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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가 떠난 언론인 자리에 그의 신뢰성을 이어받거나 능가하거나 혹은 대신할 누군가는 아직 등장하지 않는 거 같다. 파란색 수의에 포승줄에 결박되어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젊은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물론 30년 가량 전의 상황이지만 말이다. 사람의 신뢰는 살아온 흔적을 통하여 축적되는 것이며, 손석희의 삶은 그 신뢰를 축적시킨 이력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과 글은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사회에서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그가 현역으로 매진할 기회가 없을 것으로 보이며, 그의 삶의 궤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의미없는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언론인적인 신뢰와 인간적 올곧음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거 같다. 물론 예외란 있는 법. 이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없진 않을 거다. 그는 자신의 올곧음으로 인하여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파란 수의의 사진이나, 시선집중, 100분 토론에서 물러난 상황 등등...
그의 약 40년 언론인 인생의 거의 종착점에 가까운 시점인 2021년 이 책 ‘장면들’을 통하여 어느 방송사 사장에서 그는 순회특파원이란 이름의 직함으로 현장에 복귀했다고 한다. 순회특파원이 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60대 후반의 나이에 사장에서 순회특파원이라고 하면 현직에서 떠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지..흔히들 얘기하는 공로연수가 맞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물론 이후 그의 삶이 흔적이 어떤 식으로 남겨질 지는 지켜볼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그가 종편 방송사로 자리를 옮겨 뉴스 앵커 시절에 다룬 우리사회 커다란 사건과 그 사건을 다룬 방송사와 기자들 그리고 자신의 배경상황, 취재 및 보도 상황 및 그 사건을 대하는 그의 생각과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전의 여러 방송에서 확인되었듯 사안을 객관적이고, 본질적으로 보는 노력과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책의 내용도 그 사안들의 핵심에 접근하여 명확한 입장과 방향을 향해 전진하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불합리하고 상식적이지 않으며, 뭔가 권력과 자본의 속성에 가라앉아가는 우리사회를 실랄하게 저널리즘으로 난도질한다고 할까. 그의 그런 입장과 태도를 책에서 처음으로 전달하는 사건이 삼성의 노조와해전략사건이다. 삼성과 특수관계인 종편 방송사가 주변의 시선과 편견을 뚫고 보도해 나가는 그와 그의 주변인들. 이것을 통하여 그는 자신이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공기가 되어야 할 언론으로서 방향을 잃지 않고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공교롭게도 그는 감옥에 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의 의심스럽고 중대한 사건에 관여했다. 언론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숙명이겠지만, 모든 언론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의 이름값이 그 사건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명박의 BBK사건과 에리카 김의 인터뷰 등은 종편 방송전인 시선집중에서 다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 모순과 문제를 대중에게 밝혔음에도 이명박은 기어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임기 후 자신의 비리로 현재는 감옥에 갇혀있다. 최순실의 태블릿을 보도했던 것은 종편방송에서였고, 박근혜는 결국 그 파급력을 감당하지 못해 탄핵되어 그 책임으로 감옥까지 갔지만, 운 좋게 사면되어 아마도 재기를 노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대선후보였고,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안희정은 그 비서의 미투(성폭행 폭로)로 결국 감옥에 갔고, 정치생명은 끝이 났으며, 그 미투의 정점을 밝힌 것도 손석희와 피해자라고 밝히는 한 인물과의 인터뷰였다. 최순실이 아니더라도 박근혜는 2014년 4월 세월호가 꽃다운 학생들의 목숨을 안고 바닷속에 가라앉았을 때 이미 자신도 같이 가라앉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세월호와 팽목항의 중심에 역시 손석희가 있었다. 박근혜가 감옥에 가고 촛불을 통한 정권이 바뀐 후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어 두 정상이 만나고 더욱 발전된 관계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던 순간에도 손석희는 그 중심에 있었다. 이 책에서 손석희는 이런 굵직한 순간의 보도능력을 어젠다 키핑으로 묶어서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손석희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로 어젠다 키핑이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다. 손석희가 가고 아직까지 그 어젠다 키핑이 가능한 고집스럽고 신뢰할 만한 언론인은 나오지 않는 듯 하다.
