한 회사 즉 우정의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대비를 해두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이 소설에서 반전의 구실을 하게 된다. 현도는 과연 블랙홀을 통과할까. 그곳을 통과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진정한 에덴에 도달 가능한 것일까.
블랙홀은 다시 태어나는 장소다. 자기중심적인 에덴의 세계에서 타자적 세계로 나아가는 교차로인 셈이다. 타자가 법인 세계로 나아가려면 블랙홀을 견뎌야 한다. 거기서 스스로를 해체하고 분해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탈을 과감히 벗어던지지 않고서는 블랙홀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원재는 그렇게 에덴이 있음을 믿고 증명하며 그것을 현도에게 열어서 보여준다. 에덴이란 그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것이며 그 믿음대로 사는 것을 통해서만 에덴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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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안지숙 작가의 장편소설에서는 브이알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회사 사장인 현도는 에덴으로 가는 모험을 즐기면서 사람들의 구원 본능을 충족하는 게임인 에덴 어드벤처를 만들기 위해 애증관계로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친구 원재를 스카웃한다. 그리고 원재가 꼭 필요하다고 부른 사람들이 현도와 같이 살았다가 이혼한 여인 미림, 고등학교때 현도의 밀고로 학교에서 퇴학당했던 홍규 그리고 현도의 여동생 현서 등 심리적으로 융화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한가지 주제인 에덴 어드벤처를 위해 모인다. 현도는 어렸을 때부터 교당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에덴을 행복한 장소가 아닌 죽음의 장소로 그리는 등 자격지심과 반항심이 그 마음속에 깊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현도는 고등학교때부터 친구인 원재가 좋아했던 미림을 원재가 군대간 사이에 자기의 애인으로 만들어 결혼하면서 원재한테 갖고 있던 열등감을 해소한다. 그렇지만 현도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미림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하게 된다. 또한 현도는 브이알 게임의 후유증으로 과거와 현재가 복합되어 나타나고 이명현상이 나타나는 등 어떤 것이 현실인지 헛갈리는 상황이 지속된다. 심지어 에덴을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바꿔 블랙홀로 만든 원재를 옥상에서 밀어 죽게 만든다. 그러나 원재를 죽게 한 것은 상상속에서 이루어 진 일로 에필로그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 부모의 말과 행동이 자녀의 자아형성과 자존감형성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볼 수 있다. 앞으로 브이알게임이 많이 나오면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아 질 것이다. 또한 영화 ’매트릭스‘와 같이 가상현실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길 것이다. 휴대폰이 짧은 기간 급속도로 보급되어 지금은 웨어러블로 까지 발전한 것처럼 메타버스 세상도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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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와 원제는 ‘나’ 안에서 대립하며 마주보는 또 다른 ‘나’이며 감추어진 ‘나’이다. 무의식인 동시에 내밀한 욕구이며 실현되어야 할 꿈이다. 서로를 할퀴면서 떠나지 못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며, 내 속에 들러붙어 있는 이것은, 잠재적 욕망일까, 아니면 버려야 할 헛된 욕구이며 망상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VR게임을 통해 가상현실인 에덴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요즘의 화두인 메타버스에 탑승한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욕망 속에는 뭐가 감추어져 있을까. 그 욕망은 언제, 어디서 분출되어야 하고 허용되는가. 이 소설은 그 욕망의 선의와 악의, 양면성을 캐며 욕망하는 인간의 좌절과 슬픔을 함께 말하고 있다. 블랙홀, 알파에덴, 자아, 이 삼각형의 꼭지점을 모두 거느릴 때 우리는 진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를 알아야 하고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에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장을 들썩이게 하는 흥미진진한 부류의 소설은 아니지만, 자신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젖어들게 하는 책이며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특히, 이 단락을 읽다보면 밑바닥 심원의 고독으로 고통 받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관속에 누워있다. 관속에 누운 자세로 손을 가슴에 올리고 죽어있다. 나는 눈물을 흘린다. 버림받고 외롭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돋아난다. 가슴 안쪽에서 올라오는 슬픔이 손바닥에 전해진다. 나는 슬픔을 오롯이 받아낸 손바닥을 쳐든다. 나는 기다린다. 원재가 떠나고, 미림이 떠나고, 내 주변에는 오래도록 아무도 없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를 그립게 하는 것들이 손바닥에서 증발한다. 소금처럼 마른 슬픔의 까끌까끌한 알갱이가 살 속으로 파고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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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끝에서 만나>는 가상현실과 무의식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마블닷컴 사장인 현도는 게임 개발자인 원재가 개발한 블랙홀 게임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생의 여러 단면을 회상하고 성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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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나니 구원의 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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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은 박현도, 도원재, 추미림, 박현서(박현도의 여동생), 오홍규, 정미소, 강민주, 성용(성씨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탐욕스럽고 음흉한 자이언트 社 대표 등입니다. 박현도의 부친과 모친, 경비 아저씨도 잠깐 등장합니다. 아마도 가상세계, 혹은 현도의 꿈 속으로 여겨지는 프롤로그에서만 잠시 "박현도"로 3인칭화하고 소설 본문에서는 내내 "나"라는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입니다.
