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모자를 쓴 여자
이 책은
이 책 『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소설이다. 장편소설.
저자는 권정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장편소설 『칼과 혀』(2017)로 2017년 혼불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의 내용은
아 소설의 시작과 끝은 동일하다.
시작은 이렇다.
이 소설의 (정확히 끝 부분은 아니지만 거의) 끝을 살펴보자.
작품 설명을 하기 위해 참고로 하는 말인데, 주인공 민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처음 장면에서는 민의 위치는 304호 아파트다. 실내다. 낮에 마신 커피 때문에 잠들지 못하다가 우연히 창밖을 내다 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민은 바깥에 있다. 바깥에서 아파트 안에 있는 여자와 위치가 뒤바뀐 상태로 밖에서 아파트 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 무슨 의미일까, 열심히 생각하는데, 민이 들어가 있던 정신병원에 공연을 온 마술사가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마술사가 모자를 들어 올려 뒤집었다. 비어 있던 모자 안쪽에서 작고 흰 고양이 한 마리가 나왔다. (212쪽) 그 다음에 마술사는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이 소설의 화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이 부분은 이 소설의 주요 포인트가 된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런 말을 한다.
꼬리를 찾아, 꼬리를 물기 위해, 라는 말은 이 소설의 등장하는 우로보로스와 관련되는 것이다. 민이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의 발언 중, 이런 말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소설은 이해하기 어렵다. 주인공인 민이 겪은 사건들이 그녀의 의식의 흐름과 맞물려 서술되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그녀의 의식의 흐름에 의한 진술인지 불분명하게 뒤섞여버리기 때문이다.
해서 이런 것들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까망이는 민이 기르던 검은색 고양이 이름이다. 그렇게 까망이를 죽여 묻었는데, 그 고양이는 다시 집안에서 목격이 된다.
해서 이 소설은 줄거리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민이 상담하던 의사가 민의 말을 듣고 한 말이 민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읽고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 민을 망상장애라고 치부할 게 아니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사람은 이렇게 분류가 된다고 한다.
저자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우리의 위치는 마술가가 한 말처럼, 안과 밖, 그렇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없다.
|
|
나는 평범하지만 내 삶에, 내 주변에 늘 감사함을 느낀다. 특별할 게 없는, 그래서 내일이 예측되는 삶이 행복이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일상으로 잔잔한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 나는 자주 웃는 사람이고, 가능하다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인생 뭐 있어? 그냥 사는 거지.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약간의 호기도 있으니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 이런 인생이 계속되는 게 내 바람이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날 수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슬퍼하면 되는 것이고. 감사하게도 나는 인생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깊은 상처는 아직 없다. 앞으로도 그런 상처가 나에게 새겨지지 않으면 좋겠다.
평범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 사는 민. 어느 날 그녀의 삶은 아이를 잃고 나서 깨져버린다. 아이를 잃고 난 후 묘한 불안감이 민을 따라다닌다. 검은 모자를 쓴 여자가 의류 수거함 앞에서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다. 아이를 잃고 입양한 아이 동수. 동수와 함께 집으로 데려온 검은 고양이가 자신이 원래 키우던 개를 갑자기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는 민이 죄책감으로 만들어 낸 허상일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그 자체가 다 고통이다. 분명 세상 제일 행복한 일이면서도 자식이라는 이유로 세상 모든 희로애락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 눈 밖에 있는 것이 늘 불안했다. 혹시 다칠 수도 있을 것이고, 아플 수도 있을 테지만, 그 모든 책임이 엄마인 나에게 오는 것 같아 불안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를 잃은 민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를 잃고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그날을 복기했을 것이다. 사고는 그냥 사고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사람은 살아야 하니 잊어야 한다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면, 그날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날 그 시간을 수도 없이 생각하고 떠올렸을 민. 그렇게 반복된 시간이 혹 허상을 만들어 낸 것일까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 탓’으로 돌리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하기에.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많은 부부가 이혼을 한다지. 서로의 탓을 하느라 다른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살아야 하기에. 책을 읽으면서 민의 마음을 따라간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낳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은 망가져 간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숨만 쉬는 삶. 파이팅 할 수 없는 사람에게 파이팅하라고 충고하는 건 충고가 아니겠지? 그래서 섣불리 충고도 용기도 줄 수 없다. 우리는 ‘민’이 아니니까.
