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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을 노래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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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을 노래하라』는 ‘영시 명시 다시 읽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영시(英詩)를 언제 제대로 읽었을까? 대학을 졸업한 지도 오래되어, 곁에 두고 가끔이라도 쳐다보는 것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이 고작이다. 영시를 아주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블로그 이웃 중에는 영시를 번역하여 소개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다른 분들의 글을 읽다가 영시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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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을 노래하라』는 ‘영시 명시 다시 읽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영시(英詩)를 언제 제대로 읽었을까? 대학을 졸업한 지도 오래되어, 곁에 두고 가끔이라도 쳐다보는 것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이 고작이다. 영시를 아주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블로그 이웃 중에는 영시를 번역하여 소개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다른 분들의 글을 읽다가 영시를 한 편씩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언어 문학권의 시들을 하나의 고리로 묶어 진미를 맛본 기억은 너무나 멀다.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언어로 쓰인 하나의 주제로 묶인 시들을 읽는 것은, 단순히 번역된 다른 언어권의 시를 읽는 것을 떠나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다른 문화적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사랑을 표현한다. 사랑은 인류 공통의 감정이므로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 같은 문장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초원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은 빙설로 덮인 높은 산속 마을에서 사랑을 노래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바다에 빗대 사랑을 표현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은 숲에 빗대 사랑을 표현한다. 같은 사랑이지만, 서로 다른 자연 환경적 소품들을 이용하여 노래한다. 소품은 자연환경에 그치지 않는다. 차이는 숱하게 만들어지고, 언어가 가진 매력 중 하나는 그 차이와 감정을 엮는 것에서 만들어진다.

 

『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을 노래하라』를 쓴 이종민 교수는 40년 동안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친 분이다. 전문적 식견에 대한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데, 저자는 자신이 천착하여 도달한 깊이의 길을 걷지 않고 독자에게 친절한 길을 걷겠노라는 의중이 가늠되는 말을 한다. “상상력과 감수성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도 약간의 부축임을 통해 ‘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이 지닌 매력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평범한 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뜻이리라.

『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을 노래하라』는 간명하게 말하자면, ‘사랑’, ‘일상’, ‘세계’의 이야기를 담아 놓았다. 그것은 인간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다. 그것은 ‘마음’, ‘이어짐’, ‘삶이 담긴 그릇’이라고 다르게 불러도 될 것이다. 그 세 가치들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어서 인류가 사는 곳곳에서 무수한 시가 만들어졌다. 모든 시가 같지는 않다. 어느 시는 겉바람처럼 흘러갔고, 어느 시는 심연에 닿아 비밀스런 이야기를 건져다 주기도 했다.

오늘도 시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지상에 참 많은 시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주제의 시들을 갈무리하면 어떤 의미와 감성의 맥이 짚어지는지를 고민하며 읽지는 않는다. 어쩌면 『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을 노래하라』를 통해 맥을 짚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백사장에 썼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밀려와 그것을 씻어 가버렸습니다.

다시 나는 그녀의 이름을 거듭하여 썼습니다

허나 조수가 밀려와 나의 노력을 제물로 삼아버렸습니다

“공허한 이여” 그녀가 말했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영원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다니요,

내 자신도 이와 같이 쇠락하고 말 것이며

내 이름 또한 이처럼 씻겨 업어질 텐데요.”

“그렇지 않아요” 내가 말했습니다. “비천한 것들은 먼지 속에서

죽어 없어질지라도, 당신은 명성으로 살아남을 것이오.

나의 시가 당신의 귀한 미덕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며

하늘나라에 그대의 찬란한 이름을 새겨 놓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죽음이 모든 세상을 지배할 때에도

우리의 사랑은 살아남아 차생(此生)의 삶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소개된 많은 시들 중에서 1부 <아름다움을 찬미하라-사랑 노래와 소네트>에 실린 에드먼드 스펜서(1552∼1599)의 「작은 사랑의 노래 75」를 골라보았다. 시를 읽고 저자의 글을 읽고, 따로 생각을 해본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단히 백사장에 쓰는 일…. 어쩌면--솔로몬에게서 문장을 배운 이들은 “공허하다”고 말하기도 할--인간의 생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은 부단히 뭔가를 적는 것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와서 그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일을 시시포스(Sisyphus)처럼 견뎌내는 것에 생의 비의(秘義)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만 쓰겠는가. 참 많은 것을 쓸 것이다. 전력을 다해 쓴 것들이 정점에 모일 것이고, 그 중 앞에 사랑이 있을지 모른다.한 편만 소개하는 것은 아쉽다. 2부 <일상의 기쁨과 슬픔-낭만시, 비가, 송가>에서 윌리엄 워즈워스의 「외로운 파수꾼」의 일부를 적어본다.

 

저 처자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말해 주는 이 없는가?

저 구슬픈 노래는

어쩌면 오래된 아득한 불행

아니면 옛날의 전쟁들에 관한 것인지 몰라

아니면 오늘날 흔히 있는 것에 대한

소박한 노래인가?

이제까지 있어왔고 또다시 있을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슬픔, 상실 또는 아픔에 관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슬픔은 삶의 본질입니다. 불행한 일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으며 내일도 또 계속 있을 것입니다. 슬픈 노래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런 보편성 혹은 편재성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일상적 불행으로 인한 슬픔을, 그래서 일상적으로 무심한 듯 토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추수와 같은 일상적 일을 해나가면서.”

‘일상’의 정체(正體)는 이어짐이다. 아마도 희극적인 것보다는 비극적인 것이 더 많이 이어질 것이다. 희극은 얻는 것이고, 비극은 잃는 것이라고 봐야 할 텐데, 잃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잃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신은 시간을 준다. 그 ‘시간’이라는 것은 이어짐을 통해서만 확인된다. 잃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생이기도 하고, 잃은 것들을 의미 있게 새겨보라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해서 매일의 시간은 기도나 노래처럼 이해되어야 할지 모른다.

시는 노래다. 노래 속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선다. 신이 들어서고, 영웅도 들어선다. 오래전의 여러 일들도 방금 전의 일처럼 되살아나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다. 그렇게 들어선 것들이 일상의 걸음들과 함께 걸어간다. 일상을 잇는 지난함을 잘 견뎌보라고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며 함께 이어진다. 이어지는 중에 어느 날은 아주 작은 변주가 일어나기도 한다. ‘나’에게 일어난 비극 하나를 가사로 덧붙여서 말이다.

『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을 노래하라』……. 사랑과 일상, 우리가 몸담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 그것은 내일도 이어질 것이다. 시를 읽으며 생각을 깊게 하는 일은 그래서 필요할 것이다.

f***t 2021.11.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