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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인간의 욕심의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우려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것처럼 광고하고 있습니다.
제이슨 힉켈의 글의 제목이기도 한 이 글이 '성장'과 '환경'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보편적 근로소득'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대안적 쾌락주의는 모든 것을 참으라고 하는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이에 대한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노동 분야에 대해서도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을 보면서 계속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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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20년 안에 삶의 기준도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었다. 우리가 노동에 쏟아붓는 시간은 또 다른 소비를 하기 위한 투자다. 이런 삶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쾌락적 소비활동은 이제 멈춰야 한다고 마음으로 소리친다. 요 몇 년간 독립 후 삶의 주요 화두는 지속 가능한 삶과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 경제 불평등과 불안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생각보다 내 삶을 간소하게 줄여나가고 싶었다.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시장에 맞서 지혜롭고 계획적인 소비를 하고 싶었다. 경제 성장과 삶의 질 향상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데 행복의 개념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움직일 때마다 돈이 든다는 걸 알고 있다. 더 적게 소비해도 삶을 풍성하게 꾸려갈 수 있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불확실함이 우리들의 발목을 잡아 소비지향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에 의미를 두며 우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자. 생각해 보면 삶이 단순해질수록 마음에 주는 안정감이 크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가 많다. 그 어느 시대보다 훨씬 풍요롭고 잘 살고 있는데 삶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지구를 살리고자 한다면 소비에 관한 사고방식 자체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나친 소비를 이끄는 광고나 충동구매에 휩쓸리지 말아야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고도로 성장한 사회일수록 기존과 다른 삶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확실한 건 소비를 위한 소비는 지속 가능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느린 삶과 물건 없이 살고 자급자족하기는 공유 경제시장을 활성화시켰다. 직접적으로 내가 소유하는 물건을 줄이는 대신 자급자족하며 함께 공유한다면 소비는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급진적인 메시지로 들릴 수도 있고 현재 우리 삶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렇다면 지구도 살리고 자원도 지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친환경 소비 욕구를 반영하듯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면 우린 없는 것보다 너무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새로운 걸 찾는 버릇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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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한계'에 대한 경고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탈성장'과 '성장 이후'를 부르짖어야 할 마당에 여전히 '성장' 운운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있다. 시대착오적 어리석음의 극치다. 성장과 번영을 중시하는 '풍요사회' 이데올로기의 소비형태는 지구 환경과 생태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쳤다. 치명적인 파국을 피하려면, 번영과 행복에 관한 기존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그 패러다임 변화의 행동 주축은 소비형태의 변화가 되어야 한다. 기존의 물신적인 소비주의적 생활방식은 탄소 배출가스, 대기오염, 플라스틱 쓰레기 같은 최근의 기후변화와 환경위기에 책임이 막중하다. 일련의 생태 위기와 빈부격차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그리고 재생산 고리의 악순환이 불러일으킨 전지구적 위험 사태다. '인류세'라는 지질시대 용어가 바로 그런 인류의 도덕적 책임감을 역설하고 있다. 인류세는 인간이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해 자연환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칭하는 지질시대를 말한다.
진보 철학자 케이트 소퍼는 소비주의가 건강과 행복에 미치는 여러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면서, '대안적 쾌락주의'의 관점에서 소비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지구별의 녹색 르네상스를 회복하기 위해서 소비자 주체가 소비 패턴을 혁신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속가능한 삶과 환경을 위한 대안적 소비에 '쾌락주의'라는 표현을 애써 갖다 붙인 것은 더 적게 소비하고 더 많이 공유하는 '대안적 즐거움'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대안적 쾌락주의는 최첨단 기술 유토피아와도 거리가 멀고, 자연으로 회귀하라는 비성찰적인 복고와도 거리가 멀다.
