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은 남을 이기는 것보다 뛰어난 것. 그러니 자신을 억제하고 항상 절제하는 사람이 되라." .. 이 말은 법구경에 나오는 말 중 한 구절이다. 나는 어렸을적부터 천주교를 믿어왔기 때문에 처음 불교의 이러한 경전들은 무척 생소하였다, 동네 곳곳에서도 보이는 교회십자가에 비해 산속 깊은 곳에나 가야 나오는 절, 결혼도 하지 않고 철처하게 자신을 억제하고 수양을 쌓는 승려들,....... 이런 것등에서 받은 불교의 이미지는 어쩐지 감히 근접 못할 것같아서 어느정도 호감은 있었지만 소원하게만 느껴젔었다. 불교의 교리도 어느정도 알았지만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크리스트교의 두꺼운 성서책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계율들, 이슬람 교의 코란에서 나오는 수많은 교리들에 비해 책이 얇은 것과 내용이 의외로 간단해 보이는 것에 무척 놀랐다. 그리고 곧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즘엔 몇구절 보고는 '너무나 뻔한 구절"들 때문에 짜증도 났다. 물론 어느 경전이나 다 옳은 이야기만 적혀있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는 뻔한 이야기만 늘어 놓지 말고 무언가 다른 것을 기대했을 것이리라. 하지만 읽는 동안 느껴지는 진솔한 말들. 어떤 장황한 설명이나 어떤 거창한 비유보다도 마음에 와닿는 구절...... 책에서 내가 감동받은 것은 이 책에는 바로 '자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크리스트교나 무교, 이슬람 교에는 '자기 자신'은 없고 신만이 존재한다. 그들 종교에서는 인간은 그저 신의 도구일뿐 그 자신으로서는 어떤한 자유됴 용납되지 않고 있다.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이고 그 몸의 주인인데 주인으로서 하나의 개체로서 느끼는 감성들은 어째서 무시되고 거부되어야 하는지 어떤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하나의 소단락에 '자기'라는 단락이 있어 인간으로서의 한 주체로서의 의식을 허용하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다. '자기'라는 것,..... 사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이 정확히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릴수 있고 자기 자신이 정확히 무얼 느끼고 무얼 필요로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최대의 관심사이자 고민사는 바로 '나'였다. 내가 매일 보내는 일상일들, 매일 부딫히는 사건들, 해야할 일들, 기쁨, 슬픔, 고민,.... 이 모든 것들에 반응하며 살아가지만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최대의 관심사는 언제나 '나'라는 인간에 관하여였다. 난 정말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수 없었다. 전에는 내가 강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내가 어떤 꿈을 꾸고 있을 때.... 나에게는 무척 소중한 뀸이 있다. 어릴적에는 그저 즐겁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고 어느새 영원히 그 꿈안에서 살고 싶은 바램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이란 것은 만만할게 아니었고 그런것에 부딫히다 보니 그 꿈은 어느새 전만큼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그 꿈을 향해 나가는데 나약한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고 수많은 자기 번민과 자기 학대(?)속에서 어느정도 지친 나에게 진로를 결졍하야하는 2학년 2학기는 더욱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이 일을 할만큼 자신이 강한지도 스스로 의심스러웠고 어느새 자신감이 많이 깎여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당연한 진리는 멀게만 느껴지고 마음에 와닿지 못했다. 현실의 나를 가로막는 무언가 절박한 장애라든가 절대 절명의 고민도 없었는데 괜히 나는 안될거 같고 나는 더 힘들게 느껴지고 다른 사람은 나만큼 힘들어 보이지 않는데 왜 나만 이러나 하는 마음의 부담 때문에 어느 새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가 나에게 힘을 주길, 무언가 초자연적인 힘이 나 자신을 지켜주길 바랬다. 누군가 도와주길 바라며 무언가 거창한 고민인 양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아 보기도 했다. 