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뭉클했던 기억이 나네요. 판문점 자유의 집 앞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어린이 두 명은 민통선 안에 있는 대성동초등학교 학생들이었어요. 그때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구역) 비무장지대(De Militarized Zone , DMZ) 안에 민간인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궁금한 그곳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거든요.
한반도 비무장지대 안에는 민간인 마을이 두 곳이 있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을 남쪽, 즉 대한민국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북쪽, 즉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기정동 '평화의 마을'이 그것이다. 4킬러미터 폭으로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띠 형태의 비무장지대 내 민간인 거주 지역인 데다, 한국전쟁의 휴전회담과 후속 군사정전위원회 회의가 열린 판문점의 자매 마을에 해당돼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2p)
이 책은 두 마을 중 남쪽에서 접근이 가능한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취재를 위해 방문한 저자는 잠시 머무는 것만 허락될 뿐 하루도 묵을 수 없었다고 해요. 그 이유는 남쪽 DMZ를 확정하고 만든 정전협상 당사자가 유엔군이므로, 한국군이 실질적으로 관리해도 그 관할권은 미군에게 있기 때문이에요. 대성동 마을은 유엔사 관할이므로 주민들의 모든 행위는 그들의 통제를 받고 있어요. 대성동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유엔사 규정 525-2 '대성동 민사 행정'을 보면 대성동 마을의 위상, 출입증 관리, 경비대대 운용과 역할, 이장의 선출, 대성동 주민의 자격, 대성동초등학교 운용, 외부인 출입 방법 등 대성동에 관한 모든 것을 언급하고 있다고 해요. 따라서 대성동 지역을 출입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유엔사 군정위 비서장이 승인하는 비무장지대 임시 출입증이 발급되는데, 대성동 주민 역시 주민등록증 외에 빨간색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소지해야만 왕래할 수 있어요. 출입증을 분실할 경우 사유가 인정되면 재발급되지만 부주의로 분실하는 일이 세 차례 반복되면 출입 자격을 박탈할 정도로 엄격하다고 해요. 대성동 주민들은 납세와 국방 의무가 없어요. 유엔 관할 중립 구역으로 대한민국의 법률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라서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의무에 매일 필요가 없는 거예요. 대성동이라는 마을에 대해 알아갈수록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놀랍게도 한국전쟁 발발 당시에 대성동 주민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요. 그들이 전쟁을 체험한 것은 남하했던 전선이 북상했다가 재차 남하하여 38선 부근에서 진퇴를 거듭하던 무렵이라고 해요. 정전협상이 진행되던 기간으로 그때 대성동 마을이 중립 지대에 포함되면서 주민들은 되레 전쟁을 경험하게 된 거예요. 전투 행위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남북 간 정보 전쟁의 한가운데 놓이면서 주민들이 미군의 정보원 또는 보초 근무자가 되어 전선을 넘나들며 정보를 수집하거나 게릴라 활동을 펼쳤대요. 현재 대성동 주민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고립이라고 해요. 농산물 판매와 생필품 구입이 필요한 주민들은 미군 트럭을 이용하는데 고작 일주일에 한 차례이고, 바깥출입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남자들 몫이라서 고립에 따른 불편은 대개 여성들이 감당한다고 해요. 대성동 '자유의 마을'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유를 제한받는다는 사실이 씁쓸했어요. 이 모든 건 1953년 체결된 정전 협정의 결과예요. 북쪽으로 보이는 기정동은 대성동과 가장 가까운 이웃 마을이지만 군사분계선으로 나뉜, 절대 갈 수 없는 곳이에요.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도 밝혔듯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는 제안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대한민국은 68년 동안 휴전 상태였고,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경우는 없었어요. 솔직히 대성동 이야기를 알기 전까지는 휴전 상태를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어요. 그런 의미에서 대성동은 왜 종전선언이 필요하며,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증거가 아닌가 싶어요.