"나는 좌파 정당과 사회운동 세력의 주장이나 전망과 연결되고, 동시에 재화와 서비스와 전문 지식을 공유, 재활용, 교환하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주류인 시장 공급을 우회하려는 다양한 계획들과도 관련되며, 행복에 관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 또는 개념을 유도하는 자극제로 '대안적 쾌락주의'를 제시한다."(15쪽)
신자유주의는 성장 중심의 진보와 번영을 달콤한 선전물로 삼아 소비자들이 상품화된 경험과 행복을 구매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게끔 유혹하고 세뇌한다. 그런데 이런 성장 지향, 번영 지향의 소비 패턴은 생태적 재난에 책임이 크다. 물신경제의 소비는 마치 소금물처럼 진정한 해갈이 되지 못하고 그저 소비의 갈증과 욕망을 부채질할 뿐이다. 한편, 소비주의 생활방식에 비판적인 진보적 주체, 즉 대안적 쾌락주의자는 대량소비, 고가의 소비와 행복을 연결 짓는 낡은 개념을 바꾸고 더 적게 소비함으로써 더 많은 쾌락을 얻는다. 노동 중심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판단을 하고, 개인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유익함에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저자는 삶의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누리는 이런 대안적 쾌락주의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창출하는 데 필요불가결하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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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속가능한 삶과 환경을 위한 '대안적 소비'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책 『성장 이후의 삶』이다. 불안한 즐거움, 불가능한 만족, 끝없는 노동을 부르는 소비의 고리를 끊고 이제, '다른 즐거움'을 사라는 것이다. 하긴 우리는 더 큰 소비가 더 큰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데도, 항상 무언가 부족한 것 같고 더 있어야 행복할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살아가긴 한다.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이 책의 저자 케이트 소퍼는 소비 수준과 삶의 질을 연결 짓는 행복의 낡은 개념에서 벗어나, 더 적게 소비하고 더 풍성하게 누리는 '대안적 쾌락주의'를 제안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성장 이후의 삶》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케이트 소퍼.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 철학과 명예 교수. 환경철학, 욕구 이론과 소비에 관해 폭넓은 사유와 독창성으로 다양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글들을 써왔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의 주요 관심사는 풍요 사회의 소비 형태와 그 변화 가능성,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세계 질서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영향력이다. (6쪽)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된다. 여는 글로 시작하여, 1장 '생각을 전환하라', 2장 '왜, 지금 '대안적 쾌락주의'인가?', 3장 '끝없는 소비의 불안한 즐거움', 4장 '노동의 종말, 그 이후', 5장 '대안적 쾌락주의의 상상력, '다른 즐거움'', 6장 ''번영'이란 무엇인가?', 7장 '녹색 르네상스를 향하여'로 이어지며, 감사의 글, 주, 찾아보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런 책은 마음이 불편할 각오를 하고 읽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무언가 하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환경파괴에 일조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지나치게 노동 중심적이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시간에 쫓기고 물질에 매인 오늘날의 풍요가 행복을 더해준다는 전제에 대해 우리는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7쪽)라고 말이다. 이 책의 주요 목적은 소비주의 이후(궁극적으로는 성장 이후)의 생활방식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그런 생활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환경적, 윤리적 근거를 강화하는 것이다. (10쪽, 여는 글 중에서)
때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살면서 미처 생각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하고 조목조목 짚어줄 때 그제야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기도 한다.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한다. 지금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우리의 현실을 하나씩 짚어보도록 도움을 준다. 소비주의적 사회는 우리가 과도하게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상품과 상품화된 경험을 구매하려는 태도에 의존한다. 이런 상품 구매는 과도한 노동과 생산 때문에 빼앗긴, 더 다양하고 풍성하며 오래 지속되는 만족을 대체한다. (76쪽)
"생태 위기와 관련해 '너무 뜨거워서' 다루기 곤란한 분야가 '소비'이다. 케이트 소퍼는 이 주제를 선택해 특유의 치밀함으로 고찰한 다음, 더 적게 소비할수록 삶은 더 풍성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소비가 곧 즐거움이라는 착각을 조용히 깨면서 우리가 상품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충동과 욕구에서 자유로워지는지 보여준다. 누구는 과학기술을 숭배하며 우리가 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지만, 어떤 이는 한계와 즐거움에 주목하며 케이트 소퍼를 읽는다. _안드레아스 말름, 《이 폭풍의 진로》 저자
