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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 논리학>
하이데거는 왜 나치스에 협력했나? 그를 실존철학자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27년에 내놓은 책 <존재와 시간> 때문이다. 그는 1889년 9월 26일 바덴주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났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후설에게 현상학을 수학, 1923년 34살에 마르부르크대학 교수, 그리고 39살 때인 1928년 후설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대학 교수, 1933년에 총장으로 그다음 해 당과 학내갈등으로 직에서 물러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스에 협력, 전후 추방됐다가, 복직, 1976년 세상을 떴다. 후반 인생 30년간 그는 고독 속에서 살았을까, 아니면 자신의 소신이라며 자위하고 살았을까?, 그가 죽음에 이르러 했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이 대목에서 생뚱맞지만, 친일파 윤치호처럼 말이다.
이 책은 1934년 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여름학기 강의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 그런데 실은 이 시기의 정치적 행보와 2차 대전 때 나치스의 협력은 연속선 상에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게 그의 철학적인 신념이었을까?, 이를 연구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행동은 철학에서 나오는 것이지 않은가, 다른가, 언행일치는 동양적 사고인가? 이런 물음이 꼬리를 문다. 법학자들 가운데서도 나치스에 협력, 헌법을 손질한 이들은 생명의 위협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동서고금을 통해서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학자라 할 수 없지 않을까, 요즘 TV에 나와서 썰을 풀어대는 만물 박사 텔레페서들처럼. 아무튼
왜 이 시기에 논리학 강의를 생각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1934년 여름학기에 “국가와 학문”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할 예정이었다. 이는 그의 저작을 편집했던 이들이 입수한 것들…. 1931년 10월부터 시작한 “검은 노트”에 암시니 숙고니 지침들이니 하는 것들에서 논리학을 강의하려는 이유를 발견했다. 하이데거는 자신이 실제적인 논리학 아래에서 구상하는 것은 진술이 아니라 자기 자신 위에 스스로 세우며 존재에서 존재자를 표현하는 것은 진리의 본질에서 일어나는 근본 사건이라고(283쪽-편집자의 후기)
그의 현존재가 존재자 전체 그리고 그것의 깊이와 근거에서 존재자 전체의 본질과 일치하지 않는 자는 어떤 논리학도 필요 없다. 논리학은 그에게 무가치한 것이다.
언어란 무엇인가, 앎이란 또 무엇인가, 그리고 말함이란 무엇인가?
하이데거의 논리학의 근본 현상은 진술이다. 논리학이란 제목은 그리스어 로기케의 약어다. 이 표현은 로고스와 관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보충되어야 하는 것은 에피스테메 즉 앎이다. 따라서 논리학은 로고스와 관계하는 앎이며, 로고스에 정통해 있음을 의미한다. 로고스는 이야기, 말함이다. 논리학은 진술의 근본구조와 근본규칙의 형식에 관한 학문이다.
논리학은 사고를 다룬다. 사고가 일종의 말 함이라면 그때 사고에 대한 앎, 말함에 대한 앎, 언어에 대한 앎, 모든 논리학의 근본 물음,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며, 언어철학은 논리학의 전당이 된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크게 2부 각 3장(33절)으로 구분되는데, 1부는 모든 논리학의 근거 물음이자 주도적인 물음으로서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1장에서 언어의 본질, 2장에서 인간의 본질, 그리고 3장에서 역사의 본질을 각각 묻는다. 즉, 언어와 인간과 역사의 본질을 묻는다. 그리고 2부에서 역사의 본질로서 근원적으로 통일된 시간이라 제목으로 인간의 역사성은 변화된 시간과의 관계에서 경험된다. 즉 규정과 임무와 사명으로서 규정, 노동으로서 규정, 그다음 장에서 인간을 그에 관한 규정에서 경험함, 기분, 노동, 사명, 임무의 내적 관계를 살핀다. 3장에서 인간존재와 언어를….
강의에서 그는 논리학 자체를 시원에서부터 근본적으로 해체하여 그 이름에 담긴 것보다 더 근원적인 과제를 일깨우고 포착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한다(25쪽). 그것을 위해 그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파악을 한다. 이는 항상 그가 그 시대 속에서 여전히 생각했던 “민족”의 현실적인 “변혁”과 연결된다(125쪽). 그는 결론에서 “근원적인 언어”는 “시 짓기의 언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263쪽).
