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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러시아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니콜라이 고골이라고 말할 것이다. 특히 30-40대에는 특히 그러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고골이 우크라이나 태생의 작가라는 걸 알게 되고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지금껏 러시아 문학의 대문호라고 알고 있던 고골이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면, 이젠 그를 어떻게 불러야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추후 러시아 문학사도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인지,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문학사를 다시 집필하고 있는지는 지금의 내게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나, 적어도 내가 좋아했던 한 작가의 '출신'과 관련해서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당황스럽긴 하다. 이 고전적인 레퍼토리가 지금까지도 반복되는 이유를 알겠다. 아무튼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는 고골이 이십대 초반에 쓴 소설로, 그의 초기작에 속한다. 우리가 잘 알고, 많이 언급되는 작품들 (가령, 『코』나 『외투』)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건 아무래도 그의 대표작인 아니기 때문일텐데, 지금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읽는 게 유의미한 것은, 우크라이나 태생으로서의 고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우크라이나의 정서가 많이 담겨 있어서, 기존에 나처럼 고골을 러시아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낯설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다. 도대체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배경지식이 없었던 사람들에겐 이런 역사와 민족적 정서를 가진 나라라는 걸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이 소설의 화자는 벌치기인 루디 판코인데, 고골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스포일링 없이 간단히 설명하자면,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목동 같은 캐릭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시골 작은 마을에 사는 순수한 청년. '야회'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도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할텐데, 무도회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가 영국 소설에서 보는, 구애와 결혼을 위해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만나는 모임, 이라기보다는, 일을 하다가 같이 춤도 추고 이야기도 나누는, 좀더 전원적이고 낭만적인, 그리고 친노동적인 개념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우크라이나의 민담이나 전설들을 변용한 고골의 맛깔스러운 글이 글맛과 읽는 맛을 느끼게 한다. 20대 초반의 고골, 대문호가 신성이던 시절을 맛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지만, 상대적으로 세계문학 시장에서 소외되었던 우크라이나 문학, 그리고 우크라이나 민중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도 색다르고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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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고골의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는 러시아 문학이 민속적 상상력과 문학적 세련미를 결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증명한 작품이다. 우크라이나 농촌 마을의 겨울 밤, 농민, 사제, 마녀, 악마, 헛간, 가면무도회 같은 재료들이 한데 뒤섞인 이 단편들은, 그 자체로 괴담이면서도 풍자이고, 현실인 듯하면서도 철저히 꿈결처럼 읽힌다. 고골은 이 이야기들을 통해 러시아적 현실과 우크라이나적 상상력, 그리고 구비 전승과 문학적 글쓰기 사이의 경계를 미끄러지듯 넘나든다. 이 단편집은 단순한 민속 모음집이 아니다. 고골은 익살과 불안, 사랑과 공포, 초자연과 속물성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성탄 전야’, ‘마녀’, ‘이반 표도로비치 슈폰카와 그의 이모’, ‘잃어버린 문서’ 같은 이야기들은 표면적으로는 유쾌하지만, 내면에는 모든 일상 너머에 숨어 있는 알 수 없는 세계를 품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웃기지만 섬뜩하고, 평온하지만 기묘하다. 고골 문학 특유의 정서—“웃고 있지만 불길한” 감각은 바로 이 첫 작품집에서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다. 이번 을유문화사 판본은 고골 문학이 지닌 낯설고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물성으로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단단한 하드커버에 직조된 질감, 절제된 색상과 정갈한 타이포그래피, 손에 닿는 매끄러운 종이의 질감은 독자로 하여금 고골의 세계에 좀 더 깊이 침잠하게 만든다. 마치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책의 외형이 “또 다른 이야기처럼” 손에 남는 느낌을 준다. 고전 출판이 단순히 텍스트 복원에 그치지 않고, 형태와 내용이 하나의 예술로 묶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는 고골이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평가받기 전, 이야기의 마술사로서 어떤 감각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학적 유산이다. 그리고 이번 판본은 그 고전이 지금 다시 살아나도록 돕는 훌륭한 외형적 응답이다. 문학과 책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감각, 이 책에서는 그것이 실감된다. |
|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니콜라이 고골 저/이경완 역)를 읽어보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한 일년전쯤에 처음 니콜라이고골을 접하고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작품을 한권씩 구매중이에요. 이 책도 아주 인상적인 내용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