이 책은 지속가능한 삶과 환경을 위한 '대안적 소비'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쩌면 우리는 심각한 문제 앞에서 무감각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 자체를 인식하기는 하더라도 외면하고 싶고, 다른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뒤로 미뤄두게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삶의 태도와 소비 방식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었다면 더더욱 이 책의 경고를 흘려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 때가 때이니만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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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소퍼 저의 『성장 이후의 삶』 을 읽고 나의 나이가 60대 후반이다 보니 이제는 인생 후반에 들어서고 있다. 자연스럽게 생각이나 행동이 여유로움과 함께 건강을 위한 자연으로 복귀 등 예전의 삶들이 자꾸 그리워진다. 그 이유가 뭘까 가끔 생각해볼 때가 있다. 나 자신이 낳아 자랄 때는 전반적으로 아직 사회 경제적으로 오늘날과 같이 아주 복잡하고 치열한 경쟁과 함께 심각해진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도 별로 모르면서 그저 순박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연과 함께 하면서 생활하였다. 농촌에서는 서로 돕고 돕는 상호 협력을 통해 일을 해결하는 아름다운 미덕을 갖고 있었고, 대개는 부는 아닐지라도 자급자족적인 생산과 소비를 통해 생활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는 대기업 중심으로 급격하게 성장해왔지만, 이에 따른 부산물로 노동 착취는 늘어나고 빈부 격차는 심화되었다. 세계의 부는 소수에 집중되고 있으며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구축해놓은 행복의 개념을 숙고하지 않고는 우리 삶 전체를 파괴하는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누구나가 공감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삶과 환경을 위한‘대안적 소비’에 관하여 저자는 이 책에서 실생활의 최전선에서 우리 사회의 당면한 문제를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인 대안적 소비와 쾌락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쾌락과 소비를 포기하지 말고 그 형태를 바꿈으로써 삶의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누리는 ‘대안적 소비’‘대안적 쾌락주의자’가 되라고 권한다. 얼마 되지 않았다. 서울 딸집에 갔다가 광주로 오면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통해 오게 되었다. 서해안에 면해 있는 경기도 평택 안성 서산 예산 군산을 거쳐 내려오는 길인데 미세먼지로 가득 하늘이 뿌옇게 쌓여 있어 마치 컴컴하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푸른 하늘의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미세 먼지 범람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중국과 가깝기 때문에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는 ... 지속적 성장을 숭배하면서 값싼 일회용품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것은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미래 세대마저 위협한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성장의 결과로 공장에서 뿜어대는 매연이고, 생산품을 사대는 소비의 결과이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번영과 행복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실천 방향을 결정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는 이유이다. 몇 사람만이 생각하고 행동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동참하여 이제 더 적게 소비하고 더 많이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현명하고 주체적인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은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한 온갖 미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지금부터는 기업에 끌려가는 소비자가 아니라 진정한 필요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고 자급하며, 효율적인 소비가 주는 고유한 즐거움을 누리는 주체적인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 유토피아를 넘어 녹색 르네상스를 향하여!’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턴 대학교 철학고 명예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실생활의 최전선에서 우리 사회의 당면한 문제를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쾌락을 포기하지 말고 소비의 형태를 바꿈으로써 삶의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누리는 ‘대안적 쾌락주의자’가 되라고 권한다. 대안적 쾌락주의자는 대량소비, 고가의 소비와 행복을 연결 짓는 낡은 개념을 바꾸고, 더 적게 소비함으로써 더 많은 쾌락을 얻는는 것을 말한다. 노동 중심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판단을 하고, 개인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유익함에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일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노동하고 물건을 제작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보람을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발달한 물질문명이 앗아간 우리 고유한 삶의 즐거움이 하루빨리 회복되어 어릴 때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활동에 동참하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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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삶과 환경을 위한 ‘대안적 소비’에 관하여
한문화에서 출판한 케이트 쇼퍼 교수의 <성장 이후의 삶>은 “불안한 즐거움, 불가능한 만족, 끝없는 노동을 부르는 소비의 고리를 끊고 이제는 ‘다른 즐거움’을 사라”고 주문한다.