어젠다 키핑에 이어지는 책의 나머지 부분은 저널리즘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경험을 종편 방송에서 자신이 실천했던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그가 시선집중과 100분 토론에서 물러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 확실시 되는 이명박 무리의 조치에 종편방송으로 옮겨간 그는 사장이라는 최고 의사결정의 자리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저널리즘의 방향과 역할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 내용이 초반엔 약간 감상적인 소회를 옮겨놓은 듯 하고, 후반엔 대한민국 뉴스의 포맷과 진행방향 심지어 무대마져 주류로 바꿔버린 것으로 생각되는 뉴스룸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그와 관련한 주변인들의 노력과 헌신 그리고 몇몇 이야기를 담아내어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전반부에 비해 무게감은 다소 낮아 부담이 덜하고 어쩌면 그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접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앵커브리핑, 팩트체크, 비하인드뉴스 등은 기존 공중파 등의 뉴스에서 구경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였으며, 그것을 통하여 그의 언론적 신뢰성은 더욱 공고해졌던 것으로 보이고, 한때는 상업적 성공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름을 바탕으로 한 노력과 주변인들의 ? 어쩌면 손석희라는 이름이기 때문에 주변인들의 노력과 능력도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일 수도 있겠다. - 도움으로 말이다.
그가 떠난 지금 20대 대통령 선거가 한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역할했던 것으로 인해 12월 겨울대선에서 3월 봄대선으로 시점이 옮겨갔으며, 기존 대선과 다른 양상의 비호감, 무능, 범법, 혼동 등 새로운 개념들이 등장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와중에 손석희만큼 강렬한 어젠다 셋팅과 키핑의 능력을 갖는 언론인의 부재로 어쩌면 사람들의 판단이 혼란을 더해가는 것도 같다. 손석희도 어쩔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언론을 통하여 전달되어도 그 신뢰와 정확성, 다른 말로 팩트체크에 대한 의구심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언론은 신뢰가 핵심인데, 현대 사회는 모든 가치의 개념 앞에 경제성, 즉 자본이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그 자본과 권력의 핵심으로 옮겨갈 능력과 가능성이 너무도 높았던 인물이었다. 아직 그가 삶을 다한 것이 아니므로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그가 끝까지 언론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 보인다. 그의 말과 삶의 궤적이 무게를 갖게 되는 중요한 이유이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문제를 발견해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문제를 제기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의심은 모든 기존 현상을 향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과정은 극단적이어선 안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합리적인 자세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가 책의 전반에서 주장하는 언론이 가져야 할 자세 ‘합리적 진보’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혼란의 대선판에서 한국 정치상황에서 언론뿐 아니라 일반인도 생각해볼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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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MBC에서 <100분토론>이나 <시선집중>과 같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다. 방송사를 불문하고 뉴스에 대한 불신이 깊은 시절이었음에도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은 가급적 찾아듣거나 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그가 MBC를 떠나면서 차츰 기억 밖으로 사라졌고, 느닷없이 종편에 모습을 보였을 때는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관심을 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그가 진행하는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보았다.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여운은 가슴에 오랫동안 남았다. 그 후로 시간이 되면 뉴스는 차치하고 ‘앵커브리핑’만이라도 보고자 했던 것 같다.
