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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영역이 맞물린 인문학 도서를 읽는 것도 내 취향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는 요즘이다. 예술, 철학, 과학 이렇게 한 가지만 깊게 파는 도서들도 좋지만 음악과 미술이라던가, 미술과 역사라던가, 과학과 역사 등 다양한 분야가 맞물려있는 인문서들 또한 특유의 매력이 있다. 이번에 읽은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는 예술(특히 미술)과 철학의 만남이다. 앙리 루소, 구스타프 클림프, 에곤 실레,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파블로 피카소, 피터르 브뤼헐,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으로 하이데거의 철학에 접근하는 책이다. 모든 철학과 예술, 문학의 근원은 역시 하나인 것일까.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세창출판사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는 미학과는 무관한 책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이 이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대한 그림들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읽어나가다보면 자연스럽게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게 되면서, 예술을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을 또한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철학도 예술도 실은 체험적 현실을 표현하는 상이한 방식들일 뿐'(p4) 이라고 하면서 '그림을 감상하는 자는 그림과의 만남이 자신의 삶에 불러 일으킨 체험적 현실을 음미하는 자이며, 그 체험적 현실 속에서 화가가 대상과의 만남을 통해 겪은 어떤 체험적 변화를 함께 발견하는 자' 라고 표현한다. 또한 '그림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감각이란, 감각하는 자의 존재에서 일어나는 변화로서만 가능하다는 단순하고도 자명한 존재론적 진실과 만나게 되는 것' 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고 읽지 않아도 좋은 책이다. 그래도 하이데거가 누구인지는 알고 시작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이데거의 철학은 예술, 미학, 정치학, 역사학, 신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인문학을 깊게 만나보려는 사람은 언젠가는 한번쯤 하이데거와 마주하게 된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마르틴 하이데거(독일어: Martin Heidegger, 1889년/9월 ~ 1976년/5월)는 메스키르히에서 출생한 독일의 철학자이다. 1923년 마르부르크 대학, 1928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를 지냈다. 일반적으로 그의 철학은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 하는 전기 철학과 1930년~35년 사이의 소위 전회 이후의 후기 철학으로 나뉜다. 그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은 후설의 현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딜타이의 생의 철학 등의 영향하에 독자적인 철학을 개척하여 현존재의 존재의미를 탐구하는 실존론적 철학을 수립하였다. 하이데거의 전기 철학은 방법론적으로는 해석학적 현상학이며 그 대상으로 보자면 현존재, 즉 인간실존에 대한 존재론이다. 한편 현존재로부터 존재 자체로 핵심적 주제가 옮겨간 후기 철학은 역사적으로 존재 자체가 인간 현존재에게 어떻게 스스로를 현시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독일의 히틀러 집권시기 나치 독일을 지지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자주하였으나 나치 독일 패전후 독일 비(非)나치스화 청문회에서 유태인 한나 아렌트의 증언 등으로 처벌을 피했고 이후 5년 동안 학문 활동을 금지당했다. 이렇게 나치에 협력한 전적으로 공격당하기도 하지만 많은 철학자들로부터 철학의 천재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유명한 20세기 유럽 철학자들은 하이데거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사르트르, 푸코, 아도르노, 하버마스 등의 철학자들은 모두 하이데거의 철학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에서는 앙리 루소, 구스타프 클림프, 에곤 실레,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파블로 피카소, 피터르 브뤼헐, 빈센트 반 고흐, 이렇게 일곱 명의 화가의 그림을 소환한다. 초현실주의, 아르누보 회화, 표현주의 회화, 인상주의 회화 등 다양한 화풍의 그림들이다. 철학 이야기 뿐만 아니라 화가의 생애, 일화,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도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기에 예술에 관한 관심 또한 제대로 충족된다. 각 장의 화가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네이버 지식 사전의 「501 위대한 화가」(마로니에 북스) 링크로 연결되는 QR코드도 제공되고 있어 책에 나온 그림들 외의 작품들도 감상해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하이데거의 주저는 「존재와 시간」 이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 책의 중심 개념 중 하나는 탈은폐와 은폐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론적으로 진리는 존재 자체의 드러남이고, 존재 자체의 드러남인 진리는 동시에 존재 자체를 감춘다. 한마디로 진리는 존재 자체의 탈은폐이기도 하고 은폐이기도 하다. 이 수수께끼 같은 개념은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의 여러 장에서 계속 반복되어 서술되는데, 나는 특히 1장. 앙리 루소의 회화와 7장. 빈센트 반 고흐의 회화와 함께 하니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듯 했다. 하이데거의 어법을 차용하자면, 루소의 회화가 내보여 주는 초현실성은 우리가 사실적이라고 믿고 있는 현상적 세계 이면에 감추고 있던 존재론적 진실의 드러남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현상적 세계의 이면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표상될 존재의 진실이 감추어져 있다는 식의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현상적 세계와 다른 이미지는 모두 비현실과 초현실이라는 두 개의 범주에 속한 것으로 간주될 뿐이다. 