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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릉개. 제목부터 호기심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이 책은 희곡집이다. 연극과 뮤지컬, 창극 등 100여 편이 넘는 희곡을 써서 무대에 올린 재능과 실력을 모두 갖춘 극작가 최기우가 평민사에서 펴낸 네 번째 희곡집이기도 하다.
희곡은 일반 독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이 아닌 것인가? 희곡집을 사서 보는 이를 드물게라도 못 보았다. 희곡의 완성은 무대공연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러나 희곡은 엄연히 문학의 한 장르다.
문학의 완성은 희곡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을 위해 작가는 올해 연달아 희곡집을 출간했다. 무섭게 은근히 그러면서도 스며들듯 다가온 희곡집은 다른 문학장르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생동감과 현장감을 선물했다. 특히 전라도 사투리가 일품이라 읽는 재미가 개미지다. 소리내어 읽다보면 무대가 저절로 펼쳐지고 그 위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배우들의 신명나는 놀이에 빠져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달릉개에는 모두 다섯 작품이 실려 있다. <달릉개> <녹두장군 한양 압송 차><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월매를 사랑한 놀부><아매도 내 사랑아>다. 남원과 전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여러 차례 남원과 전주에서 상설공연되었다. 작가 스스로 공연 복이 많은 작가라고 하는 걸 보니 희곡을 썼다고 다 공연으로 이어지지 않나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을 최기우 작가는 연신 해냈다. 똑 떨어지는 글솜씨와 재치 넘치는 표현력, 탄탄한 서사와 개성적 인물에 또렷한 주제 의식까지. 오방색에 영양까지 골고루 갖춘 비빕밥처럼 완성도 높은 작품은 최고의 공연을 보장했다. 그래서 믿고 보는 최기우 극작가가 아닐까.
다섯 작품 중 <달릉개>는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버지 소원인 참봉이 되기 위해 소리꾼이 되려는 달릉개는 전주대사습에서 귀명창들에게 창피를 당하고 부채장수가 된다. 우연히 만난 주명창을 통해 달릉개는 소리꾼이 되려는 이유가 부귀와 명예가 아닌 삶속에 어우러진 소리를 통해 진정한 예술가가 됨에 있음을 깨닫는다. 달릉개처럼 내 행복보다 남의 기대와 시선에 사로잡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자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에는 나오는 바베트처럼 음식에 예술혼을 불어 넣어 먹는 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이 진정한 예술가임을 깨는 것처럼 예술이 어떤 목표가 아닌 자신이 하는 일에 행복을 느껴야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는 걸 달릉개가 또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행복하게 써야 행복하게 본다."는 최기우 작가의 작가 의식이 <달릉개>에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랏님께 진상한다고 귀한 것이 아니네. 부채는 그냥 부채로 귀한 거야. 부채가 제 모습을 갖추고 제 바람을 내려면 복잡하고 까다로운 손길을 얼마나 많이 거쳐야 하는가. 그 손길을 수차례 거치면서 힘든 과정을 견뎌냈으니 얼마나 귀한가. 부채는 맑은 정성들이 담겨서 순한 바람을 내는 거라네." 달릉개 p. 31
"장터가 소리터여. 사람 모이는 곳이 소리터여. 꿈틀꿈틀험선 죽고 살고, 간절하고 절박헌 것이 소리여." 달릉개 p. 49
"소리가 뭐냐? 세상 사는 얘기들이 가슴에 쌓여 온몸에 차는 것이 소리여, 옹구 사요. 옹구 사요, 열무 사요,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소리, 우리 엄니 고생 고생헌 소리, 우리 아비 노름하고 바람피운 소리, 누구나 무심히 지나치는 소리, 가차운 소리, 먼 소리, 웃긴 소리, 슬픈 소리, 한 맺힌 소리, 깊고 낮은 한숨 소리,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꽃잎 피고 지는 소리, 온갖 자연의 소리와 빛깔. 아주 낮은 골짜기에 물이 모이듯이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가슴 저 밑바닥으로 쌓이고, 그것들이 흩어졌다 뭉치고 뭉쳤다가 다시 흩어러짐선 어우러지는 이야기들. 그것들을 사무치게 갈고 오래오래 삭히고 묵혀서 한 마디 한 마디 꺼내는 것이 소리여. 그것이 전주 소리여." 달릉개 p. 62
<녹두장군 한양 압송 차>는 역사 인물 전봉준을 통해 민중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음을 "역사는 민중의 분노를 먹고 자람 P.112 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나머지 작품들 또한 고전 재해석을 통해 다양한 색보자기를 펼쳐 그 안에 선물 같은 이야기를 담아 우리에게 선사했다. 놀부, 월매, 흥부 캐릭터가 가지는 한계를 무장해제시켜 문학이라는 연금술로 상상력의 폭을 넓힌 작가 최기우, 그의 행보는 앞으로도 힘차고 당당할지니 우리는 그가 가는 길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면 되는 일이다. 모든 작가는 독자의 응원이 필요한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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