소설 속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여러 번 언급됩니다(p128 등 여러 곳). 박현도가 도원재를 자신의 데미안으로 여긴다는 암시, 아니 암시가 아니라 명시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도원재는 뭐랄까 더 자기 감정을 성숙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인격이며, 업무 능력도 더 뛰어납니다. 여기 등장인물들은 모두 게임 개발, 혹은 앱 개발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입니다. 박현도의 여동생인 현서는 전문계 고교를 나와 회계 쪽에 적성이 있는 인물인데도 오빠의 회사에서 게임 개발 업무를 (본연의 직분도 물론 하면서) 돕습니다.
p44를 보면 추미림이 자신의 경험을 박현도에게 털어놓는 대목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발레를 배웠는데 턴이 그렇게나 안 되더라는 겁니다. 이유는 미림 자신 생각으로, 더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웠고 아마 그때 몸에 힘이 들어가는 버릇이 이미 들어서라고 합니다. 이 말이 체육학적으로 맞고 그르고를 떠나, 일단 현도는 왜 미림이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지를 이해 못합니다.
p76부터 이십 여 쪽에 걸쳐 이어지는 이야기는 박현도의 어린시절에 대한 것입니다. 그의 부친은 원래 사업가였는데 무슨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느 교회의 열성 신도가 되었고 집사 일을 보다가 드디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열성은 가득했으나 그의 마음은 평온을 찾을 날이 없었고 가족들에겐 엄격 잔혹했으나 신도들 앞에서는 자애로운 인격을 전시하는, 일종의 정신분열증 환자로 보입니다. 마음이 평안치 못하고 잘못된 인격 설정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극심했을 테니 암에 걸린 게 이상하지 않고,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납니다. 20억을 받을 수도 있었던 건물과 부지를 어느 기독교 단체에 8억이란 헐값에 팝니다. 죽어서까지 가족에게 손해를 끼친 셈입니다. 이때 어린 현도에게 심어진 강박이, 그 실존이 의심되는 가상의 이상향인 에덴입니다. 소설 결말에 밝혀지지만 에덴은 사실 모든 시공간이 사멸하는 블랙홀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습니다. 생명과 죽음이 사실 동전의 양면이었듯 말입니다.