인간존재와 언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답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언어는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따라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인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가 누구이냐는 물음에 바탕을 둔다. 우리는 인간 현존재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했고, 인간의 존재를 시간성, 염려, 규정에 대한 염려로 파악했다.
우리는 여전히 언어를 인간 현존재의 구성 틀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언어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정말로 알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지금 언어는 인간 현존재라는 개념에서 의문시되고, 진정으로 근거가 제시된 의미에서 비로소 물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지금 현존재의 본질적 구성 틀에서 획득한 통찰력과 거기에서 생겨난 개념의 도움으로 언어의 본질을 정의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값싼 속임수다.
민족이라는 역사적 현존재의 중심을 지배하는 언어
언어는 격리된 주체 속에서 출현하고, 주체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으로서 이리저리 건네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주체적인 것도 객체적인 것도 아니다. 언어는 개별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언어는 그때마다 역사적인 것으로서 존재를 위임받고, 존재자 전체에 내어 놓여 잇는 사건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언어의 사건 속에서만 존재를 획득하고 상실한다. 언어는 세계의 지배를 형성하며 보존하는 민족이라는 역사적 현존재의 중심이다. 시간성이 시간화되는 곳에서만 언어가 사건으로 일어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논리학은 결코 논리학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논리학의 물음은 세계의 지배가 언어에서 사건으로 일어남으로써 존재의 힘을 갖는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앎의 염려로서 생겨난다.
이렇게 알듯 말듯, 언어는 사고의 외부로 표출이며, 사고는 논리학을 통해서 앎이 되고, 그렇지만 논리학은 하룻밤 사이에 완성하여 교본으로 시장에 내어놓을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가 논리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언어”의 위력 때문이 아닐는지, 나치스에 동조했다, 안 했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대상이 아니니 논외다. 언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사고를 반영하는데 이 밑바탕에 흐르는 것들을 정리하고 다듬을 것인가, 촌철살인, 세 치의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이데거가 국가와 학문이라는 걸 하려면 적어도 언어가 담고 있는 의미, 표현적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걸 먼저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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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의 책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은 1934년 당시 강의로 진행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의 강의를 위한 원고들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책은 논리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정체와 구조, 이를 근본적으로 알아내기 위해 구조적인 접근, 접근을 위한 연구와 노력의 필요성으로 시작된다. 이후에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물음으로 이어지고 이 분석은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한 분석과 물음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물음속에서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민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역사라고 하는 개념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그 다양한 의미, 시간과의 관계 등으로 이어진다.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은 그 도입부터 논리학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는 등 철학이나 논리학에 생소한 독자라면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또한 책은 하이데거의 강의 전집 중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에 강의의 맥락을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논리학에 대한 독서를 이어나가야 한다. 하이데거는 독일의 실존 철학으로 유명하고, 그의 저서로 <존재와 시간>등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평소 관심이 있었거나 그가 말하는 현존재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라면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을 통해 그의 철학에 접근하는 좋은 독서가 될 수도 있겠다. 또한 하이데거는 후설의 뒤를 이어 연구하였기 때문에 책을 읽고 관심이 생긴 독자라면 후설의 현상학이나 니체, 세계1차 대전 이후의 독일에 대해서도 관련된 책읽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논리학을 진술의 근본구조와 근본규칙의 형식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하고 있다. 때문에 인간존재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를 분석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분석을 위해 해체하는 수단을 취하고 있다. 또한 책에는 주입식으로 학습된 내용들을 공허하다고 이야기하고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의 절차에 집중하는 한편 이를 위한 훈련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무분별한 사상이나 거짓된 정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치와 국가에 대해, 또한 타인과 자신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분석하고 어떤 내용들을 들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귀한 훈련의 지침으로 활용이 가능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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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 : lalilu 이 책의 저자는 철학계의 거성인 하이데거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의 저작은 아직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은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담겨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리학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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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국어학을 공부할 때, 하이데거의 철학에 대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었어요. 하지만 제 머리로는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이해를 했던 것 같아서, 지금이라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파라아카데미에서 출판된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을 읽어보았어요. 한 번 읽고는 충분하지 않아서 반복해서 읽어야할 것 같더라구요. 그렇지만 대학시절에 그렇게나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해되지 않았던 개념들이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좋더라구요.
