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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을 이루는 지성적 원천을 뽑아보면 헤겔, 라캉, 마르크스, 이 세가지를 들고는 한다. 다시 말해 독일관념론,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라는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성취를 통합하고 있는 대표적 사상가로 통하며, 그의 저술은 활발하게 인용되고 다양한 분야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젝, 비판적 독해」 는 철학자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는 지젝에 대해 8명의 학자가 비평하고 마지막으로 지젝이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젝, 비판적 독해 이언 파커, 토드 맥고원, 브루노 보스틸스, 조슈아 러메이, 에이드리언 존스턴, 베리나 앤더맷 콘리, 에릭 포크트, 자밀 카더, 슬라보예 지젝 지음 2021년 11월 글항아리 '당대의 가장 위험한 철학자' 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 지젝은 저작들이 체계성이 뚜렷하지 않으며 관점 또한 자주 바뀐다고 지적받기도 한다. 책의 초반에서는 지젝을 탄생시킨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며 지젝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지젝은 자신의 조국의 혼동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 성장했고, 그러한 환경은 지젝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1949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난 지젝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95년, 영화 비평서인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를 통해서다.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의 저자 이현우에 따르면 당시는 "주변의 영화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권해주던" 시기였고, 지젝은 '문화 이론의 엘비스', 'MTV 철학자'란 별명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1부의 이언 파커의 소개에 이어 2부에서 토드 맥고원과 브루노 보스틸스, 조슈아 러메이가 지젝의 비판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이해하는 토대를 제시하면서 지젝의 세 가지 지성적 원천을 차례로 다룬다. 3부에서는 에이드리언 존스턴과 베리나 앤더맷 콘리, 에릭 포크트, 자밀 카더가 지젝의 저작에서 등장하는 도발적 주장을 조명한다. 양자역학과 미디어 연구, 생태학적 연구, 탈식민주의 연구가 그것이다. "비판적 문화 이론을 전파하는 탁월한 공작원인 슬라보예 지젝은 오늘날 자본주의 아래서 벌어지는 온갖 문화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건드리고 있다."(p205) 지젝의 저작이 포괄하는 궤적과 응용되는 다양한 영역을 쫓다보면 그의 사상의 왜 혁신적인지, 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나는 6장. 베리나 앤더맷 콘리의 「지젝은 에코 시크」 편을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생태학과 해방하는 주체' 로 시작하여, '공포와 테러', '종말 대 종말론' 등에 관한 지젝의 저작들을 소환하고 평가한다. 지젝은 묻는다. 세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붕괴가 일어날까? 붕괴가 일어난다는 것이 지젝의 대답이다. 자본주의에는 지젝이 말한 네 가지 적대 antagonism, 즉 역기능적 연결 지점이 네 개 있다. 1) 생태학 자체 2) 지식소유권을 포함한 사적 소유와 물과 천연자원 같은 필수자원 3) 기술과학의 새로운 발전이 함의하는 사회 윤리적 의미, 무엇보다 유전공학의 의미(...) 4)세계 전역에서 새로운 차별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 네 개의 적대는 자본주의 체계가 원만하게 기능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계는 네 개의 적대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 p207, 6장. 지젝은 에코 시크 - 베리나 앤더맷 콘리 앞에서 제기된 주요 주제와 우려에 대해 마지막 4부에서 지젝이 직접 넌지시 대답한다. 특히 헤겔의 이론을 중심으로 하며 전개해나가고 있기에 지젝에 대한 탐구 외에 (그가 말하는) 헤겔에 대한 탐구를 함께 해나가게 된다. 「지젝, 비판적 독해」 를 읽으며 지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과 라캉 또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혹자는 지젝을 헤겔과 라캉의 아바타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헤겔이 절묘하게 분석한 부분에 주목하라. 가난은 물질의 빈곤만을 뜻하지 않으며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한, 주관적 처지를 뜻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공적 부조나 사적 자선으로 빈자를 돕는 것은 한계가 있다. 빈자는 자기 생활을 스스로 돌보는 즐거움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더구나 주체가 자신을 규정하는 정체성과 자신이 받는 인정을 궁극적으로 기성의 질서인 사회에서 찾는다고 강조할 때, 헤겔이 주체의 자유는 보편적 윤리 질서가 합리적이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할 때, 그의 주장에는 분명하게 진술되지 않았지만 정반대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 즉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자는 반란을 일으킬 권리를 갖는다는것이다. 예를 들어 한 무리가 사회 구조상 권리를 박탈당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긴다면, (바로 그런 상태 때문에) 그들은 사회질서를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도 벗어난다. 이 질서는 더는 그들의 윤리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 p317, 9장. 