박현도에게 이런 어린 시절의 불쾌한 기억은 아마 어려서 태권도를 "잘못" 배워 몸에 힘 빼는 법을 잊었다는 미림의 체험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는 충분히 자신을 더 좋은 행동과 판단, 감정으로 유도할 능력이 있고 사리 판단이 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도원재와 엮이는 대목에서는 부도덕한 행동을 곧잘 합니다. 미림은 원래 도원재의 여자친구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미림을 놓고, 도원재의 복무 기간 중 유혹도 아니고 뭣도 아닌 이상한 액션으로 결국 결혼에까지 이릅니다. 명백하게 절친의 애인을 가로챈 파렴치한 행동으로서 자칫하면 뭐 칼부림이 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또 부도덕한 짓입니다. 미림을 그리 간절히 원하자도 않았기에 더 이상합니다. 어려서 그 부친에게 강요받았던 과시용 선행에 대한 반발감도 있고, 도원재에 대한 이런저런 열등감, 질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 <데미안>이 자주 언급되지만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는 박현도와 도원재의 관계와 별로 닮은 데가 없습니다. 물론 도원재가 외모, 지능, 인격 모든 면에서 박현도보다 나은 걸로 보이지만 그는 박현도를 patronize할 의도도 없고 남 일에 그리 개입하는 성향도 아닙니다. 적어도 데미안은 결코 도원재처럼 내향적인 성격이 아닙니다. 도원재가 거의 언제나 손해 보고 양보하고 이해하며 넘어가는 편이지만 박현도에게 어떤 우월적 지위를 점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호구 취급 당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박현도는 (그리 큰 필요가 없는데도) 비정상적으로 보냈던 어린 시절 사실상 "부친의 부재"에 대한 보상을 원했는지 친구 도원재에게 데미안 역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이처럼 함부로 하질 못했습니다. 감히 말이죠. 따라서 박현도가 하는 짓은 일종의 복수이며 물론 엉뚱한 상대를 잡아 부친 대용으로 쓰는 겁니다. 이게 일종의 "어렸을 때 잘못 배운 태권도"라고 하겠습니다. 힘을 얼마든지 빼고 잘 할 수 있는데도 심인성으로 그게 안 되는 거죠.
이해가 안 되는 건 추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2002년작 샘 레이미 연출 <스파이더맨>을 보면 메리 제인은 사실 모든 면에서 피터보다 우월한(우월했던) 해리를 좋아합니다. 잘생기도 돈도 많고 학교에서 인싸고... 메리 제인은 배우를 향한 꿈이 깨지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는 초라한 모습을 피터에게 들키면서도 끝까지 하는 말이 "해리한테는 말하지마"입니다. 그 말은 피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죠. 메리 제인은 자신의 진정한 내적 특성, 감정 등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외적 조건만 보고 해리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철저히 속물이고, 해리하고 끝까지 잘할 자신이 없어 일단은 피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비겁하기까지 합니다(초능력은 일단 나중 문제). 저는 이 소설 속의 추미림이 그 메리제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추미림은 처음부터 박현도를 거의 경멸하기까지 했지만 결혼을 그와 했고, 그런 결혼이 오래갈 리 없습니다. 나쁜 건 박현도도 마찬가지여서 원하지도 않은 채 남의 애인을 가로챘고 원나잇도 아닌 결혼까지 감행하여 퇴로 차단의 도장을 찍은데다 나중엔 대충 살다가 헤어지기까지 합니다. 남의 감을 찔러 터뜨린 후 먹지도 않고 버리는 심뽀입니다.
해리 오스본이나 데미안에 비길 건 아니지만(?) 도원재는 이미 업계에서 이름이 난, 능력 있는 개발자입니다. 박현도의 작은 스타트업 직원들도 그의 이름을 다 알 정도입니다. 박현도가 이런 작은 회사 하나 제대로 못 꾸려 가며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는 동안(이것도 그 부친을 닮았죠), 도원재는 특유의 능력을 잘 살려 얼마든지 큰 돈을 벌고 박현도의 회사 같은 것 정도야 여럿을 차릴 만한 그릇이 되건만 돈 벌고 출세하는 데 관심이 없어서인지 내내 알바 인생인 것 같습니다(오라는 데는 많지만). 친구 같지도 않은 녀석이 페이도 넉넉히 못 주면서 알바 뛰어 달라는 뻔뻔한 요청을 무슨 대의명분이나 지키는 양 넙죽 받아 열심히 합니다.
박현도는 참 우스운 게, 아직 벌어지지도 않았을 단계부터 누군가가 배신하여 자신의 에덴 프로젝트를 파국으로 몰고가리라는 의심에 빠집니다. 물론 그 일은 실제 벌어지기 직전까지 가긴 합니다만 박현도는 어떤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특유의 망상 강박으로 스스로를 들볶는 겁니다. 자신이 예전에 융통성 없이 군 덕에 구치소까지 갔다 온 오홍규(물론 이건 박현도를 비난할 게 아니며 그는 원칙대로 했을 뿐입니다. 만약 홍규를 봐줬으면 그도 공범으로 몰렸겠고 무엇보다 정미소에게 몹쓸 짓을 하는 거죠), 언젠가는 자신에게 복수를 할 것으로 의심되는 도원재 등을 의심합니다. 희한하게, 도원재를 의심하면서도 면전에서는 무척 관대하게 굽니다. 물론 자신의 원죄가 있어서이지만.
