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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0세기 정신심리학자 세 명을 꼽으라면 알프레드 아들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을 고를 수 있다. 빅터 박사는 홀로코스트 사건 당시 수용소에서 생존한 유대인 정신의사이다. 매일 셀수 없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며 그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회의에 빠질 법도 한데, 그는 결코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살아남은 빅터는, 그의 경험에서 체득한 인간 심리를 기반으로 치료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그를 세계적인 심리학자로 발돋움하게 한 <로고테라피>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스포없는 감질맛 날만큼의 줄거리 나치의 난데없는 만행으로 유대인들은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빅터는 가족들의 생존여부도 확인하지 못한 채,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는 박사로서 진행 중이던 연구 현황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종이쪼가리에 받아 적었다. 하지만 검열대에서 몸에 난 모든 털을 깎아내야 하는 마당에 그런 종이쪼가리를 숨길 방법이란 없었다. 모든 사랑하는 인간 관계와 평생의 연구 결과가 상실되었고 이제 그가 가지고 있는거라곤 멀쩡한 사지 뿐이었다. 수용소에서 화장터로 옮겨지는 기준은 오로지 <효율성>이었다. 노동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안되는 사람들은 바로 사형에 이르렀고, 그래서 빅터는 고된 노역 중에도 멀쩡한 척하며 동상 걸린 발가락도 숨기며 지냈다. 다행히, 전문직인 그는 고급 인력으로 인정되어서 치료소에서 환자를 돕는 일을 겸하는 등 나름의 쉴 공간은 있었다. 죽음이 확실한 삶 속에 어떤 이들은 성자의 삶을, 또 다른 이들은 괴물의 삶을 산다. 선한 나치도 있는가하면 악한 동료 유대인의 모순도 그려졌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정신의로서 자신이 당시 보고 듣고 겪은 모든 사건들과 그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는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기록했다. 비록 생존자 한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기록물이지만 그의 작품은 영원히 말할 수 없게 된 대다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객관성을 띄기도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그가 개발한 <로고테라피>라는 심리 치료기법을 간략하게 다룬다. 인간은 쾌락과 본능 뿐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래서 단순히 신체적 기능의 저하만 치유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지 못하는 현상도 치유의 대상이라고 한다.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지옥과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정신 의학 박사의 생존기와 그가 벼랑 끝에서 발견한 인생의 의미란 무엇일까? 후감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구는 정말 맛있게 먹는가하면 누구는 한 입도 못먹는다. 같은 영화를 봐도 관점이 다르긴 매한가지다. 빅터의 기록을 보면 매일이 지옥인 수용소에서도 누구는 성자와 같은 삶을 사는가하면 누구는 괴물의 삶을 사는 것 같다. 결국, 상황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나의 관점이 더욱 유효하다는 말이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라던 내일일 것이다.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동기들, 옆방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후임들, 그리고 이제 곧 떠날 병장 선임들. 색깔 없이 흐르고 있는 무의미한 시간들에 색깔을 덧입혀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믿어주며, 누군가를 세워주는 유색의 시간으로 쓰고 싶다. 빅터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다. 그것은 그의 외투 속에서 잃어버린 그의 연구 현황보다 값진 것이었다. 그는 벌거 벗었지만 입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입었고, 평생의 연구 성과를 분실했지만 실험실에서 얻을 수 없는 우주의 비밀을 소유했다. 인생의 의미는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모든 것을 얻는 역설 앞에 내가 지금 달려가고자 하는 방향을 점검해 본다. 덧없고 유한한 인생에서 그 와중에 내 콩알만한 손바닥 안에 한개라도 더 집어 넣으려고 하고 있진 않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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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술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 박사가 직접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들을 담담하게 적어나간 글이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들을 감내하면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고, 경험을 분석하여 ‘로고 테라피’라는 정신 치료 기법을 창안했다. 처음에는 내가 모르는 강제 수용소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서 책을 구매하게 되었지만, 그 외에 정말 많이 위로가 되었던 책같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책 초반에 있는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시련은 우리의 삶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다. 시련조차도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이며, 이를 당하는 것도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p.125) 릴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p.130)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인간은 주체적인 생물로써,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판단에 달려있다. (p.187) 인간은 조건 지어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빅터 프랭클은 독자들에게 <나에게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고, 주체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생기는 시련조차도 유한한 목적과 의미가 있고, 그것을 단지 안좋은 일로 치부하느냐 또는 시련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고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냐는 온전히 나의 의지와 생각하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해도 정말 정말 힘든일이긴 하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지말자! 나의 인생에 책임감을 갖는다면 그것만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마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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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가지고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수는 없을지라도 시련에 대한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시련에 대한 나의 태도는 철저히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안도감이 든다. 내 인생에 대한 태도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인생에서 무슨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일에 대한 나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각자 다르게 사는 인생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신나는 것도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기도 하고 권태를 느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과 비교하며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삶에 대한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내 인생에서 나의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시련앞에서 무너질지 아니면 시련을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갈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린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도 또 시련앞에서 좌절하고 남과 비교하며 절망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어제보다 나은 나의 인생을 위하여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이 모든 것은 다 나의 태도에 달려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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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어떤 걸까? 