그러나 현상이 존재 자체의 탈은폐이자 은폐라는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현상적 세계의 이미지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 p24, 앙리 루소의 초현실주의 회화와 하이데거의 진리 개념 하이데거의 진리 개념은 빈센트 반 고흐의 1886년 작 <한 켤레의 구두> 에서도 다시 언급되며 알레테이아 개념으로 부연설명되고 있다.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의 기원」 에서 고흐의 이 작품에 관한 유명한 에세이를 남긴다. '난해하고 복잡한 이 에세이의 핵심적인 전언은 예술 작품이란 결국 존재 자체의 드러남이라는 의미의 진리, 즉 알레테이아라는 것이다.'(p281)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진리란 본래 어떤 객관적 사태에 대한 논리적 명제 같은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탈은폐, 즉 알레테이아를 뜻하는 말이다. 알레테이아로서의 진리는 물론 인간 현존재의 존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 일반 같은 것은 없다. 정신이 멀쩡한 자에게는 정신이 멀쩡한 자의 존재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존재 자체가 탈은폐가 될 것이고, 고흐처럼 미친 자에게는 미친 자의 존재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존재 자체가 탈은폐될 것이다. - p273,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상주의 회화와 하이데거의 알레테이아 개념 우리는 모두 일상세계에서 일상적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며, 그러는 가운데 나의 일상적인 자아가 형성된다. 이러한 자아를 하이데거는 비본래적인 자기라고 부른다. 일상세계는 도구적 의미 연관에 의해 지배되고, 비본래적 자기는 존재의 의미를 그 도구성 가운데서 발견하는 존재자이다. 예술가에게 도구는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저자는 '도구의 도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의 근원적 성스러움'을 드러내는 화가로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예로 든다.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에서 부유한 상류층의 허영심을 드러냈던 진주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는 도구적 일상세계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의 근원적 성스러움의 상징이 된 이유를 찬찬히 풀어내고 있다. 그 어느 것도 그저 똑같은 사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존재의미를 이해하는 현존재의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 현상이다. 그렇기에 공허한 정신을 지닌 인간 현존재가 발견하는 진주는 허영심의 상징이 되고, 자유분방한 정신을 지닌 인간 현존재가 발견하는 진주는 근원적으로 자유로운 삶과 존재의 성스러운 상징이 된다. - p153,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장르화와 하이데거의 도구 개념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 권으로 하이데거의 철학을 다 이해할 수 있으랴. 그래도 어렵게만 다가오는 철학을 다양하게 접근해보다보면 분명 관심이 커지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머리로만 이해하려했던 철학을 가슴으로 느껴보는 경험을 해보게 한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느껴지는 어떤 것이라고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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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브뤼헐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그의 그림책에 브뤼헐( 혹은 브뤼겔 )의 그림을 패러디해서 그려놓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브뤼헐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그림을 하이데거의 철학과 함께 만났다.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지음 세창출판사
피터르 브뤼헐이 대 피터르 브뤼헐과 소 피터르 브뤼헐이 있다는 것도 더불어 알아간다.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에서는 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을 대상으로 풀어간다.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 이라는 그림이 흥미롭다. 얼핏 평범한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오른쪽 아랫부분에 바닷속에 빠진 한 인간의 이미지가 있다. 상체는 보이지 않고 버둥거리는 다리만 보인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다. '이카로스의 추락에도 불구하고 밭에서 일하던 농부는 쟁기질을 계속하고 있고, 낚시꾼은, 심지어 자신이 앉아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 이카로스가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낚시질에 여념이 없다. 양을 치던 목동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p217)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브뤼헐의 그림들은 불의를 향한 우리의 분노가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예수의 수난에, 이카로스의 추락과 죽음에, 자식을 잃은 다이달로스의 슬픔에,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냉담하다. 왜 그러한가? 예수와 이카로스, 다디달로스 같은 자는 일상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유별난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 ) 일상적이지 않은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적어도 그의 삶이 내 일상적 삶에 체감할 수 있는 영향을 남기지 않는 한에서는, 나와 무관하다. (...) 결국 유별난 인간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은 부정하기 힘든 존재론적 진실을 하나 드러낸다. 그것은 일상세계의 근원적 규범성이 그 자체로 도구적 일상성의 한 가지 양태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진실이다.
