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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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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를 읽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던 역사는 얼마나 진실에 가까웠을까. 지난 가을, 역사에 대해, 현재사에 대해 조금 더 알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의 책읽기는 예상과 달리 긴 시간 책에서 언급했던 인물들과 책들을 찾아보느라 이렇게 리뷰를 남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으며 이제 그 겨울마저 보내야 할 무렵이 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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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를 읽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던 역사는 얼마나 진실에 가까웠을까. 지난 가을, 역사에 대해, 현재사에 대해 조금 더 알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의 책읽기는 예상과 달리 긴 시간 책에서 언급했던 인물들과 책들을 찾아보느라 이렇게 리뷰를 남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으며 이제 그 겨울마저 보내야 할 무렵이 되었으니까.

저는 역사학자가 심판관이 된 것처럼 역사 속 인물들을 함부로 단죄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7쪽, 들어가는 글 중에서-

역사학자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쉽사리 역사 속 누군가와 그의 자손들마저 단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혹은 부러 곡해된 역사를 진실로 살아가는 것만큼 위험하고 곤란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립운동가와 변절자 혹은 매국노라 불리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귀를 솔깃하게 했지만 그보다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지난 삶속에 있었는가에 대한 자문이 더 컸다. 암기과목을 싫어하는 것과 역사의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는 노력은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암기는 싫다면서도 책에 적힌 그대로 이 사람은 애국자이자 나와는 전혀 다른 의식과 비범함을 가진 사람이라 선을 그었던 것은 아닐까. 1장 사람의 역사에 소개된 안중근과 이봉창의 삶은 비범했지만 그 사람들은 나처럼 보통 사람이었을 뿐이다. 다만 떨리고 두려운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견뎌내었을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후대의 평가에 따라 누군가는 애국자로 남고 누군가는 기록조차 되지 못한다는데에 있다. 1장에서는 잘못알고 있었던 내용을 깨닫는 것도 중요했지만 잊힌 이름들을 가슴과 머리에 새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2장 만들어가는 역사편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제주 4.3 사건에 관한 것으로 대만 2.28 사건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이었다. 바로잡아야 할 시기를 놓쳤을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방관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희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유사한 사건을 두고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위로와 반성으로 나아가는 대만과 그렇지 못한 우리의 사정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순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 전환점에 서게 된다면 숙고하며 역사의 방향을 가늠해야겠지요. 그때 내가 내린 판단과 행동이 바람직한 것이었는지는 오직 역사만이 판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160쪽

제대로 반성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현실은 힘을 가져서는 안되는 이들이 힘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인해 바로잡으려 하는 인물들의 목소리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개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부당한 줄 알면서도 더이상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 개개인들의 역사가 왜곡된다면 결국 자신이 속한 단체, 그리고 사회 결국 나라의 역사마저도 왜곡될 것이다. 책을 중간까지 읽을 때는 '어떻게 이렇게 잘못될 수 있을까' 하며 원망하며 분개하던 마음이 지금 내가 만들어가는 역사, 내가 조금이라도 옳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저자가 원하는 것도 아마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YES마니아 : 로얄 i********g 2022.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청소년 역사책 필독서: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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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현대사책을 읽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이긴 하지만, 저자가 지난 정권부터 현재 정권까지 본인이 썼던 글을 한데 엮어 낸 책이라고 보면 된다. 예컨대 지난 정권에서 문제가 정말 많았던 위안부합의, 국정교과서집필이나, 극우 단체의 건국절 논란, 점점더 악화되는 한일관계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마디로 역사책이긴 하나,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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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현대사책을 읽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이긴 하지만, 저자가 지난 정권부터 현재 정권까지 본인이 썼던 글을 한데 엮어 낸 책이라고 보면 된다. 예컨대 지난 정권에서 문제가 정말 많았던 위안부합의, 국정교과서집필이나, 극우 단체의 건국절 논란, 점점더 악화되는 한일관계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마디로 역사책이긴 하나, 역사적 사실에 비춰 저자 본인의 생각이 담겨있는 책이다.

 

 

많은 역사책이 역사적 사실에 비춰 저자들의 생각이 담겨있는 것들이 많으니, 이런 점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저자의 모든 말을 따르거나 공감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이 역시 한 사람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쓰여진 글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정통 역사학자이며, 왜곡된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이 맞다. 해서 많은 글들이 공감되고,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감상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글을 읽은 내 개인적인 감상이다. 대체적으로 저자의 글의 큰 궤는 공감하지만, 극히 일부분은 ‘나와는 생각이 조금 다르구나’ 싶었던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맞고 내가 틀리거나, 내가 맞고 저자가 틀렸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은, 읽은 사람 스스로에게 달려있으니 말이다.

 

 

이승만은 살아남고, 박용만은 잊힌 이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용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절친한 동지였고 미국에서 유학한 뒤 독립운동의 지도자 역할을 했지만, 노선의 차이로 완전히 결벌하게 되었습니다. (…생략…) 이승만은 4.19 혁명의 결과 하와이로 쫓겨난 뒤, 비서에게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상대는 바로 박용만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p 035

 

 

박용만은 1913년 이승만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자 성대한 환영행사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이 창간한 <태평양잡지>를 후원했습니다. 그러나 파국은 곧 시작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여자 기숙사를 짓겠다며 모금을 시작했으나 여의치 않자, 국민회의 부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이전시켜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다음 해에는 하와이 지방총회를 장악하려 했습니다. 그는 국민회를 강하게 공개비판하고 각 지역을 돌며 추종자들을 모아 박용만 지지파에게 테러를 자행하면서 국민회를 장악합니다. p 038

 

이 책으로 하여금 처음 알게된 이름 ‘박용만’. 

 

그는 미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에 힘쓰던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제 손으로 보듬은 이승만에게 배신을 당하고, 결국에는 친일파라는 누명을 쓰고 살해된 사람이었다. 그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으며, 독립운동 노선 차이에 의한 참극으로 보고있다고 한다.

 

 

이승만과 박용만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돌 빼낸다’, ‘검은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 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레 떠오른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웠던, 지금도 배우고 있는 일제강점기 당시 미주지역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이승만. 그 자리는 원래 독립운동가 박용만의 자리였던 것이다. 