이 책 [장면들]은 그가 JTBC로 자리를 옮긴 후 <뉴스룸>에서 다루었던 사건들에 대한 기록과 그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 1부 ‘어젠다 키핑은 무엇인가’와 2부 ‘저널리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로 구성된 이 책에서 그는 저널리즘의 핵심을 어젠다 키핑이라 말하고 있다. 어젠다 키핑이란 흔히 언론의 기능이라 말하는 의제설정을 넘어서서 그 의제를 꾸준히 지켜내는 것을 뜻한다. 사실 그간의 우리 언론은 의제설정에만 치우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 의제마저도 제대로 된 것인지는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건의 본질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맡는 곁가지에 신경을 썼고,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내팽개치곤 했지 싶다. 그러다보니 사건은 오래 지나지 않아 당사자들에게만 한으로 남고,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무심해지고, 그걸 보며 비웃고 희희낙락했던 것이 소위 말하는 언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앵커로 <뉴스룸>을 진행하던 시기 실천한 어젠다 키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현장을 200일 넘게 지키며 보도를 이어간 것이나 국정농단 사태로 이어진 태블릿PC 보도는 언론이 의제를 설정하고 그 의제를 지켜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외에도 삼성노사전략 자료 보도, 미투운동, 그리고 남북미 대화 국면의 보도를 통해 현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그 과정에서 자세히 알지 못하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내용들의 기록은 우리가 지나온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우리는 제대로 걸어왔는지를 성찰해보게 만든다. 또한 저자는 저녁 9시뉴스를 8시부터 100분 동안 진행하는 <뉴스룸>으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생겨난 고정코너들인 ‘앵커브리핑’·‘팩트체크’·‘비하인드 뉴스’·‘문화초대석’·‘엔딩곡’과 같은 코너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보도원칙으로 4가지를 들고 있다. 팩트·(이해관계 속에서의) 공정·(이데올로기에 있어서의) 균형·품위가 바로 그것으로, 그는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뉴스룸>이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받게 되었지 않나 싶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 혹은 생각에 따라 제각기 평가를 한다. 그래서 그를 나와 다르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저널리즘을 위해 운동을 할 수는 있어도,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그가 진행했던 <뉴스룸>은 저널리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 <뉴스룸>을 떠나면서 뉴스진행을 내려놓고, 2021년 현장으로 돌아왔다는 그. 그가 기록한 지나간 시간의 장면들은 지금의 언론이 진실을 추구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보도를 해왔고 또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혹 감시견을 가장한 애완견 혹은 경비견은 아니었는지. 누구나를 불문하고 제각기 공정을 말하지만 공허하게 들리는 시대에 ‘종종 멀리 돌아가고 가끔은 멈추거나 뒷걸음질 하더라도 각자의 영역에서 타당한 선택을 해나가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만큼 언론이 제자리를 찾기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책 [장면들]은 지금의 언론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어젠다 세팅이고, 우리는 이제 그 어젠다를 키핑하는 언론을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아닐런지. 나 역시도 그가 기록한 지난 시절의 장면들을 읽으면서 똑같은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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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간판 프로그램 <100분 토론>의 앵커로 유명했던 손석희가 JTBC로 옮겼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왜 하필 종편이지.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얼마 뒤 손석희는 종편이 아닌 JTBC 방송국 앵커로 다가왔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1년 가까이 한 사건을 취재해 방송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냈고, 가장 큰 진가는 국정농단의 단초를 마련했던 태블릿 PC 관련 보도다.
이후 많은 사람이 뉴스를 챙겨볼 때 JTBC 뉴스룸을 챙겨보았을 것이다. TV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나도 몇 번 챙겨봤을 정도니 다른 사람들이야 알만하지 않은가.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에서는 다른 방송국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방식을 채택했다. 그중의 하나가 문화초대석이다. 좋아하는 인물이 출연했을 때 본방송을 보지 못하고 일부러 영상을 찾아보며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있다.
변화의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라고 해도 좋겠다.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닌 대중이 원하는 것,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의 한 명이었던 손석희가 전하는 8년의 기록들은 우리가 함께 응원했고 추구했던 사회 정치적 결말을 마주하기도 했다.
생각해보자. 저널리즘이 무엇인가. 오늘의 일들을 기록해내고, 그것을 각자의 관점으로 담아낸 다음 공감을 얻어내는 것. 노래든 영화든 그림이든 ‘문화’ 현상을 담아내는 것도 명백한 저널리즘의 영역이다. (344페이지)
그가 전하는 굵직한 사회적 사건들은 우리를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가슴 뛰게 혹은 아파하며 견뎠던 시간의 기억들이다. 삼성 관련 뉴스에서부터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스모킹건이 된 태블릿 PC, 대통령 선거, 미투의 시발점이 되었던 한 검사의 인터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당시에 나왔던 뉴스의 내용 그대로 전하기보다는 시발점이 된 사항과 과정을 크게 나타냈다. 외압이 들어와도 과감하게 쳐내고 저널리즘의 혁신을 꿈꾸었고 그것을 실행했다. 아마 오래도록 좋은 언론인으로 회자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크게 내세웠던 논리는 아마도 저널리즘일 것이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2부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언론이 왜 존재하는가. 사실을 보도할 책임이 있다. 누군가의 압력에 의해 작성된 글보다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한 내용을 전해야 하는 직업이다. 손석희가 말하길, 계속 의문을 가지고 보라고 했다. 그러한 작업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저널리즘의 명쾌한 논리를 엿볼 수 있었다. 보도의 원칙으로 삼았던 네가지 키워드, ‘사실, 공정, 균형, 품위’를 기억하면 되겠다. 누구보다 앞서 실천했던 진정한 저널리스트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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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사장의 『장면들』을 읽기는커녕 책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 형식으로 쓰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 서점인 예스24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11월 25일에 800만 조회수를 자축하는 의미로 '히트 이벤트'를 마련했었다. 800만 번째 방문객에게 정가 2만 원 이내의 범위에서 원하는 책을 선물하는 이벤트였다. 예스24의 이웃인 소라향기 님이 당첨되었는데, 그분이 원하는 책이 『장면들』이었다. 약속대로 그 책을 구입해서 보내드렸고, 위 사진은 책을 받았다는 감사 포스팅의 일부이다.