결말에는 반전이 있습니다(이 서평에서는 생략). 에덴이 알고보니 블랙홀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예수와 유다도 한몸인지 알 수 없는 게 우주의 섭리입니다.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입니까? 박스 안의 고양이는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한 길 사람 속을 모른다는 속담처럼, 어쩌면 모든 물리 방정식도 그 풀이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답이 없는 게 결국은 답"인지도 모릅니다. 배배꼬인 현도, 미림이 못지 않게 걔네들 버릇을 끝까지 안 고쳐 주고 방치하는 "가짜 데미안, 가짜 형(오빠)" 도원재도 멍청이이거나 위선자입니다. 아니 정말로 순수하고 착했던 건 주인공 박현도(와 그의 부친)인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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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현도에게 일어난 일, 에덴을 쫓아가는 광신 목사와 불쌍한 집안 식구들의 과거, 현도와 미림의 결혼 생활, 어린 시절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에덴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에덴을 가지고 싶었고, 동반자로 미림을 선택했지만 결국 미림은 떠나갔다. 현도는 평생 화두인 에덴을 주제로 한 브이알 게임을 만들기 위해 게임 제작사를 설립하고 원재를 불렀다. 원재는 고등학교 때 현도와 다투었던 홍규와 이혼한 미림을 차례로 불렀다. 서로 똘똘 뭉쳐 현도를 절벽 아래로 던져버린 것인지 모른다. 벼랑에서 떨어지면서 현도는 마음을 이루는 모든 것이 각설탕처럼 부서져 버렸지만, 사실 이미 오래전에 현도의 마음은 부서져 있었다.
소설이 절반 가까이 가는데 이상하게 꼬인다. 뭐지? 딴 세상인가? 아니면 여태껏 딴 세상이었나? 병원에서 퇴원해 구치소에 있는 원재를 면담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현도에게 이상한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평소처럼 원재가 개발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상의 세계를 오가면서 스토리가 진행된다.
언젠가 가상현실 게임 드라마에서도 스토리가 엉키는 혼란이 있었는데 이 소설도 똑같이 뒤엉켜 주인공 현도가 현실인지 가상인지 헷갈려하고 있다. 읽는 독자도 똑같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상황 파악하려 내달린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장치는 흥미진진했다. 머리말에서 혼란 중구난방에 양해를 구했지만, 주인공 현도의 무의식 세계처럼 혼란스러움은 우리의 알지 못하는 무의식 세계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알파 에덴을 찾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서로의 블랙홀이지."(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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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끝에서 만나’는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철학적인 소설이다. 솔직히 썩 잘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별로 친절하게 쓰여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현도’를 1인칭 화자로 진행하는 이 소설은 이야기에서 현도가 그러는 것처럼 독자를 좀 혼란스럽게 한다. 단지 이들 사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있을 것이라는 걸 넘어서 이게 대체 뭐지 싶은 생각이 들게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시점이나 환경의 변화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일부러 오해의 여지를 남긴 이런 구성은, 내용에서 뿐 아니라 소제목까지 일부는 그렇게 해논 걸 보면,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현도에게 한껏 이입해서 그와 함께 혼란스러워하라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의 회상을 통해 명백한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저자는 현재를 모호하게 그림으로써 현재와 과거도 뒤썩여 보이게끔 만들기도 했는데 이것이 주인공의 정신 상태와 더불어 소설을 좀 몽환적으로 읽히게도 한다. 이런 감상은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는데, 책 소개에서 전체적인 구성이나 배경을 어느정도 밝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좀 의아하기도 했다. 그런 효과를 의도한 거라면 책 소개에서도 감췄어야 하지 않나 싶고, 반대라면 굳이 그걸 생략하고 이런 구성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어서다. 소설이 외부에서 정보를 얻게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지도 않아서 뭔가 좀 어긋났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주인공이 과거에 겪었던 일이나 그가 벌였던 일들을 통해 인간의 선택과 욕망의 근원을 쫒고 그를 통해 일종의 구원을 그려내려는 것이나, 설정상으로 좀 이상한 면도 있으나 거기에 가상현실을 이용한 것도 꽤 흥미롭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