|
|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 사건으로 볼 수 있는 한국전쟁, 이로 인해 분단을 맞이하게 되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며 각종 이념 및 체재 경쟁으로 인해 또 다른 의미에서의 국력소모나 국민들 간의 불신적 감정이 팽배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에 피해를 겪었던 일반 사람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등을 잊은 채,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경험해야 했다. 지금도 분단의 상징이 되어 버린 비무장지대나 판문점 등은 역사기행, 문화 관광적 가치로 인정받으며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지만, 실제 그 속에서 격동의 역사를 체험한 마을이 있다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짐작조차 힘들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자유의 마을인 대성동이 그렇다. 분단의 최전선에서 때로는 UN의 관리를 받은 적도 있고, 제법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우리에게 인정받으며 국민이 되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았던 터전은 단순한 고향이 아닌, DMZ가 주는 다양한 의미들을 판단해 보게 된다. 여전히 마음이 유지되는 것도 놀랍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기존의 인식이 많이 희석되었기에 가능했고 이로 인해 새로운 관점에서 분단의 상징이 아닌 평화와 자유의 상징으로 재탄생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 의미가 많이 순화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역사적 가치를 묻어두자, 잊자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북한은 존재하며 최전방에서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만 아무리 현대적 관점이 모든 것을 지배하더라도, 우리가 왜 그 장소와 마을이 갖는 상징성을 기억해야 하는지,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대성동 마을을 통해 느껴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역사의식이나 시각에 대해서도 배우며 판단해 보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적인 느낌이 강하며 사람들의 흔적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 잘 보존된 느낌을 주지만, 뭔가 모르게 먹먹하면서도 적막한 느낌을 준다.
<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나 역사기행 및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 아니면 새로운 관점에서 특별하거나 특이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살아간 사람들에 대해 궁금증이 있다면 이 책은 괜찮은 의미를 답습해 보게 된다. 여전히 분단의 상징으로도 보이며 평화와 자유을 위한 마지막 남은 보루의 느낌도 주는 곳이지만 우리가 역사책에서 쉽게 배우지 못했던 전쟁의 이면과 아픔에 대해 생동감있게 배우며 분단과 북한, 한국전쟁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자유의 마을인 대성동, 읽으며 활용해 보자.
|
|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길이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개성공단에서는 남북한이 협력해 제품을 생산하면서 통일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네요. 이후 우리나라 관광객 피살, 남북한 교전 등이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남북한 정상회담,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몇 차례 열리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매우 인상 깊었네요.
실향민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임진각을 찾고, 이 곳에서는 통일을 위한 여러 행사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평생 몇 번 가볼까말까 한 곳이지만 군사분계선 바로 근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네요. '대성동 : DMZ의 숨겨진 마을' 의 저자는 대성동 사람들과 동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대성동은 작은 마을로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데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까지 올라갔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38선 근처로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대성동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었네요.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UN군 관할하에 있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대성동은 우리나라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마을이 되었습니다.
대성동 사람들은 UN에서 발급한 신분증을 소지해야 하며 이 신분증은 주기적으로 갱신됩니다. 학업이나 입원 등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8개월 이상 대성동에 거주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거주 자격을 상실하게 되네요. 대성동 외부의 여자가 대성동 남자와 결혼해 대성동 주민이 될 수는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대성동을 떠나야 합니다. 생활에 제약이 많고 불편하기 때문에 왜 대성동을 떠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성동은 강릉 김씨 집안 사람들이 많고 주민이 많지 않아 서로 누가 누군지 다 아는만큼 정든 마을을 떠나기 쉽지 않은가봐요.
남북한에 긴장감이 감돌면 어떤 지역보다 대성동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낍니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10여년 전까지만해도 북한의 대남방송 확성기 소리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최근의 평화 분위기를 누구보다 반길 것 같지만 또 그렇지 못한 사정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토지 소유 문서가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3명의 증인이 있으면 문서가 없어도 토지 소유에 대한 권리를 회복시켜 주면서 이를 악용해 대성동 토지 대부분이 외지인의 소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 수 없지만 법이 바뀌어서 소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되면 땅을 내어줄 수 밖에 없는데 수십년 동안 땅을 개간하면서 살아온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잘 해결되면 좋겠네요.