왕과 천민, 섹스 그리고 전쟁 - 슬라보예 지젝 사회에 빚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사회에 대한 어떤 의무도 질 필요가 없다는 헤겔의 "천민"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온 지젝은 이 논점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또한 함께 가져와 설명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합리적' 사회 전체의 '비합리적' 요소, 즉 '자기 몫이 없는 부분' 을 표시한다. '사회 전체는 구조상 프롤레타리아라는 요소를 생산하면서도 사회 전체를 정의하는 기본 권리를 프롤레타리아에게는 허락하지 않는다.' (p318) 라며 왕과 천민에 대하여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지젝 입문자로서 그의 사상의 원천 및 영향들을 함께 이해해보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의 사상이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어 즐거웠다. 저자들의 '지젝은 어디로 가는가' 란 질문에 대해 나 또한 궁금하게 여기며, 앞으로 지젝의 행보를 더욱 관심있게 지켜보게 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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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휘리릭 우선 읽어가다보니( 여기서의 휘리릭은 이해를 못해도 일단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는 의미이다. ) 내 수준에서 지젝에 대한 비평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이해를 해야할 철학자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라캉이고, 두번째는 헤겔이었다. ( 물론 다른 것들도 많다. )
지젝, 비판적 독해 이언 파커, 토드 맥고원, 브루노 보스틸스, 조슈아 러메이, 에이드리언 존스턴, 베리나 앤더맷 콘리, 에릭 포크트, 자밀 카더, 슬라보예 지젝 지음 2021년 11월 글항아리 지젝은 영어로 쓴 첫 번째 책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을 1989년에 출간하면서 서구 유럽과 북미 지식계에 등장했다. '인간 행위자와 이데올로기를 정신분석으로 검토할 때,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선구자처럼 해석하면서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라캉주의로 분석한다.'(p9) 그동안 읽어왔던 여러 글들에서 라캉과 그의 철학이 인용되고는 하는데 기본적인 개념 말고는 잘 모른다. '팔루스', '주이상스' 등의 키워드가 라캉에 해당한다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보니 간단한 문장 하나인데도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는 슬픔. ( 이래서 철학에 관련된 책들은 어렵다..그러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 라캉은 누구인가? 프로이트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욕망,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지표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는 것이다. 욕망이란 틀 속에 억눌린 인간의 내면세계를 해부한다고 하여 정신분석학계는 물론 철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출처 : 나무 위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외에도 대중문화와 일상 사례로 라캉을 소개하는 지젝의 저작들이 많다. 「삐딱하게 보기」,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How To Read 라캉」 ,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 등이다. ( 하하. 한 권도 못 읽었다. ) 저명한 지젝주의 비평가라는 이언 파커는 1장에서 '지젝에게는 어떤 대상이 숭고한가' 라는 제목으로 지젝과 지젝주의 철학에 대해 소개하며 책을 연다. 이언 파커 또한 「라캉주의 정신분석 : 주체성에서 일어난 혁신들」 이란 책을 썼다. 이언 파커는 '지금 지젝은...... 헤겔과 정신분석,마르크스주의 라는 세 개의 주요 흐름을 모두 이으려하지만, 세 개이 흐름이 상상계와 상징계, 실재계 가운데 어느 것과 대응하는지 지정하지 않더라도 우리와 지젝은 모두 하나이면서 연속되는 문제들과 맞닥뜨린다. 여러 문제들의 매듭이기도 한 이 문제는 바로 인간 주체라는 공백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사회적 관계들의 집합'으로, 라캉은 '대타자 안의 결여'로, 헤겔은 '세계의 밤' 으로 이론화 했다.'(p48) 라고 말한다. 내 짧은 지식으로 기억해보면...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또한 라캉의 철학과 관련된 개념이지 않던가. 상상계는 사회와 구별되는 개인의 주체적인 영역을 가리킨다. 상상계의 반대에 상징계가 서있다. 상징계는 말그대로 현실의 영역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실재계는 상징계의 의미화 작용이 실패로 돌아가는 지점을 가리킨다. 검색을 하다보니 '문제는 이 개념의 정확한 위치인데, 이 개념이 상상계(개인)과 상징계(사회)를 모두 넘어선 지점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슬라보예 지젝등은 이 개념이 상징계와 상상계 사이의 지점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상징계의 의미화 작용이 실패하지만 상상계가 인식할 수 있는 장소에 실재계가 서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앞서 욕망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바 있는데, 욕망이 향하지만 상징계가 충족시켜 줄 수 없는 지점, 바로 그곳에 실재계가 위치한다고 해석' (위키발췌) 한다고! 휘리릭 일독을 한 후 다시 처음부터 다시 읽는 중에 한 가지씩 찾아보게 된다. '깊게' 이해하려는 목표보다는 피상적으로라도 '넓게' 이해해보려는 것이 목표인지라 계속 이런 과정을 반복하게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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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에 대한 책들을 읽다가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슬라보예 지젝의 책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다. 팬데믹과 철학이라는 키워드가 흥미로워서 읽기 시작했던 책인데, 읽다보니 저자인 지젝에 대해 호기심이 들었다. 분명 내게는 낯선 철학가일텐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한 이름... 블로그 기록을 검색해보니 읽으려고 메모해둔 책 중에 지젝에 관한, 혹은 지젝이 쓴 다른 책들이 있었던 것. 메모만 해놓고 끝났던 지젝에 대한 탐구를 올해 새해에 시작해보기로 했다. 책장에 꽂혀(만)있던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과 최근 책인 「지젝, 비판적 독해」 를 읽기로.