점이나 사주도 많이 보고 그런것에 쉽게 흔들리고 쉽게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나와 나의 고민 그 뿐이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가 싶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 책을 읽고...... 부끄러웠다. "일어날 때 일어나지 않고 젊고 힘이 있는데 게으르에 빠지고 의지나 생각이 나약한 사람은 지혜로서도 길을 찾지 못한다."라는 구절은 차라리 하나의 쇼크였다. 동시에 말로만 고민하고 약한 소리 징징짜는 나의 지금 모습이 새삼 느껴져 너무나 부끄러웠다. 어느 책만큼이나 번한 얘기들로 꽉 차있겠지...하는 마음에서 펼친 책에서 요사이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의 길을 발견한 것이다.(그렇다고 이 책이 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 ^;) 나는 지금가지 자신이 만든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고민이란건 별것도 아닌 나의 어리광이었을 뿐이다. 나의 주인은 바로 나인데,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누가 나를 가로막거나 무언가 초자연적인 힘이 나를 짓누르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스스로의 틀에 갖혀서 스스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는지.... 이 책에서 '자기'라는 부분에서 내가 크게 공감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건 바로 이책에서 그저 '너의 주인은 너다'라고 말해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말하는 것들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을까. 자기를 잘 다룰 때 얻기 힘든 주인을 얻은 것이다", "홀로 앉고 홀로 자고 홀로 다녀도 지치지 않고 홀로 자신을 억제하며 숲속에서 즐기는 사람이 되라" 라는 것은 나 자신이 하나의 주체로서 이 세상에 두 다리를 곧게 뻗고 스스로 꿋꿋이 살아가라고 격려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 구절들을 읽는 순간 나는 요사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들에 직면하고 그 처방전을 받은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 것들은 그렇게 특별한 말은 아니다. 알게 모르게 많이 들었던 말들 그리고 피상적이나마 알고 있던 말들. 하지만 이렇게 절실하게 마음에 와닿은건 아니었기에 나에게는 새로은 길을 약속하는 증표같이 들렸던 것이다. 홀로 한다는 것... 물론 살아가면서 많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돕고 살긴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혼자라는거, 나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고민들 속에서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이 책을 통하여 배웠다. 물론 이런 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내 고민이 끝난건 아니다. 여전히 내 주위에는 고민들이 산전해 있고 그런다고 내가 특별히 강해진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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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법을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볼 때는, 곧 석가모니께서 가르치신 글귀라는 뜻이고, 법을 우주 구극의 진리의 본체로 보고 구를 길 혹은 발자국이라는 뜻으로 볼 때는, 진리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뜻이 된다. 법구경은 간단한 말 속에 불교의 요긴한 뜻을 두루 가지고 있고, 말한 바가 아주 실제적이라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립된 연대가 가장 오래 됐으므로 원시 불교의 면목도 많이 가지고 있다. 법구경은 전부 26장, 423게송으로 되어 있다. 사십이장경 과 불유교경도 첨부되어 있다.
어진 이를 가까이하면 곧 도덕과 의리가 높아가고, 어리석은 이를 친구로 하면 곧 재앙과 죄가 된다고 한다. 어리석음은 탁함이다. 정신이 탁하면, 분별력이 떨어지고, 그른 일에 몰두하게 된다. 탐욕과 망상에 빠지는 것도 정신이 탁하기 때문이다. 식탐과 주색욕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경계해야만 정신의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탁하면 악마가 뒤덮게 되니, 모든 감관을 잘 지키며 먹고 마심에도 절도를 지키라 한다. 생활의 즐거움만 좇아 구하고, 감관을 보호하지 않으며, 마음이 게으르고 겁이 많으면, 악마는 마침내 그를 뒤엎는다.