 

 

그 후 1918년 회계감사에서 이승만의 부정이 드러나자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했고 이승만은 자신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인사들을 폭동죄 및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이승만은 법정에서 그들이 ‘박용만 패당이며 미국 영토에 한국인 군대를 만들어 위험한 반ㅇ리 행동을 하고 일본 함선을 파괴하려는 무리’라고 증언헀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두 모함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생략…) 결국 참다못한 박용만은 1918년 이승만의 독선과 야욕을 비판하며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하와이 한인사회는 양분되고 말았습니다. p 040

 

 

이승만은 3.1운동 이후 각지에서 임시정부 수립안이 나오자, 이를 수렴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을 자임하였고, 이를 승인하도록 밀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국채발행권을 고집하면서 구미위원부를 만들어 상하이에서의 집무를 거부했습니다. 그가 상하이에 나타난 것은 1920년 12월부터 1921년 5월까지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위임통치 건의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여 갈등만 벌이고 몰래 돌아갔습니다. 이승만은 궁지에 몰리자 자신이 배신했던 박용만에게 편지를 보내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강심장의 소유자였습니다. p 041

 

 

이승만은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측에 한인 군사부대 창설을 제안합니다. 박용만이 오래전부터 주장해 1910년대부터 준비했지만 이승만에 의해 뿌리가 뽑힌 노선이었습니다. 이승만의 방해와 파괴공작이 없었다면 박용만이 양성했던 조선인 군사력은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여 훌륭히 제 역할을 해낼 것이었습니다. 또한 해방 이후 승전국의 대우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p 042

 

어떤 사람이든 공,과가 함께 있다. 해서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할때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를 해야한다. 공이 많다고 과를 희석해도 안되고, 과가 많다고 공을 없애서도 안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어떠한가? 그에겐 공, 과가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난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하던 청년기는 충분히 공으로 일컬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초대 대통령 재임 후는 누가봐도 과였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독립운동을 하던 청년기 조차도 정말 ‘공’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든다.

 

 

물론 미주로 건너갔던 청년 이승만과 박용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배우는 국사책에는 없다.

 

서재필은 독립운동을 대표할 수 있는가?

 

학교 국사시간에 꼭 배우는 내용중 하나, 독립협회와 독립신문, 독립문, 그리고 서재필이다. 내가 학교에서 ‘독립문’에 대해서 배울때, 당시 국사 선생님은 명확하게 알려주셨다. 독립문은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청나라’에 ‘독립’했다는 의미로 세워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당시 선생님은 독립협회가 이완용을 비롯한 관료들이 만들었다거나,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2대 회장이었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 당시에 우리가 배웠던 독립협회 조선의 자주독립과 민중계몽을 위한 단체였는데, 이런 단체를 조직한 사람중 하나가 매국노인 이완용이고, 심지어 그 이완용이 회장을 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엔 아마도 기존의 역사교육관과는 너무 달랐을테니 말이다. 근데 왠지 지금도 이런 사실은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역사교육은 유독 빛에 대한 찬양을 중시하고, 그림자에 대한 반성은 축소하니 말이다. 한마디로 징비가 안된다는 것.

 

첫째, 독립협회는 서재필이 조직한 단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서재필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독립협회를 조직한 것은 이완용을 비롯한 관료들입니다. 특히 이완용은 당시 자신이 대신으로 있던 외부에서 독립협회의 창립 총화를 거행했고 건립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 후 이완용은 2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완용이 왜 나중에 친일파로 돌아섰는지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지, 있었던 역사마저 지워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독립협회가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건립한 것이 아닙니다. 영은문은 중국의 사신이 서울로 들어올 때 맞는 문으로서 속방외교의 상징이었는데, 이미 청일전쟁으로 서울에 침입한 일본군이 헐어버려 독립문 건립 당시에는 아래 기둥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독립협회는 영은문이 ‘헐린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 것입니다.

 

p 049

 

심지어 독립문을 세웠을 시기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갔을 시기다. 일본이라는 모리배가 너무 무서우니, 내 뒤에있는 강한 형아 집에 들어간것이다. 이 무슨 얼어죽을 자주독립국인가? 심지어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갔을 그 무렵, 아주 자유로운 삶을 사셨다.

 

 

 

 

셋째, 독립문의 건립목적은 조선이 여러 열강과 같은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하기 위해서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독립문 건립이 발기되던 1896년 7월,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해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독립문의 건립은 어디까지나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는 일본의 논리에 말려들어간 것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은 ‘이미’ 독립국이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청으로부터 독립시켜주었다고 선전했지만, 실은 청을 몰아낸 후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려다가 아관파천으로 좌절되었던 것입니다.

 

 

넷째, <독립신문>과 관련된 서재필의 업적이 과대평가되고 있습니다. <독립신문>발행은 갑오개혁 시기에 정부가 추진한 사업으로 일본의 방해를 막기 위해 미국인 서재필에게 진행을 맡긴 것이었습니다. 서재필은 당시 미국인 필립 제이슨, 한국명 ‘피제손’으로 활동했습니다.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음에도 그는 <독립신문>을 자신의 소유로 등록했고 1898년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일본에 팔려고 했던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p 050

 

 

아! 잠시 삼천포로 흘러갔지만, 독립협회, 독립신문 등을 배우면서 중요하게 배우는 인물 서재필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시금 생각을 해봐야한다. 서재필은 조선에서 한국인 서재필이 아닌, 미국인 피제손으로 살았다. 미국인으로 살고자 했고, 계속해서 미국인으로 살았으며, 미국인으로 생을 마치고 싶어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국사시간에 서재필에 대한 찬양아닌 찬양을 하는 것일까. 이건 흡사 고종의 밀명을 받은 헤이그 특사가 작금의 조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연설하는데 있어서, 조선 정부와 고종을 비판한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역사의 법정에는 시효도, 사면도 없다.

 

얼마전에 전 대통령 노태우씨가 죽었다. 근데 뉴스를 듣고 있노라니 너무나 이상했다. 나는 분명 전두환씨, 노태우씨가 대통령 예우가 박탈당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전두환 씨, 노태우 씨라고 불러야 한다고 배웠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면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전직 노태우씨, 이렇게 말이다.

 

 

만약 전두환 전대통령, 노태우 전대통령, 이런식으로 부른다면 이건 대통령 예우가 박탈당한 사람을 부르는게 아니라, 말그대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하며 부르는 말이다. 헌데!!!!! 대다수의 뉴스에서 노씨의 죽음에 대해,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고 참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당시에는 광주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줄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보도지침에 따라 언론 검열이 시행되어, 보도되지 않거나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Voice of Korea>라는 미국의 단파방송을 통해, 광주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략…) 다시 개교된 후 학교로 돌아온 많은 학생들의 얼굴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부끄러움을 보았습니다. 역사공부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군대를 지원해 다녀왔던 복학생이, 다시 역사학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던 결정적 계기는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p 062

 

 

전두환은 분명히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반성과 사죄도 하지 않았던 그를 쉽게 사면해주고 말았습니다. 역사의 심판을 어정쩡하게 하고 넘어가니, 이런 역사의 죄인들이 국민들을 우습게 알고 망언을 함부로 떠들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전두환은 자신이 광주 시민들을 향한 발포명령을 내린적이 없다고 계속 억지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권한만 무제한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않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p 063

 

 