지젝, 비판적 독해 이언 파커, 토드 맥고원, 브루노 보스틸스, 조슈아 러메이, 에이드리언 존스턴, 베리나 앤더맷 콘리, 에릭 포크트, 자밀 카더, 슬라보예 지젝 지음 2021년 11월 글항아리 저자가 무려 9명이다. 철학자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는 지젝에 대해 8명의 학자가 비평하고 마지막으로 지젝이 그에 답하는 것으로 기획된 책이라서 그렇다. 지젝의 책을 한 권 밖에 읽지 않고서 도전해도 되려나 싶지만 천천히 슬로리딩으로 읽어보려는 계획이자,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지젝에 대해 접근해보려는 의도다. 우선 독서계획부터 공유해보는 패기. ( 오늘 퇴근길에 두장 읽었다. ) 1949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난 지젝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95년, 영화 비평서인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를 통해서다.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의 저자 이현우에 따르면 당시는 "주변의 영화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권해주던" 시기였고, 지젝은 '문화 이론의 엘비스', 'MTV 철학자'란 별명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고. ( 그런데 난 영화를 하던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몰.랐.다... )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현대 철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꼽힌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태어나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파리8 대학교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컬럼비아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파리8 대학교, 런던 대학교 등 대서양을 넘나들며 세계 주요 대학에서 강의했다. 2017년 현재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냐 대학교 사회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급진적 정치이론, 정신분석학, 현대철학에서의 독창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꿰어내며 전방위적 지평의 사유를 전개하는 독보적인 철학자다.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과 그와 대비되는 독특한 유머 감각 때문에 언론에서는 “문화 이론의 엘비스 프레슬리” “지적인 록스타”라고 불린다. 스스로 “정통적인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며, 사그라진 ‘혁명’에 대한 논의에 끊임없이 불을 붙이고 있다. 라캉과 마르크스에 대한 저자만의 관점을 담아내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첫 책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시작으로『신을 붙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새로운 계급투쟁』『매트릭스로 철학하기』(공저) 등 다수의 저작을 펴냈으며, 단순한 지식인이나 학자라기보다는 실천하는 이론가로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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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비판적 독해 이언 파커, 토드 맥고원, 브루노 보스틸스, 조슈아 러메이, 에이드리언 존스턴, 베리나 앤더맷 콘리, 에릭 포크트, 자밀 카더, 슬라보예 지젝 지음 2021년 11월 글항아리
저자 중 토드 맥고원, 브루노 보스틸스, 조슈아 러메이는 독일관념론과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를 넘나드는 지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철학과 종교, 정치 등에 대한 그의 사상의 한계, 혁명적 잠재력등을 평가하는 출발점을 제공한다.
적대를 낳은 투쟁에서 벗어난 미래는 없다. 현재는 이 투쟁에 늘 매여 있다. - p91
특히 토드 맥고윈은 헤겔을 사유하는 지젝에게 정치 투쟁에서 ‘적대관계의 불가피함’ 은 매우 중요함을 들면서 좌파가 적대를 버릴 때 적대는 우파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젝의 말을 인용하고 있기도 하다. 지젝에 따르면, 적대와 마주보면서 적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약속하는 어떤 방법도 거부하는 것이 정치 행위다. 그리고 적대적 사회 구조를 동반하는 소외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는 거짓 약속을 모두 물리치는 것이 정치철학자의 과제다.
지젝의 적대에 대한 발언은 여러 칼럼들에서 피상적으로 접해왔는데 그는 적대야 말로 실재라 말해왔다. 주체는 외상을 통해 실재와 대면하는데, 바로 이 적대가 주체들의 외상을 통해 드러난다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쓰는 조화, 상생 같은 단어는 사실 이런 적대를 교묘하게 위장한 가면일 수도 있다는 것.
지젝이 말하는 ‘적대’ 에 대해 이것저것 더 찾아보게 되는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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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비판적 독해 -글항아리 펴냄
우리는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타임 라인 위에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9년 12월에 점을 찍고 2년짜리 눈금에 밑줄을 긋고 있는 중이다. 지구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이슈를 들고 일어나는 피켓 참가자들은 사회가 또는 국가가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를 바라고, 행동해 주길 바라고, 해결해 주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 상황 속에서도 극한의 이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 이런 사회적 반향들이 나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 우선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식으로도 감성으로도 밖에서 외치는 피켓 그들의 삶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촘촘한 사회망 유기구조에 비해 내가 알고 있는 영역들의 얄팍한 지성은 내 목소리를 지조있는 시그니처로 철학할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지젝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다양한 상황을 포착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것과 같다. 그가 논하는 세계는 난해하기도 하고, 독창적이기도 하기에 더불어 <지젝, 비판적 독해>를 통해 8명의 학자들과 살떨리는 논쟁의 장을 들여다 보게 된 것이 아닐까.