아픈 소설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 혹은 부모들에게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는 게 슬프다. 지켜내지 못했다고 생각한 엄마. 그 탓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과연 그게 누구 ‘탓’을 해서 끝날 문제인지. 책 표지에서처럼 ‘행복의 연약한 외피가 깨졌을 때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진짜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
|
제목만큼이나 시커먼 표지에 을씨년스러운 건물이 묘한 호기심을 부추긴다. 역시나 소설은 활자에 생명력이 있는 듯 독자의 호흡을 잡아끌며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어떤 이유로든 민의 불안은 내게 전염된다. 숨죽이고 순식간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메모하는 걸 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이렇게 찐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최소한 최근에는.
평온한 날들이라는 믿음과는 다르게 민의 정신세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갑작스러운 은수의 죽음 이후 기이한 일들은 민을 괴롭히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민과 남편, 민과 까망이를 둘러싼 이 미스터리한 관계에 집요하게 파고들더니 소설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짧게 등장하고 종교와 철학을 탐미한다. 심지어 난해하고 심오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내가 거기 있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했을 뿐이야.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143쪽
왜 구멍 가게 노인의 말이 떠나질 않는 건지 모르겠다. 선과 악, 순수와 타락, 이성과 감정…인간이 태초부터 갖게 된다는 원죄를 둘러싼 질문들 그리고 심판의 날 그건 분명 복수는 아닐 것이다. 민은 심문관이 된 것일지도.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꺼내는 순간 결정되는 거예요." 213쪽
처음부터 집안은 혹은 가족의 경계가 민의 영역이었는지 순간 흐릿해졌다. 새벽 2시, 민이 헌 옷 수거함에서 검은 모자를 쓴 순간 모든 것은 믿을 수 없게 됐다. 본 것을 믿는 것인지, 믿는 것을 보는 것인지 진실을 진실이라 믿을 수 있을까.
결국 민은 자신의 존재를 먹어치우는 우로보로스였던가. 민이 흰나비를 마주한 순간 어쩌면 뻔함 혹은 유치할 감상일지 모르지만 소름 돋고 한기가 들었다. 강렬한 소설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새벽 2시 '민'은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3층 베란다 창문을 열어젖힌다. 상대의 얼굴 표정까지 알 수 있는 거리에서 자신의 집을 주시하는 검은 모자를 쓴 여인과 눈이 마주친다. 지난 새벽 보았던 정체불명의 그림자는 예민함이 촉발한 환각일까? 그 불안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혀왔다. 과거 세 살된 아들 '은수'는 민이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유모차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사인은 흔치 않은 목뼈골절이었고 민은 누군가 아이를 공격했을 거라 의심했다. 하지만 평소 다정했던 남편은 마치 형사와 한통속인 것처럼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했다.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믿을 무렵, 민은 그레이트 데인 '무지'를 입양했다. 이어서 은수의 사망 3년째 되던 크리스마스 이브, 남편과 함께 집근처 교회 앞에서 바구니에 버려진 은수 또래의 사내아이와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다. 아이는 '동수', 고양이는 '까망이'로 불리며 정식 입양절차를 밟아 가족이 된다. 하지만 동수와 까망이의 등장 이후, 주변의 소중한 존재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한눈 판 사이 무지의 한쪽 눈이 실명됐고, 홀로 여행을 떠나있는 동안 집에 불이 나서 친정 엄마가 질식해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동수와 까망이가 연관돼 있었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고양이도 동수도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부 사이에 끼어 들어온 타자였다. 상처를 덮기 위해 급조된 환경이었다. 지금의 평화는 봄이면 무너진 축대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곤 하는 개나리처럼 어딘지 위태로워 보였다. p70.
운명은 선의 편도 악의 편도 아니라는 것. 그저 견디는 자들의 편이었다. p240
민은 누군가 자신의 주변을 끝없이 맴돌면서 조롱하는 가부키 극의 구로코인 것만 같다. 그리고 민의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집착으로 변해갔다. 아이를 잃은 트라우마가 불안과 망상을 조장한다는 의심과, 이 모든 기묘한 예감과 현상들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 가지 생각에 혼란스럽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착각인 것일까? 동수와 까망이를 처음 발견하던 그날도 누군가 자신을 몰래 감시하고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망상장애인 것일까?