그런데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한열이에게 직격탄을 쏜 사람은 누구일까요? 분명히 발사수칙은 45도 각도로 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격탄을 쏘았기 때문에 그런 사고가 난 것입니다. (…생략…) 이제와서 그런 것을 따져 무엇하느냐고 할지 몰라도 당시에는 왜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연세대 교정에서는 이한열 추모비를 다시 세우는 제막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다지 폭력적이지도 않았던 시외에 가담한 대학생을 죽이는 살인정권에 대한 분노는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p 074

 

 

광주 민주화운동, 6월항쟁 과정에서 정말 많은 국민들이 죽었다. 국민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은 분명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다. 하지만 그 뒤에는 2인자 노태우씨가 있었다. 이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서 6월 항쟁 당시 사람들은 전두환, 노태우 모두를 끌어내리길 원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태우씨가 ‘대통령 직선제’를 발표했다는 이유로(물론 다른이유도 있지만), 국민들이 그렇게 끌어내리고 싶어 하던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정말 지금까지도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당최 이해가 안간다. 어떻게 내 부모, 형제, 친구들을 죽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었는지? 진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물론 노씨는 전씨와 다르게 그 자녀가 수시로 민주항쟁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해왔다. 이 부분에선 분명 전씨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박탈되었던 대통령의 예우를 받는 것이 맞는것인가? 심지어 정부에서 나서서 노씨의 국가장까지 치뤄주었으니, 참 경악할 노릇이다. 아무리 그가 전두환씨와 다르다고 한들, 결국은 노씨 자신의 직접적인 사과라던가, 학살에 대한 배후를 끝까지 밝히지 않은채 죽었다. 자녀들의 사과와는 별개로 그 자신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는 이야기다.

 

 

정부에서는 국민통합이다 어쩐다, 별별 미사여구를 다 붙여서, 국가장을 시행한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놓았다지면, 결국 정부는 수많은 국민들을 학살했던 주범 중 한명을,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으나, 전직 대통령이었단 이유로, 그 자녀들이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해왔다는 이유로 국가장을 결정했다. 이런 선례를 만들었으니, 아주 나중에 전두환씨나 탄핵된 박근혜씨 역시, 노씨처럼 여러 이유를 늘여붙여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우리 스스로의 잘못된 역사를 풀어낼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할 수 있는가? 비단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월 항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군부독재 과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알지 못하고, 정부는 알면서도 눈을 돌린다. 심지어는 구속되었던 전씨나 노씨를 사면해주었다. 그런 우리나라다. 

 

 

일제가 죽인 우리 국민들은 눈앞에 보이고, 우리 정부가 죽인 우리 국민들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이런 선별적인 역사 해결방법이 과연 정당한게 맞는걸까?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한제국과 고종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나는 정말 이번 정권 초기에 대한제국과 고종을 치켜세우는 것을 보면서 실망을 금치 못했더랬다. 대체 어디를 봐야 고종을 개혁군주로 볼 수 있고, 자주 독립을 위해 애쓴 군주로 볼 수 있는지 말이다.

 

이태진 교수의 ‘고종이 정조를 계승해 민국이념으로 통치했다’는 주장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권유지를 위한 레토릭일 뿐이며, 그 자체를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군주의 이념적 기반으로 내세우기도 어렵습니다. 대한제국이 수행했던 개혁사업의 결과가 민에 대한 수탈 강화로 나타났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되어야 합니다. p 105

 

 

1873년 20세에 친정에 나서서 30여 년을 다스렸던 군주가 아무런 사상적 발전을 거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1876년부터 이루어진 문호 개방의 과정에서 고종은 대체로 개방론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한 조선 사람들이 고종과 김옥균, 박영효 정도밖에 없다’고 파악한 1882년 일본의 자료는 어떻게 볼것입니까? (…생략…) 물론 고종의 한계와 대한제국의 개혁사업에 나타난 문제점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반드시 고종 자신에게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간 당시 개화파 관료들의 문제도 함께 지적해야합니다. p 109

 

 

고종이 정말 개혁군주였다면 자신의 인척과 본인의 부패에 눈을 감지 말았어야했다. 자기 아비의 정책을 전부 돌릴게 아니라, 취할건 취하고, 문제가 있는 건 버렸어야 했다. 무엇보다 자기 안위를 위해 여러 강국에 매달려서는 안되었고, 자기 안위를 위해 자기 백성들에게 총구를 들이밀어선 안되었다.

 

 

하지만 고종은 그 모든 것을 했다. 본인도 부패했고, 본인의 인척들도 부패하여 백성들이 살기 힘들다고 일어나니, 그 백성들을 향하여 개틀링건을 발사했다. 심지어 그 백성들을 짓밟기 위해 외국세력을 불러들였다. 대외적인 눈이 너무 어두워, 서양국가가 근대국가로 나아가고 민국으로 나아갈때, 그는 되려 황제국가를 부르짖었다.

 

 

 

 

본인 아비의 패착인 경복궁 중건을 보고 무언갈 배웠어야했는데, 고종은 더했다. 저 위에 새 궁궐을 짓고, 멀쩡한 전각들을 수시로 개보수했다. 칭제를 기념하기 위해 나랏돈을 쏟아부어 잔치를 준비했다. 그런 돈을 준비하기 위해 저 나라에 이걸 팔고, 이 나라에 요걸 팔고, 하나둘 팔아가며 본인 안위를 위해 살았다.

 

 

고종이 외척과 측근세력들을 통해 정치를 했다는 것은 분명히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대한제국 시기에 개혁주도세력, 이데올로그가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황제가 정부 관료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점은 분명 국정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 관료들이나 망명자들의 행태를 보면 고종이 그런 방식으로 운영해나갈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종에게 근대 국민국가 수립의 실패 책임을 묻는 것은 가능하나, 전적으로 그에게만 몰아가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p 111

 

 

그런 의미에서 난 저자와 달리 고종에게 모든 죄를 묻고 싶다. 엄밀히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고, 좋은 정치를 위해 인재를 뽑아 관료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할 의무가 있다. 측근들이 부패하다면 물갈이를 해서라도, 바른 정치를 펼쳤어야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근대 국민국가 수립 실패 책임을 묻는 것을 떠나서, 그는 앞서 나라를 환란으로 몰았던, 백성들을 죽음앞으로 내몰았던 선조와 인조, 그 두 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전 왕조인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당시 분명 나라의 기본은 ‘백성’이었을텐데 말이다. 조선왕조 5백년간 정말 백성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왕은 얼마나 있었을까?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하여

 

역사교과서 왜곡이 단순히 역사교육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선 한국 정부가 곧 발표될 일본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또다시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뒤늦게 여론에 밀려 강경 대응을 하고서는 슬그머니 후퇴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p150

 

 

이러한 한일문제의 본질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데서 기인합니다. 일본 극우세력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국에 패배한 것일뿐,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할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식민지에 시혜를 베푼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의 왜곡을 자행하고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군사 대국화를 지향하는 여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같은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p 152

 

얼마전에 이런 뉴스를 들었다. 일본 국정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 명칭을 그냥 ‘위안부’로, ‘강제징용’은 그냥 ‘징용’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그저 ‘유감’을 표명했을 뿐이다. 일본에서 유네스코로 지정된 군함도도 그렇다. 일본이 군함도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그저 ‘유감’으로 대처할 뿐이다.