그가 참견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헤겔과 마르크스, 라캉스러운 정치적 견해와 인종, 계급 차별을 쟁점화하고, 우리가 처한 현실의 위기를 예표하는 가상현실, 환경 파괴, 지구온난화, 앱뉴노멀, 포퓰리즘, 젠더사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지식확장을 뛰어넘어 최고의 지성인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총체적 난관에 놓여있는 듯한 지구의 위기는 팬테믹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처한 삶의 무게 총량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사회적 위기가 닥쳐와도 여전히 돈의 흐름에 휘둘리는 계급으로 표류하는 노동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생산수단을 소유했을 뿐이지 생산부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계층의 갭을 뛰어넘기 위하여 부단히 자기계발을 하고 좋은 일자리를 찾고, 스펙을 쌓아 경쟁도구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나는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 시스템으로부터 임금을 받는 노동 계급이라면 나의 시간 외의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새로운 경제 질서를 갈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치와 경제 활동의 목적은 과거나 미래나 달라질게 없을 것이다. 역발상을 해보자면, 지젝은 우리에게 논쟁하고 비판하길 권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국가정치적으로 갈등을 겪는 사안들을 돌출하고 어떤 사회를 희망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검증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이런 일말의 연대적 행위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생명에 직결된 상징화 체계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의견을 제시하게 하고 비판하게 만든다. 이것이 지젝이 말하는 헤겔의 상징과 현실의 거리를 줄여나가기 위한 화해로 변증법적 해석의 실마리를 푸는 단계적 진보일지도 모른다. 어렵고 기이했고, 정치사상가들의 이론과 정신분석학을 융합한 그만의 인식체계들이 내 입맛에 쉽게 감칠맛을 당기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러했던 지젝의 지젝스러운 독특한 레시피가 자꾸 중독성을 일으킨다. 옳고 그르다를 떠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중심축이 꽂힌 구심점은 어떤 알갱이들로 모인 것인가를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 보고 새로이 발견하는 프리즘 사상이 필요할 때이다.
#지젝비판적독해 #글항아리 #지젝 #철학서 #헤겔 #라캉 #변증법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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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비판적 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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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비판적 독해』 슬로보예 지젝, 이언 파커,토드 맥고원외 (저자) 글항아리(출판)
1949년 슬로베니아가 아닌 유고슬라비아의 연방 공화국인 루블라냐에서 태어난 지젝. 대중들에게는 비판적인 철학가로도 유명하지만 워낙 농담도 잘하고 자신의 주장이 너무나 확고했고 이렇다 했어도 잠시 후 저렇다고 주장할 만큼 그의 연설은 또 자주 바뀌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대중들에게 아니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다소 친숙한 철학자로 인식돼 있을까?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철학 책을 읽은 독자라면 슬로보예 지젝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이 들 만큼 나 또한 철학 책을 많이 접하면서 유독 지젝에게 관심 있던 이유는 그가 주장하고자 했던 것들에 대한 이해가 나로서는 다소 부족했기에 이번 지젝 비판적 독해는 내가 더 관심 있게 읽어본 책이기도 했다.
총 8명의 학자들이 지젝의 주장에 비판하며 그의 답을 원한다. 학자들의 비판 속에 그는 그만의 답을 내놓는 식으로 책은 펼쳐진다. 철학이라 하면 유독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분야였지만 그만큼 책을 통해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게 많아지는 것이 아이러니가 발생되는 것 또한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놓치고 싶지 않은 분야가 심리학과도 많이 연관된 철학이기도 했다. 철학자 지젝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와 <종말의 삶>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특히 자신을 홍보하며 정치꾼으로 연설가로도 유명해서 강의도 많이 했던 인물 중 하나다. 그의 공산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을 테니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관념과 과학적 표현들에 더 궁금증이 유발되었을 것 같다.
유고슬라비아의 정권 속에 스탈린주의 자주 관리를 경멸했던 그로서는 신자유를 표방하는 자본주의로 인해 그는 스탈린주의가 붕괴되며 자본주의가 지구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분노에 이르렀다. 지젝이 자유주의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슬라보예 지젝은 헤겔, 마르크스, 자크 라캉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비판 이론가이니만큼 그는 대체적으로 정치와 영화, 이론 정신 분석학에 공헌을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1부는 마르크스주의와 라캉 주의 정신분석, 헤겔주의 변증법으로 읽은 지젝에 대해 저자 이언 파커가 비판하는 글로 세 가지 주요한 이론적 흐름을 요약하며 과연 지젝에게는 어떤 대상이 숭고한지 묻는다.<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 지젝의 대표작인 만큼 이언 파커가 그 대상을 묻는 것이다. 이언 파커, 토드 맥고원, 브루노 보스틸스, 조슈아 러메이, 에이드리언 존스턴,베리나 앤더맷 콘리,에릭 포크트,자밀 카더등 총 8명의 학자들이 4부에 걸쳐 지젝이 펼쳤던 주장들에 비판하며 마지막에 지젝이 자신의 생각을 개입하는 형식으로 쓰여있다.