그러던 중 외도의 흔적이 담긴 남편의 노트...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남편과 내연녀의 추악한 각본인 것일까? 민이 정신병원에 갇히면 그 여자가 집을 차지하고 동수는 진짜 부모와 사는 셈인가?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이 은수의 목숨을, 무지의 눈을, 그리고 엄마의 목숨까지 앗아갔고, 민을 둘러싼 세계를 처참하게 허무는 것이 목적인 걸까? 하지만 결말 부분에 이르러 아이를 잃은 상실감으로 일상을 견뎌야 하는 한 여인의 삶을 우로보로스에 대입한 작가의 의도는 다소 모호하고 불분명해 보인다. 민의 행동은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증오해 마지않던 '검은 모자를 쓴 여자'로 어느새 탈바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은 민이라는 것인가? 아이를 잃고 어느 엄마가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 동안 오버랩되는 다른 작품들이 있었다. 불길한 기운을 잔뜩 안고 등장하는 까망이를 보면서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남편이 민을 배신하는 스토리 전개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위험한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기억이 망상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민의 심리를 잘 조명했으니 장르상 심리 스릴러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명쾌한 결말은 아니지만 끝까지 몰입해서 읽었을 정도로 책장 넘기는 걸 멈출 수 없는 페이지터너였다.
#검은모자를쓴여자 #권정현 #자음과모음 #한국소설 #우로보로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
민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공무원 시험준비중에 자신을 교통사고에서 구해낸 학원 동기인 남편과 결혼해 산에 가까운 아담한 아파트를 마련하고 아이를 낳고 살 때까지는. 아이가 3살때 민은 약수터에 갔다가 요기를 느껴 순한 강아지 무지와 함께 아이의 유모차를 놓고 이동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와 아기가 유모차에서 떨어서 목이 꺾이는 사고를 발견한다.
그이후 실성한듯 했던 그녀는 점차 나아져 크리스마스에 남편과 영화를 보러갔다가 돌아오는 길, 그녀의 믿음이 없이 아기가 죽었다고 비난했던 목사부부의 교회앞에서 헐벗은 갓난아기와 그 품에 같이 있는 까만 아이고양이를 발견해 같이 데려온다.
그렇게 다시 엄마가 되었지만, 민에겐 아이는 겉도는 느낌인데다 고양이와 서로만 통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출장이 잦은 남편이 돌아왔지만 잠이 들지못해 밖을 내다보다가 재활용통 옆에서 그녀의 아파트를 올려 쳐다보는 검은 모자의 여자를 발견한다. 다른 집을 보고있겠거니 했던 그여자는 민의 존재를 알고 미소를 띄운다.
민은 거기서부터 마음속부터 억누르고 있는 누군가의 사악한 존재를 느낀다. 아이도, 고양이도, 남편도 믿을 수 없는 가운데, 강아지 무지가 공격을 당하고...
마치 스티븐 킹의 [pet cemetery]나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고양이'에다가 요즘 많이 나오는 domestic thriller까지 겹쳐 내가 엄청 좋아하는 고딕호러슈퍼내츄널심리스릴러가 되었는데, 과연 민이 목격한 이 모든 것은 정말 실재하는건지, 그렇지않다면 오히려 이 고딕호라슈퍼내추럴심리스릴러는 그냥 상실감, 충격에 허상을 실재로 보는 누군가의 머리 속의 상상일뿐인데.. 과연...
