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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를 떠나보내는 보부아르의 마지막 연서
"사르트르를 떠나보내는 보부아르의 마지막 연서" 내용보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정치적인 견해나 사상을 잘 모르더라도 그들의 독특한 관계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을 벗어나 50여 년 동안 동반자적 삶을 함께 이끌면서 서로의 다름을 일치시켜 공생해 온 두 사람.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 지식을 쌓으면서 처음 만난 이후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서로의 곁을 지켰다. 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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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정치적인 견해나 사상을 잘 모르더라도 그들의 독특한 관계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을 벗어나 50여 년 동안 동반자적 삶을 함께 이끌면서 서로의 다름을 일치시켜 공생해 온 두 사람.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 지식을 쌓으면서 처음 만난 이후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서로의 곁을 지켰다.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에게 청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보부아르는 결혼도 아이도 거부한 채, 부부로 살기를 원했다. 계약결혼이라는 독특한 틀 안에서 둘의 사랑을 인정하면서도 우연한 사랑도 인정하는 관계, 상호 평등한 위치에서 모든 것을 함께 해 온 두 사람. [작별의 의식]은 보부아르의 시선에서 사르트르의 마지막 10년을 담은 책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시들어가는 듯한 사르트르의 저물어가는 생의 끝자락을 그리고 있지만,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허물어져 가는 사르트르 뿐만은 아니다. 평생동안 그가 놓지 않았던 '이데올로기적 관심'. 그는 고전적 지식인에 반하는 새로운 지식인-스스로 세운 민중적 지위를 얻기 위해 애쓰며 지식인으로서의 순간을 부정하는 존재-을 설정하고, 대중과 융합하기 위한 길을 모색했다. <엥테르 뤼트: 상호투쟁>의 편집장을 맡았고, S.R.(스쿠르 루주, 붉은 구원대)을 창설했으며, 여러 시위에 참석하고, 청원서에 서명하고, 리베라시옹 신문사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가끔 현기증을 느끼며 혈압이 높아지곤 했던 그의 병세가 위중해지기 시작한 것은 1973년. 요실금이 생겼고, 점차 시력이 악화되었으며 틀니를 해 넣어야 했고 당뇨 증세까지 보였던 사르트르는 말년에는 급기야 정신마저 혼미해지기에 이른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바로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것도 어려워했던 사르트르. 지켜보는 보부아르도 무척 고통스러웠겠지만, 자신이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을지, 글을 쓸 수 있을지, 제대로 생각을 하게 될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던 사르트르 본인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50여년 동안 지속되어 온 동반자적 관계가, 이제는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돌봐야 하는 피보호자와 보호자의 관계로 전환된 것이다. 생의 대부분을 공유하고 함께 책을 읽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한 상대를 잃는다는 것.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슬프고 가혹한 일이다.

 

 

중간중간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보부아르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르트르의 생의 마지막을 전달하려 애쓴다. 사르트르의 죽음에 관한 내용 뿐 아니라 활동한 내용, 함께 여행을 떠났던 내용 등 사르트르의 철학적 견해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나라도 몇 가지만 검색하면 비교적 쉽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이 그렇게 비참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그가 무너져가고는 있었지만 냉철한 그의 지성은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보부아르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책의 제목인 [작별의 의식]은 1971년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에게 우연히 뱉은 작별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보통 프랑스어에서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은 aurevoir 이지만 제목에 쓰인 adiex는 연인 관계의 끝, 혹은 생사의 갈림길 등 영원히 헤어질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어쩌면 사르트르는 10년도 되지 않아 보부아르와 영원히 이별하게 될 것을 무의식적으로 예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 나의 죽음이 우리를 결합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의 생이 그토록 오랫동안 일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름답다.

p283

 

이제 다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지만 보부아르의 마지막 고백을 통해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충만된 것이었는지 전해진다. 그녀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걸로 되었다.

 

** 출판사 <현암사>를 통해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y********j 2021.07.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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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가 남긴 사르트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의 전언
"보부아르가 남긴 사르트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의 전언" 내용보기
어쨋든 당신은 당신 글을 써야하오.""무엇보다도, 당신이 완전히 나아지면요." P108 사르트르가 읽어보지 못한 보부아르의 유일한 책.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책 끄트머리에서 언급한보부아르의 독백(?) 제기하지 못했던 질문이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나는 사르트르에게 그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을까? P282 이 생을 살고 있는 나는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못내 아
"보부아르가 남긴 사르트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의 전언" 내용보기
어쨋든 당신은 당신 글을 써야하오."
"무엇보다도, 당신이 완전히 나아지면요." P108

사르트르가 읽어보지 못한 보부아르의 유일한 책.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책 끄트머리에서 언급한
보부아르의 독백(?)

