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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현장에 있다 보면 학생들이 유행에 무척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특히 돈 들이지 않고 따라 할 수 있는 유행어 같은 것들은 등장하기가 무섭게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려요. 한 해에도 수십 개의 유행어가 교실을 스쳐 지나가고, 아이들은 누가 더 유행어를 자연스럽게 내뱉는지를 내심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유행어들을 어떤 때는 못 들은 척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또 시작이네' 싶어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해요. 다만 모든 유행이 다 귀찮게 느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가끔은 아이들의 머릿속에 오래 남아주기를 바라는 유행어도 있거든요. 조금은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졌잘싸', 즉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표현입니다. 축구 유니폼을 입은 활기찬 여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진 책 표지와, '성공기'가 아닌 '도전기'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이 이야기의 결말이 흔한 '우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승리만큼이나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배웠으면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기에 과연 이 책에서는 학생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패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졌잘싸>는 초등학교 교사로도 일하고 있는 고상훈 작가가 2018년에 초등학교 여자축구부를 맡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동화입니다. 해원초등학교 여자축구부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학교스포츠클럽 축구대회에 참여하는 모습까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아이들 간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팀워크의 성장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작품 속에서 교사가 사건의 중심에 있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부딪히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적당히 물러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동화에서 교사가 너무 많은 역할을 맡으면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거나 교훈 일색인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이 책의 여자축구부 지도교사인 김성훈 선생님은 학생들이 요청하거나 꼭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해 자연스럽게 조력자의 자리를 지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여자축구부의 창단 멤버인 수연이가 스스로 골키퍼가 되겠다고 나서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팀을 위해 배려하고, 그 배려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근거를 갖춰 설득하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중요한 가치들이 이 장면에 모두 녹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책의 제목대로 <졌잘싸>는 해원초 여자축구부가 결국 경기에서 패배하며 끝이 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아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과정 속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자부심을 갖는 점을 배웠다는 점이겠지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사람은 없기에,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최선을 다해 경쟁에 참여하고 패배를 경험한 순간에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승리만큼 값진 패배의 의미를 배우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블로그에 방문하시면 재미있는 어린이책들을 많이 만나보실 수 있어요! 꿀벌서가: 어린이책 초등교사 꿀벌의 어린이책 북큐레이션 ? blog.naver.com/bookhoneybee |
|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 학생 때는 그렇게 고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여자축구가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 <졌잘싸> 속 보현, 지민, 수연이는 여자 피구부를 만들걸 그랬나?라고 말하는데 의미 심장한 푸념처럼 들린다. 여자축구는 시작부터 울퉁불퉁이다. 놀림은 물론 누구에게도 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열한 명을 채우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그럴 것이다. 몇몇이 축구를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지. 축구는 열하나가 모여야만 하니까. 축구부는 어찌 꾸역꾸역 만들어지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도 녹록지가 않다. 애초에 누구도 응원하지 않는 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지만 여자 축구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가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해원초 여자 축구부의 성장기 <졌잘싸>를 읽으며 꿈을 향해 잘 싸우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 즐거웠고 한편으론 안쓰러웠고 미안했다. 꿈을 키우고 있는 아이들 모두 <졌잘싸>를 읽으며 위로 받고 응원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