|
|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날 깊은 밤,민은 어떤 이끌림으로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고 헌옷수거함 옆에 서 있는 불길한 느낌에 기묘한 형체와 눈이 마주치는데 생김새나 옷차림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물가물 하지만 단 한가지 검은모자 만큼은 기억이 생생했다.주위에 모든 것들을 압도할만큼 강렬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던 검은색의 맥고모자를 쓰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민을 바라보던 그 존재를 본 후 민 주변에서 끔찍한 일들이 이어지는데 검은 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혼불문학상 현진건문학상 수상 작가인 권정현의 신작소설 '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제목이나 표지에서도 느낄수 있듯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불길한 기운을 감싸고 있으면서 기묘하고 어이없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주인공 민이 겪게 되는 현실과 환상 또는 그 경계선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아이와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한쪽 눈이 실명된 애완견,자상하고 친절하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위화감이 드는 남편과 시어머니,동네 구멍가게 이층에 이사온 수상한 여자,그리고 가장 의심스럽고 공포스러운 얼떨결에 입양한 아이와 그 아이의 검은 고양이... 혼돈스럽고 불안정한 상태의 민의 생각과 행동속에서 모든 나쁜 일들이 아이를 잃은 민의 죄책감에서 만든 망상인지 민의 정신상태를 이용한 가까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치밀한 음모인지 두 가지의 가능성을 예상하며 이야기는 끊임없이 모든 상황들을 의심하고 헷갈리게 만들고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수 없는 경계선을 넘나들며 마지막 결론에 이르기까지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갔다.
민이 스스로 또는 가족이나 타인으로 인하여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폭주하게 만드는 과정들이 미스터리 심리극의 재료들을 적절히 이용하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결말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는데 그 끝에는 나의 예상과는 다른 전혀 다른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이런식의 결말은 개인적으로 선호 하지는 않고 호불호가 갈릴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평범한 일상속에서 언제라도 뭔가 터질것 같은 그런 불길한 느낌들과 미스터리 심리 환상극 이라는 장르만의 색깔을 잘 전달하며 부담없는 분량에 한번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검은 모자는 민이 만들어낸 분신일까 또 다른 인물일까...모든 일들이 우연한 사고일까 범죄일까 거짓일까... P.263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왼쪽과 오른쪽이,위와 아래가,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결국 돌고 돌아 원위치에 있게 된다는 메세지와 함께 다양하고 흥미로운 장치를 통하여 장르소설의 재미는 어느정도 충족시키며 삶의 이야기를 담은 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결말에 대한 허무함 아쉬움도 남아 있지만 삶의 방향과 의미를 표현하는 다양성에 큰 중점을 두며 리뷰를 마친다. 태그 |
|
설레면서 책을 만났다. 오랜만에 읽는 스릴러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크기다. 제목이 인상 깊었다. [검은 모자를 쓴 여자] 표지도 멋지다. 검디검은 배경에 아파트만 보인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어디에 있지? 궁금증을 가지면서 책장을 넘겨봤다.
담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여유가 생긴 날. 저녁만 챙겨주고 한숨에 읽어버렸다. 그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게 만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을 안 좋아한다. 작가의 확실한 의도를 아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 책은 작가의 말에 담겨 있는 것처럼 동그라미 속에 갇혀 버린 느낌이다. 읽으면서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겠다 생각한 부분이 그럭저럭 맞아 들어가서 흥미를 가지고 읽다가 갑자기 어! 하면서 브레이크가 잡혔다. 그리고는 조금 헷갈렸다. 뭐지? 왜? 하면서 잠시 앞으로 돌아갔다 다시 읽기도 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할 것이다. 그렇게 궁금하게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마무리가 뭔가 아쉽움이 남는 이야기다.
그럼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려고 한다. 자신의 아이를 황당한 사고로 잃어버린 한 여인이 있다. 무기력과 자책을 하면서 살아가던 그 여인에게 어느 날 우연히 한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그렇게 외면적으로는 평펌한 가정이였다. 어느 날 새벽 우연히 내려다본 베란다 창밖의 한 여인을 보면서 잔잔하던 민의 삶에 파문이 생긴다. 하나 둘씩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로 자신이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엄마를 잃어버린 민. 그녀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그녀의 자책에 공감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예기치못하는 사고가 늘 생긴다. 왜 그때! 왜 하필! 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걸 이겨내는데... 민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그리고 의심을 품는 부분이 있다면 명확하게 풀어보면 될 것인데 그저 혼자만 생각하고 혼자만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그 부분이 아쉽다. 아파트 아니 빌라라는 요즘 삶의 공간이 주는 고립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에 살았더라면.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쉽움이 남는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남들에게 관심을 덜 가지고 살아간다. 나의 삶을 살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아픈 사람이 주변에 있지 않은지 한번 둘러볼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풀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사실 이야기 속에서 민은 정신과 의사와 구멍가게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였다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그녀들이 있기에 마을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뭐가 뭔지 헷갈렸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쫒아서 여기까기 왔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망상! 한 단어로 정의 할 순 없지만, 고립에 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아서 한참 마지막 페이지를 째려봤다.