제기하지 못했던 질문이
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나는 사르트르에게
그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을까? P282

이 생을 살고 있는 나는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
못내 아쉬운 마음을 안고,
약속을 한다.

'우리 다시 만날 그날에...'?

보부아르의 마지막 말은
그런 생각을 뒤집는다.

지금
살고 있는 나
일치하고 교차하는 우리가 여기에 있다.

현재를 살고
공유하며 대화하는 행위야말로
작별의 의식, 죽음과 죽어감 속의 존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 나의 죽음이 우리를 결합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의 생이 그토록 오랫동안 일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름답다. P283
d********r 2021.07.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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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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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결혼' 커플로 그들만의 독특한 결혼관을 유지했던 두 사람,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문구다.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기존의 지식인에 대한 의미를 거부한 앙가주망의 주자로서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했던 사람, 그런 그의 정치적 동지이자 그가 다룬 글에 대해 처음으로 읽을 권리와 조언을 해줄 자격을 지닌 여인, 그런 그녀가 사르트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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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결혼' 커플로 그들만의 독특한 결혼관을 유지했던 두 사람,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문구다.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기존의 지식인에 대한 의미를 거부한 앙가주망의 주자로서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했던 사람, 그런 그의 정치적 동지이자 그가 다룬 글에 대해 처음으로 읽을 권리와 조언을 해줄 자격을 지닌 여인, 그런 그녀가 사르트르의 죽음을 마주하기까지 10년 간의 시간을 그린 책을 접해본다.

 

 

제목인 '작별의 의식'은 사르트르가 대화를 하면서 남긴 말이지만 몇 년 후에 최대의 의미 있는 말로 다가올 줄은 보부아르 조차 알지 못했다.

 

 

21살에 처음 그를 만나 그의 청혼을 거부하면서 계약결혼이란 당시엔 파격적인 형태의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이어진 그들의 관계의 종반부인 1970년부터 1980년까지의 10년 동안 사르트르를 가까이서 본 장본인의 글이라 어느 글보다도 더욱 차분하고 객관적이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 글들이 두드러진다.

 



 

 

 그들의 사회적인 활동의 공동참여와 각 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비판, 각자의 집을 방문하고 대화를 하며 책을 읽고 함께 식사하기, 여기에 빼놓을 수없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두 사람만의 휴식이자 그들의 유대관계를 한층 두텁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3년부터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한 사르트르의 건강은 거의 실명하다시피 한 한쪽 눈의 실명, 보행의 고통과 뇌에 관련된 질환, 당뇨, 요실금, 치아에 대한 고통이 겹치면서 위험의 고비 순간을 넘나 든다.

 

 

그의 병 진행 속도에 따른 변화는 서로의 뜻이 맞는 정신적인 유대감의 동반자에서 이제는 그를 곁에서 지키고 돌봐야 하는 보호자의 입장으로 바뀐  보부아르의 마음이 인간의 노쇠해가는 과정들과 겹치면서 대중에게 각인된 철학자란 이미지를 벗어버리게 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눈에 보일 정도로 약해져 가는 모습과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사르트르 자신의 노쇠한 부분에 대한 실망감, 결정적으로 더 이상 자신이 쓴 글이나 책을 읽을 수가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의 모습은 지식인으로서의 한계에 부딪친 사실적인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죽음에 대한 부분에 대해선 냉정했던 사르트르였지만 그런 그가 자신의 의지에 반한 모습들을 보인 장면을 보는 보부아르의 입장에서는 속으로 삭이며 감내하는 과정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51년 간의 평생 동지이자 남편으로서, 각자의 독립된 부분을 인정하되 진정으로 사랑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결혼이란 제도적인 부분을 벗어버리고 오로지 두 사람만이 간직할 수 있었던 순수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모든 글들을 공유하며 토론하던 두 사람, 책 앞머리에 보부아르가 더 이상 이 글은 당신이 읽을 수가 없게 됐다는 문장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평생 그들이 추구했던 정치적인 활동과 저서 활동, 토론과 대화가 그들의 삶의 반이었다면 여행을 통한 휴식을 얻고 나누는 부분들은 또 다른 그들의 삶을 비춘 부분이라 두 가지의 상반된 모습들을 통해 독자들은 기존에 알고 있었던 부분에서 보다 새로운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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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 나의 죽음이 우리를 결합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의 생이 그토록 오랫동안 일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름답다. -p283

 

 

 

 

이미 고인이 된 두 사람이지만 그들이 함께했던 순간들의 마지막 10년을 기록한 글들을 통해 그들의 작별의 의식은 Adiex가 아닌 영원한 사랑으로 넘어서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난 당신을 많이 사랑하오. 나의 카스토르." (사르트르가 남긴 마지막 말)

                 

 

이달의 사락 m*******n 2021.09.29. 신고 공감 0 댓글 0