손석희 사장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언론인이었다. 다른 모든 언론인이 이런저런 이유로 뜻을 굽히더라도 이 사람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손석희 사장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면서, 최소한 뜻을 바꿀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믿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손석희 사장 역시 많은 언론인과 함께 윤석열 검찰총장의 편에 서서 그의 주장을 대변하는 듯한 방송을 했다. 그 순간 이 사람도 믿을 사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손 사장의 변화에 놀란 사람들이 jtbc 뉴스룸 생방송 시간에 '돌아오라 손석희!'라는 피켓을 들고 흔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결백하다고 믿은 것도 아니다. 평범한 서민인 내가 그런 사실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어쩌면 의혹의 상당 부분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손석희 사장을 버린 이유는 단 한 가지 '형평성'이다.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비슷한 의혹을 지녔던 나경원 의원에 대해서는 윤석열 검찰은 왜 같은 강도로 수사를 하지 않았는가? 그 당시에도 장모님 의혹이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는데, 자신의 장모는 왜 수사를 하지 않았는가?
여기까지는 이해를 했다. 혹시 윤석열 총장이 나경원 의원과 가까워서 수사를 피했을 수도 있고, 장모님은 가족이니까 감쌌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윤석열 총장이 혹시 그렇게 했다고 해도……, 제삼자로서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언론인은 그래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한국 언론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손석희 사장은 중용의 모범을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손석희 사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수사가 손 사장이라고 안 보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손석희 사장은 이제 언론인으로서 죽은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손석희 사장도 완벽한 신이 아니다. 이런저런 실수나 착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의 조국 전 장관 가족과 장모님의 수사는 형평성에 어긋난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의 눈에 보였을 사실을 말하지 못한 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손석희 사장에게 친밀감을 느끼면서 그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이후로 그에 대한 책을 읽지 않기로 했다. 이 책 역시 선물은 했지만 읽지 않았고,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었지만 펼쳐보지도 않았다.
다만 궁금하기는 하다. 조국 전 장관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윤석열 총장은 지금은 검찰총장에서 하차한 뒤에 국힘당 대선후보가 되었고, 손석희 사장은 뉴스룸 앵커에서 물러났다. 윤석열 후보의 장모님은 법원에서 구속이 선고되었고, 배우자의 여러 의혹도 일정 부분 사실로 인정되어서 사과도 했다.
손석희 사장의 『장면들』에서는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의혹에 대한 자신의 보도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했을까? 그때의 방송이 정당하다고 했을까, 형평성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부끄러워 했을까? 그때 왜 그런 보도를 했어야 했을까? 정말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의혹이 사실이고, 윤석열 총장의 가족은 무죄라고 믿었던 것일까, 그렇게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게밖에 보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르겠다.
하기는 『장면들』에서 내가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두환 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과를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손석희 사장에게 혹시 어떤 오류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전두환 씨의 잘못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장면들』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던지 관심을 두지 않고 살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손석희 사장에게 아무런 유감이 없고,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어려웠던 시절에 긴 세월 동안 참언론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고마웠고, 어떤 사람이라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알려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읽을 인연이 없을 듯하지만, 부디 『장면들』이 많은 독자를 만남으로써, 손 사장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시절의 활동에 대한 보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창 시절에 읽은 조지훈 시인의 『지조론』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것이 떠올랐다.
