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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으로 이뤄지는 소멸의 한 복판에서 결국 사라지다... 오가와 요코, 은밀한 결정
"총체적으로 이뤄지는 소멸의 한 복판에서 결국 사라지다... 오가와 요코, 은밀한 결정" 내용보기
“새의 소멸도 다른 경우처럼,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일어났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 공기의 느낌이 미묘하게 까슬했다. 소멸의 신호다. 나는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주의깊게 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카디건을 걸치고 정원으로 나가보았다. 그때 작은 갈색 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새, 관측소에서 아버지랑 같이 본 적이 있었나? 그렇
"총체적으로 이뤄지는 소멸의 한 복판에서 결국 사라지다... 오가와 요코, 은밀한 결정" 내용보기

  “새의 소멸도 다른 경우처럼,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일어났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 공기의 느낌이 미묘하게 까슬했다. 소멸의 신호다. 나는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주의깊게 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카디건을 걸치고 정원으로 나가보았다. 그때 작은 갈색 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새, 관측소에서 아버지랑 같이 본 적이 있었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마음속에서 새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새라는 말의 의미도, 새에 대한 감정도, 새에 얽힌 기억도, 그 모든 것을.” (pp.13~14)


  소설은 어떤 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과 그 현상 속에서도 잘 멈춰지지 않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의 뒷면에서 ‘피 한 방울 없이 그려낸 고요한 디스토피아’라는 소설의 한 줄 요약을 발견하게 되는데, 책을 모두 읽고 나면 과연 그렇다, 라고 수긍하게 된다. 고립된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섬이라는 설정, 그리고 그 갇힌 곳에서 벌어지는 소멸은 그야말로 총체적이어서 무섭다. 


  “이제는 사진을 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요. 그립지도 않고, 가슴이 욱신거리지도 않아요. 그냥 반질반질한 종이 한 장일 뿐이에요. 마음에 구멍이 또하나 생긴 거죠. 그걸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은 아무도 몰라요. 소멸이란 그런 거예요... 마음에 새로 뚫린 구멍이 태우기를 원해요.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구멍인데, 이것만은 얼른 태우라고 아플 만큼 나를 몰아세워요. 모든 것이 재가 된 후에야 잠잠해지죠. 그때는 아마 사진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떠올리지 못할 거예요...” (p.125)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었다. 어머니는 집에 있는 지하 작업실에서 조각을 하였고 아버지는 들새 연구가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소멸에도 불구하고 소멸되지 않는 기억의 소유자였다. 많은 사람들은 섬에서 벌어지는 소멸이라는 현상에 따라 무언가를 잃는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그것들을 기억하고 또 원칙에 따라 그것들을 없애는 대신 보관하기도 하였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새의 소멸이 일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소멸을 순조롭고 완벽하게 적용하는 것, 불필요해진 기억을 신속히 없애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저의 업무입니다. 쓸모없는 기억을 언제까지고 끌어안고 있어봤자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엄지발가락이 괴사하면 당장 잘라내야 합니다. 내버려두면 발을 통째로 잃게 되죠. 그것과 똑같아요. 문제는 기억과 마음에는 형태가 없다는 점입니다. 각각의 인간이 혼자만의 비밀을 숨겨놓을 수 있다는 거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하는 셈이니 저희도 신중해야 합니다. 대단히 섬세한 작업이에요. 모습이 없는 비밀을 찾아내 분석하고, 선별하고, 처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쪽도 비밀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뭐, 그런 거예요.” (p.139)


  섬에는 또한 비밀 경찰들이 있다. 비밀 경찰들을 소멸에 따라 기억의 층위에서 사물들을 없애지 않는 자들을 색출하는 일을 한다. 나의 엄마는 비밀 경찰들에게 잡혀 갔고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의 소설을 편집하는 R씨를 집에 숨기기로 한다. R씨는 비밀 경찰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은 이후 소환에 응하는 대신 나의 집으로 왔다. 나는 알고 지내는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R씨의 공간을 집에 마련하였다.


  “기억 사냥으로 연행되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났다. 지금까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우리 세상에 섞여 있었지만, 왼다리가 소멸하자 더이상 속여넘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여태 은신처에 숨지 않고도 비밀 경찰을 피해서 몰래 평범한 생활을 영위해온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놀라웠다. 그들은 우리가 새롭게 적응한 미묘한 균형 감각을 도저히 흉내낼 수 없었다. 제딴은 아무리 잘 흉내내도 힘의 배분과 근육의 모양, 관절의 움직임이 어딘가 약간 달랐다. 비밀경찰은 한눈에 그 차이를 간파했다.” (p.339)


  소설에는 액자 형태의 또다른 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쓰는 소설인데, 그 소설의 주인공은 타자수와 타자를 가르친 선생 사이의 관계를 그려나가고 있다. 액자 소설의 분량은 조금씩 늘어나는데, 이러다 액자 소설이 액자 바깥의 소설을 집어 삼키는 것이 아닌가 긴장하였는데,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독지인 나는 오히려 그런 소설을 잠시 꿈꾸었다. 액자 소설이 결국 액자 밖의 소설과 자리를 바꾸게 되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왼손, 눈물이 고이는 눈, 눈물이 타고 흐르는 뺨이 차례로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목소리였다. 사람들은 윤곽을 지닌 존재를 모조리 잃었다. 목소리만 정처 없이 떠다녔다.” (pp.364~365) 


  소설이 출간된 것은 1994년이다. 이미 기후 위기는 시작되었고 멸종 위기 생물종이 언급되던 시기였다. 2021년이 되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소설에서 소멸되는 것은 향수, 리본, 모자 같은물건이기도 하고 새, 장미 같은 동식물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소설이 사라지고 종국에는 신체의 일부가 소멸하는 지경에 이른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것은 목소리였는데, 결국은 그 목소리마저 사라지고 만다.

