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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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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오두막 편지’, 원성의 ‘풍경’, 현각의 ‘만행’ 그리고 지허스님의 ‘선방일기’ 등 스님들의 책이 서점가를 점령했다 싶을 정도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를 필두로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 ‘금강경 강해’ 등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디지털, 인터넷, 벤처열풍 등 빠르게 속도만을 강조하며 질주하는 세상의 변화
"묵상하는 삶" 내용보기
법정의 ‘오두막 편지’, 원성의 ‘풍경’, 현각의 ‘만행’ 그리고 지허스님의 ‘선방일기’ 등 스님들의 책이 서점가를 점령했다 싶을 정도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를 필두로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 ‘금강경 강해’ 등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디지털, 인터넷, 벤처열풍 등 빠르게 속도만을 강조하며 질주하는 세상의 변화 앞에서 독자들은 역설적으로 느림과 여유 그리고 성찰과 묵상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디지털과 속도의 시대에 오히려 ‘선(禪)’과 ‘비움(虛)’이 이야기되는 것이리라. ‘선’과 ‘비움’은 불교와 노장의 사상이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너무나 어색한 것을 경험하게 된다. 현대의 기독교는 말 그대로 전투적이다. 다시말해 열광의 수준을 넘어 발광(?)으로 비친다. 과연 우리 기독교는 그러할 수 밖에 없는가? 그러나 기독교적 전통에서도 이런 흐름이 사실은 주류를 이루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 우리가 너무나 소홀히 하기에 잊어버린 전통중에 하나이다. 그것이 바로 묵상이다. 한국은 통성 기도에는 잘 훈련이 되었지만 묵상기도에는 아직 미숙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안내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부분에 접근한 책들도 적지 않다. 크리스천 작가 켄 가이어의 책은 그 중 하나이다. 가이어는 헌 책방에서도 ‘삶의 성스러움’이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고백한다. 그는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인디언의 복음’이란 책에 나오는 예화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낸다. ‘포타라모’라는 인디언 노인은 모두 스무줄의 양파를 팔고 있었다. 한 백인이 그 스무줄 전부를 모두 사면 얼마냐고 물었다. 인디언 노인은 스무줄 전부는 팔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다 팔고 나면 그것으로 내 하루는 끝이기에, 내가 즐기고 사랑할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기에 모두 한꺼번에 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한 쾌에 끝장내 버리려는 광기어린 속도의 시대에 인디언 노인의 모습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이어는 말한다. “성스러움이란 다분히 우리 일상의 평범한 순간 속에 숨어있다. 일상의 순간 속에서 그것을 보려면 걸음을 늦추어야 한다”라고. 켄 가이어는 어린 시절 ‘설탕빵을 받는 일’을 매일의 성찬의식이라 불렀다. 마가린을 얇게 바른 뒤 설탕을 뿌린 빵 한 조각. 놀기 바쁜 아이였을 때도 그 빵의 힘으로 하루를 지냈다. 그 빵에는 맨발소년의 놀다 허기진 배보다 더 깊은 굶주림을 채워주는 것이 있었다. 빵을 건네주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과 미소에 묻어온 사랑이 그것이다. 일하기 바쁜 성인이 된 지금도 어쩌면 우리는 그 빵의 힘으로 산다. 다만 지금은 설탕빵이 아니라 그 빵에 대한 추억이다. 누군가 나를 정성스레 돌봐주고 사랑해준 사람이 있었다는 추억말이다. 켄 가이어의 책은 작다. 그러나 큰 느낌이 있다. 켄 가이어의 책은 얇다. 그러나 깊은 울림이 있다. 설탕빵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삶의 시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모르는 사람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여자는 내가 쓴 어린이 책을 읽고서 혹시 내가 자기 원고를 봐 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여자는 줄거리를 대충 말해 주 었다. 고생을 이겨내는 가족 이야기였다. 여자는 자기가 암으로 췌장을 절제했다는 얘기도 했다. 아직 어린 자녀들이 몇 있는 데, 이번에 하나님께서 자기한테 그 아이들을 위해 책을 쓰게 하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나는 원고를 봐 주고 힘닿는 대로 돕겠다고 했다. 우편으로 도착한 원고를 읽고는 작업에 들어갔다 여백에 소감을 쓰고 단어를 지우고 연결 부분에 말을 보태고 문단 순서를 바꾸는 등 내 원고를 손볼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만나서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여자는 종이 뭉치가 든 가방을 들고 왔다. 나는 악필로 교정을 본 여자의 원고를 들고 갔다. 음식을 시키면서 여자의 건강에 대해 물었다. 여자는 암이 간으로 퍼져 의사들이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갔다. 여자는 삼십대 중반으로, 아이들이 다 학교에 들어가서 글쓰기를 시작하기 좋은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p********e 2000.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듣지 않으려거든 뭐하러 사냐?