이데올로기 비평 이론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누구보다 흥미로운 제스처와 농담들로 대중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지젝이 이언 파커의 비판적 이론에 대해 어떠한 답을 내놓을까? 지젝의 답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아직 지젝의 사상에 대해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신자연주 의의 반대인 그의 공허한 이데올로기적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대해 이제는 한 번쯤 우리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스탈린주의적 공산주의를 비판했던 그가 지금은 왜 공산주의자가 되었는지 말이다. 마르크스 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헤겔이 빠질 수 없다. 사회 모순에 대해 노동자의 혁명으로 해소한 마르크스! 그는 절친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출판하며 자신을 과학적 사회 주자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자본론을 쓴 인물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많이 들어보았는데 마르크스 주의하면 빠질 수 없는 헤겔은 철학을 분리시키고 철학을 정치적 실천으로 주입시켰다. 그는 철학이 제시하는 정치를 복원할 때 절대자 혹은 절대지식으로 사유와 현실의 화해일뿐 서로가 서로가 스며들 때 진정 철학은 절대자에 이른다고 한다. 그것은 곧 정치적 논쟁의 끝을 의미했다. 헤겔이 추구하는 정치 즉 진보를 세상에서 실현하라는 요구였고 그런 헤겔의 변증법은 절대자를 지향했지만 이는 곧 모순과 종속이 존재했다. 지젝은 좌파 중에서도 변칙적이고 기이한 인물이다. 그가 유일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 바로 헤겔이었다. 헤겔 그가 진정한 정치철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그가 내세운 정치철학자로서의 과제이다. 적대를 극복하는 방법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도피를 모두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던 헤겔. 지젝은 그런 헤겔의 사상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지젝을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마르크스 레닌 주의자여서 좋고 아니어서 좋다고 하는 등 딱 두 가지로 갈린다. 하지만 정말 극과 극이다. 마치 공산주의자로서 이론도 행동도 그렇게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서 더 지젝스럽다. 그래서 그런 공산주의자임에도 그가 다소 위험적 인물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그가 행동하는 것에서부터 우러나오는듯싶다. 21세기 대표 마르크스주의자 지젝! 적대를 좌파 정치의 기초로 삼는데 좌파가 적대를 버릴 때 적대는 우파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한 지젝. 자신이 방금 말한 것도 바로 뒤집어버리는 지젝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까?
과연 지젝의 사상이 현재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지젝이 갖고 있는 부정의 변증법에 대해서 역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도래에 빠져있는지 말이다. 지금도 긍정만을 추구하고 있는 삶에서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완벽한 직장을 다닌다면 우리는 평생 행복할 수 있을까? 내 목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매일 운동하고 채식하고 몸에 안 좋은 것들을 피하고 그러면 우린 평생 건강할까? 모두 적대를 초월한다고 믿는 것일까? 지젝은 적대 없는 존재는 없다고 한다. 지젝은 헤겔로 인하여 적대적 사회구조를 동반하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폭력과 적대를 자신의 정치철학에 포함시켜버린 것이다. 그래서 저자 토드 맥고원은 헤겔이 지젝의 철학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또한 논쟁이 되었던 지젝이 말하는 기독교는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신이 더 이상 자신과 하나가 되지 않았을 때에만 우리는 신과 하나라고 한다. 신 또한 자신을 버리지 않는 이상 신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곧 이데올로기적 사상과도 맞물린다.
보스틸스는 지젝이 유물론자이며 철저한 기독교인임에도 신은 신성한 존재임 이에도 불구하고 신은 인간 안에 있지만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가리키며 비인간적인 중핵 즉 무신론적 중핵을 유물론의 관점에서 인간성을 지탱하기 때문에 지젝은 유물론과 기독교의 필연적인 연관성을 주장함에 있어서 한계에 다다랐음을 비판한다. 마르크스 절친 앙겔스는 변증법에서 3대 핵심 법칙으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양질전화 부정의 부정을 내 새운 만큼 그 후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 변증법과 유물론을 국정 철학으로 보았다 기독교는 시작부터 근대성을 품은 유일한 종교이며 헤겔의 논리는 실재 노리이고 헤겔은 진정으로 기독교인이라는 세 가지 주장을 제시했다.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고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유물론자 지젝에게 있어 기독교는 신과 함께가 아닌 신과 인간 사이의 틈으로부터 신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공포를 자아내는 힘이고 신의 은총을 기반으로 한 종교라 하며 신은 인간의 몸 안에 있는 내재적인 초월이라 한다. 오직 자신 유물론자만이 기독교적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하며 유물론자 임을 자처하는 지젝. 그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무신론이 그리스도교와의 대화에서 얼마나 깊이 있고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그가 존 밀뱅크가 써낸 예수는 괴물이다를 통해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과연 그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스스로가 무신론자라는 역설적인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오히려 무신론자야말로 그리스도교를 더 이해하고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을까라는 지젝의 종교적인 사상을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신론 자이에도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그의 생각은 날 한참 동안이나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의 그리스도교적 본질을 더 꿰뚫어봐야겠다.