 

 

저자는 몇년 전 ‘또다시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뒤늦게 여론에 밀려 강경 대응을 하고서는 슬그머니 후퇴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했는데, 결국 또 반복되었다. 우리정부는 언제나 유감으로만 무장할뿐, 이렇다할 대응이 없다. 오히려 민간에서 나서서 대응을 하고 있다. 이를 보면 임진왜란 당시 도망간 선조와 들고 일어난 의병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중국이나 미국등에게는 ‘일본의 전쟁범죄’라는 표현이 적절하겠지만 식민지배를 당했던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점을 확인해 둡니다. 참고로 일본 정부는 중국과 미국에 대해서는 전쟁의 패배자로서, 전쟁의 책임을 인정했고 전범재판을 받았으며 공식적으로 사과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와 강제 동원에 대해서는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p 155

 

 

“한일관계 갈등의 책임은 한국에 있다”는 로버트 샤피로 전 미국 사무부 차관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일본의 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스스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을 통해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게 함으로써 미국 내의 여론을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돌리려는 것입니다. 마치 과거 1904년 제 1차 한일협약의 결과, 미국인 스티븐슨을 외교고문으로 채용하게 한 것과 같은 수법입니다. 고문을 독식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나아가 미국도 일본을 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를 나무라는 적반하장이 계속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과 정부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p 156

 

 

일본이 꾸준히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몇가지를 꼽자면 역시나 뒤에 있는 미국형님들이 아닐까. 그나마 트럼프 정부때는 트럼프가 일본을 꾸준히 무시해서 조금 통괘한면도 있었으나, 다시 일본에 우호적인 바이든이 집권했고 말이다. 바이든 집권 후 우리정부는 트럼프때와는 달리 일본과 우호관계를 도모하고자 하는 모습도 보이는게 사실이다. 미국의 은근한 압박도 있고 말이다. 

 

 

물론 외교를 위해서라도 인접국가인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왜곡 급행열차를 타고 가는 일본을 상대하면서, 변함이 없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참 뭐라고해야할까. 한일협정을 맺어서 모든 배상의 기회를 날린 박정희 전 대통령만을 욕하기엔, 그 이후의 대한민국 전 대통령들이 잘한게 뭐가 있나 싶다. 결국 저자의 말처럼 계속 같은 모습이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은 역사왜곡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서양국가에 많은 돈을 뿌려가며, 자신들을 위한 외국학자들을 키워내고 있다. 한국에 있는 극우세력도 동일하다. 역사왜곡을 위해 온갖 정성을 들여가며, 타국에 있는 학자들의 입을 빌려서 역사왜곡을 기정사실화하고자 한다. 이는 일본이 끊임없이 역사왜곡을 하는 동력이며, 우리가 일본의 역사왜곡에 힘을 못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쯤되면 역사왜곡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바뀌어도 진작에 바뀌었야했는데, 지금까지도 그저 ‘유감’으로만 대처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정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달의 사락 c******0 2022.0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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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마침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주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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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이다!! 이 말을 의심치 않았던 이유는 오랜 선조의 순탄치않은 삶은 현재를 사는 후손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기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조금 비판적 사고로 바꾼 사건은 바로 광화문광장에서 아이들과 촛불을 들고 노아베를 외쳤던 날이었는데요. 일본 우익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과거 위안부와 강제 징용 문제를 이용했다는 점... 그로인한 수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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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이다!!

이 말을 의심치 않았던 이유는 오랜 선조의 순탄치않은 삶은 현재를 사는 후손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기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조금 비판적 사고로 바꾼 사건은 바로 광화문광장에서 아이들과 촛불을 들고 노아베를 외쳤던 날이었는데요. 일본 우익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과거 위안부와 강제 징용 문제를 이용했다는 점... 그로인한 수출규제로 한국산업을 위협했다는 점... 그 때문에 현장에 나갔었지요. 문제는 바로 옆에서 외치던 탄핵반대 세력과 친일세력이었습니다. 섬뜩했던 것은 무력분쟁이었지만 생각이 다른 세력이었고 추후 사건의 기록이 어떻게 남겨질지 혼란스럽기도 했는데요...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그곳에 있었다거나 어느 정권이 집권하여 부모의 생각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클 지에 대한 생각이 오가면서 역사는 기록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만난 <주진오의 한국현재사>는 생각의 혼란을 정리하기에 좋은 기회가 되었지요. 저자가 말하는 역사는 바로 '실천이다'란 말에 무척 공감이 되었던 이유는 국민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으면 역사는 변하지 않음을 느꼈기때문입니다. 역사책이 아닌 역사에세이란 말도 어렵지않게 다가왔고 저자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건마다 써내려간 기록은 부끄럽지 않은 역사학자가 되기위한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책에 묻어난 듯 해서 더 좋았습니다.

 

 

<주진오의 한국현재사>에는 독립운동가들의 비범했던 삶 그리고 그들로 인해 바뀐 한국의 운명을 보여주고 타국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의 과오를 보여주면서 국민이 꿈 꾸던 민주화에 대한 역사를 들으며 다시금 역사는 결국 움직이는 국민의 실천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하는 행위는 이제 없어야 하며 앞으로의 역사교육에도 변화를 가져와야 할 중요한 과제 바로 교과서!! 어느 곳에 편향되지 않는 역사서 발행은 미래를 위한 진정한 발돋움인 듯 싶습니다. 그에 대한 판단은 당연히 나 자신의 몫이지요.

 

 

우연찮게도 어제 전두환 사망기사를 제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기사에서 '죽어서도 유죄'란 머릿말과 미납세금에 관한 기사에 하루종일 시끄러웠지요. 또한 곧 다가올 대선주자들은 전범 대통령이라며 장례행렬에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군중심리를 위한 움직임인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신의 의지인지 파악하는 것도 우리의 몫입니다. 역사는 실천이지만 그에 앞서서 관심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나간 일이라며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한가지씩 바로 잡아가면서 실천하는 것이 미래에 길이 남을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주진오의한국현재사, 주진오, 추수밭, 나는매일역사를다시쓴다, 역사학자, 역사에세이, 역사는기록, 역사관련도서

