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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중 봉쇄된 지역에 남아 비무장 평화투쟁을 벌였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전장에서 그들이 현실을 버티는 방법은 다름 아닌 독서. 그들은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 속에서 책을 건져내 도서관을 만들고 함께 책을 읽었다.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임을 잃지 않으려는 숭고한 끈질김 옆에는 책과 사람이 있었다.
「독서와 일본인」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에 일어난 대지진과 전쟁으로 일본은 출판업이 멈추고 수많은 책들이 소실되었다. 그런데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책에 대한 허기가 더 강해지는 모양이다. 헌책을 복사하고 철을 했다. 책 기근과 독서 생활의 파괴를 경험한 사람들은 재난 상황이 끝나자 다시 출판을 하고 책을 읽었다. '일단 눈을 뜬 독서욕이 사라지는 일은 분명 없을 것이다'(175p)라는 저자의 말은 20세기 중반에 펼쳐졌던 독서 황금시대의 포문을 여는 슬로건처럼 들린다.
재난 상황을 뛰어넘을 만큼 대단했던 독서욕이란 것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 이것이 이 책 전반부의 핵심이다. 여기에 중요한 개념 하나가 등장한다. '책은 혼자서 묵묵히 읽는다. 자발적으로. 대개는 자신의 방에서'.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정의다.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아도, 이 개념을 틀로 삼아 역사의 곳곳에 숨겨진 독서의 흔적을 쫓다보면, 이 정의의 구간 구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인쇄 기술이 도입되기 전 책은 누군가의 반복적인 필사를 필요로 했다. 한 권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정성은 차치하더라도 계급사회에서 읽기의 기회가 고르게 확산되었을 리는 없다. 귀족과 승려에 한정되어 있던 독서가 무사와 농민층에게 도달할 때까지 걸린 시간 만해도 1000여년이다. 책이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물건이 된 건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지금의 우리가 책에 대해 느끼는 물리적, 정서적 감각이 있다면 그건 역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이후의 특수한 경험인 것이다.
혼자서 묵묵히 읽는다는 건 또 어떤가? 혼자 머무를 수 있는 공간(방)이 있어야 한다. 밤에는 전등도 필요하다. 그런 환경이 없던 시절엔 신문을 하나 놓고도 온 가족이 마루에 앉아 소리 내어 읽었다. 이런 공동의 음독이 아니라 혼자서 입을 다물고 문장을 음미하는 사람들, 즉 '근대 독자'는 의무교육이 강화되고 문해율이 급격히 상승했던 20세기 언저리에서 탄생했다. 사실 이 근대독자의 정의는 지금도 유효하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 책갈피 꽂힌 페이지를 펼쳐 눈으로 읽고 손으로 밑줄 그으며 문장의 맛과 의미를 향유하고픈 나의 모습이 이 근대 독자의 이미지가 아니면 무엇일까.
근대 독자가 된 일본인에게 두 번의 재난은 독서에 대한 허기를 경험하게 했다. 이후 출판의 자본주의적 산업화는 배고픈 사람에게 든든한 밥상을 차려줄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내가 읽는 책을 너도 읽게 되는 근현대 독서시대를 가져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대중이라는 개념으로 뭉쳐지고 평등해지던 시절, 읽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책이 더 팔리던 시절. 드디어 독서의 황금시대다.