지젝의 혁명적 평등주의를 지적한 콜리, 지젝의 사상에 대해 탈식민주의 연구가 과연 유용한지에 대한 물음을 가진 포크트와 카더까지 그들의 주장에 지젝은 마지막으로 답한다.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과연 지젝의 주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그의 반복적인 이야기는 아직도 여전히 지젝인지 또다시 그 물음에 답해야 할 때이다. 찌꺼기 인간은 배제되고 자신이 있을 자리마저 인정받지 못하지만 보편 그 자체라는 지젝의 말을 한 번 더 생각하며 그에 대한 철학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읽을수록 그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한 번쯤 지젝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자신만의 철학 사상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당분간 지젝, 비판적 독해를 다시 한번 독해해보려 한다. #지젝비판적독해, #이언파커, #토드맥고원, #브루노보스틸스, #글항아리, #철학책, #심리학, #마르크스주의, #헤겔주의, #라캉, #정신분석학, #슬로보예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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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비판적 독해 | 글항아리
현 시대의 학자들이 지젝을 두고 비평을 한다. 지젝은 여러 관심 분야를 두루 섭렵한 이 시대의 철학가이자 사상가 중 한명이다. 과연 지젝은 누구인가? 그리고 지젝을 둘러싼 여러 학자의 논점은 무엇인가? 끝으로 지젝 본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이 책은 지젝을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 좋을 것같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 그를 몰랐으니까 말이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지젝이 누구인가는 정의내리기가 힘들다. 그는 모든 것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무를 주장하고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덮을 수 있는 존재이기때문이다.
철학적 이론은 어렵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견해를 듣고 총체적으로 지젝을 이해하는 것은 그나마 수월한 듯하다. 이 책은 지젝이 말하고 있는, 아니, 관여하고 있는 (혹은 관심갖고 있는) 여러 분야들에대해서 학자들이 각 분야에 대해 나누어서 말하고 있다. 지젝을 중심에 두고서 말이다.
이언 파커는 슬라보예 지젝이 분열을 일으키는 개념활동가이며, 까다로운 학문적 논쟁을 즐기는 것과 동시에 대중문화를 여행하며 웃음과 역설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지젝은 대중문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영화, 소설 등의 모든 분야를 그의 저작 활동에 응용한다. 실로 방대한 관심사이다. 지젝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이야기할 부분은 마르크스 주의다. 지젝은 마르크스 주의는 공식과 세계관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이 시도는 의심해야한다고 말이다. 지젝이 추구하는 개념 투쟁은 실제로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지만 지젝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활동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 바로 '레닌을 반복하기'라는 말이다.
지젝은 정신분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에 라캉이 등장하는 데, 라캉은 정신분석가와 정신분석이 미국 자본주의에 적응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 자이다. 라캉은 정신분석에서 자주 등장하는 '잠재적'이라는 의미를 정신분석가가 자신을 위해 고안해 낸 것이라 지적한다. 지젝은 라캉이 제공한 이론 체계를 이용해서 독일 관념론 전통을 가져온다. 바로 헤겔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정성이다. 하지만 단절, 무에서도 무언가는 일어날 수있다. 그것도 급작스럽게 말이다. 지젝은 이를 행위라 말한다.
지젝은 말한다. 세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붕괴는 필연적이라고 말이다. 언론은 자본주의가 생활의 당연한 조건이라고 표방하며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옹호하며 세상 모든 것 중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젝은 생태학의 붕괴는 자본에 있다고 말한다. 생태학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심지어 공산주의가 있어야한다. 현대의 광고는 사악하다. 상품을 소비하면 누구나 자연과 가난한 이를 돕는다는 것.. 이에 윤리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탄생됐다. 과연 윤리적 소비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자본은 그 허울에 생태학을 입고 더 나아가 윤리를 입는다. 스스로 파괴하는 자, 가해자가 선한 피해자로 순식간에 둔갑을 한다.