누구나 한 번은 해봤을 생각이다. 산다는 것. 태어나니까 살아가는 그 이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빅터 프랭클은 산다는 것은 큰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으려면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인 삶에서 도대체 어떤 의미를 찾아야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빅터 프랭클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생각했다. 강제 수용소에서 툭 하면 맞고, 늘 배고프고 기운없는 상태에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도 사람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삶의 의미를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비현실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나 자신을 놓아버릴 수 있는 환경이니 나를 놓지 않고 끝까지 붙들기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것, 나의 미래, 나의 희망을 끊임없이 원해야 한다. 강제 수용소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이는 우리 삶에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언제나 지겨운 회사생활, 불화가 가득한 집안에서도 특유의 나른한 무감각 상태에 빠지지 않고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겨야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를 둘러싼 힘겨운 상황보다는 앞으로 나아질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수용소에서의 경험으로 저자는 증명했다. 이를 한마디로 ‘로고테라피’라고 한다.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그 의미흘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둘러싸는 불안한 생각도 역설의도로 좌절시키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 지향적 삶의 의미는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적 내용만 빼면 언뜻 자기계발서와 내용이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 다양한 실험과 사례로 증명이 된 것을 보니 더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이 책은 기쁨보다는 고통과 좌절이 더 큰 삶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내가 꿈꾸는 미래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체계적으로 전달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둘러싸고 있을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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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유대인, 정신철학자인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힘든 상황들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 라는 실존적 심리치료 기법을 개발했다는데요. 그것은 인간의 삶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내용은 에세이 같은 느낌에 자전적 수기 종류에 속하는 듯 하고, 뭔가 필사적이고 생동감 있는 상황을 전달해 주고 있지 않아 약간의 지루함을 동반하며, 나에게는 깊은 공감같은 것을 전달해 주지 못해 조금 아쉽다. ? 작가가 진정으로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또 현실 속에서 내 삶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깨닫고 또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고 알지만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절절하게 느끼거나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는 듯 하며, 왠지 모르게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치료 기법을 개발하기 위해 작가가 인위적으로 짜맞추어 놓은 것 처럼 강제수용소에서 실제로 본인이 경험했다는 느낌보다 다른 수감자를을 관찰자의 입장으로 보고 있는 느낌이 더 든다. 즉, 누군가 이야기 한 "인간 문제의 가장 심오한 의미에 초점을 둔 한 사람의 극적인 경험"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한 상황이다 싶다. 다만 우리의 삶에 있어 죽고 사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 주어진 삶 속에서 목표를 가지고 의미있게 살아야 하며, 미천한 인격이 아닌 고매한 인격을 가지고 악이 아닌 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느끼며 살아야겠다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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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두고 읽다가 말아서 이번에 다시 도전하여 읽은 책입니다. 근데.. 2번이나 읽을 책은 아니었던것 같아요. 뭐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너무 힘들고 슬프고 절망적이니까 삶을 포기할거 같은데 오히려 가스실이 있으니 자살을 보류한다고. 생각도 못했던 방향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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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는 수업시간이나 영화 몇 편으로 접했을 뿐 그와 관련된 서적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수용소 내부에서 자행되었던 일에 대한 책은 많았으나, 제대로 된 서적을 처음 읽어본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대략 잘 먹지도 못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갇혀있다가 가스실로 옮겨졌구나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이상으로 먹지 못하고 노동 착취를 당했으며, 그 안에서도 권력 관계가 나뉘어 줄을 타 목숨을 건지고,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직접 읽으니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수용소에 입소하게 된 순간부터 퇴소하는 순간까지 짧고 간결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저자의 3년을 전체적으로 훑은 느낌이었다. 여러 사건들이 정신과 의사의 시선에서 설명되어 단순히 비극만 전달받은 느낌이 아니라 덜 고통스럽게 읽은 것 같았다. 그런데 수용소를 퇴소하면서 1부가 끝난 이후, 갑작스럽게 저자의 로고테라피 강의를 읽게 되면서 책이 어렵게 느껴졌다. 번역이 어려운 건지 내가 문해력이 떨어지는 건지 1부도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2부로 들어오면서는 논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물론, 작은 것에서부터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삶을 영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과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오히려 강박을 받아들일 때 벗어날 수 있다는 점 등은 재미있게 읽혔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정신의학과 강의를 듣는 느낌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1년동안 대략 15권 정도의 책을 읽었는데 중간 이후부터는 기대하던 바와 다른 내용으로 구성된 책들이 꽤 있었다. 독서모임을 처음 시작하면서 책이 완전한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했는데 많은 저자들 또한 본인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갈피를 못 잡는 경우도 많다는 것 혹은 전달하고 싶은 말이 많아 한 권에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이렇게 깨달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