"듣지 않으려거든 뭐하러 사냐?" 내용보기
내 책장에는 3개의 구호가 적혀 있다. 내 평생의 독서의 원칙이랄 수 있는 구호들이다. 그 구호 중 첫 번째 구호가 그것이다. ‘하나님은 책을 통해 말씀하신다. 듣지 않으려거든 읽지도 말라.’ 켄가이어는 이 책을 통해서 내 독서의 원칙과 비슷한 그런 질문을 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삶을 통해 말씀하신다. 듣지 않으려거든 뭐하러 사냐?’ 또 하나 나의 책장에 쓰여 있는 구호 가
"듣지 않으려거든 뭐하러 사냐?" 내용보기
내 책장에는 3개의 구호가 적혀 있다. 내 평생의 독서의 원칙이랄 수 있는 구호들이다. 그 구호 중 첫 번째 구호가 그것이다. ‘하나님은 책을 통해 말씀하신다. 듣지 않으려거든 읽지도 말라.’ 켄가이어는 이 책을 통해서 내 독서의 원칙과 비슷한 그런 질문을 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삶을 통해 말씀하신다. 듣지 않으려거든 뭐하러 사냐?’ 또 하나 나의 책장에 쓰여 있는 구호 가운데 그런 것이 있다. ‘다시 읽어라. 두 번 이상 읽지 않을 책은 버려라’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책이다. 오늘 3번째 읽게 되는 것이지만 새로 소개 받은 친구처럼 여전히 새롭고 내 마음을 이토록 두근 거리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묵상하는 삶. 켄가이어가 지속적으로 충고하는 삶의 방식은 너무 빨리 가지 말라는 것이다. 고속도로 표지판을 읽기 위해서는 차의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것처럼, 걸음을 늦추지 않으면 읽어내야 할 것을 읽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읽으란 말인가? 저자는 토저의 표현을 빌려 하나님을 그렇게 정리한다. ‘하나님은 본질상 계속 표현하시는 분이다’ 성경이든, 자연이든, 사건이든, 사람이든 하나님은 너무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신다. 걸음을 늦추지 않으면, 혹은 완전히 멈추어 서지 않으면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걸음을 늦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 그것이 묵상하는 삶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바람에 날려 온 민들레 씨앗이 자라가는 과정과 같다. 일단 씨앗이 필요하다. 그 씨앗은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 모두이다. 그 씨앗들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그 씨앗의 품 속에는 그 분의 메시지를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들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씨앗을 품어주는 토양이 있어야 하는데, 그 토양을 저자는 사람의 마음으로 대비한다. 아무리 많은 씨앗이 뿌려져도 흙이 그 씨앗을 품지 못하면 그 씨앗을 발아에 실패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씨앗만큼이나 중요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씨앗을 받아내는 대지처럼, 가장 낮은 마음인 겸손으로 열려 있지 않으면 그 씨앗들을 품을 수 없다. 그리고 씨앗이 싹이 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 수분. 저자가 단적으로 말하는 수분의 역할은 성령의 몫이다. 일단 수분을 받아들인 씨앗은 경작을 통해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 저자는 다양하고 실제적인 묵상의 방법들을 소개하면서 성장과, 열매 수확을 기대한다.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묵상의 목표는 사랑이다. 묵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치루는 행복한 댓가이다. 가장 성공적인 삶은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삶이다. 사랑이 가장 큰 삶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사랑을 원숙하게 만들어 가는 묵상, 그것은 커다란 마차를 굴리는 바퀴의 중심축과 같다. 중심축이 중심에 있지 않으면 그 마차는 전복하고 말 것이다. 더 정확한 중심으로 우리의 묵상을 옮겨가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집중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영혼으로 들여다 보기’다. 저자는 모든 사물과 사건 앞에 진지하게 창을 만든다. 저자의 저서 제목처럼 그 창의 이름은 ‘영혼의 창’이다. 그 창을 통해 보다 진지하게 보고 진지하게 듣는 집중, 그것이 묵상의 성공 비결이다. 하나님은 또 말씀하실 것이다. 그동안 마르다처럼 나는 나의 부엌에서 그 말씀과 관계없는 일에 너무나 바빴다. 책을 읽노라니 주의 발 아래가 그리워 진다. 이제 나의 부엌에서 나와 그 분 발 아래 절박한 마음으로 엎드리리라. 마리아처럼. 한사람세우기 백덕기 목사