- p224
하이데거는, 일상성이 인간 현존재의 근원적 존재방식의 하나라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이상세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규범과 권력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자는 나치즘에 한때 동조했던 하이데거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그의 제자인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까지 소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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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인상주의 회화는 하이데거의 알레테이아 개념과 연결된다. 알레테이아는 "존재자가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어떤 왜곡도 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그러한 드러남과 마주한다는 것" 으로 존재 자체의 탈은폐를 의미한다.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세창출판사
이번 장은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 라는 곡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워낙 유명한 곡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곡이라 음악을 함께 들으며 책을 읽어간다.
"이 세상은 단 한 번도 당신처럼 아름다운 이에게 어울린 적이 없었다고요." - <빈센트> 노래말 중에서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인간 고흐는 제정신인 고흐인가, 아니면 미치광이인 고흐인가? 고흐의 그림을 아름답게 만든 원동력은 광기와의 투쟁인가, 아니면 광기자체인가? (p267)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진리란 본래 어떤 객관적 사태에 대한 논리적 명제 같은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탈은폐, 즉 알레테이아를 뜻하는 말이다. 알레테이아로서의 진리는 물론 인간 현존재의 존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 일반 같은 것은 없다. 정신이 멀쩡한 자에게는 정신이 멀쩡한 자의 존재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존재 자체가 탈은폐가 될 것이고, 고흐처럼 미친 자에게는 미친 자의 존재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존재 자체가 탈은폐될 것이다.
- p273
친숙한 고흐 그림에 대한 철학은 다가가기 쉬울 줄 알았는데, 제일 어렵게 다가왔다.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의 기원」 에서 고흐의 <신발>(1886) 에 관한 유명한 에세이를 남긴다. '난해하고 복잡한 이 에세이의 핵심적인 전언은 예술 작품이란 결국 존재 자체의 드러남이라는 의미의 진리, 즉 알레테이아라는 것이다.'(p281)
고흐의 구두에 대한 이야기를 찾다보니 이 그림에 관한 다른 이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철학자인 하이데거와 미술사학자인 샤피로의 기념비적인 논쟁 같은 것)들도 많이 검색되어 함께 읽게 된다.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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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 - 북적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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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자로 그의 사상은 전, 후기로 나뉘는데 저서 [존재와 시간]은 그의 전기 사상을 대표한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그의 사상을 이 책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를 통해 좀 더 편하게 다가가보려 한다.
글쓴이의 말로 시작하는 책의 첫 부분에서 작가는 왜 이 책이 기획되었는지 하이데거의 철학이란 어떤 것인지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려 한다. 철학을 어려워하고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하이데거의 철학을 그림과 같은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이 책을 하이데거 철학의 입문서이자 결코 입문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렵다. 난해하다. 무슨 말이지? 처음 들어보는 단어 같기만 한 철학적 용어들도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실제로 철학도들도 하이데거의 이론을 어려워한다고 하니 말 다 했다. 난해하고 어렵지만 새롭고 기존의 전통적인 철학과는 다르다. 모호한 것 같다고 느끼지만 모호하지 않고 이 논리가 맞는 건가 싶지만 비논리적이다. 작가는 앙리 루소,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파블로 피카소, 피터르 브뤼헐, 빈센트 반 고흐까지 총 7명의 화가와 그의 작품들을 통해 하이데거의 철학을 설명해 준다. 하이데거의 진리, 죽음의 선 구성, 세계, 도구, 홀로-있음, 함께-있음, 일상세계, 알레테이아 개념과 화가들의 각 회화 스타일들을 짝을 지어 설명하고 그림을 통해 하이데거의 사상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한다. 매장 시작 첫 페이지에는 QR코드가 있어 찍어보면 네이버 지식백과로 연결되어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도록 돕는다.