저는 위 도서를 추천하면서 자음과 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검은색은 어둠과 통한다. 어둠은 암흑이며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이어진다. 새벽 두 시 어슴푸레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의 실루엣만 목격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우선 공포가 몰려올 것이다. 그 여인이 누구인가는 나중 문제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 뒤로 어디선가 자신을 쫓는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는 누군가를 찾는 행동은 지나친 것일까. 권정현의 장편소설 『검은 모자를 쓴 여자』 속 민에게 일어난 일이다.
주인공 민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건실한 남편과 아들 동수와 고양이 까망이, 반려견 무지까지 누가 봐도 단란한 가족의 일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찾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우연하게 남편과 만나 결혼한 민은 은수를 낳고 행복했다. 유모차에 세 살 된 은수를 태우고 산책을 나갔던 약수터 근처에서 사고가 났다. 민이 화장실에 간 사이 은수가 유모차에 나와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때 민은 무언가를 목격했다. 알 수 없는 형체, 빠르게 지나가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남편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민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사고일 뿐이라고 민을 달랬다.
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더 이상 아이를 갖기 않기로 한 민과 남편은 ‘무지’라는 반려견을 키웠다. 그러다 동수를 입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교회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고 그것이 입양으로 이어졌다. 신기한 건 아이가 아주 갓난아이가 아니었고 아이의 품에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아이를 지키려는 것처럼.
동수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출판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모든 게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를 목격하지 전까지는. 민은 상담을 받던 의사를 찾아 약을 처방받고 일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동수와 무지, 까망이와 함께 나간 산책길에서 무지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짖기 시작했고 까망이가 무지의 눈을 공격했다. 단순하게 여길 수 없었던 민과 다르게 남편은 여전히 별일 아니라 여겼다. 그건 시작이었다. 기괴하고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고 민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민에게 남편은 여행을 권했고 집에는 친정엄마가 오셨다. 여행을 떠난 민에게 닥친 소식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화재로 인해 엄마가 죽은 것이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자책하는 민은 집에 설치한 홈 카메라를 떠올렸다. 동수의 부주의로 불이 난 것으로 보였다. 엄마는 동수의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민은 모든 게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 때문이라고 여겼다. 남편과도 관계가 있는 여자, 어쩌면 동수의 친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도 발견했다. 차계부에 그동안 여자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완벽한 증거를 찾기 위해 민은 남편의 제안대로 순순히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병원에 입원한 민은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도 약은 먹지 않았다.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전직 경찰이었던 아버지에게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를 수집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확인한 자동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이 직접 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민은 자신이 직접 모든 걸 밝히기 위해 몰래 병원을 나왔다. 정말 이 모든 게 남편의 계락은 아닐까. 소설을 읽는 나는 남편은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고 민이 치유받기를 바랐다.
병원에서 나온 민의 앞에 나타난 남편과 여자, 그리고 동수의 모습은 진짜일까, 거짓일까. 그 어떤 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민은 도망자처럼 오래전 동수를 발견한 폐허가 된 교회에 숨어든다. 인적이 끊긴 밤에 나와 먹을거리를 사며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 그런데 만약 민이 정말 허상을 보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은 모자를 쓴 여자가 민이 만든 이미지라면 말이다.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민의 망상이라 여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모두가 민을 속이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재하는 것이 허상이고 허상 또한 실재합니다. 무대 밖으로 내려가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모자의 안팎에 진실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순간 비로소 형체를 갖고 여러분을 따라다닙니다. 따라서 삶이란 모자 속 고양이를 꺼내는 일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꺼내는 겁니다.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꺼내는 순간 결정되는 거예요.” (212~213쪽)
소설 속 민이 입원한 병원에 강연을 하는 마술사의 말처럼 모든 건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와 허상을 구분하는 일 말이다. 모자 속에 숨겨진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고양이를 꺼낼 수 있는 이는 또 얼마일까. 모호함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미로에 갇힌 채 출구를 알 수 없는 길을 계속 걷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의 말 가운데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글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왼쪽과 오른쪽이, 위와 아래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 (263쪽, 작가의 말)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건의 시작이 너무 끔찍해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런 상태로 읽어서일까, ‘민’이 아이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고 범인이 있다고 혼란스럽게 믿는 심리적 상황에 함께 휘둘리며 읽게 된 듯하다.