일전에 김누리 교수의 강의에서 독일인이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해외여행을 가는 걸 부끄럽게 여긴다.”라는 말을 듣고 의아함을 느꼈다. 대한민국은 비행기로 해외여행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독일은 이웃 국가와 육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비행기를 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지 생각이 맴돌았다. 비행기 타는 걸 좋아하는 개인적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Photo by Johan Van Wambeke on Unsplash
비행기는 자본주의 소비를 상징한다. 비행하는데 많은 연료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비행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우리가 당연하게 일상에서 하는 ‘소비’를 돌아볼 시점이라고 케이트 쇼퍼 교수는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지속적인 생산이 이루어져야 하고, 생산된 물품은 끊임없이 소비되어야 한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이고 최선의 경제체제라는데 이견은 없지만, 우리가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 속도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경제 성장은 빈부의 격차, 불평등의 문제를 수반하고 생산 과정에서 훼손한 환경 오염은 몇 해 전부터 기상 이변으로 인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시점인 2018년, 심각한 기상 이변에 대해 경고했다면 이는 현실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Photo by Kevin Woblick on Unsplash 쇼퍼 교수는 풍요 사회의 소비 형태와 변화 가능성, 지속 가능한 세계 질서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6쪽) 우리는 정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 장시간의 매우 지루한 노동을 하고, 이를 ‘좋은 삶’으로 여겨 아이들에게도 소비하는 삶을 준비시킨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물질적 풍요에 내포된 부정적 요소들과 그것들이 부정하거나 없애버리는 즐거움을 숙고하는 ‘대안적 쾌락주의 관점’을 돌아봐야 할 때다.
소비를 줄이고 공유를 선택하며 소비에서 찾는 만족을 대신하는 새로운 만족을 찾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개인이 늘어간다면 우리가 번영이라고 부르는 경제 성장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좋은 삶’이라는 지배적이고 부유한 모델은 사회적으로 노동을 착취할 뿐 아니라 생태적으로 매우 해롭다. 또한 소비자들에게도 부작용을 유발하여 그 위상이 점차 흔들리고 있다. (73쪽) 새로운 물건을 구매해도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지 않으며,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소비는 끝이 없는 경주를 펼치는 것과 같다.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생산의 중요성은 자동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노동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약해졌지만, 개인은 인간의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고 소비생활을 한다. 기존의 소비패턴에서 벗어다 대안적 소비를 실행하면 우리는 노동 시간을 줄이고 여유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는 쇼퍼 교수의 주장은 <성장 이후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Photo by Ivars Utin?ns on Unsplash
쇼퍼 교수는 대안적 쾌락주의를 추구해야 할 것을 제안하며, 성장 중심의 소비가 강요하는 소비 생활방식이 아닌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친환경적인 소비를 강조한다. 노동 시스템에 관해서도 ‘시간의 풍요’를 위해 노동 시간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다운시프팅’을 강조한다. 공공 공간의 행복을 위해 도시에서 항공 여행과 자동차를 감축하고 자전거와 걷기를 권장하는 변화를 추구한다. 장거리 여행 대신 지방 도시와 농촌 지역에 더 쉽고 안전하게 접근하는 생활방식이 중요하다.
<성장 이후의 삶>은 소비 지향적인 사회에 매몰된 현대인에게 생각의 변화로 우리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성장이후의삶 #케이트소퍼 #안종희 #한문화 #지속가능한성장 #대안적소비 #책좋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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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책이었다.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에 관련해서 좀 더 나은 소비를 위한 대안을 제시해 주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용은 조금 더 심오하게 다루고 있다.