마을 이름만 몇 번 들어봤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직접 대성동을 방문해 많은 사진을 찍었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성동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알게 되었네요. 남북한 전쟁으로 대성동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대성동까지 가보기는 쉽지 않겠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임진각이나 도라산역으로 가서 실제로 분단의 현장을 느껴보고 싶네요. |
|
역설의 땅 DMZ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들만 살아가고 있는 줄만 알았지 민간인 마을이 있다는 건 몰랐다. 비무장지대(DE MILITARIZED ZONE) 안에는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을 기준으로 민간인 마을이 대한민국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기정동 ‘평화의 마을’ 두 곳이란다. 대성동은 행정구역 이름이 아니고, 마을의 행정구역은 파주시(옛 장단군) 군내면 조산리이다. 대성동은 47세대가 밀집된 주거지와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는 인근 영농 지역을 일컫는데, 대성동 날씨는 파주가 아니라 개성 날씨를 참고하는 게 나을 정도로 파주보다 개성과 훨씬 가깝다. 파주시청까지는 20km인데 개성역까지는 12.7km라고 하니,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 맘은 참 괴롭고 안타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성동은 개성과 서울을 오가는 의주로 상에 있었는데 오랫동안 장을 보러 다니던 길이 전쟁으로 끊어졌으니 말이다.
대성동은 곡창 지대여서 주민들은 한국 전쟁 중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1950년 전쟁 발발 당시 전쟁의 불길이 미치지 않아 농사를 지었고, 이듬해 북상하는 전선은 농사철을 피해갔고 10월 정전협상 장소가 판문점으로 옮겨오면서 유엔군 관할이 되어 전투 지역에서 제외되어서 또 농사를 지었고, 1953년에는 DMZ에 포함되면서 생산 외에 유통이나 서비스에 기반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길이 완전히 막혀 오로지 땅에 목을 매야만 하게 되었다. 개성의 지주에게 땅을 빌려 농사짓던 소작농이었던 대성동 주민들은 소작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졌고, 미군 관할이 되면서 한국 정부의 간섭이 미치지 않아 토지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고 점유권만 주어지게 변했단다. 정전협정 이후 대성동 주민들은 딱히 먹고 살 게 없어서 피땀 흘려 농지를 개간했지만 땅문서가 없기 때문에 비무장지대가 평화 지대로 바뀌어 대성동이 외부로 열리면 땅주인이 소유권을 행사하면 쫓겨날 처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 땅문서라는 것이 진짜 실소유자가 아니라 허위나 위조로 땅문서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하고, DMZ 땅을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업자들도 있다니 뾰족한 해결책도 없고 비무장지대 개방이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정원 35명인 미니 학교인 대성동초등학교은 학급당 인원이 5명뿐이어서 사실상 1:1 개별 학습지도가 가능하고, JSA 부대 군인들의 방과후 영어교육과 다양한 현장 체험학습 등의 혜택이 많아 경쟁률이 아주 높단다. 이런 좋은 점도 있지만 외부인의 통행과 출입이 제한되고, 농사철에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싶어도 승인이 되지 않아 어려운 점도 많다.
외부인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고, 군사구역이라 기밀에 해당하는 사항이 많기 때문에 잘 몰랐거나 왜곡되게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데 기여할 대성동 마을에 관한 첫 책인데, 대성동의 카운터파트인 기정동 마을을 아우르지 못하고 마무리하는 게 못내 걸린다며 이 책이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곧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
|
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
비무장 지대 안 어느 마을에 대한 이야기이다. 르뽀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의 저자 임종업은 비무장 지대 안에 자리하고 있는 대성동이라는 마을을 찾는다. 그는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옛 기록과 자료를 다시 정리해서 수록하고, 마을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마을의 풍경과 주민들의 사진을 책 속에 기록으로 남겼다.