무슨 소리지?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렸었다. 이해가 되고는 있는 것인가 싶어 혼란스러웠다. 나의 뇌는 벌써 용량을 초과했고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 머릿속 뇌의 존재를 깨닫게 되어 '이 녀석 살아있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뭔가 오랜만에 머리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에곤 실레의 삶과 그의 작품을 철학적 개념과 시선으로 풀어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누이동생을 사랑했던 에곤 실레의 평탄하지 않은 삶이야 익히 알고 있었고 그의 작품들도 자주 봤었는데 뭔가 새로웠다. 연인의 두 몸이 엉켜있는 모양과 색채 등에서 삶과 죽음을 대하는 에곤 실레의 내면의 표현을 조금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그림에서 보이는 죽은 피부 같은 색표현으로 인해 이상하게 희망이나 사랑 같은 감정보다 허망함과 죽음과 참혹함과 공포들이 더 느껴진다. 하이데거의 개념으로 봤을 때 에곤 실레의 세계는 무덤이었던 것일까? 존재자인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세계에서 에곤 실레의 삶은 진정 안온했을까? 철학을 공부하고 시선을 바꿔 명화를 바라보니 그림이 다르게 다가온다. 게다가 뭔가 하이데거의 개념도 조금씩 쉽게 이해가 되려고 한다. 작가가 원하는 방향을 내가 잘 따라가고 있는듯해서 읽는 내내 괜히 뿌듯하다. 호불호가 갈리는 철학자인 하이데거가 사상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형이상학을 설명할 때 제일 익숙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인데, 무척 쉬운 질문처럼 느껴지지만 이처럼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도 없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형이상학이란 나와 현상적 존재자 사이의 근원적 통일성에 대한 망각의 표현이다. 좀 더 풀어 설명하면 내가 보는 빨간 꽃을 나는 나와 다른 개별적인 것이라 착각한다는 것인데 하이데거는 이런 형이상학을 비판하였지만 완벽하게 벗어나진 못했다고 한다. [ 존재와 시간]이라는 하이데거의 저서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실존하는 관계에서의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었다. 솔직히 어렵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이론화하는 철학자들의 말이 어렵고 이해가 안 되지만 계속 읽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고 뭔가 빠져드는 느낌이다. 말장난인듯한데 묘하게 설득된다. 찾아보니 이 전 책으로 [그림으로 보는 니체]가 있었고 앞으로 들뢰즈, 푸코, 사르트르도 계속 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건 무조건 모두 소장각이란 생각이 뇌리를 빠지직~ 하고 스친다. 명화를 보는 눈을 높이는 데 있어 철학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철학적 사고를 장착하고 보는 그림은 그 의미와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끙끙거리고 생각하고 고민해가며 읽어서 더없이 즐거웠던 책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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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철학자들 가운데 하이데거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철학자도 별로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하이데거는 합리적 이성 중심의 근현대 문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로서 위대하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하이데거를 똑같은 이유로 비난한다. (p53)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지음 세창출판사 하이데거 존재론의 근본 명제 가운데 하나는 ‘존재는 늘 한 존재자의 존재이다’ 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 현존재와 무관하게 이런저런 개별적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것이 자명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반대이다. 하이데거의 어렵고 복잡한 논의를 거칠게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개별적 존재자는 언제나 시간과 공가 안의 것으로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실재적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와 구스타프 클림트, p57)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 / 캔버스에 유채 구스타프 클림트의 <죽음과 삶> 은 1915년 작품으로 클림트가 53세에 되던 해에 그려진 작품이다. 그림 왼편에서 해골의 얼굴로 삶의 세계를 노려보고 있는 죽음의 상징은 검은색과 보라색, 파란색 등의 색으로 표현되어 있고, 삶의 세계는 주황색 계열과 분홍색 계열 등 대체로 따뜻하고 어여쁜 느낌을 주는 색으로 뒤덮여있다. 저자는 이 그림을 에곤 실레의 그림과도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제시하는 죽음의 존재론에 대한 예술적 보론이라고도 말한다. 오늘은 클림트의 그림 한장을 들여다보며 하이데거의 철학의 한 조각을 이해하려 애써본다. 그림과 함께 철학을 논하니 더욱 생생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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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완독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아이데거는 사실이라는 말 대신 현사실 및 현사실성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현사실은 소위 객관적 사실성의 이념이 철학적 망념에 불과하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고안된 말입니다.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객관적 사실 같은 것은 없습니다. 위대한 그림들에 대한 철학적 해설을 읽어 나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도록 할 목적으로 기획된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는 세창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니체에 이어 출간되는 두 번째 작품입니다.