마르틴 하이데거는 독일의 실존철학자예요. 데카르트의 철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알 거예요. 이 말을 살펴보면 '생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나무위키에서는 인간의 삶을 보편적으로 파악하는 철학이 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해 '관찰'을 하는 인식론을 넘어서서, 무엇보다도 우선 '존재'가 무엇인지부터 '이해'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라고 해요.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은 하이데거가 1934년 여름학기에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이란 제목으로 한 강의의 강의록을 편집한 전집 38A권에 대한 번역서예요. 하이데거 살았던 시대는 민족사회주의가 만연하던 시대였고 그는 나치 독일을 지지하는 발언을 자주했어요.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은 대학총작직을 사임한 이후이기에 그는 강의에서 민족사회주의와 대학정책에 대한 비판 및 개혁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책 속에서 밝히고 있어요.
언어는 항상 다시 말하는 순간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때 언어는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상태, 즉 되어감 속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결코 존재를 가지지 않고 되어감만 가질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언어의 존재방식에 대한 성가신 물음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49쪽) 우리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물을 때, 그리고 이 물음에서 벗어날 출구를 더 이상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즉각 언어의 본질에 대해 묻게 된다. (54쪽) '우리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는 현재 대학의 교육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고 대답했고 대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대답이 결단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191쪽) 이렇게 특징 지은 것은 우리는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즉 도덕률이나 신 앞에서 책임을 떠맡음으로 이해하는데 익숙해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그 표현을 철학적으로, 즉 대답함의 탁월한 형태와 방식으로 이해한다.(192쪽)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물어야 했던 것은 우리가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본질물음은 선행-물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서 '도대체 언어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있는가'라는 물음을 물었다. 밝혀진 것은 언어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하며, 나아가 언어는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따라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257쪽)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책을 읽고 나서, 그 책 속에 그렇게 어려운 단어들이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개념이 머리 속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아요. 그러나 그냥 포기하기엔 그의 철학, '인간이란 누구인가? 우리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포기할 수가 없네요. 그래서 저는 다시 이 책을 반복해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다행인 것은 파라아카데미의 책,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은 글자를 '진하게' 표시하는 등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어서 조금은 쉽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사상으로 언어의 본질, 인간의 실존에 대해 해답을 찾고 싶다면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을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받고 후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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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부딪친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로 말이다. 평소 철학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나름 다양한 철학자들의 저서들을 읽곤 했기에 마르틴 하이데거의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이라는 책도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제목에서 바로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개념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설명하는 책이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책은 하이데거가 강의를 위해 작성한 내용을 정리한 거라 읽는 그 순간부터 미로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하이데거가 말하는 언어, 인간, 역사의 의미, 본질은 무엇일까? 이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읽었지만 솔직히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겠다는 결심을 했는지 지금도 심하게 후회하는 중이다. 서문에 실린 논리학에 대한 짤막한 설명은 그래도 이해하기 쉬웠지만 1장에서 다룬 언어의 본질은 읽으면서 그저 한숨만 쉬었을 뿐이다.
언어는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용하는 것이지만 하이데거가 말하는 언어의 본질은 막막하기만 하다. 하이데거의 사상을 압축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표현은 언어를 통해 말하는 사람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존재는 언어를 통하지 않으면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언어와 인간, 민족, 그리고 역사. 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나의 단어조차 무슨 의미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냥 읽었다. 읽고 또 읽다보면 그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면서 말이다.