최근 스타벅스에서 지구의 날을 맞아 에코컵을 나눠준 일이 있었다. 플라스틱 에코컵은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양이 나갔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컵을 받기위해 줄을 섰다. 이것이 생태학을 위시한 자본이다. 자본주의는 이렇듯 사악하다. 지구의 날에 오히려 지구와 역행하는 일들을 하면서 지구를 살린다고, 또는 기부한다고 하는 일련의 행위들... 지젝은 말한다. 생태학까지 포함된, 자연적, 공통적인 것이 위헙받을 때, 시장과 국가 모두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며 진정한 공산주의적 동원만이 우리를 구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지젝을 읽으니 현 상황이 새롭게 해석된다. 멸치와 콩나물을 사는 인증샷을 올리면서 멸공을 외치는 사람들... 과연 제대로 된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를 아는 사람들인가? 한편에서는 공산주의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지젝같은 사상가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멸공을 외친다. (물론 그 외치는 자들은 자본가들이다.) 지젝을 마무리하면서 그의 사상을 응집한 마지막 말을 인용할까한다. 그도 잘 소환하는 베케트의 문장이 그러하다. 늘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라. 조금씩 더 나은 방식으로... 그리고 또 다시 말한다. 실패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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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말하는 그리스도교는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신이 더 이상 자신과 하나가 되지 않았을 때에만 우리는 신과 하나라고 한다. 신 또한 자신을 버리지 않는 이상 신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곧 이데올로기적 사상과도 맞물린다.보스틸스는 지젝이 유물론자이며 철저한 기독교인으로 신은 신성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인간 안에 있지만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가리키며 비인간적인 중핵 즉 무신론적 중핵을 유물론의 관점에서 인간성을 지탱하기 때문에 지젝은 유물론과 기독교의 필연적인 연관성을 주장함에 있어서 한계에 다다랐음을 비판한다.
마르크스 절친 앙겔스는 변증법에서 3대 핵심 법칙으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양질전화 부정의 부정을 내새운 만큼 그 후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 변증법과 유물론을 국정 철학으로 보았다. 기독교는 시작부터 근대성을 품은 유일한 종교이며 헤겔의 논리는 실재 논리이고 헤겔은 진정으로 기독교인이라는 세 가지 주장을 제시했다.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고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유물론자 지젝에게 있어 기독교는 신과 함께가 아닌 신과 인간 사이의 틈으로부터 신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공포를 자아내는 힘이고 신의 은총을 기반으로 한 종교라 하며 신은 인간의 몸 안에 있는 내재적인 초월이라 한다.
오직 자신 유물론자만이 기독교적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하며 유물론자 임을 자처하는 지젝. 그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무신론이 그리스도교와의 대화에서 얼마나 깊이 있고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그가 존 밀뱅크가 써낸 【예수는 괴물이다】를 통해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과연 그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 스스로가 무신론자라는 역설적인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무신론자야말로 그리스도교를 더 이해하고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을까라는 지젝의 종교적인 사상을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신론자임에도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그의 생각은 날 한참 동안이나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의 그리스도교적 본질을 더 꿰뚫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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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비판적 독해』
이언 파커 외 지음 | 글항아리(펴냄)
'슬라보예 지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21세기 후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살아있는' 마지막 철학자」라고 말하고 싶다.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 부른 지젝,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을 대중화시킨 지젝을 이 책을 통해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라 생각한다. 철학 문외한이라 책의 리뷰를 쓰면서 참 부끄럽다. 철학은 대학교 필수 교양과목으로 교육사 철학을 잠깐 들은 것이 전부다. 감히 지젝을 만나기 위해 자료를 찾고 책을 찾고 검색을 해 본 결과 지젝을 만나기 전에 입문 과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먼저 '니체'를 알아야 하고 '하이데거'와 '마르크스' '소쉬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젝의 스승인 라캉까지 읽어야 비로소 지젝에 입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지젝의 인터뷰를 찾아듣고 지젝 권위자의 강의를 찾아보고 지젝 관련 기사를 찾아봤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고 호기심이 더욱 또렷해졌다. 다시 대학을 간다면 '철학'을 전공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 있었다. 책 내용을 단 10퍼센트도 소화하지 못했지만 진지하게 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역할은, 책의 맡은 바, 책이 주는 감동은 대단하지 않은가!
이언 파커로 시작하는 챕터의 제목은 「지젝에게는 어떤 대상이 숭고한가」였다. 이 질문은 독자 스스로에도 꼭 해봐야 할 질문이다. 53페이지의 문장은 이전에 알아온 지젝에 대해서 정리하는 문장이자 모든 것을 압도하는 문장이었다.
『헤겔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지젝은 오늘날 우리가 꼼짝없이 갇혀 있는 곳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그려낸다. 이 길은 늘 완결되지 않으며 반드시 부정적 변증법을 따른다. 지젝다움에는 미완결이 있다. 지젝다움을 온저히 드러낼 체계나 결쇠가 없다는 말이다. 이 미완결은 '지젝 주의자'다움의 미완결이기도 하다. 지젝 주의자답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성을 이해할 때, 세계가 다르게 바뀔 수 있다고 믿으며, 무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한국에도 오신 적이 있는 지젝, 빨간 티셔츠를 입고 쌍용차 노조의 현장에서 노조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사를 보며 지식인을 넘어 '지성인'이구나! 생각을 했다. 또한 인문학을 강조하는 경희대에서 2013년 슬라보예 지젝 특강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만행을 잊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인에 대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크게 노력하는 행위는 '포스트모던적 태도'라면서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포스트모던적 태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상처는 완전히 극복될 수 없을뿐더러 반드시 치유해야 하는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고립된 것이라고 강조한 지젝.