책에서 패스트패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한때는 나도 정말 그 패스트패션에 정신 못 차리고 소비를 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옷을 사는 소비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가지고 있는 옷에 완전한 만족을 못 하는 소비자다. 불안한 즐거움, 불가능한 만족, 끝없는 노동을 부르는 소비의 고리를 끊고 이제, '다른 즐거움'을 사라는 메시지가 가장 끌리기도 했다.
그리고 반성을 하게 되는 내용들을 만났다. '패스트'패션 산업의 경우 거의 대부분은 내구성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보다는 몇 번 입은 후 버릴 계획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신발과 의류의 패션 라인은 일 년에 몇 차례 바뀌고, 그 결과 많은 의류는 사실상 일회용으로 한두 번 입은 뒤 버려진다. 미국의 보통 소비자들은 1991년에서 2006년 사이 매년 구입하는 의류가 34.7개에서 68개로 거의 두 배 증가했다(5일 또는 6일마다 무언가를 구입한 셈이다). 영국의 경우 한 번도 입지 않고 옷장에 걸린 300억 파운드의 옷, 달리 말하면 1,100만 개의 옷이 매주 매립지로 간다. 전 세계적으로는 매년 1,000억 개의 옷이 생산되며 의류 회사는 초과 생산된 제품을 소각장으로 보낸다.
매년 입을 옷이 왜 없었을까 생각해 보면 조금씩 디자인이 바뀐다. 그래서인지 기존에 있던 옷들이 조금만 유행했던 디자인이면 다음 해에는 입기가 꺼려졌다. 다행히도 지금은 무난하게 오래 입는 옷 위주로 구매를 하지만 20대에는 매일 의류 관련 쇼핑몰만 봤던 것 같다. 그런데 버려지는 옷의 양을 알고나니 유행을 따르려고 구매했던 그 수많은 옷들이 생각나며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42페이지에서 "우리는 중국의 배출가스에 대해 중국 노동자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생산한 값싼 상품을 기꺼이 소비하는 전 세계의 모든 사회계층을 비난한 것이 옳다."라는 내용을 읽으며 한편으로 이 값싼 상품들이 사람들에게 소비되지 않는다면 이 상품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소비를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값싼 상품이 나온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생산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값싼 제품에 소비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저자가 말하는 것을 다시 한번 보면 환경 위기가 기술적 수단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부유한 사회들이 생활, 노동, 소비의 방식을 대폭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노동과 돈벌이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더 많은 여유시간을 누리며, 자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하고, 더 천천히 여행하고, 더 적게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즐거움을 얻자는 것 같다. 소비 형태가 변하면 생활방식이 발전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는다고 하며 그저 소비를 줄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7장 '녹색 르네상스를 향하여'에서 정당 정치, 정치인, 국가 주도의 선도적인 계획의 잠재적 역할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일상적인 소비자로서 개인의 역할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람들의 소비 습관에 따른 환경적 낭비를 비판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제1세계의 풍요가 기후변화를 통해 지구의 다른 빈곤한 지역과 모든 미래 세대에 미치는 피해를 고려할 때 낭비와 오염을 유발하는 방식의 개인적 소비를 비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하며,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을 우려한다면, 풍요로운 사회의 노동, 소비, 즐거움, 자기실현에 관한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니 '물질문명이 앗아간 고유한 삶의 즐거움에 주목하라'라는 문장이 책의 메시지가 더욱 와닿는다. 미래를 위해 성장과 소비의 개념을 바꾸자는 저자의 오랜 연구를 집약해서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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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뜨끔하게 맵더니, 시작부터 케이트 소퍼의 단호함에 압도당한다. 지금까지 늘 성장, 발전, 목표, 비전 등으로 계획은 세워봤어도 그 이후 남겨진 나의 시간과 삶은 고백컨대 가늠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시각이고 어색한 탐색 과정이다. 그 정체를 파헤치기 전에 저자를 이해해야 했기에 검색에 들어갔다. 1943년생 영국 철학자로 마르크스주의와 요구 이론이라는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었다. 소비 이론과 환경철학에 기여도가 있다고 하니 책의 말 해주는 방향이 조금 그려지는 듯하다.(위키피아 참조)