결론이다. 이 책은 정말 어렵다. 어려워도 정말 너무 어렵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게는 넘지 못할 벽이다. 그래서 그냥 놓고 싶지는 않다. 하나라도 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백 번을 읽고서라도 말이다. 혹여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분이라면 이 마음을 품고 도전하기 바란다. 그 길만이 하이데거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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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에 대해 배울때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근대를 거쳐 현대 철학으로 넘어올수록 개념 자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네요.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등 현대 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철학자들의 주장이나 저서를 보면 번역서여서 더 읽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언어 유희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한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나 심오해서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공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들의 연구에 대한 완역본 전집도 나와있지만 철학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당장 읽기는 쉽지 않을것 같아서 입문서 위주로 보고 있습니다.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 은 하이데거가 총장직을 사임한 이후에 했었던 강의를 바탕으로 하여 정리한 책입니다.
하이데거 철학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존재' 입니다. 이 책에서도 이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네요. 하이데거는 우선적으로 존재가 무엇인지 이해를 해야하고 이후에 인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평범한 문장에서도 존재자와 존재를 구분할 수 있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존재자를 통해 현존재를 정의할 수 있네요. 책에 있는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갔지만 사실 따라가면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만들어 온 것이 역사입니다. 인류가 처음 등장했을때는 수렵 생활을 하면서 생활이 단조로웠기 때문에 역사라고 부를만한 일들이 많지 않았지만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라를 세우고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등 큰 변화들이 나타났네요. 우리가 흔히 '역사' 라고 말하지만 이 단어 역시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반면 어떤 사건들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어 중요하게 기록되네요. 역사적인 것과 비역사적인 것,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강의를 읽으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역사를 이룰 수 있게 된 데에는 언어의 영향이 큽니다. 초기에는 동물처럼 제한적인 의사소통만 할 수 있었지만 복잡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서 언어가 생겨났고, 언어와 사고를 통해 추상화된 개념을 만들어 내면 철학도 탄생할 수 있었네요. 하이데거는 언어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언어가 어떻게 사람들이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지, 민족에 따라 고유한 언어를 통해 어떻게 오늘날의 세계가 만들어져 왔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하이데거가 한 강의를 바탕으로 엮었기 때문에 그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 등 다른 책들에 비해 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지만 원어로 읽는 것과 번역서로 읽는 데에는 차이가 있고, 철학을 전공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네요. 하이데거 철학의 중요한 요소인 존재를 인간이나 언어, 역사 등 다양한 내용으로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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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언어'란 매우 중요하면서도, 이해가 그리 쉽지 않은 개념임을 잘 알고 있다. 뭐, 꼭 하이데거와 언어가 아니더라도 철학은 언제나 어렵다. 마치 머리로 벽을 두드리는 것처럼.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은 하이데거의 실제 강의를 책으로 엮어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독자보다도 현장 강의에 있던 청중을 위해 정리된 내용인 것이다. 따라서 솔직히 저 스스로 명쾌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가늠만 할 뿐이다.
지금은 그리 신선한 단어가 아니지만, 현대철학 초기에 들어서면 '해체'가 유행한다. 일군의 철학자들을 중심으로(특히 데리다) 전통적 개념과 철학에의 부정, 반대하는 활동들이 이어지는데 하이데거에게서도 논리학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해체의 움직임이 보인다. 근 2천 년이래 개념, 판단, 추론, 동일률, 모순율, 근거율, 임의적 사태 내용을 지닌 진술 대상 등을 다루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현존재와 맥이 닿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하는 '논리학'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언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이데거의 언어는 일반적으로 언어철학에서 다루어지는 분석 대상으로서의 언어나 사회 내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한정 지어지는 그저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하이데거의 언어는 곧 인간의 (현) 존재와 연결된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한다.
인간은 말(언어)를 하는 존재자라는 이해에서 언어와 인간에 대한 물음은 동시에 수행된다. 다시 말해 하이데거의 논리학 강의에 따르면 언어에 대한 물음, 즉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곧 인간에 대한 물음인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연결된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본질적인 물음이 아니라는 것. 하이데거는 이 질문을 다시 바꿔 '인간이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은 누구인가?'-'우리 자신은 누구인가?'로 전향해 물을 것을 말한다.