영원불변하는 인식의 체계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 형이상학적이다.-p.55
마르틴 하이데거는 1889년 9월 26일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 메스키르히에서 성당지기 프리드리히 하이데거와 그 아내 요한나의 장남으로 출생했습니다. 하이데거의 고향 메스키르히는 독일 최남단에 자리한 시골로, 마을이 온통 로마교회풍의 보수성을 띠고 있어서, 이는 훗날 하이데거의 사상 전반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짙게 깔리게 된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림도 감상하면서 좀더 쉽게 접근해 보겠습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난해하다? 그의 철학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다가 덮기를 반복합니다.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는 좀더 철학을 예술작품을 통해 가까이 접근하기 쉽게 설명한 책으로 하이데거가 철학적으로 표현하려는 삶과 작품에 관해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1장 하이데거와 앙리 루소에는 하이데거의 어법을 차용하자면, 루소의 회화가 내보여 주는 초현실성은 우리가 사실적이라고 믿고 있는 현상적 세계 이면에 감추고 있던 존재론적 진실의 드러남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현상적 세계의 이면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표상될 존재의 진실이 감추어져 있다는 식의 생각은 잘하지 못합니다. 순수하고도 절대적인 사실적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루소 회화의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수 있었습니다.
p.48 <꿈>이 그리고 있는 세계가 달빛으로 비추어진 세계이듯이 <잠자는 집시>가 그리고 있는 세계 역시 달빛으로 비추어진 세계이다. 달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고, 나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자아망집으로부터 벗어난 자, 자기와 자기 아닌 것 사이의 실체적 구분이라는 망상으로부터 벗어난 자에게는 바로 자신의 눈이자 동시에 온 자연의 눈이다.
하이데거가 나치를 지지한 근본적인 이유는 나름의 철학적 배경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대두하던 미국식 자본주의나 소련식 공산주의 모두 기술 문명의 산물로서 인간을 경제적 생산의 부품으로 전락시키고 본연의 인간성을 말살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하여 전통적인 민족정신과 자연성의 회복을 부르짖는 나치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하이데거의 철학을 넘어 삶과 존재의 근원적 현상을 향해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일반 독자가 누군가의 지도도 없이 삶과 존재의 근원적 현상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이 읽고 느끼고 사유하면서 조금씩 흉내내 보기를 원합니다. 책은 하이데거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그림과의 만남을 통해서 체험적 현실을 음미하고 자아를 찾아 보는데 좋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미학과는 무관하여 미학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지 않다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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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갈리는 철학자인 하이데거가 사상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형이상학을 설명할 때 제일 익숙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무척 쉬운 질문처럼 느껴지지만 이처럼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도 없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형이상학이란 나와 현상적 존재자 사이의 근원적 통일성에 대한 망각의 표현이다. 좀 더 풀어 설명하면 내가 보는 빨간 꽃을 나는 나와 다른 개별적인 것이라 착각한다는 것인데 하이데거는 이런 형이상학을 비판하였지만 완벽하게 벗어나진 못했다고 한다. [ 존재와 시간]이라는 하이데거의 저서가 자주 나와서 그 책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실존하는 관계에서의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큰 역할을 한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철학자이면서 신학자였는데 그의 종교론에 나오는 철학을 하이데거가 현상학적 존재론으로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어렵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이론화하는 철학자들의 말이 어렵고 이해가 안 되지만 계속 읽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고 뭔가 빠져드는 느낌이다. 말장난인듯한데 묘하게 설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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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지음 | 세창출판사 하이데거는 난해하다. 그 철학이 난해하다는 뜻이다. 저자가 알고 있는 철학도들 가운데 하이데거의 주요 저서인 <존재와 시간>만큼 어려운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호소하기도 한다고 하니, 역시 하이데거의 철학이 철학도들 사이에서도 난해하기로 소문이 났나보다. 