h********9 2021.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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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의 두 얼굴_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역사] 역사의 두 얼굴_주진오의 한국현재사" 내용보기
1253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인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 갔다. 몽골은 수차례 고려를 침입해 왔음으로 포로의 숫자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당시 고려 인구가 500만 명 안팍으로 추정된다니, 고려인 25명 중 1명 꼴로 원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샘이다. 당시에는 부원배라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고 출세하여 백성의 땅과 재산을 강탈했다. 고려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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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인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 갔다. 몽골은 수차례 고려를 침입해 왔음으로 포로의 숫자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당시 고려 인구가 500만 명 안팍으로 추정된다니, 고려인 25명 중 1명 꼴로 원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샘이다. 당시에는 부원배라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고 출세하여 백성의 땅과 재산을 강탈했다. 고려는 이렇게 몽골에 지배당하며 90년에 가까운 내전 간섭을 받는다. 반면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조선인 사망자는 최대 934명이다. 일본의 기록에는 553명으로 되어 있다. 어째서 우리의 인식에는 몽골에 대한 감정보다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훨씬 크게 작동하는 것일까. 간혹 영화나 소설을 보다보면 일본 순사가 군인의 기분에 따라 현장에서 민간 조선인을 즉결처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대인 학살을 그렸던 '쉰들러리스트'의 독일군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일제하에서도 원칙적으로 '법치'는 있었다. 무차별적인 학살과 살상이 아닌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았다. 일제의 불법적 만행에 대해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감정을 우선하고 역사가 그것을 뒷받침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21년에는 이판능이라는 젊은 조선인이 일본의 동경에 돈을 벌기 위해 갔다가 묵고 있는 일본인 하숙집 주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이 말다툼 끝에 이판능은 부엌칼로 하숙집 주인 두 부부를 살해한다. 그리고 길거리로 나와서 1시간 동안 17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이판능은 재판을 받게 됐고, 일본 변호사를 선임한다. 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하지만 2심에 와서는 그 형량이 7년 6개월로 감형됐는데, '정신착란'이라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 오늘날의 '심신미약'과 같은 이유로 그는 무죄감형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 사법 역사상 최초로 정신의 문제로 감형된 사건이기도 했다. 완전 무법의 시대일 것 같은 국권피탈의 기간에도 사법은 작동했다. 어린 시절 근대사를 배울 때마다 선생님들은 '일본놈들'이라는 말을 했다. 일본은 '악', 한국은 '선'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당시에는 정확하게 맞게 떨어졌다. 시대가 지나고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과연 내가 믿고 싶던 것들이었는지 떠올리게 됐다. 어째서 몽골에 비해, 일본에 대한 역사가 조금 더 극단적인 것일까. 추측컨데 이는 '현재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몇 가지 사례에 대해 아마 몇몇은 굉장히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이 나빠야 하는데, 일본을 옹호하는 듯한 글'에 대한 반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비교적 현재와 가까울수록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혁명을 보면 '승리한 근현대 정치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이 혁명들은 왕권을 몰아낸 의회의 승리다. 이 혁명을 통해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의회정치를 통해 근현대 정치사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단순히 따지고 보자면 이 혁명은 우리가 삼국시대 당시 '절대선'으로 여겨지던 '율령반포, 영토확장, 법치주의'의 결과를 만들어낸 '왕권강화'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왕권약화의 끝을 보여주던 서구의 정치역사는 그렇게 '혁명'을 통해 '절대선'으로 바뀌는 듯 했다. 반면 흥선대원군이 세도가문을 몰아내기 위해 했던 여러 정책 중 이부는 우리가 배운 '왕권강화'가 명분이었다. 동아시아 최강대국이던 '청나라'와 떠오르던 신흥강국 '일본'과의 외교능력은 그렇게 왕권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동학농민운동'이 서구 선진국과 다르게 성공하지 못했던 여러 이유들이다. 역사는 꼭 정해진 '선'과 '악'이 있지 않다. 시기에 따라 지금 '선'으로 보이는 것들이 '악'이 되기도 하고, '악'으로 보이는 것들이 '선'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역사를 이용하려 들기도 한다.

수학과 같이 정해진 정답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항상 존재하는 '역사'라는 분야에서 우리는 흔들거리는 양팔저울을 떠올리곤 한다. 한 쪽으로 쏠리면 다른 한 쪽에 무게를 실어 균형을 맞추고, 다시 다른 한 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대 쪽에 무게를 더해간다. 현대에와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과 '일본'을 적으로 두고자 한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도 그렇다. 안중근과 이봉창, 서재필의 이야기를 보면 이런 역사의 해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것에 더 열광하기 마련이다.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에 대해 국내에서는 '사죄사절단'을 구성하여 뤼순까지 가기도 했다. 또한 조의금을 모으고 대대적인 활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독립투사 이봉창 또한 색다른 해석이 있다. 그는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이름을 '기노시타 쇼조'로 바꾸기도 했고 여느 젊은이들과 다를 것없이 술마시고, 영화보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는 기록이 적지 않다. 서재필 또한 미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죽을 때까지 '필립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는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던 '독립신문'을 자신의 소유로 등록했고 1898년에는 미국에 돌아가면서 일본에 팔려고 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들이 했던 애국의 마음과 공적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 편향적이게도 사람들은 결과에 맞게 모든 것들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하는데 있다. 존재도 하지 않던 아프리카 대륙의 '콩산맥'이 20세기초까지 지도에 있었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있지도 않은 산을 올랐다는 사람과 그 풍경을 묘사하는 여행가들의 말들이 꾸준하게 이어지면서 '존재하지 않던 콩산맥'을 부정하는 것은 천치 취급당하기 일수였다. 나도 굉장히 오랜 기간을 입맛에 맞는 역사 이야기를 찾아 다녔다. 조금더 자극적이고 조금더 극적인 이야기들에 흥미가 생기고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과 감정, 삶의 태도가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여러가지 이해관계에 자유롭지 못 할수록 시끄러워 지는 법이다. 한국의 현대사 또한 진보와 보수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쓰여지는 역사를 볼 때면, '단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준다.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집필하는 교과서라는 단 한 권의 책에도 참 복잡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정확히 무엇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교과서 집필' 만큼이나 '독서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k*******4 2021.1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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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없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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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진오’라는 이름에 한 번, ‘현대사’가 아니라 ‘현재사’라는 제목에 또 한 번. 그리고 이어서 찾아온 두 가지의 감정. 둘째 아이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진인 역사학자 ‘주진오’의 책이 출간되어서 반가웠고 <한국현재사>에 담겼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 상황, 역사가 궁금했다.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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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진오’라는 이름에 한 번, ‘현대사’가 아니라 ‘현재사’라는 제목에 또 한 번. 그리고 이어서 찾아온 두 가지의 감정. 둘째 아이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진인 역사학자 ‘주진오’의 책이 출간되어서 반가웠고 <한국현재사>에 담겼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 상황, 역사가 궁금했다.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이란 부제가 붙은 <한국현재사>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검색부터 했다. 현대와 현재, 비슷하지만 분명 의미의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현대(現代)는 ‘지금의 시대’, 현재(現在)는 ‘지금의 시간’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역시 차이는 있지만 확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시대’와 ‘시간’으로 다시 검색했다. 시대(時代)는 ‘역사적으로 어떤 표준에 의하여 구분한 일정한 기간’, 시간(時間)은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라고 한다.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기엔 나의 지식이 미천하고 부족했다.