심리스릴러라고 해서 살짝 겁을 먹긴 했지만 자식의 죽음에 대한 증거 - 흔적 -을 미친 듯 찾아 헤매는 어머니를 보는 일은 텍스트로도 힘들었다.
자신은 느끼는 범인의 존재, 주변인들은 모두 허상이라 여기는 상황……. 이런 모순이 있을 때 나는 서둘러 나의 감각을 다스리려 하겠지만, 아이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면…….
상황은 잠시 좋아지는 척만 하고 더욱 끔찍하게 전개된다. 개, 고양이, 아이 - 동수 - 를 입양했는데, 이후에 가족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급기야 ‘민’의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고양이도 동수도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부 사이에 끼어 들어온 타자였다. 상처를 덮기 위해 급조된 환경이었다.”
이사를 하고 새 삶을 시작해보려 하지만 아이를 죽인 검은 모자의 존재는 여전히 주위에서 느껴지고, 남편을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되고, 입양한 아이 동수를 죽이려는 시도를 한 후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한다.
“아이를 잃은 트라우마가 여전히 기억 어딘가에 남아서 계속해서 불안과 망상을 조장하고 있다는 의심과, 이 모든 기묘한 예감과 현상들이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 모든 걸 망상으로 돌리고 싶지도 않았다. (...) 수년 동안 쌓여 온 공포와 불안이 그녀의 내면에서 바깥으로 뛰어나와 하나의 형태로 마침내 존재를 드러낸 것일까.”
입원 기간에 남편에 대한 의심이 더욱 고조되어 이 모든 사건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 병원 탈출을 감행한다. 혼란스럽지만 일말의 확신을 가진 ‘민’을 따라 읽다 보니 현실과 허상,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독자인 내게도 모호하다. 모르겠다. 단지 아프다.
“운명은 선의 편도 악의 편도 아니라는 것. 그저 견디는 자들의 편이었다.”
출처 : 시각문화대표콘텐츠
|
|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에 마신 커피때문인지..그러나 민은 창문 밖에서 집을 훔쳐보는 검은 맥고모자를 쓴 여인을 발견했다. 참으로 무례하다. 베란다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집안을 둘러본다. 동수와 함께 자는 검은 고양이 까망이. 제법 커버린 강아지 무지, 그리고 코를 골지는 않지만 깊은 잠에 빠진 남편. 평화로워 보이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은 그러하지 못하다.
사실, 민은 사고로 아이를 잃었다. 은수를 유모차에 태우고 인적드문 약수터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유모차에서 떨어져 은수는 숨을 거뒀다. 분명 누군가 아이를 해쳤다는 민의 이야기는 묵살당했다. 그리고 나서 우연찮게 추운 겨울에 교회앞에 놓여져 있던 동수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동수는 부부의 아들이 된다. 하지만 그 후부터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강아지 무지를 공격하는 고양이 까망이. 그리고 낯선 동수, 누군가 지켜보는 시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애간장이 끓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래서 일까. 민의 심리상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건 말이다. 한밤중 자신의 집을 쳐다보는 여성을 찾기 위해 CCTV를 설치했다. 밖으로 향했던 CCTV는 점차 집안을 향하며 동수를, 그리고 남편을 훔쳐보게 된다. 단순하게 CCTV가 비치는 방향이 바뀐것이 아니라 민의 의심이 바깥에서 집으로 옮겨오는 것을 표현한게 아닌가. 그만큼 민의 심리는 불안해 보인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 음모를 꾸미는것 같다가도 그녀의 내면 심리가 불안해 보이기도 하다가 종 잡을수 없게 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왼쪽과 오른쪽이, 위와 아래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p.263, 작가의 말 中)
우로보로스,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문 모습으로 우주를 휘감고 있다는 뱀을 말한다. 무한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적 존재. 이야기 속에 "우로보로스"가 등장한다. 무한을 나타내는 상징이라 하는데, 이 이야기가 아무래도 민의 혼란이 외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내적 문제에서 시작인지, 어느것이 진실인지 구분할 수 없음을 빗대어 말하는 것 같다. 어느새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