철학적 의미 탐독과 별개로, 책을 읽다가 이 구절에 눈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한동안 멈추었다. "(우리는 대개...)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고 자기 상실과 자기 망각 속에서 헤매고 있다"(p.83)
솔직히 나는 이제 내 이해가 책과 점점 불리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싫든 좋든 하이데거에 관심이 있다면 이 부분마저도 성실하게 보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려는 논리학의 정초가 결국 '민족'과 같은 개념을 관통하기 위해서였다면....ㅠㅠ, '민족'이라... 하... 14절, "우리의 자기 존재는 민족'이다'"라는 말은 결단 속에 있다. - 이 부분은 그냥 하이데거가 살았던 시대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말아도 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민족'이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나에게 묻는다. 아주 예전만 하더라도 피부색, 생김새만으로 국적과 민족을 알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아시아인 그중에서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다르고, 동남아시아인, 아프리카인 구분되고, 더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북유럽의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인까지 서로 구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령 미국, 캐나다만 해도 중국계 미국인이 어마어마한 숫자로 살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피부색, 생김새만으로 국적과 민족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해졌다. 이번에 18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 bruce liu만 해도 나는 처음에 타이완이나 홍콩 정도의 사람인 줄 알았지만, 그는 캐나다 국적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민족'을 논한다.... 물론 국적과 민족의 범위가 완전하게 일치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국적과 민족이 대개는 일치하던 예전에 비해 오늘날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국적을 버리거나 선택할 수 있고, '개인'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그것이 강제적으로 '민족'에 묶이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고 본다.
'민족'개념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민족'개념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나는 그것이 각 개별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작업에 논리학이란 이름이 붙을 줄 알았는데, 결국 이러한 작업은 '민족'과 '역사'를 위한 교두보였나?
여담이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으면서 어딘가 모르게 공허함을 느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거대한 성채와도 같다고 키에르케고르가 그랬나? 개별자로서의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민족'과 연관시킨 하이데거의 말도 공허하게 들리는 차였다. 아무튼, 나는 책의 어느 부분을 두고 하이데거와 싸우고 있다.
한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서 한편으로는 책을 손에 쥔 이 순간이 행복하다. 역설적이게도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일부의 그의 말이 있지만, 이것은 다시 말해 내가 뭔가를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닌지, 혹은 더 비판할 여지가 있는지 등, 하이데거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철학과 철학 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점에 있는 것 같다. "철학의 진리는 관점의 자유다."(p.135)라고 하이데거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읽는 사람에게 비판도 허용된 곳이 바로 이 쓴 자와 읽는 자의 만남의 장인 읽어냄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강의에서 민족은 인종, 혈통과 연관된 신체적 의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육 사건에 참여해야 하는 노동, 임무, 사명을 결단하는 역사적 현존재로서 규명된다"라고 하는 옮긴이의 단 한 줄의 해명만으로 '민족'이란 개념을 그저 쉽게 달리 이해하긴 어렵다. 옮긴이가 하이데거의 전공자인 만큼 친절한 해제가 책 속에 함께 있었으면 더 좋았지 않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관심 있다고 그냥 덤벼들기에는 꽤나 쉽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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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저술한 저명한 정치철학자 한나아렌트의 연인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대표저서는 ‘존재와 시간’입니다. ‘존재와 시간’은 철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저술이지만, 그 어떤 철학책 못지않게 난해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많은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면서, 그에 기반해서 논의를 전개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파라아카데미에서 출간된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은 하이데거가 논리학의 본래적인 사명을 말하기 위해 언어의 본질에 대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이데거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왜 언어의 본질에 대해 묻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현존재가 염려, 즉 규정에 대한 염려로서 그 규정을 일깨우고 떠맡아 보존하는 염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염려가 자유의 염려로서 모든 존재자의 본질을 위한 앎과 앎의 가능성에 대한 염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앎은 우리에게 단순한 사실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도 아니며 모든 것에 대해 생각 없이 떠드는 잡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앓은 책임을 떠맡는 말을 통해서만, 다시 말해 역사적인 노동속에서 창조하는 언어에서 생겨난 견고성을 통해서만 정초되고 형성되며 전승되고 일깨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왜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논리학’이라고 부르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논리는 ‘로고스’를 다루고, ‘로고스’가 이야기, 즉 언어를 의미하고, 방금 그렇게 언급한 논리학을 통해서 이야기의 본질이 성급하게 평이하게 피상적인 것으로 오해되었다. 