"지성인의 변절은 그것이 개과천선(改過遷善)이든 무엇이든 인간적으로 일단 모욕을 자취(自取)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妓女)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좇으면 한평생 분냄새가 거리낌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貞操)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 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거니와, 늦바람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직 지조를 깨뜨린 적이 없는 이는 만년(晩年)을 더욱 힘 쓸 것이니 사람이란 늙으면 더러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 든 탓으로 바람이 났던 이들은 스스로의 후반을 위하여 번연(飜然)히 깨우치라.(조지훈, 『지조론』에서 갈무리)"
개인적으로 멋 훗날에 손석희 사장의 삶이 『지조론』의 예화로 거론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고 있다. 나 역시 바르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누구를 평가할 처지가 아니다. 다만, 처음의 뜻을 간직하며 평생을 살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저자에게 고마운 마움을 전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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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말해서 무엇 하랴!
책은 손석희’의 최근까지 이야기다. MBC를 떠나고 더욱 우리에게 그 존재감을 드러냈던 jtbc, 그리고 최근까지의 일이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시장의 논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언론사와 그의 역할, 그리고 그 뒷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었다. 그가 그립다면,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의 그가 가졌던 ‘품위’와 ‘교양’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 그가 추구했던 ‘어젠다 키핑’, ‘합리적 진보’, '뉴스의 품위'를 배울 수 있으니. 그리고 tv속 정갈한 그를 그대로 문장에서 느낄 수 있으니. 또 하나, 한 번 잡고 완독으로 내리읽였다면 믿겠는가? 에세이가 흥미진진하기까지.....다음 페이지가 궁금한, 무협 에세이.(?)
손석희는 다시 실무로 돌아갔다. 스스로의 만족인가?
아니라면, 다시 가르치시라.
우리 사회 아직은 그래도 끝까지 기레기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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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뛰어난 뉴스 진행 솜씨와 언변을 모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가 글도 잘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언론계에 몸담은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는 주로 말로 세상과 소통해왔기 때문이다. 책이나 칼럼으로도 그의 글을 좀처럼 볼 기회가 없어 그냥 전달력 좋은 뉴스 진행자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가 진행한 수많은 뉴스 대본과 앵커 브리핑은 직접 쓰고 작가가 다듬는 과정을 거쳤으니, 적어도 수천 편의 글을 생산했다는 얘기도 된다. 그의 말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들을 때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때로는 궁금한 지점을 콕 짚어주는 언변은 그의 생각에서 나올 것이고, 그의 말은 당연히 글과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책 <장면들>의 흥미진진함은 소설 못지않다. 이미 알고 있는 뉴스의 취재 뒷얘기와 저자의 언론인으로서의 생각과 태도가 중간중간에 드러나는데, 그에게 가졌던 약간은 비판적 시각이 누그러지면서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굵직한 사건들의 현장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장면을 곁에서 지켜보듯 숨 가쁘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탄핵, 미투 사건과 남북대화 이슈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지만, 정치적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들이다. 뉴스가 그 사안들을 어떻게 다루고 왜 그렇게 보도했는지 손석희 사장의 입장에서 설명해 준다.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저널리스트로서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책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개에 비유한 사례를 한번 살펴보려 한다. 전통적으로 미디어는 감시견(watchdog)과 애완견(lapdog)으로 비유되었다고 한다. 감시견은 사회 권력층과 기득권을 감시하고 권력의 부패와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언론의 역할이다. 애완견은 권력의 충실한 아부꾼이 되어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찬양하는 데만 골몰하는 언론을 말한다. 어느 언론이고 둘의 중간 어디쯤 속할 테지만 대체로 독재 정권에서 나팔수를 자처하던 언론이 애완견에 가까웠다면, 한때 시민의 꿈을 등에 업고 창간했던 한겨레의 초기 모습 또는 탐사보도채널인 뉴스타파가 감시견쯤 되려나?