우리 독자들은 '지젝 주의자'일 수 없다. 「오직 지젝만이 지젝일 수 있다」는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슬로베니아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 지젝! 헤겔 철학을 정치를 뒷받침하는 기초로 다시 파악한 지젝, 기존의 헤겔주의자들과 다른 노선을 걸은 지젝, 헤겔에게서 정치적인 견해를 쏙 뽑아낸 지젝. 헤겔이 이미 입헌군주제의 전통적 해석을 뒤집었듯이 지젝은 다시 헤겔의 사상을 뒤집어 놓는다. 철학을, 정치를, 사상을 논하면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지젝이 보기에, 해방이 더는 아프지 않은 순간, 해방은 해방이길 그친다. p91
학자들은 지젝을 향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토드 맥고원, 브루노 보스틸스 등은 지젝을 헤겔 해석자로서 인정하면서도 독일의 관념론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젝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또한 기독교는 유일하게 참된 무신론적 유일신교라는 지젝의 논증을 인정한다. 지젝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철학을 동원한다. 지젝만의 방식이다. 학자들은 지젝이 말한 양자물리학을, 유물론적인 헤겔식 기독교를, 생태 정치학을 언급한다. 베리나 앤더맷 콘리는 지젝이 문화비평가들이 꺼리는 주제도 지젝은 대면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우리는 여기 부패를 저지른 인간과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권력을 잡은 자와 그들의 권위, 그 권위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적 신비화와 세계 질서에 맞서 싸웁니다. 지젝은 확실히 그렇게 싸운다. p230
이들은 지젝을 인정하면서도 지젝에게 관점이 너무 자주 바뀐다고도 지적한다. 나는 이 책을 대하면서 지젝이 다루지 않는 영역은 과연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젝은 2005년 가을 파리 교외에서 일어난 폭동에서 국가 폭력까지 방대한 영역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지젝은 이 모든 질문에 마치 답하듯이 『왕과 천민, 섹스 그리고 전쟁』을 통해 말한다. 마르크스 주의, 라캉, 헤겔 중 자신의 지식 기반으로 삼은 철학들 그중 헤겔의 철학에서부터 끌어낸 사유를 여기서 만날 수 있었다. 사회 보편성에서의 헤겔은 말한다. 사회문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 아니며, 사회의 부가 가난한 자를 돌볼 만큼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부가 너무 많이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가 부유할수록 가난도 더 커진다는 헤겔.
지젝의 문장을 통해 본 헤겔, 가난은 물질의 빈곤만을 뜻하지 않으며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한, 주관적 처지를 뜻한다. 성에 관해 기독교에 회의적인 지젝은 성욕은 근원적으로 형이상학적 활동인 순수한 영성과 경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 후반에서 지젝은 헤겔의 철학은 결국 유물론에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왕과 천민, 섹스, 전쟁이 가지는 공통점 그 '반향'에 대해.... 적대적 사유를 동반하는 소외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는 거짓 약속은 2022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로 다가온다. 이것이 우리가 지젝을 읽어야 할 이유다.
일반인 독자가 지젝 철학서를 읽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언제 니체의 인식론을 을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칸트까지 완벽히 읽은 후 다시 지젝을 만나겠는가! 10년 정도 철학만 파고들면 가능할까? 모든 담론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지젝, 언어에 떡칠된 세상! 의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제 실재하지 않는 모든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의심하기 시작한 인간들에게 자본주의가 주는 당근에 중독된 우리들에게 다시 지젝이다!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신 자본주의여! 슈퍼맨처럼 혹은 원더우먼처럼 슈웅 날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어준 이데올로기, 지젝은 이 모든 것을 넘어선다. 물질을 초월하고 이데올로기를 예술을 양자 역학을 초월한 철학자이자 사상가! 다 깨부수는 살아있는 철학자 지젝~~!!
방랑의 시대 더욱 필요한 것은 돛이다. 다시 책으로 가서 소설, 영화, 예술, 양자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지젝이 관여하지 않는 부분은 없다. 라캉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스까지 완벽히 깨버리는 지젝의 사유. 자밀 카더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을 나는 다섯 번 읽었다. 이언 파커, 토드 맥고원, 브루노 보스틸스, 조슈아 러메이, 에이드리언 존스턴 등 여덟 분의 석학이 다양한 논제로 지젝과 나눈 담화, 지젝의 사상에 대한 견해와 비판적인 견해들을 이 책 한 권에 담았다.
이언 파커가 쓴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젝은 심지어 자신이 틀렸을 때조차 우리 시대를 위한 사상가라고!! 책을 읽는 동안 너무 신나서 마디마디 세포가 다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 흥분을 독자님들과 나누고 싶다. 『지젝, 비판적 독해』 이 시대 마지막 지성인 지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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