그 때문에 ‘논리학은 아직도 파악되지 않은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현존재의 임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규칙에 관한 학설로서 지금까지의 논리학이 존재의 모든 규정을 위한 최상의 중요한 규칙으로 여겨지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 요구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개념에서부터 더 근원적으로 파악되고, 지체 없이 갱신되어야 한다. 논리학은 우리에게 개인이 하릇밤 사이에 완성하여 교본으로 시장에 내어놓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논리학은 결코 논리학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논리학의 물음은 세계의 지배가 언어에서 사건으로 일어남으로써 존재가 힘을 갖는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앎의 염려로서 생겨난다.” 논리학에 대한 기존의 관념은 언어의 규칙정도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논리학이 더 근원적으로 파악되어 인식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철학에 약간 관심이 있어서 철학개론서를 몇권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철학이 발전해 온 과정을 보면서 흥미롭고 재미있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니체의 매력에 빠져 그의 저서를 서너권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니체의 저서는 철학이면서 재미있기도 하여 다른 철학자들에게 관심을 가졌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철학개론서에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어렵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하이데거의 철학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하이데거의 저서 근거율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읽어 보았는데, 예전에 철학개론서에서 말한 대로 어렵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 역시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읽기에는 난해 하였습니다. 하지만 깨달은 바도 있었습니다. 하이데거가 논리학이라는 것에서 출발하여 민족이라는 개념에까지 사고를 확장하는 것을 보면서 철학자의 사유는 깊고도 깊다는 것을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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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추상적인 큰 질문을 연이어 던지고 있다. 논리학이란 무엇인가, 언어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결단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이런 커다란 본질적 물음을 던지고 있지만, 이에 대해 시원한 대답을 들려주고 있냐면 그건 아니다. 마치 동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이어지듯, 언어의 본질물음에 뒤이어 인간의 본질물음이, 무엇물음에 뒤이어 누구물음이 나오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련의 물음을 잇달아 던질 뿐이다. 구체적인 얘기나 흥미로운 예시가 나오지 않아 답답할 지경이다. 뭐, 좋게 말하면, 철학의 빅뱅, 존재의 시원을 탐구한 관념론 대마두답다. 뜬구름 잡는 큰 질문만 던져놓고 중얼거리는 하이데거의 이 수업을 내가 들었다면, 수업평가서에 혹독한 비평을 해주었을 텐데 아쉽다. 그래도 하이데거 전공자라면 논문에 한두 구절 인용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정독하겠지. 아, 나라면 바로 요 구절을 인용했을 것이다.
"골짜기의 포근함, 산맥의 위협적임, 천체의 숭고함, 광포한 바다의 냉혹함, 식물의 침잠함, 동물의 사로잡혀 있음, 기계의 계산된 질주, 역사적 행위의 고단함, 창조된 작품의 절제된 도취, 지식을 가진 물음의 냉철한 대담함, 노동의 확고한 깨어있음, 마음의 침묵, 이 모든 것이 언어로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은 언어의 사건 속에서만 존재를 획득하고 상실한다. 언어는 세계의 지배를 형성하며 보존하는 민족이라는 역사적 현존재의 중심이다. 시간성이 시간화되는 곳에서만 언어가 사건으로 일어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260쪽)
책제목만 보면 논리학이 언어의 본질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기대하게 만든다. 하이데거는 논리학을 통해 언어의 어떤 본질을 그려내려고 했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촘스키의 보편문법과 같은 내재적인 어법론을 떠올렸던 것일까. 하이데거에 따르면, 논리학은 "로고스에 대한 앎"이자, "진술의 근본구조와 근본규칙의 형식에 관한 학문"이다. 논리학은 언어, 이야기, 말함에 대한 앎이기에, 언어/로고스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본질물음은 앞을 향해 묻는 선행물음이자 안에서 밖으로 묻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철학함의 기본이다. 언어가 존재의 거주지라면, 논리학은 철학의 거주지다. 근원적인 언어가 시짓기의 언어라면, 근원적인 논리학은 진리의 형이상학이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은 큰 틀에서 이해된 인간이다. 인간의 구성요소는 신체, 영혼, 정신이다. 따라서, 민족 역시 민족-신체, 민족-영혼, 민족-정신으로 구분된다. 다시 말해서, 민족은 신체와 인종으로서의 민족, 영혼으로서의 민족, 정신으로서의 민족이 있다. 신체와 인종으로서의 민족은 인구, 혈통, 가계의 이음구조로서의 민족이다. 보통 영혼을 정신보다 한 차원 높은 것으로 보는 것이 반해, 하이데거는 정신을 가장 높은 차원으로 보는 것 같다. 정신은 의지와 결단력에 기대고 있기에 의지적이며 인식적인 측면이다. 정신으로서의 민족은 교육사건에 참여해야 하는 노동, 임무, 사명을 결단하는 역사적 현존재다. 하이데거의 정치철학은 민족에 기대어 있다. 비록 민족이 나라, 국가, 제국이라는 개념과 서로 구별되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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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적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1934년 여름학기 2시간 강의수고의 사본을 번역한 서적으로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리학, 철학관련 강의를 준비한 원고라는 특징을 지닌 서적이라 하겠다.