나는 현재 한살림 조합을 이용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참여하고 싶은 숲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한살림 조합원만 이용 가능했기에 숲놀이 체험을 위해 가입을 했다. 가입을 하고도 1년 동안은 구매는커녕 매장 근처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던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먹거리를 선택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나는 한살림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를 하고 있었다. 종내에 주식회사가 되거나 일련의 사건사고 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런 조합이라는 단체에 처음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다.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이용한 또 다른 형태의 소비구조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나의 지난날의 사고방식은 책을 읽고 보니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태어나 사회주의의 붕괴를 목격했으며, 이후 한낱 의심 없이 쏟아져오는 서구 문명의 물결을 고스란히 타고 신자유주의체제 속에서 그저 다른 노동자들의 착취를 가엽게 여기는 또 다른 노동자로 살아왔다. 나의 노동력은 값진 열정이라 여기며, 내 삶이 나아가는 방향의 주체성에 대해 한치의 의심 없이 말이다.
공정과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 요즘, 경제가 요구하는 것과 인간적으로 가치 있는 삶 사이의 모순 속에서 늘어나는 파이어족(40대 조기 은퇴를 선택하는 사람들)들을 보며, 진정으로 삶을 고민하고 소비의 주최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가는 그들의 용기 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일찍부터 물질문명이 앗아간 고유한 삶의 즐거움에 주목하고 자신의 인생길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라니. 이것이야말로 샤넬클래식미디엄(잠시 마음의 소리 경청중)을 위한 오픈런보다 위대한 여정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주체적인 소비자가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나의 소비 행위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서 행동하고 판단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 선택으로 나의 소비는 온전한 나의 것, 나의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을까. 떠오르는 질문들이 무섭게 억압되어진 나의 지난날 들이 고개를 들고 나온다. 여전히 우리의 욕구만족을 두려워하는 수많은 기업들은 창조에 자본을 투자하여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늘 거기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온 나의 젊은 날이 발가벗은 채 나를 마주하고 서있다. 갈등이 시작되었고 나의 고민은 여기서 잠시 멈춘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성장이후의삶, #케이트쇼퍼,#안종희, #한문화,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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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손으로 퇴행시킨 세계,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극도로 어두워지는 세계(p20)". 이는 저명한 언론인인 데이비드 월러스웰즈의 말을 저자가 재인용한 것입니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앞으로는 훨씬 더 나아지리라는 확신에 거의 차이가 없다시피했습니다. 21세기를 20% 넘겨 지낸 지금 과거에 기대했던 것보다 우리가 이뤄낸 게 훨씬 적을 뿐 아니라, 전염병의 만연으로 과연 예전의 안정과 행복 수준이나마 회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인류는 여태 계속 진보만 이뤄온 게 아니고, 예를 들어 몽골 훌라구가 일으킨 바그다드 대학살 같은 사건은 문명의 수준을 수백 년 퇴보시켰을 뿐 아니라 도덕성과 자존감에까지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진보와 향상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 자각은 우리 마음을 무척 우울하게 만듭니다. p21에는 <통섭>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도 인용됩니다.
확실히 인류는 2차 대전 이후 분수에 넘게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1970년대 미국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고생했는데 이 같은 달러 과잉은 1960년대까지 미국 정부가 금 태환을 계속 실시했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해외로부터 작정하고 달러로 금을 교환하는 공급이 이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미국 시민들의 과소비(부채에 기반한)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이제 미국은 달러 증발에 신중할 뿐 아니라(최근 같은 코로나 시국은 예외), 금 태환이 중지되었으니 외국에 푼 달러가 이상 유입되는 경우는 드물어졌습니다. 미 정부도 대외 금융 스킬이 더욱 노련해진 거죠. 허나 이는 재정금융정책 면에서 그러하다는 것일뿐 실물에서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력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더 이상 가솔린 등 탄소 연료를 사용한 차를 만들 수 없게 되어가며 미국 자동차 업체도 (아무리 내수 시장이 크다고 하나) 이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면 거시경제를 선도하는 자동차업계의 성장부터가 벌써 둔화됩니다. 테슬라 등 새로운 전기차 섹터의 성장성은 아직 기대만큼 충분치는 않습니다.