여기에 또 한 마리의 개를 등장시키자면 '경비견'이 있다. 경비견은 주인을 위해 침입자를 감시하고 경고하는 존재인데, 여기서 주인은 헌법적 가치와 사회 시스템 정도 되겠다. 그러니까 현 국가체제를 위협하는 상대라면 누구라도 적으로 여기고 짖는다고나 할까? 따라서 집권 정치세력이라도 현재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체제를 위협한다면 그 세력은 침입자로 간주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지배 세력은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침입자였으며, 이를 감시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언론이 했고, 결국 탄핵으로 정권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논리다.
나는 감시견이나 경비견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감시견의 비판이 권력을 향한다면, 경비견은 그 대상이 기득권이나 사회적 약자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인가. 문제는 지금의 언론은 전통적 의미의 개의 비유에도 걸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이 으르렁대며 마구 짖고 공격하는 대상은 그들의 이익, 즉 신문사의 사주와 기자의 사익을 위협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게 사회적 약자나 노동자, 또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력인지, 집권세력인지의 여부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우습지만, 최근의언론의 행태를 보면 비유뿐만이 아닌 진짜 개가 되려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든다.
보수 언론들이 박근혜 정권을 향해 공격의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 것도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박근혜 정권이 집권의 공동 기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수 언론을 무시하고 그 이익을 혼자 독식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증거가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결국 대부분의 언론은 국가의 안위나 민주주의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고 사주의 정치적 편향과 이익, 그리고 기자 자신들의 사익에 충실한 경비견일 뿐이었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는 군림하려는 세계 최하위 수준의 신뢰도를 기록하고 있는 언론이니 더 말해야 무엇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손석희 자신이 저널리스트로서의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해온 부분은 인정한다. 이 책 <장면들>을 다룬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는 손석희를 우리나라에 보기 드문 희귀하고 품격 있는 언론인으로 평가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이 거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뛰어난 한 언론인의 선의에만 기대 제대로 된 감시견의 역할을 맡기기에는 온통 썩은 언론들 투성이다. 게다가 그들의 비리와 거짓, 탐욕에는 어떤 제제수단도 거의 없다. 손석희 자신도 때로는 레거시 미디어의 수혜자로 그의 관계 범위에 의해 항상 영향을 받는다. (그가 만나고, 얘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부류가 어느 층일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제 언론에게 권력을 감시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경비하는 개가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임이론에는 팃포탯이라는 성공적인 생존전략이 있는데, 사회시스템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원리다. 상대방의 선함을 가정하고 손을 내밀어 그들이 응하면 상호번영하는 것이고, 배신하면 과감하게 응징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다. 시민들이 언론을 믿고 민주주의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감시견의 역할을 그들에게 기대했으나 언론은 그 신뢰를 저버렸다. 이제는 제도적으로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을 줄이고,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물론, 기자들은 억울해 할 것이지만, 누군가 한 말처럼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해라, 방법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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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손석희 스러움이 뚝뚝 묻어났다. 겉표지부터 안의 모든 내용들에서 음원이 지원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디오북도 아닌데 분명 읽고 있는데 데스크에 앉아서 카메라 응시하면서 또박또박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감이 잘 안오시는 분들은 읽어 보시면 알게 된다. 요즘은 뭐 정신없어 온전히 뉴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진 못한다. 하지만 한창 테블릿PC가 나올무렵에는 JTBC뉴스의 열렬 시청자였다. 손석희가 말하면 거짓말도 진실로 무장할 수 있을 것 처럼 진중한 표정과 말투, 논리정연함과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당연히 뉴스룸을 봤다. 팩트체크도 신뢰가 갔고, 비하인드 뉴스, 앵커브리핑까지 뉴스가 재미있기까지 했다. 특히 앵커브리핑의 나레이션과 마지막 엔딩곡이라니...뉴스에서 음악으로 마무리 되다니 처음에는 꽤나 충격적이고 나중에는 엔딩곡이 기다려졌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하기전 전신이 손석희 DJ였다니... 역시 선곡이 틀리다 했다. 문화초대석의 손님들과 조금은 긴장이 풀리면서 살짝 미소를 보이는 손석희 아나운서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지금은 앵커를 떠난 것이 내심 너무 아쉽고 다시 깜짝 뉴스 진행을 해주셨음 좋겠다는 생각이다. "JTBC의 저널리즘은 이미 일관된 사고체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 진보'라는 건 이미 공유돼 있지요. 