[인상깊은구절]
- 묵상하는 삶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주변에서 하시는 일에 주목하고 수용하며 반응하는 삶이다. 12p - 모든 사건에는 뭔가 성스러운 것이 담겨 있다. 21p - 잠에서 깨어나 그날 하루에 주어진 수많은 선물을 뜯어 보기는 커녕 아예 뜯어 볼 선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간다면 너무나 큰 것을 잃는 것이다. 25p - 일상의 순간 속에서 성스러운 것을 보려면 걸음을 늦추고 더욱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8p - 묵상하는 삶이란 영원히 의미 있는 것이 심길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47p - 어떤 사이이든 대화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관계의 깊이이다. 54p - 예수님은 무수한 방식, 무수한 이유로 찾아오시거니와, 이 모두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54p - 성경은 뭐니 뭐니해도 ‘연애편지’이다. 그 편지에 적힌 말은 우리 마음 밭에 떨어지는 씨와 같다. 81p -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말씀은 성령이 생명을 주시지 않는 한 땅 속에서 동면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82p - 나는 오늘 사랑하며 살았나?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에 대한 질문에 어거스틴은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 98p - 묵상 없이 읽으면 건조하고 읽지 않고 묵상하면 오류에 빠진다. 묵상 없는 기도는 미지근하고 기도 없는 묵상은 열매가 없다. -구이고- 101p - 일상의 매순간을 ‘읽을’ 때 그분이 나타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상의 매순간을 ‘묵상할’ 때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일상의 매순간에 ‘반응할’ 대 자신의 삶을 잃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얻을 수 있다. 114p - 고정된 축에서 안정이 나온다. 우리 삶의 바퀴가 빠지지 않게 하는 것도 바로 영혼의 고요함이다. 122p - 주님, 저를 부엌에서 나오게 하옵소서. 주님 발 아래로 오라 명하소서. 거기 벅찬 가슴으로 앉아 주님을 경배하게 하옵소서. 144p -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사랑하는 것이 묵상하는 삶의 목표이다. 163p - 묵상하는 삶의 열매는 변화된 삶이라야 한다. 변화는 우리의 존재뿐 아니라 삶의 방식까지 영향을 미쳐야 한다. 197p - 쉬어가기란 공원 벤치와 같은 것이다. 걸음을 멈추고 앉아 자신의 신앙 여정을 돌아볼 수 있는 곳, 지도를 확인하는 곳, 방위를 점검하는 곳, 그리하여 필요하다면 진로를 조정하는 곳. 221p - 삶의 묵상은 우리의 하루 삶에 군데군데 감속 범프를 놓아 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도로 표지판을 읽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 동안 속도를 늦추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시다고 느껴지는 순간, 걸음을 멈추라. 일어난 일을 종이에 적어 두라. 237p - 토저는 말했다. “하나님은 본질상 계속 표현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세상을 그 말씀의 음성으로 채우신다.” - 그분은 또한 자상하신 분이다. 무당벌레 등에 섬세한 점 무늬를 입혀 주신 분이다. 241p
y****u 2006.03.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