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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철학이라는 새로운 길의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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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철학'이라는 아주 숭고한 이름을 달고 출판한 『디자인철학』의 출판 소식을 처음 접하자마자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 찼었다. '철학적으로 디자인하기' 같은 책은 많았다. 대부분 여기서 말하는 철학이라는 게 생각과 동의어에 불과했다. 아니면 디자이너가 가진 신념이나 지조를 의미했다. 디자인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대범한 시도는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사실 찾아보면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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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철학'이라는 아주 숭고한 이름을 달고 출판한 『디자인철학』의 출판 소식을 처음 접하자마자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 찼었다. '철학적으로 디자인하기' 같은 책은 많았다. 대부분 여기서 말하는 철학이라는 게 생각과 동의어에 불과했다. 아니면 디자이너가 가진 신념이나 지조를 의미했다. 디자인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대범한 시도는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사실 찾아보면 디자인철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한 시도가 이전에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내용은 조금씩 다르긴 하다. 아직까지 정립된 연구 분야가 아니다 보니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마다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결론부터 까놓고 말해서 지은이와 옮긴이가 밝히듯 이 책이 정말 "지금까지 탐사되지 않은 어떤 주제에 철학적 접근법을 적용한다."를 성공적으로 이행했는가? 난 약간 아리송하다. 논의의 전반이 이미 미학, 기술철학, 사회학, 윤리학 등 인접 학문에서 다뤄진 논점들이다. 디자인 자체도 순수예술과 공예, 그리고 공학 사이 중간적인 성질을 지닌 분야이지만, 오직 디자인만이 해결하고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스스로 답할 수 있는 분야가 없다면 애초에 하나의 분야로 취급할 수도 성립할 수도 없다.

물론 『디자인철학』 에서 찾을 수 있는 오직 디자인만 답할 수 있는 논점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1장의 '디자인 정의하기'이다. 당연하지만 디자인을 정의하는 것은 디자인만 할 수 있으며 디자인에게만 의미 있다.

둘째는 기능성과 심미성 사이의 줄다리기이다. 오로지 디자인만 겪는 문제인데 순수예술이라면 기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 없고, 공학이라면 심미성을 두고 고뇌할 필요 없다. 디자인에서 이 두 개념은 얼핏 양립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론적인 층위에서 둘의 알력은 모호함을 남긴다. 『디자인철학』 도 이 기능성과 심미성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디자인철학』 의 내용은 크게 삼등분 할 수 있다. 1장과 2장은 디자인 자체에 대한 자기 지시적인 내용이다. 7장은 디자인 윤리이다. 나머지 「3. 모더니즘」부터 「6. 기능, 형태, 미학」이 모두 기능성과 심미성에 대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3장은 모더니즘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이후 이어지는 논의의 서론이 된다. 결국 이 모든 논의의 시작은 모더니즘에 있으니 모더니즘과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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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이 없었다면 지금의 디자인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디자인에서 모더니즘만큼이나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구조화되고 정립화된 디자인 이론이 있을까 싶다. 단언컨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모더니즘이 디자인에 끼치는 영향력은 현재도 어마어마하다. 과거의 존재가 아닌 지금도 손을 뻗치고 있는 존재이다. 결국 4장부터 6장의 내용은 모더니즘 디자인 이론과 모더니즘에 반하는 입장들의 대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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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디자인의 어떤 성질이 먼저냐고 스스로 묻는다면 답은 하나다. 나도 모르겠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을 보니 『디자인 철학』 은 확실히 철학 책이다. 의견 중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이게 읽고 난 후의 생각이다. 어느 측면에서는 옳아 보이지만 조금만 뒤틀어도 반박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답답할 수 있다. 명확한 정답을 원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디자인철학』 에서 정답은 앞으로의 논의 진행을 위해 디자인을 정의할 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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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딱 하나를 꼽으라면 난 디자인은 심미성에 더 포커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능성은 공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디자이너는 어느 정도 기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심미성을 우선해야 한다. 기능성이 우선되면 디자인과 공학은 큰 차이가 없다. 반대로 심미성을 먼저 고려하면 예술과 동일해지지 않는다. 예술 작품은 그것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사용해야 가치를 인정받는 게 아니다. 하지만 디자인 사물(제품, 포스터, 건축물 등 모두 포함해서)은 다르다. 디자인 사물은 인간과 관계 맺어짐을 통해, 즉 사용되는 경험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만약 디자인 사물이 전시장에 진열되어 있다면 그건 디자인보다는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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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번역이 많이 애로 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구절이 있는데 "…특정 유형의 제품의 사용의 역사의 문제라고…"이다. 원문에서도 문장의 구조가 "A of B of C of D of E"라고 하면 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피라미드 쌓는 것도 아니고 한국어 문체에 맞게 수정을 어느 정도 가할 필요는 있었다. "특정 유형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문제" 정도로 번역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임의로 번역한 것도 번역체에 가깝다. 이것 외에도 읽다 보면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그런 문장이 몇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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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한 장르이기 때문에 디자인 실천뿐만 아니라 이론에도 평소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번역은 좀 그렇지만 내용이 못 볼 건 아니니까.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론들이 디자인 철학을 건설하기 위해 어떻게 쓰이는지 보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모더니즘에 대항할 수 있는 디자인 이론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있긴 하지만 사실 디자인 영역에서 입지는 모더니즘보다 덜한 게 자명하다. 자기 이름에도 명시되어 있는데 어떻게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출산한 반항아나 마찬가지다.

m******************2 2022.06.1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