저는 그것을 실천하는 네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공정, 균형, 품위였습니다. 그리고 언론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부임 초에 제시하고 우리 뉴스의 모토로 삼은 바도 있습니다. 즉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고,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뉴스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고요. 그 방법론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요즘도 자주 쓰는 '한걸음 더 들어가는'뉴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위의 문장에 들어있는 그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은 JTBC에 초석이 되고 뉴스룸의 가치가 된 것 같다. 전 열혈시청자로서 품위있는 뉴스라는 느낌은 팍왔다. 때로는 타방송의 뉴스중 지라시조로 하고 고함에 반욕설조로 하는 아나운서를 보면서 저건 뭐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론에서 '어젠다 세팅'이 중요한 쟁점인 것 같은데 손석희님은 '어젠다 키핑' 이 한단계 위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단기적인 뉴스는 기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뉴스를 200일 연속해서 내보낸 것도 뉴스계의 최장기 어젠다 키핑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국내 언론계의 생태계를 살짝 엿볼 수 있었것, 근래 다뤘던 굵직한 사건의 장면들을 엿볼 수 있어서 값지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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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페이지짜리면 몇시간이면 충분히 완독할 분량의 책인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가 가족에 대한 협박에 대처하는 모습은 오히려 인간적이었기에 그것이 그가 그런 대담함을 가질 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긴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저널리즘이어서 관심을 끊은 것이겠기에 그의 진로를 바꾸고 싶진 않으나 그만한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와해보며 그의 다음 글을 기다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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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뉴스를 잘 보지 않았다. 포털에 넘쳐나는것이 뉴스였고, 뉴스시간을 매번 맞춰 보기도 힘들었다. 퇴근시간이 들쭉날쭉이라.
"그때는 결정해야했다. 감정은 사그라지고 논리만 남아 있을 때, 그마저 닫아버리면 어찌 되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감정도 안남고, 논리도 안남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p.71
"언론은 담장 위를 걷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진실과 거짓, 공정과 불공정, 견제와 옹호, 품위와 저열 사이의 담장. 한발만 잘못 디디면 자기부정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는 언제나 유효하다. 다만 그 담장 위를 무사히 지나갔다해도 그 걸음걸이가 당당한 것이었는지 아슬아슬한 것이었는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터이니 참으로 어려운 길이다." p.289
책은 저자가 JTBC에서 앵커로써 있었던 기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언론인으로써 저널리즘에 대해 어떤 기준과 신념으로써 일해왔는지를 그만의 언어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 이전의 과거인 손석희의 100분토론, 시선집중의 일도 간혹 등장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돌아보며 치열하게 고민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마음 약한 사람이기에 변하지 않는다고, 변해서 비난받는것이 두려워서라고 말하는 그는 그만큼 단단해지기위해 뉴스앞에 서는 매일이 날선 하루였음이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저널리즘을 위한 운동은 하지만 운동을 위한 저널리즘은 하지 않는다는 그, 뉴 미디어의 홍수속에서도 기존 레거시 미디어가 가져야할 보도의 원칙으로 기준, 사실, 공정, 균형, 품위를 말하는 그였기에 그가 주는 이름 석 자로 신뢰는 뉴스를 떠난 지금 내게는 여전하다. 어떤 뉴스에는 화가났고, 여전히 세월호는 아픔이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산재되어있는 많은 것들을 두고 내년은 대선이다. 저자가 말하는 "합리적 시민사회"에 대한 믿음이 거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미디어에 휩쓸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함을 그리고 그런 눈으로 언론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더 매섭게 감시견의 모습을 보여줄테니.
"돌아와요 손석희"
강력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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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오래 두고 남을 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석희라는 이름이 주는 그 신뢰감을 갖고 구매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나서지 않는 그의 그 진중함을 믿습니다 장면들..현대사에 뉴스로 접하는 수많은 그 사건 사고 뒤에 있는 것들을 이렇게 더욱 실감있게 현실적으로 접해보니 더욱 피부로 접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어떤 부분은 뜨겁게 어떤 부분은 안타까움과 울분으로, 어떤 부분은 감사로 재미있게 완독하였습니다 이 시대의 바른 지성인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앞으로도 많은 좋은 기록물을 남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