하물며 나같은 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본디 철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니 일반인이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는 산 넘어 산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그 철학 자체를 넘어서 삶과 존재의 근원적 현상과 만나는 일이라고 말이다. 하이데거의 사상은 비논리적고 모호하지도 않으며 그 바탕에 놓인 체험적 현실을 느낀다면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한 바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반복해서 강조하는 바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삶과 존재의 근원적 현상을 향해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말이다. 그러한 한 방법으로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는 철학을 공부하는 또 다른 대안이다. 과연 그림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 대상과의 만남이 화가의 삶에 불러일으킨 체험적 진실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자는 그림의 만남이 자신의 삶에 일으킨 체험적 진실을 음미하는 자이며 그 현실 속에서 화가가 대상과 어떤 진실을 체험했는지 함께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감각이란 감각하는 자의 존재에서 일어나는 변화로만 가능하다는 자명한 존재론적 진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앙리 루소, 구스타브 클림트, 에곤 실레,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파블로 피카소, 피터르 브뤼헐, 빈센트 반 고흐까지 하이데거의 철학과 연계한 화가 본인의 삶과 그 작품들이 실려있다. 과연 체험적 현실이란 무엇일까? 감정이란 일상성의 한 표현일 뿐이며 우리가 감각하는 것은 현상적인 것이다. 깨어 있는 의식은 이미 생성된 현상과의 관계 속에만 존속할 수 있다. 사실 나라는 주체 역시 생성과 소멸의 반복하는 감각 위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존재이다. 나는 언제나 생성, 소멸하는 감각과의 관계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역시 철학은 생각해야 하는 학문임을 느낀다. 더불어 하이데거를 좀 더 알려면 현상학을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하이데거의 제자였던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철학이 전혀 현상학과는 상관이 없음을 말하지만 말이다. 현상학과 상관이 없을 뿐더러 저서 <존재와 시간>은 실패한 저술이라고 하니, 이쯤되면 가디머의 철학 역시 궁금해진다. 그가 하이데거의 제자 중 가장 유명한 철학자이니 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가디머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거라고 일침을 놓는다. 철학의 근본 물음인 진리란 무엇인가? 인식이란 무엇인가? 꽃의 실재를 우리는 어떻게 느끼는가? 그 꽃이 붉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붉다는 것은 감각의 한 종류다. 감각하는 자신이 없다면 붉다는 것은 생길 수 없다. 감각하는 자여.. 바로 그대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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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 - 북적북적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한상연 (지음) | 세창출판사 (펴냄) 제 3장 하이데거와 에곤 실레 에곤 실레의 표현즌의 회화와 하이데거의 세계 개념 * 시간성. 현존재의 실존성의 근원적인 존재론적 근거 *음..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성. 현존재가 본질적으로 그것이 아닌 그 존재자의 규정이 아니라 현존재 자체의 한 성격 음..세계는 인간이 아닌 어떤 것. 순간 내가 좋아하는 에곤 실레의 그림과 그의 생애가 하이데거의 세계 개념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길래 표현이 이다지도 고차원적일까..멍했습니다. 그런데 두 인물의 세계를 바라보는 현존재자로서의 세계성을 아우르고 나니 둘의 사상과 작품 서계가 더 깊어집니다. 우선 시간성을 잠시 보자면, 어느 때가 현재인가? 나의 지금은, - 우리가 많이 사색해봤던 것처럼 과거,현재, 미래로 나눔을 전제한다면 - 나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으면 현재도 없고, 따라서 과거와 미래도 없습니다. 세계는 어떠한가? 세계는 공간과 연결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면, 내가 체험하는 세계, 오직 특별한 존재 자로서의 나의 존재에 그 근거를 두고 열릴 수밖에 없는 세계. 여기서 에곤 실레가 경험한 세계를 살펴보니 온통 살아도 산것이 아니요, 죽음의 색채와 불안, 공포가 삶 속에서 공존하는 세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의 생애가 불행하고 어두웠음이 영향을 주었겠지만, 사랑도 가족도 모두 상처와 경악스러운 운명 그 자체였습니다. 실레의 세계는 그러므로 그가 온전히 체득하여 살아냈던 죽음의 무덤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서 있는 자. 하이데거의 세계관으로 만나본 에곤 실레였습니다. #그림으로보는하이데거 #한상연 #세창출판사 #리딩투데이 #독서카페 #리투서평단 #리투북적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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