남의 잘못을 보지 말고, 우선 자신의 허물을 살펴야 한다. 자기를 돌보고 법에 맞나 안 맞나 살펴야 한다. 자신의 허물 보지 못하고, 남의 잘못만 들추어선 바뀌지 않는다.(아몰랑 아줌마가 이거 같은데) 자신의 허물 고치고, 계를 지켜야 향기로워져 복을 받는다. 계를 갖추어 이루고 행실이 방일하지 않음에 머물러, 바르게 알아 해탈한 사람에게 악마는 그 틈을 타지 못한다. 진흙, 쓰레기에서 연꽃이 피어나니, 사람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릇된 죄는 업으로 쌓이게 되어 언제가 고통으로 작용하나니, 자기 죄악을 숨기기 위해서 거짓을 꾸미고, 자기 주장을 세우기 위해 본의 아닌 진리를 억지로 우긴다. 지어진 업은 그늘 속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익을 탐하고 부질없는 존경이나 이름을 구하려 한다. 대인은 세상일에 빠지지 않아, 재물, 토지를 바라지 않고, 항상 계와 지혜와 도를 지키어 그릇된 부귀를 탐하지 않는다고 한다. 욕심과 집착을 떠나, 삼계의 속박을 벗어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건대, 행색이 보통 사람과 다르구나.
부처님이 대답하셨다.
나는 자기 자신을 다루는 사람이다. 언제나 자기를 다루어 따르면, 그 사람의 빛나는 승리에 신, 악마, 범도 반항할 수 없다고 한다. 자기 하나를 이김이야말로 참으로 전사중의 최상이라 한다. 몸을 지키고, 입을 지키고, 안으로 마음을 지켜 모두 성냄 버리고 도를 행하라. 욕을 참는 것이 가장 강하다.
병이 없는 것 가장 큰 은혜요, 만족을 아는 것 가장 큰 재물이다. 친구의 제일은 미쁜 것이요, 즐거움의 제일은 열반이니라. P153
떨쳐 일어날 때에 일어나지 않고, 젊음을 믿어 힘쓰지 않으며, 마음이 약하고 인형처럼 게으르면, 그는 언제나 어둠속을 헤매리. P204
다툼을 피해 다투지 않고, 침노를 당해도 성내지 않으며, 악 갚기를 선으로 하는 사람, 나는 그를 '바라문' 이라 부른다. P291
욕을 참는 것이 힘이 많은 것이니, 악한 마음을 품지 않는 까닭이며, 거기에 편안한 마음과 씩씩한 몸을 겸하는 것이다. 또 참는 사람은 악한 마음이 없어서 반드시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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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사에서 불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공부 자료들을 내 놓았다. 광대한 분량의 불교 자료들 앞에서 무엇을 읽을까 걱정하고 있다면 이 시리즈가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래저래 겨울이 오기 전에 읽어야 할 책들이 늘어난다. It's hard but it's meaningful though! 읽어야 할 시간을 늘려갈 할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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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자를 위해 어떤 그리스도교 신자는 이렇게 본다는 점을 밝히고 싶을 뿐이다. -
불교에 별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서 이 글을 이해해 주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말씀이라는 점은 확실한데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나는 불교에는 원죄 교리가 없기 때문에 느껴지는 허전함?이 컸다.
물론 원죄 교리를 믿지 않는 그리스도교인들도 많으니 완전히 다른 종교인 불교를 뭐라 할 수는 없고....
나는 원죄 교리를 도저히 받아 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불교나 유교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받아 들일 수도 없는 교리가 원죄 교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원죄 교리 없이는 믿을 필요가 없는 종교이다. 스스로 교회 안에 들어오고 싶어하지도, 교회가 되고 싶어하지도 않으면 결국 교회 밖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불교 교리에는 원죄 교리가 없다는 사실만 명심하고 읽으면 얻는 바가 매우 큰 유익한 책이다. 별 4개는 가뿐하지 않을까 했는데 문제는 읽는 사람이 원죄 교리를 완전히 받아 들였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에 별이 3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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