 

 

가슴 어딘가에 커다란 물음표를 남기고 마주한 [들어가는 글]에서 제목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과거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역사에서 ‘행동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다면서 역사학자는 오늘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오류와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며 ‘공감을 기반한 역사학’을 목표로 삼은 저자는 페이스북에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재적’ 문제를 일기처럼 꾸준히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을 모아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책 <주진오의 한국현재사>인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항상 되뇌며 스스로 반성하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부끄럽지 않은 역사학자인가?” 그것이 ‘현재’를 기록하고 살아가기 위한 역사학자의 기준일 것입니다. - 9쪽. [들어가는 글] 중에서.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사람의 역사’ ‘만들어가는 역사’ ‘참여하는 역사’ ‘이어주는 역사’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한 다음 각 장 마다 9편씩 모두 36편의 글을 수록해놓았다. ‘1장 사람의 역사’에서는 우리 근현대사에 자주 언급되는 인물 중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았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에 대해 당시 대한제국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걸 앞당겼다며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는 것과 이봉창 의사가 처음엔 일본인으로 살고 싶어했지만 좌절했던 경험이 있으며 그의 사진도 합성된 것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게는 의형제를 맺고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박용만이란 인물이 있었으나 노선이 달라 갈등을 빚고 결국 독립운동사에서 잊혀졌다는 대목은 안타까웠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국고 지원에 있어서 당시 역사학자들이 침묵한 것에 대해 저자는 날카롭게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은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심판이 어정쩡하게 이뤄졌다며 강하게 꾸짖는다.

 

 

사실 저에게 대통령이란 국민학생 시절부터 대학생을 거쳐 군에서 제대한 직후까지 박정희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특별히 고난과 탄압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일과 좌익활동, 독재와 인권탄압 그리고 파시즘적 문화압살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를 망가뜨린 장본인이 박정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텍사스에 있는 동안 박정희기념관에 200억 원의 국고를 지원한다는 기사를 보고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 58쪽.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중에서

 

 

얼마전에 읽은 책 <만들어진 진실>에서 어떤 것이든 ‘진실은 아흔아홉 개의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다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목적에 따라 진실을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그것을 퍼뜨린다는 대목이 있었다. 언론사를 통해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요즘이어서 더욱 인상 깊게 와닿았는데, 저자는 역사학자도 팩트체크를 게을리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건국절의 시점에 대해서 보수 세력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조목조목 짚어주고 ‘위안부’ 문제에 있어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것은 물론 명예회복의 길이 머나멀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 국가 차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어떤 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여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역사학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여성이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성이 여성사를 강의하고 연구하게 되었을 때 따르는 효과도 크다고 봅니다. 이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단지 ‘당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내세울 수 있는 논리’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182쪽 [인생의 패배자라고 슬퍼하지 마라] 중에서

 

 

현재 폐기되긴 했으나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저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정권의 이념과 입장, 정치 논리에 치우쳐서 청소년들에게 역사교과서를 통해 편향되고 잘못된 역사관을 주입하는 ‘역사 공작’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 여러 편의 글을 통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역사를 목적에 따라 왜곡하거나 축소했을 경우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가까운 일본을 통해 겪고 있는데 그런 음모를 국가가 추진하려고 했다니 아찔하기만 하다. <암살>을 비롯한 <밀정>, <사도>, <동주>처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콘텐츠에 대해 저자는 역사물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역사가 왜곡되어도 안된다며 강조한다.

 

 

역사콘텐츠는 제작자들이 바라고 꿈꾸는 역사의 모습으로 바라볼 필요도 분명 있습니다. 역사는 결국 박제된 사실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중과 호흡하며 해석의 변화를 낳기 마련이니까요. - 307쪽 [역사콘텐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중에서

 

 

역사를 인물과 사건, 오늘의 의미에 대해 다루었는데 포인트가 ‘현재’에 맞추어져 있어서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접하지 못했던 내용이 정말 많았다. 학창 시절 역사는 깨알 같은 글씨까지 통째로 암기해야 하는 품이 많이 드는 과목이었다. 역사와 재미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개념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어느 누구도 속시원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이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해소되지는 않았고 또 그걸 바래서도 안된다. 책을 읽으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부분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다행인 것은 어쩌면 이후에 저자의 또 다른 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에서 역사가 멀어지는 순간 우리에겐 이전보더 더욱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는 책읽기였다.

 

 

h*******8 2021.1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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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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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왜 배워야 할까요. 자주 하는 질문이지만 스스로 답을 찾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역사의 교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누이 배워 왔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역사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주진오의 한국현재사>는 역사학자 주진오 교수의 시각으로 풀어낸 오늘의 역사책이에요.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이미 언론에 기고했던 칼럼 일부와 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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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왜 배워야 할까요.

자주 하는 질문이지만 스스로 답을 찾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역사의 교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누이 배워 왔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역사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주진오의 한국현재사>는 역사학자 주진오 교수의 시각으로 풀어낸 오늘의 역사책이에요.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이미 언론에 기고했던 칼럼 일부와 페이스북에 썼던 내용들을 추려서 엮은 것이라고 해요.

내용을 살펴보면 사람의 역사, 만들어가는 역사, 참여하는 역사, 이어주는 역사라는 네 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어요. 가장 주목한 내용은 참여하는 역사예요. 역사학자로서 역사는 실천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이기에 여기에 실린 글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현재적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게 되네요. 