비무장 지대라는 특수한 곳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표면적으로 볼 때 한국 전쟁사와 역사를 같이 한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는 곳. 일반적으로 혹은 보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 곳 대성동을 향한 세간의 시선은 마치 이념의 갈림과 같이 나누어지는 듯하다.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막연한 호기심을 품은 가벼운 관심으로 말이다. 군사분계선(우리에게는 휴전선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남방 한계선, 북쪽으로는 북방 한계선이 있다. 대성동은 아슬아슬하게 군사분계선을 바로 이웃에 끼고 형성된 마을이다.
초기 대성동은 선전마을이었다. 선전마을이란 무엇이었을까. 보이기 위한 혹은 겉치레를 위한 인위적인 것들이 강조된 마을이란 뜻인가. 사실 대성동의 시작이 선전마을이라고 했으나 따지고 보면 그런 의미들은 유엔군과 미군 포함, 한국군 및 다른 외지인의 시선과 사고에 맞춰진 기준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마을을 구성하는 주민들은 사실 전쟁이 나기 이전부터 같은 자리에 터를 잡고 살아왔던 이들로, 말하자면 순수한 원주민들이다. 외지인이 투입되지 않은 순수한 원주민이었다는 뜻이다.
어쨌든 말이다. 전쟁 직후 대성동과 마주하고 있던 북측의 민간마을 기정동 역시 선전마을이었다고 했다. 같은 의미의 마을이다. 그런데 분명한 차이가 있었으니 요약하자면 남측의 대성동 마을보다 당시 기정 마을의 조건?(건물, 전기)이 더 좋았더라는 점이다. 누가누가 더 잘 사나? 상대편에서 잘 보이기 위해? 이를테면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떤 막연한 선전성을 위한 목적으로 재구성된 대성동에, 드디어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던가 보다. 초가로 남루했던 집들을 허물고 새로이 거주할 수 있는 집들이 지어졌다. 이 무렵 사람들을 이주시킬 목적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과 미군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다고 했다. 저자는 대성동마을의 새로운 발전계획에 적극 참여했던 인물로, 마을 사람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주 회자 되던 인물인 ‘최덕빈 중령’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선전마을의 활용성이 실질적으로 당시 주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과 ‘최덕빈 중령의’ 평생의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대성동에서의 그 존재성과 입지가 시간이 갈수록 좁아져간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미완에 그친 최덕빈의 구상’의 내용을 읽다보면, 개인적으로 약간의 내용이 누락이 된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남과 북의 실향사민(납북 인사 귀환)맞교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최덕빈 중령이 사람들 기억에서 멀어졌다는 이야기로 전환된다. 중간에 무언가 부연 설명이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딴지가 많아지니 이쯤에서 각설하자.
우리는 저자가 대성동 마을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는 내용에 더 집중해야 한다. 마을의 형성 시기와 과정, 마을 주민의 생활상, 민주주의 선거개념과 전통적인 향약의 개념이 혼합된 지역 내 다양한 재정과 사회의 자치 기구 활동까지. 또 지역 내 딱 하나만 존재하는 초등학교 이야기와 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유엔군과 미군의 동행. 마지막으로 전쟁의 아픈 흔적까지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비무장 지대 첫 마을. 유엔군 소속이기에 일정부분 치외법권이 여전히 공존하는 마을. 여전히 땅을 귀하게 여기고 삶을 영위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 이곳이 대성동 마을이다. 척박함을 이겨낸 수고가 헛되지 않게 빛을 계속 밝힐 수 있기를. 그렇게 오래도록 평화의 마을로 남을 수 있기를. 대성동 마을을 지켜내는 모든 이들의 안녕을 바라며 개인적인 이번 기록도 이쯤에서 갈무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