"자연이 문화속으로 흡수되고, 문화가 자연으로 흡수되는(p30)" 관점을 저자는 포스트휴머니즘 여러 진영의 주장으로부터 공통점으로 추출합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이란, 그 "포스트"라는 접두어에서 보듯 어느 정도는 휴머니즘을 극복 지양하는 사조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오로지 인간이, 인간만을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며 논증을 기초로 사고와 행동을 조정하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 응답을 모색(p31)"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즉 저자는 포스트휴머니즘보다 더 강력한 환경친화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족보를 하나하나 짚으며 그 철학적 근거부터를 공격하는데 이 부분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어떤 입장은 자연에 대해 "신 애니미즘적 의의"를 부여하며 유기체와 비유기체,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 등의 구분은 애초에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특히 현대 대중들에게 그 신선함으로 큰 지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부실한(?) 철학적 기초로부터 친 환경적 결론을 도출하는 건, 환경 오염과 생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호도, 오도한다는 점에서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마 이것이, 이런 진영들에서 오가는 논쟁에 익숙지 않은 독자 입장에서는 제법 큰 충격일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은 근본적으로 구분이 되는 영역, 존재들이며 이런 바른 전제로부터 환경 위기, 문명 위협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그 극복을 위한 올바른 대책이 나온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저 결론만 환경 보호만 외친다고 무조건 옳고 동료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뜻이죠.
또한 저자는 전통적인 좌파 진영의 입장, 즉 각성한 노동계급이 모든 사회 변혁의 주체이며 원동력이라는 대전제도, 크게 변화한 현대 산업 구조에 비추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책 p47에서 인용되는 폴 메이슨의 "글로벌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모든 사람이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언표를 들며 노동계급의 특권적 독점적 위치를 부정하는 한 논거로 씁니다. 마오와 소련 공산당 사이에 벌어졌던 "농민이 노동자와 함께 혁명의 동등한 주체가 될 수 있는지"의 논쟁도 약간 생각이 나고 그렇습니다.
사실 토니 블레어 같은 사람은 등장 당시 "제3의 길"을 주장하며 책 p52에 나오는 대로 New Labour(신노동당)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는데 정말 오랜 동안 보수당이 장기 집권하던 터였으므로 이는 큰 기대를 부르는 변혁의 선구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는 앙마르슈라는 당을 새로 만들어 기존의 넌덜머리나는 좌우파 정당을 대체한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의 노선과도 닮았으나 그 역시 현재 많은 한계에 부딪히는 중입니다.