 

오가와 요코 / 김은모 역 / 은밀한 결정 / 문학동네 / 367쪽 / 2021 (1994)

 

  ps. 바야흐로 대선 정국이다. 녹색당의 후보로 서울 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던 페미니스트가 원자력 발전소의 유지yuji를 주장하고 일베와 어울리는 당대표를 두고 있는 당의 대선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외곽 조직에 들어가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런가하면 그냥 보면 조폭 같은데 만나면 조폭 같지 않다고 알려진 바로 그 대선 후보는 이미 사용되지도 않는 ‘영부인’이라는 단어를 억지로 끄집어내어 소멸을 주장했다. 현실이 이러니 재미있는 소설 발견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재미있는 소설 쓰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싶기도 하고...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21.12.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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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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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이 추천해서 읽게 된 책인데 작가를 보니 낯이 익다. 알고보니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집필했던 작가였다. 사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긴 했지만 개인적인 취향과는 먼 기억이 있어서 이번 작품이 잘 맞을지 걱정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제약된 환경 속에서 소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인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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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이 추천해서 읽게 된 책인데 작가를 보니 낯이 익다. 알고보니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집필했던 작가였다. 사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긴 했지만 개인적인 취향과는 먼 기억이 있어서 이번 작품이 잘 맞을지 걱정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제약된 환경 속에서 소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인지.. 참 독특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 주변 부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이 소멸이라면 사람하는 현상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평범하지 않은 주제와 글 모두 마음에 든다.

m******r 2022.11.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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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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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요코 초기작.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랑 문체는 비슷한데 다르다. 처음엔 그저그랬는데 두번째는 엄청 재밌게 읽었다. 이런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소멸'하고 있던 시대를 그려내려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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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요코 초기작.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랑 문체는 비슷한데 다르다. 처음엔 그저그랬는데 두번째는 엄청 재밌게 읽었다. 이런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소멸'하고 있던 시대를 그려내려 했던 걸까 

YES마니아 : 로얄 n*****4 2026.06.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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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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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멸망을 다룬 에스에프는 많다. 재난 이후를 다룬 포스트 아포칼립스물도, 세상이 한창 망해가는 아포칼립스 환경을 묘사한 소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의 멸망은 극렬하고 치열하며 처절하다. 하지만 은밀한 결정의 멸망은 그렇지 않다. 아주 고요하고 차분하다. 잃어 버렸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상황에서 겪어내야 하는 멸망은 참혹하다라고 표현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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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멸망을 다룬 에스에프는 많다.

재난 이후를 다룬 포스트 아포칼립스물도, 세상이 한창 망해가는 아포칼립스 환경을 묘사한 소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의 멸망은 극렬하고 치열하며 처절하다.

하지만 은밀한 결정의 멸망은 그렇지 않다. 아주 고요하고 차분하다. 잃어 버렸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상황에서 겪어내야 하는 멸망은 참혹하다라고 표현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잠잠하다.

장미를 잃어버리고 언어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직조된 세상은 차갑고 서늘하며 아무것도 없다.

z*****7 2023.1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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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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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요코 작가의 은밀한 결정은 계속하여 무언가의 존재가 지워지는 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성찰이 담긴 소설입니다. 은밀한 결정이라는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알고 나면 도저히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흥미로운 설정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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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요코 작가의 은밀한 결정은 계속하여 무언가의 존재가 지워지는 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성찰이 담긴 소설입니다. 은밀한 결정이라는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알고 나면 도저히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흥미로운 설정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오랜 기간 베일에 싸여있던 비밀에 점차 가까워지게 되면서 주인공이 겪게 되는 여러 감정들 또한 아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던 부분이 이 작품의 백미라고 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는데요. 그 결말 또한 꽤나 놀라웠던 만큼 오가와 요코 작가의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은밀한 결정을 통하여 첫 만남을 가져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r*********s 2023.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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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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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출판된 오가와 요코 작가님의 은밀한 결정 리뷰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때 결정이 결정하다의 결정인줄 알았는데, 그 결정이 아니었다는걸 금방 알게됐다.  기억을 뺏는 경찰 즉 기억=결정으로 치환 될 수 있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를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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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출판된 오가와 요코 작가님의 은밀한 결정 리뷰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때 결정이 결정하다의 결정인줄 알았는데, 그 결정이 아니었다는걸 금방 알게됐다. 

기억을 뺏는 경찰 즉 기억=결정으로 치환 될 수 있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를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거 같은 소설들은 번역된 책으로 읽는걸 좋아하지만,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r****a 2022.03.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