딱 여기까지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20세기가 지향한 독서 평등화의 적정선을 넘어 시장은 너무 많은 사람이 일제히 같은 책을 읽도록 만들었다. 같은 세기의 끄트머리에서 시작된 해리포터붐이 독서사에 던진 의미다. 또, 단기간에 많이 팔리는 가벼운 책들이 매대를 차지하며, '어려운 책을 발돋움해'(196p) 읽던 시절이 저물고 있었다. 무엇보다, 21세기의 가장 큰 비운은 그런 흐름이 독자수의 감소와 맞물려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독서와 일본인」을 읽는 독자 입장에선 일본이란 사회적 맥락도 별 소용이 없게 된다.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21세기를 가난한 독서로 일축해 버리지 않을 수 있게 한다. 사라진 건 책의 우위 구도이지 독서 자체는 아니니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독서의 위기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인터넷 검색이 피곤해 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 작가의 글에 지극히 공감했다. 그건 회복에의 열망이었고, 더 놀라운 건 그것이 내게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육아용품을 사느라 온갖 인터넷 사이트와 육아 카페를 뒤지고 돌아다녔던 나는, 어느 날 그것을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잃어버렸던 독서를 재개했던 때가 그 결심의 시기와 맞물려 있었던 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나는 이 책의 첫 페이지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한번은 그것(독서)을 잃어버려 보는 편이 낫다'(5p)는 저자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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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해째 이맘때면 수능 국어의 난이도를 두고 ‘불수능’ 논란이 떠들썩하다. 올해 역시 ‘역대급’으로 어려웠다는 비문학 지문이 단연 화제다. 수능 국어가 이제 노력이 아닌 재능의 영역으로 가버렸다는 자조 섞인 푸념도 제법 진지하다. 한편에선 역시 문해력이 문제라고 말한다. 작년 방영된 교육방송(EBS)의 한 프로그램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문해율은 25%에 그친다. 실질적 문맹률이 75%에 달한다는 얘기다. 해법은 자연스럽게 독서로 귀결하는데, 책 읽지 않는 우리 사회를 성찰할 때면 좋으나 싫으나 이웃나라 일본을 피해 가기 어렵다. 자타 공인 독서 강국 일본. 일본의 다종다양한 출판시장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면모를 자랑한다. 어디에서든 뭐라도 읽는다는 일본인의 남다른 독서습관 역시 명성이 자자하다. 일본의 유별한 독서 열기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일본의 베테랑 출판인 쓰노 가이타로가 쓴 <독서와 일본인>은 그 막연한 궁금증에 매우 실증적이고도 흥미로운 답을 제시해 주었다. 고대 헤이안 시대부터 20세기 ‘독서의 황금기’를 관통하는 일본 독서사를 보건대, 일본인의 독서는 생각보다 훨씬 연원이 깊었고, 놀라울 정도로 다채로운 집단경험의 결과였다. 저자는, 11세기 헤이안 시대 한 중급 귀족의 딸이 당대 최고 인기소설 <겐지 이야기>를 읽고 쓴 <사라시나 일기>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독서 행위를 발견한다. 소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방안에 파묻혀, 한 권 한 권 책 속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이라 썼다. 이것은 이전까지 소수 남성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던 독서가 여성 독자로 확대되는 단초인 동시에 ‘개인적 독서’의 전형을 보여주는 매우 결정적인 순간으로 꼽힌다. 17세기 에도시대에 이르러 인쇄술의 혁명적 발달과 읽기 교육의 확대는 상업적 출판 시장을 왕성하게 형성했다. 여기에는 <호색 일대남>이라는 공전의 히트작이 강력한 엔진으로 작용했다. 남성 주인공의 화려한 연애담을 삽화와 함께 묶은 이 장편소설이, 무려 350년 전에 이미 ‘독서하는 대중’의 탄생을 이끌었다는 점은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에도시대 일본인들이 얼마나 책읽기에 몰두했는지는 우리 기록에서도 흥미롭게 엿볼 수 있다. 숙종 시대 문장가 신유한은 1719년부터 1720년까지 약 10개월 동안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와 <해유록>이라는 사행록을 남겼다. <해유록>에 따르면 당시 오사카에는 서점이 즐비했고, 고금의 여러 분야 서적을 쌓아두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중국과 조선의 저명한 학자들의 저술이 없는 것이 없었다는 게 신유한의 생생한 증언이다. 심지어 신유한 자신이 일본 측 인사들에게 써준 시문들이 불과 한 달 만에 출판되었더라는 대목에서는 에도시대 일본사회의 독서열이 어느 정도였는지 절로 감탄하게 된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돌베개 출판사) 19세기 메이지 시대를 거쳐 ‘독서의 황금기’를 맞이한 20세기 일본사회는 ‘백만 잡지’ ‘엔본’ ‘문고’ 등 일본 출판 산업의 역동적 이벤트를 중심으로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습관’이라는 오늘날의 가치관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저자는 이제 주저함 없이 독서의 황금기가 저물었다고 말한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의 독서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종이책은 결국 전자책에 완전히 자리를 내주게 될까? 저자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각각의 기능을 수행하며 독서의 두 가지 형태로 유지될 것이며, 적어도 당분간은 그 중심축을 종이책이 가져갈 거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전자책이 됐든, 영상물이 됐든, 사람들이 정보의 바다에서 지쳐 돌아와 쉴 곳은 ‘몸을 동반한 독서’ 즉, 종이책이 될 거라는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과 안도를 느꼈다. 겨울방학이면 따뜻한 방구석에서 손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으며 한 장 한 장 신나게 책장을 넘기던 어린 시절의 세계명작동화라든가, 셜록 홈즈라든가 ‘몸을 동반한’ 그 책읽기 말이다. “독서가 그토록 소중한 것이라면, 그 매력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그것을 잃어버려 보는 것이 낫다”고 저자는 말했지만, 우리가 독서를 잃을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좋아요’하고 ‘강추’ 하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독려하며 계속 함께 읽어나가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