과거에는 선정적인 모델을 앞세워 즐겁고 원색적인 소비의 즐거움을 내세우는 마케팅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소비 행태가 자연을 착취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피됩니다. 그런데 최근 한 세기 동안의 폭발적인 성장은 이런 인간의 본성에 의해 견인되었지만, 이제 이런 소비가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게 여겨진다면 성장의 동력은 무엇에 의해 마련될까요? 그 대안 중 하나가 "대안적 쾌락주의(p69)"입니다. 무엇이 즐겁다 아니다는 그리 여기는 인간의 마음가짐, 사고 체계, 가치관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면, 비건인들도 육류 섭취 거부를 통해 큰 인간적 자존감을 높이고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얻으며 더불어 육체적 건강, 날씬한 셰이프까지를 얻어내니 이게 마인드셋 개조를 통한 대안적 쾌감의 마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실천에 옮기기 힘든 행위를, 도덕적 의무감만으로 억지로 자기부정을 해 가며 행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것이 기뻐서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이 새로 생겼는데(p106) "위태하다"는 뜻의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자동화는 이미 1990년대부터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해 왔고 그보다 훨씬 전 1차 산업혁명 당시부터 공장 노동은 인간 자존을 낮추고 생산, 경제, 사회, 삶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켰습니다. 주당 노동시간의 과도한 부여는 단지 사용자 중심의 노동력 추출이라는 목적 외에도, 비인간적인 노동이 끼친 정신적 위축을 보상하기 위해 약탈적, 감각적, 쾌락지향적 소비를 부추기며 해당 산업을 필요이상으로 키우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노동자의 혹사와 자연 파괴는 서로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사람은 자유시간이 있어야 진정한 자기계발을 할 수 있으며 이 전제를 고도로 발전시킨 입장이 바로 대안적 쾌락주의입니다. 사람에 따라 무엇을 쾌락으로 삼느냐는 천차만별이며 사회의 대세를 이루는 쾌락 추구 방식을 어떤 이유로건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쾌락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를 이루는 게(저자의 분류에 따르자면) 기술 유토피아주의입니다. 특히 제레미 리프킨 같은 분은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로 인해 앞으로는 거의 모든 서비스와 재화의 한계생산비용이 0에 가까워지며 더 이상 희소성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반대로 풍요의 원칙이 지배하는 경제가 도래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회 일각의 경향성을 잘 반영했을 뿐 전면적 현실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저자는 대안적 쾌락주의를 특히 5장에서 자세히 설명하며 "그 특유의 상상력이 주는 효용과 즐거움"을 강조합니다. 어쩌면 이는 아주 부분적인 교차점을 갖기는 하나 아마존이 초기에 대박을 친 원인인 롱테일 마케팅과도 닮았습니다. 비주류 소비는 개개로 놓고 보면 아주 소수라서 종래의 오프라인 마케팅과 설비로는 이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아마존은 이런 작고 작은 소비 수요를 모두 자신으로 끌어들여 큰 볼륨의 매출로 합산할 수 있었고 이것이 아마존을 세상에 널리 알린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종래의 주류(主流) 소비는 예컨대 패션을 따라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구매한다는 착각을 얻는 패턴이었습니다. 내일 생활비도 조달하기 어려우면서 빚을 내어서라도 명품을 사야 한다는 멍청한 부류가 이에 속하죠. 지역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생태환경을 지키는 소비(p168)를 하는 게 대안적 쾌락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나 "대안"인 만큼 그 양태는 이 외에도 여럿이 있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사상가인 프루동이 이 맥락에서 다시 소환됩니다. 또 저자는 p178에서 기독교의 구약에 나오는 착한 며느리 룻이나 19세기 낭만주의 시인 키츠도 인용합니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이상향을 묘사한다는 맥락에서입니다.
사실 영국(잉글랜드)은 아일랜드를 오랜 시간 동안 정복과 교화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같은 섬나라지만 민족 구성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고 특히 아일랜드는 일본에게 큰 시련을 당한 우리 민족 입장에서 큰 공감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책 8장에서는 아일랜드 특유의 켈트적 문화, 영적 분위기 등 고유의 자연친화적 성격이 자세히 설명되는데 올해 팔순을 맞는 옥스퍼드 출신 노장 페미니스트 여성학자로서 사실 아일랜드 배경은 없는 분이 이처럼 큰 비중으로 아일랜드 예찬을 펴는 태도가 흥미롭게 보입니다.
저자의 결론은 대안적 쾌락의 추구, (기술 만능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네트워크 기술의 존중, (비과학적 범신론을 비판하면서도) 아일랜드식 문화에의 주의깊은 관찰, (포스트휴머니즘을 지양하면서도) 자연친화적 삶의 지향, (전통적 마르크시즘을 비판하면서도) 좌파 이념의 새로운 정립 등을 강조합니다. 허술히 지나칠 대목이 없는 꼼꼼한 이론서로서 읽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