한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있었는데 역사학과 교수들을 비롯하여 학부모, 학생들까지 대대적인 반대 움직임이 있었고, 현 정부에서 국정교과서 폐기를 결정하면서 논란은 종료되었어요. 그러나 아직도 잘못된 역사관을 지닌 이들이 숱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요.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찬양하는 이들은 반민주적 독재와 인권유린은 외면한 채 그것을 지적하는 이들을 빨갱이 취급하고 있어요. 저자는 현충일을 기념하는 바람직한 방법에 대한 글에서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했다 해도 한국전쟁을 일으키고 독재체제를 확립한 그를 용납할 수 없듯이, 이승만과 박정희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순국선열과 호국용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지키려 한 것은 결코 이승만과 박정희의 장기독재정권이 아니었다는 거죠. 저자는 늘 내가 그 당시에 살았다면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고 해요.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 김경천 장군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데, 영화 <암살>에서 '속사포'라는 별명으로 불린 추상옥(조진웅 분)이라는 인물이 바로 김경천 장군이라고 해요. 한국사 수업에서 배우지 못했던 인물이라 몰랐어요. 사실 김경천이라는 인물은 1990년대에 알려지면서 1998년이 되어서야 서훈을 받았다고 하네요. 저자는 김경천 장군이 좌우 이념에 휘둘리지 않은 독립적 독립운동가였다고 평가하네요. 근래에 무명으로 잊혀졌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알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그분들을 기억하고 잘 기록해서 후세에 전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정말 명심해야 할 것 같아요. 올바른 역사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새기는 계기였네요.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a*****7 2021.1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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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대사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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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밭 출판사」는 청림출판이 법률과 경제경영 전문출판에서, 인문학과 에세이, 소설과 비소설에 전문성을 두기 위해 창간되었다. 음악 회사로 보면 전체 음반사가 있고, 그 아래로 팝, 힙합,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레이블 회사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청림출판은 이름에서도 청량함이 느껴지겠지만,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겠다는 이상으로 만들어진 출판사이다. 비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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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밭 출판사는 청림출판이 법률과 경제경영 전문출판에서, 인문학과 에세이, 소설과 비소설에 전문성을 두기 위해 창간되었다. 음악 회사로 보면 전체 음반사가 있고, 그 아래로 팝, 힙합,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레이블 회사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청림출판은 이름에서도 청량함이 느껴지겠지만,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겠다는 이상으로 만들어진 출판사이다. 비건으로서 특히 청림LIFE의 책들을 참 좋아하는데, 정직한 출판사의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주진오 교수35년간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의 교수로 재직했다. 내년 2월로서 교단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1987년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상명대학교 교수를 맡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 서울시교육청 역사교육위원장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관장도 역임했었다.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로서, 극우나 뉴라이트 같은 세력에 맞서왔고, 국정화 교과서를 만들려는 정부를 상대로 반국정화 교과서 활동을 한 진보적인 인물이다. 이렇다 보니 자유한국당에서는 싫어하는 교수이고, 민주당 쪽에서는 반기는 인물이다. 오늘날 민주당이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모호해진 상황이라 해도, 현재는 친정부 인사라 하겠다. 극보수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지 않거나, 상대 진영의 논리에 반박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읽는 사람이다. 보수와 진보 중도라는 말이 언제부터 생겼던가? 올바른 것이 맞는 게 아닐까 싶다.

 

 

역사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계속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에드워드 카역사는 인류와 인간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을 지닌 증거물을 토대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는 말이 나온 이유가, 역사학은 증거물이 없으면 연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판으로 비유하자면 사람을 죽였는데, 살해한 흉기를 발견하지 못해 정황만으로 유죄를 선고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록이 있고, 정황이 있어도 증거가 없으면 역사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봉건주의 시대 사서들은 왕의 앞에서 목숨을 걸고 사실만을 기록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도, 기록된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관점에서 태반 쓰인 것이 사실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관점은 바로 이 증거를 토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주진오의 한국현대사오랜 시간 역사를 가르친 노교수의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한국사를 33가지의 현대사 이야기이다. 국가 기록물로 지정돼 열람이 제한된 특정일을 제외하고는 30년의 역사는 우리가 실제로 보고 겪은 일들이다. 책의 내용 대부분이 저자가 칼럼에 기고했거나, SNS를 통해 의견을 적은 것들을 모아 재구성한 것이다. 책의 성격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 “박정희 기념관에 200억의 국가 보조금이 아직도 들어가는 것에 옳다고 생각하는가?”, “민간주도가 아닌 정부주도의 박정희 기념사업은 과연 옳은가?” 이에 대한 대답은 책을 읽고 스스로들 찾아내길 바란다.

 

 

중고교 시절 나는 국가를 재건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며, 등하굣길 사진관에 있는 사진을 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매일 했었다. 대학 시절은 전대협과 한총련을 거치면서 부조리한 정부를 비난했고,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자의 부조리에 맞섰다. 중년의 나이가 들어서는 사상과 행동이 변질된 많은 이들을 보며 염증을 느꼈고, 어느 하나의 진영보다 옳은 것이 바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와 진보와 중도라는 진영을 통해 역사를 보고 현재를 볼 것이 아니라, 옳고 바른 것을 통해 역사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a****0 2021.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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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주진오,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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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가 있을 때 기자들이 찾는 역사학자는 주진오교수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실 참여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는 분이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특히 '한국여성사' 강의를 개설한 존경스러운 분이다. 지난 정부의 국정 역사 교사서 저지에도 힘쓰신 분이라니 교수라는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신념대로 행동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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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가 있을 때 기자들이 찾는 역사학자는 주진오교수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실 참여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는 분이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특히 '한국여성사' 강의를 개설한 존경스러운 분이다.

지난 정부의 국정 역사 교사서 저지에도 힘쓰신 분이라니 교수라는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신념대로 행동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황현산교수님의 책 '밤이 선생이다'를 발견한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의식이 깨어있으신 분인데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무척 안타깝다.

 

이번에 처음으로 글을 올린 SNS와 신문 칼럼, 인터뷰, 방송 등의 내용을 추려 책으로 펴냈다.

제목이 '한국현재사'여서 더 흥미로웠다.

현대사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저자의 지난 글을 찾아보며 팔로우도 하는 기회를 가졌다.

한번씩 새글을 읽어보며 나의 얕은 지식도 쌓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볼까 한다.

 

열려있는 지식인이라는 것에 더해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분석하는 능력이 있는 분이다 싶다.

책은 사람의 역사, 만들어가는 역사, 참여하는 역사, 이어주는 역사의 네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과 실제의 모습은 무척 다르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인생에서 수많은 결정을 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하고 그것이 맞지 않다면 수정해서 다시 생각을 바꾸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러나 많은 역사는 그들의 행도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후대의 사람이 기록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그 때 그사람의 심정이 어떠했고 그렇게 행동한 결과론은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저자의 생각처럼 훌륭한 사람의 생애는 모두 미화된 경향이 있다고 여겨진다.

순간적인 판단 미스가 있을 수 있고 수정하고 다시 다른 뱡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승만에 대한 이야기는 강대국에 기대는 기회주의자라는 생각이다.

박용만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결국 배신하고 마는 나쁜 사람이다.

국민을 버리고 혼자 피난을 가버린 것에도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사람에게 역사적 과오를 꼭 따져서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에 대한 오류를 수정하고 정확한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고종에 얽힌 이야기와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풀지 못하는 숙제로 남아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역사교과서에 대한 국정화 교과서의 내용에는 정부에서 강제로 추진한 일로 많은 오류와 왜곡으로 시민들에게 반감을 산 사건이다.

여러 학자들이 반대를 하자 집필진을 감추는 꼼수를 부린 그들에게 분노하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사실과 영화를 비교하며 흥미를 유발한다.

