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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한 마음으로 3권 마지막 장을 덮었다. 한참을 멍 때리고 있다가 이 글을 쓴다. 훌륭한 자질과 고결한 품성을 지녔으나 천민의 자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억울한 천대와 멸시를 견뎌야 했던 천도윤. 반상차별은 없어진지 오래 되었고 조국은 해방되었는데 일제강점기보다 혹독한 운명이 그를 덮친다. 외세에 의한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랑하는 사람들을 앗긴 그는 죽는 날까지 빈곤과 고난, 소외와 몰이해 속에서 살아간다. 공산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면서 고정간첩으로 몰려 징역을 살았고 출옥 후에도 고난과 불우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천도윤은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과 모순의 상징이다. 그러나 타고난 고결함과 강철 같은 의지를 끝내 저버리지 않은 그는 불행했을망정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천도윤의 고난과 불우는 안타깝게도 그가 애지중지 키운 손자 천인겸에게도 대물림되지만 작가는 놀라운 반전을 준비해놓았다.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해피엔딩을 위한 작위적 반전도 아니고 소년 천인겸 개인을 위한 해피엔딩도 아니다. 증오와 복수심, 가문과 혈육에 대한 집착이 부질없음을 보여주는 반전이며 소년 천인겸은 천도윤의 손자다운 삶을 선택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결말이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듯 남쪽의 기록과 북쪽의 기록이 다를 것이다. 작가는 남쪽에서는 당연히 패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게 마음을 얹어 이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민군이 되고 미전향장기수가 되어야 했던 주인공 천도윤의 운명이 자발적 선택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듯이 작가의 관심 또한 특정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덧없음과 민족의 화해에 있음을 읽는다. 민족의 독립과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몸부림이 죄가 된 사람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비극적 최후를 맞았거나 굴절된 평생을 살아야 했던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이 작품에 독자인 나도 꽃 한 송이 바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