서적은 서문, 1부 3개의 장, 2부 3개의 장, 부록, 편집자 후기, 하이데거 연보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언어의 본질, 인간의 본질, 역사에 대한 본질에 대한 물음이란 주제에 대해 다루는데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은 모든 논리학의 근본물음이자 주도적인 물음으로 설명하며 논리학이 온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며 그 물음이 언어철학이라 강조한 후 언어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 인간존재의 방식이란 설명으로 사유를 확장시키도록 유도한다. 이어지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의 장에서는 특히 인간의 자기존재는 바로 민족이란 설명이 눈에 띠는데 대학교 교육의 요구와 소명이 민족적 본질적 개념들을 따르는 교육, 민족의 강화, 보존, 질서에 기여하는 소명 속에 있다며 현실적인 변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한 설명은 당시의 시대상과 하이데거의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하겠다. 그리고 인간만이 지닌 역사에 대한 물음에 대해 역사라는 낱말의 다의성, 역사의 본질을 비롯한 역사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유도한 후 역사적인 것으로서의 인간의 존재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루며 하이데거 실존철학의 핵심인 존재에 대한 진리를 물음으로 역사, 언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2부에서는 관심을 끈 내용은 인간을 주체로서 특징짓는 것을 통해 휘포케이메논에 놓여있는 고대의 존재개념. 즉 눈 앞에 있는 사물의 추론된 영속적인 현존성이 아무 비판도 없이 인간과 인간존재로 옮겨지고 있는 사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헤겔이 사물을 자아로 자아를 사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 것으로 인해 인간존재에 대한 물음을 등한시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서적의 결론은 시 짓기와 함께하는 근원적 언어가 진정한 언어의 본질이며, 인간이 존재하므로 나타나는 역사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이 서적은 철학 강의를 원고를 정리하지 않은 초고라는 느낌을 받았다. 2시간 강의에서 여기서 다룬 내용을 모두 다루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현학적이며 의문문이 많아 자주 사유에 빠지게 만들어 264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서른 시간 이상을 할애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이데거가 직접 집필한 서적보다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요소가 자주 등장하여 편집자가 글자의 굵기로 핵심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가독시간이 2배정도 더 소요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이 편집자가 본문의 핵심(하이데거가 강조하고자 강의 내용)을 강조해서 독자들은 혼란에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최근 읽은 <근거율>보다 상당히 어려웠던 것은 언어의 본질, 현실적 변혁, 민족을 역사적 현존재로 규정하는 내용을 연결시키는 설명이 너무 장황하여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강의를 들은 독일의 철학과 학생들이 아닌 현재(강의 시점에서는 미래)의 독자들이 집중할만한 주제는 아니라 하겠다. 편집자가 언급한데로 1936년 강의인 ‘횔덜던과 시작의 본질’과 연결시키기 위해 이 서적에서 시 짓기가 언어의 본질이란 결론을 내렸으며 역사, 인간, 언어, 현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유도하는 설명은 하이데거 자신이 주장하는 실존철학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서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철학 관련 서적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참고와 도움을 줄 유익한 서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서적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