드라마에서도 역사왜곡이라고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것들이 주변국이 행하고 있는 왜곡에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바른 역사를 알고 그것을 기반으로 서술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오늘 역사를 배우고 이해하면서 옳다고 생각하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주진오의한국현재사#주진오#추수밭#책좋사

h*****1 2021.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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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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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역사는 왜 하는 것이고, 무엇을 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왜 하는 것이고, 무엇을 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답변을 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질문이 참 질문답다. 이 질문은 프랑스의 동아시아 전문가 장셰노란 작가한 한 질문이라고 한다. 그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넘어 과거와 현재의 역동적 관계라고 규정했다. 역사는 단순한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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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역사는 왜 하는 것이고, 무엇을 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왜 하는 것이고, 무엇을 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답변을 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질문이 참 질문답다.

이 질문은 프랑스의 동아시아 전문가 장셰노란 작가한 한 질문이라고 한다.

그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넘어 과거와 현재의 역동적 관계라고 규정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어제 혹은 그제, 지난 시간, 과거에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산재한 문제들을 대처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역사가 필요한 것이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역사는 무엇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실천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고 나는 역사의 부제를 이렇게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사람의 역사, 만들어가는 역사, 참여하는 역사, 이어주는 역사뭔가 과거에 정체되고 침체되어 있는 역사가 아닌 움직이며 역동하는 역사가 진짜 살아 있는 역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주진오 교수를 모른다. 주진오의 교수의 책도 사실상 이 책이 처음이다. 하지만 역시 역사 전공자, 역사과 교수라서 그런지 다른 역사 관련 저자의 글과는 다르게 전문역사학자의 글답게 글에서 깊이와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저자가 서머리에서 밝혔듯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써내려간 기록이라는 말의 무게를 충분히 짐작하고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이다. <1987>이란 영화를 보면서 독재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두 대학생의 짧은 생을 보았다. 고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가 그들이다. 이한열 열사의 사진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이젠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시위를 벌이다가 직격으로 날아온 최루탄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머리에 맞고 실신했다가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 때 찍힌 사진은 천재교육에서 나온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8종의 검정교과서 가운데 유일하다. 하지만 검정교과서 집필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의위에서 사진을 삭제하라는 수정보완 요구가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부하려 했다가 결국 다른 사진으로 교체를 했는데, 후에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자 이번에는 다시 넣어달라고 국편에서 요청이 왔다고 한다. 마다할 이유가 없어 실었고 드디어 천재교육 교과서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검정 심의권을 내세워 집필진의 의사는 묵살했던 정권이 정치권과 시민단체에는 꼬리를 내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70)

 

4.3은 제주만이 아닌 현대사의 비극이다.

4.3 사건이 참극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 그 시기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런 참극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지도자들의 합의 무산, 가혹한 탄압,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진 대대적인 학살과 사건들...(~159)

 

역사는 있는 사실 그대로 기록되고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알려진다는 사실을 나는 이 기록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를 모르면, 정신적 불구자란 말이 있다. 역사는 분명 과거의 기록이지만, 오늘이 지나가서 어제 되는 순간 바로 현대의 과거사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조선시대 역사 못지 않게 지금 현재의 기록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여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의 상대 흠집 내기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 되고 있다. 화천대유 논란으로 여야 정치판이 연일 시끄러운데, 여기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조금 지나면 누군가에 의해 이 문제 또한 한국현재사에 기록되어 흑백,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역사학자가 들려주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야기, 공감할 수 있는 기록, 주진오 교수의 한국현재사를 통해 매일 다시 쓰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싶다.

d*****h 2021.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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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 저의 『한국 현재사』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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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 저의 『한국 현재사』 를 읽고 우리나라 역사에 관련한 책들이 많이 발간되고 있다. 하지만 내용들은 대부분 과거 우리나라의 지난 왕국 변천사 내지 그에 따른 관련한 내용들이다. 새로운 쟁점이랄지 우리가 갖고 지녀야 할 교훈이나 자세 등을 다룬 책 등은 보기가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역사 특히 한국사의 현대사 부분은 민감한 부분일뿐더러 아직까지 완벽하게 처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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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 저의 『한국 현재사』 를 읽고

우리나라 역사에 관련한 책들이 많이 발간되고 있다.

하지만 내용들은 대부분 과거 우리나라의 지난 왕국 변천사 내지 그에 따른 관련한 내용들이다.

새로운 쟁점이랄지 우리가 갖고 지녀야 할 교훈이나 자세 등을 다룬 책 등은 보기가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역사 특히 한국사의 현대사 부분은 민감한 부분일뿐더러 아직까지 완벽하게 처리나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만 보아도 아직까지 그 발포명령자 등이 확인되지 않고 있듯이 아직도 선거 등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재론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너나 나나 누구든지 무성하게 말만 많아지고 분열로 가는 첩경이 될 수가 있다.

그 만큼 역사적인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한국의 현재적으로 문제가 되는 역사적인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한 시원스런 좋은 책이 나와 너무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사회에 첨예한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기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역사학자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현실 참여 역사학자 주진오 교수는 오래전부터 주요 현안마다 빠짐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SNS, 신문 칼럼, 인터뷰, 방송 출연 등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는 대중들과의 소통에 있어 항상 최전선에 있어왔다. 주진오교수가 자신의 생각과 실천이 담긴 글을 이 책에 담았다.

지난 30여 년간 저자가 꾸준히‘현재’의 문제와 마주하며 소통해온 기록이자 그의 첫 번째 대중교양서라 할 수 있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되지 않는다’는 교훈과 역사학자로서 책무를 새기면 쓴 글이기에 더욱 더 글들이 마음으로 더 다가왔다.

역사학자는 기록을 통해 과거를 복기하고 오늘의 시점으로 불러오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 부끄럽지 않은 역사학자인가?”저자는 이 질문을 항상 되뇌이며 스스로를 반성한다고 한다.

얼마나 당당한 모습인가?

그렇다면 저자가 쓰고 있는 《주진오의 한국현재사》에 수록된 36편의 글들은 1990년대부터 2020년대에 걸쳐 쓰였지만 결코 낡거나 오래된 글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로서는 ‘현재’의 시점에서 쓰였기에 현장감과 긴박감이 넘치는 서술을 전개하며, 오늘의 독자에게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어떻게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영향을 끼치며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 주진오 교수는 역사란 과거의 박제된 사실이 아니라 오늘의 시점으로 불러와 항상 소통과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역사는 추앙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역사를 만들어가고 또한 그러한 ‘역사적 순간’에 우리를 초청하고자 한다.

이처럼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가는 역사가’, ‘참여하는 역사가’, ‘이어주는 역사가’로서 활동해온 현실 참여 역사학자 주진오 교수의 시대와 호흡한 결과를 담아낸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에게 필요한 태도를 전해준다.

“인간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살아 있는 사람의 역사를 만든다.”,

“역사에 마침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곧 대학 문을 나서더라도 다양한 활동과 역사 이야기를 통해서 더 나은 역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실천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바람과 공감과 연민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를 계속 해나가겠다는 당찬 각오도 밝히고 있다.

 

우리의 새로운 역사학계의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

m***3 2021.11.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